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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륙이동설에서 판구조론까지
    판구조론이 나오기까지...( 대륙이동설의 등장, 사장(死藏), 부활 )목차1. 20세기 이전의 지구관(1) 대서양 양쪽대륙의 해안선의 일치에 대한 이론들(2) 많은 이론에 대한 반응2. 대륙이동설의 등장(1910-1930)(1) 대륙이동설의 탄생(2) 대륙이동설의 증거3. 잊혀진 대륙이동설 (1930-1950)(1) 대륙이동설에 대한 비판(2) 대륙이동설의 지지(3) 베게너의 사망(4) 맨틀대류설4. 판구조론의 탄생 - 대륙이동설의 부활(1) 해저확장설(2) 판구조론5. 맺음말참고문헌1. 20세기 이전의 지구관(1) 대서양 양쪽대륙의 해안선의 일치에 대한 이론들17,18세기 여러 학자들은 대서양 양쪽의 대륙(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이 유사함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설명하려 하였다.①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훔볼트는 대서양이 하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평행하고 거대한 계곡이라고 하였다.② 스나이더-펠리그리니(Antonio Snider-Pellegrini)스나이더-펠리그리니는 지구의 모든 대륙이 태초에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으나 노아의 홍수로 지구 내부에 있던 물질들이 밀려 나오자 대륙이 갈라져 대서양이 생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③ 피셔(Osmund Fisher)피셔는 먼 옛날 지구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달을 만들었는데 떨어져 나간 자리가 태평양이며 이때 생긴 공간을 메우기 위해 대륙이 갈라져 대서양이 만들어 졌다고 주장했다.④ 육교설19세기 후반에 지배적이었던 육교설에 의하면 원시 지구는 뜨겁게 녹아 있던 상태에서 출발해 식으면서 서서히 굳고 수축하였으며 수축하면서 생긴 주름에 의해 대륙과 바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같은 종류의 육상식물과 파충류 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두 대륙이 가늘고 긴 육교에 의하여 연결되었으리라고 믿었고 이 육교를 통해 생물의 이동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수축이 더욱 진행되면서 육교는 물에 잠겼다는 설명이다.(2) 많은 이론에 대한 반응대륙의 형성에 대한 논쟁에서는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거나 이전에 수용된 이론의 본질을 밝혀서 폐기하고 새로운 이론을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것으로 치부하여 배척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지구의 상태를 설명하려던 몇 가지 과거의 지각변동 이론들의 매력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2. 대륙이동설의 등장(1910-1930)20세기 초 당시의 과학적 정설을 뒤집고 지각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방법에서 노아의 홍수, 금성, 달의 이야기를 제외시키며 모든 증거들은 집대성한 사람은 독일의 기상학자 겸 탐험가인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였다.(1) 대륙이동설의 탄생1911년 가을 31세의 베게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대서양 양쪽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 화석이 열거된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브라질의 돌출부와 대서양의 아프리카만은 마치 찢어진 신문지의 가장자리를 맞춰 놓고 인쇄된 부분이 부드럽게 만나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두 곳이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붙어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라고 썼다. 이처럼 베게너는 고생대 말에 지구상의 모든 대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으나 그 후 대륙이 갈라져 이동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하는 대륙이동설을 전개하였다. 그는 고생대 말의 커다란 대륙을 '판게아' 라고 불렀다. 판게아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후에도 계속 서로 멀어지고 있다고 하였다.또한 베게너는 넓고 긴 정원 달팽이의 분포는 육교설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대륙이동설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면서 육교설에 반대하였다.(2) 대륙이동설의 증거베게너는 대륙이동설을 주장하면서 여러 증거를 제시하였다.북아메리카 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의 지질학적 성분은 스코틀랜드 고지의 것과 일치했고 남아프리카 대고원의 암석지층은 브라직의 산타카타리나 고지의 지층과 일치했다.또한 과거에 거대한 기후 변동이 있었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아서 당시 기후가 서로 크게 다른 두 대륙이 한때는 한덩어리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 제도에서는 양치류 및 소철류와 같은 열대식물의 화석이 나왔고 남극에서 석탄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때 적도지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남아프리카에서는 모래, 자갈 점토가 섞여 나오는 빙하의 흔적으로 한때 훨씬 추웠다는 것을 암시했다.베게너는 상당히 떨어진 곳의 종들이 비슷하다는 점도 발견하였다. 원시적인 여우원숭이가 동부 아프리카와 인도양 건너 마다가스카르섬에서만 발견되는 사례가 있었는데 아프리카 본토에서만 진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아주 멀리 떨어진 두 곳에 헤엄쳐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베게너는 대륙이 계속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점으로 그린란드 덴마크 관측소의 위치를 정기적으로 측정하였는데 5년동안 0.9초 늦어졌음을 발견하고 두 지점이 1년에 약 36m씩 멀어지고 있다고 결론 지었다.3. 잊혀진 대륙이동설 (1930-1950)(1) 대륙이동설에 대한 비판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처음 발표하였을 때 당시 과학계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베게너가 제시한 여러 가지 증거들이 대륙이동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보수적인 과학계는 대륙이동설에 비판적이었다.? 대서양 양쪽 대륙의 해안선이 실제로 정확하게 들어맞지도 않으며 베게너가 빙하 퇴적층이라고 주장하는 지층이 빙하에 의하여 쌓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대서양 양쪽 대륙이 1년에 36m정도 멀어진다는 측정치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학적 논쟁을 넘어서 “베게너는 과학적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 “이 가설은 연구자가 아니라 종교 맹신자가 주장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라고 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받아들인다면 지난 70여년간 연구했던 내용들은 모두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가장 강하게 공격한 사람은 존스홉킨스 대학의 고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베리였는데 그는 베게너가 사용한 방법이 과학적이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는 고의로 무시했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대륙이동설을 사라지게 만든 배경은 베게너가 제시했던 대륙이동의 원동력 때문이었다. 베게너는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과 달과 태양의 인력에 의한 조석마찰력에 의해 대륙이 서쪽으로 이동될 수도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은 영국의 지구물리학자 제프리에 의한 반론, 즉 대륙이동의 원동력으로 조석마찰력을 인정한다면 지구는 현재 자전을 멈춘 상태여야 하며 나아가 지구의 겉부분은 높고 낮음이 없는 완벽한 구형을 이루어야 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대륙이동설 반대론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사실 베게너가 사용한 자료에는 몇 군데 결함이 있었다. 이 때문에 베게너가 과도한 예측을 하게 되었다.(2) 대륙이동설의 지지? 미국의 과학자 테일러(F.B.Taylor)는 1910년에 이미 신생대 산지 분포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대륙이 이동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유럽에서는 아르강(Emile Argand)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전체 알프스 산맥은 유라시아를 향한 곤드와나 대륙의 이동으로 생겼다고 가정했다.? 남아프리카의 뒤트와(L.DuToit)는 알프스 산맥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선 허시니아와 칼레도니아조산대도 대륙이동설로 설명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몇몇 학자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에 대한 비판이 지배적이었다.(3) 베게너의 사망대륙이동설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베게너는 기죽지 않았다. 고집이 센 것이 장점인 그는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을‘속이 좁다’ 고 비난하고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더 찾기로 결정했다. 그는 유럽에서의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미국이 멀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대륙이동설을 증명하는 최초의 정확한 천문학적 증거”라고 발표했고 극지방에 관측소를 세우기 위해 그린란드 탐험을 떠났다가 사망하게 되었다. 1930년 베게너가 사망함으로써 대륙이동설은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4) 맨틀대류설지질학자 홈스(Arthur Holmes)는 지구 내부에서 방사성 원소의 붕괴에 의하여 생성된 열이 축적되면 맨틀 내에 대류가 일어나고 이 때문에 대륙도 이동될 수 있다는 맨틀대류설을 제시하였다.맨틀대류설은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후에 해저확장설이 등장하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고 궁극적으로 대륙이동설의 소생과 판구조론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되었다.4. 판구조론의 탄생 - 대륙이동설의 부활대륙이동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론이었기 때문에 학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사장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당시의 과학수준이 대륙이동설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에 사용되었던 많은 군사장비들이 과학적 연구활동에 쓰이게 되면서 새로운 자료를 많이 얻게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심해저탐사에 의하여 밝혀진 여러 분야의 연구결과들이 밑거름이 되어 1970년대에 새로운 지구관을 탄생시키게 되었다.(1) 해저확장설헤스와 디이쯔는 1961년과 1962년에 여러 관찰 결과를 정리하여 해저확장설이라는 가설을 제창하였다. 그들은 맨틀에서 위로 치솟는 용암물질이 해양저산맥을 만들고 해령의 양쪽에 용암이 부착되어 굳어져서 새로운 해양지각을 형성하므로 산맥 양쪽의 해양지각은 해령을 중심선으로 하여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이 때문에 해양지각이 확장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연과학| 2007.12.12| 5페이지| 1,000원| 조회(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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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의 양심선언을 읽고
    도서명 : 과학의 양심선언 (The Many Faces of Science)L.Stevenson, H.Byerly, 이상빈 옮김, 10101. 1998레슬리 스티븐슨과 헨리 바이얼리는 『과학의 양심선언』이라는 이 책을 통해 과학 역사의 초창기에 근간을 이루었던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일반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순된 가치관 및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여 살아있는 과학역사를 보여주고 있다.과학이란 용어는 광범위하고 모호한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저자는 1장에서 무엇이 과학인지를 규정하고 있다.과학의 목적은 진리추구이며 과학은 기술이 아니다. 과학의 주된 관심사는 기술적인 노하우(knowing how)와는 반대되는, 지식을 얻는 것(knowing that) 즉, 진리지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과학은 가설과 이론, 자료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모델의 개발과 시험이며 수정되고 확장될 수 있는 역동적 과정이다. 과학적 주장은 권위와는 반대로 증거에 토대를 두며, 쉽게 검증할 수 있고 그래서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수치적 정확성이라는 표준을 만족시켜야 한다.우리는 종종 과학과 기술을 동일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과학과 기술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과학과 기술이 구분되는 개념임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또한 과학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현대과학 발생에서 과학과 기술간에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었다. 저자는 17세기 현대과학의 발생을 주도했던 그 시대의 역사적 특징들을 제시하여 과학의 본질과 문화와의 관련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고대 그리스인들이 저술했던 철학, 수학, 천문학 저서가 유럽으로 옮겨가면서 그리스 문화의 부활이 이루어졌고 인쇄술 발달로 과학발전에 필요한 의사전달이 가능해졌으며 현세의 성공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발생으로 자연을 지배하려는 시도가 조장되었다. 또한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항해가 증가하여 시계와 천문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종교개혁은 세속화를 가중시킨 국가 형성을 지지함으로써 현대과학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과학정신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저자는 2장과 10장에서 여러 과학자의 사례를 들어 과학의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고자 한다. 과학은 자유로운 낙천주의 또는 심오한 염세주의, 희망 또는 근심, 아첨이나 반항 등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원인제공자가 될 수도 있다. 과학은 관대한 여신 같기도 하고 악마에 가깝기도 하다. 일부 사상가들의 입장에서는 비인격적이고 비양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사상가들 입장에서는 인도주의적인 가치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고 본다.베이컨은 체계적인 과학 연구와 천연자원의 개발에서 과학지식의 응용을 통해 커다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예견하였다. 인간이 사는 환경만 지배할 수 있다면, 인류 그 자체는 완벽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하였는데 계몽의 시대라는 18세기에는 베이컨의 이상이 서구사상을 지배하였다.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연구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환경주의자 리프킨은 핵무기와 유전공학을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베이컨식으로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힘을 얻으려는 지식을 더 이상 추구하지 말고 오히려 환경에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그러나 베이컨식 낙관주의나 프랑켄슈타인 염세주의의 내용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과학의 응용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인간의 이익을 도모해 왔으며 그 잠재성은 무한하다. 그러나 과학은 또한 많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정한 기술 발달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은 일시적인 것이며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재평가를 해야 한다.현대 과학과 기술의 파괴적이고 악의적인 경향에 대한 염려 외에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수반되는 전반적인 철학이나 세계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모든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모노는 과학이 가치관을 유린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과학이 가치관을 판단하지 않고 무시한다고 하였다.미국 물리학자 라비는 한 강연에서 “과학은 모든 인간을 모험 세계로 안내하는 확실한 기초지식이다. 과학에 친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기초적인 인간의 가치관을 소유하지 못한다”라는 정반대의 견해를 피력했다.과학이 어떻게 가치관과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공통적 반응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엄격히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모든 인간 가치관을 무효화하지도 않고 특정가치관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가치관보다는 사실만, 목표보다는 기술을, 목적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수단을 다룰 수 있다.그러나 과학의 객관성이 두가지 면에서 공격을 받는다. 사실 과학 자체가 객관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또는 가치관에 관한 논의도 원칙적으로 과학론만큼 객관적이 될 수 있다라고 할 수도 있다.일반인들은 과학에 대해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그 사고방식에는 우리의 가치관과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과학은 항상 혜택을 주는 것만도 아니고 부정적 결론에만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과학이 실제로 모든 가치관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우리는 과학을 이용하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 뿐만아니라 어떤 것이 이롭고 해로운지를 정확히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을 수없이 겪으며 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보통사람을 과학자가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일까? 저자는 3장에서 과학자를 움직이는 다양한 동기에 대해 설명한다. 누군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할 때 많은 과학자들은 그들의 흥미를 끌 만큼 감명 받은 위대한 발명이야기를 읽게 된 것이 동기라고 말한다. 그 밖에도 깨달음에 대한 욕구나 명성 또는 명예를 위해서 또는 꼭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고픈 욕구 등이 동기가 된다. 그러나 과학자 자신이 판단하는 두드러지는 동기는 자연작용을 알고 싶은 호기심과 이전에 누구도 몰랐던 것을 발견하려는 마음이다.크루더의 저서 「과학의 사회적 관계」를 보면 과학자가 연구 활동을 하게 되는 개인적인 동기가 다섯 가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과학자 스스로도 가장 많이 표명하는 동기는 호기심 또는 과학자체의 목적을 위한 깨달음에 대한 욕구다. 두 번째 유력한 일반적 동기는 명성에 대한 욕구이다. 세 번째 생계유지 수단으로써, 네 번째 즐거움에 대한 욕구, 다섯째는 인류에 대한 봉사욕이다.저자는 4장에서 9장까지 과학자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와 영향력에 대해 다양한 과학자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많은 동기들 중에서 과학 활동의 주된 동기가 되는 지적호기심은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 욕구를 나타내는 분명한 과학적 호기심이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시보그 또한 과학자의 기본연구에서 동기를 유발하는 힘의 기본 방향은 실리적인 목표가 아니라 지적 호기심과 발견에 대한 욕구라 하였다.지난 3세기에 걸친 과학의 발달에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순수한 지적호기심을 가졌다.케플러는 지식 자체를 위해 지식을 공부한 가장 이상적인 연구자이고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욕망에 불타올랐던 가장 열성적이고 강한 동기가 부여된 과학자였다. 그는 위대한 과학활동에 요구되는 특별한 심리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훌륭한 이론을 믿고 싶어했고 미적으로 만족할 만한 우주모형을 추구했다.뉴턴은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처럼 연구 활동에서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반복되는 검토와 연구에 몰입하여 잠잘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아인슈타인은 물리 세계의 가장 깊은 비밀을 이해하여 모든 과학 분야에서 완전한 지적 도취를 누린 순수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부인하며 호기심, 강박관념, 끊임없는 인내력이 자신에 대한 비평과 결합하여 그러한 개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의 논문내용들은 그가 세운 가설의 결과를 산출해 내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삶에서 물리학에 대한 열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분명히 우선하는 것이었다.멘델은 어린 시절부터 자라는 모든 것에 흥미를 보였고 생명의 신비에 호기심이 많았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유전성에 대한 일반적 의문에 흥미를 느낀 멘델은 기민하게도 특정 단일 식물 품종으로 더욱 철저한 시험에 착수했다.퀴리부인이 여성으로서 세상에 보여준 것은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추구하기로 한 확고한 결심과 가난 등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불변의 목적인 실로 소중한 ‘과학적 사명감’이었다.색과 소리를 연구한 라만은 생명만큼이나 물리학을 사랑했다. 연구사실을 발표하면서 중요한 과학자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캘커타 대학에서 물리학교수직을 제의 했을 때 수입이 더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수락했다. 세속적인 것보다 과학적 호기심을 더 높이 평가한 또 하나의 예인 셈이다. 라만은 당시에 상업적, 군사적, 의학적 목적과 관련없이 자신의 연구에 주력한 순수한 과학자였다.
    독후감/창작| 2007.12.12| 4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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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윌헌팅을 보고.. 평가A좋아요
    굿윌헌팅을 보고...처음에 도입부분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수학천재의 성공이야기,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계속 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주인공인 윌헌팅은 고아로 자라면서 양부에게 학대를 당하고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윌은 MIT 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지만 수학에 있어서는 놀라운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대학을 청소하다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푼 일을 램보교수가 알게되어 윌에게 관심을 갖게되고 윌은 숀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영화는 윌이 숀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과정을 그린다.이 영화에서 특히 윌과 숀과의 상담 중에서 숀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윌이 우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하였다. 그 장면에서 윌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와의 대화중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알아? 내가 너희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때야”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서 친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또한 성장을 위해서는 주위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윌또한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램보교수,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숀교수, 진심을 나누는 친구, 사랑으로 감싸주는 여자친구를 통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또한, 여러 발달이론에서 아동의 초기경험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배웠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었다. 윌의 심리적 문제는 어릴적 받았던 학대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윌이 올바른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인문/어학| 2007.12.12| 1페이지| 1,0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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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교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비교」를 읽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사회과학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용어이고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비교」를 읽고 좀 어렵기는 했지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Democratia로부터 파생된 말로 Demos(인민)와 Kratos(지배)의 합성어이다. 민주주의란 군주제나 귀족제와는 달리 국민이 지배하는 정부 형태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크게 고전적 모델과 현대적 모델로 나눌수 있다. 고전적 모델에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로부터 시작한 자유민주주의 혹은 대의민주주의의 두개의 유형인 보호민주주의와 발전적 민주주의가 있다. 현대적 모델은 크게 법치적민주주의, 경쟁적엘리트 민주주의, 다원적 민주주의 , 참여적 민주주의로 나눌수 있다.민주주의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로 첫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인권의 보호이다. 인간의 권리 가운데 객관적? 절대적? 항구적인, 이른바 자연적 권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부형태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된다고 하는 생각이 나타나게 되었다.두번째로 민주주의가 달성하려는 가치는 자유경제체제의 유지이다. 페인은 최소정부가 최선의 정부라고 말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구별하고, 사회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 때문이며 국가가 필요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순수한 자유방임적 경제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는 이른바 혼합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 그것은 정부 스스로라기보다는 공공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부와 경제가 점진적으로 혼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세번째로 민주주의가 달성하려는 가치로 인격의 발달을 들수 있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성? 자존심? 개성의 충족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이러한 세 가지 기본가치에 도달하기 위한 가정과 구체적인 원칙으로는 합리성, 자유, 평등, 주권재민의 원칙, 국민참여의 원칙, 다수결의 원칙 등이 있다.합리성이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 중의 하나로서, 인간이란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독자적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합리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 모든 인간은 천부적인 이성을 가지므로 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기술이 없는 자들도 지도자 못지않은 합리적 사고와 행동의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상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가정이다.또한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인데 민주주으 정치란 그 집단의 결정과정에 집단 구성원이 참여한 정치이므로 개인은 참여와 선택의 자유를 갖지 않으면 않된다. 강제하에서 진정한 참여는 있을 수 없고, 참여 결과를 두려워한다면 참된 참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유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 및 집단으로부터 부당한 구속이나 제재를 받음이 없이 자기의 의사를 표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사회주의에서 모든 인간이 모든 면에서 평등하고 완전하다는 가정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떠한 한정된 면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즉,평등이란 법 앞에서 평등, 기회의 균등, 투표에서의 평등, 인간의 존엄성에 있어서 평등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있어 평등의 가정이 미치는 영역은 시민적 권리에 있어서의 평등, 정치적 권리에 있어서의 평등으로 나눌 수 있다.주권재민이란 권력이 지역사회의 일부나 특정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 전체에 속한다는 뜻이다. 제한된 국가권력,균형과 견제를 통한 삼권분립, 헌법에 의한 정부가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또한 법적으로 국민에게서 그러한 권력이 나온다는 것은 정부의 행동이 항상 국민의지의 질서 정연하고 비폭력적인 표현데 대응해서 나온다는 뜻으로 국가의 법적 권력뿐 아니라 실체상의 지배권도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국민참여의 원칙은 권력을 가진 자는 어떤 정책을 집행하고자 할 때에는 언제나 수시로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공공정책에 있어서 진정한 국민의 의사가 표시되어야 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하고 국민의 의사를 충실히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다수결원칙은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도 다수의 뜻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결원칙에는 절대적 다수결 원칙과 제한된 다수결 원칙이 있다. 절대적 다수결원칙은 다수결 원칙에는 양보나 제약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말한다. 제한된 다수결 원칙은 결정의 궁국적인 권한을 소수자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수냐 소수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3의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다수결 원칙을 고수해야할 이유는 소수지배의 원칙보다는 더 민주주의의 다른 원칙들과 일치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공산주의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에 의해 성립되고 레닌에 의해 후진국 러시아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 당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공산주의란 용어는 commune(공통체)와 communaute(공유) 라는 뜻을 갖는다. 이 말은 1830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사회적 격동기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1840년대에 들어 돠서는 사회주의 라는 말과 함께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마르크스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이론과 학설은 많은 선행이론과 학설을 수용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 구성되고 체계화 되었다.마르크스주의의 3개 원천중 하나는 철학,특히 고전철학아다. 생시몽, 프리에, 오웬, 칸트, 피히테, 헤겔, 포이에르바하드의 철학자들은 독일 사회주의의 원천을 제공했다.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초석으로 하여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론적 역사관을 구성하게 되었다.마르크스주의의 원천의 두번째는 경제학,특히 영국의 고전경제학이다. 마르크스 이전의 고전경제학은 영국에서 성립되었는데 스미스와 리카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유방임주의의 경제원칙을 주장하면서 노동가치설을 체계화하였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이란 상풍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투입된 노동량 또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은 이윤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세 번째 원천은 사회주의,특히 프랑스의 사회주의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으로 한 사회를 2분화시키고 양관계는 대립관계에 있으며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하여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을 해야한다고 역설 하였다. 이러한 계급 투쟁론은 계급투쟁은 이 세계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며, 계급과 계급은 전반적으로 긴장상태에 있으며, 그러므로 계급간의 투쟁은 화해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급투쟁론은 일종의 선동론이며, 중간계층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부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후감/창작| 2006.12.25| 3페이지| 1,000원| 조회(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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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사기열전
    사기열전처음에 사기열전을 읽으려고 했을때 사기의 내용에 대해 잘 몰랐고 사기라는 책은 굉장히 어렵고 읽는데 역사적 지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읽기가 겁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마치 이야기책 혹은 위인전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사기는 중국 최초의 기전체 통사로 전한시대 사마천이 편찬했다. 원래 명칭은 태사공서로 총 130편이다. 황제때부터 전한의 무제 천한연간(BC 100~97)에 이르기까지 약 3,000여 년의 역사를 서술했다.〈사기〉는 본기·세가·열전·서·표의 5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세가·열전은 주로 인물의 전기를 기술했으나, 소수민족과 인접 국가에 관한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서는 문물제도·천문역법·사회경제생활에 대한 기술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표를 작성했다. 열전은 다양한 유형의 유명 인물들의 전기를 다루었다. 여기에 선정된 인물들은 여러 가지 유형의 행위에 있어서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열전에는 여러 이민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사기열전은 백이열전, 관포·안영 열전, 노자·한비 열전, 사마·양저 열전, 손자·오기 열전, 오자서 열전, 증니제자 열전, 상군 열전, 소진 열전, 장의 열전 등등 총 7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백이열전에서는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성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백과 숙은 장유를 나타낸다. 본래는 은나라 고죽국의 왕자이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다가 끝내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떠났다. 그 무렵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멸하여 주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가 인의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어먹고 지내다가 굶어죽었다. 유가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로 크게 높였다. 백이열전에서는 백이, 숙제가 정의로운 삶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극악무도한 도척과 같은 인물은 천수를 다하는 세상의 모순 속에서 선악정사를 바로 드러내고자 했던 사마천의 역사 철학이 담겨져 있다.사기열전 중에서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는 이야기들도 있는데 염파인상여열전에서는 서로 죽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라는 뜻의 문경지교를 들 수 있다. 조나라 혜문왕때의 명신 인상여와 염파장군은, 한때 인상여의 출세를 시기하는 염파로 인하여 불화하였으나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한 염파가 깨끗이 사과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게 되었다.그리고 관중안영열전은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관포지교의 유래가 된다. 춘추시대 초엽,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다. 그 후 관중은 제나라 왕자인 규의 신하가 되었고, 포숙아 역시 왕자인 소백의 신하가 되었는데 이 두 왕자가 왕의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되어 소백 왕자가 제나라 왕위에 오르니, 바로 유명한 제환공이다. 제환공은 포숙아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고 관중을 붙잡아 오라고 했으나 관중은 포숙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큰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 준 사람은 친구인 포숙아였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중과 포숙의 두터운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한다.
    독후감/창작| 2006.12.25| 2페이지| 1,0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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