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아시아계소수민족들의 교육 및 사회경제적성취에 대한민족경제공동체론적해석’과 ‘교실지식’을 읽고 >1) 미국의 아시아계 소수민족들의 교육 및 사회경제적성취에 대한민족경제공동체론적 해석미국내에서 같은 소수민족이어도 한국, 중국, 일본의 사회, 경제 교육적 수준 및 성취는 필리핀이나 흑인 등의 타 민족의 성취수준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매우 성공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아시아계 소수민족들의 교육 및 사회 경제적 성취에 대한 민족 경제 공동체론적 해석’에서는 미국의 아시아계소수 민족들의 교육수준과 사회 경제적 성취가 높은 점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기존의 해석으로 문화적 접근인 ‘동화이론’과 구조적 접근인 ‘노동시장 분절론’이 있으나 이 둘은 설명력의 부족과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거주지 중심의 ‘문화경제 공동체론’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이 이론에서는 미국의 아시아계 소수민족들이 사회의 차별화된 불평등구조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성공을 위해 그들의 민족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며, 유리하게 이용함으로써 민족적 결속력을 강화시킴으로서 사회 경제적인 성공을 이뤄낸다고 본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어떠한 사회제도적 장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인적 자원에 의존하고 기업가계층을 양성해가며 분절된 노동시장체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적 이등과 경제적 성공의 가능성이 보장될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 즉 이러한 지위상승의 기회는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있으며 이는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가면서도 사회 경제적 지위상승의 기회를 획득하며 경제성공을 기반한 교육성취를 일궈낸다고 본다는 점에서 기존의 동화이론을 반박하며, 분절된 노동시장의 한계로 인해 계층상승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봄으로서 소수민족들의 상대적 성공의 사회적 사실을 간과하는 노동시장 분절론과도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 경제공동체는 주류체제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이라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따라서 경제공동체를 통해 이룩한 교육적 경제적 성공을 기반으로 미 주류 경제체제로의 진입을 시도할 필요성이 있다. 체제의 고립과 단절을 통한 성공은 지속성을 가질 수 가 없다. 따라서 민족경제공동체는 그 장점을 바탕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주류로 편승됨으로서 아시아계소수민족에 대한 인식전환, 완전한 평등실현을 위해 힘을 발휘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2) 교실지식교사가 무엇을 가르친다고 할 때 그 가르치는 내용은 선택되어 문서화된 교육과정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교실현장에서는 교육과정에서 의도한 그 내용이 그대로 시행, 전달되지 않는다. 실제 교실현장에서 교육과정은 교사의 지식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통해 재해석되며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고 학생에게 전달된다. 이때 교사들은 모종의 분류와 정의를 통해 학생들을 능력과 사회계급과 관련하여 구분하게 되고 이들에 대해 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교사들은 자신들이 지각한 학생의 능력에 따라 각각 다른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전달하게 된다. 그 결과 분화되지 않은 교육과정은 분화되게 된다. 즉 다른 교육이 시행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 스스로가 교육내용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학생들은 이러한 교사들의 태도와 방식,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행위들과 교육내용을 통해 자신들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정의,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이며, 특히나 사회적으로 계급이 낮은 경우에 그것이 지능과 지식과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으로 분류되며 그것이 고정화되며 계속적으로 부정적으로 지속되게 된다. 교사들은 학생을 직접 마주하고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교육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정의와 분류는 학생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를 형성하고, 그것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다시 태도와 사고방식, 행동방식,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동기를 변화시키게 한다. 문제는 그러한 교사의 학생 분류기준이 학생에 대한 임의적 판단일 뿐 분명한 것이 아니며, 학생구분 범주가 사회적 권력 분배구조에 기인하는 점이 크다는 것에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지식의 분배, 그를 통한 계속적인 지위구조의 재생산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색다른 연애법연애 ? 혼인을 통한 성의 권력 관계 살펴보기Ⅰ. 들 어 가 며Ⅱ. 본 론가. 사랑, 그리고 연애, 혼인나. 각 민족들의 ‘혼인’의 문화적 의미1. 아나마트 족 ‘연애-명성 게임’ ? ‘비밀-연애 게임’2. 아라페쉬 족 ‘익숙한’ 결혼 생활3. 챔불리 족 ‘역할이 바뀐’ 결혼생활Ⅲ. 마 치 며Ⅳ. 참 고 문 헌Ⅰ. 들어가며우리가 알고 있는, 또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을 각기 지닌 존재들이 있다. 우리들 모두는 이 두 가지 성 중에 하나를 가지고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다. 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용하기도 혹은 그에 대항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성역할을 재창조하기도 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지금으로부터 오래되지 않은 과거까지도 사람들은 한 사회 내에서 남성과 여성은 정해진 성역할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그들의 직업이 정해지고 그에 맞는 역할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엄격하게 성별에 따라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 형태인 ‘혼인’이 매우 중시되었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별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가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권력 구조는 그들의 결혼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나라별, 민족별 혼인구조를 연구한 바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 사회의 정체성이나 권력 구조가 공적(公的)인 담론에서 사적(私的)인 담론으로 이행되는 형태가 바로 ‘혼인’이기 때문이다.물론 인간의 생식 행위가 동물적인 본능과 충동 때문에 일어나며, 혼인이란 바로 이러한 성적 본능과 충동을 적절히 통제하는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하고 보편적인 생물학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혼인’은 실은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실천되는 제도인 것이다.이 글에서는 남 ? 여의 권력 관계가 연애나 혼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풍습 등을 통婚姻) ; [명사]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 ≒ 혼가(婚嫁), 혼취(婚娶)결혼(結婚) ; [명사]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앞에 제시된 것은 ‘혼인’과 ‘결혼’의 국어사전적 의미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혼인’과 ‘결혼’의 뜻은 단 한 줄의 설명으로 간략하지만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혼인’은 다양하고 깊이 있게 해석된다. 남?여의 성관계를 문화적으로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가 혼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혼인은 일시적인 성관계와는 다르다. 성관계를 하는 모든 성인 남녀를 혼인한 상태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혼인에 대한 여러 가지 관습들이나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 규정들은 모호하고 다양해서 무엇이라 정의내리기 힘든 부분이 많다.인류학에서는 흔히 혼인을 성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합법적인 자녀로 인정되는 남녀간의 성적?경제적인 결합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가 모든 민족과 사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가령 아프리카 수단의 누어(Nuer) 사회에서는 성관계가 아니라 신부대금의 지불을 혼인으로 규정한다. 신부대금이란 혼인할 때 신랑 쪽에서 신부 쪽으로 주는 재화를 말하는데 누어 사람들은 남자 쪽 집단이 여자 쪽 집단에게 적당한 수의 소를 보낸다. 이러한 문화적 논리에 따라 여자와 여자가 혼인하는 것도 볼 수 있다. 불임인 여자가 신부대금을 지불하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남자친척에게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신부대금을 지불한 여자의 자식이 되고 자식들은 그 여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혼인 제도는 배우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서도 다양하다. 배우자가 한 명인 혼인 제도를 단혼제(monogamy), 배우자가 여러 명인 혼인 제도를 복혼제(polygamy)라고 하는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혼제보다는 복혼제가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한 사람의 여자에게 여러 명의 남편이 존재하는 일처다부제는 극히 소수의 사회에서만 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주로 여성들이 농사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노동력 증강의 의미에서 남자들이 부인을 많이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결국 혼인의 의미는 노동력의 교환으로 많은 민족들 사이에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도 어떤 형태의 교환의 의미로 ‘결혼’이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의 오하이오 주립대 인적자원 연구센터에서 전국 9000명의 연방정부 통계자료(1985~2000년)를 분석해 재구성한 그래프를 보면 결혼이 자산축적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과거의 부족 사회나 소수 민족 사회에서 인식되는 결혼의 의미와 소위 ‘선진화’되었다는 현대 사회에서 인식하는 결혼의 의미가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민족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결혼 생활과 그를 통해 문화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나. 각 민족들의 ‘혼인’의 문화적 의미1. 아나마트 족 ‘연애-명성 게임’ ? ‘비밀-연애 게임’모리스 포렐리치와 루이스 코저가 1957년 7월부터 1년간 수행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아나마트 족의 혼인 제도를 분석한 바 있다. 이들은 아나마트 족의 결혼을 남자에게는 ‘연애-명성 게임’이고 여자에게는 ‘비밀-연애 게임’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들에게 결혼이란 제도는 ‘게임’에 비유될 수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게임인 것이다.이들의 결혼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립’이라는 개념이 아나마트 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나마트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아나마트 사회에서 남성은 자립적인 남자일수록 여성과 더 많은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능력 있는 남성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아나마트 사회에서 결혼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남자는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여자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여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면 재미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다. 혼외정사에 대해 딱히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이것은 자신의 명성(능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사실을 떠들어대기도 한다.한편 아나마트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한 존재이며 사회규범이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의 남편이 혼외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에게도 다른 남자들이 접근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외 연애 관계는 비밀이 유지되는 한 허용할 수 밖 에 없다고 본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에게 결혼은 ‘비밀-연애 게임’인 것이다. 이들은 혼외 관계를 가질 때 남성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지, 돈을 잘 쓰는지, 결혼 생활은 어떠한지를 살핀다.아나마트 사회에서 결혼, 즉 일종의 게임은 여성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가져다 주는데, 남성과 여성의 게임의 목적이 완전히 반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명성을 얻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떠들고 다니는 한편 여성을 속이고 있고 여성은 자신의 경험이 비밀로 지켜진다고 믿고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 에 없다.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거나 조심스러운 파트너를 만나는 것 뿐 이다.물론 이 게임에서 비밀 유지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평화적인 대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대안이 남성의 비교 우위적인 면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 게임에 참가함으로써 얻는 조그마한 보상을 위해 이 게임에 협력하는 것이다.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조차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자립성’이 아나파트 사회에서 결혼 생활의 권력 관계를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2. 아라페쉬 족 ‘익숙한’ 결혼 생활아라페쉬 족의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를 키운다. 아버지가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이를 낳아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길러 주었기 때문인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관심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혼수를 보냈다거나 법적 소유라서가에 그들의 일부라고 여긴다. 그들은 또한 신부의 가족에게 지불을 해왔다. 고기를 보낸다거나 결혼할 때 반지와 조가비와 같은 귀중품을 보내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소녀가 좀 더 자라나면 어느 날인가 신방을 차리게 되는데 그저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생각 하에 자연스럽게 부부로서 결합하게 된다.이러한 이유로 아라페쉬 족 사람들은 혼외정사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고 있지 않다. 아나마트 족 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위해서 혼외정사를 즐기는 것은 이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 성은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지 순간적인 충동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다. 성관계는 오직 장기간에 걸쳐 편안하고 우호적으로 이루어진 결혼 내에서만 안전하고 귀중한 것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끌림은 ‘유혹’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이들의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나마트 족 사람들처럼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이 취하게 되는 상태가 아니라 어쩌다가 처하게 된 상황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죽음이다. 남편이 아내를 남기고 죽는 경우 그녀는 이미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죽은 남편의 씨족원들 가운데 한 남자와 당연히 지내야 하는 것이다. 일부다처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해 주는데 두 명의 아내가 나누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력의 증강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생활은 다음과 같다. 긴 약혼 기간을 지나면서 두 젊은이는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친해지고 아내는 남편을 인도자로서 거의 부모나 마찬가지로 따르며 아기가 태어나면 이들의 금슬은 더욱 두터워진다. 남편이 중년이 될 때쯤 형의 아내를 물려받아서 또 다른 아내가 가정 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새 아내는 자신은 물론 기존의 아내와도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이이고 신뢰해온 사이다.물론 이렇게 낙관적인 아라페쉬 족의 결혼 생활이 늘 평탄한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조절하기에 부족
< “신화와 민담에서 본 자기실현의 상징”을 읽고 >민족에는 그 나름만의 민족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뿌리 깊은 내면화의 과정을 통해 세대를 거쳐 전수된다. 그러한 이유로 그것은 무의식 속에 내면화 되어 있으며 일상생활에도 출몰하곤 한다. “신화와 민담에서 본 자기실현의 상징”을 읽으면서 내 안에도 그러한 집단의식이 잠재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성찰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살았다. 나는 항상 부족해했고 목말라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으나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버리지 않고, 두렵게 여겨지는 어떤 일에도 섣불리 손을 대거나 위험이나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탓에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이고 평탄하고 모범적인 삶을 걸었지만 정작 나는 무엇인가에 목말랐고 허덕여야 했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와 권위가 싫었지만, 부당하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나는 순종했고 결국 나는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내안에 품었다. 권위의식과 가부장적 태도는 내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보여 지는 내 모습이었고 결국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원하는 삶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것들 뒤에 숨겨져 버렸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나의 주인이 정말 내가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사람은 누구나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는 뜻과 욕구가 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갈망하는 무언가가 인간의 내부에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화 해 내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는 도중에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고난과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러한 욕구와 뜻을 내면에 가둬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무의식은 인간의 삶을 억누르고 순간순간 부정적인 답답함과 현실탈피의 욕구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삶은 인간을 불행하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해방시켜야만 한다. 나는 그 방법이 의식적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안정을 버리고 가진 모든 욕심을 버리고 집단의식과 권의의식과 가부장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손에 가득 잡고서는 새로운 것을 더 이상 집을 수 없다. 외적으로 보여 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읽고 그것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체 정신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성의 회복이 이뤄질 때 삶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인도자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와 커뮤니케이션Ⅰ. 들어가며요즘 우리는 생활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 하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길러야한다든지, 어머니?아버지와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든지, 이와 같은 말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가 보다 복잡해지고 다양한 통신체계가 발달한 최근에 우리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더 많은 문제 상황과 부딪히고,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떤 요소들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많은 문제 상황들을 만들어내는지, 또 그러한 요소들은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해서 교재 내용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리고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사례들을 덧붙여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Ⅱ. 본론1. 커뮤니케이션이란?교재내용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이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이 상대방과 특정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이러한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자와 수용자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학생이 한국의 학급에서 선생님께 혼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상대방의 의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 항상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미국문화권에서 교육받아온 학생에 대해 한국의 선생님은 반항을 한다며 더욱 혼내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른을 대할 때, 의례 시선을 지그시 아래쪽에 두어야 한다는 한국사회의 문화를 몰랐던 것뿐인데, 이것이 양자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단일 언어권 내에서도 성, 계급, 교향, 교육수준에 따라서 말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쉬운 예로 사투리를 들 수 있겠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도 지방에 따라 표현방법이 달라서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 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하위문화의 영향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한 다양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2. 특별한 이야기필자는 지난 해 3월부터 6개월간 아르헨티나의 한 인디오 개인지도를 했다.아르헨티나가 다른 여러 남미국가들처럼 스페인어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장애만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첫 발을 내디딜 당시 제대로 된 스페인어 10마디도 구사할 줄 몰랐던 무모한 이방인인 필자와 실제로는 부족언어인 과라니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상황들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경험했던 문화적 차이 등을 교재의 각 내용과 연결시켜보고자 한다.3. 말하지 않고 이야기하기우리는 흔히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면 언어적인 부분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실제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우리는 다양한 비언어적 방식들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언어로써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우리는 대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먼저 배우게 된다.① 눈과 시선우리는 눈을 통해서 주로 감정을 교환하는데, 이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그것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성, 계급, 지역, 세대, 민족, 국가 등에 따라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어렵게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빤히 응시하는 경향이 있는 유럽인들을 우리가 처음 만난다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런 눈 움직임에는 윙크나 곁눈질과 같은 의도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광채나 동공반사와 같은 비의도적 눈 움직임도 있다. 미국의 에크하드 헤스 교수의 동공연구를 보면 우리가 이상형의 멋진 남자를 본다거나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본다면 우리의 동공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커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쁨, 행복과 같은 감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눈은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움직이면서 메시지 전달 기능을 하고 있다.이번에는 공공장소에서 시선의 문제를 보자. 우리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시선을 교환한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깊은 의미의 감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는 거리에서 친구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그 친구를 크게 모욕한 것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case 하나 - 과라니 아이들의 시선회피처음 마을에 도착해 아이들을 만나고 인사를 건넸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한 달이 지나도록 인사를 받아주지 않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허공에 인사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해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차츰 아이들의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과라니족은 최근까지 외부와는 거의 단절된 상태로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사회 안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래서 외부인에 대해서 많은 경계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즉 아이들의 시선회피는 필자에 대한 미움이나 적대감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단지 경계심을 풀고 익숙해지는데 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case 둘 -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하는 아르헨티나 사회아르헨티나에서는 대다수의 서구국가에서 그렇듯, 거리를 지나다닐 때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상냥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필자가 느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상당히 타인에 대해 깊은 친밀감을 느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향을 가진 듯 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영어로 "Hi." "Good morning." "How are you?" 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말들을 거리에서도 빠르지만 친밀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건넨다. 처음엔 잘 적응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도 타이밍을 놓치거나 어색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② 공간 다루기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꼭 지켜내고 싶은 자신만의 사적영역을 가진다. 따라서 이것을 침범 받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 턱하니 다가온다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놀라다. 이와 같은 문화적인 배경 외에도 사적영역은 개인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실제보다 더 크게, 더 가깝게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서 잔뜩 긴장상태에 있는 꼬마에게 엄마가 다가오고 있음은 다른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사적영역을 보호받지 못하는 만원 버스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미국의 중산층은 대게 네 가지 종류의 사적영역을 가진다고 한다. 첫 번째는 친밀함의 거리로 직접 접촉을 하는 등 지극히 사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로 이성친구나 가족을 대할 때 적용된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거리로 평소에 친한 사람들을 대하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황 속에서 나타난다. 세 번째는 사회적인 거리로 판매원이나 수리공 등 일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난다.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혹은 사교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공공장소에서의 거리로 아주 공식적인 상황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거나 연사가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는 경우 등이다.살펴본 바와 같이 사적영역에 대해 사람들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이와 관련해 상대방을 대할 때 주의를 더 기울여야한다. 특히 문화에 따라 생기는 다양한 차이를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case 하나 - 사적영역이 가까운 아르헨티나 문화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르헨티나 사회는 타인에 대해 친밀감을 강하게 느끼며, 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만큼 사적영역도 가까운 편이다. 설령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대화를 나눌 때는 가까이 서서, 상대를 바라보며, 가벼운 스킨십도 적당히 섞어가면서 한다.# case 둘 - 비교적 사적영역이 넓은 과라니 문화주류 아르헨티나 사회와는 달리 과라니 사회에서는 친밀감의 표현이 많이 제한되는 편이다. 오랜 폐쇄적 사회생활에 기인한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과라니 사람들이 감정 많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③ 신체언어우리는 의사표현을 직접적으로 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 손짓이나 표정과 같은 신체언어를 사용한다. 특히 이성과의 교제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머리카락을 만지다거나 다리를 꼬는 여성의 행동이나, 반대로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당당한 걸음걸이를 유지하거나 넥타이를 매만지는 남성의 행동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체언어는 관찰과 모방에 의해 학습된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사회 내에서 통용되어 온 신체언어는 계속적으로 후세대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언어는 성별, 지위, 성격,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며, 시대와 지역적 문화차이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남미에서는 발을 넓게 벌리고 척추를 세워 앉은 자세가 젊은이의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반면, 20세기 초 미국의 뉴잉글랜드 자방에서는 이것이 처녀들에게 요구되던 자제이며, 현재는 미국 군인의 자세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렇게 문화에 따라서 같은 동작이 상이한 의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가 진행되는 신체언어는 매우 복잡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상화작용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신체언어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case 하나 - 아르헨티나의 인사법 un beso아르헨티나에서는 몇몇 서구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볼을 맞대고 입맞춤을 하는 인사법을 사용한다. 이것 역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친밀성을 보여주는 한 방식이다. 친밀함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서 인사를 할 때 상대를 껴안고 있는 시간, 입맞춤의 횟수 등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길고, 횟수가 많을수록 서로를 더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case 둘 - 과라니의 독특한 악수 인사법과라니 사람들은 독특한 악수의 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였다.
<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보는 내내 나에게 충격과 슬픔, 가슴 저린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혹은 이 영화를 보며, 모방, 제 2의 히틀러를 꿈꾸는, 그러한 힘을 손에 넣고자 하는 인간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인간들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원하는 존재가 아닌가. 어쩌면 심장 약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이런 사건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알면 알수록 괴롭고 고통스러우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도덕과 윤리에 관한 것보다 인간의 본성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관람했던 것 같다. 종교학자들은 인간의 선과 악의 본성에 관한 논의를 통해 많은 이론을 형성해 왔는데,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인간이 극단적인 ‘악’이라는 정의에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인간이 가지는 엄청난 파괴력과 파멸의 힘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자연주의자들, 환경론자들은 인간 자체가 환경을 파괴한 악의 주범으로, 비자연성을 가진 존재로서 자연성을 거부하여 결국에는 극단적인 환경파괴와 인류 뿐 아닌 지구 전체의 불행과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니까 말이다.우리는 지금도 도덕성의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인간간의 끈끈한 정보다는 서로에 대한 배타성 소외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것,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독일군의 유태인 무차별 학살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주의, 이기주의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종족의 죽음, 인간 유태인의 죽음, 그 대학살이 주는 끔찍성과 잔학성은 우리가 지금 산업화의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연의 종, 생명체 종 하나하나를 멸종시켜가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간은 좀더 고도의 지적 생명체이기에 더 살아야 하는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은 독일군이 자신들이 더 고도의 지성을 가진 인간이고 유태인은 인간도 아니기 때문에 죽여도 된다는 사고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과연 인간이 가진 이기성과 끝없는 욕망은 어디까지이며,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잔혹한 사상을 실현시킬 힘과 권력, 자신들만을 위한 편항된 합리화, 그리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실행능력의 대담성과 잔혹성은 어디까지인 것인가. 히틀러는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그러한 거대한 독일 민족적 힘으로 모아서 600만의 유대인 대학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인가 놀라웠고, 그를 다시 한번 영화로 목격하면서 그 광기성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집으로 돌아가서 쉰들러 리스트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아우슈비츠 부근 집단수용소의 소장, 나치 친위대 소령 아몬은 실제로 매일 아침마다 수용소가 내려다보이는 저택 발코니에 나와 유대인을 향해 사냥용 소총을 난사했으며 이렇게 죽인 유태인만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근 크라쿠프 지역의 유대인을 수용했던 이 곳에서 한 때 2만명이상의 유대인이 수용돼 있었지만 45년 1월 '해방군' 소련군이 왔을 때는 단 600명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또다시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다. 이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영화에서 본 것이 실제가 아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한사코 무너져 버렸다.이 영화의 거대한 인물인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는 독일인 사업가로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나치스에 협력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때 번 전 재산으로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여 1,200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나치스로부터 구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오스카 쉰들러라는 인물 개인이 수많은 유대인을 살렸지만, 오스카 쉰들러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인간에 대한 정의로움을 가지고, 유대인을 살리고자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접하면서 오스카 자신의 인간적인 감성과 면모를 통해서 그렇게 변화했다는 것이 그나마 인간이 가진 선의 가능성과, 악했던 존재가 선하게 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의 희망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