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왜 근대성을 지향한 작품인가1. 들어가기작가 이광수하면 학교 교육의 잘못인지 아니면 내가 부정적인 기억력만 높아서 그런 건지 친일파라는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현대문학사 시간에 무정이라는 이 작품이 근대소설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고 내가 전에 중학교 때 재미없다고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만들었다.과거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읽던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재미도 느껴지고 문체 하나하나 내용 하나 하나를 따져 가면서 읽으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듯이 이 작품에도 지금의 문체에서 느껴지는 자유스러움도 없었고 시점에서 오는 자유스러움도 없었다. 가끔 나는 무슨 신파극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소설 내내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어색했지만 처음의 애교로 봐주고 왜 무정이 근대 지향 혹은 근대소설의 물꼬를 틀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2. 본문 살펴보기?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신소설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한 최초의 본격적인 현대 장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평가의 근거로는, 근대적 의식과 자아의 각성이 보인다는 점, 서술이 비약적이고 추상적인 데서, 나아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되었다는 점, 구어체에 접근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연재 당시 인기도 대단하여, 청년 남녀를 중심으로 한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의 주제는 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근대 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 사상, 자유 연애관과 신 결혼관, 기독교적 신앙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무정?은 일체의 봉건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반항으로 새 시대의 계몽을 꾀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을 품고자 한다. 모든 자료를 다 찾아보아도 부정은 자유연애관을 지향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반 강제적인 것 같다. 처음에는 분명있다.문제는 민족 계몽주의가 민족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당대 선각자라 할 이광수의 관념 속에서 나온 데 있다. 이것은 구체성이 결여되어, 현실의 실천 방도의 제시가 없다. 다만 유학을 통한 신지식 습득이라는 부연을 통하여 작품이 귀결될 뿐인 것이다.다음으로 ?무정?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구어체 문장의 확립이다. ?무정?은 구어체 문장을 구사함으로써 현대적인 문체 확립에 기여하였다. 서술과 묘사를 적절히 구사하고 있으며, 등장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현재 시제법의 사용과 과거 시제의 일부 도입, 평이하고 유연한 표현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문학사적으로 볼 때,?무정? 은 이인직의 ?혈의 누?의 전통을 잇고 있다. 특히,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자아의 각성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현대적인 문체를 확립했고, 근대적인 주제의식의 반영, 근대적인 인물의 설정, 사건의 역순행적 배열을 통하여, 신소설이 보였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반면, 작가의 개입이 지나쳐, 작위적인 전개와 결말이라는 인상도 주고 있다.그렇다. 지나친 작가의 개입은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물론 다음 장면도 궁금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이 궁금한 것이 독자들의 현실이지만 소설 곳곳에 궁금하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어떨 때는 다정다감하게 다음 장면을 알아서 소개도 해주어서 나는 중간 중간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옆 사람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있는지 착각을 느낄 때도 있었다.흔히 ?무정?의 한계로 지나친 계몽성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무정의 계몽성이란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일까? ?무정?의 계몽적인 성격은 인물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잦게 등장하는 관계 유형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다. 첫 장면부터가, 선형을 가르치러 가게 되는 이형식의 묘사이며, 선형과 형식 외에도 형식과 하숙집 노파, 형식과 영채, 병욱과 영채 등의 관계가 모두 사제 관계라 할 수 있다.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범 출신이었다. 형식이 상승계층의식을 대표한다면 배학감은 몰락계층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한쪽은 조금이라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이를 전달하고자 했고 한쪽은 기생집을 찾아다니기에 정신이 없다. 이형식과 학생과의 관계는 시대의 방향성에 직결된 진취성이다. 고상한 직업은 일본인들이 치지하고 그 다음의 사무적인 일이나 얻어 고분고분 자기 실력을 쌓아가는 쪽을 상승적 계층이라 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두고 상승적 계층의식이라 한다면 과연 그것을 말의 바른 의미에서 진취성이라 해도 될 것인가. 이천만 동포와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점에 선다면 타협론 이야말로 시대적 진취성이 아니면 안된다.3.2. 사제관계의 견고성?무정?은 상승적 계층의 가능한 최대치의 이데올로기를 문학적 장치, 즉 감각적 상징성으로 드러내고, 이를 계몽적 의식 또는 교사·생도간의 문제라 불러도 될 것이다. 작품?무정? 을 이루는 첫 번째 구조 층, 곧 표층적 구조가 시대적 진취성이라면 그것은 논설문 레벨의 구조에 해당된다. 그 중간적 구조, 다시 말해 두 번째 구조 층은 바로 이 교사와 생도의 관계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작품만이 갖는 독자적 감응의 영역이다. ?무정? 의 독특한 힘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이 두 번 째 구조 층은 몇 가지 유형으로 ?무정?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로 묶으면 교사·학생의 관계구조가 된다.(1) 형식과 선형의 관계형식은 소설 첫 장면부터 선형의 영어 가정교사로 부임한다. "A, B, C……" 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이들의 사제관계가 매우 피상적이고 지속되지 못한 것은 이 형식을 가정교사로 초빙한 것이 아니라 사위감으로 고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삼랑진 여관방에서이다. 부부가 될 약혼자 사이의 갈등조차도 사제관계의 회복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정]의 특이성이자 이 시대의 가능성인 셈이다.(2) 형식과 하숙집 노파의 관계하숙집 노파는 그야말로 무식한 구세대의 여인인데, 소실에서 쫓겨난 그런 여인이다. 사고무친으나, 그런 주의는 극히 막연한 것이다. ?무정?속에 엄밀하게 배어 있는 이 순진성이 휘황하게 작품을 빛내고 있음은 이 작가가 참으로 당시 상승계층의 ‘있을 수 있는 의식의 최대치'를 포착한 드물게 보는 예외적 개인임을 입증한 것이다. 순진성, 소년적 단순성이야말로 당시의 젊은 계층의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이형식이 선형을 만나 선형을 자기의 누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제3장)과 어긴 기생 계향을 “내 누이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 누이라는 이미지와 순결성은 동일한 것이면서 또한 생명의식 그것과 같이 정신을 앙양케 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표현된다.이형식에게 있어 콤플렉스는 순결성의 상징이다. 어린 기생 계향을 "내 누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더욱 이 사실이 고조된다. 그리고 이 누이 콤플렉스는 고아로 자란 작가 춘원의 전기적 사실에 깊이 뿌리내려진 것이어서 그 어느 감정보다 감정의 추가 깊이 내려간 것이다. 누이의 존재가 정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인 것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하나는 영채의 구도덕으로 대표되는, 절을 지킨다는, 유교적인 것의 으뜸 덕목에 연결되는 것이며, 기독교, 특히 한국이나 일본 등 후진국에 들어온 기독교의 청교도 주의적 덕목인 순결성과 연결됨이 그 다른 하나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교의 으뜸 덕목인 절개와 기독교의 으뜸 덕목인 청교도주의적인 것을 은밀히 연결시켜 놓았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무정?의 도덕 감각이다. ?무정?의 심층구조에 깔린 이 두 덕목의 자연스런 결합이야말로 이른바 순결성·정결성의 정체이다. 그것은 작가 춘원의 소년적 혹은 청년적 순진성이자 배움의 길에 있는 일반 독자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형식은 학문에, 명예에, 성공에, 교사노릇에 열중하여 자주 순진성을 잃었다가 영채로 말미암아 그 순진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누이 콤플렉스는 평양에서 계향을 만났을 때에 더욱 고조된다. 계향을 만나고, 은인인 박진사의 무덤을 보는 일을 통해 이형식의 마음은 순진성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 순진성을 갈등 속에 고뇌하는 인물. 신교육을 받았고 지극히 도덕적인 면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 이익을 결국 받아들이나 인정적 의리 때문에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린 마음을 지녔다. 진취적 기상을 가졌고 선형과 결혼하여 미국 유학을 함.형식은 생각에 이어 생각을 한다.나는 조선의 나갈 길을 분명히 알았거니 하였다. 조선 사람의 품을 이상과, 따라서 교육자의 가질 이상을 확실히 잡았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필경은 어린애의 생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조선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모른다. 조선의 과거를 알려면 우선 역사 보는 안식(眼識)을 길러 가지고 조선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현재를 알려면 우선 현대의 문명을 이해하고 세계의 대세를 살펴서 사회와 문명을 이해할 만한 안식을 기른 뒤에 조선의 모든 현재 상태를 주밀히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의 나갈 방향을 알려면 그 과거와 현재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할 것이다. 옳다, 내가 지금껏 생각하여 오던 바, 주장하여 오던 바는 모두 다 어린애의 어린 수작이라.더구나 나는 인생을 모른다. 내게 무슨 인생의 지식이 있는가.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근본적(根本的)으로 무엇인지는 설혹 알지 못한다 하여도, 적더라도 현재에 내가 세상에 처하여 갈 인생관은 있어야 할 것이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할 만한 무슨 표준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이 있는가. 나는 과연 자각한 사람인가.-본문 中에서(2) 김선형 : 기독교 집안의 개화한 신여성. 이형식의 약혼녀로 부자이고 양반이며 신사상을 본받으려는 집안 상황 속에서 신교육을 받았으나 구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신교육을 더 받기 위해 미국에 유학감.선형은 생각하였다. 자기는 과연 형식을 사랑하는가. '아내가 되었으니까 지아비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니까 그 지아비의 아내가 되었느냐' 하던 말과 '만일 사랑이 없다 하면 약혼은 무효지요' 하던 형식의 말을 생각하였다. 만일 그렇다 하면 부모의 명령은 어찌하는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1. 들어가는 말평소에 지나친 편견으로 인하여 남성 작가의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지금 다루 고자하는 이문열의 작품 또한 이번이 두 번째 읽은 작품이 되겠다.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데 국문학과생이 어떻게 이문열의 작품을 두 편 밖 에 읽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나는 단지 남성의 필체가 싫었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핑계 만 댈 뿐이다. 이번 소설은 읽으면서 작가 이문열의 초상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읽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작가 이문열의 이십대의 성장 소설은 아니었나를 의심하여 역시 대 작가는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다른 작가의 성장소설이 초등학생정도의 나이인 주인공을 내 세워서 문체와 주인공의 나이 사이에서 사실성을 떨어뜨리는 데 반해 젊은 날의 초상은 이 미 이 십대가 된 나이에서 내면을 토로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사실성은 확보해 둔 셈인 것 같다.2. 통시적 관점에서 본 젊은 날의 초상낭만주의란 말은 그 내포가 굉장히 넓어, 때로는 반대되는 것 까지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다. 삶을 긍정하고 그 삶에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감정적 충일과 지적 자유를 부여하려는 경향도 낭만주의이며 삶을 부정하고 이 삶의 밖이라면 어디에라도 튀어 나가려는 환상적 모험과 지적 방기도 낭만주의이다.병든 낭만주의란 이 세계는 광폭한 무질서와 혼돈이 지배하고 있으며 그 세계에 자리잡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이 세계 밖으로, 그곳이 어디든 가 봐야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인간 내부의 성향을 지칭한다. 이것은 골드만의 비극적 세계관과 유사하면서도 다르다.비극적 세계관과 병든 낭만주의는 이 세계가 모순과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 하는데서는 서로 만나지만 비극적 세계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 밖에 출구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병든 낭만주의는 이 세상 밖에 출구가 있건 없건 그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하는 데서 서로 갈라선다. 그렇다고 병든 낭만주의가 이 세상 밖에서도 충일한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 신비적 행위이다. 표절 작품으로 문학회 동료들을 모욕하려 하고, 도둑 흉내를 내는 것은 거기에 순진스러움이 없기 때문에 매우 위악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사회화의 세목들에 대한 맹목적 저항과 어떤 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나가야 할지 모르는 막연한데서 연유하는 불안의 복합체이다. 어렸을 때 배운 도덕률에서 벗어나려 하는데서 생기는 불안감은 자신의 행위를 과장하게 만들고 그 과장은 자신을 유적지에 온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 유적지는 저항인의 유적지가 아니라, 유적지의 환상, 자신이 정상인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데서 생겨난 유적지의 신기루이다. 의 주인공은, 일상적이 못되는 사람에게서는 자기에게서와 같은 유적지의 분위기를 느낀다. 이러한 유적지 환상이 병든 낭만주의의 한 특성인 것이다.“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고.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젊은 날의 초상? 3부 ?그해 겨울? 中)낭만주의 특성을 들자면 천재의 숭배랄지 초개인적인 힘을 숭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도 등장한다.그렇다. 결국 우리는 목적 없는 길을 홀로 걷게 숙명지어져 있다. 그 허망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신화를 지어내고 자진하여 미신에 젖어 들지만 누구도 그런 숙명에서 벗어날 순 없다.(?젊은 날의 초상? 2부 ?우리 기쁜 젊은날? 中)역사주의적 태도도 약간은 등장한다. 주인공이 궁금해 하던 서노인은 결국은 빨갱이였던 것이다. 이념에 대해 작가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건데 이념을 위해 인간이 죽었다는 태도를 보인다.분단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것이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의 젊은날에도 좌파 우파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나 보다.내면적 동경으로는 그를 스쳐간 여자들이 몇 나온다. 1부에서는 별장오누이가 등장한다. 잠깐 마음을 품었다가도 이내 그녀의 냉담나는 그것에 따른 원인 모를 허탈과 슬픔 까지 극복해 낸 것 같지는 않다. 절망의 확인이란 아무리 냉철한 이성이라도 그것만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그 바닷가의 바위에 기대 한동안 울었던 기역이 난다.(?젊은 날의 초상? 3부 ?그해 겨울? 中)주인공은 방황과 여정을 겪음으로서 또 한번 삶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새로운 세계로 차차 접근해 간다. 이문열의 자서전적인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을 통하여 성장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하여 한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3.2. 작품 살펴보기하구-안개와 갈대, 강진에서의 기억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江盡)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젊은 날의 초상? 1부 ?河口? 中)이 책의 주인공 ‘나’는 자신의 열아홉을 처참하고 황폐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배경으로 강진의 안개를 떠올린다. 방향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나’의 모습과 안개의 혼미한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으로, 강진이라는 공간에 대한 효율적 인상화 과정이 무엇보다 탁월하게 뇌리에 남았다.'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목적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는 '서투른 어른들의 흉내나 북구(北歐)의 음울한 소설 나부랭이와 철학도 문학도 아닌 얼치기 저작물의 현학적인 감상 따위로 맞바꾼,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다 밟았거나 또는 다 밟아 갈, 정상적인 삶의 과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등학교 과정을 홀로 밟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나'를 회상하기 위해 작가는 일기장 속에 끄적거린 낙서들을 자주 인용한다. 열아홉의 과장된 어법과 미문(美文)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문장들은 그가 열아홉 고비를 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하며 살았을까?’하는 의문과 존경심이 내 마음을 가득 메웠다. 가끔 교수님께서 교수님 자신의 대학생활을 얘기 할 때에 내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교수님은 누리고 개척하며 생활을 했구나라는 존경심과 대단함에 눈을 끔뻑할 때가 많았는데 주인공 역시나 놀라운 대학생활을 했다. 술 한 잔 에도 철학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나의 대학생활의 술 잔치는 주인공과 같이 궁핍함속에서의 즐거움 내지는 당혹함이 아닌 집에서 받는 용돈에서의 걱정 없는 그러하기 때문에 철학 나부랭이는 도망가버리고 생각 없는 술 잔치가 아니었나 싶다.'김형'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문학 서클에서 그는 문학과 숙명적인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거기서 그는 그때까지 그를 괴롭혀 오던 피로도 잊고 한동안 문학 수업에 열중한다. 그러나 점차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 '비극적 결말이 명확한 짝사랑'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져들고, 결국 문학 서클을 그만두게 된다. 그런 그에게 '김형'은 지금은 방황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어쩔 수 없는 그 대지의 사람'임을 강조한다.견딜 수 없게 된 객지생활의 피로와 단 한 번의 사랑놀이, 그리고 가난은 그가 속절없이 영락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늦은 귀가와 술 때문에 가정 교사로 입주해 있던 집에서 번번이 쫓겨나고 할 수 없이 구해 든 하숙집에서조차 돈을 못내 쫓겨 나와 그는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값비싼 지식은 '나'에게 오히려 세계에 대한 관념적인 시선만을 안겨다 줄뿐이었다. '나'는 우연히 마주치게 된 어린 신문팔이 소년과의 하룻밤을 통해 그동안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사색과 독서가 한갓 관념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섭고 섬짓하면서도 진실에 가장 근접한 모습은 가난과 한판 당당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신문팔이 소년에게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나'를 관념으로부터 쫓아내 황량한 여행에 보낼 전주곡을 연주한 것이다.그 여름의 끝, 문학과 '나'를 이어주는 적인 정열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우리들의 '젊은 날'은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니까.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젊은 날의 초상? 3부 ?그해 겨울? 中)절망이야말로 존재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출발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시작된 여행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을 배워 간다. '바다가 나를 부른다'는 스물 하나다운 감상으로 바다 행을 결심하고, 바다를 향해 가는 동안 절망은 생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나'는 상행 열차를 타고 빠알갛게 맺힌 복숭아 과수원을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을 예감한다.방황의 아름다운 끝맺음, 어찌 보면 지나치게 상투적인 결말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자살을 선택했다면 더 좋은 끝맺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생각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맺었다면 주인공에게는 과연 죽음 후에 무엇이 남겨질 것이며 주인공은 왜 방황을 했는지 의미가 모호해졌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결국 죽음이 아닌 다시 살 결심으로 작가가 된 것이 아닌가다. 가장 끝의 절망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다. 주인공과 같은 목적지로 향하던 칼갈이 사내도 결국에는 살인을 하지 못하고 말지 않는가. 가장 끝 절망에서 본 것은 절망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보다 더 못한 상대의 삶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다. 훗날 주인공이 우연히 보게 된 칼갈이 사내는 예쁜 아내도 얻고 꽤 손님도 많은 그림 집을 하고 있지 않던가.그러고 보면 나는 절망의 끝 을 지금껏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자살에의 충동을 느끼지만 주인공처럼 반 이상이라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물론 반 이상 갔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자살에의 충동도 우발적인 생각이었지 절망을 맛보고 그러한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가장 끝에 서 본 사람만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동감하는 바이다. 지금 나에게는 아직 절망의 끝도 아닌 행복의 .
■ 지원분야: 연구개발(R&D)■ 성장과정저의 식구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합니다. 모든 일을 속전속결로 끝내시는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마설계 엔지니어십니다. 십여 개의 실용실안 특허도 가지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말씀을 청산유수처럼 잘 하십니다. 예리한 말 한마디로 가족들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저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첫째 동생은 음악에 소질이 있어 결국 음대에 입학했습니다. 제 동생은 어릴 때부터 늘 “이거는 이렇게 하면 돈벌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이런 제 동생은 사업가가 꿈입니다. 둘째 동생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으로 사진학과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막내임에도 말수가 적고 어리광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섯 식구가 똘똘 뭉쳐 살고 있습니다.저희 집은 떵떵거리는 부자도 아니지만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입니다. 제가 저희 집을 생각할 때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가족 모두가 서로를 믿으며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생각하면 늘 든든함을 느껴 힘이 납니다.■ 대학생활“고인 물은 썩는다!”이 말은 제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세운 생활신조입니다. 물이 막힘없이 흐르듯 성장해야지 제자리에 머물면 썩는다는 의미로 제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이렇게 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고자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습니다. ‘그림틀’이라는 미술동아리에서는 회장을 역임했는데, 이때 ‘리더쉽’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학연합모임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나와 생각이 다른 많은 대학생들을 통해 ‘다양성과 조화’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사고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도 전공 공부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 학점이 어느 정도 대변해준다고 생각합니다.말씀드린 바처럼 저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부지런히 움직이려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저는 많은 자신감을 얻었고, 앞으로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성격친구들이 저를 보고 남자 같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털털하고 뒤끝이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저는 남녀를 막론하고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많습니다. 또한 제게 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나 후배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면 최대한 친구의 입장에서 고민을 많이 들어주었습니다.반면에, 일을 할 때는 완벽주의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적당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다보니 제게 맡겨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서 이런 완벽주의가 생긴 듯 합니다. 이 성격은 승부근성으로도 나타납니다. 발표회나 팀별 활동을 할 때면 꼭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만일 2등이라도 하면 억울해서 그 날은 제가 만취하는 날이 됩니다.단점으로는 친구에게 돈이나 책을 빌려주면 그 일을 잊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책을 몇 권 사게 된 적도 있습니다.■ 지원동기 및 포부예전부터 저는 쇼핑을 하더라도 ‘이 제품은 이렇게 만들면 더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짧은 지식이지만 미술동아리에서의 익힌 디자인적인 감각과 영화동아리에서 익힌 분석력을 적용해 봅니다. 이런 저를 보면 연구개발 분야에 적성이 맞습니다.저는 ○○회사에서 회사와 함께 계속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회사의 핵심인재가 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지원분야 : 연구개발(R&D)■ 성격 및 성장과정 - 「게으름은 유전이다!」저는 게으른 사람이었고, 현재도 게으른 사람입니다.제 게으름의 역사는 그 양에 있어서나 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제 게으름은 단지 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에 퍼진 유전병이기 때문입니다.‘가문의 영광’ 이 아닌 ‘가문의 유전병’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우리 아버지는 소문나게 게으른 양반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손톱 깎고 그 자리에 두기’, ‘가득 찬 욕조물에 발 씻기’ 등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버지의 ‘엽기 행각’은 개그콘서트의 대본을 필요 없게 합니다. 게으른 아버지랑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 살기란 조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 아버지께서 반사회적인 사람이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닙니다. 가마설계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자신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실력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께서 사생활 속에서 아낀 에너지를 공적인 일에 쏟아 부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게으름의 달인인 아버지는 게으른 사고의 결과로 십여 개의 특허를 가지고 계십니다. ‘금연시계’ 등 대부분 실용신안 특허인데, 마케팅에 실패하여 큰 돈은 되지 않았지만 그 아이디어만큼은 좋은 상품들이었습니다.이런 아버지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발명가적인 정신은 아버지의 자식 2남 1녀 모두에게 계승 발전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저입니다.■ 학창시절1 - 「게으름이라는 이름으로」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인천의 단독 주택에 살았습니다. 그 시절 바닷가인 인천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고민이 있었는데 밤에 책을 읽다가 코끝이 땡땡 어는 추위를 뚫고 형광등을 끄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귀찮아 고안해 낸 것이 ‘자동 형광등 리모콘’이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늘어뜨려진 형광등 줄을 길게 연장하여 이불 속까지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1, 2 미터의 줄이 겨울마다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저의 게으른 정신은 십수 년 후에야 제품화되어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일류 역사의 발전도 어찌 보면 게으른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이런 실험 정신이 항상 성공한 것만은 아닙니다. 중학교 때는 할머니를 위한 ‘자동 스팀 안마기’를 개발한다고 다리미와 수건을 이용하여 외할머니를 모델 삼아 실험을 하다가, 할머니께서 화상을 입어 몇 달간 고생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의 실험정신 속에는 웃지 못 할 사건들도 섞여 있습니다.
『굴레』와 『아내의 상자』비교1.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줄거리아이가 3개월 만에 자연유산 된 후 부부는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꾸려나간다. 정말이지 겉보기엔 아무이상 없어 보이는 평온한 가정이지만 실제로는 황폐하기만 하다. 이들은 유명한 불임클리닉이 있는 강남의 아파트에 살다가 신도시로 이사 온다. 신도시는 전셋값이 싸고, 그 외에도 공기하며 좋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그들은?변화‘ 에 대한 ?삭막하지 않은 생활?을 기대했었다. 그리고 아내도 새로운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다. ?나?는 또 아내에 대한 과거의 일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그녀는 시시하다고 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나?는 모든 면에서 무난한 남편이었지만 음식에 관한 약간은 까탈스러웠다. 하지만?나?의 아내의 음식솜씨는 얌전해서 나의 입맛을 잘 맞추었고, 아내는 또한 정리정돈도 잘했다. 그리고 아내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다 읽은 책은 상자에 담아 두었으며 그녀의 기억들을 머릿속에 쌓아두는 대신 상자에 담아서 뚜껑을 닫아버리곤 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시간엔 잠을 잤으며 언제 봐도 단정한 아파트 단지의 창문들, 언제 봐도 그렇듯이 정확히 배치된 놀이터와 벤치와 나무와 주차라인과 보도블럭. 하늘도 언제 봐도 대충 그런 색의 지루한 안정의 빛이고 공기냄새마저도 도식적이라고 아내는 말했으며 처음 기대와는 달리 전과 변함없는 지루하고 도시적인 생활이라고 그녀는 느끼는 것이다.?남편?인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세상의 질서를 바쁘게 수행하는 동안아내는 잘 정돈된 집안풍경과는 달리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내는 늘 ‘나’에게있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소식을 진지한 말투로 전해주기도 한다. 아내의 일상이 이사오기전과 똑같아 졌을 무렵, 비어있던 옆집으로 어떤 부부가 이사를 왔을때 처음에 아내는 옆집에 관심도 없었고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옆집에 한번다녀온 뒤부터 그 집에 그렇게 여러 날이 흐르고 남편의 이끌림대로 침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남편은 그러는 와중에도 불에 올려놓은 것이 없냐고 당부를 하게 된다. 남편과의 시간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을 즈음 아이들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솥 사건이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나 아이들 방으로 건너갔다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그녀가 태워버린 솥이 들려 있다. 남편은 죽일 듯이 그녀와 아이들을 나무라게 된다. 그녀는 그래도 아이들이 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감싸 안아주려 했지만 아이들은 모든 탓을 그녀에게로 돌린다. 아내는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아침식사를 챙기고 아이들을 깨운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간다. 남편의 자고 있는 얼굴을 보다 찡쪽 한 쌍의 쫓고 쫓기는 행위를 보며 암놈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다. 창문 밖에서는 나무 가지에서 참새 떼가 지저귄다. 남편이 새소리에 뒤척이는 것을 보고 여느 때의 아침과 같이 빗자루로 나뭇가지를 치며 참새를 쫓는다.3. 두 작품의 비교1) 시점굴레-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작가가 서술해 나가고 있다.아내의 상자-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를 보고 서술해 나가고 있다.2) 주인공의 성격*굴레①아내 :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 하는 성미이다. 예의 바르고 온순하며 순종만 하는 태국의 전형적인 여자이다. 남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부재도 있거니와 성격상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기도 하다.(성장배경에서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아내는 유복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나 과보호를 받고 자랐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나 같은 사람이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고통, 고난을 겪고 사는 것이다.)②남편 : 찡쪽이나 새 소리, 옆집 TV 소리 같은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내나 아이들을 나무라는 신경질적이자 가부장적인 남자이다.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득이 되는 일만 하려든다. 득이 되지 않는 다면 무조건 아내를 시킨다. 한마디로 성격 빼고 모든 것을 갖춘 남자다. 특히 젊었을 때부을 자주 하는 옆집여자를 통해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남편의 분노로 아내는 요양원인지 정신병원인지 모를 어떤 곳으로 사회와 격리된다.②남편 : 관찰자의 입장으로 주인공이 아니어서 그런지 남편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언급해 보자면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뭉쳐져 있는 아내에게 남편인?나?는 큰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했다. 남편인 ‘나’는 자신의 일에만 신경 썼을 뿐, 빠르게 변해온 현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어떤 것도 해주지 못했다.3) 풀어서 두 작품 살펴보기*굴레내가 생각하기에는 『굴레』라는 작품에서의 아내와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만 있지 사랑이라는 연결점이 없어 보인다. 제목에서도 보여지 듯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과 아이, 즉 결혼은 굴레가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편의 입장에서도 결혼은 굴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만 벌어오면 되는 남편은 간단한 생활비를 제외하곤 모든 돈 관리를 하며 아내를 부리듯이 데리고 살았다. 심지어 아내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생활비조차도 자신의 밭에서 야채를 가져갔다고 적게 주는 사람이 남편 이다. 오히려 굴레라는 단어는 아내에게 어울리는 듯싶다. 값도 얼마 안나가는 솥 하나 태워 먹은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아내를 반쯤 창밖으로 내몰며 죽으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밖에서 우짖는 참새며 집안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왜 아내에게 죄가 되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안 갔다.굴레는 누구든 싫으면 벗어 던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내의 어머니는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받아 아내는 남편을 버릴 수 없고 가정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뒤에 가서는 돼지나 개와 같이 출입제한 구역이 없는 인간은 그 울타리를 벗어 던 질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내의 행동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실망감이 마음속에 그득 일었다. 굴레를 던지기는커녕 이내 수컷으로 보이는 몸집이 큰 놈이 작은 놈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작은 놈은 큰놈을 쫓아다닌다. 큰놈은 귀찮았는지 갑자기 뒤를 돌아 작은 놈의 꽁무니를 물어버리고 도망간다. 아내는 이 광경을 보고 미천한 암놈을 대신하여 불쾌감과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아내도 아는 것 같다.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하지만 계속해서 남편 뒤를 쫓고 있지 않은가?찡쪽 한 쌍이 곧 이 작품의 아내와 남편을 표상해 주는 것 같다. 다 얻은 남편은 이제 아내를 밀쳐 내 버리려 하고 아내는 계속 붙어 있으려 한다.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나름대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태국에 대해서 따로 공부한 적이 없어 태국의 가족상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또 아내상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중에 드러내고 있다. 순종만 하는 태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이 작중 아내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겠지만 일탈의 시도 한 번 없이 태국의 전형적인 여성은 ‘이런 식이다’로 작품도 똑같이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아내의 상자『아내의 상자』는 아내가 자신만의 세계로 폐쇄해 들어가는 것을?상자?로 은유해 그려내고 있다. 아내는 많은 상자를 가지고 있는데, 지난 시간 동안 그녀가 스쳐 지나간 상처들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아내는 현실에서 쓸모가 없는 생각이나 만족하지 못한 것들을 상자 속에 담아서 덮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과 단절해서 또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여기서 상자는 폐쇄적 닫힘의 표상이다.주인공 ‘나’도 아내가 안락의자에 파묻혀 잠든 것을 보면, 뚜껑이 닫힌 상자들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을 상처 입힌 세상을 향해 빗장을 지르고 잠들어 버린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아내는?나?에게 있어서 기계와 같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산을 하고 난 후로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을 어떤 일에 비유해서 자기 자신을 도태되어야만 하는 열성인자로응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어떤 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녀가 상자처럼 폐쇄적이고 현실과 단절되려 하면 할수록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남편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정말 서로를 위하여 살아가는 동반자라면 그 정도의 관심은 써주고 보살펴주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남편을 생각해본다. 내가 남편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생각하기에 남편이 바깥일을 나가면 아내는 집안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남편은 바깥일만하고 아내에게 집안일에 소홀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가 삭막해짐에 따라 인간들도 삭막해지고 이웃간의 따뜻한 정이 사라져 가고 있다. 여기서 현대사회가 기계화되고, 인간소외현상이 늘어나는 것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나?와?아내?에게도 이러한 것이 적용되어 지는 것 같다. 서로가 멀어져 갈수록 말수도 적어지고 하는 대목을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마지막으로 아내의 방에 들어가 보고 푸른빛이 감도는 벽지와 책상, 창가의 안락의자. 이러한 것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희미한 향기가 떠다닌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전에 아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알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아내’의 상자가 그녀의 지난 시간동안 스쳐 지나간 상처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왜 그 흉터를 지니도록 내버려두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알면서도 그렇게 보고만 있었다면 더욱 분노할 일이다. 그녀가 그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두고는 ‘나’는 ‘아내’를 저주하고 분노하려 한다.아내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난 후 마지막으로?아내?의 방을 둘러보는데 기분 나쁜 향기를 맡게 된다. 꽃이 박제된 포푸리에서 나는 향기였다. 아내는 없고 아내의 박제조차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의 말대로?아내?는 다른 세계에 있고, 어쩌면?나?는 아내의 박제된 모습만 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아내가 이사 온 옆집의 얘기를 계속하다가 강아지 얘기까지 하는데 그 얘길 하는다.
정석가(鄭石歌)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선왕성대(先王聖代)예 노니아와지이다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난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난구은밤 닷되를 심고이다그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그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유덕(有德)하신 님믈 여해아와지이다옥(玉)으로 연(蓮)ㅅ고즐 사교이다옥(玉)으로 연(蓮)ㅅ고즐 사교이다바회 우희 접주(接柱)하요이다그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그고지 삼동(三同)이 퓌거시아유덕(有德)하신 님 여해아와지이다므쇠로 텰릭을 말아 나난므쇠로 텰릭을 말아 나난철사(鐵絲)로 주롬 바고이다그오시 다 헐어시아그오시 다 헐어시아유덕(有德)하신 님 여해아와지이다므쇠로 한쇼를 디어다가므쇠로 한쇼를 디어다가철수산(鐵樹山)애 노호이다그 쇼ㅣ 철초(鐵草)를 머거아그 쇼ㅣ 철초(鐵草)를 머거아유덕(有德)하신 님 여해아와지이다구스리 바회예 디신달구스리 바회예 디신달긴힛단 그츠리잇가즈믄해랄 외오곰 녀신달즈믄해랄 외오곰 녀신달신(信)잇단 그츠리잇가1. 들어가기고려 속요의 일종. 와 에 전한다. 악지에는 그 배경 설화나 명칭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고려 속요라 단정할 수 없으나 그 형식적 장치의 주제 및 정조(情調)로 보아 속요와 동질적이므로 일반적으로 속요로 간주하고 있다. 이 작품이 언제 어떠한 계기로 누구에 의하여 지어졌는지는 기록이 없어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그 출전 문헌의 성격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별곡이 생성된 이후부터 조선 전기까지 궁중의 악장으로 불려지다가 문헌에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2. 작품의 형식이 작품의 형식은 총 6연으로 되어 있고, 제 1연은 3행, 나머지 2연부터 6연까지는 일률적으로 6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 1연에서는 제 1행을 한 번 반복하였고, 2연 이하 끝연까지는 제 1행과 제 3행을 각각 한 번씩 반복한 특이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선 제 1연은 서사(序詞)로서 그 다음의 본사(本詞)가 나오기 전에 궁중악으로서의 절차상 부가된 듯한 인상을 주는 점에서는 같은 속요인 과 동일한 구성을 보이고있어 후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맨 끝연은 의 제 2연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설을 보리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이 민요 형태인 4행체의 원가(原歌)를 단순한 반복에 의하여 6행으로 늘여 놓았다든지, 매 연마다 후렴에 해당하는 구절이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후렴구가 보이지 않은 맨 끝연은 다른 작품에도 그 사설이 완전히 일치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등의 사실을 통하여, 별곡 형성의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의 하나로 간주된다. 즉, 이 작품은 애초에 4행체의 민요였던 원가를 궁중의 새로운 악곡에 맞추어 조절하고 재창작한 흔적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이는 당대의 민요가 궁중으로 상승하여 재편성된 가요일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므로 이 작품의 원작자는 민중 계층일 것이고, 이것이 궁중의 악장으로 재창작되어 상승한 이후로는 그 가창자와 향유자가 상층 귀족 또는 그 주변적 인물인 기녀와 악공으로 변모되었을 것으로 본다.3. 정석의 의미이 작품의 제목 '정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관하여는 약간의 견해차를 보인 바 있다. '정석'은 이 작품의 제 1연에 보이는 '딩아 돌하'와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서, '정(鄭)'은 '딩'과, '석(石)'은 '돌'과 대응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하면서, 그 의미를 추출함에 있어는 얼마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즉, 징[鉦]과 돌[磬]이라는 금석 악기(金石樂器)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 또는 그와 같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딩?동'을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 그리고 작중 화자의 연모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 또는 생명신?우주신 등 신격화한 인물로 보는 견해와 그와는 달리 금석 악기로서 8음의 악기를 집대성한 악기 그 자체를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 있다. 이 문제는 제 1연이 이 작품에서 담당하는 기능면에서 추구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작품에 표출된 미의식은 유덕(有德)한 임과의 현실적 사랑의 욕망을 추구하고 있어 우아미를 심층에 깔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사랑을 여 쇠붙이풀[鐵草]을 다 먹을 때까지(제 5연) 사랑의 영구 불변성과 무한대성을 추구함으로써 현세적이고 유한한 사랑을 초극하는 숭고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는 주술이나 종교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의 힘에 근거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추구되고 있어 비극적인일면을 아울러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노래의 선법(旋法)은 평조와 계면조로 모두 총용되고, 곡의 길이는 한 장단에 16박자로 된 아홉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 제 1연만 있다.이 노래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임과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고려가요이다. 제목이 된 정석은 정과 경, 즉 징과 돌이라는 악기를 말하고 이 악기를 치면서 노는 풍류를 의미한다. 이 노래는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송축가로 볼 수 있다.이 노래는 모두 6연으로 된 연시이다. 1연에서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서사를 붙여 놓았다. 2연 - 5연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한 후, 그것이 가능해지면 임과 이별을 하겠다고 하여 결국 임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겠다는 화자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노래는 민요로서의 특징과 송축가로서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4.형식이 작품의 형식은 총 6연으로 되어 있고, 제 1연은 3행, 나머지 2연부터 6연까지는 일률적으로 6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 1연에서는 제 1행을 한 번 반복하였고, 2연 이하 끝연까지는 제 1행과 제 3행을 각각 한 번씩 반복한 특이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선 제 1 서사(序詞)로서 그 다음의 본사(本詞)가 나오기 전에 궁중악으로서의 절차상 부가된 듯한 인상을 주는 점에서는 같은 속요인 과 동일한 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그 형식이 다른 연과 이질적으로 되어 있는 점에서는 과 다르다. 이와 같이 이질적인 제 1연의 서사를 제외하면 제 2연 이하의 나머지 연은 각 행이 3음보로 구조된 6행체 시가로서의 정연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 2연 이하의 모든 연은 반복 어구를 제외하면 모두 4행체로은 맨 끝연은 다른 작품에도 그 사설이 완전히 일치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 등의 사실을 통하여, 별곡 형성의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의 하나로 간주된다. 즉, 이 작품은 애초에 4행체의 민요였던 원가를 궁중의 새로운 악곡에 맞추어 조절하고 재창작한 흔적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이는 당대의 민요가 궁중으로 상승하여 재편성된 가요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원작자는 민중 계층일 것이고, 이것이 궁중의 악장으로 재창작되어 상승한 이후로는 그 가창자와 향유자가 상층 귀족 또는 그 주변적 인물인 기녀와 악공으로 변모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 '정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관하여는 약간의 견해차를 보인 바 있다. '정석'은 이 작품의 제 1연에 보이는 '딩아 돌하'와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서, '정(鄭)'은 '딩'과, '석(石)'은 '돌'과 대응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하면서, 그 의미를 추출함에 있어는 얼마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즉, 징[鉦]과 돌[磬]이라는 금석 악기(金石樂器)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 또는 그와 같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딩?동'을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 그리고 작중 화자의 연모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 또는 생명신?우주신 등 신격화한 인물로 보는 견해와 그와는 달리 금석 악기로서 8음의 악기를 집대성한 악기 그 자체를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 있다. 이 문제는 제 1연이 이 작품에서 담당하는 기능면에서 추구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작품에 표출된 미의식은 유덕(有德)한 임과의 현실적 사랑의 욕망을 추구하고 있어 우아미를 심층에 깔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사랑을 영구화 내지 극대화하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드러내어 있어 숭고미를 아울러 구현하고 있다. 즉, 구운 밤 닷되가 모래 밭에서 싹이 돋아 자랄 때까지(2연), 옥(玉)으로 새긴 연꽃을 바위에 접을 붙여 그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제 3연), 무쇠로 마른 천릭(天翼:무관의 옷)을 철사로 박아 그 옷이 해질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노래의 선법(旋法)은 평조와 계면조로 모두 총용되고, 곡의 길이는 한 장단에 16박자로 된 아홉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 제 1연만 있다.5. 이해하기이 노래는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해서 임과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고려 가요이다.임과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염원을 역설적, 반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즉 모래 밭에 심은 구운 밤에서 싹이 튼다거나, 옥으로 새긴 연꽃에서 꽃이 핀다는 등의 불가능한 일을 제시해 놓고, 그런 일이 실현되었을 때 임과 이별하겠다는 것은 사실은 절대로 임과 헤어질 수 없다는 간절한 기원의 표현이다.대부분의 고려 가요가 이별이나 애원 또는 향락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데 반해 이 노래는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완곡한 방법으로 시상을 표현한 점 또한 특징으로 꼽힌다.6. 읽어보기이 노래는 태평성대의 구가로써 서사를 삼고, 둘째 연부터 다섯째 연까지 임(임금)과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했다. 즉, 둘째 연에서는 바싹 말라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모래 언덕에다 구운 밤을 심어 놓고서, 그것이 싹이 나야 임과 이별하겠다고 하였고, 셋째 연에서는 옥으로 연꽃을 새겨 바위에 접을 하고서, 그것이 활짝 피면 임과 이별하겠다고 하였다. 넷째 연에서는 무쇠로 관복을 말라 쇠실로 꿰매 놓고 그 옷이 다 떨어지면, 다섯째 연에서는 무쇠로 만든 황소가 쇠로 된 나무가 있는 산에서 쇠로 된 풀을 다 먹어야 임과 이별하겠다고 하였다. 구운밤, 옥 연꽃, 무쇠옷, 무쇠소라는 소재만 다를 뿐 모두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설정해 놓고 영원한 사랑을 구가한 점은 일치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간을 주관적으로 처리하는 옛 사람들의 시간 관념을 엿볼 수 있다. 여섯째 연에서는 이 노래와는 관련이 없는 의 둘째 연이 첨가되어 있다. 이것은 이렇게 이별하지 않겠다고 거듭 노래하였지만, 그래도 인생사는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부득이하여 이별하게 된다면 구슬은 깨어져도 실이 끊어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