•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옥*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지휘의 역사
    오늘날 지휘자는 연주회에서 가장 화려하게 각광을 받는 존재인데, 그 역사는 매우 오래이다. 지휘의 시작은 이미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도·그리스·로마의 고대문명에서 발견된다. 중세유럽에서는 단선율성가(그레고리오성가)의 선율의 오르내림을 손의 운동(카이로노미)으로 표시하였는데, 그 도형은 초기의 네우마악보에 계승되었다.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폴리포니 성악곡이 융성하였으나, 복잡화하는 합창의 통일을 위하여 일정한 시간단위(탁투스)를 손가락 또는 막대기의 상하운동으로 표시하는 지휘를 하였다. 16세기 말부터 특히 마드리갈로 대표되는 세속적 성악곡 분야에서는 가사의 정조에 따른 템포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바로크 시대에는 작곡자 겸 지휘자가 쳄발로로 통주저음을 연주하면서 연주자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제1바이올린의 수석주자(콘서트마스터의 기원)가 서서 연주하면서 활로 지휘를 하기도 했다. 이때의 지휘자는 아직 통솔자이자 해석자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시작과 끝을 알리고 템포를 조절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고 따로 지휘대를 가지지도 못했다.루이 왕조 때 활약한 륄리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다가 그만 실수하여 지팡이로 발을 찔러 그 상처 때문에 죽었다고도 한다. 이 당시 사용하던 지휘봉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니고 가벼운 지팡이나 바통이었다.바하, 헨델시대부터 하이든, 모차르트의 시대까지는 지휘자의 지휘는 아직 확립되지 못했으며 주로 작곡가의 부업으로 취급되었다.그러나 고전주의의 정점 베토벤을 거쳐 낭만주의로 가면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요구하는 장대한 관현악곡이 속속 등장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휘자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지휘자 없이는 연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오케스트라의 숫자도 많아지고 악보도 세밀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누군가 앞에 서서 조화롭게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지휘자는 단순히 통제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안단테' 와 '알레그로'를 자신의 정서에 따라 조율했다.누가 지휘대에 서느냐에 따라 '안단테'는 그보다 더 느릴 수도 조금 빠를 수도 있었다.라이햐르트는 보면대를 사용하여 지휘대 위에서 지휘한 최초의 사람이다. 1814년, 베버는 지휘봉을 사용하여 프라하에서 지휘하였고, 멘델스존은 1835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지휘하였다.그러나 지휘자가 근대적인 직업으로서 작곡가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은 한스 폰 뷜로 때부터였다. 그 이래로 지휘자는 작품의 해석자로서 속도, 박자, 셈여림, 각 주자의 개시 등을 지시할 뿐 아니라 자기의 해석에 바탕을 두고 연주를 세부적으로 가다듬는 창조적 재현 예술가로 되었던 것이다.브람스와 말러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주의에 오면 오케스트라의 편성 규모는 더욱 확대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한 빈필은 104명에 달했다. 말러는 음악 표현의 외향적 확대를 꾀하기 위해 1000명의 관현악단을 필요로 하는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을 쓰기도 했다. 물론 그 이전에 베를리오즈가 467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구상하기도 했다.이 시대에 이르면 지휘자는 완전히 신적 권위를 가진다. 요컨대 지휘자는 음악을 해석하고 창조하는 절대자로 올라서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가 된 한스 폰 뷜로는 신적 권위를 가진 지휘자 상을 최초로 정립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브람스의 교향곡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었다. 구스타프 말러도 작곡가이기 이전에 천재적인 지휘자였다. 그가 기다란 객석과 연주석 사이의 중심 공간에 올라서면 객선과 연주석의 모든 눈과 귀가 그에게 쏠렸다. 그는 악보에 적힌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했다.바야흐로 20세기 음악사는 지휘의 역사로 바뀌게 되었다. 19세기 말 거장들의 영향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지휘 계보가 성립된다. 아르투르 니키슈가 뷜로의 대통을 이어받았고 이를 다시 푸르트벵글러가 물려받아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전통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브루노 발터, 에리히 클라이버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지휘 계보는 20세기 음악사의 가장 거대한 산맥이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대응한 지휘자가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였다. 그는 즉물주의로 함축되는 지휘 철학으로 베토벤과 브람스를 재해석해 냈다. 그에게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운명]이 아니라 단지 '알레그로 콘 브리오(빠르고 쾌활하게)' 일 뿐이었다. 그는 주관성과 연주장의 감정을 일체 배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악보 속으로 들어가 정면 대결을 벌였다.토스카니니의 즉물적인 해석은 단숨에 거대한 찬반양론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의 지휘 계보를 잇는 거장들은 토스카니니를 [군악대장]이라고 비난한 반면, 그 외의 많은 지휘자들은 토스카니니를 응원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사, 곧 세계 음악사의 전통을 그대로 잇는다고 하는 독일의 지휘 계보에서는 당연히 토스카니니가 이단아로 보였다. 그러나 그 밖의 지휘자들은 '독일의 베토벤' 만이 아닌 '프랑스의 베토벤', '이탈리아의 베토벤'을 가능케 한 토스카니니의 즉물주의적 해석에 찬사를 보냈다. 미국의 NBC 방송국은 그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주었으며, 토스카니니는 NBC 오케스트라와 함께 숱한 걸작을 녹음했다. 토스카니니가 죽자 NBC 교향악단은 1년 동안 추모 음악회를 연 뒤 자진 해산했다.지휘의 두 계보를 대표하는 푸르트벵글러와 토스카니니는 음향학적으로 모노 시대의 지휘자들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스테레오가 개발되어 녹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으나 이때는 이미 브루노 발터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 유명을 달리했다. (살아 생전에는 토스카니니가 푸르트벵글러보다 대중적으로 선호되었으나, 두 사람의 사후에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평가가 제고됨에 따라 오늘날 지휘계의 흐름은 푸르트벵글러의 지휘관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예체능| 2008.04.06| 3페이지| 1,000원| 조회(1,285)
    미리보기
  • 프랑크의 생애, 교향곡, 교향시
    프랑크 Frank, Cesar Auguste프랑크의 생애프랑크는 1822년 12월 10일 벨기에 동부에 위치한 레에쥬에서 태어났다, 그를 프랑스 작곡가라고 하는 이유는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파리를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프랑크의 아버지인 니콜라스 죠세프 프랑크는 아들을 신동으로 키워 많은 돈을 벌려는 야심대문에 두 아들을 아주 어린 나이에 리에쥬의 왕립음악원에 입학시켰다.1835년 그의 집안을 파리로 이주하게 되며 그곳에서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고, 짐머만에게서 피아노를 르보른에게서 대위법을 브느와에게서 오르간을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싶어서 1842년 4월에 학교를 자퇴시키고 벨기에로 돌아갔으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844년 가족과 함께 다시 파리를 찾았지만 혁명 때문에 생활이 어렵게 되고 그나마 부모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해 아버지와도 사이가 멀어졌다.1851년부터는 여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학생을 가르쳐 생계 수단으로 삼았으며 작곡은 자신의 일과 중 틈틈이 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는 오르간의 영향으로 즉흥연주와 연주 시 서로 대비되는 음색을 선호하게 되었다. 프랑크는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로서 평생 동안 신의 영광을 찬송하는데 음악의 목적을 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이 작품 중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 많으며 신을 대하는 그의 경건한 태도를 볼 수 있다.프랑크의 생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1871년 생상(Camille Saint-saens)이 조직한 프랑스 작곡가들의 모임인 국민음악협회(Saciete National de Musique)의 회원이 된 것이다. 프랑크는 오페라가 융성하던 그 당시 음악계에 기악음악재건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순수기악음악에 전념하여 건반음악분야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바하의 작품들을 연구하여 대위법 음악의 견고함과 기법의 완벽성을 작곡기법에 더함으로써 다채롭고 풍부한 낭만주의 어법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1872년 브느와의 뒤를 이어 파리음악원의 오르간 교수가 되었고 이후 그의 오르간 클래스는 극음악 중심이었던 프랑스 음악 흐름을 교향곡이나 실내악곡, 건반음악 등의 기악음악 흐름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다른 유명 음악가와는 달리 50세가 될 때까지 거의 걸작이 없었는데 그의 오르간 교실에서는 바흐, 베토벤 등을 바탕으로 작곡법까지 가르쳐 댕디, 쇼숑, 볼드, 피에르네 등 프랑스 근대 음악을 이끈 많은 작곡가들을 배출하였다.1880년 문화훈장을 받았지만 작곡가로서의 이름은 사실 별볼일이 없었으며 그것은 『교향곡 d단조』에서 드러났다. 청중들은 하품을 하고, 단원들은 불만을 하는 등 혹평을 받았던 것이다. 작곡가로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던 국민 음악 협회에서 『현악 4중주곡』을 초연했을 때이며 청중들은 모두 일어나 떠나갈듯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1개월 후 강의하러 가는 도중 마차에 옆구리를 다쳐 늑막염에 걸리게 되며, 수개월 후 68세의 생애를 파리에서 마쳤다. 물질적 어려움과 세상의 냉대와 묵묵히 싸우면서 바흐나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전통 음악 정신을 영위하는 한편 고독하게 독자적인 작품을 추구하다 일생을 마친 작곡가이다.프랑키스트프랑크는 신앙이 아주 두터운 성자와 같은 조용하고 근엄한 인간이었다. 프랑크는 세속의 영광과 성공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바하와 베토벤을 연구했고 자기의 음악을 쌒아 올려가고 있었다. 진지하게 음악을 생각하는 젊은 작곡가들이 프랑크의 진지한 자세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엔지 프랑크의 주위를 둘러싼 진실한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는데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하나의 악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프랑키스트들이다. 이들은 프랑크의 제자인 댕디, 쇼숑, 뒤파르크 등을 중심으로 모인 그룹으로 자신들 스스로가 프랑크주의자(Frankist)라 불려 지길 원햇다. 그들의 음악적 성향, 풍부한 반음계주의 경향, 순환형식의 원리를 이용한 점등을 보면 프랑크의 절대적 신봉자들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빈사지경에 놓였던 고전주의적인 순수 음악을 프랑스에 리바이벌 시킬 것을 이상으로 한 일파였던 것이다. 이처럼 프랑크는 당대에서보다는 후대의 작곡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프랑크의 음악그의 대부분 작품들은 여러 악장들을 순환형식으로 결합시켜 곡에 통일성을 주려했다. 즉, 순환형식이라 함은 각 악장에 제각기 개성을 살리면서 주요 동기나 주제를 타악장에 사용함으로써 전곡을 하나의 통일체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그 순환형식의 극적 구조가 신앙심 내지는 종교적인 승화와 긴밀히 관련되고 있어서 신비주의적 혹은 종교적인 음악세계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또 프랑크는 전조의 천재였다. 조성의 표현성을 이론적으로 파악하려 했다. 따라서 조성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프랑크의 전조는 파악되지 않는다. 분명히 한 번 보아서는 그는 전조를 남용한 것처럼 보인다. 드뷔시가 프랑크의 변화무쌍한 전조를 보고 ‘전조의 기계’라고 비난했지만 세속적인 결렬함을 회피한 프랑크는 내면적인 영혼의 진동을, 조성을 점진적으로, 뿐만 아니라 떨리는 듯이 변전시킴으로 해서 표현하려고 했다.프랑크는 종교적 감동이나 철학적 사색을 음악에 의해서 표현하려 했다. 바꿔 말하자면 프랑크는 음악으로서 사색하는 사람인 것이다.교향곡 d단조 ( Symphony in d minor )작곡 1885년부터 1886년에 걸쳐 작곡되었다.초연 1887년 1월 9일, 파리음악원스코어는 친구인 작곡가 앙리 뒤파르크에게 헌정되었다.연주시간 약 38분편성 2Fl, 2Ob, E.H. 2Cla, Bass Cla. 2Bn, 4Hn, 2Trp, 2Cn, 3Trb, Tuba, Timp, Harp, Str파리 음악원에서 초연하였지만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크 자신이 이 곡을 완성해 놓고 만족했을 만큼 종교적 감정과 깊은 사상이 맑고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곡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었으나 제 2악장에는 스케르쪼로 볼 수 있는 부분을 중간부에 두었기에 전통적인 4악장 형식을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유명한 ‘바이올린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순환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곡에서는 3개의 순환동기가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특히 A는 특히 중요하여 전곡을 지배하고, C는 A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는 제 1악장의 제 2주제 외에 2,3 악장에 사용되고, C는 2악장의 주제와 3악장에 사용된다. 3악장 구성이지만 2악장은 느린 악장과 스케르초를 겸한 곡상의 것이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중후한 음향이 지배적이다.(*순환동기 : 몇 개의 기본적인 동기가 전곡을 통해 반복하면서 테마를 형성하고 따라서 밀접한 관계 속에 견고한 통일감을 준다.)또 화성은 반음계적 화성을 사용하여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했고, 이 반음계적 화성과 순환형식의 사용은 리스트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교향곡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잉글리쉬 호른이나 하프 등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제 1악장 Lento, Allegro non troppo d minor박자, 소나타 형식조용하고 중후한 첫 번째 동기가 몇 차례 반복되는 동안 악상이 빨라지면서 무언가 갈구하는 듯한 제 1테마가 애조띤 모습으로 제시된다. 제2테마는 두 번째 동기가 반복되면서 절규하듯 제시되며 이어지는 코데타는 극히 명상적이다. 전개, 재현은 다양한 변화를 보이며 종교적인 분위기의 코다로 들어간다.제 2악장 Allegretto B♭ minor박자, 세도막 형식현악기의 피치카토를 수반한 잉글리쉬 호른이 세 번째 동기로부터 발전한 테마를 연주하는데 신비하다로 할 만큼 슬픔에 차 있다. 중간부는 스케르초 풍이며 제3부에서ㅓ는 제 1, 2부의 테마가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끝난다.
    예체능| 2007.05.14| 5페이지| 1,500원| 조회(418)
    미리보기
  • 리스트의 생애과 교향곡, 교향시 해설 평가A+최고예요
    리스트 Franz von Liszt리스트의 생애헝가리의 외딴 시골 라이딩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음악애호가였던 아버지에 의해 6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9살에 공개연주회로 데뷔하여 지방 귀족들로부터 6년간의 장학금을 보증 받고 빈으로 유학을 떠났다. 1822년 그는 10살 되던 때부터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작곡은 살리에리에게 배웠다. 이 시기에 리스트는 베토벤의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 베토벤은 크게 감동을 받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리스트는 평생 그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1823년부터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그 후 1839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활동을 계속했으며 음악의 시작을 이끌어준 아버지는 17세에 돌아가셨다. 1831년 파리에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아 후의업적 중 하나인 표현의 가능성을 시도하게 되며 1840년에는 고향인 헝가리를 큰 환영 속에 여행한다. 또한 연주회 전부를 독주자로 혼자 등장해 연주하는 현재의 리사이틀(Recital)을 최초로 시도하게 된다. 1848년부터는 바이마르에서 음악감독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처음으로 공개레슨(Master Class)을 열었다. 또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교향시(Symphonic Poem)와 프로그램 심포니 등을 실현했고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기도 했으며 현대적 음악을 위해 힘썼고 1860년부터는 10년간 합창음악과 다수의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또한 리스트는 그 시대의 최고의 교육자로 인정을 받았고 60살 이후 거의 400여명의 제자들을 위한 선생님으로 보냈으며 1886년에 생을 마쳤다.리스트의 생애는 작품성향에 따라 4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던 제 1기(초기:1822~39)와 파리를 중심으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며 피아노 음악을 많이 작곡했던 제 2기(비르투오조 시기:1839~47), 바이마르 궁정음악 감독으로 지내며 작품 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한시기, 제 3기(바이마르 시트는 피아노의 연주 거장으로써 그 활동이 매우 화려했고 기교와 새로운 기법 연구에 몰두하여 연습곡 등과 같은 기교적이고 화려한 피아노곡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헝가리 무곡 : Ungarische Rhaospdien』은 실제로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점점 헝가리 대중음악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이 곡들을 스케치하고 써나가기 시작했다. 제 3기의 리스트는 구성이나 내용면으로 깊이와 폭을 넓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바이마르의 시기에 그는 작품 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했으며 초기의 작품을 개작하거나 교향시와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작곡했다. 1862년 리스트는 종교음악에 방향을 잡고 종교적 작품에 몰두하였으며, 1881년 『회색구름:Nuages gris』등의 작품을 통해 실험적인 화성과 반음계적인 화음으로 20세기를 예견한다.교향곡 파우스트 ( Faust Symphony )작곡 1854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작곡해서 10월에 거의 완성1857년에 합창이 붙여짐초연 1857년 12월 5일 바이마르에서 자신이 지휘함.연주시간 약 65분편성 picc. 3Fl. 2Ob. 2Cla. 2Bn. 4Hn. 3Trp. 3Trb. Tuba Timp. Cym. Tr. Hp. Str. 테너독창, 남성합창, Org.괴테의 ‘파우스트’에 감명을 받아 1854년에 완성시킨 작품으로 3악장과 종말의 합창으로 되어있다. 각 악장은 이 작품의 주요인물인 파우스트, 그레트헨, 메피스토펠레스의 성격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종말의 합창은 ‘파우스트’ 제 2부에 나오는 『신의 합창』이다.제 1악장 파우스트 Lento assai박자, 소나타형식파우스트의 성격을 나타내는 5개의 주요 주제가 다루어진다.절망과 번뇌, 희망과 노력, 자신과 용기를 그린다.제 2악장 그레트헨 Andante soave박자, 3부형식부드럽고 온화한 아가씨 그레트헨. 리스트의 여성관을 그린 듯하다.제 3악장 메피스토펠레스 Allegro Vivace ironico박자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적이며 이를 기뻐하는 있다.단테 교향곡 ( Eine Symphony zu Dantes Divina Commedia )작곡 1855년 초에 시작, 1856년 7월에 완결초연 1857년 11월 7일 드레스덴의 가극장. 리스트 지휘.연습부족으로 평판은 좋지않음연주시간 약 50분편성 Picc. 3Fl. 2Ob. E.H. 2Cla. B.Cla. 2Bn. 4Hn. 3Trp. 3Trb. Tuba Timp. B.D Cym. 2Hp. Org. Str. 여성합창청년 시절부터 이 단테는 리스트의 애독서 중의 하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 단테에 대한 리스트의 정렬이 이 교향곡을 쓰게 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교향곡 중에는 열렬한 카톨릭 신자로서의 리스트의 음악적인 신앙의 고백도 있다. ‘파우스트 교향곡’보다도 표제음악적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파우스트 교향곡’보다도 간결하게 씌어졌으나 악기 편성의 점에서는 대규모로 되어있고. 그런 만큼 다양한 색채감의 효과가 빛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두 개의 악장만으로 되어 있어 제 2악장의 종말에는 여성합창(또는 어린이 합창을) 설정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악장에는 지옥, 연옥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있다. 리스트는 실은 제 3악장으로 ‘신곡’과 같이 ‘천국’을 둘 계획을 세었었으나 바그너가 ‘아무리 어떠한 인간의 소리를 사용해도 하늘나라의 기쁨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반대했기 때문에, 이 계획을 포기하고 현재의 것 그대로 제 2악장의 끝에서 ‘마니피카트’를 여성 합창으로 불려 제 3악장을 대신했으며, 이리하여 천국에서의 숭고한 음악을 듣게 함으로써 천국을 숭상한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었다.제 1악장 Inferno(지옥) 서주를 지닌 3부형식.희망은 모두 사라지고 고통과 공포만이 있는 곳.제 2악장 Purgatorio(연옥)‘연옥’이란 죄를 범한 사람이 회개하고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죄악을 씻어내는 곳.마지막으로 천사의 노래와도 같은 여성 합창이 나온다.교향시, 산악 교향곡 (산 위에서 듣다)“Berg,의 교향시 중에서도 긴 것에 속하며 화려한 악구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몇 개의 완비된 독립적인 부분으로 된 듯한 인상을 준다.리스트의 이 교향시의 음악적인 사상은 평화롭고 힘찬 자연과 번민하는 인간성을 대비시켜 낙천주의와 염세주의를 대립시키고 있다.교향시 타소, 비탄과 승리 “Tasso, lamento e trionfo”초연 1849년 괴테의 탄생일에 바이마르에서 초연연주시간 약 22분악기편성 Picc. 2Fl. 2Ob. E.H. 2Cla. BCla. 2Bn. 4Hn. 4Trp. 3Trb. TubaTimp. Tr. B.D S.D Hp. Str1849년, 괴테 탄신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당시 리스트가 살고 있는 바이마르에서 쾨테의 ‘타소’가 상연되었는데 그때 서곡으로 작곡된 것이다. ‘타소’는 이탈리아의 시인이다. 곡은 비애(Lamento), 승리(Trionfo), 미누에트(Minuet)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테마는 베니스 뱃사공의 민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시인 타소와 궁녀 레오노레와의 사랑을 줄거리로 하고있다.교향시, 전주곡 “Symphonic poem Les Preludes”작곡 1854년 완성초연 1854년 2월23일 바이마르 궁정 관현악단의 기금 모집 음악회에서 리스트 지휘연주시간 약 15분편성 3Fl. 2Ob. 2Cla. 2Bn. 4Hn. 2Trp. 3Trb. Tuba Timp. B.D S.D Cym. Hp. Str프랑스 시인 리마르틴의 ‘시적 명상’에 나오는 문장을 음악화한 것이다.‘인생에게는 죽음으로부터 울려오는 가장 엄숙한 소리가 있다. 그 소리에 의하여 전해지는 알 수 없는 노래, 또한 그 노래에 대한 한권이 전주곡집. 그것은 무었일까? 사랑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다. 그러나 무참히도 아름다운 환영을 날려 버리고 성스러운 전당을 부셔버리는 뜻밖의 폭풍으로 기쁨이 싹트려는 환희가 파탄을 맞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폭풍을 피해 전원생활의 고독과 한적함을 바라지 않는 영혼이 있을까이여....’제 1부 Andante 봄의 순수함제 2부 Allegro ma non troppo 바람이 이는 인생길제 3부 Allegretto pastorale 위안과 평화제 4부 Allegro marziale animato 승리교향시 오르페우스 “Orpheus"작곡 1853년 말부터 54년에 걸쳐 작곡초연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1854년 2월 16일에 리스트 지휘연주시간 약 12분편성 Picc. 2Fl. 2Ob. E.H. 2Cla. 2Bn. 4Hn. 2Trp. 3Trb. Tuba Timp. 2Hp. Str리스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에트르리아의 병에 묘사된 오르페우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서 오르페우스를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리스트는 이미 그 이전에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우스를 상연하게 되어 다각도로 오르페우스를 조사 연구하여 오르페우스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교향시 프로메테우스 ( Symphonic poem Prometheus )작곡 1855년 완성연주시간 약 12분편성 Picc. 2Fl. 2Ob. E.H. 2Cla. 2Bn. 4Hn. 2Trp. 3Trb. Tuba Timp. Str바이마르에서 상연된 헤르더의 극 ‘해방된 프로메테우스’의 서곡을 관현악 반주의 합창곡으로 썼는데 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프로메테우스』란 표제를 붗여 교향시로 발표한 것이다. 노도와도 같은 함성, 그리고 비통한 절규. 격한 투쟁이 끝나고 승리자의 환희가 그려진다.교향시 마제파 ( Symphonic poem, Mazeppa )작곡 1854년 완성초연 1854년 4월 바이마르 궁정 극장 관현악단의 기금 모집 음악회연주시간 약 16분편성 Picc. 2Fl. 2Ob. E.H. 2Cla. BCla. 3Bn. 4Hn. 3Trp. 3Trb. Timp. Tr. Cym. B.D Str빅토르 위고의 같은 이름의 시를 표제로 사용해서 만든 곡으로 그가 15세 때 작곡한 피아노 초절 기교 연습곡 ‘마제파 연습곡’중 제 4곡인 d단조를 확대하여 관현악곡으로 완.
    예체능| 2007.05.14| 6페이지| 1,500원| 조회(1,085)
    미리보기
  • [음악]키스 자렛 (Keith Jarrett)
    재즈음악 수업을 들으면서 재즈 뮤지션에 대해 배웠다.키스자렛.. 재즈음악수업중 첫 과제..?동영상 감상......재즈음악에 대해 넘 모르는게 많아서 일단 먼저 음악을 듣기위해 여기저기 인터넷 자료와 DVD도 찾아보던중 정말 운이 좋게도 키스자렛 동영상을 구할수 있었다..어느 낡은 극장에서 한 콘서트였다.보조의자까지 꽉찬 객석에서 관객들이 치는 박수속에 불이 꺼지고 무대에만 밝은 조명이 비춰진다. Keith, Gary, Jack 이 들어온다.Keith Jarrett 은 앉자마자 연주를 시작했고 다른 두 명도 곧 합류했다.특이했던건 피아노 위치.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공연 중에 피아노 연주자가 가장 관객과 등을 돌린, 그런 위치이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끼리의 호흡을 중시한다는 것이겠지.Jarrett 은 곧 그 특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신음소리 내며 무아지경으로 연주하기' 모드로 들어간다.나는 몸을 비틀고 비비꼬며 연주하는 Jarrett 을 보고 살짝 웃음이 나온다.Keith Jarrett trio. 멤버들끼리 호흡이 완벽하네 이런 말은 그들에겐 어쩐지 거추장스럽다. 물론 당연히 좋으리라 예상은 했었다.무엇보다도 연주 자체에 자기들이 흠뻑 빠져서 즐기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잘 보였다.마지막 곡은 이 공연의 최고였다.이 곡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그들의 앨범 을 보구 알게 되었는데 앨범 이름과 동명인 Up for it 이라는 곡이었다. 앨범에서는 Autumn Leaves와 연이어서 연주되고 있는데 물론 라이브 연주가 더. 훨씬 좋다. :-)맨 마지막 곡이어서 그런지 중간에 베이스와 드럼 솔로부분이 들어갔고 앨범보다 무척 다이나믹하게 연주되었다.특히 Keith Jarrett 이 체중을 실어 에너지가 넘치는 굉장한 연주를 끝내고 곧바로 무대 뒤로 들어갔을 때는 관객들, 다같이 탄성을 질렀다. 피아노가 잠깐 쉬는 사이 베이스와 드럼이 감흥을 고스란히 이어간다.ary Peacock 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을것 같다.처음 무대에 그가 나왔을때 생각보다 무 보질 못했다.연륜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감이 있다.콘트라 베이스 소리가 이렇게 맑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1, 2부의 모든 연주가 끝나고 앵콜곡인 When I fall in love 도 끝나서 trio는 무대 뒤로 들어갔지만 당연히 그대로 보내줄 수는 없는 법.관객들은 계속 박수쳤고 그들은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두번이나 인사만 하고 들어갔지만 사람들은 계속 기립박수를 쳤고 그들은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이름모를 곡을 연주했다.연주가 끝나고 트리오는 다시 들어갔는데 객석의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박수를 쳤다.그들은 다시 나와서 또다시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키스자렛에대해.....키스 재릿은 강력한 즉흥연주로 독창적 어프로치를 하는 상상력 풍부한 피아니스트이다.클래식과 재즈의 에센스가 혼합된 즉흥연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는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느낀 바대로 연주를 한다.미리 쓰여진 멜로디나 코드 진행을 사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그렇기에 그의 임프로비제이션은 다른 재즈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더욱 자연발생적이다.그런 가운데에서도 토속적이고 펑키한 느낌과 가스펠적인 필링 등이 드러난다.키스 재릿은 연주 도중 허밍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피아노를 연주하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는 가금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한다.그의 음반은 실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솔로 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구제프의 명상곡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변신은 끝이 없다.오른손과 왼손의 불협화음, 거칠게 몰아치는 연주, 때론 부드러움의 세계에서 온화한 미소로 관중들을 향해 답례를 할 때 우리는 키스 자렛의 피아니즘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정통 재즈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재즈 세계에 들어온 마이다스의 손을 지닌 연주인 키스 자렛은 대부분의 연주인들 스토리처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3세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여 7세에는 자작곡을 연주했다.그런 그가 재즈의 매력에 깊이 빠지기 시작한 10대중반부터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두루 섭렵하게 되었고, 퍼커션, 비브라폰, 파이프 오르간, 크라비코드, 색소폰 등을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팀을 조직해 연주를 한 시기는 1962년경으로 피아노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보스톤에 위치한 버클리로 가 그곳에서 트리오를 조직 연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다.버클리에 도착한 키스 자렛은 클래식보다는 재즈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재즈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즉흥 연주의 매력이 깊이 빠지게 되었다.보스톤에서 트리오 연주 생활을 한 키스 자렛은 그곳에서 활동하던 토니 스콧(Tony Scott), 로랜드 커크(Roland Kirk) 등을 알게 되었고,그들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재즈의 세계 외에도 다른 재즈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한동안 그들과 함께 연주를 한 적도 있다.65년경 버클리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가장 재즈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키스 자렛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팀에 소속하게 된다.바로 하드 밥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재즈 대학 아트 블래키 재즈 메신저에 영입된 것. 키스 자렛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당시 아트 블레이키가 이끄는 메신저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즘으로 이름을 떨친 호레이스 실버, 바비 티몬스 등이 1기와 2기 피아노 주자를 지낸 자리여서 아무래도 키스 자렛에게는 큰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무거운 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호레이스 실버나 바비 티몬스의 연주는 하드 밥의 대명사이며, 펑키 재즈 피아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이런 연주인들이 거쳐간 메신저에 감수성이 예민한 감성주의 피아니스트를 영입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역시 자신의 스타일과 메신저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키스 자렛은 몇 개월만에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그러나, 결국은 다시 음악 수업을 받기에 이른다.그 음악 수업이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비슷한 연주인의 밴드에 들어가 연주를 하며 재즈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1966년에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의 쿼텟에 들어가 함께 떠난 유럽 순회공연에서 키스 자렛은 프리 재즈 스타일의 음악으로 유럽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일부 연주인들이 그러했듯이 키스 자렛 역시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개성파 연주인이다.당시 유럽인들은 미국의 클럽에서 연주되는 전통 재즈보다는 유럽적인 느낌즉, 재즈와 클래식의 교묘한 결합이나 혹은 아방가르드적인 색체가 가미되어있는 프리 재즈 스타일을 즐겨들었으며, 유로 재즈를 미국의 전통 재즈와 나란히 설 수 있게 하였다.이렇듯 유럽에서 먼저 성공을 거둔 키스 자렛은 미국으로 돌아와 또 다시 뉴욕의 재즈신에서 활동을 재기하였고, 1969년 당시 가장 화려한 음악 인생을 살고 있는 마일즈 데이비스 콤보에서 2년간 사이드 맨으로서 활동을 시작한다.한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 키스 자렛이 활동 할 때의 음반은 아쉽게도 녹음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앨범활동.......이렇게 60년대를 마감한 후 70년대로 들어와 키스 자렛은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되는데 바로 키스 자렛 사운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ECM으로 소속사를 옮겨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유럽 투어 중 ECM사로 소속사를 옮긴 뒤 첫 작품으로 72년 11월에 첫 솔로 피아노 작품 [Facing You]를 발표하였다.이 앨범에서 키스 자렛은 'In Front', 'Larenne'등의 지극히 서정적인 곡들을 연주하여 당시의 재즈계에 이변을 일으켰다.당시는 퓨전 재즈가 재즈신의 가장 맨 앞자리에서 활동을 하던 시기로서 이러한 퓨전 재즈 일변도에서 서정적인 재즈 연주를 들고 나왔다는 건 마니아들에게 새롭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피아노가 아무리 화성과 단선율을 모두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고하지만,또 즉흥연주로 밥벌이를하는 재즈 연주자라고 하지만,60히 건반악기라는 피아노의 특성을 넘어서서, 그는 피아노를 때로는 타악기로 이용하고,또한 혼자서 연주에 도취되어 흥얼거리는 그의 스캣아닌 스캣을 들을 때마다.재즈에서의 리듬섹션의 존재가 정말 무색할만큼 그의 솔로는 화려하다.흥미로운 사실은 1960년대에 간간이 찰리 헤이든과 폴 모션 두 멤버를 모아 트리오 형식으로 연주한 곡들이 [Somewhere Before]란 타이틀로 1968년 아틀란틱에서 발매되었다는 것이다.하지만 다분히 실험적이고 비정규적인 세션이었으므로 본격적인 그의 솔로는 [Facing you]라고 할 수 있다.이후 그는 임펄스와 ECM을 통틀어 60매에 가까운 앨범을 발표했다.오랫동안 그는 몇몇 동료들과 줄곧 손을 잡고 공동작업을 해왔으며 함께 병행한 솔로 프로젝트는 컨템포러리 재즈계를 빛낸 역작으로 간주되어 왔다.시기적으로 1960년대는 수업기에 해당하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솔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다채로운 포맷을 시도했다면, 1980년대에는 클래식까지 손댄 것이 이채롭다. 그리고 이제 1990년대에 오면 이런 다양한 경력을 총체적으로 규합하고 있다.1972년부터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One And Only 솔로 피아노 콘서트를 행하였다.그중에는 '73년에 녹음된 3장짜리 음반 [Solo Concert]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앨범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내 소견으로 이것이 진정 재즈인가? 클래식이 아닌가? 하고 다시한번 레코드 가게를 살펴봐도 카테고리 분류상 분명 재즈이다.이 라이브 솔로 피아노 음반은 100% 순수한 즉흥연주로 담겨져있음에 또 놀란다.다운비트, 스윙저널, 뉴욕 타임스 등 세계 매스컴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4년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는 행운을 안았다.이에 힘입어 키스와 맨프레드 아이햐는 '75년 다시 솔로 콘서트 녹음을 감행하였다.5회에 걸쳐 행해진 콘서트 중에서 서독 라인 지방 쾰른에서의 콘서트를 앨범화한 것이 [Koln Concert]이다.이 앨범은 키스의 솔로 작품으로[Faci이었다.
    예체능| 2006.12.11| 7페이지| 1,000원| 조회(1,721)
    미리보기
  • [음악치료]음악치료계획서
    1.신상명세서이름 : 장철수 성별 : 남 나이 : 65치료사 : 최옥경 진단명 : 노인질환 우울증2.의뢰- 의뢰인 : 장철수(본인)- 의뢰사유:능력도 인정받고 열심히 생활하였으나, 은퇴 후,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에서 점점 멀어 지고 사회적 활동이 감소하여 자연 수입이 감소하고, 사회적인 신분에 변화가 있게 되며, 사회적 책임감과 유용성이 줄어드는 가운데 건강 또한 쇠퇴하였다.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긍심이나 자신감 등에 영향을 받아 간혹 우울증의 징조마저보인다. 이에 병원을 찾았고 병원에서 정신분석 치료 후 자신의 문제를 발견한 상태에서인지행동치료를 받던 도중 치료에 대한 거부로 치료가 중단되었다.“자존감 회복”이라는 목표로 음악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3. 진단평가 : 노인질환 심리적 노화, 우울증4.음악적 능력에 대한 진단 평가1. 음악 감상 선호도 - 때때로 호의적2. 리듬반응 - 단순한 리듬에 손뼉을 침3. 노래하기 - 친근한 노래를 부름4. 음악에 대한 반응 - 드물게 반응을 보임5. 음악에 대한 몸의 반응정도 - 손뼉6. 악기연주 - 어렸을 때 피아노를 조금 배웠었음.5.치료계획장기목표:초기에 내담자와의 상담 후 현재의 심리적인 고립과 우울을 겪는 상황에서 위축된 자존감 증진을 목표로 정신 역동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여 5회까지의 세션을 진행하였다. 세션의 과정에서 내담자에게 있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목표와 의지, 자신의 존재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의미요법을 바탕으로 하여 세션을 진행하였다.의미요법(logotherapy)이란 Frankl에 의해 제창된 방법으로 실존적 정신의학 치료방법의 하나이다. 인간존재의 의미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의미요법은 삶에 대한 의미상실로 인한 허무와 공허, 무감각으로 굳어진 사람들에게 각자가 가진 의미를 발견하게 함으로 써 진정한 희망과 정신적 열망에 관심을 갖게 한다. 즉 개인이 직면한 고통에 대해 관심 을 집중하기보다는 장차 해야 할 일이나 그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내담자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감과 자존감 회복은 과거의 해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목표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의미요법 음악치료를 사용한다.다양한 음악활동 및 심리 상담을 통해 자아인식능력, 긍정적 자기표현 능력 상호교류능력, 집중력, 사고력, 기억력 등의 증진을 목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즐겁고 건강한 노년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데 목표를 둔다단기 세부 목표1회 session - 내담자와 친밀감, 유대감 형성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첫 세션에 들어오긴 했지만 A은 두 손을 깍지를 끼고 치료사를 쳐다보았고, 매우 긴장되어 있는 듯 했다.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무표정하게 그대로 듣고 있었으나 자신의 이름을 넣어 노래하자 미소를 지으며 같이 흥얼거렸다.내담자에게 치료사도 노래가사 속에 넣어 노래해줄 것을 요구하자 조그만 소리로 노래하 였다. 이에 조금 더 큰 소리로 노래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내담자는 응하여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chant의 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환자는 피상적인 이야기는 잘 노래할 수 있었으나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는 회피하며 비슷한 다른 주제로 얼른 넘어갔다.Stage 2 : 2회 session ~ 5회 session 자신의 심리적 갈등 파악2회 세션에서 나타난 내담자는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은퇴 전 자신의 유능함을 인정받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가족들에게도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안하고 참고 있었다고 한다.그로인해 자기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한두 곡씩 음악 감상을 하는데 자신이 아는 곡이 나오면 감상에 더 집중하며, 자유롭게 발을 까딱거리면서 즐거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너무 형식적이면 지루함이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융통성 있게 분위기에 맞춰 적절히 사용하여 늘 신선한 마음의상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Stage 3 : 6th session, 7th session - 갈등을 벗어나이전 시간까지 나눈 이야기들을 토대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이었다.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하였다.이에 치료사도 이번 세션에서 환자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통하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다시 새롭게 미래를 향해 출발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도하였다.-그가 젊은 시절에 유행한 노래를 년도 별로 수집하여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적절이 사용 해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Stage 4 : 8th session ~ 10th session - 나를 사랑하기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감정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해 봄으로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자신을 얽매고 있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함으로 현재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데 목표를 두고 진행되었다. 내담자는 초기에 비하여 자신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음악을 만드는 것 안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났다. 강박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다그친 결과로 자기 자신을 탓하고 질책하여 못난 자기로 인식,
    예체능| 2006.12.11| 3페이지| 1,500원| 조회(8,47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1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5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