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8.04.06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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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휘의 역사, 지휘법, 지휘자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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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오늘날 지휘자는 연주회에서 가장 화려하게 각광을 받는 존재인데, 그 역사는 매우 오래이다. 지휘의 시작은 이미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도·그리스·로마의 고대문명에서 발견된다. 중세유럽에서는 단선율성가(그레고리오성가)의 선율의 오르내림을 손의 운동(카이로노미)으로 표시하였는데, 그 도형은 초기의 네우마악보에 계승되었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폴리포니 성악곡이 융성하였으나, 복잡화하는 합창의 통일을 위하여 일정한 시간단위(탁투스)를 손가락 또는 막대기의 상하운동으로 표시하는 지휘를 하였다. 16세기 말부터 특히 마드리갈로 대표되는 세속적 성악곡 분야에서는 가사의 정조에 따른 템포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작곡자 겸 지휘자가 쳄발로로 통주저음을 연주하면서 연주자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제1바이올린의 수석주자(콘서트마스터의 기원)가 서서 연주하면서 활로 지휘를 하기도 했다. 이때의 지휘자는 아직 통솔자이자 해석자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시작과 끝을 알리고 템포를 조절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고 따로 지휘대를 가지지도 못했다.
루이 왕조 때 활약한 륄리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다가 그만 실수하여 지팡이로 발을 찔러 그 상처 때문에 죽었다고도 한다. 이 당시 사용하던 지휘봉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니고 가벼운 지팡이나 바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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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은 베를린 필을 장악하자마자 푸르트벵글러의 잔영을 지우는 데 온 힘을 썼다. 푸르트벵글러의 심오한 예술지상주의를 무시하고 라틴적인 화려한 감각을 도입했다. 그는 감각적인 충격 효과를 주기 위해 셈과 여림, 여림과 느리고 빠름의 폭을 주도면밀하게 계산했고 스테레오 기술은 그의 그런 드라마틱한 음폭을 그대로 재생해 냈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독단적으로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 자비네 마이어를 단원으로 추천하자 더 이상 카라얀의 독단을 참을 수 없게 된 베를린 필의 단원들은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반항하기에 이른다. 카라얀은 베를린 필에서 물러났고, 물러난 지 1년도 안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으로 스테레오 명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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