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문화 예술의 특징1. 첫 번째 특징은 공산주의적 당성이다.문화는 자체내의 자율성에 의해 변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령도’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당의 령도’에 부응하지 않는 문화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한 문화의 일반적 특성은 첫째로 ‘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의 기본 특성이 되는 ‘당성’이란 다름아니라 ‘당의 유일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다.2. 두 번째 특징은 ‘로동계급성’이다.문화예술의 특성으로 ‘계급성’을 주장하는 것은 ‘로등계급’이 역사의 주인이며 인류의 역사는 부르죠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사회주의의 세계관과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문화는 ‘반동적 부르죠아’의 문화라고 보며, 유일하게 ‘로등계급’의 문화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3. 세 번째 특징은 ‘인민성’이다.사회주의의 문화는 ‘근로 인민대중’에게 ‘복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북한의 문화예술에서 ‘인민성’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민성’에 의하여 인민들에게 ‘복무’한다는 것은 대중의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민들이 창조된 문화를 향유하고 그 문화가 인민에 대한 사상교육을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인민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문화예술에서의 ‘인민성’의 확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분야별 실태와 변화양상⑴ 문학북한의 문학은 주민들에게 혁명적 낙관주의와 집단주의적 영웅주의를 심어주고 혁명 발전의 단계에 맞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유일사상으로 무장시키며 온 사회의 혁명화, 로동계급화에 이바지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이라고 불리는 , , 등 항일혁명투쟁 시기에 연극으로 공연했다는 명작들을 다시 장편소설로 개작하여 사상예술성이 구현된 작품의 본보기로 제시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는 3대혁명 기수들과 3대혁명 소조원, 숨은 영웅들을 비롯한 각 분약의 새로운 인간상을 그려내고자 하였다.1980년대부터는 북한문학의 새로운 소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기일성 가계를 소재로 일방적 충성만 촉구하던 문학이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자 생활 속의 소재를 찾는 등 소재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1980년대 후반부터는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과 관련된소재나 남녀간의 애정을 배경으로 하는 등이 대표작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1990년대 이후에는 추모문학, 단군문학, 태양민족문학, 그리고 선군혁명문학 등 4개의 새로운 문학개념이 나타났으며 2000년에는 선군혁명문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특정한 문학작품을 일컫기보다는 수령현상문학을 잇는 개념으로서, 김정일 총비서의 선국혁명업적을 문학작품에 방영하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개인의 일상성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과 유머 등 간단한 읽을거리는 물론 성애를 소재로 하는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⑵ 미술북한에서는 전통적 미술을 배척하면서 김일성이 주도하였다는 항일 혁명 미술을 참된 미술로 편가한다. 구체적으로, 전통미술의 착취계급의 사상과 취미를 반영하였을 뿐, 계급투쟁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반면, 항일혁명미술은 당성, 계급성, 인민성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참다운 인민적 미술이 되었다는 것이다.북한의 미술을 “미술을 인민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참다운 인민적인 미술로 되어야 하며 당과 혁명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혁명적 미술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미술에는 기념비 미술이라는 명칭의 목적적 작품이 많다. 노동자들의 노동하는 장면이나, 농민들의 벼이삭 줍는 장면들을 미소 짓는 모습으로 표현하여 작품으로도 만들고 있다.또한 북한에는 미술의 재료와 기법에 따라 화학, 조각, 공예 등으로 나뉘는데 북한의 회화는 조선화, 유화, 벽화, 출판화 등을 포함한다. 이중 조선화는 동양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채색과 서양화적 기법을 혼합한 독특한 모슴을 보여주고 있고, 조각에는 환각, 부각, 투각 등이 포함된다. 환각 작품의 대표적인 것들은 동상이라고한다. 예술적인 환성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에 조각된 군상은 사실주의적 이면서도 분노와 비탄, 투쟁의식이 선명이 들어난 작품이라고 선전한다. 이 밖에 조개껍질을 잉숑한 ‘만년화’라는 독특한 공예 작품도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미술의 변화가 크지는 않다. 아직도 김일성 부자의 관련된 조형을 만드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⑶ 영화 및 연극북한에서는 다른 어느 예술장르보다 영화를 중요시한다. ‘조선중앙년감’에서 책을 별도로 출간할 정도로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영화가 대중을 상대로 호소력과 전파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김일성 부자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적인 영화에 대한 취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김정일 위원장은 “영화는 정치사상 교양의 힘있는 수단이며 문화정서 교양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근로자들에 대한 사상교양도 하고 정서교양도 하여야 합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부분의 북한영화는 긍정전형과 부정전형의 대립에서 긍정전형이 승리하는 구도로서, 악역은 미군, 일제, 반당분자, 지주, 자본가 등으로 설정되어있다.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긍정전형을 통한 강화’를 추구하는 내용이 강화되어 오류를 범한 사람이 긍정적 주인공의 감화로 뉘우쳐 오류를 시정하는 스토리도 주요 테마로 부상하였다. 영화는 1960년대 천리마운도 이후 대형화 되었는데 20편까지 이어지는 대작 시리즈가 제작되는 등 방대한 작품제작에 치우쳐졌다.그렇지만 대작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해외영화제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자 1984년 이후 규모를 줄이고 서정성과 사실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1987년 제작된 도 기존 북한영화의 틀을 깨뜨리고 북한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던 간부들의 부정부패, 권위주의의 토대와 성분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고 이러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여 대중들의 지지가 높았다고한다. 이 시기 즈음에 이라는 작품이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도 그러한 변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체제유지를 위한 자주성의 확보 및 자본주의사회의 부패상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덕정치, 광폭정치를 괴사하기 위해 다부작 영화인 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2003녀도의 대표작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몇 년간 나온 영화들 가운데 제일 잘 만든 영화”라고 극찬한 이 있다. 영화는 미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 전사한 아버지의 자녀와 그 주변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렇듯 북한의 영화는 아직도 선군혁명문학예술론에 부응하여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반영하는 작품을 주로 내놓고 있으며, 관심을 끈 작품은 대체로 군사관련 영화이다.지금까지 북한에서는 연극이 큰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그 이유는 북한의 연극인들이 연극보다는 가극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었다. 무용과 노래 등을 곁들인 일종의 오페레타 성향을 띠고 있는 북한 연극은 1980년대에 들어 대작 위주로 창작되고 있는데 , , , 등 문학작품들을 대표작으로 만들었다. 이들 연극들은 모두가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른바 ‘혁명연극’으로서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새롭게 각색된 것이다.1978년 6월 14일 김정일이 연극 을 대규모 무대에서 음악과 무용 등을 가미하여 새롭게 창작하도록 지시한 이후 성황당식 혁명연극의 발전을 보게 됨에 따라 이후 공연된 , 등의 연극들은 기존의 연극내용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와 음악, 무용을 가미함과 동시에 주체와 사상을 철저히 살리고 그것을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에 기초하여 폭넓게 심화시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 주민들은 단막극이나 경희극 등 대중의 정서에 맞는 코메디물의 연극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매일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에게 백 천 마디 훈계나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다 했다. 소년의 아버지의 무쇠로 된 정이 아닌 스님의 말없는 시중이 소년에겐 감동 안겨주었던 것이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 어쩌면 무소유라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의미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억지스러움 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 에서부터 우러나는 자연스러움 말이다. 책 속의 탁상 시계를 주제로 하고 쓴 글의 내용을 보면, 도둑이 훔쳐간 탁상 시계를 사러 간 가계에서 그 도둑과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천 원을 주고 자신의 시계를 다시 사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데. 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책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등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아주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모두가 그런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밉고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이 넓은 세상에서 나와 어떤 인연의 끈으로 묶여 만나게 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된다. 나는 불교를 믿지 않아서 전생이란 의미를 믿지 않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인연의 끈을 느끼곤 한다. 나에게 헤로운 사람도 이로운 사람도 뗄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을…나는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서 많을 것을 느끼고 동감했지만 내 생활들을 되돌려 생각해보니 법정 스님께서 살아오신 삶은 닮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끓임 없이 노력하고 경쟁한다. 물론 법정 자신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심이나 꿈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무소유라는 깨닳음을 통해서 본래무일물의 삶을 살아가시려고 노력한다.
◈ 목 차 ◈Ⅰ 서론1. 조사목적2. 크리스피 크림이란 ?Ⅱ 본론1. 환경분석(상황분석)2. SWOT 분석3. STP 분석4. MARKETING MIX (4P전략)Ⅲ 결론1. 결과의 종합Ⅰ 서론1. 조사목적전세계가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서면서 WTO와 같은global한 기구가 존재하면서 세계가 무한경쟁체제로 들어서고 있는 추세이다.이러한 무한경쟁체제로 인해 기업이 곧 국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의 힘과 위치는 점차 강해지고 높아지고 있다.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전에 기업중심의 생산, 판매방식에서 소비자 중심의 생산, 판매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오늘날에는 고객만족이 사회 전반적인 Trend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이다.기업은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이며 고객만족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하여 계속적인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기업이 고객에게 만족,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마케팅의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그러므로 기업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여야 하며 또한 그 전략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사회에 발 맞추어 나가기 위하여 크리스피 크림의 도넛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전략을 세웠다.그럼 지금부터 크리스피 크림에 대하여 마케팅 전략을 세워보고 크리스피 크림이 앞으로의 한국 시장에서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알아보자.2. 크리스피 크림이란크리스피 크림은 1937년 미국의 노스캘로라이나주에서'버논 루돌프' 라는 인물에 의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버논 루돌프는 프랑스의 한 요리사로부터 크리스피 크림의 제조법을 전수 받았으며 초기에는 지역 식료품점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판매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람들은 매장앞에 서서 따뜻한 도넛을 살 수 있는지 물어 보기 시작하였고, 루돌프는 매장 벽에 구멍을 뚫어서 고객들에게 직접 따뜻한 오리지날 글레이즈드 도넛을 판매하게 되었다. 도넛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항상 맛있는 도넛을 생산해 냈지만, 그 맛에 있어서 일관성이 떨어짐을 인식한 루돌프는 자체적인 믹스 공장을 세우고 유통 시스템을 만들어서 각 크리스피 크림 .(2) 고객분석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Life Style의 서구화로 인해 입맛, 생활패턴 등의 식생활들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도넛 시장은 이러한 Life Style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에 맛좋은 식사를 대접하는 단골손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침 식사 시간이나 점심 식사 시간이 짧은 수 밖에 없는 젊은 층의 직장인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도넛이외에도 많은 패스트푸드 음식들이 짧은 시간에 간단하고 맛있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또한, 아직은 미성숙한 Take-Out문화를 많은 고객들이 추구하고 있는데, 스타벅스를 비롯한 여러 업체들의 Take-Out문화를 보았을때 현재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며, 크리스피 크림 또한 Take-Out문화가 성장하고 있으며, Take-Out을 추구하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더 Take-Out문화를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여진다.위에서 말한 Life Style의 서구화로 인해서 최근에는 Well-being Digt 열풍이 연령대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도넛 한 개당의 칼로리는 평균적으로 200Kcal ~ 250Kcal 인데 보통 사람들은 도넛을 한 개만 먹고 마는 경우는 거기 때문에 한사람이 평균 하루에 도넛을 5개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최소 한 번의 식사에 1000Kcal를 섭취하는 것이 된다. 네티즌들의 글에서 Well-being Digt열풍으로 칼로리를 신경쓰는 사람들은 엄청 소량의 도넛을 섭취하거나, 감질나게 음식을 섭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위하여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도넛도 담배 끊듯 먹지 않는 의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Well-being Digt열풍에 대한 대처법으로 여러 식품업체에서는 다이어트 식품을 고안해 내서 판매하고 있으며, Well-being Digt열풍에 맞서서 크리스피 크림에서도 역시 맛이나 가격은 유지하면서 저칼로리의 도넛을 생산해 내야 한다.그리고 현재 지속되는 경기침에 여념이 없다. 즉, 이미 도넛은 던킨도너츠라고 카테고리화함을 다시 커피와 도넛은 던킨 도너츠라고 카테고리화 하려함이다.2. SWOT분석강점(S)약점(W)유통업(프렌차이즈) 경험이 많음매니아층 확보제정적 안정신선도(맛이 변질 되기가 어려움)제조-기술-맛믿음(제조되는 과정을 소비자가 볼 수 있는AM로 믿음을 줄수 있음)낮은 인지도특별히 없는 광고적은 매장(현 다섯 개 매장오픈)경쟁업체보다 제품수가 적음기회(O)위협(T)Life Style의 서구화입맛도 시대에 따라 변화적은 동일 사업제품 경쟁업체잠재 도넛 시장아시아 최초로 한국으로 사업진출Well-being Digt 열풍경기 침체잠재경쟁 등장너무 미국적(반미 감정고조)〓 SWOT분석표 〓(1) 강점(Strength)크리스피 크림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처음 설립된 이후 미국 및 영국 캐나다 등 5개국에 4백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만큼 큰 회사로 재정과 유통에서 튼튼한 회사임을 자부한다. 그리고 (주)롯데와 손을 잡으므로써 롯데의 국 내의 유통과 외식업계의 많은 노하우를 축척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한층 업그레이드 된 유통망을 우리 나라에서 가지게 된다.크리스피 크림은 이미 미국 및 다른 선진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학생이나 출장을 다녀온 젊은 직장인층을 주축으로 한 매니아 층이 생기고 있다. 또 이 매니아층의 수가 적지 않아서 입소문으로 크리스피 크림에 대한 홍보효과도 적지 않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던킨 보다는 크리스피 크림을 먹는다고 한다. 영화 뷰티샵이나 샤크를 보더라도 크리스피 크림이 나온다. 영화는 대중이 공감하는 것을 연출하기 마련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미국에서는 크리스크림이 더 대중적인 도넛이라고 할 수 있다.매장을 찾아가 보면 매장을 볼 수 있도록 매장이 오픈형으로 되어 있다. 가게안에서 제조공정을 볼 수 있도록 설계 되어있는 오픈형이다. 이 개방형 인테리어로 인해 제조공장을 소비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소비자들의 후각과 시각에 자극을 주어 넛과 간단한 음료를 간단한 아침식사 대신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또 많은 외국 문화의 유입으로 우리들의 식생활을 조금씩 바꿔 놓아서 지금은 많이 서구화된 편이라 도넛이라는 생소하지 않은 음식을 받아 들이기도 쉽고 다른 외국의 음식에 비해 가격도 많이 비싸지 한번 쯤은 손 쉽게 먹어볼 수 있다.또 12개를 한 다스로 벤딩을 하여 한 다스를 구입 시 가격을 하락하여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전략도 쓰고 있다.(4) 위협(Threats)사실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은 도넛을 간식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밥을 더 선호하고 경제적 여건이 될 때 도넛을 사먹는다 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경제가 아직은 침체기에 있는 시점을 고려해 본다면 간식으로 취급하는 도넛을 위해 돈을 지급하는 사람들은 경기가 점점 나빠 질 수 록 도넛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웰빙이 사회의 전반적인 트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자신에 몸에 맞춘 식단과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선호한다. 이러한 웰빙족들은 패스트 푸드에 속하는 도넛을 먹기 꺼려한다. 그리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웰빙족들이 늘어나면 늘어 날 수 록 그만큼 도넛에 대한 소비는 줄어드는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와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설탕이 많이 들어간 고열량의 도넛보다는 집에서 한 건강한 식탁을 즐기려는 생각이 늘어나는 추세다.3. STP분석(1) 시장세분화(Segmentation)도넛은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는 식사 대용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군것질 용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넛은 서구에서 수입되어온 음식이기 때문에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도넛을 인식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도넛도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신속도나 신선도등의 객관적인 면도 많이 갖고 있지만 맛이라는 주관적인면 또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도넛은 앞에서 말한봐와 같이 고연령층에는 뚜렷하게 인식되어 있지 않은 음식상품으로 젊은층들이 주고객을 이루고 있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던킨도넛처럼 활발한 광고촉진 전략등을 이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광고 효과가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객들의 인지도뿐만 아니라 인식정도를 보아도 크리스피 크림은 널리 알려져있지 않다.이러한 크리스피 크림을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업체(던킨도넛)과는 다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으로 생각해 낸것이 바로 Hot Doughnuts 이다. 다른 도넛업체들을 보면 대부분이 본사에서 가져온 제료와 식품을 그대로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맛을 선사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넛의 신선함이나 따뜻함을 그대로 판매해주고 있는 업체는 크리스피 크림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크리스피 크림은 각 매장당 도넛의 생산기계를 설치하여 고객들이 볼 수 있는 오픈 형 주방에서 본사에서 가져온 제료로 갓 구워낸 따뜻하고 신선한 도넛을 판매함으로써 고객으로 하여금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고 맛이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선함을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현재 크리스피 크림은 경쟁사(던킨도넛)보다는 낮은 인지도와 높은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높은 신선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선도를 강점으로 광고 , 홍보하여 점차 고객들을 유치하고 인지도를 넓혀 나아가야 한다.4. MARKETING MIX (4P전략)(1) 상품(Product)상품을 생산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을 분석하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날에 소비자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하며 다양한 개성이나 취향만큼 입맛 또한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소비자 충족을 위해서 도넛 역시 기존의 15개의 종류에서 20~30개 정도로 늘려서 다양해지는 소비자 기호에 맞게 맞추어 나가야 한다.도넛의 생산과정에서 도넛의 Holl을 만들어 남는 부분으로 작은 도넛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Simple 도넛을 만들어 손 쉽게 시식할 수 있도록하게 하여 크리스피 크림을 맛을 적극 홍보한다.또한 도넛의 만든 시간을 1, 2차로 나누어 1차로 생산된 도넛을 팔다가 된다.
기업의 가치를 100으로 놓았을 때 CEO의 가치는 99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만큼 기업에서 CEO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에서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하는 것 역시 CEO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CEO 즉, 사장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거론되는 악덕 경영인이나 TV드라마에서의 호사스러운 사무실과 업무 지시나 하고 접대나 하는 그런 사장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인들은 CEO를 부도덕하고 탐욕스런 사람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CEO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CEO는 그들과는 전혀 다르다.CEO의 자리는 외롭고 고독하고 어려운 자리이다. 막중한 업무와 의사결정, 이해 관계자와의 갈등, 신제품 신시장에 대한 조사, 자금 계획 수립 및 자금 동원 등 CEO의 업무량은 매우과중하다. CEO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CEO들의 모습은 오리가 평화롭게 물위에 떠 있기 위해 물 아래에서 미친 듯이 발을 놀려야 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치열한 경쟁 속에서 유능한 CEO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 창조성, 사람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CEO는 열성적이고, 뛰어난 영감을 가져야 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을 줄 알아야 한다. 또 친밀하고 창의적이며 윤리적인 귀감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이렇듯 CEO의 역량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을 대표하는 일곱명의 CEO에 대한 책을 읽고 그 중에서 제일 큰 감흥을 얻었던 샘 월턴에 대한 내용을 적어보고자 한다.2002년 에서 선정한 세계 400대 부호들의 이름을 훑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로 인정받는 사람들 중 다섯 사람이 모두 같은 성씨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서 혹은 출생에 의해서 서로 친척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때 지방의 여러 가게들을 돌아다녔던 경험이 촉매가 되어 고객의 입장에서 소매업이란 어떤 것인지 어렴풋 알게 되었다. 샘 월튼은 첫 번째 자기 점포를 연 후에도(1945년) 계속 여러 상점들을 찾아다녔다. 월튼의 이러한 노력은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당시 소매업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의 조류를 파악하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월튼은 끊임없이 제품을 보강하고 상품 진열 방식을 바꿨다. 그의 초기 상점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매업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1962년 K마트, 울코(Woolco), 타겟(Target) 등이 시장에 나왔을 때, 월튼은 월마트 1호점을 개장했다. 당시 할인업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고, 월튼은 그 변화의 주역이고 싶었다. 월마트의 전임 CEO인 데이비드 글래스는 “월튼은 매일같이 무언가를 개선시키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월튼의 신조는 철학적인 입장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조를 매이같이 생활에 옮겨 실천했다. 그의 초창기 시절의 상점은 경쟁자들에 비해 뛰어난 구석이 별로 없었다. 월튼도 나중에 이점을 시인했다. 그러나 40년후인 2002년 월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월튼의 철학은 굉장히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하며 간단명료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하기도 좋고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샘 월튼이 소매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매우 우연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J. C. Penny에 월 75달러를 받는 수습사원으로 취직했다. 나중에 돈을 빌려 첫 번째 가게를 열었는데, 그것이 알칸시스의 뉴포트에서 시작한 벤 프랭클린 5 and 10 할인점이었다. 당시 샘의 가장 큰 경쟁자는 스털링(Sterling) 이었는데, 벤 프랭클린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실적은 두 배나 더 높았다. 월튼은 많은 시간을 스털링 상점에서 보냈다. 그는 상품 진열을 연구하고 가격을 비교했다. 물론, 상점 주게 분풀이 대상이 될까봐 두려워 한 탓이었다. 그래서 월튼은 그 지역을 벗어나서 미주리와 테네시까지 가서 가능한 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절약한 돈을 고객에게 돌려주었다. 그리하여 상점의 판매량은 점점 증가했다. 그러나 5년 후, 그는 프랭클린 상점에 대한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비즈니스 인생에서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두 번째 가게를 개점했다. 이 초기 상점들을 오늘날의 월마트와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당시의 상점들은 고전적인 잡화점에 가까웠다. 고객이 셀프로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점원이 청소용품에서부터 주방용품,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일인이 고객의 물품 구입을 돕는 시스템이었다.그러나 1960년대 초, 새로운 셀프 서비스 소매점 모델이 급부상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월튼도 이러한 변화를 느꼈다. 그리고 셀프 서비스 상점에 대해 배우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상점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서 시스템을 배워왔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는 법이 없었다. 배운 것은 즉시 모방하고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샘의 아내인 헬렌은 월튼의 회고록인 에서 샘의 직업 습관은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아니하고 경쟁적으로 행동했고 상대편 가게의 가격, 진열 방법을 눈여겨보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예의 주시했다. 언제나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골몰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월튼에 관한 무용담의 핵심이다. 월튼은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그렇지 않았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젊은 샘 월튼은 메모지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경쟁자들에게서 배운 것을 자신의 상점에 적용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는 토요일마다 소집되는 관리자 회의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관리자들이 따라 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할인업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이 자신이 아니 그리고 월튼은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줄 것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최초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여러 해 동안 인정을 받지 못했다. 글래스는 “월튼의 베스트 아이디어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특히 고객과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더 필요한지, 어떻게 문제를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라고 말했다. 월튼은 월마트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점 종업원들 및 고객과의 접촉이라고 말했다.월마트를 처음 만들 때 월튼은 소매업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겠다는 거창한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경쟁자들을 피해 멀리 달아날 구실을 만들다 보니, 결국 이러한 시스템이 생겨났을 뿐이다. 월마트를 만들기 전에 그가 진정한 의미의 할인점을 운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할인업계의 게임 규칙을 간파하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면 할수록, 수익은 더 많아진다는 할인업계의 모순적인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규칙을 실험을 통해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끊임없이 물품과 가격을 재조정하는 실험을 지속하는 것이 성공의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했다.월튼은 자신의 비즈니스 방식이 꽤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차렸다. 예전의 고객들은 단골 점포를 한 군데 정해놓고 이용했지만 지금의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을 따라 어디든지 간다는 것이다. 월마트 2호점을 개점했을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샘 월튼의 통찰이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월마트는 알칸사스의 해리슨에 매장을 하나 더 개장하려고 했다. 약간의 부유층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는 스털링이라는 할인점이 이미 들어서 있었고, 월마트와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당시 매점의 개장은 아주 큰 이벤트였다. 아이들은 주차장에서 공을 멀리 따돌릴 수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성과였다.월마트의 성공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샘 월튼의 매장 위치 선정 전략이었다. 월튼은 매장 부지로 규모가 작은 도시만을 고집했다. 도시가 너무 작아서 그 도시 인구로는 그 매장을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K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점들은 할인점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역인구를 5만 명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월마트는 첫 번째 매장을 인구 8천 명의 작은 도시에 세웠다. 소도시만을 고집하는 월마트의 전략은 초기부터 확고하게 이어졌다. 월튼의 아내 헬렌이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비즈니스는 운이 따라 줘야 하는데 월마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헬렌의 단순한 기호에서 시작했던 일이 나중에는 선견지명이 있는 전략이 되었다. 월마트의 소도시 전략은 월마트 창립 초기의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 이 전략 덕분에 월마트는 경쟁이 심한 시장에 뛰어 들기 전에 자신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월마트의 소도시 전략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사실 소도시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급성장의 계기는 경쟁이었는데 그러한 경쟁을 할 수 있는데 상대가 없었던 것이 이 전략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또한, 월마트 때문에 소도시의 많은 소매점들이 문을 닫는다고 노스웨스턴 대학의 필립 코틀러가 꼬집었다. 그러나 월마트의 전임 CEO였던 데이비드 글래스는 월마트가 그 이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화하지 못하고, 8시에 문을 열고 5시에 문을 닫으려 했고, 주말에는 점포 문을 열고 싶지 않았고, 물건을 사러오는 고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망한 것이다.”매장의 위치 선정 및 저렴한 가격 요인이 월튼 모델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판매의 개념도 간과 할 수 없다. 샘 월튼은 내심 자기 자신은 장사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월했다.
⒧ 개요① 김기문사장- 학력 : 충북대학교 축산학 중퇴고려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국제디자인 대학원 대학교 뉴비젼 과정 (디자인혁신 전략과정)세계경영연구원 최고경영자과정- 경력 : 1980.8 ~ 1982.9 SAPERI Co.Ltd 근무1982.9 ~ 1987.12 솔로몬시계공업 영업이사1988.4 ~ 로만손 대표이사 사장1998.2 ~ 제7대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1998.10 ~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2000.11 ~ 중소기업청 중소기업분야 신지식인 선정2003.8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2004.3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수상내역 :1995 세계화 고객만족부문 생산성 대상1995 올해의 시계인1998 대통령 표창 (중소기업유공)1999 우수산업디자인상 (6년연속)2001 제38회 무역의 날 철탑산업훈장2003 제18회 신산업경영대상 관리대상 (영업부문)출처 - http://people.naver.com/search/people_detail.nhn?id=9672② A사의 연혁1988.04 주식회사 로만손 법인설립(자본금 5천만원)1988.07 OEM방식 수출 개시1989.05 DUBAI한국 우수 상품 전시회 최초 참가1989.09 ROMANSON 상표로 중동지역 수출개시1989.11 미주지역 수출개시1990.11 제 27회 무역의 날 1백만 달러 수출탑 수상-상공부1991.11 무역진흥유공업체 표창-상공부1992.08 유망 수출 중소기업 수상-무역진흥 공사1992.11 제 29회 무역의 날 5백만 달러 수출탑 수상-상공부1994.04 전품목 품질보증 Q마크 획득-한국전기전자시험연구소1995.05 생산성 향상 우수기업 지정, 세계화 및 고객만족 부문 생산성 대상 수상-통상산업부1995.05 제 1회 한 로만손 국제 피아노 콩쿨 대회1996.11 제 33회 무역의 날 1천만 달러 수출탑 수상-통상산업부1996.12 제 2회 세계화 우수사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대한무역진흥공사1997.07 '97경향신문 히강한 시계그룹을 형성하고 있었기때문.또한 오리엔트가 오랫동안 지배하다시피 시계 유통 점들을 장악하고 있었음.- 상위 4개사의 시장 지분율이 82%(N-firm ratio). 따라서 신생 로만손에게는 국내 시계시장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었음. 때문에 로만손은 국내시장의 한계를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릴 필요성이 있었음.-해외 시장의 경쟁자들로는 최고급 예물시계와 혁신 적인 기술과 꾸준한 개발의 ROLEX사, 보석세공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디자인과 오랜 역사를 통해 고급 이미지를 가진 Cartier사, 그리고 최고의 기술과 품질과 오랜 역사로 승부하는 Seiko사가 있었음.- 해외 경쟁자들은 대체적으로 오래된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디자인을 개발하고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여 고가격 정책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였음.- 해외시장에서는 수출의 성장률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둔화되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브랜드를 육성하지 않은 채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해외주문자 상표) 생산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해외 수출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었음.- 국내 제조업체들은 세계화되고 있는 국내 및 해외시장에서 국제적인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으며 자사의 시장점유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으로 독자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문제점으로 떠오름.- 80년대 후반부터 소위 신흥성장시장이라 일컬어지는 개도국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신흥성장시장은 중국,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 국가들, 인도와 파키스탄 등의 서남아 시장,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시장을 대표하는 이집트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중동시장은 대부분이 석유 생산국으로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반면, 공산품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출시장으로서의 매력이 큰 시장이었음.② 창업 초기의 로만손.- 초기에는 적은 자본과 등 행사를 제한하고 있기도 하지만 까르띠에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지지한다. 시계나 주얼리 등에 있어서는 최고매출과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에 비해서는 아직 이미지 메이킹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⑶ 기업이 당면한 문제점- 중동지역 시장의 침몰- 유럽과 미국, 동남아등 새로운 시장의 개척- 총매출액에 대한 수출비중의 감소- 해외시장에서의 원산지 인지도 저조- 선진국의 시계의 품질경쟁력보다 다소 떨어짐(스위스85%/일본95%)- 단조로운 제품의 디자인- 브랜드의 인지도 문제- 창업당시 기업 마케팅 부족- 해외진출 진입장벽이 높았음- 저가격의 국제 신규 업체의 증가- 인터넷 사이트 운영체계를 못함⑷ 주요 문제점① 스위스&일본에 비해 품질경쟁력이 떨어짐스위스는 오래전부터 정밀기계산업이 발달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오래전부터 스위스 시계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제품이다. 스왓치, 스위스 아미, 태그호이어 등등 스위스 시계는 세계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스위스의 시계품질의 혁명을 불러일으키는데 주축돌이 된 것은 로렉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로렉스사에서는 최초로 - 크로노메터(정밀) 손목시계, 방수시계, 로터 자동태엽, 카렌더 등을 발명.정확한 방수시계(오이스터)를 발매(대단히 견고한 케이스와 완전히 물을 차단하는 크라운과 유리로 제작)최초의 로터 자동태엽, 그 유명한 "퍼팩츄어"를 발명 - 이 원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고급 자동시계에 사용문자판에 날짜가 나오는 시계 "데이트 저스트"를 세계최초로 발명날짜와 요일이 나오는 최초의 시계 "데이-데이트"를 발명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정밀기계산업이 발달된 스위스에 대항하여 해외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A사에게는 위기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② 새로운 지역으로의 진출김 사장은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처럼 고급품은 좋아하지만 결코 그들처럼 값비싼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알고 중동시장 공략에 몰두했다. 매출을 거의 다 쏟아붓다가 그만 걸프전이 터지면서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최대적인 소득수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 상승된 품위 중시적 소비와 과시적 소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⑸ 대안- 시계 주요부품 등의 생산을 시계선진국으로 변경하여 공장을 설립한 후 원산지의 이미지를 높인다.- 인지도가 높은 공인(유명/연예인등)을 섭외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고 소비자의 구매를 유발시킨다.- 기업의 신뢰도를 높여 자본을 확충시킨다.- 지속적인 품질 R&D와 독점적으로 기술력을 개발하여 시계선진국 시장들과 동등한 위치 설 수 있도록 대응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제품의 종류를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주문제작 한다. (희소성을 강조)- 제품의 종류와 디자인 등을 여러 측면에서 개발하여 규모의 경제를 넓히고 각 시장국가별 교육수준, 문화, 개성에 맞게 제품을 생산한다.- 제품의 과시성 추구형 (Veblenians)소비군자들을 찾아야한다.- 제품의 유행 추구형 (Bandwagon)창출해야한다.- 인터넷 귀족 사이트 마케팅 창출⑹ 대안의평가① 시계 주요부품 등의 생산을 시계선진국으로 변경하여 공장을 설립한 후 원산지의 이미지를 높인다.(장점) - 부품을 선진국 시장에서 생산하게 됨으로 인해 시계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원산지의 퀄리티의 영향을 받아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소비양이 높아지면 큰 자본 을 들이지 않고 광고를 하여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단점) - 공장을 시계선진국에 설립하면서 정부의 규제가 크게 작용될 수 있다.- 막대한 자본비용이 우려된다.② 인지도가 높은 공인(유명연예인등)을 섭외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고 소비자의 구매를 유발시킨다.(장점) - 공인(유명연예인등)을 섭외해서 협찬을 해줌으로써 시계의 광고효과와 동시에 소 비자의 모방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단점) - 공인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높은 인지도 만큼의 개런티가 발생한다.③ 지속적인 품질 R&D와 독점적으로 기술력을 개발하여 시계선진국 시장들과 동등한 위치설 수 있도록 대응한다.- 높은 연구개발비용(기계,연구원등..)이 들어간다BG)이 공동 제작한「루이즈 www.LouisG.com」, 중매 사이트인 「노블커플www.noblecouple.com」 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이트가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귀족 사이트들은 귀족 잡지와 마찬가지로 특정계층을 위한 호화 사이버 쇼핑몰, 명품 전문 쇼핑몰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⑺ 해결책①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고 생산과 R&D를 스위스에 집중함으로서 made in swiss라는 원산지 효과와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스위스는 주요 유럽시장과 인접한 장점도 가지고 있으므로 점차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 중고가 제품은 중동 러시아 시장 유지하며 현지 적응에 강화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급화와 제품 분업화 통해 환율방어를 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인지도 향상을 통해 MVA(시장부가가치)를 개선하고 주식가치 상승과 재무역량을 강화해야 한다.② 브랜드 이미지 확립을 구축한다.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중심의 광고 특히 문화 마케팅, PPL(영화나 드라마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등 간접 광고를 활용하여야 한다. 또한 직집적으로도 기술력과 디자인 바탕으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해야한다.연예인등의 이미지 인지도가 높은 공인과의 계약을 통해 보다 많은 고객에게 제품의 광고효과를 높이고 제품의 가격을 높인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함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계층이 상승되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급 사치품을 소비하는 것이 비명성적인 하류 계층의 소비자들과의 구분방법으로 사용된다. 고소득층의 과시적 소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주의적 사고와 비교하여, 유행을 좇고 상류층의 소비를 모방하는 유행 추구형 소비자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유형의 소비자들은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적 관습이나 시류적 현상에 순종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들에게 고급 브랜드는 상류층 그룹 멤버십의 상징적 표시인 것이다. 상류층의 문화와 유행을 대중매체를 통하여 배우고 모방하므로 매체가 전반적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