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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Raisin in the Sun에 묘사된 가족 관계
    Ⅰ. 들어가는 말현대의 급변하는 사회는 다양한 가족유형을 등장하게 했다. 전통적인 3세대 가족이나 핵가족과 같은 일반적인 가족 유형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러 유형의 가족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이혼가족, 편부모가족, 계부모가족, 맞벌이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했다. 이제 학자들은 `결손가족도 우리사회에서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오늘날 다양한 가족형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가족형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출현해 하나의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었다. 우리사회 역시 오늘날 다양한 가족유형의 출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영화 은 계부모가족에 관련된 영화이다.Ⅱ. A Raisin in the Sun에 묘사된 가족 관계영화 은 우선 제목부터 살펴보면 한국말로는 `계모`라는 뜻이다. `스텝맘`이라는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했다면, 아마 사람들은 이 영화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 `계모`란 말은 한국에서 그렇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즉,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읽고, 듣고, 보아온 콩쥐팥쥐 이야기나, 신데렐라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그 `계모`란 말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꼭 `계모`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하튼 기억 속에는 그렇게 자리잡힌 사람이 많을 듯 싶다. 이 영화 제목이 그러하듯이 이 영화에도 당연히 `계모`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인식과는 틀리게, `계모`가 가족들, 특히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계모`는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에게 따돌림만 당하고 만다. 하지만 `계모`의 노력으로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과 갈등을 풀고 잘 화합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가족·가정에 관련된 영화인만큼 가족과 가정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다.Ⅲ. 나오는 말우선 가족이란 부모·자식·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장한다. 주인공과 함께 극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가족들로 인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더욱더 흥미를 즐길 수 있다.작품을 감상해 나가면서 어쩌면 흑인 가족의 생활과 모습이 생소하거나 조금은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여느 가족과 비슷하거나 닮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가는「A Raisin in the Sun」라는 작품을 통해 그 시대 흑인의 상황을 나타내려고도 했겠지만 흑인 가족의 모습 또한 잘 나타내고 있다.1. Lorraine Hansberry (1930. 5. 19 시카고~1965. 1. 12 뉴욕 시.)2. 등장인물 소개(1) Walter Lee younger :(2) Ruth Younger :(3) Rena Younger(Mama):(4) Beneatha Younger(5) Travis Younger:(6) Big Walter Younger:(7) Joseph Asagai(8) George Murchison:(9) Linder:3. Plot 요약(1) 1막의 Plot(2) 2막의 Plot(3) 3막의 PlotLorraine Hansberry는 1930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부친은 가족에 대한 대단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성공적인 부동산 사업가였다. 그는 (Hansberry의 아버지) 1930년대 말 흑인의 거주지역을 빈민가에 묶어 놓으려는 시카고 제한약관에 대항하는 길고 긴 법정투쟁을 벌였다. 이 법정투쟁의 일환으로 Hansberry의 가족들은 백인들이 사는 이웃으로 이사했지만 그녀는 매일 등하교 길에서 위협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 문제를 대법원까지 가져가 결국 승소했으나 미국에서의 흑인들의 권익이 평등해지려면 요원하다는 것을 깨닫고 멕시코로 이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멕시코로 이주한지 얼마 안 되어 1945년에 사망하였다 Lorraine Hansberry는 194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Wisconsin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그녀는 장래에 화가가 되려고 Ch 공작」이라는 연극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극작 활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0년에 대학을 중퇴한 그녀는 뉴욕으로 가서 흑인 민권 계몽지인 「프리덤」신문의 기자로 일하면서 흑인 민권신장을 주장하는 많은 글들을 썼다. 1953년에 작가인 로버트 네미프로와 결혼하고 더욱 열심히 흑인운동에 참가하며 창작 생활을 하다가, 1965년 1월 12일에 암으로 사망하였다.======================================================런 이들 가족의 경제적 상황에 10000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들 가족은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게 된다.⑴Walter Lee Younger그는 그동안 백인사회의 위계질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운전기사라는 노동자신분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된다. 아내인 루스가 억지로 깨워서 내아야 마지못해 출근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백인과 같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기회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나오는 보험금을 이용하여 불확실한 주류사업에 투자하여 자신이 염원하는 백인사장 같은 수준으로 신분상승하고자 하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된다. 월터는 백인의 운전사를 하며 미국 내의 백인중심의 중산층들이 누리는 풍요를 보고 살아왔다. 그러하기에 그는 그들의 가족에게 유보되고 있는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월터의 절박한 호소는 레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레나는 자신이 월터를 너무 미숙한 미성년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월터가 스스로 출발한 성숙으로의 여정에 불을 붙여준다. 그녀는 집을 사고 난 돈을 제외한 돈 일체를 월터에게 맡기고 그 결정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월터는 아직 신중한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동생의 등록까지 몽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쓰게 된다. 그는 기껏 자신이 꿈꾸던들은 백인 중심으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사회에서 흑인 가족이 생존하는데 크게 기여한 전통적 흑인 어머니의 특징인 동시에 백인들이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하는 특성들이다. 월터 리도 잠시동안 타락한 물질주의적 꿈을 갖지만 극의 끝 부분에서는 개인적 그리고 인종적 자부심으로 가득찬 인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더구나 베네아써는 보통 백인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지적이고 진취적이면서 발랄한 여대생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영거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핸스베리는 흑인들의 내적인 힘과 자긍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흑인이 백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 점은 핸스베리 자신이 이 극이 초연 되기 이틀 전에 본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어머니 이 극은 사람들 즉 흑인들과 삶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는 극입니다. 저는 이 극이 우리가 그들만큼이나 복잡하고 그들만큼이나 뒤범벅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비참하고 짓밟힌 계층 속에 인간적 존엄성의 진수 그자체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o Be Young, 99)핸스베리는 보통 백인 가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흑인 가족이 추구하고 있는 어메리컨 드림이 백인들의 편견과 차별에 직면해 좌절될 수도 있는 상황을 무대에 제시함으로써 대부분이 백인이었던 당시 브로드웨이 관객에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인종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결국 핸스베리가 취한 문학적 전략은 어메리컨 드림 메타포를 이용하여 백인의 양심에 호소한 킹 목사의 정치적 전략과 같은 것이었다.1960년대는 백인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가 그의 극 『어메리컨 드림』(The American Dream, 1961)에서 어메리컨 드림을 미국인으로 하여금 “가짜로 진정한 가치를 대신”하도록 하는 요소, 그들을 완전히 비인간화하여 사랑이란 기본적인 감정마저도 상실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믿음으로 제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작하였다 (53-윌리엄 본 무디(William Vaughn Moody), 마크 코넬리(Marc Connelley), 폴 그린(Paul Green) 같은 백인 극작가들이 흑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속속 무대에 올려 미국흑인은 미국 연극계의 주요 소재의 하나가 되었다(Elizabeth Brown-Guillory 2). 그렇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미국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주장들은 보편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미국흑인들에 대한 묘사 또한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엉클 샘의 수준을 넘지 못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흑인을 위한 할렘 르네상스 운동조차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적 차별의 대상이었던 미국흑인 여성들(Afro-American Women)의 지위나 의견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으므로 미국흑인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할렘 르네상스 운동조차 진정한 의미에서의 흑인 인권 운동은 되지 못한 셈이었다.미국흑인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6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여성 운동과 더불어 등장한 흑인 여성 작가들에 의해 고취되었다. 당시의 흑인 여성 작가들은 ‘부도덕하고 난잡스러우며, 제멋대로이거나 경직되고 과장된 가망 없는 여성들’로 흑인여성들을 묘사하는 남성 작가들과는 달리 ‘도전 의식이 강하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측면을 지닌 여주인공들로 자신들의 작품을 채워나갔다(Brown-Guillory 27-8). 로레인 한스베리(Lorraine Hansberry)는 60년대와 70년대에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여성 극작가의 한사람으로서 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역사관에 도전하여 미국흑인 여성들의 권익과 주장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해 냈던 “현대 흑인 연극의 어머니”(Jewell Handy Gresham, 193)에 다름 아닌 존재이다. 본 논문은 로레인 한스베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태양 속의 건포도 (A Raisin in the Sun)를 중심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모계 구조 혹은 여성지배 구조로 되어 있는 미국흑인
    인문/어학| 2009.11.22| 10페이지| 2,000원| 조회(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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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Jonathan Swift-Gulliver`s Travels(인간,인간사회문명비판)
    Jonathan Swift-Gulliver`s Travels(인간,인간사회문명비판)
    Jonathan Swift의 ‘Gulliver's Travels'-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어린시절 너무도 신기하게만 보였던 상상 속 이야기. 단순히 여행기라고만 생각했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출판된 풍자소설이라는 점에서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보기 좋게 지니고 있었던 얄팍한 지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Jonathan Swift는 이 작품 속에서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을 너무도 잘 비판해 내고 있었다.Jonathan Swift의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작품 전반부에 걸쳐 나타나는데, 주인공 Gulliver가 여행하게 되는 나라의 곳곳에서 신랄한 비판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제일 처음으로 표류하게 되는 Lilliput에서 귀족들이 15cm도 안되는 아주 작은 몸으로 정치 투쟁을 하기도 하고, 계란의 위쪽을 깨야하나 아래쪽을 깨야하나 등과 같은 아주 우습고도 쓸데없는 것으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는 걸리버의 시각을 통해서 작가는 한심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특히 특별한 이유 없이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소인국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맹목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의 무모함을 풍자하고 있다. 불타는 왕궁을 오줌으로 진화하는 걸리버의 모습에서 이렇게 타락한 인간사회에 오물을 붓는 행위로 풍자해 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나라인 Brobdingang에서는 당시의 영국인들의 한심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풍자해내고 있다. 주인공인 걸리버가 보기에는 Brobdingang 사회의 모습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으나 오히려 거인국 사람들은 그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반되는 생각은 작품 속에서 걸리버와 거인국의 여왕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거인국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고 풍족할 수 있는 ‘분배’를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걸리버는 세금을 징수하고, 전쟁을 하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돈이 많고 탐욕스러워야 하며, 도박이 팽배한 영국의 사회상을 알려 준다. 이러한 모습에 거인국의 여왕은 격분하여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뜨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인간 혐오적인 시각이 매우 잘 드러나 있으며, 당대의 영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아주 신랄하게 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인 Laputa에서는 생각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할 정도로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연구에 대한 것만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영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나?’등의 아주 현실적이고도 기본적인 질문에는 전혀 답하지 못하고 수십년째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해 있는 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전혀 유용성이 없는 연구만을 하는 당대의 지식인 계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대비되어 땅에 있는 Balibarbi의 여왕의 한탄을 통해 당시의 엄청난 과학 발달이 실제로는 인간의 도덕적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과 인간사회의 비판의 모습이 결정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는 곳은 바로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가게 되는 준마족이 사는 나라 Houyhnhms이다. 이곳에서는 인간과 비슷하나 너무도 짐승에 가깝고 야만스러운 Yahoo를 통해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아주 골치 아픈 존재인 인간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성을 가진 말과의 대화를 통해 오히려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Yahoo와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고 인간이 서로서로의 욕심만 채우고 옹졸한 자세로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풍자하면서 Houyhnhms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나라임을 나타내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9.11.22| 2페이지| 1,500원| 조회(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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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iel Defoe-Robinson Crusoe(문명성과 야만성) 평가A좋아요
    Daniel Defoe의 'Robinson Crusoe'- 문명성과 야만성의 진정한 의미현재 우리는 이른바 발전된 ‘문명사회’라고 불리 우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명’이라는 단어는 흔히 접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단어를 통해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이미 하나의 관념처럼 ‘문명’이라는 것은 아주어릴 적부터 ‘야만’이라는 단어와 함께 상반되는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문명과 야만이라는 것이 상반되고 어느 한 가지가 훨씬 발전되고 우위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릴 수 있었다.Robinson Crusoe에서는 여러 시각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중점으로 두고 살펴본 관점은 ‘Civilization'과 ‘Savagery’가 나타내는 의미이다. 이 문명성과 야만성이 대비되고 그것들을 상징하여 나타나는 것들을 작품 곳곳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미지의 무인도에서 주인공인 Robinson이 호기심과 동시에 본능적인 보호본능으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이 바로 총을 꺼내고 총탄으로 무장을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은 문명화된 사회의 사람. 이른바 ‘문명인’에게서 가장 상징되는 물품이 바로 다른 물건이 아닌 ‘총’이라는 점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우리가 흔히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야만’이라는 개념에 상반되어 나타난 것이고, 문명은 야만에 비하여 우위에 존재하며 더 고급화 된 의미로 생각하여 왔다. 하지만 문명의 시작을 Daniel Defoe는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잔혹하게 일어난 것임을 암시해내고 있다. 바로 작품 속에서 Robinson이 평화로운 무인도에서 ‘총’이라는 새로운 물건으로 식인종과 Friday를 위협하는 장면에서 문명이라는 것이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방식이 아닌 ‘위협과 동시에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인 것’이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Robinson Crusoe에서는 과연 진정한 ‘Civilization’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한다. 주인공 Robinson은 식인종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처음 자신의 친구인 Friday를 만났을 때에도 총으로 위협을 가하고 족쇄를 채우는 행동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발전되어 총이 아닌 ‘Civilization'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Friday보다 뛰어난 듯이 우월주의 적인 교육의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Master이란 단어를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Robinson과 Friday는 같은 인간이 아닌 ‘문명인’과 ‘야만인’이며 Robinson이 Friday보다 훨씬 우위의 지위에 있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우리는 Robinson의 모습보다는 훨씬 유순하고 말도 잘 듣고, 너무도 부지런한 존재의 Friday가 오히려 문명인다운 행동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명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만인보다 훨씬 더 야만인스러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과연 우리의 머릿속에 정의 내려진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란 의문점을 제기 하게 된다. Daniel Defoe는 당시의 식민지의 착취를 통하여 부를 축적하던 자들의 명목이 야만인을 교육시켜 문명화시킨다는 였음을 착안하여 이 작품에 투영한 것 같다. 바로 과연 야만과 문명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 문명이라는 것이 야만이라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환경에 만들어진 고정관념의 이념속의 Origine Nature Man과 Savage로 나뉘어지는 과정을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독후감/창작| 2009.11.22| 2페이지| 1,000원| 조회(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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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베르토에코-장미의이름(중세수도사들의 망탈리테)
    ‘장미의 이름’에 나타나는 중세 수도사들의 망탈리테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풀어나가는 일종의 추리소설이었다. 책의 제목만을 접했을 때는 장미와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으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는 과연 이러한 추리소설의 내용을 통하여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을 도출해 내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혹시나 했던 나의 의문은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본 결과 책의 원제목이 ‘수도원 살인사건’ 이었으나 ‘장미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 점에서 궁금 점이 풀리고야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바뀌어 붙여진 이라는 제목에서 내용과의 연관성과 함께 많은 궁금점들을 유발시키듯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많은 생각들과 의문점들을 책의 내용을 통해 중세의 모습과 이 소설이 나타내고 자 했던 많은 생각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은 아닐 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이 소설의 주 무대는 중세의 수도원과 그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줄거리를 살펴보면 소설의 내용은 소소한 교리논쟁이 중심이 된 내용부터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의 해결로 끝이 나게 된다. 영국의 수도사 바스커빌의 윌리엄이 제자 아드소와 함께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도착하는 데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의 목차를 보면 수도원에서의 하루를 감상할 수 있는 듯 새벽기도, 오전기도 등의 하루의 기도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처럼 윌리엄과 아드소의 일 거수 일 투족 즉 중세 수도사들의 생활묘사를 통해 사사건의 긴박함을 고조시킨다. 중세 기독교의 모습은 중심 내용인 살인사건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지만 우선 죄 없는 자들을 희생시키는 모습도 지니고 있었음을 소설에서 조금씩 묘사해 내고 있다. 교회의 뜻과 위배된다고 여기면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종교재판의 모습을 통해 중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나오듯이 이단을 심판하는 장면에서 종교 재판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심문의 모습인데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중세의 교회의 모습은 엄격한 계율 하에 인간이 원하는 대로, 교황이 원하는 대로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던 모습은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중세 사회에서 살펴볼 수 있는 왕과 교황 간 세력다툼의 구도가 균형을 잃으면서 다툼이 나타나기도 하고, 타협이 진행되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는 윌리엄 수도사가 이 문제의 수도원으로 여행을 하게 된 이유 또한 배경이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문제의 수도원에 오게 된 수도사 윌리엄은 수도원장으로부터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의 해결을 의뢰받게 되고 아드소와 함께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그 연쇄 살인은 의 예언에 따라 진행이 되는 상태 이다. 이에 따라서 윌리엄이 마지막 피해자가 죽을 때 까지 살인을 막을 수 없다. 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아델모 수사는 우박 속에서 발견되고, 베난시우스는 돼지 피를 담은 통속에 다리를 가위처럼 벌린 채 거꾸로 처박혀 죽는다. 또한 예상대로 베렌가리오는 욕조에 퉁퉁 부은 시체로 떠오르며 시베리누스는 천구의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마지막으로 범인으로 추정되던 말라키 마저도 기도 시간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뜻 모를 말을 남긴다.이러한 복잡한 살인 사건들의 중심에는 이 수도원의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직 도서관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도서관과는 다른 도서관임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중심인 도서관은 중세의 수도원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세 도서관과 함께 중세 수도사들의 주 작업 중의 하나였던 필사작업이 후의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문예부흥의 중심지로 평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된 수도원의 도서관의 책의 양은 방대하나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인 세상 사람에게 읽혀지지 않고 오직 도서관장만의 출입이 허가된 공간으로 방치되고 읽혀지지 않는 책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또한 수도원 내에서도 수도사들에게 책을 자유롭게 읽지 못하도록 엄한 규칙을 정해놓고 오직 도서관장만이 수도원이 허락한 책을 꺼내다 줄 뿐이다. 수도원과 도서관은 너무 패쇄적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것에만 얽매여 책을 보존 하는 데에만 치우쳐 져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 수도원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항하여 도서관 잠입을 통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에 감탄하고, 특히 수사 윌리엄은 이 많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책장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사건의 중심에는 이 도서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었다. 인간의 웃음에 대한 내용인 이 책은 웃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호르헤의 음모로 인해 수도사들은 독약이 묻은 책을 읽다가 하나둘 씩 자신들도 모르게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책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 나타내는 인간의 웃음과 대비하여 비추어지는 도서관의 이미지는, 웃음의 의미조차 인정하지 않는 어둠의 수도원 그리고 도서관의 모습 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수도원이 그 내부에선 얼마나 추잡하고 세속적인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윌리엄 수사의 입을 통해, 그리고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수도사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증명해내는 곳이 바로 수도원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도사들의 자유의지를 호르헤 수사는 막고 있었다. 많은 장서들의 유출을 막고 학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을 금기의 공간으로 통제시킴으로써 폐쇄적이고 닫혀진 세계로 인도하게 되고, 결국 파멸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수도원의 모습은 중세의 모순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중세의 수도원 안에서 형성되는 망탈리테는 겉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무언가들을 참고 있다가 마침내 터뜨려내는 모습들이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나오는 불타는 도서관의 모습은 이러한 이중적인 수도원의 모습을 버려야 함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독후감/창작| 2009.11.22| 3페이지| 1,000원| 조회(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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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중세사-연옥의탄생 평가A좋아요
    우리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매우 강하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이 두려워해야만 하는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고대, 중세 지금에 이르기 까지 인류의 영원한 숙제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궁금증의 문제에서 나타난 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세사에서 많은 요인들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종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으리라. 이번에 감상하게 된 자크 르 고프의 은 제목에서부터 눈치 챌 수 있듯이 ‘연옥’이라는 단어에서 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연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만 지니고 있었던 터였다. 바로 천국과 지옥의 중간적인 단계라는 것 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개념으로 책의 방대한 내용과 중세사를 엮어서 이해하기에는 역부족 이였다. 더군다나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보기 위해서 사전지식들을 읽어보고, 배경을 파악하면서 읽어보기 시작했지만 어려운 탓에 책을 덮게 되던 때가 수두룩했었다. 그렇다면 자크 르 고프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먼저 책을 읽기전에 연옥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은 매우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주목받는 것이 단테의 이고, 학술적인 저서가 바로 자크 르 고프의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이 이용하는 소재가 아닌 특별해 보이는 소재인 ‘연옥’을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이였다. 그렇다면 과연 ‘연옥’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옥이라는 개념은 사전적의미로 ‘카톨릭에서 죄를 범한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죄가 씻어진다는 곳.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 함.)’ 이다. 책의 처음 부분을 보면 연옥에 대해 논한 내용이 나온다. 연옥은 지옥과 천당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중간적 장소’라 서술되어 있다. 중간적 장소라는 것이 연옥의 성격을 가장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위치의 의미가 아닌 시간적인 면과 공간적인 면을 말한다. 시간적인 면으로는 개인의 죽음과 최후의 심판사이에 중간이라는 개념인 것 이다. 즉, 인간이 죽은 후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로 지옥과 천국의 위치를 판단할 때까지 머무르는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시간적 면과 함께 공간적으로는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사후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이란 개념 역시 연옥의 개념처럼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규정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보이는 ‘연옥’이란 것은 중세의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을 엿보게 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중간’이라는 개념은 중세의 사회적 ? 정신적인 현실들의 깊은 변모와 관련된다. 당대의 권력 있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 성직자들과 비 성직자들이라는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설명할 때에 한계성이 생긴다. 이 이분법에 속하지 않은 중간적 범주인 중간 계급이나 다른 제 3의 계급을 도입하게 되는 것의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연옥이라는 존재 자체가 중간적인 것 이듯이 중간이라는 개념이 당대에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중간계급처럼 어떠한 필요에 의해 나타나거나, 변모한 사회에 맞추기 위한 수단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사전적 정의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불에 의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죄가 씻어진다는 곳이 연옥이라는 것이다. 이것에서 연옥의 ‘불’이라는 것에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간단계에서 불의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조금 의아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불의 의미는 연옥이라는 것의 설정으로 통과하는 위치인 일종의 심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마음을 정화시키고 이러한 연옥의 설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것이 아니었을 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불이란 개념은 고통을 주는 존재가 아닌 사람을 정화시켜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연옥의 개념이 생성된 것은 바로 통과의례이며 마음의 정화라는 심리적 안정이었을 것이다.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심리적 불안감이 조성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심리적 보장의 필요에 의해 구원을 허용함으로써 생긴 것이 연옥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추측은 연옥의 기능들 때문이다. 죄의 성질이나 비중 때문에, 혹은 특정 직업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감 때문에 전에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자들을 벗어나게 하는데 있다는 것에서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들의 입장의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세 사회에서의 ‘종교’의 영향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교회가 연옥을 통해 한 개인의 사후까지 통제를 연장하면서 현실의 윤리적 체계를 유지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연옥이라는 중간단계에서 구원받는 다는 것은 죄를 지은당사자의 참회와 회개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도 등으로 그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유대감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와 죄를 보속하고 책임질 개인 간을 묶는 역할을 연옥이 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의 정치적인 측면 또한 눈치 챌 수 있다. 공적 권위의 보유자들이 이러한 연옥의 개념을 통하여 사후세계를 담보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기독교의 예언과 지옥과 천당 모든 개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 이였고, 책에서도 말하듯이 사람의 상상이 만든 연옥이라는 장치는 이처럼 정치적, 사회적 다양한 역할에 부딪혀서 기존의 개념들까지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9.11.22| 2페이지| 1,000원| 조회(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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