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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Architect
    Architect?(Roger K. Lewis)고등학교시절,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3년동안 열씸히 공부하여 수학능력시험을 보고난 후에는 대학교에서 자기의 적성에 맞는 과를 들어가려고들 노력한다. 고등학교때 자연계를 다닌 학생들은 대부분 공대나 자연대를 들어가게 되는데, 공대에서 가장 매력적인 학과는 다름아닌 건축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건축가(Architect)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선입관은 모두가 방송매체에서부터 얻은 외적인것에 대한 정보들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에 입문한 신입생들을 포함하여, 모두 건축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건축가에 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란 굉장히 낭만적인, 고상한 직업으로 여긴다. 즉 지적 보답, 부와명성, 사회적 이상주의와 창조적 에너지에 의해 융합된 예술과 기술의 혼합물을 창조하며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건축가란 항상 당당한 모습으로 검정색 옷을 위아래로 코디한체 많은 돈을 벌며 풍부한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에 사회적 지위와 명성은 매우 높으며 본인의 개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큰 도면을 앞에 두고 드로잉하며 이리저리 눈 여겨보며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 모습의, 일에 있어서도 매우 자유로운 이미지이다. 대중들은 건축가들이 풍요롭고, 유복한 고수입의 전문직 종사자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건축과 신입생들도 대부분이 이러한 건축가 이미지의 환상에 빠져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체1년도 지나지 않아 이러한 환상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나 또한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그럼 이제 건축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선은 돈이다.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아직까지 대부분 4년을 투자하여 건축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는 일에 다른 학과보다도 많은 학비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기사자격증을 취득한 후 중소 설계사무소에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일반중소기업과 비교하여 받는 돈은 매우 형편이없는 편이다. 또한 건축설계를 해서 때돈을 버는 경우는 매우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가 있다. 대다수의 건축가들의 수입은 중산층 수준이며 이들의 보수는 일관적이지 못하다.사회는 건축가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예술적으로 민감하며 동시에 기술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믿는다. 사회는 정확히 어떻게 건축가들이 활동하는지는 모르지만 건축가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경받거나 칭송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사회로부터 부와 영향력 있는,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의 일원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대부분의 건축가들은 훌륭하다고 인식된 일을 함으로써 점차 유명해지게 된다. 그러한 일은 종종 초기에는 혁신적이거나 전위적으로 보인다. 그것이 정교하게 변형된 시기 이후의 단계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몇의 건축가들은 자신의 디자인 전반에 걸펴 혁신을 추구하기도 한다. 건축가들에게 있어 명성은 보통 많은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의 위탁과 관련한 바람직한 부수적 효과를 낳는다. 명성은 좋은 사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명성은 과잉노출로 인해 급격히 변하는 유행과 급변하는 취향에 의해 일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건축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따져봐야 한다. 우선은 경쟁률이 매우 심하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한 대학교에서 연간 배출되는 건축가는 120명이 된다. 한 학교에서 배출되는 건축가가 저정도나 되는데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서 배출되는 건축가들을 곱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사회에서 이러한 모든 졸업생들을 받아줄 수요가 있으면 그리 걱정할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의 건축시장을 분석하면 일거리가 없어 건축가가 훨씬 웃도는 사회적-경제적 현실을 마주했을때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이 부족하다. 일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치열한 경쟁으로 따낸 공사는 경쟁에서 발생된 경제적 손실을 보완하기 위하여 결국에는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건축가 학생들은 학교에서 장래에 자신이 지을 창조적이고도 기념비적인 건물을 꿈꾼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그러한 환상적인 건물을 지을 기회가 거의 없다. 건축가들은 건축주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일종의 서비스업이기에, 본인의 의사보다는 건축주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자아와 개성을 잃게 되어 매우 큰 불안감과 실망 그리고 우울증에 빠질수도 있다.건축가가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많은 재능을 요구받는다. 건축은 일종의 종합예술이라고도 한다. 어느 특정한 한 분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공부하고 알아야 하며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개성적인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밤낮으로 계속되는 설계수업과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부족을 느끼고 결국에는 건축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부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지금까지는 건축가가 되어야 할 이유와 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이 섰다면 이제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아야 한다. 외국의 경우는 건축학교라고해서 건축교육의 과정이 5년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4년제이다. 4년안에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범위도 매우 방대할 뿐만아니라 그 방대한 학습량을 소화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기에 시간이 많이 촉박하다. 교과과정으로는 크게 건축의 역사와 이론을 배우고, 수학적으로는 건축구조와 역학, 건축기술과 재료와 공법, 건축환경의 조절, 컴퓨터를 이용한 Computer Aided Design 그리고 건설경영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교과과정과 더불어 드로잉 연습은 필수다.교과과정을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형태학, 역사주의, 해체주의, 사회학과 심리학, 기능주의, 방법론, 생태학 그리고 도시계획을 공부하게 된다.이러한 모든 건축교육과정을 마치고 실무에서의 건축가는 모든 건축 프로젝트에서 사령관 역할을 맡는다. 건축주가 프로젝트를 의뢰해오면 그때부터 건축가의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은 건축주의 의도를 잘 파악한후에 비용가 대지를 조사하고 디자인을 시작한다. 디자인을 하면서도 틈틈이 건축주에게 확인을 맡으며 추후에 있을 갑작스런 설계도면의 변경을 미리 방지한다. 디자인을 하면서 각 건축분야(구조, 설비, 환경등)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공동작업하며 디자인을 완성한다. 디자인의 승인을 받은후에는 건설 도급업자나 건설업체에 하청을 주어 시공을 한다. 하청을 주었다고 해서 건축가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시공을 도면대로 잘 하는지 공사현장을 확인 방문하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이고, 시공상 난관에 부닥치면 도면을 수정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도 건축가의 손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건물을 모두 시공한후에 건축주에게 건물을 양도하여 계약서를 주고 받았을때에야 비로소 건축가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4.06.24| 5페이지| 1,0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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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브리치세계사 평가A좋아요
    곰브리치 세계사(에른스트 H. 곰브리치)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의 교과과정 중에서 세계사를 접해 보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암기위주의 세계사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일반 대중 서점에 가보면 어린이들과 일반 대중들을 위한, 세계사에 대한 흥미위주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 어느 특정한 시대나 인물에 대한 전문적인 서적 또한 많이 나와있다. 어느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전문적인 서적을 읽기에 일반인으로서 우리는, 흥미가 조금 가미된 책을 원한다.곰브리치라면 로 익히 유명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그가 '세계사'까지 쓴 것 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곰브리치를 역사가라기보다는 미술사 전문학자일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는 대학원에서 건축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런 까닭에 상당한 호기심을 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 넘기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책과 관련된 몇가지 전제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미 많은 형태의 역사서를 접한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기가 상당히 불편한 독서 경험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점이었다.첫번째로, 이 책은 어디까지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여진 역사서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의, 아마도 '세계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어린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책의 서술 형태와는 다르게,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곰브리치는 역사적 사실의 전달 못지않게 '역사란 재미있는 것이며, 역사 속에는 배울 것들이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언뜻 언뜻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본인의 주관적인 역사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성인 독자들에게는 때때로 거부감을 안겨줄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또 하나 감안해야 할 전제는 이 책이 1차 대전이 막 끝날 무렵에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태평양 연안 지역이 현재처럼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기 이전이다. 따라서, 곰브리치가 서술하는 '세계사'는 유럽 중심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이 서술되어진 역사적 시점을 감안해가며, 그가 왜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민해 가며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곰브리치 세계사는 모든 시대의 중요 사건들을 매우 간략하게 잘 추려서 보여주고 있다. 태초 인류의 시작부터 훗날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역사를 매우 잘 담아내고 있으며 그 속의 중요 사건들을 잘 배열해 놓았다. 우리가 세계사의 흐름을 잘 파악할수 있게 하였다.곰브리치가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것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조감도를 보듯이 한눈에 그리면서도 현상적 사실(fact) 이면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역사를 함께 읽어 내는 탁월한 통찰력, 그리고 역사란 우리가 만들고 밝혀 가는 상대적 가치의 집적물이며 역사의 흐름에서 절대적 권위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하는 역사적 진리를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듯하다.옛날 이야기처럼 들려 주는 자상함과 인류문명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 가치를 드러내는 휴머니즘, 사실의 양면을 모두 한 번씩 뒤집어 가며 읽어 보는 사려 깊은 해석능력, 그리고 정치·사회·경제·종교·문화·과학 사상 등을 단번에 묶어 낼 수 있는 체화된 서술방식으로 책을 읽다보면 현대문명의 역사적 뿌리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하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이 책은 객관적 사실들만 배열해 놓은 일반적인 역사책들과는 다르게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갈등하는 구성원들 모두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곰브리치는 중세시대의 현란한 성들과 건축물의 모습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건축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의 중세 농노들이 겪은 암울하고 참혹한 그 시대 상황까지도 동시에 묘사하며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서구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행한 모험정신과 그 속에 숨겨진 잔인한까지도 모두다 드러내었다. 여기서 그는 크리스트교를 위해 유럽인들이 행한 잔혹한 행위들에 대한 합리화에 대해 비판하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잠수함의 원리가 인간을 죽이는데 쓰일 것을 우려하여 발표하지 않은 사실을 높이 평가하며, 인류 문명은 인간을 위해 쓰일 때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곰브리치는 세계사를 설명할 때 기존의 책들처럼 정치사 중심으로 서술하지 않고 인류사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문화, 과학, 그리고 사상 등의 다양한 측면이 각 새대 상황에 따라 비중을 달리하면서도 전체적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사 전체의 흐름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을 이루는 각 부분들이 어떠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 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곰브리치 세계사가 갖고 있는 역사책으로서의 미덕은 이 책의 곳곳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야기의 연관성이 파괴될 것을 우려하여 지나친 수정작업은 지양하였듯이 곰브리치가 이 책에서 전해주고 있는 것은 늘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들만은 아니다. 개중에는 우리가 다른 역사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일화도 들어 있고, 우리가 다른 역사책을 통해 익히 알고있는 일화도 들어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도 들어 있다. 여기에서 주용한 것은 곰브리치가 어쩌면 다 알고 있는 듯한 이런 이야기들 속으로 우리를 어떻게 새롭게 이끌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책을 쓰던 당시 스물 다섯 살의 젊은 곰브리치가 청소년에게 세계사를 전달하기 위해 취한 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뛰는 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옛적 이야기의 방식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두 개의 큰 거울을 서로 마주 세우고 보면 거울 속으로 수없이 많은 거울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들이 여기가 이야기의 끝인가 하면 그때마다 또다시 더 먼 예날로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곰브리치는 이렇듯 이야기의 옛날 옛적을 찾아 떠나는 기억의 여생 속에서 바닥 없는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언제나 역사에 대한 물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역사적으로 어떠한 사건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우리가 길잡이로 사용하는 것이 연대표라고 하겠다. 이러한 연대에 대한 기억력을 강화시키면서도 역사에 대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곰브리치는 여러 가지 놀이의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군을 ‘이수스’라는 곳에서 물리친 연도를 기억하기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책의 곳곳에서 곰브리치는 역하적 사건들을 흘러간 옛날 이야기처럼 전해주면서 독자들이 그 속에서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이끌어낸다. 이야기를 들어면서 궁금증이 일어나 물어본다면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물음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라는 대화의 방식을 통해서 곰브리치는 독자들을 역사의 미궁 속으로부터 햇살 비치는 환한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해주는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4.06.24| 5페이지| 1,000원| 조회(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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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르꼬르뷔제의 사상 평가A좋아요
    건축과 도시계획에 관한르 꼬르뷔제의 사상르 꼬르뷔제는 건축가들과 일반인들에게 매우 유명하고도 친숙한 건축가이며 문인이고 또한 화가이다. 르 꼬르뷔제는 항상 건축물, 도면, 그림, 글, 그리고 강연 등을 통하여 그 자신을 표현하였다. 그는 자연환경, 자연현상,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개인의 존재뿐 아니라 사회의 존재, 역사, 사회적 변화, 활동적인 힘 , 사상운동, 그리고 미래발전의 예견 등과 같은 사고를 마음속으로 아이디어를 형상화 하였고 도면으로 그의 생각들을 표현하였다. 건축가이며 도시계획가로서 그는 어떠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려는 하나의 방법을 시도하였으며 완전한 인간의 잠재력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사상에 대한 시도가 도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기에 르 꼬르뷔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르 꼬르뷔제가 말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건축은 다음과 같다. 건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생활을 담기 위한 기술 ·구조 및 기능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공간예술이다. 건축은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한다. 이로써 건축의 본질은 쾌적하고도 안전한 생활의 영위를 위한 기술적인 전개와 함께, 공간 자체가 예술적인 감흥을 가진 창조성의 의미를 가진다. 이 공간예술을 다루는 작가, 즉 건축가의 입장에 있어서 건축의 공간은 실용적 대상이고, 3차원의 지각적 대상이며, 자기인식의 실존적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순한 건조기술을 구사하여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구축물을 건물이라 하고, 공간을 이루는 작가의 조형의지가 담긴 구축의 결과를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다.르 꼬르뷔제의 대답은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르 꼬르뷔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건축의 목적은 감동을 창조하는 것이며 건축은 비례이고 비례는 마음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우리는 외관이 모델링의 정확성과 특징의 배열에 있어서 조화로움을 발견하는 비례를 나타낼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건축은 빛 속에 모여진 볼륨의 정교하고, 정확하고, 장엄한 연출이며 건축에서 구체적이거나 추상적 요소들은 의도에 의해 지배되어 져야한다. 그러나 유용한 것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건축이란 예술은 어떤 때에는,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창조물의 정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마음의 순수한 창조물이며 그것은 우리가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를 매우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건축디자인의 단계적 과정중 첫 번째 단계는 볼륨들의 배열이며 르 꼬르뷔제의 전문용어로는 ‘특성’이다. 두 번째 단계는 파사드 비례의 결정이다. 그는 문과 창문을 만들어 냄으로 인해 기하학적 형태를 창조하였고 방정식의 조건을 취했다. 그는 주택의 비례를 결정함에 있어서 볼륨과 표면 그리고 개구부에서 건축적 리듬, 거리, 간격들을 만들었고 그와 같은 동일한 상호작용은 주택의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빛과 형태, 빛의 특별한 세기, 연속적인 공간들은 심리적인 감동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들의 감각에 작용하고 있다. 세 번째로 단순함은 건축디자인의 기본 원리중 하나이다. 단순함은 형태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역할을 통해, 정신상태를 표현하는 방법과 정신체계를 드러내는 방법을 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임의대로 복잡하게 만든 형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건축디자인의 세 가지 기본 요소들은 불륨, 표면, 평면이다. 볼륨과 표면은 건축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통한 요소들이며 볼륨과 표면은 평면에 의해서 결정된다. 건축디자인에 있어 볼륨은 빛 속에 모여진 정교하고, 정확하고, 장엄한 연출이며 표면은 이러한 볼륨들을 잠식하는 기생물이 되지 않도록 활력을 부여하여아만 하며 마지막으로 평면은 발생기로서의 역할을 한다.르 꼬르뷔제는 조화에 대한 그의 건축 디자인 이론에 있어서 규준 다어어그램, 확금분할 그리고 모듈러를 설명한다. 규준 다어어그램은 제 멋대로 배열된 것에 대해 우리 자신들이 명확하게 검증하는 방법으로서 건축에 있어서 단지 수정하는 도구일 뿐이며 적함한 시스템의 선택은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황금 수열’은 각 항들이 곱셈이나 덧셈에 의해 관계된 단순한 수열이며 그것은 자연의 유기체에 존재하는 통일성과 다양성 같은 조합을 창조한다. 황금분할에 대한 르 꼬르뷔제의 연구는 비례와 관계된 시스템인 모듈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모듈러는 한 팔을 뻗어 올린 사람의 높이는 공간에서 그의 위치를 결정하는 몇 개의 지점에서 선분으로 나누어 진다는 이론아래에, 인간의 신체와 수학에 기반을 둔 측정하는 도구이다우리는 지금까지 건축을 배우면서도 교수들이 건축을 어떻게 가르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과연 교수들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무슨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건축을 교육시키려는 것인지 무관심해 온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우리는 이학교 저학교 할 것없이 똑같은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에 의례 공부했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되었고, 특히 건축에 있어서는 매우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여기서 르 꼬르뷔제가 어떻게 건축을 가르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르 꼬르뷔제는 가르침에 있어서 건축은 존경되어져야 하며 ‘양식’을 금지시킴으로서 시작할 것이라 한다. 그는 강의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할 것이며 학생들에게 강한 자기통제력과, 자기 결정력, ‘어떻게’ 그리고 ‘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전달하려고 노력 할 것이라 한다. 또한 그는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통제 속에서 본질의 분별력을 적용하고 비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우리에게 조직적은 다이어그램을 이용하여 주택의 정확한 기능을 공부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건축의 기술적인 문제점들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건설현장을 직접 방문하여기존의 설비에 대해 조사하고 그 규모와 치수를 측정해야 하며, 그 기능을 이해하라고 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건축을 배움에 있어 건축가들은 자연의 유기체를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상상력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르 꼬르뷔제는 집합주택과 도시계획을 하나의 단일 문제, 즉 인간의 은신처의 문제로 보고있다. 그는 주택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명시하면서 구체적으로 햇빛과, 침실, 온수와 냉수, 쾌적한 온도, 알맞은 음식 저장고, 위생적인 상태, 그리고 좋은 비례의 미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르 꼬르뷔제의 주택에 대한 정의는 널리 알려졌으나 그 정의가 기능적인 효용성뿐만 아니라 미학적인 만족감, 즉 좋은 비례의 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르 꼬르뷔제는 완벽한 용기인 주택이 또다시 조화를 열망할지도 모른다고 하며 팔라디오의 미소조차 열망할지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 유일한 차이점은 규모이며 수직의 전원도시는 도시 계획가에게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해결을 도와 줄 것이라는 예견을 한다.
    독후감/창작| 2004.06.24| 5페이지| 1,000원| 조회(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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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그리스건축과 로마건축 비교
    그리스와 로마건축의 비교□ 역 사그리스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 도리아인과 이오니아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들은 독립된 도시국가(polis)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며 지중해성 해양성 기후 지역으로 인해 아고라와 같은 광장을 중심으로 한 공공건축물이 발전하였다. 그리스 문명은 시대별로 Archaic(고전적) 시대, Hellenic(고전) 시대, 그리고 Hellenistic(헬레니즘)시대로 나뉜다. 그리스인은 인간과 사회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윤리적, 정치적, 심미적 가치를 인간적 필요와 목적을 기준으로하여 규정하였던 것이다. 개성의 발휘는 사회적으로 보장되고 언론의 자유가 향유되었으며,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나 또 법적으로 제도화 되었다. 그리스인의 성취는 후대의 서양문명에 종요한 영향을 끼쳤다.로마인은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였다. ‘고대사의 호수’라는 말을 듣는 로마는 역사상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커다란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며, 고전적인 고대의 모든 성과를 종합하였다. 로마는 고대 동방, 이집트 및 그 밖의 중동 여러민족의 문화를 이어받았으며, 특히 독창성이 높은 그리스문화를 계승하여 이러한 모든 것을 서양문명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인이 독창적이었던 데 비하여 로마인은 조직적이었다.□ 건 축? 그리스 건축그리스에서 종교는 사회와 도시구조의 기본원리였으며 이는 신전건축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또한 밀레토스 학파로부터 영유하는 합리적사고는 영이상학과 기하학으로 방향잉 설정되어 우주의 생성과 변화과정을 주재하는 근본원리로 작용하였다.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에 의한 비례를 최상의 이상적 조화로 여겨 항상 아름답다는 美의 객관적 기준으로 설정하였고 심메트리아라는 규범으로 건축의 형태 구성과 각 부위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원리로 사용되었다.그리스 신전은 이집트의 신전이 발전된 것으로서 그리스인들은 신과 신전을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이상세계의 완성으로 보았다. 또한 신전 내부보다 외형을 더 아름답게 꾸미기를 좋아했고 신전을 에워싼 외부공간의 짜임새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전의 대부분은 아침햇살, 곧 태양의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또 동-서로 길게 네모꼴로 놓여지고 또 동쪽에서 들어가도록 지었다. 평면상으로 볼 때 이것은 미케네의 메가론에서 유래한 듯 하다. 가장 간단한 형태인 겅우, 신전은 하나의 문과 하나의 방, 즉 셀라로 구성되며, 그전면에는 포티코가 자리한다 이포티코는 전면까지 연장된 측벽사이에 두개의 기중이 자리잡고 있으며 비트루비우스는 이를 ‘인 안티스로’ 이름 붙였다.? 로마 건축공화정 시대 로마 신전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요소들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들은 평면상으로 볼때 직사각형이거나 원형이다. 이탈리아의 지중해 주변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지배적 세력이 로마로 하여금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전 지역에 걸쳐서 예술과 문화를 전파시키는 데 주동이 되게 하였다. 로마인들은 그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그리스와는 다른 방법을 썼으며, 로마는 힘의 정치로 세계 제패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따라서 종교하고 세련된 고도의 예술성은 찾아 볼 수 없고, 규모의 방대성과 호화로움을 자랑할 뿐이다.그리스에서는 신전이 주된 용도의 건물이었으나, 로마로 들어오면서부터는 문화가 점차 복잡해지고, 로마인의 요구도 다양해지는 데 따라서 많은 용도의 건물이 추가되고, 그것도 점차 규모가 커지며 장식도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스 건축의 특징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내부공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외부공간 요소로서의 신전이었으며, 따라서 그리스의 신전은 이집트 신전의 산만한 배치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질서있고 짜임새있고 대칭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리스 신전에서 처음으로 유럽 건축의 아름다음을 보여주는 양식이 나타나는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도리아식은 간결함, 이오니가식은 우아함, 코린트식은 화려함을 보여주는데, 고린트식은 그리스 건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훗날 로마 건축에서 유행한다.(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도리아양식▶ 가장 단순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며, 남성 신체의 비례, 힘에서 추 출하여 남성적이다.▶가장 오래된 양식으로 이집트 베닛핫산의 제 3암굴분묘의 16각주 에서 그 원형을 모방했다고 전해진다.▶다른 주범과 달리 주초가 없다.▶주신의 길이는 밀통의 5-6배이고ㅡ 윗통은 밑통의 3/4?2/3으로 가늘다.▶채석을 움반하기 편리하도록 11개의 드럼으로 토막지어 시공했다.▶주신 전체에 20, 24, 40, 44줄의 골줄을 두어 수직성, 입체감을 강조했다.▶착각 교정을 위해 주신에 엔타시스(배흘림)를 두었다.▶주두에 접시 모양의 원반과 같은 에키누스과 네모꼴 판돌인 아바 쿠스가 올려져 있고 그 위에 주붕을 받치는 엔타블레이춰 부분이 있다.▶엔타블레이춰는 architrave, frieze, cornice로 구성된다.(포세이돈 신전 &파르테논 신전 &헤라 신전)이오니아양식▶ 이오니아 지방에서 창안했다.▶ 우아, 경쾌, 유연한 느낌을 주며 여성적이다.▶ 주신의 길이는 밑퉁의 8~10배이고, 밀통과 윗통의 차가 적다.▶ 주초가 있으면 배흘림이 약하다.▶ 골줄은 24줄이 표준이다.▶ 소용돌이 주두가 있으며, 소용돌이 눈에 보석, 색대리석 등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이오니아식 주범의 아름다움은 주두에 있으며, 주두 위에는 쿠숀 으로 엔터블러처를 받들고 있다.▶ 엔타블러춰의 프리즈 부분은 도리아 양식과는 달리 두루 마리 그 림 모양의 돋을 새김이 있다.( 에렉테리온 신전 &니케 신전)코린티안양식▶ 이오니아 양식과 비슷하지만 이오니아 양식에 비해 더 우아하고 화려하다.▶ 주두에 안칸더스 나뭇잎을 화려하게 장식한 형식으로 소녀의 호 리호리한 모습이다.▶ 주신의 실이는 밑퉁의 10/12배이다.▶ 위초로 바사에의 아폴로 에피큐리우스 신전에 사용되었으나, 너 무 화려한 탓으로 소규모의 기념건축 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 았다.
    공학/기술| 2004.06.24| 9페이지| 1,000원| 조회(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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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종묘 / 원구단 평가B괜찮아요
    종묘원구단5월의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오후 건축사 레포트로 답사보고서를 쓰기위해 모처럼 들르게 된 종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려 6년만에 찾은 종묘였다. 명동성당에서부터 종로3가를 지나 걸어오는 길은 참으로 따사로왔다. 지도를 들고 서울 관광을 나선 외국인들이 경찰에게 길을 물어보는 광경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한없이 여유로움을 느꼇다.약간은 먼듯 하지만 종묘를 목적지로 한참을 걸었다. 종로3가인 피카디리/단성사 골목으로 들어섰다. 약간은 종묘의 돌담길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어서 보게된 종묘의 돌담길....지금은 옛날보다는 주위 환경이 많이 개선되어 돌담길을 따라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묘를 궁궐이라고 알고있는데, 종묘는 왕이나 왕비 또는 왕실 가족의 장례행사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지 궁이 아니다. 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흔히 말하는 서울 5대 궁궐은 다른 4개 궁과 경희궁을 포함하여 5개를 말한다.태조 3년(1394)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태조는 4대(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추존왕을 정전에 모셨으나, 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둘 정전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1421) 영녕전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정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8년 다시 지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현재 19칸의 건물이 되었다. 정전에는 19분의 왕과 30분의 왕후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8년 다시 지었다. 현재 16칸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및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고종의 아들 이은(李垠)과 부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앞 뜰에는 조선시대 83명의 공신이 모셔진 공신당이 있고, 중요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전해진다.종묘는 동시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담긴 유산이다. 종묘의 정전과 영정전 및 주변 환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묘제례와 음악·춤의 원형이 잘 계승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종묘의 정문인 창엽문은 궁궐의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매우 간결하고 단아하다. 가까이 경복궁의 광화문을 떠올려 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광화문은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하였으며 층수도 2층이어서 화려하고 웅장한 인상을 준다. 이에 비해 종묘의 창엽문은 적색과 녹색의 두 가지 색을 사용하였고 1층이어서 모습 자체가 단순하고 절제되어 보인다. 정문 안 서쪽으로는 본래 종묘를 지키는 수복방이 있었다. 정문은 원래 전면 중앙에 난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조성하면서 도로 면이 높아지게 되어 땅에 묻히고 지금은 단벌의 장대석 기단만이 남아있다.종묘 정문에서부터 거칠고 널찍한 박석을 사용해 종묘 깊숙이 세 갈래의 길을 하나로 깔았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 길이 좌우의 길보다 조금 높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 높은 길은 신향로(神香路)이고, 동측의 것은 어로(御路), 서측의 것은 세자로(世子路)이다. 이는 궁궐의 삼도와 형태상 유사하나 의미와 기능이 다른 것이다. 신향로는 정전 신문을 통해 묘정 월대에 난 신로에 이어지고, 어로와 세자로는 어숙실 일곽에 닿는다. 종묘로 향하는 길은 조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거친 박석을 조심스럽게 밟아가며 조상께 향하는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다.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의 업적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 서측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는 것과 종묘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숙종 23년(1677)에 간행된 종묘의궤(宗廟儀軌)에 의하면 망묘루 일대는 지금과 다른 형태인 집사청(執事廳), 향청(香廳), 재실(齋室), 망묘루(望廟樓)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이곳 공신당은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향대청은 종묘에서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9칸 반, 측면 1칸 반의 긴 장방형 건물로 반칸의 문간을 중심으로 북으로 5칸, 남으로 4칸이며 반 칸의 전퇴를 두고 있는 간소한 형식이다전사청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종묘 정전은 매 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그 좌우의 협실 두 칸, 그리고 협실 양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있다. 남문인 신문(神門)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묘정과 정전이 놓여있는 상월대 사이에는 3개의 계단이 나있다. 가운데 계단을 태계(泰階), 동쪽의 계단을 동계(東階) 혹은 조계, 서쪽의 계단을 서계(西階)라 한다.상월대에 이르는 이들 계단과 동월랑의 계단 소맷돌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정전이 곧 '천상의 공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차이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늘린 점이다. 정전은 동·서월랑을 포함하여 길이가 101미터가 되는 길고 장중한 건물이다.이처럼 건물 길이가 긴 이유는 조선왕조가 지속되면서 봉안할 역대왕의 신위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라 중축했기 때문이다. 서측을 상(上)으로 하여 제1실인 서쪽 첫 번째 칸에 태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런 다음 서쪽대), 고종(26대), 순종(27대)과 각왕의 비(妃)를 합쳐 모두 49위의 신위가 19감실에 모셔져 있다.정전의 동문은 제례 때 헌관이 출입하는 문으로 지붕의 용마루 높이가 같은 세 칸 규모의 평삼문으로 되어있다. 어숙실 서협문에서 정전 동문으로 통하는 어로(御路)는 정전 동쪽 묘정에 닿도록 놓여져 있다. 정전의 남문은 혼백이 출입하는 하는 곳이다. 정전 서문은 악공이 드나들던 문으로 다른 문과는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문 밖 좌우 기둥의 주춧돌 모양이 서로 다른데, 이는 천(天), 지(地)를 의미하며 사람(人)의 출입을 통해 비로소 天-地-人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정전 건물 후면 일곽은 석축단을 쌓은 북계(北階)와 둘레담으로 조성되어있다. 북계에는 일반 건출물 뒤에 설치하는 화계(花階)처럼 꽃나무를 심지 않았다. 경견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북계 뒷편에는 담을 둘렀는데 정전의 위패를 모신 신실 길이만큼 높게 조성하였다. 신실의 길이 만큼 담의 높고 낮음의 차이를 둔 것이다. 한 정전 전면은 묘정을 향해 틔여 있지만, 후면과 측면은 전벽돌로 막아 놓았다. 위패를 모신 사당건축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녕전의 후면과 다른 점은 '칸마다 기둥이 드러나지 않게 벽체를 마감 처리'했다는 점이다.종묘정전을 보고 있으면 착시현상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종묘의 정전 건물은 동서로 뻗은 건물의 길이만도 100여 미터가 넘는 아주 긴 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서 정전을 봤을 때, 길다란 정전의 지붕이 일직선의 수평으로 보이지 않고 양끄트머리가 아래로 처져 보일 수 있다. 이는 '착시현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지붕의 용마루 양 끄트머리를 다른 부분에 비해 조금 높게 쌓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양 끄트머리의 높이가 다른 곳보다 높지만, 멀리서 봤을 때 자연스런 수평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종묘 정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우리나라 한옥의 경우 흔히 이용되는 수법이기도 하다.아래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칠사당은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왼쪽에 있던 것으로 봄에 모시는 사명과 호, 여름의 주, 가을의 국문과 태여,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영녕전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기 때문에 정전에서와 같은 장대함을 느끼기에는 뒤지는 감이 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공간이 한눈에 쉽게 들어와 친근감을 더해 준다. 네모난 아랫부분에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을 짜고, 기둥 한 칸은 개방하고 안에는 두 짝 판문을 달고 뒤는 화방벽으로 쌓고 서까래는 부연 없는 홑처마로 꾸미는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으며 역시 부재 표면도 단청 없이 간단히 주칠로 마감하였다.정전과 좌우 익실 앞으로 동·서월랑이 뻗어 나와 ㄷ자 형태를 이루고 그 사이를 박석을 덮은 상·하월대가 울타리를 가득 메우는 점도 동일하다. 이곳은 부재의 처리나 건물의 규모가 전체적으로 종묘 정전보다는 작지만 건축 공간 자체의 장엄한 공간 구성은 여기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장인들의 솜씨는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영녕전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제기고는 제기를 보관했던 곳이었다. 정면 4간 측면 2간의 맞배집으로 내당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판문을 두었고, 양측 주간에는 살창을 두었다.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음악을 담당한 악공들이 준비하며 기다리던 곳이다. 악공청은 정전과 영녕전 밖에 서쪽에 별도로 마련되어있다. 이들 악공청들은 현재 남아 있는 것만으로 정확한 내부 구조를 알기 힘들다. 정전에 부속된 악공청의 경우 지금은 개수하여 정면 6간 측면 2간을 이루는 기둥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영녕전에 딸린 악공청은 정전의 악공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다. 정면 3간 다.
    공학/기술| 2004.06.24| 11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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