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김동리는 자신의 작품에 설화나 토속신앙, 불교, 기독교{) 『사반의 십자가』란 작품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 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상상력과 추리에 의해 사반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고 또, 기독교 사상과는 관계 없는 예수의 이적 행위(異蹟行爲)를 부각시키는 등 예수를 한국적 샤머니즘화 하고 있는 데서 문제가 제기된다.등의 종교관적 세계관을 잘 녹여내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작품 『무녀도』는 토속적 샤머니즘을 잘 드러내고 있어 김동리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까치소리』는 설화에 입각한 운명론을 불교의 연기설을 도구로 하여 표현해내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 간혹 보여지는 인간 모습의 양면성에 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작가 연보{) http://songkw.com.ne.kr/sosul/sosul1.htm김동리 (金東里,1913 -1995)* 본명은 시종(始終)* 경북 경주 출생* 1929년 경신고보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문학 작품을 섭렵함* 1934년 시 가 에 당선되고 단편 가 1935년 에, 1936년 에 단편 가 당선되어 등단함* 처음에는 서정주 등과 함께 동인이었으며 '생명파'라 불리웠다.* 중앙대 예대 학장 역임* 광복 후 를 결성하였으며 순수 문학론, 본격 문학론, 신인간주의 문학을 표방하였다.* 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1958년 「사반의 십자가」로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월간문학 창간. 1989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추대.* 그의 작품 경향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주제로 순수한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대표된다.* 초기 : 토속적, 샤머니즘적, 동양적 신비의 세계에서 제재를 선택하여 인간 생명의 허무적인 운명과 신비함을 추구하여, 등을 남겼다.* 중기 :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더 역사 의식과 현실 의식이 강화되면서 참여 의식인 강한 작품을 창작하여, , 등을 발표했다.* 후기 : 보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근대 문명에 대한 차원 높은 비판 의식을 형상화하여 , 등을 남겼다.주요 작품으로는, , , , , , , , , 등이 있다.Ⅱ-1. 개괄적으로 살펴봅시다.1. 주제 : 까치 소리에 얽힌 속신과 전쟁의 참상에 눌린 한 인간의 비극적인 삶인간의 삶에 내재(內在)하는 운명의 힘과 그로 인한 절망과 비극2. 구성▶발단 : '나'(봉수)가 제대하여 돌아와 어머니의 병세와 정순의 결혼 사실에 절망함.▶전개 : 절망과 좌절 속에 영숙의 오빠, 상호를 만남.▶위기 : 정순을 만나 재결합을 설득함.▶절정·결말 : 영숙이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나'를 위로하다가 몸을 허락함. '나'는 영숙을 목졸라 죽임.3. 문체 : 회고체, 간결체※줄표와 괄호를 자주 사용하여 부연설명하듯 해 놓은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Ⅱ-2. 작품속으로 들어갑시다.1.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까치소리 는 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어머니와 봉수의 행위와 관련하여 살펴봅시다.)1) 본래의 까치소리의 의미는 단순한 속신에 불과하다.……아침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나고……한다는 것도, 언제부터 전해 오는 말인지 누구하나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 까치가 유 난히 까작거린 날엔 손님이 작고, 저녁 까치가 꺼적거리면 초상이 잘 나는 것 같다고, 그들은 은근히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글의 초반부에 나와 있듯이, 까치소리는 마을사람들이 으레 그러려니 믿고 있는 속신에 불가하다. 봉수 어머니에게도, 봉수에게도 까치소리는 이 이상의 의미가 되지 않는 객관적 사실에 불과하다.2) 봉수 어머니에게 먼저 일어나는 까치소리의 의식현상(意識現像)봉수가 군에 간 뒤, 봉수 어머니는 그 이튿날부터 봉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봉수 어머니에게 아침에 길조로서 들려 온 까치소리는 아들이 돌아올 것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만,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내 까치소리는 그녀에게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의식현상{) 이선순, 「김동리의 '까치소리'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1980. p.18.에서, 김형효, 「현 상학과 경험의 세계」, 문학사상, 1976. pp.292-394.를 참고하여 의식현상을 자신의 경험 (체험)을 표현하고, 거기에 의미를 주는 행위라고 소개하고 있다.으로 변이된다. 즉, 그녀는 까치소리만 들리면 기침(천식)을 하며 괴로워하게 된 것이다.3) 봉수에게 전이(轉移)된 어머니의 의식현상어머니의 의식현상이 처음부터 봉수에게 전이되었던 것은 아니다.저녁 까치가 까작 까작 울어왔다. 어머니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침을 터뜨리 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그때만 해도 까치소리는 까치소리대로 회나무 위에서 나고, 어머니의 기침은 기침대로 방 안에서 터뜨려졌을 뿐이요, 때를 같이(전후)한대서 양자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다고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이 글에서 보이듯, 어머니의 의식현상은 아직 봉수에게 전이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수도 어머니와 같은 심리적인 좌절-어머니의 기침을 멎게 해 드릴 수 없음-을 경험한 후부터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의식현상으로 변이되었다.4) 봉수의 의식현상은 끝내 봉수를 살인마로 만들었다.봉수는 자신의 옛 사랑 정순을 만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제안하나 거절과도 같은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받고 실의에 빠진다. 그리고 영숙에게 자신이 없더라도 옥란이와 잘 지내달라는, 자신도 모를 말을 남기고 보리밭으로 가버린다. 보리밭에서, 봉수는 자신의 마지막 말에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따라나선 영숙을 만나 그녀를 마구 욕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울린 저녁 까치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만다.이처럼, 봉수는 자신의 의식과 이성이 가장 황폐해진 순간에 영숙을 대해 그녀를 욕보이게 되고, 그 때 울린 까치소리와 함께 어머니에게 느낀 살의에의 의식현상을 영숙에게 실현시킴으로써 살인자가 된 것이다.☞ 작가는 속신으로만 전해오던 까치 이야기에 불교의 연기설{) 연기설(緣起說): 현상적인 모든 변화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과관계 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불교 교리.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을 적절히 혼합하여 설화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희, 「김동리 소설연구」,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1993. pp.12-18.즉, 실제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아침까치와 길조-봉수의 귀향-를 연관시키고, 저녁까치와 흉조-봉수의 살인-를 연관시킴으로써 작품의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까치소리{까치소리와 함께 나오는 어머니의 기침소리↓아들의 귀향에 대한 희망을 줌 ↓안타깝고 측은히 여겨짐{어머니{봉수↓희망의 계속된 좌절 ↓기침을 멎게 해줄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음에 괴로워함{기침이란 의식 현상으로 변이되어 나타남{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시다는 의식현상으로 변이되어 나타남 {{정순의 쪽지를 받고 보리밭으로 나감↓봉수의 이성과 정신이 가장 황폐해진 순간에 영숙을 대함{영숙을 욕보임↓그때 마침 들려오는 저녁 까치소리{영숙을 목졸라 죽임{2. 작품에 드러난 봉수의 운명에의 대응 양상을 살펴봅시다.1) 운명에 대항하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결국 죽을 때까진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을 몇 번이든지 되풀이해야 하는 내가 자신 의 위치랄까 운명이랄까 그런 걸 깨달은 거야. 거기서 나는 결심을 했어. 정순이를 두 고 죽을 수 없다고. 나는 내가 꼭 죽기로 마련되어 있는 운명을 내 손으로 헤쳐나가 야 한다고……봉수는 목숨을 내어놓고 사는 전장의 군인이었다. 특히 수색대에 속해 있던 봉수는 언제 죽을 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었다. 작품속에서는 이러한 봉수의 상황을 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봉수는 자신의 식지와 장지를 자해하는 행위를 통해 제대하여 나옴으로써 죽어야 할 운명을 헤쳐나왔다.2) 운명속으로 회귀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길흉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까치소리 속신은 길조의 결과로 돌아온 봉수를, 이제 흉조를 적중시킬 운명으로 말려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정순, 「한국 속신의 구조와 그 서사적 기능」,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1987. p.30.이는 (p.3)1-☞표에 잘 드러나 있으며, 결국 봉수는 영숙을 죽임으로써, 그 운명속으로 회귀하고 마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Ⅱ-3. 함께 생각해 봅시다.
NEIS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교육행정정보시스템』Ⅰ. NEIS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란?전국 1만여 개의 초 중등학교, 16개 시 도교육청 및 산하기관, 교육인적자원부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교육관련 정보를 공동으로 이용할 전산환경을 구축하는 전국 단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인터넷 민원서비스(NEIS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 http://www.neis.go.kr/html/sub02-01.html1. NEIS의 추진배경가. 구(舊) 시스템의 대체NEIS는 1996년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1997년 말에 전문연구기관(한국전산원)의 연구를 통하여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었다. NEIS 이전의 구 시스템으로는 개별 학교의 PC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행정관리 시스템(Standalone, 이하 SA 로 줄임)과 제한된 범위의 관리시스템인 학교종합정보관리 시스템(Client Server, 이하 CS 로 줄임)이 있었다. 이 중에서 CS는 2000년 12월에 전국의 초·중등학교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연결되기 전인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구축된 것으로서 2003년 봄까지 사용되어 왔다.* 학교단위 서버보급 중단 통보일(2001.8.21) 이전까지 전국 초·중·고교 10,061개교의 86%인 8,651개교에 구축완료나. 전자정부 11대 사업김대중 정부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11대 업무 의 하나로 2001년 5월 17일 NEIS 구축사업을 선정하여 추진하였다. 전자정부 사업은 다음과 같다.-창구민원 업무: 민원서비스 혁신사업(G4C), 4대 사회보험정보연계시스템 구축사업, 국가전자조달시스템사업, 홈텍스서비스시스템 구축사업(HTS)-행정내무 업무: 국가재정정보시스템 사업,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 사업, 전자인사관리시스템 사업(PPS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사업(NEIS)-기반구축 사업: 전자결재 및 전자문서유통 활성화 사업, 전자서명 및 행정 교수학습 자료)CS는 서버를 학교 내에 두고 있기 때문에, 보안을 포함한 모든 관리의 권한과 책임이 학교에 있으며, 그동안 제기된 주요 장, 단점은 다음과 같다.-시스템의 기술적 보안 수준은 높지 않지만, 관리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안 유출시 파생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다.-소수의 담당자가 관리하기 때문에 관리자의 책무성에 의존해야 하는 인적 제한점이 있다.-관리업무 영역의 수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대학입시처럼 전국 수준의 대규모 교육정보 유통시 효율성이 부족한 것이 그동안 지적되어 온 단점이다.나. NEIS의 주요 내용NEIS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표로 추진되었다.-교육행정의 효율적 정보화로 교육행정의 생산성 극대화-교육행정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국민 만족도 제고-21세기 국가경쟁력 확보 및 교육행정의 전자정부 구현NEIS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교육부-시·도 교육청-지역 교육청-개별 학교까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 공유체제(그림-NEIS 관리체제 참조)-인터넷망을 이용하여 구축되기 때문에 일부 정보의 대국민 서비스 체제 구축(그림-NEIS 관리체제 참조)-관리영역의 세분화(표-NEIS 관리영역 참조)다. CS와 NEIS의 차이점CS와 NEIS의 차이점과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두 시스템 사이의 기록, 관리되는 정보의 양적, 질적 차이가 있다. NEIS는 CS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많은 개인정보를 기록, 관리하게 된다.-CS는 행정문서의 유통에서만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필요시 전자우편을 이용하는 제한적 유통시스템이다.-CS는 행정문서의 유통에서만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필요시 전자우편을 이용하는 제한적 유통 시스템이다-CS는 정보유출과 같은 사고발생이 관리자의 인적 요소에만 나타날 수 있다.NEIS는 모든 기록, 관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련 부처가 공유, 관리하고 있으며,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킹과 같이 외부에서 직접 시스템에 침투하는 보안유출 사고의 가능성이 상존한다.-NEIS는 고교 무시험 배정, 대학입시를 통해 교수학습 및 연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교육의 질 제고(특히, 기존의 학교정보시스템 운영자 업무 대폭 경감)다. 행정기관. PC에서 작업하고, 보고하며, 문서를 관리함으로써 수기장부 감소 및 종이문서의 감축.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정확한 데이터에근거한 정책수립 및결정으 로 소요시간 및 인력 최소화. 인사기록카드 등 자료의 중복 작성으로 인한 데이터 불일치 방지. 동일자료에 대한 보고요구에 따른 행정력 과다소요 방지. 교원, 학생, 재산, 시설, 재정 업무들 간에 수직적 수평적 연계를 통한 정보공동이 용으로 교육행정 생산성 향상2. NEIS 활용의 문제점가. 정보인권의 침해헌법 제17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고 하여 기본권으로서의 프라이버시권을 규정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적인 일에 대한 간섭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지 않도록 할 권리를 의미한다.{ 김용섭, "인터넷과 행정법상의 과제", 법제연구 제18호, 한국법제연구원, 2000하지만 NEIS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마땅히 보호 받아야할 인권이 침해당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세하게 개인의 신상정보가 기록되어 있고,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력, 재산, 병적 등 학부모의 신상정보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병력 등과 같은 개인의 생활에서 부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정보 등도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NEIS에 기록된 정보는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다른 시스템의 기록정보와 연결되면 한 개인의 평생정보와 가족정보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NEIS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생활기록부와 학생건강기록부에 포함된 정보가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데, 기록되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학교생활기록부(1) 인적 사항 : 학생-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학부모-성명, 생년월일, 직업(2) 학적 사항 : 입학 전 교육, 학적 변동 등(3) 출결 사항 집단에 의하여 정보가 유출될 가증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정보 유출의 예방 또는 유출 시의 법적 제제 등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여야한다.학생과 학교 기록의 정보 유출의 경우는 먼저, 교육인적자원부 내에서 학생 기록 전산화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전산화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전산 담당자가 개인적인 이유로 민간 기업이나 개인에게 학생 정보를 유출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이에 관하여 법률에서는 행정 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개인 정보 파일을 보유 목적 외의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가 내의 타 기관에 의하여 정보가 공유되어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기관 간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킹에 의한 정보 유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률에서는 개인 정보의 안정성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학생 정보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킹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다. 교육의 자주성의 침해우리나라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여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하며, 지역의 실정에 맞는 교육의 실시를 위한 시책을 수립, 실시하여야 한다.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교육의 자주성에 대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교육행정청이 교육에 관하여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경우에 교육의 현장성, 피교육자와의 밀접성, 교육의 창의성은 침해당하게 된다. 교육의 다른 행정사무와 달리 자치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즉 교육의 특수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교육자치는 교육이 담당자인 서를 도난당하거나 분실하였을 때 그 사실을 전산 담당자에게 통보하기 전에 문제가 발생, 악용되었을 경우 책임소재가 누구인지 도저히 가려낼 방법이 없다. 특히 인터넷상의 장애의 경우 외부의 책임마저 물을 수 없기 때문에 학생/학부모 개인정보가 유출 될 경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마. 추가 비용의 소모학사 업무의 차질이 정부와 학교의 노력에 의해서 얼마간은 상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라면, 추가 재정의 소요는 현실상의 문제이다. 다만 교육부와 전교조 사이에서 추가 비용의 추정규모에 대하여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NEIS로 이관되어 있는 3개 문제 영역의 기록 정보를 다시 CS로 재이관 하는데 따른 소요시간 추정, 재이관에 필요한 소요인력의 규모 ,手記로 업무를 치러야 하는 교사 인건비 추정 등에 인식과 주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와 전교조 사이의 합의에서 내년도 계획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추가 비용의 규모를 현재 예쌍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예를 들어 NEIS전면 재검토 및 중단, 새 시스템 구축과 NEIS의 부분 보완 후 CS와 병행 가동의 시나리오에 따라 추가 비용의 규모는 큰 격차를 보일 것이다.※ 참고 전교조 주장: 520억이 들었다는 네이스 비용은 초기 구축비 만을 말하는 것으로 실제로 네이스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서버구축과 프로그램개발비로 520억과 기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으로 총 3,500억이상 소요됩니다. 한마디로 국가적인 낭비다. 자신이 낸 세금이 올바르게 쓰여지기를 원하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이며, 과거 우리 정치의 낡은 관행이었던 권력형 비리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중요한 문제이다.Ⅲ. 향후 전망과 과제1. CS와 비교한 NEIS의 내용과 주요쟁점 사항가. NEIS가 좀 더 높은 기술수준과 물리적 기반 하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술적 보안성이 높다.나. 그러나 NEIS와 기존의 CS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완벽한 보안은 불가능하다.다. NE 있다.
군인에게 있어 사생관은 왜 필요한가군인에게 있어 가장 큰 임무는, 아무래도 적과의 전투에 임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요소에는 뛰어난 전술, 발달된 무기, 군인 개개인의 전투 능력... 뭐,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얘기하게 될 사생관 역시도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아주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그렇다면 군인에게 있{ 2005번 김성수 후보생어 사생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군인은 어떤 사생관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6일전쟁을 치를 때의 일이다. 미국의 모 대학에는 이스라엘 학생과 이집트 학생이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전쟁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자 이 두 나라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석사유를 알아본 결과 너무나도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즉 이스라엘 학생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학생이라고 하여 안일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군 입대를 자원해 귀국했음에 반해, 이집트 학생은 "혹시 본국에서 입대명령이 내려올지도 모르니 그 누구도 우리의 거처를 알려주지 말라"는 메모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광경을 본 교수는 "이스라엘 대 이집트의 전쟁은 이미 끝났다"라고 예언했는데 그 교수의 예언대로 양국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국민의 높은 사기와 불타는 투지, 그리고 확고한 사생관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사실 외형으로 나타나는 국력만으로 따진다면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상대가 못된다. 국토의 크기만 보아도 1백만㎢ 대 2만㎢이니 무려 50배나 차이가 나고, 인구면에서도 4천5백만 대 4백만이니 열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터에 임했기 때문에 승리의 영광은 이스라엘에 돌아갔던 것이다.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해야 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여 뒤를 도모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군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사생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생각난다. 이는 군인이 가져야 할 사생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아닐까?사람은 어떤 곳에서 태어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다 죽었느냐는 더욱더 중요하다. 국방의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는 군인. 군인에게 있어 올바른 사생관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식민사관의 폐해에 대해 사례를 들어 토의해 보자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이다. 지금은 식민사관이 많이 수정되었으며 그 폐해가 많이 사라졌으나,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나 생활양식에 적잖은 오염을 끼친 것이 사{ 2005번 김성수 후보생실이며, 지금까지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사관에 관해 자세히 살펴 보자.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한국사 연구는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滿鮮史) 이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일선동조론은 본래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족으로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민족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일본과의 합병이나 식민지 지배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하여 1930년대 일본이 펼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근거로 이용되었다.정체성론은 한국이 여러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능동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당시의 조선사회가 10세기 말 고대 일본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는 주장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봉건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여 사회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논리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침략미화론으로 이어졌다.타율성론은 한국이 역사를 스스로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전개시키지 못하고 중국이나 몽골, 만주, 일본 등 주변 외세의 간섭과 힘에 좌우되어 왔다는 논리이다. 한국사는 그 형성에서부터 중국 등의 식민지배에서 출발하였다고 보았는데, 이는 한민족의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성향을 부정하고 타율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민족의 부수된 주변성으로 대표되는 반도적 성격론과 사대주의론에 관한 주장으로 더욱 강조되었다.
식민사관의 폐해에 대해 사례를 들어 토의해 보자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이다. 지금은 식민사관이 많이 수정되었으며 그 폐해가 많이 사라졌으나,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나 생활양식에 적잖은 오염을 끼친 것이 사실이며, 지금까지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사관에 관해 자세히 살펴 보자.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한국사 연구는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滿鮮史) 이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일선동조론은 본래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족으로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민족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일본과의 합병이나 식민지 지배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하여 1930년대 일본이 펼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근거로 이용되었다.정체성론은 한국이 여러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능동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당시의 조선사회가 10세기 말 고대 일본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는 주장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봉건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여 사회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논리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침략미화론으로 이어졌다.타율성론은 한국이 역사를 스스로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전개시키지 못하고 중국이나 몽골, 만주, 일본 등 주변 외세의 간섭과 힘에 좌우되어 왔다는 논리이다. 한국사는 그 형성에서부터 중국 등의 식민지배에서 출발하였다고 보았는데, 이는 한민족의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성향을 부정하고 타율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민족의 부수된 주변성으로 대표되는 반도적 성격론과 사대주의론에 관한 주장으로 더욱 강조되었다.이와 함께 당파성론도 제기되었는데, 이 주장은 조선의 문화수준이 낮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처럼 발전하지 못한 까닭은 잘못된 민족성을 지닌 탓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파벌을 만들어 싸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쟁과 사화를 그 예로 들었다.일제는 한국사 재구성 작업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1922년에는 조선사편찬위원회,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를 설립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35권, 1937)를 발간하였다. 이러한 식민사관은 우리 민족이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주체적인 역사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극복되었다.이처럼 일제의 식민사관은 다양한 분야, 다양한 항목 및 생활 의식 등 우리 일상에 깊게 파고 들어 있어 모르고 지나치고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좀더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식민사관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다. 모르고 있으면 남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어떤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군인으로서 평상시 식민사관에 대해 올바로 알고, 바른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식민사관의 폐해들에 보다 적대적인 자세로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cf) 자 료◎ 신문 자료 - 식민 사관의 정체오늘날 학계에서 청산해야 할 일제 식민지의 잔재로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식민 사관이다. 일제가 식민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왜곡, 서술한 식민 사관은 근대 학문의 토대를 닦지 못했던 당시 우리 학계로 그대로 주입되어 광복 이후에도 악성 종양처럼 남아 있었다. 사학계는 지난 60년대 이후 식민 사관의 허구성을 허물어뜨릴 만큼 많은 학술적 성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식민 사관 논리를 알게 모르게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그 청산의 문제는 숙제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학자들에 따라 견해는 다르나 일제가 한국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점은 청·일 전쟁 이후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연구는 일제가 만주와 한국 경영을 위해 1908년 만철 동경 지사 내에 ‘만철 지리 역사 조사실’을 설치하면서 이루어졌다. 연구의 테마는 당연히 만선사였다. 만주에 괴뢰국이 세워진 후 만선사 연구는 한층 체계화되어 이른바 ‘만선사관’이라는 역사관이 만들어졌다. 이 만선사관은 한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부인, 한국이 태고적부터 대륙, 특히 만주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 볼 경우 한국 역사는 만주의 세력 안에 놓이는 역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셈이 된다. 이 논리는 한국이 동아시아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적 존재여서 외세 침탈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지리적 결정론인 미나미의 ‘반도 성격론’으로 한층 체계화되었다. 또 조선 왕조의 정치를 당쟁으로 규정하면서 한국 민족성의 특징을 당파성으로 확대 해석한 논리나, 한국 사회의 내적 발전을 부정하는 ‘정체성론’도 일본 통치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적절하게 이용되었다. 이들 논리는 결국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의식의 잔혼으로 남아 열등 의식을 부추겼다. 일제 식민지 정책이 봉건제를 타파하고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일제의 ‘근대화론’이 형태를 달리하고 있지만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학자 안모 교수의 ‘중진 자본주의론’이 신식민 사관이라고 비판한 논문이 발표되어 학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안교수가 광복 이후 한국의 급격한 자본주의적 공업화 과정이 식민지 시기에 이루어진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파악하는 나카무라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 논문은 선진국의 이론이라면 걸러 내지 않고 받아들이기에 급급한 학계 풍토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식민 사관의 극복은 우리 학계 스스로가 역사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총체적인 역량을 축적해 나갈 때만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일러준다. [ 세계 일보 95. 01. 09. ]
◎ 인간은 왜 싸우는가1. 사람들은 왜 평화롭지 못한가?평화의 반대개념은 갈등, 불화, 투쟁, 전쟁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이 생기는 것일까? 하나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한국과 일본이 싸우는 것은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우는 셈이다. 남북한이 싸우는 것은 “우리는 한민족이니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너는 왜 딴 살림 차리느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아야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모든 존재는 각각 다르다’라고 보는 사고방식 또는 ‘모든 것은 하나로 같다’라고 보는 사고방식, 이런 상호모순적 사고방식이 공존하고 있다.‘우리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개별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려면 너를 죽여야 되고 내가 이기려면 너는 지게 된다.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네가 손해를 봐야 한다.이것은 개개인을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 인식할 때 가지게 되는 관점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회는 각자 다른 개인이 한 울타리에 모여 서로 경쟁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홉스가 말한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된다. 내가 다른 이를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합리화된다. 이것을 두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고 말하며, 흔히들 바로 이것이 세상의 원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는 모든 관계를 경쟁의 관계로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승리만을 목표로 삼게 한다. 그래서 갈등과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이와는 정반대가 되는 사고방식이 ‘우리는 다 하나로서 같다’라는 것이다.‘부부는 일심동체이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가? 너는 왜 나와 다른 짓을 하는가? 너는 왜 나와 다른 마음을 먹는가? 너는 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가?’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결여한 자기 식대로 하나되는 이 관점 역시 필연적으로 갈등과 투쟁을 낳을 수밖에 없다.2. 불일불이(不一不異)의 세계관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과연 서로 같은 것일까, 된다. 상황에 따라서 같아지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는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즉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不異).나와 너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나와 너는 다르다고 할 때, 다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도 있다. 나와 너는 같다고 할 때도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 그러므로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볼 것이냐 하는 점이 중요해진다. 눈의 모양을 비교할 때는 네 눈과 내 눈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눈의 개수를 비교할 때는 너도 두 개고 나도 두 개로 서로 같다. 따라서 어떤 조건에 놓이느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때의 다름은 ‘너와 나는 무관한 존재이다’라고 하는 뜻이 아니다. ‘너와 나는 무관하다. 너와 나는 상관없는 개별적 존재다’라고 할 때의 다름은 갈등과 분쟁을 낳는 다름이지만,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경험, 다른 조건의 삶을 살고 있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다름은 화해와 공존을 낳는 다름이다. 사물과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화나 갈등의 문제는 바로 이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해결할 수가 있다. 우리는 서로 생긴 것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길이고, 내가 나 자신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사물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길이다.‘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만 너는 그것을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떤 불화나 갈등도 생기지 않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이 생긴다. 현실은 분명 서로가 다른데 머릿속의 관념은 서로가 같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하나’의 문제을 좋아하는데 너는 빵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일요일은 쉬는 것이 좋은데 너는 놀러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너는 서로 너무 다르다.’이렇게 자신과 다른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관계에 벽이 생기고 그러면 이런 결론밖에는 나올 것이 없다.‘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다. 도무지 같은 것이라고는 없다.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언어나 폭력으로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려봐야 자기 마누라고, 긁어봐야 자기 남편이다. 또 부수어 봐야 자기 살림이다. 화를 자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일들은 ‘하나’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나라는 것은 독립된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라고 해서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오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명백한 오류를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무수히 되풀이한다. 그럼으로써 개인 단위에서, 사회 단위에서, 역사 단위에서, 세계 단위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생산해 낸다.하나의 손으로 연관되어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은 모두 다 제각각으로 생겼고 각각의 역할도 조금씩 다르다. 한몸을 이루고 있는 손과 발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서로 다르지만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관되어 있고 하나라고 하지만 단일의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럿이 연관되어 있는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한 하나, 하나임을 자각한 다름, 즉 불일불이(不一不異)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해 나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 서로가 하나임을 자각할 때 가장 위대한 평화, 가장 아름다운 평화가 이루러 진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평화이다.3. 우리들 존재의 본질적 구조세상에서 말하는 평화는 이와는 좀 다르다. 일본과 우리 나라는 다르기 때문에 일본이 망하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단일민야 한다. 각각의 독립성을 인정하되, 우리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문제도 풀기가 어렵다. 남북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가?“우리는 한민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우리는 아주 쉽게 이렇게 말하지만 이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북의 두 체제는 엄연히 대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두 체제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가 하나에 흡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둘 다 흡수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서로 싸운다. 지난 50년 동안 남쪽은 승공통일을 주장하고, 북쪽은 적화통일을 부르짖으며 대립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각각의 체제를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영구분단론이 되어 버린다. 지난 시대에 있어 영구분단론의 올가미는 매우 무서운 것이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한 남한 사람도 사형을 당했고, 남한 체제를 인정한 북한 사람도 사형을 당했다. 다른 체제를 인정하면 영구분단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 통일론자이다. 그런 맥락에서 따지자면 지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영구분단을 획책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인정한다고 해서 영구히 따로 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면 불화가 해소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화해와 협력은 저절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화해와 협력을 기초로 해서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영구분단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통일로 가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화해와 협력을 해야 할 때이다. 지금 단계에서의 무조건적인 통일은 흡수통일, 또는 적화통일이라는 극단의 길밖에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비극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서로의 체제를 인정함으 그런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로 잘 못 이해하여 ‘흰 것은 좋고 검은 것은 나쁘다. 그러므로 흰 것은 귀하고 검은 것은 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종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피부가 검다는 이유 하나로 식당에도 못 가고 학교도 못 가며, 심지어는 짐승 취급을 당하는 노예가 되기도 한다.민족이나 종족의 갈등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큰 민족은 작은 민족을 지배하려 하고 작은 민족은 독립하려고 한다. 자기네 민족은 우수하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민족은 반드시 그에 반발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 간의 갈등이 안 일어날 수가 없다.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마찬가지로, 하나 속에서 억압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있다.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체제, 연방이라는 하나의 체제 안에서 다른 민족을,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체제 안에서 소수민족들을 존중하지 않고 억압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소수민족들이 반발할 것이다. 소비에트라고 하는 하나의 체제 안에, 노동계급이라는 이름하에, 계급혁명이라는 이름하에 소수 민족이나 특정 종교나 문화계층을 무시해왔기 때문에 소비에트는 해체될 수 밖에 없었다.인종, 민족, 종교, 계급, 남녀 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갈등을 빚는 문제들이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의 본질은 아주 단순하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가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지의 상태에서는 피해자는 상처 때문에 사소한 일에 극단적으로 반응하고, 가해자는 무감각해서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일본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자기들이 한국에 다리도 놓아주고, 학교도 많이 지어줬으며, 철도도 많이 놓아주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일본이 해준 것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가지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그런 근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