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도서관학의 아버지, 도서관운동의 아버지로 불리운 문헌정보학자인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은 193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랑가나단은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던 조국을 독립시키는 길은 당시 65%였던 문맹률을 낮추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문맹퇴치운동의 일환으로 사회문화의 진흥과 국민 계도를 겸한 공공도서관운동의 필요성을 제창하였다. Madras University의 도서관 책임자가 된 뒤 도서관학 연구를 위하여 대영박문관도서관에 파견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저명한 도서관학자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다. 그 후 1933년 귀국 후 전인도도서관협회를 결성하고 도서관협회장이 되어 도서관학 연구와 공공도서관운동에 심혈을 쏟았다.그가 도서관학 5법칙을 창안하게 된 동기는 영국 유학중 100여개 도서관을 여행한 후 얻은 자산이었다. 그는 방문한 각 도서관마다 운영방식, 봉사, 건물과 설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발전 수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모든 도서관에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기본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도서관학 5법칙을 만들게 된다.제1법칙 : 도서는 이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Books are for use.)이것은 도서관 장서관리의 궁극적 목적과 의의가 이용에 있으며 당시의 일반적 인식처럼 장서보존과 안전에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장서가 방대하다 할지라도 이용자에게 활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도서는 이용자로 하여금 이용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서는 관리위주에서 봉사위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제2법칙 : 책은 만인을 위해 있는 것이다. (Books are for all.)제2법칙은 도서관의 변혁을 더 진전시키기 위하여 제1법칙을 잇따르고 있다. 제1법칙이 “도서는 보존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라는 개념을 바꾸었다면 제2법칙은 “선택된 소수에게 도서를” 이라는 개념을 확대시킨 것이다. 즉 제1법칙이 책의 편에서 접근했다면 제2법칙은 이용자의 편에서 접근한 것이다. 제2법칙은 새로운 도서관을 건립하고 새로운 도서관을 육성하는데 기여하였다.제3법칙 : 모든 책은 독자에게로.(Every books its readers.)이것은 도서관 봉사를 통하여 독자가 그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킬 책을 찾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열람자가 직접 서가에 접근하여 도서를 자유로이 가려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이용자가 책을 찾을 수 있는 선택도구 즉 완비된 목록 등을 작성하여 비치하고, 초록, 색인집 등 서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제3법칙은 궁극적으로 책은 독자를 위한 것이지 서고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각 도서에 적합한 이용자를 찾아야 한다는 원리이다. 도서는 스스로 이용자의 손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독자와 도서를 접근시켜 주는 일은 사서의 책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3법칙은 도서관 봉사의 중요한 성격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공공서비스의 기준과 도서관의 공공적 역할에 의미를 둔 법칙이다.제4법칙 : 이용자의 시간을 절약하라(Save the time of readers.)이 법칙은 사서가 이용자의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마련하여 최소한 1회라도 도서관을 방문한 이용자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리이다. 즉 제3법칙과 마찬가지로 이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시작한 도서관 봉사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용자가 도서관을 이용할 때 자료의 검색에서부터 대출과 반납,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이용에 있어 이용자에게 가장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목록의 시스템이나 대출 및 반납 절차가 찾기 쉽고 간편해야 하며 서가의 배열도 이용자가 알기 쉽게 안내되어야 하는 것이다.제5법칙 :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이다(A library is a growing organization.)이 법칙은 앞의 4가지 법칙이 도서관의 기능 및 운영과 관리의 특성에 논한 것에 비해 시설로서의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도서관의 계획과 조직화를 좌우하는 기본원칙에 대하여 고려한다. 도서관은 장서량이 늘어나고 직원 및 이용자 수가 증가하며 건물이 커지는 등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이 자라가고 있다. 성장을 멈춘 유기체는 생기를 잃고 소멸한다. 제5법칙은 시설로서의 도서관이 성장하는 유기체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성장하는 유기체는 새로운 물질은 취하고 헌 물질은 버리며 크기를 바꾸고 새로운 모양이 된다. 즉 도서관이 역동적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도서관 경영관리의 사상과 원칙을 제시하였다.이용자중심 사상을 담고 있는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서관실무의 규범이나 봉사원칙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만은 랑가나단의 법칙에 새로운 5법칙을 제시하였으며 문헌정보학이나 직업의 소명의식의 거대한 책임을 맡는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를 바라면서 제시한 신도서관학 5법칙(Five new laws of librarianship)은 다음과 같다.제1법칙 : 도서관은 인류에게 인간애로 봉사한다(Libraries serve humanity.)이 법칙은 라이브러리언십의 지배적인 윤리는 서비스에 있다 라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에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 기대하는 바보다 더 나으려는 바람과 특징에 대한 고려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도서관은 특정 집단에게만 봉사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종, 국가, 지역, 종교에 차별 없이 전 세계 인류에 봉사해야 한다는 보편적 평등성을 강조한 법칙이다.제2법칙 :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모든 형태를 도서관자료로서 존중하라(Respect all form by which knowledge is communicated.)이 법칙은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존중하는데 있다. 미래의 도서관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담은 모든 유형의 용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커뮤니케이션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각각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실제를 연구하도록 한다. 즉 과거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책이라는 인쇄매체가 대표적이었으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전자매체가 다양하게 등장함으로써 여러 형태의 매체들에 저장된 정보 역시 책에 담긴 정보와 동일하게 중요시 여기고 수집매체를 다양화하여 이용자의 모든 정보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언젠가 ‘아일랜드’라는 외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파라다이스로 가기 위해 하루하루 최상의 컨디션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복제인간이었고 그들을 주문한 주인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이식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복제인간들은 자신의 존재와 그 이유를 알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그 영화를 보았을 때는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냥 영화 속에서 나오는 허구의 이야기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미래에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은 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상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최근 황우석 박사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전 세계가 시끄러웠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복제 동물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연극 ‘과학 하는 마음3-발칸동물원’편은 현 시대를 살아가고 앞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생명과학과 인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지금처럼만 간다면 언젠가 인간도 복제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영화에서처럼 복제된 인간도 사고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은 복제품으로만 볼 수 있을까? 또, 복제된 인간들은 단지 소모품일 뿐인가? 이 연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 침팬지는 죽어가도 괜찮은 것인가? 누군가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힌 범인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하는 우리가 공공연하게 살인을 저지를 날이 분명히 올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굉장히 난해하고 머리 아픈 내용이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희생당하는 쪽이 동물이라고 해도 그 생명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과연 우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나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이전시대까지는 물리학이 인류를 위한 가장 중요한 분야였다면 앞으로는 분명 생명공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죽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아주 오랜 시절부터 계속되어 왔다.요즘엔 인공장기를 이식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인공장기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지만 만약 몸의 절반이상이 인공장기로 채워진다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던진다. 윤리적인 입장과 과학적 입장 사이에 끊임없이 계속될,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인 것 같다. 과학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발전시켜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위해 과학은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존엄을 무시하는 과학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의 발달을 막을 수도 없지 않을까? 연극을 보면 연구소에서 일하는 누구보다 유망한 과학생도들도 사소한 일로 고민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누구보다 냉철할 것 같은 사람들도 과학과 생명의 존엄 앞에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과 함께 '신나는 난장판'브로드웨이를 두드리는 한국의 1. 정의'난타(亂打)'란 권투시합의 난타전처럼 마구 두드린다는 뜻이다. '난타'는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드라마 화 한 작품으로써 한국 최초의 Non-Verbal Performance이다. 한국의 사물놀이를 서양식 공연양식에 접목한 이 작품은 대형 주방을 무대로 하여 네 명의 요리사가 등장하여 결혼 피로연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종 주방기구 즉 냄비, 후라이팬, 접시 등을 가지고 사물놀이를 연주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전체적으로 사물놀이의 리듬이 갖고 있는 원시적 폭발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힘과 속도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전반적으로 리듬과 비트로 구성된 작품이면서도 뚜렷한 줄거리와 드라마가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Non-Verbal Performance란 아무런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로만 구성된 장르를 말함)2. 난타의 제작 배경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Non-verbal Performance가 세계 공연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할 무렵, (주)PMC PRODUCTION(환 퍼포먼스)에서는 국내 작품시장의 한계를 안타깝게 여기고, 새로운 형식을 검토하던 중 1996년부터 세계인을 타겟으로 하는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이후, 다양한 소재와 아이디어를 수렴하던 중,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취지 아래 우리 고유의 리듬과 공간을 소재로 하겠다는 기본 틀을 갖게 되었다. "난타"의 전체적인 구성은 사물놀이의 리듬이 갖고 있는 원시적 폭발력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도록 힘과 속도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3. 난타의 특징⑴ Non-Verbal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공연 형태의 한 종류로 우리나라에도 STOMP, TAP OGS등 의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최근 10년간 새롭게 등장한 공연 형태이기에 전형과 모범이라는 것이 없어 오히려 새로운 공연 창출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게 되었다.⑵ 언어 장벽 파괴NANTA는 리듬과 비트 그리고 상황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언어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세계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며, 나라간 민족 간의 문화적 이질감을 탈피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될 것이다.⑶ 전통 리듬우리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는 농악(사물놀이)의 훌륭한 리듬이 있다. 이는 세계 시장으로 다가갈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한국 전통 리듬을 현대적 공연 양식에 접목한 훌륭한 작품이다.⑷ 드라마기존의 Non-Verbal 작품들은 리듬과 비트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단조로움을 주는 경향이 짙음으로 쉽게 그 매력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반면 NANTA는 주방이라는 보편적인 공간을 무대로 설정하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대입시켜 누구라도 신명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⑸ 줄거리주방장을 비롯한 세 명의 요리사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세 명의 요리사들이 야채를 나르고, 냉동육도 옮기고, 주방도구를 정리하는 동안, 얼굴에 심술기가 가득한 지배인이 등장하여 예정에 없던 결혼 피로연을 과제로 던져준다. 요리사들은 오후 6시까지 주문된 모든 음식을 만들어 완벽한 결혼 피로연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매니저의 조카를 데려와 요리기술을 함께 가르치라는 엄명을 하고 사라진다. 요리사들은 지배인의 조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날의 결혼피로연을 준비해야함으로 서두르기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은 저녁 6시!!요리사들은 피로연 음식을 준비해가면서 온갖 실수와 재미를 더해가며 무대는 점차 객석과 하나가 되어간다. 결혼피로연의 하이라이트인 크림 케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은 다가오고, 온갖 아이디어를 모아 마침내 요리를 만들어낸 요리사들은 결혼피로연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그리고 환상적인 결혼 파티가 펼쳐진다.4. 연혁1997.10.10 : 난타 초연 (호암아트홀)1998.3.24 : 스포츠조선 뮤지컬 대상 '특별상' 수상1999.8 : 난타 해외공연 시작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참가)2000.4 : 증자 7억원2000.7.1 : 난타전용극장 개관2000.7.19 : 이희호 여사 난타극장 방문2000.10.12 : 난타 1000회 돌파2000.11.6 : 난타 체험프로그램 시작 (최초 일본 수학여행단 참가)2000.11.24 : 국내최초 공연문화벤처기업 인증획득 (중소기업청)2000.12.14 : 한국관광공사 주최 한국관광대상 수상2000.12.14 : 2001 한국방문의해 & 2002 한일월드컵 기념 서울의 10대 볼거리 선정2000.12.29 : 국회의원이 뽑은 대중문화 & 미디어 상 수상 (연극 뮤지컬 부문)2001.9.4 : 보스톤을 시작으로 북미투어 계약확정(2001-2002 예상수입 400만 불 이상)2001.7.1 : 난타전용극장 개관 1주년 기념2001.10 : 액면분할 (10000원-500원) 및 증자2001.11.15 : 고르바초프 난타극장 방문2001.11.30 : 산업자원부 주최 세계일류상품 선정2001.3.19 : 난타 국내외 총 관람객 100만 명 돌파2002.4.12 : 강남 제2난타전용극장 PMC THEATRE 개관2002.9 : 제14회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메인 테마 참여2002.12 : K-리그 감사패 수상(한국 프로축구연맹)2003.1 : 최초 중국 수학여행단 난타 관람2003.5 :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2003.8 :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행사2003.9 :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뉴 빅토리 극장)5. 문화상품으로써 가지는 가치수업시간에 공부했던 것 처럼 프랑스의 와인이나 우리나라의 김치 같은 그 나라의 문화를 상품화 시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정보화?문화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김치 같은 경우 물론 일본, 중국, 미국 등지로 많은 수출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광주의 김치 마케팅이 투자한 비용에 비해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광주시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광주 김치 브랜드를 만들고 해외 마케팅도 다니고 다방면에 노력해 왔지만 광주를 자주 오가는 나로서도 광주의 김치 브랜드를 처음 들어보았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아무리 문화상품으로써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경제적인 수단과 방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품으로써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처음 이 수업을 들으면서 도대체 문화와 경제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수업의 내용도 어려워서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는 결코 경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문화는 곧 경제와 직결되는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그런 점 때문에 전통을 지키려는 쪽과 이것을 상품화 시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쪽이 대립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화를 판다는 것.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수나 있었을까?몇 년 전 난타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갔었다. 전혀 접해 보지 못한 예술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광 했었고, 그 열기에 비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 속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난타가 잠시 유행처럼 떠올랐다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타는 처음부터 세계무대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이었다.내가 난타를 문화상품으로써 높은 가치를 주고 싶은 이유가 있다. 먼저 첫 번째는 아무래도 세계무대에서 부딪칠 수 있는 언어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사 없는 형태의 예술이기 때문에 억지로 외국어를 연습해서 할 필요도 없고 관중들도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상관없이 그냥 리듬을 즐기면서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사실 나만해도 외국의 뮤지컬을 보고 싶어도 영어를 바로 해석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괜히 돈을 내고 보면서도 불편하다면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예술이라고 해도 가치는 분명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는 누가 와서 본다고 해도 부담 없이 그냥 몸 가는대로 즐길 수 있는 예술인 것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 고유의 전통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우리 고유의 사물놀이 리듬을 토대로 공연이 진행된다. 그리고 옆의 사진에서와 같이 우리의 고유 음식 재료들을 적극 활용하여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고유의 전통을 활용하며 행해지는 예술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공연을 하고 그것이 성공을 한다면 굉장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것이 난타인 것이다.
식민지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울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억압받았던 일제 식민지 시절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 중에는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이 많다. 지금은 식민지배라는 것이 영토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인식적으로는 남아 있는 것 같다. 거대 국가가 선두에 서고 나머지 국가들은 선두 국가를 따라가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최고로 여기며 따라 하기 위해 애쓴다. ‘미국적인 것 = 최고’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를 놓고 누가 더 우월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직접적으로 식민통치를 받는 것만이 식민지배는 아닐 것이다. 이렇듯 한 문화에 대한 선호, 그 문화가 아니면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들이 남아 있는 한 이 시대에서도 식민지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탈식민주의란 억압과 착취를 낳는 지배 이데올리기를 해체 혹은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탈식민주의의 ‘탈’이란 접두어는 ‘~이후에 오는’ 것이란 시간적 의미와 함께 ‘~를 넘어서는’ 극복이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전자의 경우에는 식민주의 유산의 지속성을, 후자의 경우에는 식민주의 유산에서 벗어남을 각각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우리가 말하는 ‘탈’은 예속상태에서 벗어남, 즉 주권수립과 해방,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식의 탈식민화를 의미한다. 탈식민주의는 신식민적 현실 속에서 ‘정신의 탈식민화’를 실천하려는 저항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탈식민주의라는 개념의 과거 식민지 국가의 독립 이후를 지칭하는 역사적 시기로 해석하기 보다는 어떤 구체적인 반식민 혹은 탈식민 투쟁을 수행한 담론적 실천으로 규정할 대 가장 유용해진다. 탈식민주의의 전통은 신식민주의적 국제 관계가 펼쳐지는 현대 무대에서도 여전히 때로는 은밀하게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외형적 독립과 국가건설만으로 식민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신식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각에서 동양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즉 ‘서구의 눈 아래’ 놓인 동양 혹은 비 서구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허구적인 관념의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동양이란 사실상 유럽인들의 머릿속에서 조작된 것이라 에드워드 사이드는 보고 있다. 사이드는 한 국가 내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동양과 서양 사이의 권력 작동방식에 적용했다. 오리엔탈리즘 에서 그는 유럽의 동양 재현행위를 ‘지적 폭력’ 내지는 ‘학살’이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식민통치가 끝났는데도 서구는 상상 속에서 동양은 여전히 서구의 식민지, 서구의 시장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 있다.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하여 표면상 접합하다는 여러 가지의 요청, 관점,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서 동양화된 작품, 연구의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은 서양에 의해-서양의 오리엔탈리스트들에 의해- 가르쳐지고, 연구되고, 관리되고, 판단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자(서양)와 피지배자(동양)의 계급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이 서양보다 약했기 때문에 동양 위를 억누른,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고 그것을 동양이 갖는 서양과의 차이를 ‘약함’에 관련시켜서 무시하고 서양의 관점에서 그것을 파악하고 서양의 생활문화에 동양을 끼워 맞추려 했다고 할 수 있다.사이드는 영국 식민지였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서양에 사는 다른 유색인종들은 대부분 서구문화에 동화되어 서구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백인사회로부터의 인정을 염원한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인으로서의 안락한 삶 대신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동양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보기 드문 지식인이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이 보편적 진리가 아닌 허구적인 관념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이드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그의 특징은 바로 저항정신이었다. 그는 “나를 사로잡은 것은 조화보다는 반대의 정신이었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놓인 팔레스타인들의 자치권 쟁취를 위해 투쟁했고, 이들의 민중봉기를 지지했으며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정면으로 비난했다.이러한 주장은 사이드가 백인이 아닌 억압받고 차별받는 유색인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슬픈 이유 중에 하나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제국주의가 성행하던 시기의 유럽열강들은 자신들은 우성이고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은 야만족이며 열성인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수민족들을 계몽시킨다는 이유로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그들을 바꾸려 신민통치를 하였다. 물론 그 명목 안에 자신들의 실리를 챙기려는 검은 속셈이 담겨져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사이드가 주장하는 서구가 정해놓은 오리엔탈리즘의 정의는 어떻게 보면 가장 거대하고 잘못된 편견 중 하나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지식인이고 손을 쓰는 것은 야만족이라는 인식은 과연 올바른 생각인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은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이 던져진다. “인도인은 단지 인간쓰레기인 반면 백인은 존경받기로 되어 있는 존재”)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러한 생각의 근원은 어디서 생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식민주의가 사물을 바라보는 특정 방식, 즉 세상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이해하는 특정한 양식을 주지시켜 준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 체계는 식민지인에게 영국 식민주의자의 우월하고 문명화된 질서에 순종하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식민주의란 힘 센 국가가 타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옳고 적절하다는 생각을 정당화함으로써 그리고 피 식민지인들에게 열등한 지위를 받아 들에게 함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영속화시키는 이념이다.) 예전과 지금은 방식만 다르지 이러한 식민지배가 분명이 일어나고 있고, 그러한 인식들은 서구 열강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이드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문학연구에서 사이드는 두 가지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나는 주체적?비판적 입장에서 영문학 작품을 읽어내야 하는 필요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텍스트 밖의 세속적 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필요성이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랜 편견이 그 동안 어떻게 학문과 이론으로 굳어져왔는가를 사이드는 나타내준다. 그는 궁극적으로 동서의 동등한 공존과 화합을 주창한다. 다문화주의 시대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간 제국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소산인 ‘문화의 겹치는 영역’ 발견과, 그것을 통한 동서의 상호이해와 동등한 공존이라는 것이다.
유년 회상 또는 그리움의 정조김광균의 1926년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중외일보 에 시 ?가신 누님?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그의 본격적인 시단 활동은 1936년에 동인에 가담하고, 다시 1937년 동인에 참여함으로써 비롯되었다. 1938년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 ?설야?는 그가 시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이후 그는 시집 와사등 (1939)을 비롯하여 기항지 (1947), 황혼가 (1959) 등 세 권의 시집과 시선집 와사등 (1977)을 묶어낸 바 있다. 김광균의 시는 상투적 비애의 정조로 떨어짐으로써 성공적인 이미지 형성과 지적 초극을 와해)시킨 시이거나 전대의 감상의 잔영을 달피하지 못한 리리시즘의 시)정도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적 자의식의 문제를 중심항으로 놓고 김광균의 문학적 성과를 연구할 때 그의 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드러내게 된다.김광균의 시에는 유년 회상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정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먼저 ?교사의 오후?는 등의 낯익은 소재들이 잃어버린 소년 시절의 꿈을 환기해 준다.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행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어두운 교실 검은 칠판엔/날개 달린 ?돼지?가 그려져 있었다”라는 구절이다. 이 해학적인 구절은 이 시 속에 아련히 들어있는 소년 시절의 비애를 골계로써 차단해 시의 건강미를 더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는 투명한 이미지의 조형을 통해서 정신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고자 하는 초기 이미지즘의 한 반영일 수도 있다. ?교사의 오후? 풍경을 통해서 잃어버린 학창 시절의 소중한 꿈을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시 ?언덕?은 소년 시절의 애틋한 회상과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 시에는 먼저 소년 시절의 지향 없는 갈망과 그리움이 표출되어 있다. 언덕에 올라 하늘을 향해 나발을 부는 행위가 그 상징이다. 여기에서 “언덕에 올라”와 “하늘을 향해” “나발을 불었다”라는 세 사건의 연결은 젊은 날의 솟구쳐 오르는 열정과 상승의지를 표 감각적인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시 ?해바라기의 감상?은 그의 초기시의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제목 ?해바라기의 감상?은 그의 시 세계가 원초적인 면에서 이율배반 또는 모순의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는 향일성의 건강한 생리를 표상하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서는 이라는 부정적 감각의 시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의 요소가 연결된 것은 시인의 세계관이 비관적 현실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세 연으로 된 이 시는 먼저 세계 내면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해바라기의 꽃잎 속에 하나의 세계, 즉 내면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상상력의 공간이면서 정신의 우주에 해당한다. 해바라기 꽃잎을 한 세계로 설정하여 내면 공간화하고, 이것을 다시 시간의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상상력의 역동적인 운동이 전개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창조적 결합이 성취된 것이다.따라서 여기에는 과거적 상상력이 작용하게 된다. 그것은 둘째 연에서 “보랏빛 들길 위에 황혼이 굴러내리면/시냇가에 갈대밭이 머리를 흩트리고 느껴 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연에서는 과 의 이미지로서 시적 퍼스나의 외롭고 서글픈 내면 풍경을 드러낸다. 이러한 비관적 세계 인식의 근원은 셋째 연에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무덤”이 상징하는 뿌리 깊은 상실의식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는 복합적 심상은 시적 퍼스나의 세계 인식이 근원적인 면에서 비관적인 것에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이렇게 볼 때 김광균의 시는 근원에 있어서 불연속적 세계관 또는 모순의 세계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것은 이후의 시에도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 또 한 가지 이 시에는 김광균 시를 관류하는 감각적 특성,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등의 시각적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 수 있다. 이것은 신뢰할 수 없는 인생과 불안한 현실에서 확실하게 시각적 형상을 확보함으로써 불안한 실존을 지아니라 인간적 자연이란 점, 그리고 동일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통 자연관으로 볼 수도 있다.) 눈은 “먼-곳의 그리운 소식”으로 비유되고, 이라는 시각 형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 어두운 이미지에 대조되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가 상실감 또는 부재의 현실 인식으로 인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연원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라는 관형어가 암시하듯이 쉽게 도달하거나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연에서 또는 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과 은 다 같이 현실의 어둠 또는 추위를 이겨 내게 하는 힘의 상징이다. 그러나 처마 긑의 호롱불은 여위어만 갈 뿐이다. 여기에서 으로서의 눈은 다시 로 비유적 전이를 이룬다. 이것은 그리움의 정조가 부재의 현실을 새삼 인식하는 데서 서글픔의 상태로 변모함을 의미한다.따라서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라는 구절처럼 비애에 잠기게 되고 다시 한번 비애의 차단을 시도하게 된다. “마음 허공에 등불을 키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위는 비애의 차단을 통해서 어둠과 추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따뜻함에 대한 소망과 열린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실상 이에서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릴” 수 있게 되며 아울러 서글픔으로서의 눈이 다시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는 낭만적인 시청각적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시는 다시 다음 연에서 상투적인 비애의 정조로 떨어짐으로써 앞에서 성취한 성공적인 이미지 형성과 지적 초극을 와해시키고 만다. 눈이 “잃어진 추억의 조각”으로 비유됨으로써 “싸늘한 추회라는 감상의 영역으로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계 내면 공간의 조형 능력과 공감각적 이미지의 신선한 창출이 좀더 팽팽한 삶의 탄력과 긴장으로 심화, 확대되지 못하고 심정적인 감상의 차원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연의 처리 역시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은 과의 감정적인 등가물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이 ‘무시학 시대의 기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시이기 때문에 시사적 의의를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감각적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에 걸려 있는 와사등에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로 투사하는 것은 김광균의 순수한 주관적 태도인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첫 연에서부터 나타난다. 만으로도 우리는 차가운 가스등만이 빛나는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의 가로 풍경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그것이 이미지만으로써가 아닌 , 과 같이 서정적 관념과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도 이미지의 예리한 제시 그 자체보다도 그 이미지가 정서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둘째 연에는 비교적 이미지 제시에 충실한 듯한 느낌을 준다. 저녁에 놀이 지는 모습을 새들이 날개를 접는 이미지로 표현한다든지, 고층 빌딩 즐비한 풍경을 보석으로 비유한다든지, 도회의 야경을 무성한 잡초의 헝클어진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 따위가 이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시의 목표가 그러한 도회의 저녁 풍경 그 자체의 묘사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라는 관념의 제시에 놓여지는 것으로 이해된다.따라서 셋째 연에서는 감정 표출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이 환기하는 촉각과 시각이 함께 결합된 공감각적 심상의 제시나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소리”라는 시각적 내지 청각적 심상 형성에 이 연의 비중이 놓여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이 연은 과 가 환기하는 낯설음과 눈물겨움을 말하고자 하는 데 핵심이 놓여진다.넷째 연에서도 마찬가지로 “공허한 군중의 행렬/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등의 세 행 모두가 감정의 드러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군중 속의 고독이 빚어내는 공허함이며 단독자로서의 비애이고, 어둠이 환기하는 불안 의식의 표출이기 때문이다.마지막이미지로서 선명하게 a사하고 있다.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는 시 전체의 감각이 후각과 시각 등 공감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1연에서 “전신주 하나하나 기우러지고/먼-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라는 동작적 이미지에는 황혼에서 밤으로 옮겨가는 모습, 즉 시간적 흐름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라는 표현 속에는 공간 심상이 시간 심상으로 전이하는 모습이 담겨짐으로써 하나의 창조적 심상이 뚜렷이 부각된다.2연에서는 다시 이 전이되는 심상의 한 순간이 예리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랏빛 색기 위에/마구 칠한 한다발 장미”가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앞 연에서의 동작적 이미지가 정지적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황혼의 순간적 인상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특히 과 의 호응은 시의 회화성을 고조시키게 된다. 아울러 과 의 결합 속에는 근육 감각, 기관 감각, 위장 감각, 시청각적 이미지 등이 혼합되어 가을 들판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이 시의 핵심은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놓여진다. 이라는 회화적 풍경을 “부을면 꺼질 듯이”라는 비유로써 감각화 하는 것이다. 일모의 애잔한 정경을 라는 위기감과 이라는 고독감으로 형상화하게 되는 것이다.이렇게 볼 때 이 시는 ?뎃상?이라는 제목에 알맞게 이미지만으로써 가을 저녁 어둠이 짙어가는 황혼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주일서정?이 시는 비연시로 구성되어 있지만 대략 네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3행까지를 1연, 7행까지를 2연, 11행까지를 3연, 16행까지를 4연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첫 연에서는 낙엽의 이미지가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포-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로 비유되어 있으며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 그만큼 허망감과 쓸쓸함을 자아낸다는 말이다. 가을의 정서가 낙엽으로 표상되고 허망함과 쓸쓸함으로 표출된 것이다. 낙엽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로 의미화한 시인은 공장의 지붕이 흰 이빨을 드러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