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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mega 8535를 이용한 라인트레이서 회로도
    ATmega 8535를 이용한 라인트레이서 회로도 ATmega 8535에 프로그램 다운받는 ISP보드 회로도
    3D 모델링 도면| 2007.04.16| 1페이지| 1,500원| 조회(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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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및 교육사]중세사회의 교육
    중세의 세속교육1. 봉건제도와 기사교육(1) 봉건제도의 성립 배경과 특징중세시대란 기독교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시기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 중엽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5세기 중엽까지의 시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봉건사회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소수의 영주와 다수의 농노가 토지를 매개로 맺은 생산관계를 중시하여 사용하는 개념이다.중세 봉건사회가 성립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로마 후기의 사회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인들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난 이후에 폭압적인 무력통치와 수탈에 대한 피정복민, 노예들의 다양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저항은 크게 정치ㆍ경제적인 성격과 종교적인 성격으로 구분하여 분석할 수 있는데, 전자는 봉건제라는 경제적 생산관계의 형성에, 후자는 기독교라는 사상적ㆍ문화적 가치체계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노예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자 지배계급은 지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예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농노라는 신분인데, 농노들은 위탁농지에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일하고, 그 소득의 일부를 영주에게 현물(세금)로 바쳤다. 이러한 영주와 농노의 관계가 바로 정치ㆍ경제적인 면에서 중세사회를 특징짓는 봉건적 장원제 또는 농노제이다.물론 봉건제의 성립과 발달에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황제나 영주들은 게르만족의 침입을 저지하고 느슨해진 사회질서를 틈탄 노예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군사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필요에 의해서 군사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방위와 노예관리를 맡기면서 일정한 보수(토지)와 작위를 지급하였다. 바로 이들이 영주와 농노들 사이의 중간계층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토지를 매개로 한 주군-신하-농노의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관계는 봉건제라는 중세 생산관계의 골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2) 중세 중반기 이후 세속교육중세 봉건사회의 교로 필사(筆寫)·연구되면서 수세기 동안 거의 명맥만을 유지해 온 인문학의 위치는 견실하게재정립되었다.카알 대제는 교육법령을 공포하고 기독교/서민교육을 장려하였다. 이는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교육을 장려한 근대적 시도였다. 그는 궁정학교를 개설하고, 고전, 라틴어문법, 논리학 등을 가르치는 등으로 수도원에서도 고전연구가 활발해졌다.(3) 기사교육의 특징중세 후반의 대표적인 비형식교육이었던 기사교육은 영주와 국왕들의 필요에 의해 생긴 교육이다. 다시 말하면 국왕이나 영주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 확장하기 위한 자위 수단으로 사병을 기르고 조직화하였는데, 그들은 군대를 다스리는 무사에게 작위와 토지와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무사들은 그 대가로 충성을 바침으로써 철저한 주종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사들을 일반적으로 기사라 칭하였고, 이들에게 요구한 규범이 기사도 정신이며, 이들을 교육으로 순화하기 위해 기사교육이란 교육형태가 생기게 되었다.기사에게 요구된 행동규범은 종교적, 군사적 태도 및 예의에 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교회, 봉건영주, 부인에 대한 삼중의 의무로 이루어졌다. 기사들은 보통 방위 및 농노ㆍ노예 관리를 담당하는 중상류계급을 이루었으며, 주로 실제의 전투를 위한 군사적 훈련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에 사회가 안정되고 귀족계급의 생활이 개선되었을 때 기사교육은 전투적 인간양성보다 예절과 도덕의 인간양성에 치중하게 되었다.기사들에게 요구된 기사도는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천하였다. 전사라는 성격에서 충성과 무용이 가장 먼저 요구되었다. 특히 무용은 당시의 중대한 덕행이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게 됨에 따라 신에 대한 봉사, 경선, 겸양, 약자보호 등 그리스도교적 도덕이 기사도로 요구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수도원제도와 스콜라철학이 금욕주의와 지성주의를 취했다면, 기사도는 행동을 강조했다. 기사도의 이상은 높은 이상과 표준의 생활 바로 그것이다.기사 교육의 목적으로 첫 번째는 야만적 무사로 하여 봉사하는 훈련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사랑은 우선 약자와 부녀자에 대한 봉사로부터, 전쟁은 정의에 대한 능력을 중심으로 종교는 기독교에 대한 경건을 중심으로 수행되도록 했다.12세기경에 절정에 달한 기사교육은 특별한 학교는 없었지만, 기사교육은 상당히 표준화되고 조직화되었는데, 대개 군주의 궁정에서 이루어졌다. 붓츠(Ibid. 155~156)는 이러한 기사교육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제1단계는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진 교육으로, 0~6세까지의 아동들이 순종과 도덕, 쾌활한 성격, 바른 자세, 경건한 신앙심 등을 모친 혹은 시녀로부터 배웠다. 제2단계는 가정에서 교육받은 7~8세의 아동이 14~15세까지 그의 부친이 섬기는 군주의 궁정에서 시동(page,혹은 valet)으로 활동하는 시기이다. 그는 특히 귀부인에게 예속되어서 그녀에게 봉사하며 그녀로부터 일반적인 궁정생활에 대해 배웠다. 또 장기 두는 법, 사랑과 경의를 표하는 에티켓, 악기 다루는 법, 노래하는 법, 읽기, 쓰기, 작시도 배웠다. 가끔 성밖에서 달리기, 씨름, 권투, 승마, 궁술, 검술, 수영, 기본적인 창 쓰는 법도 군주로부터 배웠다. 제3단계는 14, 5세에서 약 21세까지의 청년이 종자(squire, 혹은 attendant)로서 활동하는 시기이다. 영주나 선배 기사들을 보필하며 실전기능을 습득하는 등 본격적인 기사수련을 받는다. 종자기의 청년은 영주나 기사들 중의 한 사람에게 무기나 말을 돌보는 시중을 들면서 전쟁에 대한 기술을 배운다. 그는 밤에도 군주의 곁에 자면서 시중을 들고 승마, 사냥, 전쟁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 시기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시가를 작성하고 암송하며 춤추는 법도 익히게 된다.시동기와 종자기를 거친 청년이 21세경에 군주와 교회 성직자들에 의한 종교적 의식을 통해서 기사가 되고, 봉신(vassal)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여 봉토를 받게 된다. 물론 봉건사회의 교칙과 자원이나 부동산을 관리하는 법, 농노나 노동자를 다스릴 수 있는 경험도 지녀야 한다. 이와 같은영향을 주었으니,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고 야만적인 사회를 세련되게 했으며, 여성의 위치를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수도원의 내세적 이상이나 당시 하회의 금욕주의에 대해서 기사교육의 인위적이고 현세적인 경향은, 다시 사회에 중화적인 작용을 했을 뿐 아니라 문예부흥의 발생에도 영향을 주었다.2. 길드조직과 시민교육(1) 길드조직의 배경과 특징중세시대에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는 일반 서민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했던 기독교교육이나 기사교육이 아닌 시민교육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12-13세기의 유럽은 물밑에서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상ㆍ문화적인 측면을 먼저 살펴보면, 유럽인들은 십자군원정으로 사라센문화 등과 같은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교황의 권위와 신에 대한 경외심이 약화됨과 아울러 이민족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서서히 해소되어 갔다. 이러한 사실은 새로운 세계관을 갖도록 해 주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다음으로 정치ㆍ경제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계급질서가 와해되는 한편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점은 중세 봉건사회를 뿌리로부터 흔들어 놓고 장차 새로운 근세 시민사회를 도래하게 만든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세의 영주와 농노의 관계는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기만 하면 일부 농민들이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상업이나 직인 등과 같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에 활발한 상업과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상업도시들이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영주들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민세력을 형성하게 되었고, 부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하여 자녀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필요를 반영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시민교육입니다.(2) 시민교육의 특징상공업의 발달은 신흥 중소 상공인계급을 출현시켰으며흥시민들이 만든 학교이다. 즉 신흥계급은 자유도시에서 그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계속 유지할 목적으로 자녀에게 지도자적 자질을 길러 주기 위해 세운 학교가 바로 이들 중등학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중등학교는 궁극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목적으로 하였다. 길드가 요구하는 다양한 시민교육의 공통적 특징은 모국어교육과 실용적인 내용의 교육을 들 수 있다. 세속적인 정신에 의해 도시인의 생활에 필요한 직업교육을 중심으로 했다.하층의 시민계급이 주로 받았던 초등학교로는 영국의 조합학교와 독일의 교구학교, 그리고 조합학교와 교구학교가 결합한 형태의 시민학교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 학교는 서민들이 생활에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던 기본적인 직업기술이나 문자를 습득하는 것을 그 주요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구성이 조잡하고 교육방법 또한 단순히 체벌이나 암송에 의존하는 등 그 수준이 낮은 매우 편이었습니다.(3) 도제교육의 특징위의 형식교육기관과는 별도로 중세의 노동계급을 위한 기술, 직업교육의 형태가 있었다. 길드조직은 자신들의 기득권옹호와 어느 정도의 직업적 적합성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일정한 기술적 수준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비록 비형식적인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위에서 설명한 초등학교들과는 달리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도제교육은 직업훈련을 시작하는 도제(apprentice)단계, 직인(journeyman)단계, 장인(master)단계 등 주로 3단계로 이루어져있었는데, 어떤 하나의 기술이나 기능을 완전히 습득하여 조합으로부터 장인으로 인정받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자유로운 직업생활에 종사할 수 있었다.도제교육은 제도적 공장교육으로 유럽의 산업발전에 토대를 제공하였으며, 자신의 직업에 자신감, 긍지, 보람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작업의 세습 및 교육의 자주성에 대한 기초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도제교육은 19세기 근대학교의 출현과 더불어 그 기능을 학교에 이양하면서 쇠퇴하였으나, 유럽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결론
    교육학| 2005.11.08| 6페이지| 1,500원| 조회(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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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및 교육사]그리스시대의 교육
    1장 그리스 시대의 교육제1절 그리스 사회와 교육1. 그리스 문화의 특징과 교육그리스 사회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정신과 그리스 사회의 문화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첫째,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인간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파악했다. 신은 인간과 동일한 성격을 갖는 인간적인 존재로서 나타난다. 인간적 관점에서 신인 동형 동성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그리스 사회는 조화와 균형을 중시했다. 올바른 사고의 균형을 의미하며 이는 로고스로 표현된다. 셋째, 그리스인들은 세속적이며 현세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초월적이며 영적인 힘에 의존하기보다 현실생활에서의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넷째, 모든 고대사회와 같이 계급사회로서 귀족중심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했다. 생산의 경제적 기능을 제외한 정치, 문화, 예술, 교육, 군사 등의 기능은 귀족계급에 해당되었다. 다섯째, 문화융합과 창조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주변에 그들의 영향을 확대하면서 여러 문화를 흡수 통합하는 용광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2. 초기 그리스 사회의 교육호머의 시대: 이 시대는 전설의 시대에 해당하나 근대에 와서 새로운 유적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발견됨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 시기이다. 호머가 기록한 그리스의 이상적 인간상은 이중적이다. 지혜의 인간으로서 오디세이와 행동의 인간으로 아킬레스로 대표된다. 전자는 판단, 통찰, 기민, 웅변 등의 지적 덕을 소유한 인간이며, 후자는 용기, 인내력, 강건, 감투 등의 실천적 덕을 구비한 인간이다. 이는 서구의 귀족계급에 필요한 품성과 용기를 말하는 것으로 문과 무의 인간상을 지칭한다.이 시대는 사회교육과 가정교육이 중심이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무용과 웅변이 교육의 이상이었다. 귀족의 자제가 그들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모방과 직접 경험을 통해 습득하도록 했다. 그들에게 요구된 가장 중요한 덕은 귀족으로서 개인의 영예와 탁월성, 자기 표현상이 되었다.스파르타의 교육: 지리적으로 외부세계와 고립되어 대부분의 도시국가보다 오랫동안 그리스적인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의 정치 군사지도자들은 그들의 국민이 공적 이익을 위해 국가에 헌신하도록 요구했다. 귀족들을이 사회체제의 전복을 시도하는 다수의 피압박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이에 적합한 형태의 교육을 부과했다. 스파르타의 교육이상은 전투적인 시민양성에 있었으며 국가에 의한 엄격한 통제에 의해 이루어졌다,전체로서의 집단이 부분으로서의 개인의 총합보다 더욱 중요하며 개인의 계속성은 사회의 계속성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관점에서 집단과 사회의 가치를 유형화한 사회중심의 교육목적을 정당화시켰다. 이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동교육에 대한 국가적 기능은 아동의 출생과 더불어 수행되었다. 7세 이후에 아동은 국가교육관에 의해 공적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교육내용은 신체적 단련을 중심으로 하여 정신적 도덕적 훈련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군사적 도덕적으로 훈련되었으며 전투의 방법, 선악의 구별, 민속의 내용 등을 배워서 알고 있었다. 지적인 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등에 머물렀으며 음악과 무용이 포함되었다. 스파르타의 여성교육도 다른 도시국가에 비해 엄격한 편이었다.아테네의 교육: 초기 아테네사회와 교육: 이 시대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발달은 완만했으며 경제적 빈곤은 과도기까지 계속되었다. 아테네는 기원전 7세기경의 귀족중심의 공화정에서 과도기에는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정으로 전환되었다.스파르타와는 달리 가정이 중요한 교육기관이었으며 교육은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아버지의 주도하에 수행되어졌다. 7세 이후 교복이 아동을 수행해 주는 두 가지의 학교는 음악학교와 체육학교로서 6세기경 가장 번성했다. 전자는 독, 서, 산, 시에, 후자는 체조와 운동경기에 치중한 것 같다. 음악은 아테네 교육에서 이론적 성격과 통합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예술과 과학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교육목적은 신체, 정신, 도덕의 조화에 중점을 두었다. 후기 아테네 사회에 계속된 자유교육의 정신이 이미 싹터 있었다. 그래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기술은 학교교육에서 제외되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생활의 토대가 되는 노동과 실제적 기능을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여성교육은 스파르타보다 훨씬 소극적이었다.3. 후기 그리스 사회의 교육후기 아테네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은 개인의 여가시간과 사회활동의 기회를 증가시켰다. 아테네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세계주의적 성격은 공리를 위한 봉사보다 개인의 발전과 성공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이 새로운 시대의 교육목적은 세계주의적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요구의 충족과 언어적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전통적 교육행태는 변질되어 초기의 조화적, 심미적 인간의 이상 대신에 언어적 능력의 인간이 중시되었다. 초기의 통합 교육적 효과보다 형식적 문학 연마와 개인적 쾌락의 효과에 더욱 치중했다.제2절 그리스의 교육사상가1. 소피스트후기 아테네의 교육 실제에 기여한 사람들로 학문이 뛰어나고 웅변의 자질과 기능에 탁월한 일군의 직업적 교사로서 소피스트를 들 수 있다. 소피스트의 대표적 학자인 프로타로라스는 개별적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고 진리의 개별 인간이 지각하고 경험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에게 진리로 보이는 것은 진리이고 타인에게 진리로 보이는 것은 타인의 진리가 된다. 가치척도에 있어서도 철학적 기준과 사회적 기준보다 개인의 주관적 척도를 강조하게 되었다. 페리클레스 시대가 낳은 산물로서 개인적 능력중심의 자유주의사상에 일치하고 있다.소피스트들은 교육의 공리적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초기 그리스 사회에서 크게 중시하지 않던 지식 교육을 자유교육의 한 형태로서 강조했다. 교육을 공적 생활에 성공을 위해 필요한 지적 능력의 성취과정으로 규정하여 신체적, 정의적 요소의 교육을 무시하였다. 이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당시의 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지식을 수합하고 지적 회의의 풍토를 제기한 것이다. 어떤 점에서 소피스트의 회의론, 상대주의, 개인주의는 주관적 이성에 의해 사고할 기회를 강화하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출현을 재촉했다.2. 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론을 사색하면서 인간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연구, 특히 개인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 한계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있어 지식은 덕으로 생각되었다. 지식은 모든 도덕적 행위의 기초로서 지식이 자유행동의 필요조건이다.그의 교육관은 모든 개인들에게 올바른 사고방법과 생활방법을 가르치는 데 있으며 이를 관찰과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인간을 지각하는 존재로서보다 합리적 사고의 존재로 파악했다. 개인적 성공과 행복을 보장받은 소피스트식의 인간형성보다 덕과 지혜를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을 소유한 인간형성이 교육의 목적이었다.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사고의 훈련 없이는 그 자신의 경험과 의식에서 진리로서의 보편타당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교육활동의 목적은 개인에게 이 보편타당성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었다. 진리는 관념의 기계적 교수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계획된 지속적 사고와 반성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은 점에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귀납적 방법의 창안자는 아니며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을 의식으로 고양하기 위해 반성적 추상화를 추구했다.3. 플라톤플라톤의 교육사상은 공화국 및 법률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아카데미아의 창설자로서 순수한 학문연구에 전념하면서 공화국에서 이상국가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원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즉 영원불멸한 이데아의 세계와 변화 생멸하는 감강의 세계인 현상계로 구분한다. 여기서 이데아는 시공을 초월한 실재의 세계로서 보편자에 해당한다. 현상계는 이데아의 영상에 불과하며 그림자가 반영한 불완전한 모사이다.변화의 세계보다 실재의 세계가 중요하며 초월적 추상적인 이론화의 과정이 정신적 발달의상계는 가변적이기에 불환전하다. 그러나 현상계가 이데아계의 모방이기 때문에 이데아를 상기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교육을 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마음속에 부과해서도 안되고, 적절하지 못한 지식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는 어떤 원리나 준거를 제시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데아에 유사하게 접근함으로써 개별자가 의미를 갖제 된다는 주장은 직관론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m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상적 사회사상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이데아의 세계에서 개별적 이데아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하고 있듯이 국가도 각 요소와 기능이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룩할 때 좋은 상태로서 정의로운 국가에 해당된다.정의는 사회의 조직과 기능을 분배하는 기제로서 이는 국가의 기본원리의 하나이다. 플라톤의 정의관은 선의 이데아와 결합하게 될 때 명확하게 설명된다. 순수 존재의 영역으로서 선이 모든 관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평가된다. 국가의 기능은 삼분되어 각각의 기능이 전체로서 조화될 때 정의의 이상국가가 된다. 이 각각의 기능은 각각의 사회의 계급을 상징한다. 이 계층에 대응되는 세 가지 덕으로절제, 용기, 지혜가 있으며 각 계층이 그들의 고유한 덕을 실현함으로써 국가는 정의의 국가가 되며 선의 이데아가 현실에서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기능 가운데 정치적 기능이 최고의 기능이 되며 이는 개인에 있어 이성의 기능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국가적 기능을 수행하며 교육의 사회적 선별기능을 중시하고 있다. 플라톤은 세습적인 신분보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구현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개방하는 점에서 이상국가의 교육이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물질적, 감각적, 정의적인 것보다 이성적, 정신적 지적인 것을 강조함으로써 주지주의적 교육론을 나타낸다. 따라서 제 3계층에 해당되는 상인, 노동자, 농민 등에 대한 교육은 실제적 훈련이었다. 사변적 능력이 실천적 능력보다 우월한 것으로것이다.
    교육학| 2005.11.08| 5페이지| 1,5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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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사]로마시대의 교육
    제2장 로마 시대의 교육1. 공화정시대의 교육초기 왕정 및 공화정 시대의 교육은 로마가 B.C. 146년에 그리스를 정복하기 이전까지의 교육을 말한다. 로마는 강력한 노예제 사회였다는 점에서 그리스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리스에 비해 가족 중심적인 경향이 강했다. 그리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가 매우 발달하였으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그리스의 기생물에 지나지 않았다. 교육 역시 그리스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수행 중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로마에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와 질서 있는 시민이 요구되었다. 교육의 일차적인 목적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얼마든지 감수할 애국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전체적인 교육의 틀은 군사교육이었으며, 선량한 시민의 양성 또한 군사교육의 범주에 포함되었으므로 전시에는 정복자가 되게 하고 평시에는 선량한 노동자, 유능한 시민이 되게끔 훈련시켰다. 교육 내용은 전쟁 수행과 공적 생활에 필요한 도덕심, 준법정신, 기초적인 3R's 및 강한 신체적 훈련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로마의 교육사는 전쟁사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를 유지시켜 나가기 위해서 교육을 통해서 법률을 존중하고, 사소한 일에도 증서에 의한 권리와 의무를 중시하도록 교육시켰고,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 애국심과 정의감을 강조하였다. 또한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며, 신을 숭상하고 부모를 존대하였다.공화정시대의 로마교육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첫째는 전통에 기초한 교육으로, 로마인이 생각했던 교육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전수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전통을 전수하는 행위이며, 교육받는 사람이란 전통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둘째는 이 시대의 교육이 공립학교를 통해서 수행된 것이 아니라, 강력한 부권을 기초로 한 가정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비록 교육은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국가가 초기에는 교육을 강하게 통제하지 못했다.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행위와 사회적 의무, 그리고 책임의식을 가르쳤다. 십이동판법이 나오기 전에는 문자교육에 관한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십이동판법의 출현이 문자교육의 출발로 보여 진다. 교육내용은 주로 십이동판법과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와 종교의식이었다. 아동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종교와 도덕적 훈련의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남자아이들은 실제생활을 통해서 농장에서 농경법을, 회의장이나 법원에 가서는 국사에 관한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배웠다. 여자아이들도 어머니로부터 예의범절과 국가에 대한 봉사 및 가사, 방직 등에 대해 배웠다.전반적으로 초기의 로마교육은 지적 교육보다는 암기훈련과 실천을 우선으로 하는 도제제도에 의한 실습 등이 강조되었다. 고대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는 로마교육에도 적용되어 엄격한 훈련과 체벌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로마에는 형식교육기관이 없었기에 가정교육과 비형식적 사회교육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시민 가운데 가장이 자녀를 교육시킬 능력이 없는 가정은 사숙에서 교육할 필요가 나타났고, 그리스 문화가 로마에 들어온 이후에 초기 가정교육의 보완으로 사립초등학교인 루두스(Ludus)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는 가정교육의 보조수단으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점차 국가의 규모와 조직이 방대해짐으로써 형식적 교육기관이 생기고 초기의 가족의 교육적 기능을 이들 기관이 떠맡게 되었다.2. 제정시대의 교육로마는 기원전 2세기경에 유럽 일대를 영토로 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제국을 건설하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전쟁의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방면에서 생활과 가치관이 초기의 왕정이나 공화정 시대와 많이 달라지게 된다. 로마인들의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도덕심과 준법정신 단결의식과 같은 성격은 정복 기간에는 잘 유지되었으나, 정복이 완료된 후에는 후기 그리스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퇴폐문화의 유입과 함께 급속도로 타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또한 초기의 성격이 많이 변질되었다. 즉 후기 로마의 교육적 이상과 목표는 그리스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그리스화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이 시대의 교육 목적은 지적 발전에 중점을 두고 국가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지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데에 있었다. 즉 공적 대화를 위한 언어적 숙달능력을 강조하여 완전한 웅변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덕성을 강조하였으며, 실제적이고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교양을 주입시켰다. 그 구체적인 목적은 도덕적 성격, 넓은 교양,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 등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였다.제정시대의 학교의 종류는 공화정말기에 생성된 초등교육기관인 루두스, 중등교육기관인 문법학교, 고등교육기관인 수사학교와 대학 세 가지 종류가 있었고 교육내용에 있어서도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제정시대의 학교교육은 주로 중등교육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초등교육은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초등교육에서는 7세에서 12세까지의 소년을 대상으로 시민성, 도덕성, 신체적 단련과 초보적인 독?서?산, 시와 동화 십이동판법의 내용을 가르쳤고, 중등교육는 로마인들이 가장 그리스적인 자유교육에 접근했던 곳이다. 중등학교에서는 12세에서 16세까지의 소년을 대상으로 그리스 문법, 라틴어 문법, 수사학 등을 강조했으며, 문학작품이 중심이 되고, 역사 지리, 신화 등이 추가되어 정신생활을 풍요하게 해 주었다. 고등교육에서는 고급 수사학, 철학, 법률, 웅변술, 역사 등을 가르치고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도제로서 실습에 중점을 두었으나 서서히 형식적 학교교육의 형태를 취했다. 로마의 대학교육은 도서관이 창설되면서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철학은 대부분 대학에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의 실용주의와 법 중심 사고 때문에 정서 및 음악교육은 실시하지 않았다.전체적으로 후기 로마의 교육은 그들이 목표했던 광범위한 재능을 가진 전인적 웅변가를 기르지 모하고 편협한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데 머물렀다.3. 로마시대의 교육사상가카토(Marcus Poricus Cato, B.C. 234~149)공화정시대의 애국자이자 국수주의 정치가인 카토는 그리스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교육을 통하여 고대 로마의 전통과 미풍을 살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사회도덕의 확립을 교육이념으로 하였고, 맑은 지성과 날카로운 판단력과 결단력과 의지가 강한 인간형성을 교육목표로 삼았다.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43)공화정 후기의 통령으로 웅변가이자 법률가이기도 한 키케로는 그리스화한 대표적인 교육사상가로 국수주의적인 경향과 그리스의 인성론적 철학사상을 조화시켰다. 그는 교육의 이념을 인간의 천부적 소질을 완성하며 이성적 존재로서의 덕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두었다. 그는 성선설에 입각하여 교육에 의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며 이것이 바로 덕이라고 하였다. 그의 교육론의 내용은 희랍문화를 중심으로 하되 교육의 목적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또한 웅변술을 배우는 것은 청소년의 명예심을 자극하여 타락한 도덕의 부활과 잘못된 개인적 도피를 바로 잡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세네카(Marcus Seneca, B.C.54~A.D.34)사상가이며 대문장가인 세네카는 진보적인 교육사상을 제시하였다. 그의 본질적인 교육관은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데서 덕과 행복을 얻게 된다는 도덕주의 교육관으로 대표될 수 있다. 그는 성악설의 입장에서 인간은 원래 악하게 태어났으며, 이를 선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육방법으로 엄격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과거의 주지주의, 암기주의, 형식주의의 비실용적인 교육을 배격하고, 근대적인 생활교육 사상과 개성존중 사상을 강조했다.퀸틸리안(Marcus Fabius Quintilian, A.D.34~97)퀸틸리안은 제정시대의 교육사상가이자 실천가로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어린이의 선천적 능력을 개발하는 일을 교육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으며 웅변가 양성을 교육의 구체적 목적으로 간주하였다.
    교육학| 2005.10.26| 4페이지| 1,500원| 조회(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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