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는 기차역 플랫폼과 병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전형적인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비로소 이해된 것은 영화가 중반부쯤으로 흘러들었을 때였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Peter의 동생 Jack이 점점 자주 나타나면서부터. 의외의 귀여운 반전이었다. 그나마도 눈치 챈 후에는 살짝은 진부해졌지만. 하지만 늘 뻔할 뻔자의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나는 늘 거기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는 감성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인 이 영화의 결말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하나의 사건을 겪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 충분히 빠져 있었기에 아마도 코끝이 찡한 감동을 받았던 것이라 생각한다.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주인공 Lucy. 기차역 승차권 매표소에서 일하며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만을 홀로 키우며 외로움에 허우적대며 사는 그녀는 매일 그 곳을 지나가는 한 남자의 훤칠한 외모에 이끌려 그를 좋아하게 되고 급기야 그의 생명의 은인이 되기까지 한다.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는데,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단지 그의 외적인 면일 뿐이다. 그의 외모를 보고 그녀는 자신의 이상형에 맞게끔 그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Lucy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처음엔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에게 빠지게 된다. 늘, 겉보단 속이 더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실상 우리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늘 외로웠던 Lucy는 자신이 구해준 그 남자(Peter) --그러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의 약혼녀가 얼떨결에 되어 버리고 사실을 말할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이 원래 관심을 가졌던 사람인데다가 잘 나가는 사업가에, 좋은 가족들도 두고 있기에 결혼해도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결혼식장에 입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실제로 Peter는 Lucy가 생각한 만큼 내적으로도 괜찮은 남자는 아니었지만.그녀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Peter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Peter의 외면 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그를 사랑하는가? 아니었다. 단 한 마디 말도 나누어보지 못한 그에게서 얻은 동감은 없었다. 대신 그녀 앞에 정작 사랑이란 이름으로 찾아온 이는 Peter의 동생 Jack이었다. Peter가 잠든 사이 Jack과의 계속 되는 만남 속에서 결국 Lucy는 Jack에게 빠진 것이다. 둘이 자주 마주쳤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Peter가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Lucy는 Jack과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Peter는 Lucy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또 하나 그녀가 사랑과 함께 얻은 것은 바로 친 가족 이상의 가족이었다. 사실 Peter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땐 Peter를 매우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외로웠던 그녀에게 친 딸, 친 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Peter의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인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Peter의 가족들은 결혼식장에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Lucy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정의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Jack의 프러포즈를 위하여 Lucy의 직장에 찾아왔다. 현실 속에서라면 용납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Jack의 가족은 Lucy의 Jack과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실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만행(?)을 눈감아 준 것이다. 아니, 눈 감아 주기도 전에 이미 Lucy의 천사 같은 마음씨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 영화 ‘North Country’영어영문학과 20040116조 정 근영화가 처음 시작 됐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광산 내의 성차별 이야기이며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니…사회성 짙은 영화일 것 같았기에 사실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절대 아니었다. 역시 언제나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였기에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이야기 전개를 실제 현실인 것 마냥 리얼하게 풀어 나갔기에 내가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충분히 받았다. 왜냐하면 보는 내내 속에서 치밀어 오는 화를 억누르느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영화는 한 아름다운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미모로 인해 남자들로부터 시샘과 성적 모욕을 여러 차례 당한 뒤 결혼해서 폭력을 쓰는 남편을 피해, 두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광산으로 돈 벌러 온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광산에 같이 근무하게 된다. 아버지가 극구 말리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받는 남자들로부터의 여러 가지 수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며 여성에 대한 단순한 차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의 모욕이 되어 버린다. 주인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여성의 인권을 위해 법정에까지 나서게 되지만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그녀를 위해, 여성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없다. 심지어 같은 성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조차도 만일 승소에 실패할 경우 광산에서 쫓겨날 생각에 시선을 돌릴 뿐이다. 다행히 한 변호사가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만 승소까지의 길은 험할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까지 딸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어 주고 변호사도 더 여성의 인권을 재판장 앞에서 외침으로서 결국 광산의 성 차별에 대한 문제는 여성의 승리로 끝이 난다. 보상금은 많이 받지 못하였지만 이 일은 성 차별 문제의 해결 시발점이 되어 많은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멋진 내레이션으로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여성의 성 차별은 비단 한국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84년도의 사회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84년은 결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니다. 이제 미국 에서는 성 차별, 성 희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얻을 수가 있는가? 제 아무리 여성이 성 차별 문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댄다며 욕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영화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남성과 여성을 떠나 인간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 차별은 비단 한 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치욕이며, 모욕인 것이다. 왜 이렇게 남성의 편에서, 여성의 편에서 각기 주장을 펼치며 자기가 옳다고 싸워대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괜한 반발심에 우러나오는 목소리도 많다. 여성의 출산문제를 남성의 군대문제와 비교한다던가 하는- 다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남녀를 따지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본다면 성 차별, 성 희롱의 씨는 절대 커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원시 시대 까지만 해도- 본디 모계중심사회였다. 하지만 여성들이 경제활동 보다 더 중요한 한 인간의 양성이 달린 육아에 충실하면서 언제부턴가 부계사회중심이 되어버렸다. 여성이 있기에 남성이 있는 것이고, 남성이 있기에 여성이 있는 것이다. 그 밑바탕을 생각한다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이제는 성 차별이라는 우습고도 기막힌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영화 North Country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분명, 사랑은 그 곳에 있다 - Maison de Himiko‘메종 드 히미코’의 영화 포스터에 적힌 부제이다. “분명, 사랑은 그 곳에 있다” 이 글에 달리 붙일 제목이 없을 만큼 저 부제는 정말 훌륭하다.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한 하나의 글귀에 지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저 부제는 다르게 와 닿을 것이다. 정말 사랑은 그 곳, 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웬만해서는 조심스러운 주제인 동성애를 다룬 영화여서 난무한 비난을 받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사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는 관심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정적인 대사라 해도 일본어 특유의 억양 때문에 나에겐 별로 느낌이 오지 않아서 일본 영화는 그 유명한 ‘러브레터’도 난 본 적이 없다. 과제 때문에 다운까지 받아서 보게 되었지만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영화 속 대사들은 나에게 감탄사를 던져 주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대사들이 영화 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메종 드 히미코’ 이 영화는 절대 생각 없이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끝나고 나서도 뭔가가 부족했다. 감독은 마치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나고 해야 할 어떤 숙제를 던져준 것만 같았다.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결론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내려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한참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여기 저기 사이트에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움도 얻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기에 비난이 많지 않았겠느냐 하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일단 ‘아니다’ 인 듯 했다. 영화는 동성애에 관해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부분도, 부정적인 부분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긍정적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 부분을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도리어 이성과 동성을 다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보여주는 인간미가 스며든 영화였다.처음 몇 분 동안은 영화에 적응이 잘 되질 않았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이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기에 게이들은 왠지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것 같았고 그런 여장은 하리수 같은 트랜스 젠더들에게나 어울릴법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에 약간 비위가 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여주인공 ‘사오리’와 메종 드 히미코(게이들이 모여 있는 양로원)의 사람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면서 그런 편견을 버리게끔 만들어 주었고, 점점 더 편안하게 해 주었다.정말 잘 생긴 남주인공 ‘하루히코’가 게이인 것을 자꾸 믿기 싫었다. 그가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왠지 ‘사오리’와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서 우러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가 게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오리’에게 남다른 감정이 있다고 느껴 잠자리까지 가지만 결국 실패(?)하는 장면, 그리고 사오리가 전무와 함께 잔 것에 대해 ‘전무가 조금 부럽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의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쏭달쏭해 하는 것이 왠지 힘들고 가엾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라고 왜 여자와 사랑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여자 보다 남자에게 더 큰 감정을 느끼는 게 그의 의지 되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영화는 게이와 여자의 사랑에 가까운 미묘한 관계를 결부시키면서 더욱 색다른 접근 방법을 보여주는 듯했다. 게이와 여자의 사랑?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둘이 비록 섹스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나는 깊이 공감한다. 사랑에 섹스가 있는 것이지, 섹스에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우리가 말하는 사랑, 그것은 분명 육체적인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동성애’라고 하면 제일 먼저 그것을 떠올린다 ―육체적인 사랑방식- 그리고는 굉장히 변태 취급을 한다. 그것이 아니어도 정신적인 사랑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에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만물에는 양과 음이 있고 그것들이 퍼즐처럼 꼭 맞는 이치가 숨어 있으니까. 그 이치에서 벗어난 모습, 상상만 해도 ‘이건 아니잖아!’ 이니까. 하지만 어떤 것에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면 더욱더 이론적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