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온난화 여행북극곰은 걷고싶다목 차Ⅰ서론1. 책 소개2. 저자소개Ⅱ 본론1. 온난화로 북극곰이 위협받고 있다2. 탐욕으로 번져가는 북극의 검은 유전3. 침몰하는 미래의 실낙원 - 남태평양 투발루(1) 빙하와 해빙의 구분(2) 지구 온난화 시대의 디스토피아4. 온난화로 인해 크릴이 위험하다5. 한반도 자연이 변하고 있다Ⅲ 결론? 참고문헌 ?1. 북극곰은 걷고 싶다 (남종영 지음. 한겨레 출판사)2. 우리의 선택 (앨 고어 지음. 알피니스트)3. 불편한 진실 (앨 고어 지음. 아피니스트)4. 지구온난화와 산림 (고바야시 노리유키 지음. 도요새)5.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감독 허태정, 조준묵. MBC)북극곰은 걷고 싶다.Ⅰ 서론1. 책 소개지구온난화로 바뀌고 있는 북극과 남극, 적도 등의 현장을 여행하고 취재한 환경에세이 로서 저자 남종영은 북극권 알래스카(아크틱빌리지, 배로, 카크토비크), 캐나다의 허드슨만, 남태평양 투발루,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극의 킹조지 섬, 우리나라 강원도의 고성 등 지구온난화의 최전선 8곳을 다니면서 꼼꼼히 자연과 인간의 변화상을 기록했다.저자는 처칠 만 지역의 역사, 그위친족, 에스키모의 주민의 역사, 남극 킹조지 섬의 생태계 오아시스인 펭귄마을에서 그들의 사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체험하며, 물범 사냥에 따라가고, 북극곰과 처음 마주하고, 고래 사냥 후의 고래 축제를 벌이는 에스키모들과 함께하며, 펭귄마을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기가 오랫동안 살아가던 주거지를 잃어가는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해준다.지구의 온도는 지난 100년동안 0.74도 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4천만 년 전 에오세 이후 지구의 온도는 지금까지 단 2~3도 올랐을 뿐이다. 그 사이 지구 기온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수십만, 수백만 년 수준에서 찾아오는 주기적인 진동이었을 뿐이다. 100년은 이런 억천만 겁 같은 시간슬렁거린다. 이 지역이 북극곰의 양육에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바다 안쪽 내륙에는 여기저기 산딸기와 잡목의 열매 그리고 북극토끼, 뇌조 등 북극곰의 주전부리 거리가 많다. 북극곰들은 바다가 얼지 않는 여름엔 보통 이곳에서 주전부리를 하면서 ‘겨울잠’을 잔다. 진짜 겨울잠이 아니라 유사 겨울잠이다. 이러한 유사 겨울잠을 ‘워킹 하이버네이션’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걸어 다니는 겨울잠’ 정도의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처칠만 북극곰들의 워킹하이버네이션 기간은 허드슨 만의 바다얼음이 녹아 있는 6월에서 10월 사이와 일치한다. 이 시기 북극곰들은 전체 시간의 80%를 낮잠을 자거나 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기후 특성에 따라 운이 좋게도 처칠 만은 근처 어느 곳보다 빨리 바다 얼음이 형성된다. 바다가 빨리 얼어야 북극곰들은 워킹 하이버네이션을 빨리 끝낸다. 북극곰들로선 빨리 끝낼수록 좋다. 해마다 10월이 되어 기온이 영하를 밑돌기 시작하면 마술처럼 수컷, 암컷, 새끼 북극곰들이 허드슨 만의 작은 마을을 지나간다. 바다가 얼때가 된 것이다. 바닷가 주변에서 여름을 보낸 곰들이 바다가 얼었는지 흘끗거리며 처칠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결국 바다가 얼기 시작한다. 북극곰들은 하나 둘 처칠 앞바다에 깔린 얼음 위를 걸어 북극으로 향한다. 처칠은 북극해로 배를 떠나보내는 항구처럼 북극곰의 항구가 된다. 노르웨이의 피오르, 지구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 그리고 북극점이 그들의 목적지일지 모른다. 북극해를 유목하면서 북극곰들은 물범을 잡아먹는 행복한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이듬해 허드슨 만의 얼음이 풀리는 6월께에 다시 처칠로 돌아온다.하지만 이런 북극곰의 이주 형태에 문제가 생겼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7월 중순이면 바다얼음이 풀렸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 6월 말부터 7월 초순으로 당겨졌다. 1970년대에 비해 2주가량 바다가 빨리 녹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울 사냥을 나간 북극곰들이 좀 더 빨리 내륙으로 돌아와야 한다. 게다가 겨 경계가 확연 했다고 한다. 왼쪽은 누런 툰드라 바탕 위의 유전공장지대였으며 오른쪽은 푸른 바다에 하얀 빙산이 얼음 조각처럼 떠 있는 북극해였다.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1968년에 프루도베이에서 시작된 유전 시추 붐은 점점 동서로 번겨가며 노스슬로프를 뒤덮었다. 노스슬로프의 유전지대에는 총 2400킬로미터 이상의 도로와 송유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수천 에이커의 땅이 석유산업지대로 변했다. 지도를 봐도 노스슬로프는 이미 빨간 점으로 표시된 유전에 뒤덮여 있다. 송유관은 빨간 점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다.비록 필자의 눈으로 본 광경을 글로서 전해 들었지만 왼쪽에는 유전지대의 공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빙산 얼음 조각이 떠있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3. 침몰하는 미래의 실낙원 -남태평양 투발루(1) 빙하와 해빙의 구분.사람들은 빙하와 해빙(바다얼음)을 구분하지 못한다. 신문사와 방송국의 국제부 기자들 그리고 수십 일에 걸쳐 기후 변화에 관해 현장취재를 했을 다큐멘터리 제작진조차 빙하와 해빙을 혼용해 쓴다.물론 나도 이 책을 읽지 전까지는 빙하와 해빙을 구분하지 못했다. 북극의 빙하든 남극의 빙하든 얼음덩이는 다 같은 것으로 알았다. 남들처럼 ‘북극이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지고, 해수면이 높아지면 육지가 잠긴다’는 단순 공식을 반복해서 말했다. 참으로 간단한 삼단논법으로써 말이다. 복잡한 사실을 쉽게, 그리고 선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미디어로선 매력적인 화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당신의 집이 잠긴다 ...... ’라는 가슴에 확 와 닿는 공포 말이다.하지만 기후변화의 메커니즘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디어는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올 위기를 간단한 삼단논법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키지만 그 밖의 여백이 너무도 많다. 특히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논증하지 않은채 모든 환경 변화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귀결시키는 것은 신중하지 못아지면 육지가 가라앉는다’라는 ‘지구 최후의 날’ 시나리오의 여백은 너무도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빙하와 바다얼음의 차이, 빙하의 지역적 분포, 온도 증가에 따른 열팽창 등의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 지구 온난화 시대의 디스토피아‘지구 최후의 날’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단연 남태평양의 섬 투발루 다. 투발루는 지구온난화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로 언론에 자주 거론된다. 투발루의 정치지도자들은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후 변화로 투발루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설파해왔다. 해외의 유수한 방송국과 다큐멘터리 제작진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예술가들까지 투발루를 성지순례하듯 찾아가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냈다.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투발루의 총리를 한국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우리도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부의 산하 기관이나 각종 재단들이 투발루를 원했고, 투발루는 그들의 외교적 치장을 위한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오래된 주연배우 투발루는 북극을 제외하면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언론을 가장 많이 탄 지역일 것이다.투발루는 하와이와 오스테레일리아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남태평양에 떠 있는 산호섬 국가로 인구는 1만2000명, 면적은 26제곱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바티칸시국과 이웃나라 나우루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이고, 바티칸시국과 모나코, 나우루 다음으로 영토가 작은 나라다.비행기를 타고 투발루로 가다보면 왜 이 나라가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2시간 30분을 날아가는 동안 바다에는 모래섬 하나, 암초 하나 보이지 않고, 망망대해에서 문득 나타난 투발루(정확히는 푸나푸티 섬)는 파란 하늘이 녹색눈물을 흘린 듯 길고 얇은 빗금이었다고 필자는 전했다.필자가 비행기 활주로에 도착했을 때 이 섬은 자신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는데 활주로가 과자 빼빼로 같은 이 섬의 거의 전부를 채우며 뻗어 있었고, 비행기는 짧은 활주로 끝에서 가까 크릴은 몸길이 4~6센티미터, 무게 2그램의 작은 갑각류다. 크릴은 떼로 몰려다니는데, 그럴 때면 검푸른 바다 색깔이 빨갛게 변할 정도다. 한국의 원양어선들은 남극해와 태평양 남부에서 크릴을 대량으로 포획하여 돌아와서 판매한다. 낚시할 때 미끼로 쓰이는 작은 새우가 바로 크릴이다. 크릴은 남극해 먹이그물의 중심에 위치한다. 크릴은 크릴보다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과 원충류를 먹고 산다. 반면 남극의 거의 모든 생물, 그러니까 어류에서부터 펭귄과 같은 조류, 해양포유류 등은 크릴을 먹고 산다. 특히 펭귄이 먹는 양식의 대부분은 크릴이다. 심지어 몸집이 수 미터에 이르는 흰긴수염고래도 4~6센티미터에 불과한 크릴을 먹는다. 남극해가 남극 동물의 목장이라면 크릴은 목장을 푸르게 뒤덮은 목초라고 할 수 있다. 남극해의 먹이그물을 살펴보면 크릴이 무너지면 남극 생태계는 한번에 붕괴되고 말 것이다.영국남극조사단 BAS의 앵거스 앳킨슨 박사는 지구온난화와 남극 크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학자다. 앳킨슨 박사는 1926년부터 2003년까지 크릴 개체 수를 추정할 수 있는 모든 통계자료를 모았다. 그리하여 그는 1970년대 이래 크릴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의 논물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앳킨슨 박사는 특히 대서양 남서해역에서 이전 겨울의 바다얼음 넓이와 단위면적당 크릴의 밀도가 큰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바다얼음이 크게 형성되면 크릴 밀도가 증가하고 작게 형성되면 크릴 밀도가 감소한다. 크릴의 밀도와 바다얼음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크릴의 먹이와 관련이 있다. 바다얼음이 어는 북극과 남극의 바다에서는 조류의 일종인 빙조류가 번식한다. 빙조류는 바다얼음 아랫면의 얼음 결정에 붙거나 바다얼음 안의 작은 틈 사이에 끼어들어 산다. 바다얼음 근처에 사는 크릴은 바로 이 빙조류를 먹고 산다. 봄철 바다얼음 아래의 균열 지점에 들어가 보면 1제곱미터당 3000마리의 밀도로 크릴이 발견된다고 한다. 빙조류라는 좋은 먹이가 있기 때문이다. 빙조류는 성체 크릴이 봄에 크다.
영화 ‘라쇼몽’을 통한 일본문화의 이해목 차Ⅰ. 서론1. 구로사와 아키라2. 라쇼몽3. 영화 관전 포인트Ⅱ. 본론1.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2. 일본(헤이안 시대)의 시대상황3. 영화속에 나타난 보편적인 일본문화Ⅲ. 결론※ 참고문현Ⅰ. 서론1. 구로사와 아키라일본의 영화감독으로 1943년 “스가타 산시로”를 감독하여 영상의 아름다움을 높게 평가 받았다. 그의 걸작 “라쇼몽” 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일본영화의 해외진출의 계기를 만들었다. 7인의 사무라이외 다수의 작품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인정받았으며 다이나믹한 액션표현과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스타일을 지녔다.2.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세계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51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도한 이 영화는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두 편의 단편소설인 1915년 작 ‘라쇼몽’과 1922년 작 ‘덤불속’을 원작으로 하여 구로사와 아키라와 하시모토 시노부가 공동 작업으로 영화 각본을 완성하였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건축물 라쇼몽과 영화 제목 등은 소설 ‘라쇼몽’에서 가져왔으나, 전체 이야기 뼈대는 소설 덤불속에서 가져왔다. 즉 영화 라쇼몽은 두 단편 소설을 적절히 조합한 뒤 새롭게 만든 순수 창작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라쇼몽은 이후에도 많은 수상과 리메이크로 그 명성을 떨쳤으며 인간의 본성과 당시 일본의 시대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3. 영화 관전 포인트▷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전쟁이후의 황량하고 피폐한 인간성.▷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절망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강의 시간에 공부한 보편적인 일본의 문화(간단함, 간소함 등)가 영화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가.Ⅱ. 본론1.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사무라이 죽음의 원인죽인사람살인도구여자의 태도다조마루마사가 싸움을 부추김. 사나이다운 진검승부 끝에 죽음다조마루 자신장검처음에는 다조마루를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받아들임마사자신을 창녀처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근본 원인모름단검(추측)다조마루를 거부했으나 협박에 의한 불가항력가나자와아내가 다조마루에게 사주함자살단검아내가 다조마루에게 반함나무꾼다조마루와 가나자와는 겁쟁이들이었다다조마루장검두 남자를 매도하여 싸움을 부추김다조마루가 가나자와와 그 아내 마사를 속여 유인한 후, 마사는 겁탈하고 가나자와와의 결투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공통된 사실에 대해서 법정에서 차례로 증언하는 다조마루, 마사 가나자와, 나무꾼의 진술은 크게 이하의 네 가지 점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처럼 이들의 진술이 각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등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즉 도덕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다조마루는 이미 사로잡힌 몸으로써 죽을 각오를 하고 있으며, 마사는 자살 기도를 했으나 죽지 못하고 법정에 서게 되며 가나자와는 이미 죽은 상태이다. 즉, 다조마루는 희대의 도적이라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 사나이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만큼이나 무사다운 가나자와와 경합을 펼친 후 그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마사는 여성으로서의 정조를 끝까지 지키려 하였으나 남편도 도적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가나자와는 아내의 배덕에 분노하며 수무라이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나무꾼은 자신이 단검을 가져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증을 한다. 영화에서의 주된 전개를 이끄는 이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도덕성과 증언의 관계가 인간 본성의 나약함이나 이기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것을 당시 일본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의 자신들의 정당성(변명)과 같은 문제에 관해서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2. 일본(헤이안 시대)의 시대상황‘라쇼몽’ 에서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해 간접적인 묘사가 잘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에서 다조마루는 가나자와를 속이는 과정에서 헤이안 시대 ‘전쟁의 혼돈 속에서 좋은 무기를 빼돌려 놓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장검을 보여주면서 유혹한다. 이것은 일본의 패전 직후 육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의 70%가 사라졌으며, 그에 관한 부패 군인의 소문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의 하층민이 라쇼몽에 버려진 아이의 옷을 벗겨 달아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것 또한 전쟁후의 신문의 보도를 보면 ‘도난을 당한 피해자의 작은 소망도 보도 되었고, 한 임신 여성은 아이의 옷을 돌려달라고 도둑에게 탄원하는 편지를 써다.’는 보도 내용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실제 이러한 일들이 일본사회에서는 일어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반쯤 부서진 ‘라쇼몽’의 묘사가 폭격으로 파괴된 일본 사회를 나타낸다는 점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라쇼몽은 헤이안 시대의 전시적 시대 상황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패전직후 일본의 사회적 혼란과 허무주의, 그로인한 인간성의 상실과 도덕의 추락을 암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임베디드 컴퓨팅임베디드(embedded), 우선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간직 하다”, “내장된“ 궁금했다, 무엇을 간직하고 내장된 것인지를, 우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개인컴퓨터의 os인 ms사의 윈도우를 생각해 보았다, 그냥 막연히 컴퓨터 하면 cpu는 어느 회사 것이고 그래픽카드는 어디것이고하는 하드웨어적인 것 말고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운영체제가 뭐냐? 이런 것도 이제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윈도우라는 os는 이제 필수인 소프트웨어이다, 윈도우만 있으면 하드웨어의 기능을 조작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실행시켜주고 값들을 출력하고 모니터라는 것을 통해 표현한다. 하지만 임베디드라는 것은 조금은 다른 범위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임베디드는 하드웨어와 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것을 임베디드라 한다, 예를 들어보면 휴대폰이 있는데 이 휴대폰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 즉, 통화를 위해선 소프트웨어가 무선 신호를 처리하는 동시에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휴대폰은 통화를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임베디드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휴대폰은 통화기능밖에 없었다고 하자. 그래서 mp3라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서 새로운 mp3폰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면 기존의 휴대폰에 mp3기능을 가지는 시스템을 추가시키면 된다. 이 경우 새로운 mp3시스템이 또 하나의 임베디드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윈도우 컴퓨터처럼 동영상도 플레이어로 보고 mp3도 듣고 레포트도 작성하는, 그런 사용이 자유로운 컴퓨터 시스템이 아니라 휴대폰이라는 한정된 기능을 제공하는 환경, 즉 특수한 기능만을 위해 사용되어 지는 하드웨어와 이 하드웨어를 제어 하는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시스템을 임베디드라 한다.그럼 우리 주변에는 임베디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들이 무엇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주 많다. 냉장고를 예로 들면 전원만 들어오면 자동(소프트웨어가 온도를 감지하고 냉장고라는 하드웨어를 제어해 온도를 일정하게 맞춰 나가는 것이겠지만)으로 냉장고의 온도를 제어 한다. 또 텔레비전은 리모콘(여기서 리모콘도 임베디드 스시템이라 할 수 있다 버튼을 조작하면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신호를 텔레비전으로 발사 하게 리모콘을 제어하게 되어 있을 테니까)이나 자체 버튼으로 들어오는 신호를 받으면 내장된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제어해서 채널을 바꾸고 켜고 끄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전자사전, 자동차의 카오디오, 노래방의 노래방 기기, 계산대의 바코드 입력기 등등 각종 전자기기의 모든 곳에는 임베디드 시스템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방대하다는 생각 이 든다.∇아래에는 엠베디드 시스템의 간략한 정의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혹은 마이크로컨트롤러를 내장하여 원래 제작자가 의도하는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제작된 장치? 더 큰 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이루거나 사람의 개입 없이 동작 되도록 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ROM에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 단일 보드 마이크로컴퓨터로서 시동되는 순간부터 전원이 나가는 순간까지 특수한 목적의 응용 프로그램으로 멈추지 않는 시스템
소생태계(Biotop)란 무엇인가?비오톱의 정의유럽과 일본에서 자연보호와 복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생물서식공간(Biotope)이라는 용어는 경관생태학의 분야에서 생성된 것이다. 경관생태학에서 연구대상의 hierachy는 아래와 같다.Landscape = Ecopote + AnthropotopeEcotope = Geotope + BiotopeGeotope = Morphotope + Pedotope + Hydrotope + ClimatopeBiotope = Phytotope + ZootopeTope이란 접미사는 계에 대응하는 공간적인 용어로서 가장 작은 균일한 공간의 단위를 말한다.비오톱이란 어원은 독일 생물학자 Dahl에 의해 1908년에 독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그에 따르면 "Biotope"은 "생물공동체의 서식처"이며, 예를 들어 그는 여러 종류의 지표수와 지표면을 "비오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표수와 지표면을 "비오톱"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비오톱이란 독일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비오톱에 대한 정의는 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내릴 수 있다.Schaeffer(1992)에 따르면 비오톱이란 "어떤 일정한 생명 집단 및 사회 속에서 입체적으로 다른 것들과 구별할 수 있는 생명 공간"을 말하며 또한 이 공간을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성격을 띄며, 이에 따라 주변 공간들과 확실하게 기를 수 있다.Leser(1991)에 따르면 비오톱이란 동식물로 이루어진 어떤 생물 사회 속에서 3차원적이고 지역적으로 특징 지울 수 있는 생명 공간을 뜻한다. 이는 또한 무생물계와 생물계로 이루어진 생명 공간을 뜻하기 때문에 비교적 동일한 생명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 경관은 이런 비오톱들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모인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토양 성분 등 생육 조건이 좋고 거의 동일한 입지라면 대 면적에 걸쳐 같은 형태의 비오톱이 형성될 것이고, 만일 작은 부분들이 서로 다양한 조건을 가진다면 아주 다양한 형태의 비오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오톱이란 개념은 몰가치적이고 중립적인 가치 개념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특별한 보존 가치가 있고 힘들여 보호해야만 하는 생명 공간을 비오톱이라고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인구 밀집 지역의 집약적 농업 경영 단지도 아무도 살지 않는 늪지대나 마찬가지로 비오톱의 하나일 뿐이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디 독일어에서 비롯된 비오톱은 우리말로 "생물서식공간"이라 옮겨야 마땅할 것이다. 흔히, 비오톱하면 연못과 같이 물이 있는 공간만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이 없으면서도 생물들이 살고 있는 숲이나 도심 내 작은 자투리땅의 녹지도 비오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어로는 이를 바이오톱이라고 하는데 이는 bio(생물)+topos(장소)의 결합어로서 생물이 살고 있는 장소를 지칭한다.그 이후 "비오톱"의 개념은 사회의 변화와 과학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또 세분화되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생물종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생물 종 보전 측면에서 "비오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195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한편, 여러 견해에도 불구하고 "비오톱"은 일반적으로 생활 터라 할 수 있으나 어떤 생물의 생활 터냐에 따라 개념 사용과 용어 사용이 달라진다. 식물종의 경우 입지, 동물종의 경우 거주지, 개체군의 경우 "데모톱", 생물공동체의 경우 "비오톱"으로 구분하여 보는 견해에 대해서 밝혀야 하나 동물은 이동하거나, 숨어있고 또 생활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식물 위주로 조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물공동체의 서식처를 "비오톱"이라 하면 수면 또는 식생지 뿐만 아니라 건물이 서 있는 주거지도 하나의 "비오톱"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비오톱이란 주변 공간과 지형상 뚜렷하게 구분되는 생물공동체의 서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영국에서는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비오톱과 유사한 개념인 "자연녹지(natural greenspac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자연녹지"라 함은 자연적으로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며 많은 주거민들이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토지, 물, 지질학적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자연발생적인 동식물집단이 서식하고 있는 재개발 유보지?인위적으로 식재된 식물군락과 자연적으로 발생한 식물 집단이 혼재된 하천변, 도로변 부지?지정된 공공녹지 내에 야생동식물의 서식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삼림, 덤불, 히스가 무성한 지역, 건초지, 습지 등이 조성된 지역?연못, 도랑, 하천, 호수, 저수지, 공원, 학교원, 운동장, 골프장, 교회 뒤뜰, 공동묘지에서 인간의 간섭이 덜 한 지역 주거지나 상업지의 가로변, 산책로 변, 주차장 주변, 개인 소유지 경계부 등에 동식물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조그만 부지 분 구원, 과수원, 정원Biotop은 원래 독일어권의 생태학에서 나오는 용어이다. 그 용어의 기원이나 정의 그리고 분류는 독일어로 된 원서를 참조하여야 할 것이다. 비오톱 이외에 Ecotop, Physiotop 등의 개념과 정의, 그리고 분류체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분야에서 정통적인 학문 종사자에 의한 새로운 용어 소개나 이해, 정확한 적용이 이루어진 바가 없다. 하나의 Ecotop 속에는 여러 종류의 Biotop이 존재하며, 각 Biotop은 목표 생물 종에 의하여 규정되는 '최소 생물소공간'이다. 목표 생물종을 어떻게 선정하느냐, 왜 선정하느냐 등은 보전생물학적 (conservation ecology) 관점에서 서식처 구조와 기능 그리고 특히 기능적 속성에 따라 Biotop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Biotop-Mapping은 중부 유럽학파의 식생 학의 토대 위에 토지입지도를 작성한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똑바로 하기 위해서는 중부유럽의 Z.-M.학파의 식생 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 접근 방법이다.
1. 주대의 향거리선기록에 의하면 주대에 향거리선의 방식이 있었다. 그 방법은 향로(족장)가 본토 지방 선비 중에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사를 선발하고 지방 장관이 다시 추천을 하여 중앙에 직접 보내진다. 향리에서는 매 3년에 한번씩 대비를 거행하여 향인을 선발하였는데 "그 덕행과 학식을 시험하여 현자와 능자"를 선발하였다. 주대 이전의 사회 문명의 발전은 아직 초보 단계였다. 단지 통치 집단 가족의 구성원만이 교육을 받아 지식 계층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시 계층들만이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통치 집단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국가 기구의 각 구성 부분은 실제로 통치 집단 내부 구성원들이 주로 세습하였다. 그것이 구체적인 표현은 주대의 세경세록제도로서 주대의 천자는 토지와 인구를 동족과 훈신에게 분봉하여 제후국을 형성하였다. 제후는 또 토지와 인구를 동족에게 분봉하여 경대부의 채읍을 형성하였고, 경대부는 다시 토지와 인구를 다시 동족에게 주어 분봉함으로써 선비의 봉록전(녹전)을 이루었다. 이것은 곧 "왕은 공을 신하로 삼고, 공은 대부를 신하로 삼고, 대부는 선비를 신하로 삼는다."는 것으로 가족 혈족 관계와 국가 조직이 서로 합하여 하나의 세계세록제도를 이루었다.이러한 추천 선발방법은 기본적으로 종법과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최하층 선비 계층이 추천되어 선발된다는 것은 세습 혈족 관계의 올가미를 초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고위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였다."신국의 등에서 경작하는 이윤을 탐문해서 등용하여 그의 보좌로 인해 하를 멸하고 천하를 얻었고 상의 고종 무정은 담장을 건축하는 사람을 탐문해서 청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아 천하를 다스렸다. 주 무왕은 위수 주변에서 낚시하는 노인 강태공은 방문 초청하여 재상으로 삼아 상왕조를 멸하고 천하를 얻었다."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후대 사람 특히 유가들이 윤색 가공한 부분이 대단히 많아 믿을 만한 부분이 무척 적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가 가공한 이러대한 문제를 출제하고 죽간에 쓰게 하였던 것으로 응시자들은 서면으로 그 대책에 대해 답하였다. 그 후 책문과 대책의 형식은 청대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중요한 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그러나 서한 초기의 이러한 찰거방법은 아직까지는 황제가 필요에 의해 조서를 내려 거행되는 정기적인 것이고 고정적인 전장제도는 아니었다. 한 초기 사인의 관리 진출을 조정대신과 제후 및 각급 지방관의 추천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초빙에 응한 사인들은 먼저 하급관리에 임명된 후 점차 승진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선진 시대이래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초기 봉건국가의 조직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중앙집권의 정도가 비교적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한 초기에는 승상과 같은 고급관직은 기본적으로 모두 공신귀족과 훈척 및 그들 자손들이 차지하였다.한대 찰거제도는 또한 명법· 치극· 병법· 음양재부 등의 과목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행해졌으며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 이때 각과 찰거에는 모두 조정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시험의 방법도 상술한 것을 제외하고 사책이라는 것을 있었다. 즉 사책이라는 것은 경전 중에서 뜻이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을 따지듯이 물어서 그것에 대해 책을 쓰도록 하여 그 우열을 따져 갑을과로 정해 차례로 등수를 정하는데 드러나지 않게 한다. 사책하는 자는 자기가 취득한 학문 실력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이러한 한 대 찰거제도는 후대 과거고시와 중요한 차이점을 갖는데 찰거는 추천위주이고 고시는 보조 수단이었다. 대책과 사책과 같은 고시는 기본적으로 탈락하는 것이 없고 성적의 고하만을 구별하며 단지 후에 관리 임용에서 직급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찰거제에서 서면과 구두시험을 통해 인재들의 지식을 측정하는 방법이 역사상 제일 먼저 완비되었고 성숙되었다는 것이다.3. 위 ? 진 남북조의 구품중정제앞서 말한 바와 같이 찰거제에 있어 고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추천이 결정적이었다. 추천권은 황제 이하 각급 관료들것이다. 따라서 구품중정제은 국가가 관직을 주는 것이 아니고 국가는 다만 호족이 정한 향품에 따라 추천된 호족자제의 관품을 승인한 것에 불과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 가문이나 종족이 가와 국가의 중간위치에 끼어들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구품중정제이 호족의 관직독점과 귀족화를 촉진하면서 위·진남북조시대에 줄기차게 발전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4. 수 ? 당의 과거제 시행문제는 583년(개황3년) 4월에 군을 폐지하여 주가 직안현을 통괄하도록 하여 그때까지 주· 군· 현이었던 것을 주· 현으로 하고 따라서 주· 현의 속료를 주현장관에게 항소시키지 아니하고 그 항소권을 중앙으로 회수하는 행정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종래의 군이 폐지되었으므로 한이래 군으로부터 추천되었던 효렴의 과목이 그 기반을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방장관의 항소권을 회수함으로서 이제 주현의 속료를 중앙에서 파견하게 되었으며 또 남조 진을 정복하고 나서는 남방에 파견할 다수의 지방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중앙의 이부가 다수의 관리유자격자를 항상 자기 수중에 보유하고 있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정치현실면으로부터 선거제도의 정립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즉 수 문제때에는 각급 지방관원 스스로가 관원을 초빙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구품 이상의 지방관은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며 매년 이부에서 시험을 치르고 주현관원들은 삼 년에 한 번씩 옮기고 연임을 불가하였다. 이부에서 지방관을 선발 등용할 때 가능하면 외지인을 등용하고 본지인은 등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예는 황권이 이전에 비해 강화된 행정법규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며 후세 중앙집권의 봉건 왕조가 계승 완비되어 세가 대족들에 의한 권력자의 권력 남용을 막는 효과를 가져왔다. 수대 이후 관리 임명은 모두 조정에서 이루어져 주군에서 관리를 임명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중앙 조정은 전국 각지에 필요한 관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파견하기 위해서 관원 선발권을 장악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구품중정제는 대다수 하층 리고 너무 문에만 치우쳐서 후에 이민족들에 의해 나라를 잃게 되는 원인이 된다.이 시기의 사인들은 기본적으로 당대 사인들처럼 여러 제후들에게 두루 돌아다니거나 공경대부들의 인정과 추천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서재에 파묻혀서 학문에 힘쓰게 되었으며 보편적으로 전대의 사인들에 비해 더욱 박학하였고 남긴 저서도 그 양이 방대하였다. 다만 전대의 관료들과 비교하자면 그 자질면에서 약간은 뒤쳐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당대의 관료선출 방법 중에서 하나인 통방방법은 시험관에게 비교적 커다란 자주권을 허락하였다. 그도 비록 문사에는 능하지 않았지만 덕과 재를 겸비한 선비를 선출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당대에는 송대에 비해 탁월한 공경대신이 많았다. 그러나 송대의 과거 즉 관료선출 방법은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가능했으므로 문학재능이 없는 사람은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웠고, 단지 문에 대한 지식만 가득하고 국가와 백성을 다스리는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송대 과거는 대체로 개방되고 공평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결국은 부유층 사람들이 독점하였다. 왜냐하면 과거에 수요 되는 경제적 부담은 일반 농가에서는 부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송대의 과거의 인원수 확대와 공평은 전 사회의 독서인들을 거의 흡수하게 되어 과거장에서 경쟁이 치열하였다. 그것은 과거에서의 합격만이 관리에 선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성공의 길은 학문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래서 송대에는 과거시험 경력을 가지지 않은 명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이후 명?청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해졌으며 실제 중국 고대 지식인의 커다란 비극이 되었다.송대의 과거제도는 당대의 제도를 이어받아 공거와 제거가 있었다. 공거는 예부가 주최하는 것으로 진사?9경?5경?개월례?3사?3예?3전?춘추?학구?명경?명법 등의 과가 있었다. 응시자는 반드시 먼저 주의 시험에 합격한 다음 주에서 서울로 보내 예부의 시험에 참가하도록 하과거를 실시하지 않았으므로 고급관료의 임용은 세습과 음보제, 혹은 추천제 등의 문벌주의를 취했다. 여기서 문벌이라는 것은 당조 이전의 중세와 같은 귀족사회의 명망 등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대신 원 조정과 특별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가 아닌가 하는 것이 기준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한인세후의 자제와 같이 한인일지라도 원조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고관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문벌주의에 기초하여 고관으로 등용되는 이외에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은 서리로부터 승진하는 방법이었다. 중국에서는 송대이래 관과 이가 판연히 구별되어 서리가 관료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한번 서리가 된 자는 거의 서리인 채로 끝났다. 하지만 원대가 되면 서리의 지위가 향상되어 관과 이사이의 장벽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강남의 사대부들은 서리에 투신하여 관료사회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지녔고 과거제의 부활을 강력히 희망했다. 원 조정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세조시기 이래 몇 차례나 과거를 부활하려는 시도가 행해졌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인종 원년(1314)에 가서야 비로소 실시되었다.원조 과거는 3년에 한 번 거행됐는데 향시?회시?전시 3단계로 나누었다. 향?회시의 명칭은 금의 과거에서 계승된 것이다.향시는 당?송시기의 발해시로서 몽고인과 색목인은 경의와 대책 두가지만으로 시험을 치루었고, 부와 잡문 각 한 편을 짓게 하였다. 향시는 각 성에서 거행하였는데 매년 8월 거인 300명을 선발하여 경사에 가서 회시에 응시하게 하였다. 회시는 다음 해 2월에 거행되었다. 그 내용은 향시와 같았으며 백 명을 선발하였는데 몽고?색목?한인?남인 각각 25명을 선발하였다. 전시는 동년 3월에 거행하는데 책시 한 가지로 시험을 치루었으나 몽고인과 색목인의 제목과 한인?남인의 제목이 서로 달랐다. 전시에서는 탈락은 없었고 등수만을 결정하였다.전시결과는 좌?우 양방으로 분류해서 공표하였다. 몽고인?색목인 50명을 우방에 발표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