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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비어천가의 장르와 특성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장르(Genre)와 특성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장르(Genre)와 특성1. 서론 - 용비어천가 창작 과정과 내용한국의 역사상에서 보기 드문 영명한 군주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을 분 아니라, 그 실용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찬정(纂定)하게 하였다. 세종 24년(1442) 봄에 경상?전라 두 도의 관찰사에게 전지(傳旨)를 내려 태조가 운봉에서 왜구와 싸우던 사적을 탐문하여 보고하라 하여 용비어천가 편찬작업을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세종 28년(1446) 훈민정음이 반포되자 태종실록을 상고하여 한역시를 삽입하였고, 동 29년 2월에는 사실과 어구에 대한 주해를 붙여 10권을 만들게 하였다. 다시 5월에는 용비어천가를 음악에 맞추어 치화평(致和平)?취풍향(醉豊享)?봉래의(鳳來儀)?여민락(與民樂) 등의 악보를 만들어 공사 연향에 쓰게 하였다.이 용비어천가의 내용은 세종의 6조의 성덕을 찬송하고, 또는 훈계하여 왕손의 영구한 보전을 축원한 125장으로 된 노래이다. 그 제 1장은 조선왕조의 융성함이 천명의 도움임을 총서한 것이고, 제2장은 자연물을 빌어 왕손의 번성함과 왕업의 영원함을 읊었고, 제10장과 제68장과 제79장은 그 앞의 노래들을 이어서 반복하여 읊었고, 제110장과 이하는 다시 앞의 내용들을 반복하면서 규계(規戒)의 뜻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리고 각 장은 대개 6조의 업적을 중국의 역대 제왕의 사적과 견주어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자에 대하여는 그 서문에 따르면 권제(權題)?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박팽년(朴彭年) 등을 시켜 지었다고 하였는바, 그들은 노래뿐만이 아니라 한시 번역과 역사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하는 주해까지도 아울러 집핍하였을 것이 분명하다.2. 용비어천가의 장르 - 악장용비어천가는 “의조묘지악가(擬朝廟之樂歌)”(進箋文)하여 “被之管絃(피지관현)”(序)하려는 악장(樂章)으로서 제작된 것이다 전체 악장이 연주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용비어천가가 악장으로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그 형식과 내실을 제시하되 완전한 서사시로서가 아니라 서술을 겸한 찬영(贊詠)의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없던 것도 단형시가라는 형식적 요건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가사가 송축가(頌祝歌)만이 아니라 규계가사(規戒歌詞)로서도 사용될 수 있었던 것도 악장이라는 양식성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용비어천가는 악곡의 가사이므로 도시(徒詩)내부의 하위 장르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설명될 수 없고, 주시-악가의 상위장르 대립에서 악가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 용비어천가의 국문가사와 한시는 창업의 영웅을 찬영하기 위하여 영웅적 행위 자체를 송축하였다는 점에서 서사시의 성격을 다분히 지니되, 규간을 목적으로 하는 훈어(訓語)를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교술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그 시가 가사 자체만 보면 “교술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비어천가의 국문가사(한역시)는 악곡을 전제로 하는 악장으로서의 역사장르의 성격에 강하게 지배되어 있다. 용비어천가의 제작자들은 명분론과 천명론을 더욱 강조하려 하였기에 원 사적을 서사적으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원 사적의 암시와 주제어의 제시”로 이루어진 찬영의 형식을 채택하였다. 국문가사는 설의법과 영탄법을 다용하고 있으며, 대구법을 이용하여 두 가지 사상을 대비적으로 제시하는 형식을 채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악장으로서의 용비어천가는 시-가의 대립 구조에 있어서 가(歌)에 속하는 작품이며, 시 자체 속의 한 장르가 아니다. 음악과 시와의 결합체인 가(歌)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장르적 성격을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면에서 용비어천가의 장르적 성격을 논할 때에는 그것을 일단 악장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럼 우선 용비어천가의 장르인 악장(樂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악장(樂章)이라는 말은 원래 왕실에서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에 쓰이는 노래 가사를 두고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서 의의를 가지는 것은 조선 왕조 초기의 특정한 시가 장르에 붙여진 장르 명칭으로서이다.들어진 일련의 노래들이 지닌 역사적 특수성에 주목하여 설정된 장르에 붙여진 이름이다. 곧 새 국가가 건국됨에 따라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주로 祭亭과 宴)에 쓰일 노래 또한 새 국가 이념에 맞는 노래로 만들 필요가 있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조선 초기에 새로 만든 노래 가사들을 특별히 따로 묶어서 악장이라 이름하고 있다.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장르 명칭으로 사용하는 악장이라는 이름도 옛날부터 일반적으로 선인들이 써온 악장의 원래 뜻과는 같지 않다. 악장이라는 말이 문헌에 쓰인 예가 멀리 예기(禮記)에도 나오므로) 이 말이 쓰인 역사 또한 수천년에 이를 만큼 오래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예종 11년(1112) 종묘악의 악장을 새로 만들었다는 기록), 의종 24년(1170) 조하(朝賀)의 예(禮)를 받으며 왕이 친히 악장 5수를 지었다는 기록) 이후부터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악장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예종 때 중국의 송나라에서 아악을 처음 도입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쓰인 문헌 용례를 보면 악장의 뜻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특징을 지니면서 사용되어 왔다.첫째, 왕실의 국가적 행사로서는 대표적 의례에 해당하는 제례악(祭禮樂)과 회례악(會禮樂)에서 왕업을 찬양하고 송축할 목적으로 만든 노래 가사를 주로 악장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앞의 기록처럼 12세기에 송나라로부터 아악을 처음 도입하여 왕실음악을 아악(雅樂)?당악(唐樂)?향악(鄕樂)의 체제로 새로이 재정립하면서 송나라의 악제를 본받아 악장의 창작이 빈번했고, 몽고의 침입으로 문란해진 왕실음악의 체제를 공민왕 때 다시 정비하면서 새로운 악장이 많이 창작되었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왕조의 교체로 인한 왕실음악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해짐에 따라 태조에서 세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악장의 창작이 이루어졌고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필요에 따라 새로운 악장의 창작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따라서 악장이라는 말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의 모든 시기에 둘째, 왕실의 국가적 행사에 쓸 목적으로 만든 송축적인 노래 가운데서도 주로 한문으로 된 노래 가사를 지칭하여 악장이라 하였다. 왕실의 국가적 행사에 쓰인 송축적인 노래에는 표기체계로 보아 한문가사와 국문가사 두 종류가 있다. 중국 왕실음악의 제도를 우리 형편에 맞게 수용한 아악곡과 당악곡에는 모두 한문가사를 썼고, 우리의 전통적 노래를 가져와 왕실음악에 맞게 재편한 향악곡에는 모두 국문가사를 썼다. 이들 가운데 악장은 주로 아악곡과 당악곡에 사용된 송축적 노래의 한문가사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향악곡에 사용된 우리말 노래 가사는 악장이라고 하기보다 가사(歌詞), 악부(樂府), ~악(樂), ~곡(曲) 등의 일반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조선 초기의 송축적인 한문가사를 악장으로 국문가사를 가사로 구별하여 부르자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악장이 반드시 한문가사만 국한하여 부른 명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드물기는 하지만 다음 기록에서 보듯이 국문가사도 악장이 부른 예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대제학 남곤(南袞)이 아뢰었다. 전날 신에게 악장 가운데 노랫말이 음사(淫詞)나 석교(釋敎)와 곤련이 있는 것을 고쳐 만드실 것을 명하시기에 신이 장악원 제조 및 음률을 잘하는 악사(樂士)와 거듭 의논을 거쳐 이를 확정하였습니다. 동동사(動動詞)는 노랫말이 남녀간의 음사에 가까우므로 신도가(新都歌)로 대신하였으니, 이는 대개 음률의 곡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신도가는 우리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할 때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것으로 이 곡은 한문가사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많이 써서 지금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풍 또한 마땅히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장단 또한 옛날에는 느렸으나 지금은 빨라져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정읍사(井邑詞)는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하였으니 이것 역시 음률이 서로 맞기 때문입니다.남녀상열지사라 지탄을 받고 있던 동동을 송축적인 신도가로 대체하고 정읍사를 효와 관련된 오관산으로 대치하겠다는 왕실음악의 개편과 관련된 내용이다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중종대의 자료에서만 제한적으로 발견되므로, 이를 근거로 국문가사도 악장이라 불렸다고 일반화하여 말하는 것은 어렵다. 일반적으로 왕실의 송축적인 한문가사를 악장이라 지칭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위의 예에서 보듯 송축적인 내용의 국문 가사에까지 개념을 확장하여 부를 여지를 악장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따라서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이 써 온 일반명칭으로서의 악장과 근대적 학자들이 한국문학의 체계화를 위해 조선 초기의 특정 작품군에 주목하여 붙인 장르 명칭으로서의 악장은 개념이 같지 않다. 향가라는 명칭이 그러하듯 악장 또한 종래에 사용하던 이름을 가져와서 조선 초기의 특정한 작품군을 일컫는 이름으로 개념적 전치를 하여 사용하고 있는 장르명칭이다. 사실 이 악장이라는 장르는 향가나 속요, 혹은 시조나 가사 등의 다른 시가 장르에 비해 시기적으로 상당히 늦게 설정의 필요성을 인식한 장르라 할 수 있다. 다른 장르들이 근대적 학문의 출발과 더불어 1930~1940년대에 이미 독립된 장르로 인식되었으나 악장은 광복이후 1950~1960년대에야 독립된 장르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 조선 초기의 송축적 노래들을 김기동이 송시(頌詩)라는 이름으로 이병기가 악장이라는 이름으로 설정하기 시작하면서 독립된 장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뒤늦기는 하지만 이를 독립된 장르로 설정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한국 시가문학 연구에서 조선 초기에 창작된 일련의 송축적인 노래들이 지닌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로 우리말 노래를 우리의 문자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 지면서 우리 문자를 가지고 처음 창작한 노래들이 바로 이 송축적인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편의 대작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존재는 이들을 기존의 장르 어디에도 귀속시킬 수 없는 특이한 성격의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악장 장르 설정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할 다.
    인문/어학| 2010.03.24| 6페이지| 1,000원| 조회(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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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그들은 누구인가 -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원제 : 『우리는 누구인가 : 미국의 정체성 위기』| 그들은 누구인가| - 미국의 정체성 들춰내기현대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정말 막강하다. 그들이 세계의 경제와 군사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와 정치에 영역에도 그들의 힘은 강하게 뻗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국가적인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안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 문화, 종교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 기저에 형성되어 그들을 움직여 가는 그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나라로 변해 갈지를 추측해 보는 것도 큰 의미를 가진다.저자인 Samuel Huntington(이하 헌팅턴)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위의 사항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먼저 현재 미국의 정체성이 어떤 상태인지를 기술하면서 더불어 국가적 정체성과 정체성이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나아가 그 정체성이 어떠한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지를 분석한다.Ⅰ. 정체성 문제헌팅턴은 현재의 미국은 국가적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그는 정체성이란 ‘개인이나 집단의 자기 인식’으로 자신이 남들과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집단과 개인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외부적 작용과 상호교류에 의해 만들어지고, 각각의 개인과 집단에는 다수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정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석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지만 ‘적’이 생길 경우 급격히 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는 개척 초기 영국과의 전쟁 때 그들이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고, 이슬람 세력에 의한 9/11 테러 이후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근래에 나타난 타국가적 정체성?하부국가적 정체성?초국가적 정체성은 미국의 고유한 국가적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항들은 전 세계적인 정체성의 변화를치는데 반해 개척자들은 기존의 사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한다. 그래서 더욱 집단적인 신념에 강하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미국사회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개척자들은 이주의 과정에서 그들이 원래 속해 있던 사회의 문화를 원형에 가깝게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국의 WASP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헌팅턴은 다른 모든 요소들 보다 위의 WASP문화에, 특별히 종교적인 부분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 미국의 WASP문화는 영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및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의 개념들과 가치관에 결합시킨 것이었다. WASP문화는 이후 꾸준히 수정 및 적응되며 계속해서 유지되었고 항상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WASP문화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라 전 세계에 모범이 될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기는 초기의 개척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종교는 식민지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였다. 이는 곧 미국을 구원의 국가 와 소망의 나라로 보는 성경적 개념으로까지 확대되고 종래에는 미국의 정치적 신조와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이렇듯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신조(Creed)는 자연스럽게 종교적 색채를 지니게 된다. 개신교도들은 개인적인 양심과 개인들의 책임성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개인주의와 평등, 그리고 종교와 의견의 자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헌신을 고취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계층구조에 반대했고 정부도 유사한 민주적 형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또 미국과 전 세계에서 사회를 개혁하고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도덕주의적 노력도 촉구했다.우리가 알고있는 ‘아메리칸 드림’은 간단하지만 강력한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규칙에 따를 때,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다.책에서 인용된 클런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은 개인주의와 근로윤리를 잘 보여준다. 이는 경직된 사회적 계층구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업 항소순회법원이 충성서약에 있는 'under God'이라는 문구가 위헌이라는 판정을 내렸을 때 많은 정치인사들이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부시대통령은 이에 대해 ‘웃기는 짓’이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미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종교적이었고 압도적으로 기독교도였다. 그들의 선조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대서양을 건너온 개척자들이었으며, 그들의 리더들은 대대로 성경적 관점에서 많은 사건들을 바라보았다. 당시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가 종교를 자유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두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현재에도 기독교의 압도적인 우세는 여전하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개신교, 카톨릭, 유태교를 포함하는 기독교 신자이며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대답한다. 인구 500명당 1명의 목사가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성경을 진리로 인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주 높다. 이는 일반적으로 보이는 경제발전 대비 종교적 믿음의 관계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된 국가일수록 종교적 신념이 약한 반면 미국에서는 경제적 발전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믿음이 강하다. 또한 먼저 개신교를 받아들인 서구유럽국가들 보다 종교적인 모습의 정도가 월등히 높으며 종교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살아간다.재미있는 점은 기독교 내에서도 다른 종파인 카톨릭이 미국의 개신교에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이 신자들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신자들의 공동체에 힘을 실어 가는 모습은 유럽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결국 미국의 카톨릭교회는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카톨릭 신부들은 카톨릭의 세계주의와 미국의 국가주의를 조화시켜 버렸다.“우리는 미국에 중요한 사명이... 새로운 사회적 및 정치적 질서의 구현이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천주교가 미국에서 승리를 얻으면, 천주교의 진리는 미국의 영향력을 날개 삼아 전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책에서라진 채 섞인 Salad Bowl 혹은 Mosaic로 대변되는 모습에 가까운 듯 하다. 이러한 집단들은 인종적 우대, 이중언어주의, 다문화주의, 이민, 동화, 국가적 역사의 기준, 공식 언어로서의 영어,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논쟁들을 불러일으키며 해체주의를 유발하고 있다.이러한 논의 들 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이중언어에 관한 부분이다. 영어는 역사적으로 늘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에서 중심적인 것이었다. 이민자 집단들이 모국어를 유지해보려 노력했지만 미국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영어를 습득해야만 했다. 더욱이 그들의 자녀인 2, 3세대 이민자들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영어를 체득했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좀 다르다. 정부적 차원에서 이중언어를 장려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선거 또한 선거자료와 안내를 타 언어로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타 언어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들이 많이 소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류들 속에서도 사실 영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하는 모습은 강하게 남아있다. 실제로 많은 주에서 영어의 공식언어화에 대한 주민투표가 높은 찬성률을 보이며 통과되었고 이중언어교육의 종식에 대한 투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였다.또 하나 중요한 논쟁은 동화(assimilation)에 관한 부분이다. 동화는 우선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 미국 사회의 문화, 즉 WASP적 문화와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들을 녹여 미국사회화 시키는 힘인 Melting Pot은 앞서 말했듯 사라진 듯 하다. 하부국가적 집단들이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이중적인 이민자들에게서 잘 나타난다.나는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맹세한다.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지원자가 전에 신하였거나 시민이었던 외국의 어떤 왕자, 군주, 국가, 혹은 주권자에 대해서도 충성과 복종을 완전히 포기하고, 외국과 국내의 모든 적들에 맞서 미국의 헌법과 법규를 지지하고 지키며 그것들에 진실된 믿음과 충성을 보분은 멕시칸과 히스패닉의 이민이다. 이들의 이민은 현재까지 있었던 다른 이민들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먼저 그들의 모국은 미국과 인접해있다. 과거의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 완벽히 모국과 단절된 국가에서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인접한 국가에서 대규모로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육지의 경계성과 얕은 강만으로 구분되는 2천 마일의 국경을 목숨을 걸고 넘어온다. 세계적으로 어떤 나라도 개발도상국가 이렇게 긴 육지의 경계선을 가진 나라는 없다. 두 나라의 경제적 차이 때문에 멕시칸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사막지대인 국경을 통과해 미국으로 넘어온다.그들의 이민의 특이성은 그 엄청난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전체 미국 이민자의 1/4을 멕시칸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거기에다 그들은 출산율도 높다. 이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중남미계 인구는 급증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이민에서 많은 수는 불법이민이다. 9/11사태 이전이 미국에서는 딱히 멕시칸의 불법입국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하지 않았다. 9/11사태이후 국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어 강한 제재를 가한 이후에도 이들의 불법이민은 사실상 크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이들이 이렇듯 힘겹게 넘어오는 지역은 매우 집중되어있다. 마이애미와 뉴욕의 히스패닉 인구 비율은 계속해서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들이 넘어온 이후 정착할 때에도 집중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이애미에서는 늘어난 히스패닉들로 인해 스페인어만 사용해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정부의 공공기관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현재 인기 있는 미국드라마 ‘CSI : Miami’에서도 잘 나타난다.이들은 이민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보인다. 이들의 이민은 또 다른 이민을 낳는다. 한 번 시작된 이민은 흐름을 낳는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모국과 연락을 주고받는 그들은 이주와 이민에 관한 정보인이다.
    독후감/창작| 2010.03.24| 8페이지| 1,000원| 조회(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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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독후감
    Henri Bergson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진보사관을 가진 이들은 세상은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으며 인류는 점진적으로 발달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 지난 20세기에만 해도 크게는 1, 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이라는 참상을 겪기도 했다. 비단 20세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는 계속해서 서로 싸우고 미워하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 오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말은 적잖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베르그송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이런 인류의 모습의 원인을 닫힌 사회와 정적 종교에 두고 있었다. 인간의 지성으로 만들어낸 듯해 보이는 관습, 법, 그리고 규율 등에 포함된 집단 유지, 존속에의 본능이 사회를 결국 닫힌 사회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닫힌 사회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이다. 즉, 본능에 따라 자신들의 존속을 위해 타 집단을 배척하는 사회, 바로 전쟁지향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적 종교가 더해지면 완전한 하나의 폐쇄적인 사회가 등장한다.베르그송은 이런 닫힌사회와 정적종교에 열린사회와 동적 종교를 대비시킨다. 전자가 자기 보존의 본능에 따른 이기적인 모습을 가진다면 후자의 경우 보편적인 사랑과 인류애가 존재하는 곳이다. 베르그송은 후자야 말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모습임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닫힌 사회에 대한 베르그송의 이야기에서 하나 생각한 것은 본능에 의해 시작된 자기애, 가족애, 애국심이 어째서 보편적인 인류애로 발달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무엇이 그런 발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세계란 수 없이 많은 인류가 엮여서 형성된 하나의 거대한 사회의 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인류 전체에 대한 보존에의 욕구가 생길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지도상의 국경이 막혀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결국 이런 배척도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 귀결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권이 달린 문제가 서로에 대한 배척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같은 인종이 모여 사는 구역,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구역이 하나의 경제적인 체제 ‘덩어리’를 형성하고 거기에 매인 사람들의 자기보존 욕구에 따라 자신들의 이권을 보존하기 위해 동질감을 가지고 다른 ‘덩어리’에 대한 배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계속해서 서로 다른 집단들에 대한 경쟁과 배척, 결국은 전쟁에 이르게 되는 상황 속에 놓이는 것일까?베르그송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열린사회를 제시했다. 내 이해에 따르면 이 열린사회, 즉 보편적 인류애가 존재하는 사회는 탈 이데올로기적인 사회다. 서로가 자신이 가진 이권을 포기하고 나서야 진정한 인류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더 나아가서는 남의 것도 가지려 드는 늑대들이 우글대는 곳에 이 열린사회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이해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인 것이다.닫힌 사회의 종교인 정적 종교는 닫힌 사회의 특징인 자기 존속에의 본능에 충실한 종교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떠오른 것은 지금 한국의 교회가 굳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다. 날이 갈수록 교회들은 대형화를 지향하고 있고 성도‘수’를 늘이는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작 인구 대비 기독교인 수는 줄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일 예배에 빈자리를 채워나가기 위해 골몰하는 것일까? 좀 더 좁은 범위로 한정해서 과연 나는 타인의 영혼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아니면 교회에 나와 자리를 채우는 그의 몸뚱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확실히 전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후자의 모습도 거기에 섞여 있다는 데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한다.열린사회처럼, 이 정적종교에 대한 베르그송의 대안은 동적종교다. 말 그대로 역동성을 가지고 인간과 우주의 근원에 접근하려 하는 종교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서 파생되는 것이 동적종교의 종교 활동이다. 이 말은 내게는 자신의 신앙이 바로 섰을 때 타인에게 전하는 나의 진리(하나님)가 역동성을 가진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히려 내 속의 진리의 역동성이 자연발생적으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진정한 전도이며 종교 활동이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혼자 부르던 찬양이 은혜가 되어 어느 날 훌쩍 통기타 하나만 메고 길거리에서 찬양을 하며 그 은혜를 사방에 나눠주고자 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의 하나이리라.이 모습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책에 나온 종교적 영웅의 행위에 의한 정서적 감동이 사회의 변화와 포용, 도덕적 기능의 작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 비단 종교적 영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웅의 범주가 각 종교의 영웅인 부처나 공자 등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종교적 영웅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종교에서 얻은 인생의 진리를 체현해 내는 모습들이 세상의 곳곳에서 타인들에게 정서적 감동을 주어 작은 변화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변화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0.03.24| 4페이지| 1,0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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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시골신부의일기 독후감
    Georges Bernanos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사실 이 책은 내겐 너무나 난해했다. 책을 좋아하는 바람에 버리지 않고 집에 놓아둔 삼성판 문고집에 이 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은 소소하게나마 이미 읽었다는 생각도 이 책을 읽도록 부추기는데 한 몫을 했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읽기에 난해했지만 책의 주인공인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분명 뭔가 도전을 던지는 작업이었다.주인공인 ‘나’는 프랑스의 시골인 앙브리꾸르 지방에 부임한 본당신부로 불치병인 위암에 걸려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바꾸어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가진 작업은 그다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지역적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운동단체를 만들어 지역의 청년들을 교화하려는 노력을 한다거나, 모든 주민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의 행동으로 오히려 그는 다른 연세 높은 신부님들께 너무 성급하고 급진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그런 그를 질타하기도 하고 이끌어 주기도 하는 이 작품의 매력적인 인물이 바로 또르씨의 본당 신부님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인물의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면 읽기가 힘들어지고는 했는데 처음에는 좀 횡설수설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이 인물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의 많은 지적 고민들과 신앙적 갈등을 겪을 대로 겪은 채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속에 품은 채로 세상을 달관한 듯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뿌리 깊은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에게 ‘본당을 완전히 청소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낳고 쓰러진 본당지기 노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를 타이르는 모습은 이미 인간적 세상에서 모진 일들을 겪을 만큼 겪은 인물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자신이 젊은 시절 가졌던 부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독백처럼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젊은 날의 열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젊은 날의 갈등이었던 이 ‘부의 문제’를 말년에 든 그가 성자들의 덕에 연관시켜 자신이 깨닫게 된 영적인 부분의 문제를 풀어내는 부분이었다. 세상의 알기 힘든 오묘한 법칙을 이야기 하면서 그는 이 세상의 부자들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생산수단에 의존해 살아가듯, 영적으로 뛰어난 몇몇 성자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끌며 그들의 의존을 받아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풀어낸 것이다. (여담이지만 작품의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부와 빈곤에 관한 문제들은 작품을 쓸 당시 작가가 처한 상황의 영향이 큰 듯하다. 방랑벽이 있던 작가는 계속 가난에 허덕였고, 이 책을 쓸 당시에는 빚을 지고 결국에는 살던 셋집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세간을 남겨둔 채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고 한다. 그를 찌르던 가난의 모진 모습이 작품에서 이렇게 부에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이렇게 도움을 주는 또르씨의 본당 신부님에게 때론 감화되고, 때론 반박하면서 그는 자신의 투쟁을 계속한다. 아픔에 지친 위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에는 포도주에 적신 아주 조금의 빵 밖에는 소화를 할 수 없어 계속 포도주를 마셔서 사람들로부터 주정뱅이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투쟁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이런 그의 싸움은 어느새 외부의 사회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내적인 갈등으로 번져가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는 사회와 사회 속에서 만나게 되는 무신론자들의 모습에 점점 지쳐가다 못해 결국에는 자신이 성도들에게 무엇이 진리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르게 된다. 나는 그의 외적인 투쟁보다도 이 책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내적인 기복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로서 세상의 일과 신의 뜻이 상충하거나 잠깐씩 회의에 빠지는 순간이 나도 없지는 않았기에 그가 자신의 기복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가 사뭇 궁금했던 것이다. 그의 사회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어 천천히 내적으로 침잠하면서 일어난 영적 침체는 적잖이 심각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가 기도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러한 침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탄식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기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는 심지어 자신이 어둠이라고 까지 여기게 된다.작품에는 그의 이러한 영적 기복에 영향을 주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무신론자들이다. 주인공은 이들과의 대화에서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처음으로 갈등을 주고는 다시 치유를 준 인물은 오메르 백작부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백작의 일가다. 이들 일가는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메마른 곳이었다. 백작은 아내를 속이고 딸의 가정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 하는 딸인 샹딸은 이런 관계를 질투하여 모든 것을 폭로해서 파괴해버리고 하며, 백작 부인은 일찍 죽은 아들에 대한 사랑만으로 사느라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다. 주인공은 샹딸의 고발로 이 백작의 부정을 알게 되고 이들 가족사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백작부인이 죽기 전날 밤 주인공과 백작부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대화가 시작 될 무렵 주인공은 영적으로 매우 고갈되어 어찌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의 상태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메마른 영혼인 백작부인과의 대화와 토론을 계속해 나가면서 그는 점점 치유된다. 비단 그만이 치유 된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상심 속에 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남편과 딸을 사랑하는 법마저도 잊어버리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백작부인도 그의 진심어린 설득에 치유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그녀는 심장마비로 임종을 맞는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평화를 주었다고 확신하며 자신도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그가 부딪힌 또 하나의 인간 장벽은 막상스 델방드라는 시골의사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처지란 그저 부정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즉 그에게 정의란 균형이고 타협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의란 애덕의 발로이자 승리라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것이 2000년이자 흘렀으니 그러면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창피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며,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이 아니냐며 반박한다. 그리스도교가 부자를 제어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이다. 여기에 대하는 주인공의 반응은 무력한 것이었다. 그의 일기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말이 힘없이 쓰여있을 따름이었다. 이 대화 얼마 후, 그 의사는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 다시 기나긴 침체에 빠진다. 이후 또르씨의 본당신부님이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주인공이 바랬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막상스는 무신론자일지언정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악이 있으면 거기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그 외에도 그는 많은 무신론자들과 마주치고 그 때마다 침잠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그가 부임한 성당의 성당지기 조차도 70평생을 성당에서 살았지만 사람들이 진실로 회개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으면 사람이 죽으면 모두가 그뿐이라는 말을 한다. 여기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나는 못 들은 체했다. 대답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암 판정을 내려주던 릴의 의사인 라빌은 심지어 주인공이 기도로 구하는 평화를 주사기에 든 몰핀으로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주인공은 무력하게 반응하고는 후일에 그 무력을 다시 후회한다. 심지어 무신론자인 백작의 조카 올리비에가 한 말인 ‘기도의 습관이란 제 생각에는 오히려 줄곧 기도 걱정을 하는 것, 싸우는 것, 노력하는 것’, ‘신부님의 얼굴은 오히려 기도로 낡은 것 같습니다’에서는 기도에 대한 교훈과 고민을 역으로 얻어가기도 한다.그의 이러한 모습을 볼 때 그의 투쟁의 시작은 사회의 전체적인 부분이었지만 결국에는 사회가 그에게 던지는 ‘과연 그렇다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 아니었나 싶다.주인공의 이러한 침체를 보면서 하마터면 나도 침체를 겪을 뻔 했다. 도대체 나라면 어떤 대답을 그들에게 주어야 할 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나도 그들에게 뭔가 대답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침잠해 들어갔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 우리는 그냥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별히 내가속한 학생신앙운동(SFC)에서 말하는 개혁주의를 생각한다면 나는 그들이 말하는 정의에 대해서 뭔가 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안다손 쳐도 그것을 어떻게 세상이 납득할 방법으로 제시할 것인가를 알 수가 없었다.
    독후감/창작| 2010.03.24| 5페이지| 1,000원| 조회(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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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구스티누스 - 참회록 평가A+최고예요
    A. Augustinus참회록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또 서양 중세철학 시간에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배우는 학생으로서 그의 저서인 『참회록』)을 읽은 것은 그의 생애를 알고 그의 사유과정을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특별히 그의 생애 전반에 대한 고백 속에서 보이는 그의 철학자로서의 고민과,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의 갈등, 그리고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서의 모습은 수업 중 배운 철학적인 것의 외적인 부분이라 내게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원작은 모두 13권으로 저술 되었지만 현재는 이 책들이 모두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인 1권에서 6권에서는 어린 시절과 기독교에 입교하기 이전의 청년 시절의 삶에 대한 고백들이 이어진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수사가로서의 교육을 받음으로서 시작된다. 유년기에는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공부를 해야 했고,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점차 ‘진리’에 대한 갈증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애초에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어머니에 의해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머니로부터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청소년기에 세례를 받고 입교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신병(身病)으로 인해 이는 그가 장성할 때까지 연기된다. 열아홉에 이른 청년시절에는 진리를 찾기 위해 각지로 유학을 다녔다. 카르타고에 이르러 그는 진리에 대한 탐구를 하던 중 마니교에 빠지고 점성술에 심취해서 지내고는 했다. 하지만 마니교에서는 자신들에 제시한 세계관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다. 마니교의 권위자인 파우스투스 조차 이러한 것에 대답하지 못하자 그는 더욱 더 깊은 상심에 잠기게 된다. 이후 밀라노에 수사학을 가르치기 위해 갔을 때 그곳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에게 깊이 감화하여 기독교가 참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점차로 인식하여 기독교인으로서의 출발을 시작한다.책의 전반부에 걸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은 단순히 이런 개인사들만이 제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인, 철학자로서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해낸 부분이 많다. 여기에는 그의 그리스적 전통의 영향이 곳곳에서 보인다(이 책을 처음 읽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먼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천지가 당신을 영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무엇인가 넘친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신께선 그 넘치는 몫을 어느 곳에 쏟아놓고 계십니까? 당신께서 채우실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당신께서는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라고 말하며 일자(hen)로 부터 다른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는 플로티노스적 유출의 개념이 보인다(플로티노스의 영향은 7권『철학적』해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유아시절을 회고하면서 ‘주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의 법칙대로 바로잡으시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라며 하나님의 최고의 선(선의 이데아)으로서의 능동성(ideae)과 규정성(regulae)을 말한다. 또한 그리스적 전통에 영향을 받아 정의가 불변하는 것임을 말하며 그 불변하는 개념을 시학(詩學)에 빗대어 ‘시작(詩作)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시학 자체는 그 근본 법칙상 유동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전체 가운데 모든 것을 동시에 내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물이 변화하더라도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불변하는 무엇인가가 유동되지 않고 그 변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당대의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의 고백에서는 불변의 중요성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당신은 물체도 아니며 육신에서 생명을 구사하는 영혼도 아니십니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 그 자체보다도 위에 있고 더 확실한 것입니다. 당신은 영혼의 생명이시며 또한 생명 중의 생명이십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통해서만 존재하시고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니 당신은 내 영혼의 생명이십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원천이시며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불변하시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젊어서 읽은 플라톤의 영향으로 ‘당신은 무한히 존재하고 계시지만 유한 또는 무한으로 생각되던 공간을 넘어 계시지는 않는다는 것과, 당신만이 홀로 현실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일자이신 하나님만이 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하지만 이 모든 그리스적 사유들이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사유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 철학적 오류를 범하기도 했는데, 가령 스무 살 무렵 읽게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십범주』의 영향을 말하며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설명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는 해가 되었고 하나님을 십범주 안에 다 포함되는 물체적인 분으로 보아 ‘크기와 아름다움을 가진 분’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이 부분에서 그는 결국 하나님은 ‘크기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있는 것’으로, 즉 범주에 들어가는 물체적인 부분으로 파악하는 생각의 영향으로 공간,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물체적으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고 심지어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항상 물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물체가 아닌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피치 못할 내 오류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더불어 선과 악에 대해서도 물체적인 존재인 ‘두개의 덩어리’로 파악하고는 이것이 수축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마저도 유한한 것으로 생각하고 파악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말한다.젊은 시절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그는 책의 곳곳에서 고백되듯 하나님이 ‘진리 그 자체’이심을 깨닫는다. ‘당신의 율법은 곧 진리이며 진리는 곧 당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등불을 비추시는 존재에 빗대어 말하며 그분을 만나는 순간 참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진리를 보려면 다른 빛으로 비추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주여, 실로 나의 등불에 불을 켜주는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바로 위에서 언급된 문장은 또한 진리의 선천성을 말한다. 즉 진리가 마치 우리 안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이다.제 5권 『고백』에는 이에 대해 깨닫는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이 진리의 선천성을 말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유를 시작한 점은 인간의 오관(五觀)이다. 우리가 오관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불완전하지만 모두 ‘기억’에 저장 된다. 이 기억은 광활한 창고와 같은 것으로서 우리가 오관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는 곳이다. 무엇인가가 저장 되었다가 사라져도 그것은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준비를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 기억이라는 창고에서 우리는 이렇게 감각되었던 것들을 필요할 때면 꺼내 쓸 수 있다. 그리고 기억에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한 것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인 것들, 그리고 비감각적인 것들마저도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되었던 것들이 우리가 되새길 때에 상기되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에게 ‘존재하는가?’, ‘무엇인가?’,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무엇인지와 어떤 것인지는 우리의 육체로 느낀 것으로 대답할 수 있지만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육체로 느낀 것(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자면 ‘육체의 구멍으로 들어온 것’)으로는 대답이 불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각되지도 않은 것이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알기 전에 우리의 정신 속에 있던 것을 재인식 한 것이다. 즉, 이전에 그것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에 대한 어떤 지식을 기억 속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진리를 알 수 없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아는 것도 위와 같은 길을 걸어 알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진리를 아는 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경로를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단계적으로 물체계에서 시작하여 물체를 통하여 감각하는 영혼에 이르고, 더 나아가 그 영혼의 내적 능력에 이르렀습니다. 이 능력은 외계의 사물에 대한 육체적 감각의 보고를 받는 것이고, 짐승의 인식력에서는 최상의 한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이성의 사색하는 능력에까지 도달했는데, 여기서 감각적 지각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판단 능력도 내게는 변하는 것으로 경험되었으므로, 이 판단 능력은 순수한 정신으로 관망하는 자기 통찰에까지 상승했습니다. 이것은 사유를 인도하여 그 관습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환상의 불합리한 온갖 도락을 피하여 그것이 어떠한 빛인가를 알려고 한 것입니다. 그 빛을 만나면 그 판단 능력은 절대적이고 단정적으로 해명하기를,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고, 불변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해답을 그 이성적 능력이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그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불변적인 것을 결코 확신을 가지고 가변적인 것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나의 이성적 능력은 존재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떨리는 눈초리로 번쩍하는 순간에 거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순간이 하나님과의 신비적 대면이라고 말한다. 이 번쩍하는 순간에 영혼의 눈과 정신이 미치지 못하는 빛을 보았다. 이 빛은 앞서 언급했듯이 등불의 불과 같이 어두운 그의 속에 내재되어 있던(하나님께서 주셨기에 그 자리에 있었다) 진리를 비추었고, 그렇게 참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된 후 그는 하나님(진리)을 상기할 때마다 기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한다.
    독후감/창작| 2010.03.24| 5페이지| 1,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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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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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