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 혁명조직학습과 지식경영지식은 앎이라고 하는 인간의 행동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식은 명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암묵적인 것이다 지식은 개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지식은 역동적이다조직단기장기구성원업무 경험의 향상전문가로서의 발전조직의 능력개발비즈니스 성과의 개선커뮤니티의 가치지식의 본질PracticeCommunityWhat are we about?DomainWho are we?What do we know?공동의 입장과 공동의 정체성 형성 커뮤니티가 역점을 두는 주제를 의미 구성원들을 고무시켜 학습에 참여, 기여토록 하며 구성원들의 행동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함학습을 위한 사회적인 배경 학습이란 것은 지적인 프로세스일 뿐만 아니라 소속감이 중시되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커뮤니티 중요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틀, 아이디어, 툴, 정보, 스타일, 언어, 이야기, 문서들의 집합 커뮤니티가 개발하고 공유하며 유지하는 구체적인 지식CoP 및 커뮤니티의 구조적 요소Mutual EngagementJoint EnterpriseShared Repertories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실천이나 지식의 영역공동체 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스타일, 창작물, 이야기, 도구, 틀, 언어, 행동, 기술, 규칙 등공동체 구성원들이 목적 달성을 위해 하는 상호 지속적인 활동상호적인 참여합치된 목적공유된 레퍼토리커뮤니티의 세가지 측면목적이 무엇인가누가 속해 있는가경계는 얼마나 명확한가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인가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CoP지식을 창출하고, 확장하며 교환하기 위해, 그리고 개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전문지식이나 주제에 대한 열정을 토대로 해 자기가 선택명확하지 않음열정, 일에 대한 헌신, 커뮤니티 사람들 및 전문지식과의 일체감유기적으로 발전해가고 끝난다(함께 배운다는 것에 흥미가 있고 해당 주제가 자신과 관련성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일이 가치가 있는 한 계속 유지된다)형식적인 부서제품을 만들어내거나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해해당 집단의 관리자에게 명령을 받는 모든 이들명확업무 요구사항과 공동의 목표영원히 지속되고자 함(하지만 구조조정이 있으면 다시 해체되어야 함)사업운영팀지속적인 사업운영이나 프로세스를 관리하기 위해경영진에서 구성원들을 선발함명확사업운영에 대해 공동의 책임계속 지속되기를 원함(하지만 그 해당 사업운영이 필요할 때까지밖에 존속할 수 없음)프로젝트팀프로젝트에 할당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해당 과업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이 있는 사람들명확프로젝트의 목표 및 계획끝이 미리 정해져 있음(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관심 커뮤니티정보를 얻기 위해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명확하지 않음정보에 대한 접근 및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느낌유기적으로 발전해가고 끝난다비공식적인 네트워크정보를 받고 전달하기 위해, 인맥을 확보하기 위해친구들이나 비즈니스 관계상 알게 된 지인들, 친구의 친구들정의되어 있지 않음상호 필요와 인간관계시작하고 끝난다는 개념이 없음(계속 연락이 오고가고 기억하는 한 모임은 계속됨)CoP와 기타 조직과의 차이진화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내부의 관점과 외부의 관점 사이에 대화를 개방한다 다양한 차원의 참여를 유도한다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모두 개발한다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 친밀감과 흥분을 결합한다 커뮤니티를 위한 리듬을 만든다CoP 양성을 위한 7가지 원칙커뮤니티 개발단계* 들쭉날쭉한 선들은 시간 경과에 따라 커뮤니티가 발산하는 에너지와 가시성을 나타내는 것이다{nameOfApplication=Show}
조직학습과 지식경영Argyris vs. Senge 비교분석학습조직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 중에서 두 사람을 선정한 다음 각각의 학자가 주장하는 논지의 핵심을 학습조직 핵심개념과 구성원리로 요약하고, 상대방의 학습조직관을 또 다른 학자의 학습조직관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비판적 논의에는 학습조직에 대한 개념 정의에 등장하는 키워드 분석, 학습조직에서 강조하는 학습관, 학습촉진요인과 장애요인 또는 학습조직 구축의 CSF(Critical Success Factors) 등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Chris Argyris의 학습조직1. 조직학습의 개념ㅇ 인간은 그들의 행동을 규정짓는 이론, 혹은 map(인지체계)에 의해 행동한다. 이를 행동이론(theories of action)이라고 한다. 행동이론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가 자신이 의도한 바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 error가 발생한다. 이 error를 감지하고 수정하는 것이 학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Argyris는 행동의 변화만이 아니라 인지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지구조의 변화를 통해 개인은 새로운 mental map을 형성하고, 이들이 모여 조직의 새로운 mental maps, organizational cognition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Argyris가 주장하는 조직학습이다. 이를 통해, 조직은 새로운 상용이론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조직학습이란 조직 구성원들의 발견, 고안, 해석 등이 다양한 조직 과정을 통하여 조직의 공유 행동 이론에 내포되어 양적 또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2. 문제의식 및 배경ㅇ 학습조직은 78년 하버드대의 Argyris와 MIT의 Schon이 처음 학문적 개념을 제시했다. Argyris와 Schon은 공저 「학습조직론」에서 개인의 진취적인 자세나 창의력이 갖가지 관습이나 규칙에 얽매여 있는 조직논리 속에서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개인활동과 조직활동이 생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이 연구의 기본이 되고 있다.ㅇ 인간은 행동이론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행동 이론의 변화 없이 행동만 변화시킨다면 그 변화는 실패하거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지적 ?신념적 체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ㅇ 주요저서: Personality and Organization(1957), Understanding Organizational Behavior(1960), Interpersonal Competence and Organization Effectiveness(1962), Integrating the Individual and the Organization(1964), Intervention Theory and Method(1970), Management and Organizational Development(1971)3. 과정과 유형ㅇ 조직학습 주체:학습이 조직의 학습이 되기 위해서는 학습에 참여한 사람들의 발견이 각 개인의 표상뿐만 아니라 조직의 사용이론에 공유되어 있는 지도(map)에 코드화되어야한다. 코드화의 문제로부터 우리는 학습의 주체는 조직이 아니라 각 개인이라는 점과 개인의 학습이 조직학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개인의 학습은 조직학습의 필수조건이라는 것과 조직학습의 열쇠가 개인의 학습 결과를 어떻게 집단화, 외연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ㅇ 학습모형 및 과정ㅇ 학습유형: Single Loop Learning & Double Loop Learning- Single Loop Learning- Double Loop Learning4. 개인학습과 조직학습의 상호관계ㅇ 지식축적 과정으로서의 조직학습: Argyris & Schon은 조직학습을 조직의 행동이론(theories of action) 특히 조직구성원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상용이론(theories-in-use)의 변화과정으로파악하여 조직자체 수준에서의 인지적 신념적 체계의 변화에 보다 초점을두고 있다.개인의 경험, 발견, 해석 등이 조직 내 공유과정(process of sharing)을 통해형성되는 조직지식체계의 변화가 개인학습과 조직학습을 구별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같은 학습의 결과로서 조직은 새로운 지식체계에 의거하여행동레퍼토리(behavioral repertoire)를 증가시키게 된다. 때문에 개인학습은조직학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되며 개인학습에서의 인지체계 재구성은조직학습의 인지체계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는 궁극의 목적인 조직학습을 통한조직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Peter M. Senge의 학습조직1. 조직학습의 개념ㅇ 학습은 과거 경험에 의한 비교적 영속적인 행동의 변용 또는 개선을 말한다.Senge는 냄비 속의 개구리 우화를 빌어 조직 학습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환경과 다가오는 위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실패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즉, Senge는 조직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위험에 미리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조직의 학습 능력이라고 보고 있다. Senge는 조직이 학습을 통해 “메타노이아(metanoia)”- 마음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습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보의 재창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학습을 통해서 스스로의 창조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조직은 이런 학습과정을 통해 변화와 위기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된다.2. 문제의식 및 배경ㅇ 아지리스와 숀은 학습조직의 개념을 하나의 철학적 또는 심리학적 차원 즉, 피상적으로 연구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후배인 피터 센게의 등장을 예고했다. 센게는 서구의 사고방식이 증상처방에 급급하다고 지적하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서 학습조직의 다섯 가지 분과학인 시스템 사고, 개인적 숙련, 정신모델, 공유비전, 팀 학습을 제시하고 있다. 단선적이고, 단면적인 문제인식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시스템 사고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3. 과정과 유형ㅇ 조직학습 주체조직은 학습하는 개인들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실제적으로 학습의 주체는 조직이 아닌 내부의 조직원 개개인이다. 학습조직의 힘은 궁극적으로 각 개인의 결합된 힘들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조직 내 각 구성원들의 성장이야말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된다.ㅇ 학습모형ㅇ 학습원리: 시스템 사고- A discipline for seeing wholes (전체를 보는 훈련)-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에 독특성을 제공하는 미묘한 상호연계에 대한 감수성- 복잡한 상황 기저에 놓인 ‘구조’를 보도록 하고 지렛대 효과 수준의 높낮이를구별하게 해준다(복잡성).- 내적 관계와 변화의 패턴과 내적 관계를 잘 묘사하는 풍부한 언어 형성- 사건과 그 이면에 놓여 있는 더 깊은 근본적 유형에 대한 탐색- 행위들이 상호간에 강화작용을 하거나 반작용(균형화)하는지를 보여주는‘feedback’이라는 개념 이해에서 시작ㅇ 학습과정: 피드백 프로세스- 인간은 피드백 과정의 한 부분: 우리 스스로를 자연과 유리된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인식(생태론자들 지지)- “Everyone shares responsibility for problems generated by a system”(시스템에 의해서 야기되는 문제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공유한다)
동서비교철학일곱주제로 만나는 동서비교철학.hwp일곱 주제로 만나는 동서비교철학- 1장. 원기론과 원자론: 중국과 서양의 자연관 비교 -1. 자연관의 역사적 전개2. 자연관의 차이1) 개체성과 총체성2) 단절성과 연속성3) 유형성과 무형성4) 구조성과 공능성5) 조합성과 변화 생성성6) 기계론적 성격과 변증법적 성격7) 사변성과 직관성3. 자연관이 달라진 배경1) 사회?문화의 배경2) 자연 과학 발전 수준의 차이3) 사유방식의 차이4. 자연관의 합류에 대한 전망5. 자연관의 합류가 지니는 의의1. 자연관의 역사적 전개중국 고대의 과학 기술이 매우 긴 시간 동안 발전해 왔으며,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선주들은 괄목할 만한 발명과 창조를 이루어 냈는데, 어떻게 세계에 대한 총체적 견해로서의 자연관의 발전 수준은 현저히 뒤떨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근대 중국 과학의 낙후와 중국인의 자기 비하의 심리이거나, 자연관에 대한 좁은 이해의 결과로서 서양 자연관을 척도로 삼아 중국을 평가하고 이로부터 편파적 결론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중국과 서양이 지닌 전통적 자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이제 중국과 서양의 자연관에 대한 발전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서양의 자연관은 오랜 기간 원자론의 형태로 나타났다. 원자론적 자연관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레우키포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뒤 이 학설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보충을 거쳐 고대 유럽의 소박한 유물론의 최고 성과로 발전하였다. 중세의 천여년 간의 침묵기를 거쳐 문예부흥기에 들어섰을 때, 다빈치와 브루노 역시 원자론을 유력한 무기로 삼아 신학을 반대하고 유물론을 부흥시켰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베이컨이 원자론 철학의 유물론적 전통과 방법론적 특성을 계승하였으며, 갈릴레이와 데카르트로 다른 관점에서 원자론 철학을 언급하였다. 그 뒤를 이은 가상디가 원자론 철학을 전반적으로 구제하고 부흥시킴 의미의 유물론적 원기론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의 유원종은 원기론을 제기함으로써 세계에 단 하나의 시작이 있었다는 창조설을 부정하고, 물질 자체의 모순이 운동의 원천이라는 사상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으며, 왕충의 “기는 저절로 변한다”는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북송의 장재는 기가 세계의 제일 원리일 뿐만 아니라 기가 ‘유와 무, 허와 실의 통일체’, ‘연장성을 지닌 물질’, ‘만물의 본성’,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통일체’, ‘대립과 통일의 과정’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명말 총처의 왕부지 역시 원기론을 토대로 하여 당시 철학계의 쟁점이던 ‘리기’와 ‘심물’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는 리가 의지할 곳이다“, ”기 이외에 허무하고 고립된 리가 있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원기론은 왕부지가 중국 고대 철학을 비판하고 총결짓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여기에서 원기론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위에서 말한 원기론의 발전에 대한 대강 속에서 중국 전통의 원기론적 자연관이 중국 고대 철학적 사유의 변천 및 발전 그리고 심화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채 그에 따라 점차로 진전되고 분명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인에게는 일찍이 인류 문명과 진보를 위하여 탁월한 공헌을 한 고대 철학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원자론과 견줄 만한 원기론적 자연관도 있었다. 이런 자연관은 중국 고대의 철학이나 과학, 문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특히 지적할 것은 비록 원기론과 원자론이 각각의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있고 그 색채나 농담이 서로 다르지만, 일부 기본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 일치되는 결론에 이르러 양자가 동등한 이론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양자는 사유와 존재의 관계를 밝힘에 있어서 존재는 제일의 성질이며 세계는 가장 기본적 물질인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 우주관을 살펴보면 양자는 모두 우주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한하고 끊임없이 운동 변화 모든 실질을 관통한다”라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기가 허실과 시공을 통괄하고 관통하는 총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표명하였다.2) 단절성과 연속성단절성과 연속성은 원자와 기의 성격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서양의 원자론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원자는 허공 중에 존재하고 각각의 원자는 단절되어 있으며 원자 이외의 것은 모두 허공이다. 다시 말해 공간 중에서 원자는 단절되어 있는 개개의 물질적 미립자로서 원자와 원자 사이에 간격이 존재하며, 이런 간격은 원자들이 차지한 공간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격이나 허공의 존재는 원자론의 필수 전체라 할 수 있다.중국 고대 철학에서 말하는 기는 일종의 연속성을 가진 물질의 형태이다. 여기에서 ‘연속’이란 공간 속에서의 기의 연속성과 무간격성을 의미한다. 『관자』「내업」에서는 “땅에서는 오곡을 생성하고 하늘에서는 별자리가 되어 (원기가) 천지 사이에 흘러다닌다”고 하였는데, ‘흐름’은 바로 기의 연속적인 형태를 가리킨다.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면서도 연속적으로 유동하는 물질인 기라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장재나 왕부지 등과 같은 중국의 고대 철학자들은 기가 연속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물질 및 운동의 불멸?기와 형태의 바뀜과 변화?물질 및 운동의 불변?물질의 무한한 분리 등 탁월한 사상을 제기하였다.기의 개념은 현대 물리학에서의 ‘장場’과 유사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니덤은 “중국 철학 중의 원기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에테르파나 복사선”이라고 하였다. 또한 중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하조휴는 “연속성의 물질로서의 원기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장에 접근하며”, “원기설은...... 현대 양자론의 기원이다”라고 하였다.3) 유형성과 무형성유형성과 무형성은 원자와 기의 형질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원자는 유형의 물질적 미립자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로부터 물질의 구조에 대한 여러 추측을 내 놓았다. 특히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생성되어 나옴을 드러낸다. 이러한 에너지는 기 자체에 고유한 것으로, 이는 곧 기의개념을 현대 과학의 질과 능의 개념에 접근시킨 것이다. 물질의 기능을 중시하고 사물의 내재적 변증법을 중시한 원기론적 자연관이 이미 현대 과학이 통찰한 세계의 본질을 소박하게나마 직관적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원기론은 이러한 점에서 서양의 원자론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음이 분명하다.5) 조합성과 변화 생성성조합성과 변화 생성성은 사물 형성의 경로와 방법을 나타낸다. 서양의 원자론은 사물이 원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자음과 모음에 비교하여 물질의 형성이 자음과 모음이 단어를 구성하고 그 단어들이 문장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원자는 어떻게 물질과 조합하는 것일까? 원자는 운동할 때에 그 속도가 빠르고 불규칙적이어서 서로 충돌하면 일종의 소용돌이 운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원자의 ‘갈고리’와 ‘각’ 등의 형상적 차이 때문에 기계적으로 다른 복합물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바로 원자의 조합에 의해 생성되고, 원자의 분리에 의해 소멸한다. 요컨대 우주의 모든 사물은 일정한 법칙에 따른 원자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중국의 원기론에서는 사물이 기의 생성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였다. 기의 화합과 응집으로 천지가 형성되고 그 이후에 사시와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시에 양기가 변화하여 화기를 생성하고 다시 변화하여 태양을 생성했으며, 음기가 변화하여 수기를 생성하고 다시 변화하여 달을 생성했으며, 태양과 달이 변화하여 별자리를 생성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컨대 기로 인해 일체의 물젤 세계가 변화 생성되었다는 것이다.중국의 고대 기일원론에 나타난 기의 만물 생성 도식을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다.방법론적 의의에서 말할 때 이 변천 과정은 하나가 둘고, 둘이 넷으로, 넷이 여덟으로 나뉘는 형식, 즉 하나가 나뉘어 둘이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태극의 분화?천지의 생성?사계절의 형음양의 화합, 상호 마찰과 제거, 모순 작용 등이 바로 자연계의 모이고 흩어지고, 들고 나고, 형체를 갖거나 갖지 못하는 등의 운동 변화를 있게 했으며, 또한 추위와 더위, 건조와 습기, 남자와 여자의 대립을 표현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왕부지가 운동의 원천은 물질 내부의 대립 통일에 있으며, 운동이 물질의 고유 속성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사물의 운동 원인에 대한 인식면에서 매우 높은 이론적 사유의 수준에 도달했으며, 소박한 변증법의 빛을 발휘하였다.7) 사변성과 직관성사변성과 직관성은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은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방식에 치중하여 객관 세계를 파악하였다. 비록 그들이 서술한 대부분이 추측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비교적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세밀한 것이었다.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방식은 특히나 ‘원자에 대한 묘사(원자와 허공의 관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필연성‘과 ’로고스‘를 결합하여, 필연성을 원자론의 기본 개념으로 삼음)’, ‘사물과 현실 세계에 대한 묘사(만물은 원자의 표현 형식으로서 원자와 허공의 결합으로 형성됨)’, ‘운동에 대한 묘사(사물이 공간을 통해 운동하며, 이 때문에 사물은 자연히 위치의 이동에 따라 운동함)’에서 잘 드러난다.중국의 원기론은 비교적 많은 직관성을 드러냈는데, 여기에서는 중요한 몇 가지 인식을 통해 원기론을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원기론은 자연계에 대한 직관 인식에서 나왔다. 고대인들은 천지의 기원과 생성원인, 사계적의 변화?역법?음률 등에 대해서도 직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기로써 소박하게 해석하였다. 둘째, 원기론은 태극음양설에서 나왔다. 기는 음양으로 나뉘고 음기와 양기의 결합에 의해 만물이 화생한다는 사상이 자연적으로 생성되었으며, 이는 중국 원기론자들이 대부분 신봉하는 관점이 되었다. 셋째, 원기론은 오행설에 의해 표현되었다. 음양오행이 어떻게 변화 생성하며, 또한 어떻게 사물의 성질을 구성하고 자연계의 변.
동서비교철학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hwp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 2장. 불교도 정념 | 19세기 -? 낭만주의의 후속편? 불교: 새로운 발견?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빅토리아시기 신앙의 위기와 불교? 미국 초월주의자들? 세기말? 낭만주의의 후속편19세기에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받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동양의 종교와 철학적 관념이 상당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양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관심 중에서 좀더 학술적인 목적을 지닌 것들을 살펴보기 전에, 이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많은 학술분야가 개척된 위대한 전문화의 시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리엔탈리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앙케튈 뒤페롱, 존스, 그리고 콜브룩과 같은 선구자들의 저작은 동양의 언어, 전통, 문학을 정복하기 위한 유럽인들의 위대한 원정, 즉 당시의 급속한 제국주의적 팽창과 발맞추어 행진한 문화적 원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유럽은 동양을 식민화하고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기 위해 동양을 개방시켰다. 동양에서 유럽의 상업자본과 정치권력이 팽창함에 따라 유럽학자들도 동양의 지적?문화적 전통들을 직접 조사하고 탐구할 기회를 제공받게 되었다. 19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다수의 오리엔탈리스트 협회가 설립되었고 정기간행물이 출간되었으며 대학에 강의가 개설되었다. 동양에 대한 관심 자체도 전문적 오리엔탈리스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지식인 일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그러나 일부 정반대의 목소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인도와 힌두교에 대한 열광주의는 낭만주의시기 말기 이후에 어느 정도 시들어 버렸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진보 관념이 성장함에 따라 낭만주주의 형이상학적 열광주의가 쇠퇴하고, 그에 대응하여 실증주의와 물질철학이 득세하는 등의 다양한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양에 대한 유럽인의 정치적?상업적 지배가 지속적으로 강화된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힌두철학에 대한 관심이 쇠퇴하고 반인도 감정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교: 새로운 했으며, 그를 기독교 성인과 동등한 인물로 서술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9세기 이전에는 불교의 특징적인 정체성과 지리적 확장에 관한 이해가 희박했고, 유교와 힌두교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라 불교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불교가 19세기 유럽문화로 갑자기 들어온 이야기는 브라이언 호지슨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네팔의 동인도회사 관리를 지내던 그는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필사본 400권을 소장하게 되었고 1937년에 그것들을 캘거타와 런던, 그리고 파리로 발송했다. 외젠 뷔르누프는 이 필사본들의 프랑스어 번역작업을 감독했고 을 저술했다. 그는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를 명확히 구분한 최초의 인물이다. 19세기 유럽인의 정신에서는 남방불교의 테라바다 전통이 우월했고 북방불교의 마하야나 학파의 전통은 다은 세기까지도 대개 무시되었는데, 이는 그가 전자의 전통이 부처의 가르침을 더 고대적이고 ‘순수’하게 해석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19세기 후반에는 불교학문이 계속 팽창했고, 남방불교 전통으로부터 나온 풍부하고 다양한 텍스트들이 무수히 번역되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 바그러, 니체뷔르누프와 스펜스 하디의 열렬한 독자 가운데 쇼펜하우어가 있었다. 그의 초기 저작들을 보면 힌두교의 가르침 속에서 기쁨에 겨워하는 듯한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불교에 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1844년 제2판이 간행될 무렵은 유럽에서 불교의 가르침이 번성하기 시작하던 때였고, 제2판에도 불교에 관한 광범위한 참조와 토론을 보충한 장이 추가되었다. 그는 그 책에서 “다른 종교보다 출중한 불교를 용인할 의무를” 느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유대-기독교에 대한 급진적 비판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불교철학에서 지상 모든 행복의 허망함, 그것에 대한 완전한 경멸, 그리고 완전히 다른 생존의 방식을 위한 사고의 전환을 보았다. 그는 이것이 유대주의의 이슬람의 ‘낙관주의적’ 정신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기독교의심이 생의 고통과 좌절에 있다고 믿는다. 삶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이런 관점은 불교의 가르침과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 쇼펜하우어는 열반이 완전한 소멸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불교의 개념은 채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쇼펜하우어의 독특한 비관주의를 오해함으로써 불교 또한 비관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이런 오해는 뷔르누프가 조장한 것으로 곧 근절될 이론이었다. 이러한 대중적 오해는 한 발 더 나아가 동양사상과 종교에 지속적으로 ‘비합리주의’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우게 되었다.쇼펜하우어의 동양적 성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19세기 문학의 두 거인, 바그너와 니체가 있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저작뿐만 아니라 뷔르누프의 저술을 탐독하여 불교관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달된 불교관념은 바그너의 예술과 사상에 깊이 침투했다. 그는 불교가 “작고 협소하기만 한 다른 모든 독단적 교의들과 비교되는” 세계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한동안 불교도로 자처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처럼 불교를 자신의 전통적 종교보다도 우월한 것으로 존경했다. 바그너의 작품에서 너무나 특징적인 ‘극기’라는 주제에 불교가 끼친 영향의 정도에 대해서는 다소 논쟁이 있다. 그러나 마이클 에드워즈가 “그는 불교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인도와 유럽의 진정한 종합을 유일하게 창조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가 인도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촘촘하게 교직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불교와 니체의 관계는 더 복잡하고 모호하다. 또한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더 중요하다. 니체의 동양에 대한 관심의 원천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로부터 나왔다. 니체의 지적 발전에 동양사상이 끼친 영향의 정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니체와 짧지만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루 안드레아 살로메는 니체의 후기사상, 특히 영원회귀의 관념은 인도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들은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에 관한 사색에서 불교의 모습을 보았다. 니체는 자신의 논증을 변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양의 관념을 참장려하고 고통과 고뇌를 수용하는 “수동적 허무주의이자 유약함의 표시”로 해석했다. 하지만 불교는 니체가 추구하는 초인개념을 부인하는 “체념과자기부정”의 철학이기도 했다. 두 번째 주제는 고통의 심리학과 관련된 것으로 불교를 좀더 호의적으로 바라본 경우이다. 불교에서는 정념의 불꽃을 진정시키고 고통의 원천을 근절하기 위해 고통 그 자체의 본성과 기원을 비타협적으로 기민하게 분석한다. 이는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이승을 보상하기 위하여 천국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건설하는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있어 불교란, 미학적이고 실용적인 외양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형이상학적 위안의 유혹을 피하면서 고통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훨씬 더 정직한 종교였다.? 빅토리아시기 신앙의 위기와 불교이전 시기에 유교나 힌두교가 ‘발견’되었다면 불교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서양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소유되며... 점차 서양에 자리를 잡아가고, 따라서 서양에 의해 규제되는, 유럽인들이 재구성해서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이러한 재구성 현상은 빅토리아시기에 심각했던 종교적 이념갈등을 반영하는, 불교에 대한 태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부처의 가르침은 힌두교의 가르침과는 대조적으로 호감을 얻었고, 가톨릭을 극렬히 혐오하는 개신교도들은 부처를 인도의 종교개혁가로서 마르틴 루터와 빈번하게 비교했다. 게다가 부처의 도덕성과 인격은 그의 가르침을 거부한 자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았다.논쟁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 기원에 대한 오래된 의문이었다. 이는 부처와 예수의 생애와 윤리적 관념이 현저하게 유사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기독교의 정통성에 적대적인 일부 비평가들이 제기한 의문이다. 그들은 불교가 기독교의 원천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두 스승들은 모두 당시 우세했던 정통 교단의 율법주의와 의식 준수주의를 공격했고, 보편적 사랑의 숭고한 윤리를 가르쳤으며, 먼저 영혼을 탐구하라고 설교했고, 제자들로 하여금 온 인류를 구제하도록 했다. 또 다른 논쟁으로 불교 가르침의 명백히 귀족적인 다.다수의 학자들이 불교를 무신론적으로 해석했고, 그것은 유교에 대한 이전의 논쟁과 맞물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는 불교가 혐오스럽다고 선언하며 완전히 등을 돌렸다. 다른 한편 유교를 옹호했던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의 후예들은 불교관념을 지극히 합리주의적인 도덕성의 모델이자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종교의 표본으로 보았다. 불교에 대한 이런 관점은, 믿음이 아니라 증명가능한 경험에 의거하여 주장을 펴야 한다는 신념과 더불어 19세기의 후반에 팽배했던 급진적 실증주의의 신조와 제휴하게 되었다. 빅토리아시대에 격렬하게 벌어진,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논쟁에서 불교는 고유한 과학적 외양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었다. 격렬한 논쟁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신랄함에도 불구하고 당파성을 띠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열린 결론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 초월주의자들대화와 상호존중과 이해에 도달하려는 정신은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에게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18세기 미국에서는 동양적 관념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초 윌리엄 존스 경의 저술에 자극 받아 동양에 대한 학문적?대중적 관심이 증가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는 에머슨과 소로우로 대표되는, 동서양 사상의 주목할 만하고 영향력 있는 결합이 최초이자 최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두 인물이 이끌었던 뉴잉글랜드 지방 초월주의는, 우주의 본질적 통합성과 정신의 궁극적인 본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인간이 본래 선하며, 직권이 합리적인 사고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표방했다. 이런 지극한 정신주의는 성서를 초월하려고 하며 전세계의 종교적 경험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유럽낭만주의와 마찬가지로 초월주의자들은 동양의 관념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교와 불교는 물론 힌두교, 그 중에서도 아드바이타 베단타학파에 주목했다. 베단타철학은 초월주의운동의 건설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인도철학에 관한 논문을 한 편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향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했다.
해피스톤은 왜 토암바 섬에 갔을까?작성자 : XXX0. 해피스톤은 왜 토암바 섬에 갔을까?나름의 규칙 속에 평화롭게 살고 있는 태평양의 작은 섬 토암바. 그곳에 간 MIT 경제학부 조교수 해피스톤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작은 섬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노동 경제학 전문가인 로랑 코르도니에(Laurent Cordonnier)는 가상의 섬 토암바에서 벌어지는 경제 변화를 통해 경제학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경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문제와 그에서 비롯된 사회 문제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 어려운 경제학 고전들이나 딱딱한 경제 전문서적들을 뒤로 하고 해피스톤이 왜 토암바 섬에 갔을지 생각해보기를 추천한다.1. 토암바 섬은 타로 밭해피스톤이 토암바 섬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토암바 섬은 자신들만의 규칙 속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섬 전체에서 경작하고 있는 밭의 수는 20개이고, 밭 하나당 1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생산해내는 토암바 섬의 주식인 타로는 일주일에 4kg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섬에서는 수확한 타로를 두고 경제 활동이 벌어졌다. 전체 밭에서 생산된 타로는 모두 100kg이고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각각 4kg씩, 총 80kg이 지급되고 나머지 20kg의 타로는 밭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렌토크들의 몫이 되었다.이런 모습을 보고 해피스톤은 노동의 한계 생산성(가장 생산성이 낮은 밭의 수확량, 4kg)과 여가의 한계 효용(노동 공급을 포기하게 되는 가격, 4kg)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노동의 실질 가격이 형성된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본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A.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가격이 형성된다는 것과 같다. 책에서는 장 바티스트 세가 주장한 세의 법칙(Say`s law)을 근거로 들면서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현재 토암바 섬에서는 시장 균형 이론에 맞게 경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섬의 왕이 해피스톤을 초청하여 경제 정책을 변화시켜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토암바 인들이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타로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의 단순한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피스톤은 자신이 공부한 경제 이론들에 근거하여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였다.2. 해피스톤의 계획고전 경제학을 공부한 해피스톤은 책에서만 보던 경제 현상을 직접 실행하고 관찰해보고자 하였다. 자신이 공부한 이론대로라면 토암바 섬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토암바 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 있게 자신의 계획을 발표하였다.첫째, 타로 외에 고구마, 참마, 죽숙 세 가지 새로운 작물을 경작한다. 둘째, 각 작물의 고른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20개의 밭에 경작을 골고루 배분한다. 셋째, 토암바 섬의 공식 화폐로 토픽을 도입한다. 넷째, 토암바에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카렌토크들에게 기한 내 상환을 조건으로 지출에 필요한 토픽을 대출해 준다. 다섯째, 토픽 화폐의 단위를 타로 본위로 하여 1kg의 타로 가치는 1토픽으로 한다. 여섯째, 은행은 자기자본금으로 40kg의 타로를 보유하여 화폐 가치의 신용을 확립한다.3. 이윤이 없다작물을 4가지로 다양화 하였지만 총 생산량은 80kg으로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카렌토크나 노동자 모두 그동안 타로로 가져가던 것을 4가지 작물로 골고루 가져갔다는 의의만 가질 뿐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받은 화폐 토픽으로 자신이 원하는 작물을 살 수 있었지만 카렌토크들은 자신들 밭에서 난 작물을 그대로 가질 뿐이었다.다음 계획으로 해피스톤은 경쟁을 도입하였지만, 오히려 작물의 가격만 80토픽으로 떨어졌을 뿐 카렌토크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어서 해피스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4토픽에서 3.2토픽으로 인하하였지만 그 역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임금 인하에 맞춰서 1kg당 가격도 64토픽으로 떨어졌을 뿐이다.해피스톤은 노동자들이 소비로 지출할 수 있는 임금에만 의존해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임금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소비재만을 생산하는 화폐 경제에서는 화폐 이윤이 존재할 수 없다. 해피스톤은 섬에 혼란만 가져오고 카렌토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4. 해피스톤의 구원자, 칼도크의 제안어린 시절 미국인 어머니로부터 경제를 배웠던 왕의 딸 칼도크는 새로운 계획을 제안했다. 투자 없이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농업 생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자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에 도움이 되는 자본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고 은행이 카렌토크들에게 투자 비용을 대출해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카렌토크들은 25토픽에 해당하는 자본재를 이윤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고, 해피스톤은 자유를 회복하게 되었다. 덤으로 칼도크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5. 투자의 결과여전히 카렌토크들에게 화폐 이윤이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자본재의 형태로 이윤이 축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날 때마나 창고에 쌓여가는 자본재를 보면서 자신의 부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투자가 효과를 보면서 생산량이 4배나 증가하게 되었다. 늘어난 작물을 모두 팔기 위해서 가격을 1/4로 낮춰서 판매를 하였고, 이는 곧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4배나 증가한 것을 의미하였다. 결국 투자를 통해서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고, 카렌토크들은 자본재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화폐 경제 사회에서 화폐가 아닌 자본재의 축적에만 만족할 수 없던 카렌토크들의 불만은 계속되었다.6. 지출한 만큼 번다카렌토크에게 화폐 이윤을 쥐어 주기 위해서 해피스톤은 은행에서 카렌토크들에게 배당금을 대출하여 지급할 것을 건의하였다. 배당금으로 투자가 더욱 늘어나면서 작물 가격이 증가하였고 결과적으로 카렌토크들의 이윤은 40토픽으로 증가하였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지출한 만큼 번다는 칼레키의 법칙이 제대로 적용된 것이다.7. 황금기의 종말시간이 지나면서 작물 가격이 상승하다가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다시 가격이 하락하게 되었다. 급격한 발전이 멈추면서 황금기의 끝이 보이게 된 것이다. 투자는 눈에 띄게 줄었고, 투자 액수도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상품과 소비, 생산방식, 적용기술 등을 둘러싼 조직의 점차적인 발전(사회적, 정치적, 제도적, 상징적)이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했고, 이제 그 조직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셈이었다. 투자 감소는 자본재 생산 분야의 생산량 감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윤 감소를 통해 전체 분야의 생산 위축을 초래했다. 고물가(인플레이션)와 실직, 경기후퇴(스태그네이션)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등장한 것이다. 실업률이 증가하는 것은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이었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은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는데 임금 인상 요구는 계속되기 때문이었다.8. 왕의 아들 카두크의 오판카두크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원인이 같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대출의 급격한 증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라고까지 생각했다. 카두크는 우선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쉽게 대출해주던 관행을 중단해야 하기로 했다. 또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다시 일터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일을 찾게 하려면 실업수당을 비롯한 온갖 보조금들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두크가 내놓은 해결책은 자본 축적이 부진한 카렌토크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그 속죄의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카두크의 계획이 실행되자 이미 불황인 경제 상황에 엄해진 통화 정책으로 인해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침체된 경제는 경기 후퇴로 악화되었고, 경기가 후퇴하면서 실업률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다만 유일하게 인플레이션의 억제는 성공을 하였는데, 이는 마치 독감에 감염된 사람들에게 수소 폭탄을 투여해 바이러스를 박멸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