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아지는 오존층과 생태계‘생명의 다양성’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굳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를 하기위해 곤충채집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수많은 곤충들과 풀들을 보며 경험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생명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그 중요성이 우리의 일상에 다가서게 되었는지, 그 보존이 왜 중요한지는 당장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해야 하는 일상을 사는 일반적인 도시인들에게는 경험적인 기억처럼 쉽게 몸소 체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학기 ‘생명의 다양성과 보존’이라는 수업은 이처럼 쉽지 않은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나의 인생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얇아지는 오존층과 생태계’라는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한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성층권의 오존 총량 감소가 끼치는 영향을 생태계 전반에 걸쳐서 소개하고 과학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오존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오존량의 감소로 인한 자외선-B영역의 복사가 플랑크톤이나 식물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정교한 실험을 통한 비교적 정확한 결과들이 알려져 있어 자세히 알 수 있지만, 피부의 손상이나 피부암, 백내장 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지식이 축적되지 않아 그저 예방을 강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작은 자연환경의 변화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방대하기 때문에 이 책의 결론이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해보면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적어도 자외선의 특정한 영역의 복사량 증가가 생태계를 비롯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하여 알린 것만으로도 그 성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고 이런 성과를 올려준 과학자들에게 감사를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사랑을 한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가족, 친구, 애인, 애완동물 등 사람은 누구나 주위에 사랑하는 대상이 분명 존재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애인과 밤늦도록 함께 있고 마음,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길 바라는 마음 등은 내가 그 혹은 그녀들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한다는 마음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밤낮으로 고생하며 길거리 행상을 하시던 부모님이 노년기에 피부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자식은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만약 그 자식이 이 책을 읽었다면 정확한 처방은 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예방은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예방은 한 번의 강한 자극 보다 지속적인 자극이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피부암을 미리 예방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 혹은 애인에게 자외선 차단기능이 있는 좋은 Sun glass와 챙이 달린 모자를 선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피부암에 대한 예만 제시했지만 이 뿐만이 아니라 환경에 대해서 다각도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적어도 흔히 겪게 되는 무서운 질병들을 일정 수준이상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정말 어쩔 수 없이 질병을 겪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대응책을 찾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책 한권을 읽는 사소한 관심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책의 작가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부모님이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우리 곁에 계실 수 있게, 또한 나의 배우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노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고 현세는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함께 호흡하고 접촉하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사랑이 아닐까?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환경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가 과학적인 실험에 의한 정량적인 결과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보통 환경 혹은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는 그 결과를 당장 얻을 수가 없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서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때로는 이 결과가 처음의 가설과는 다르게 아주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연구들은 향후 인류의 미래와 직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중단할 수는 없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정도가 고도화 될수록 환경을 보존하는 기술에 대한 소유권이 한 나라의 GDP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에 대한 국제적인 협약들이 계속해서 체결되면서 앞으로는 오염물질 배출에 대해 국제사회가 제제를 가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환경을 보존하는 생산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서 생산량을 줄이는 것 외에는 국제적인 기준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이는 곧바로 실업으로 이어질 것이고 경제성장은 더욱 둔화될 것이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결국 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들이 부족해지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다. 반면 지금부터 꾸준한 투자를 통하여 환경 기술 개발의 선두 위치에 서게 될 경우 생산량 증대는 물론이고, 개발된 기술을 후진국에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멀리하고 더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서 이공계 학생의 전체적인 비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상대적으로 더 우수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 행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투자 방식을 결정하는데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환경을 보존하는 과학에 대한 투자가 단순히 정부부처에 대한 투자에 그치거나,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학생일수록 자신의 미래소득에 대한 계산이 확실할 것이므로 4년 장학금을 위해 미래의 훨씬 더 큰 소득을 포기하면서 이공계열에 진학하지는 않을 것이다(물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학생들도 분명 어느 정도 존재하겠지만). 결국 구조적인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공계열 출신의 학생들도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합당하는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한다. 무작정 학생 수를 늘리기 보다는 유인체계를 마련하여 정말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열에 진학하게 하고 민간과 협력하여 이공계열 출신의 고학력 인재들을 높은 연봉으로 고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의대와 한의대의 정원을 늘려서 의사와 한의사의 공급을 늘리면 이들의 평균 연봉이 하락하여 오히려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을 꾀할 수 있다.장기적인 연구 역시 중요하다. 가끔 뉴스 단신을 보면 외국의 유명한 대학의 과학자가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사한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사소하다고도 볼 수 있는 실험결과가 소개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연구에 대한 성과가 적다고 여겨진다. 안 그래도 열악한 지원 환경에 성과가 없으면 연구비 지원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떤 과학자가 마음 편히 연구를 진행 할 수 있겠는가? 당장의 성과가 없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역시 매우 중요할 것이다.
‘사치와 자본주의’와 ‘저주의 몫’에서 나타나는 경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사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저주의 몫’, 이 두 책은 모두 우리가 그동안 자주 접해온 주류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경제현상을 해석한다. 주류 경제학의 분석 방법에 익숙해져있는 입장에서 위 두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들은 생소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새로움 때문에 흥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럼 이제부터 ‘사치와 자본주의’와 ‘저주의 몫’의 중심내용을 정리한 후, 두 책이 보이는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를 비교하고자 한다.?사치와 자본주의중세는 신이 온 유럽을 지배한 사회였다. 모든 행동의 최종 목적은 ‘신’이었고 ‘신’을 거역한 개인은 비록 그가 ‘왕’이라 해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단죄 받았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존재하기 어려웠고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찬양은 무거운 죄로 여겨졌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인 사랑은 ‘신’에 대한 봉사일 때만 인정을 받았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구속받았다. 사회체제로는 봉건제가 그 전통을 뿌리 깊게 유지하고 있었고 부(富)를 소유한 사람들은 지주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지리상의 대발견에 의해 토지에 바탕을 두고 있던 중세 초기의 봉건적인 부(富)와는 다른 거대한 화폐 재산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양에서의 귀금속 광산의 개발로 인해 대규모로 유럽대륙으로 유입 되었다. 이 결과로 원래의 귀족과는 다르지만 또한 평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새로운 부(富)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벼락부자)이 등장하게 되었고 새로운 계층은 경제적 지위 상승을 바탕으로 원래의 귀족 계급과의 혼인을 통해 사회적인 지위의 상승까지 이루게 되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 도시들은 소비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귀족과 새로운 계층은 발전한 대도시에서 화려한 소비의 과시를 통해 그들의 권위를 내세웠으며 이를 흠모하는 도시 밖의 귀족들과 도시의 소비를 책임질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시로 유입되었되었다. 사랑은 더 이상 감춰야할 대상이 아닌 겉으로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결혼과는 별개의 비합법적인 연애가 유행이 되었고 아내 이외의 ‘애첩(정부, 첩, 귀여운 여인 등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되지만 결국 그 의미는 모두 같다.)’을 두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남자들은 ‘애첩’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그녀들이 좋아하는 사치품 구입에 열을 올렸고 그녀들과의 우아한 잠자리를 위하여 최고의 건축과 최고의 가구와 최고의 장식을 원했으며 여성들 역시도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유행처럼 퍼졌으며 결국 사치품에 대한 넘쳐나는 수요가 자본주의를 탄생 시켰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치와 자본주의’의 중심내용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명확히 정의하기 위하여 그 필요조건을 영리원칙의 지배, 경제적 합리주의의 지배, 산업규모의 크기, 생산자와 노동자의 구별로 정리하며, 사치품 산업은 생산과정의 성질, 판매의 성질, 인위적인 탄생, 대량상품 판매의 부진이라는 산업 자체의 특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자본주의를 탄생시킨다고 주장한다.?저주의 몫저자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아래 지구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경제에 관한 개별적인 이론이나 현상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결코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다. 경제에 대한 개념은 일반경제와 개별경제로 나누어진다. 일반경제의 법칙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과 이론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현실을 설명하고자하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있다. 이 법칙에 의하면 태양은 아무런 대가없이 빛에너지를 지구상의 생명체에 공급한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생명체는 자신의 삶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행동(기능적인 활동, 먹이 찾기, 근육활동 등)에 요구되는 에너지를 다 사용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반드시 남는 부분이 존재하며 이것은 ‘잉여’, ‘과잉 에너지’ ‘부(富)’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는 무가치하고 소모의 주체에게 어떤 유용성도 제공하지 못하는 순수한 낭비 또는 사치의 형태로 행해져야만 하며 ‘죽음’, ‘먹기’, ‘유성생식’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개별경제의 법칙은 풍요와 빈곤을 설명한다. 총체적으로 지구상에는 반드시 잉여가 존재하지만 개별적으로 관찰하면 빈곤한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집단은 빈곤을 탈출하기 위하여 당장의 소비 욕구를 참고 내일의 발전을 위해 잉여를 성장에 투자한다. 빈곤의 존재 때문에 성장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인정되며 따라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잉여의 축적도 계속된다. 개별경제의 이러한 법칙은 일반경제의 법칙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일반경제의 법칙과 개별경제의 법칙 사이의 모순 때문에 결국 세상은 불안정한 상황을 맞게 되고 이 상황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소모’ 이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개별경제의 법칙(풍요와 빈곤의 공존) 때문에 ‘소모’의 필요성은 부정되며 극한에 다다른 세상은 결국 ‘무의지적인 파괴’라는 극단적인 방식에 의해 ‘잉여’를 ‘소모’한다. 이는 전쟁(전쟁이야말로 무기소비, 살인 등 무가치한 소모의 정점을 보여준다.) 또는 참화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반경제법칙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잉여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좀 더 완화되고 비참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나타는 현상이다. 저자는 ‘아즈텍 문명’과 ‘포틀래치’, ‘이슬람 사회’, ‘라마교’ 등의 예를 통해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잉여’의 ‘소모’ 형태를 제시하며 나아가 이 논리를 자본주의의 등장과 산업혁명,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과 마셜플랜에 확장시킨다. 마셜플랜은 인류가 고전경제법칙(이윤이 있을 때만 거래하라)을 무시하고 일반경제법칙을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희망적인 선택이었다. 소비에트 혁명은 내부적으로는 ‘성장’에 모든 잉여를 쏟아 붓는 바람직하지 못한 체제였으나 소련의 존재 자체는 세계적인 위협이었으며 이러한 위협이야말로 마셜플랜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였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인류의 . 휴식, 고요한 상태는 잉여의 축적을 통해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무기 제조, 군비 경쟁 등 잉여의 ‘소모’를 통하여 전쟁의 위협 상태를 유지시키는 ‘역동적 평화’야 말로 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평화이다.?두 책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1. 분석방법‘사치와 자본주의’(이하 전자)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행동변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고찰하는 반면 ‘저주의 몫’(이하 후자)은 경제를 전체적으로 하나의 특성을 갖는 존재라 가정하고 사회현상들을 고찰한다. 경제학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굳이 비교하자면 전자는 미시적인 분석 방법을, 후자는 거시적인 분석방법을 통해 세상을 관찰한다고 할 수 있다.전자는 지리상의 대발견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계층의 소비행태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등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새로운 계층에 의해 불기 시작한 사치의 바람은 유럽의 각 나라의 궁정을 뒤 덮었고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엄청난 사치를 자행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권력은 사랑마저도 강력하게 만들었는데 일례로 베르사유 궁전은 그가 사랑했던 ‘애첩’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 전체에 사치라는 하나의 바람을 일으켰고 폭증하는 사치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요구 되었다. 그 결과 자본주의가 태동하였다.후자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세상으로 간주한다. 이 지구는 하나의 원칙에 의해 어떠한 상태로 달려가며 그 상태의 마지막은 결국 ‘소모’로 귀결된다. 지구의 ‘과잉’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법을 찾는 통로는 바로 일반경제의 법칙이다. 세상은 태양에게서 주는 것 없이 에너지를 받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잉여’가 존재하며 이 부분을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파괴해야만 더 비참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2. ‘성’의 개념‘성’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면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성’은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라 할 수 있다. ‘성’에 대한 두 책의 주명상, 대화, 토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쁨의 포기를 통한 자기 수양 등은 2차적인 쾌락이라 할 수 있다). 본능적인 쾌락을 굳이 다시 표현하자면 쾌락을 좀 더 순수하고 감각적으로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눈, 코, 귀, 입 등을 가장 순수하고 감각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사치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좋은 향수 냄새를 맡으며, 좋은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쾌락을 느낀다. 즉 ‘성’은 사치와 함께 1차적인 쾌락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말할 수 있다.후자에서의 ‘성’ 역시 사치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성’은 사치 혹은 소모의 훌륭한 하나의 수단이다. 인간은 조금 더 일할 수 있던 시간을 쪼개고, 조금 더 일할 수 있던 자신의 에너지를 성 행위에 소모하게 된다. 만약 이 성 행위가 ‘생식’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한 인간의 ‘생식’은 곧 인간이라는 ‘종’의 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소모’라 할 수 없다.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성’의 개념을 두 책의 전체적인 입장을 고려하여 해석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얻게 된다. 전자에서의 ‘성’은 그것과 맞닿아있는 사치성 소비를 부추겼고 사치성 소비의 증가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의 출현을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는 곧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질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후자에서의 ‘성’의 개념은 역시 사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자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 인간이 자신의 잉여 에너지를 ‘성’에 소모하지 않고 또한 다른 어떤 소모에도 사용하지 않는 다면 결국 이 잉여 에너지는 언젠가는 성장에 이용 될 것이다. 즉, 잉여 에너지의 비축은 성장을 야기하고 이러한 성장은 산업발달과 자본주의의 탄생의 원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성’은 위와 같은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전자의 ‘성’과는 대조적으로 자본주의의 탄생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처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학문의 아버지로 애덤 스미스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철학과 법학과 의학의 역사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반해 애덤 스미스는 200년 전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경제학이 위의 유서 깊은 학문에 비해 습득하기 쉽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중요성 역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경제학은 200년이라는 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고 수많은 이론들이 생겨났으며 그 분야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넓어지고 내용은 계속 깊어져왔다.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있고 난해한 학문이지만 이러한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대학 초년생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체계적인 강의를 받아본 적도 정보를 접해본 경험도 없이 그저 점수를 위한 공부만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경제학은 낯설고도 힘겨운 부분이었다. 비록 경제학이 넓고 깊은 학문이지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통해 학문의 전반을 소개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앞으로 공부해나갈 전공의 역사와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얻었다.박정희 대통령 이후 계속해서 이어오던 쌀 시장 보호가 이제는 더 이상 힘들 듯 보인다. 국제 쌀 가격의 4배를 상회하는 고가 정책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우리 농가들은 ‘자유무역’의 물결이 쌀 시장까지 휩쓸게 됨에 따라 이제는 더 이상 정책적인 뒷받침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경쟁력으로만 살아남아야 한다. 경제라는 논리를 현실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고리가 바로 정치이기에 두 부분을 모두 함께 고려해야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리카도는 정치가들에게 2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선택을 요구한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문 닫고 함께 망하느냐, 문 열고 다 함께 풍요를 누리겠는가?’ 라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리카도가 왕성하게 활동할 무렵 영국에서는 곡물법을 시행하여 값싼 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금지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상당히 흡사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리카도는 물론 전면적인 개방을 주장한다. 보다 더 싼 값에 보다 더 많은 재화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는 ‘자유무역’이 얼핏 듣기에는 너무나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과연 리카도의 이러한 의견이 모두 타당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한편 인구론을 통해서 인류의 재앙을 예견한 맬서스는 대체적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했지만 곡물에 대해서만큼은 반대 입장을 보였고 이 때문에 리카도와 자주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나타났다. 과연 해법은 무엇인가? 리카도의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 쌀 시장이 개방될 경우 당장 내일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모두 잃게 된다. 만약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의 이익을 모두 환수하여 농민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가정할 경우 이 정책은 시행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효율적이지 못한 우리나라의 정치 시스템은 농민들만을 희생자로 몰아갈 것이고 개방의 이익은 소수집단이 독식하게 될 것이다. 쌀 시장이 개방된다고 해서 평생을 농사짓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공장의 직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방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직업교육을 통해 산업 간의 노동력 이동이 일정 정도 이상 실현되어야 하고 개방의 이익이 농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한다.
나비효과에 나타난 경제적 현상으로 비추어본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공부를 아주 조금이라도 한 학생이라면 자세히는 몰라도 나비효과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지문을 통하여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작은 변화가 증폭되어 폭풍우가 된다.”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매우 추상적일 수 도 있는 이 문구가 영화 ‘나비효과’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또한 현실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일상생활 속에서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기는 이상한 신체 증상을 갖고 있다. 어떠한 일을 함께 겪었던 친구들은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반면 주인공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의식을 잃고 그것들을 궁금해 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와중에 주인공은 우연히 자신의 기억을 다시 되찾는 방법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기억 상실 문제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치료의 수단으로 매일 매일 적어놓은 일기장을 꺼내 보게 된 그는 일기장속의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실마저 재구성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어린 시절 첫사랑과 이별을 하고 현재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주인공 에반은 그녀가 어린 시절 자신과의 잘못된 관계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낙담한다. 그는 너무나 사랑했던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를 자살로 몰아간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조치를 취한다. 현실로 돌아온 그는 꿈만 같게도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으나 이 짧은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하고 에반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살인자가 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던 자신의 시도가 결국은 또 다른 비극이 되어버리자 그는 다시 한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예전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에반은 들뜬 마음에 그녀를 다시 찾는다.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던 그녀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술과 마약에 찌든 창녀의 신세로 전락해 버린 그녀를 보며 너무나 마음이 아픈 에반은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꾼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고로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자신과 자신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그녀를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에반은 그녀의 불행과 자신의 불행이 처음 만남부터 잘못된 것이라 확신하고 다시 한번 처음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그녀에게 심한 말을 퍼부어 그녀가 자신에 대한 호감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해 버린다. 결국 다시 돌아온 현실은 그의 노력대로 매우 평온하고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던 에반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에반은 사람들이 북적대며 많이 지나가는 거리에 정신 심리 상담소를 차리고 살아간다. 어느 날 하루일과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수많은 인파 속에 어린 시절 자신이 떠나보낸 그녀와 우연히 스쳐지나가게 된다. 물론 그는 그녀를 알아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에반은 그가 진정 원하던 행복하고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안도한다.전반적인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경제현상보다는 오히려 현대 자연과학과 더욱 연관성이 깊어 보여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의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서 현실을 바꾸려 할 때 그는 분명 바꾸기 전의 현실 보다는 더 나은 현실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더 나은 현실은 언제나 이전의 현실에 비해 부족한 뭔가가 하나씩 꼭 존재했다.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요소 한 가지는 자신도 모르게 ‘포기’되었던 것이다. 그녀와의 행복한 생활을 며칠 하다 못해서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고 이러한 현실을 피하려 다시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바꾸려하자 그녀는 더욱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시 현실을 바꾸려하자 이번엔 에반 자신이 불행해지고 그녀는 자신의 친구와 사랑에 빠져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틀을 놓고 볼 때 결과적으로 그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 자신의 사랑 속에서 행복한 그녀를 꿈꾸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고 이 사랑의 가치는 에반에게는 정말 소중하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그녀의 행복을 제외하고). 그는 마지막 선택을 위해서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었다.또한 ‘나비효과’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제적인 선택을 하려 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비효과를 설명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상을 예로 들어보자. 나비 효과란 중국 북경에서의 나비의 날개 짓 같은 작은 변화가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과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한다. 나비 효과는 만약 이 나비가 가만히 꽃에 앉아 있었다면 허리케인이 뉴욕을 지나는 일이 없었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비 효과의 날개 짓과 같은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것을 장기적으로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변덕스런 성질 때문에 한 달 후, 또는 일년 후의 일기예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기예보에 관한한 최첨단의 현대과학을 동원한 장기예보나 관절염에 걸린 노인들의 예측이나 정확성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지 하루나 1주 후와 같은 단기예보조차도 실제 날씨와 다른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영화에 대한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주인공의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나비효과’를 염두에 두고 영화에 접근해 보자. 에반이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했던 것들은 정말로 나비의 날개 짓 만큼이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과거의 한 시점의 선택의 순간에서 단지 정말 아주 작은 차이만을 주었을 뿐인데 바꾸기 전과 바꾼 후의 현실은 말 그대로 천지 차이였다.위에서 언급했던 영화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일반화 해보면 첫 번째의 경우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과 그 의미가 어느 정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실업을 줄이고 경기를 활성화 하고자 뉴딜 정책 시행을 발표하고 금리를 인하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조치들은 지나칠 경우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과열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국 정부는 경기의 활성화를 위하여 물가 안정이라는 가치를 포기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은 경기가 활성화 되었을 때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는 편익과 물가와 경제의 안정화가 주는 편익을 신중하게 비교하여 시행되어야한다. 또한 현재 참여정부와 열린 우리당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개혁 법안들이 우리 사회가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를 씻어내고 과도기적 성격을 띄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풍토를 바꾸어 장기적으로 좀 더 선진적인 나라로 바꾸는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현재 민생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개혁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주장하며 당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개혁법안들은 접어두고 경제 살리기에나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다만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어느 쪽의 주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당장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의 처지도 생각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좀 더 투명해지고 성숙해지는 것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측은 무작정 싸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더욱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결정되면 지체 없이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하고 나머지는 일단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되는 의미 없는 싸움은 그만두고 우리나라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목표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한다. 에반이 결국 그녀의 행복이라는 가치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듯이 정책 입안자들 역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자신이 취했던 반대 입장은 일단 접어두고 협조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반대 입장을 아무리 주장해 봤자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민주주의FTA,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우리나라와 칠레와의 FTA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되어 10년 이내로 한국과 칠레는 단일 시장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칠레와의 협정 체결로 이제는 칠레뿐만이 아닌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들과의 단일 시장 구축도 빠르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가 세계화의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여러 나라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어떻게 보면 아주 이상적이고 따뜻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시대 흐름의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언론 역시도 처음 겪는 FTA체결과정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국회를 연일 비난하고 한국의 ‘무역 외톨이’신세를 염려하며 세계화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의 밝은 면만을 부각 시키려 상당히 애를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협정 체결 후에는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국회에 대한 비난과 이제는 안심이라는 안도의 목소리가 거의 대부분의 반응 이었을 뿐 새로운 경쟁체제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간략하게 소개 되거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았다. 온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세계화’, 이 명분 하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밝은 면만을 강조해도 좋은 것인가?? 20C 후반 공산권의 몰락 이후 명백한 승리를 등에 업고 전 세계를 뒤덮게 된 ‘자유민주주의’, ‘자유’와 ‘민주’라는 전혀 상반된 두 개념이 엎치락뒤치락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화는 ‘자유’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민주주의’는 사회주의처럼 극단적으로 결과의 평등까지 주장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평등에 그 기초를 둔 사상이다. 여러 가지 삶의 조건들이 평등한 상황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를 최대한 줄이려하고, 또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하건 모든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1표의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FTA는 말 그대로 정말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고자 하는 각국의 노력이다. 경제학의 이론에 따르면 두개의 시장이 자유무역을 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보다 총 잉여가 증가하여 결과적으로는 자유무역이 시장의 구성원들에게 더 큰 효용을 제공한다고 한다. 자유주의에 설득력과 정당성을 불어넣어주는 이 이론은 책장의 한 부분에서는 너무나 명백하고 자명하지만 현실에 적용할 경우는 또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 자유무역을 실시해서 결과적으로 더 큰 결과물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코 이상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FTA 체결로 가장 큰 손실을 보는 것은 바로 농민들이다. 기계화로 대량생산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외국의 값싼 농산물들이 들어올 경우 우리나라의 영세 농민들은 대부분 몰락하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하지만 이것이 오래전부터 박탈감을 느끼고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감수하던 농민들의 마음까지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의 손실로 인해 다른 일에 종사하는 국민들의 수익은 ‘더’ 늘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세계화가 추구하는 상황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부른다. 자유롭게 경쟁하여 이긴 자는 승리의 열매를 독식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쟁에서 패배한 쪽은 세계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시대에서 ‘민주’의 개념이 점점 희박해 지고 있듯이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경쟁력이 약하고 뒤떨어지는 사양산업을 보호할 수는 없다. 세계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과 또 세계화의 장점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세계화를 통한 자유무역은 경쟁력 있는 부분의 특화를 통해서 총 잉여를 증가시키고 이론적으로 이 결과물을 사회구성원 전체에 나누어 줄 경우 분명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쓸데없는 정부의 개입과 세금의 부과는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없는 손실만 부추기고 비 효율을 초래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강력한 정부의 주도와 경쟁력이 미약한 산업의 보호를 통해 놀랄 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성공의 토대로 여겨지던 정부의 시도 때도 없는 시장 개입과 부실기업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보호 때문에 나라 전체에 부패와 비리가 만연하게 되었고 덩치만 크고 실속 없는 기업들은 결국 하나 하나 무너지면서 나라 전체의 경제가 파탄을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자유무역과 자유주의는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전 세계를 휩쓸게 되었다.분명 자유무역은 올바르게 시행될 경우 그 장점이 두드러질 수 있으나 문제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과 아직 우리나라에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정부는 5539억원의 예산을 편성하여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한 순간의 지원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농업 부분의 경쟁력 확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농업부분의 기계화 상업화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영세농민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에 경쟁력이 뒤지는 것이 현실이다. 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 기간이 길고 새로운 기법의 도입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틀을 바꾸어 새로운 체계를 갖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의 세계화는 당장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 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이 될만한 새로운 이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 이념을 보완하고 개선해서 더욱 탄탄한 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의미 중 하나만 극단적으로 강조한 이념들이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하여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외당하는 집단없이 다 함께 잘사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