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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나서의 숨결
    ‘팽’ 당한 하나님과 요나의 바다.성서의 의미는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같아서 거친 바다의 물결들을 헤치고 나가야 겨우 한두개의 섬에 도달 할 뿐이고 아직도 많은 섬들이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건한 노젓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책의 서문을 시작한다. 저자는 이글을 통해 요나서의 적나라하게 드러난 예언자에게 부여된 카리스마를 이야기하고 있고 또한 이를 통해 예언자가 깨닫지 못한것을 깨우치길 당부하고 있다.요나는 누구인가?요나는 국가 증흥에 기여한 민족주의자로 보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요나서의 요나는 역사적 보도와는 달리 차별화된 면모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요나서의 요나는 신명기 역사저의 기록과는 매우 다른 인물로 묘사된다. 요나 이름의 두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 : 비둘기, 둘째 : 억압, 포학이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함으로 시작된다. 말씀이 임하자마자 요나는 예언자로 존재하기 시작한다.예언자된 요나에게 분명한 사역과 삶의 목표가 그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순종은 커녕 야웨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의 성실함 앞에서 끝까지 자기를 고집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요나의 도망 그것은 하나님의 버림받음이다. 그렇다면 요나가 하나님을 버리고 도망한 이유는 무엇일까?1.역사적 경험으로 요나는 니느웨를 지도하게 혐어했다.2.혐오했던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3.선포한대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된다면 자신은 거짓 선지자가 되므로 그것을 두려워했다.4.원수의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저 지는것 보기가 실었다.요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벗어나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폭풍우 속에서 임재하셨고 그는 그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또 한번 피한다. 그는 배밑창으로 가 잠을 청하고 선원들의 안전을 무시한다. 이것이 요나 선지자의 모습이다. 신앙인은 역사 속에 발생한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해결자이다. 요나의 모습은 혼돈 그자체이고 모순덩어리요 불합리의 화신이다.던짐의 패러독스와 참다운 신앙아무리 도망을 쳐봐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란 불가능 했음을 실감한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는 길은 죽음 박에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선원들은 생명에 대한 소중함으로 생명을 구하려는 끈기를 보여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가장 아름답다. 요나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한이는 오직 요나뿐이다.요나는 자신의 사역적 짐을 덜어 버리기위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지만 요나로 인해 그배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 때문에 짐을 피해 도망가던요나가 이제는 아이러닉하게도 존재 자신이 짐으로 취급되어 진다.신앙인이든 불신앙인이든 가르침을 따라서 선과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기에 더욱 중요한 것을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교훈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 신앙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의 주인공, 초미의 관심사는 인간이다. 우리는 다만 그일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뒤집힌 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현실교회역시 요나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참된 현실이 요구하는 신앙적 결단의 드넓은 세계가 아니라, 교리가 구성해 놓은 가상 현실의세계에서 안주한다. 요나를 삼켰던 물고기는 3일간의 요나의 기도가 끝날 무렵 요나를 토해버린다. 요나는 구원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심판을 받은 것일까? 내용 전개산 요나는 심판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요나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의 운명을 피하는 고통을 감내 해야 한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자신만의 성전을 정해놓고 예배하며 안주해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니느웨의 구원따윈 그에게 중요치 않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토해내게 하신 것이다. 요나는 일련의 모든 사건에 대해 자신의 잘못과 오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성전중심의 신학으로 말미암아 사명에 대한 인식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신학이나 교리, 예배나 경건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결과이다. 한마디로 사명을 이루는 삶만이 구원을 유지할 수 있다. 요나는 한곳에 머무르고 싶어했다 그곳은 성전이였다. 그러나 요나를 요나 되게 하는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사명이 없는곳이 바로 음부인 것이다. 요나에게 있어 고기뱃속은 천국이 아니라 음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교회안에서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 은혜로운 설교, 친근한 교우들 사이의 교제....혹시 뒤집힌 현실이 아닐까? 교회않이 평안히 머묾은 물고기 뱃속같은 가상현실이 아닐까? 정작 중차대한 사명은 외면한채, 선정에만 안주하는 신앙공동체에게 야웨 하나님은 혹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지는 않을까?회개의 미학, 불평의 신학 그리고 합당한 길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기꺼이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은 집요한 분이시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동일 하시다.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드디어 요나가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나 삼일길의 니느웨성을 단 하루만에 말씀을 선포한다. 과연 성실히 일을 처리 한 것일까? 요나는 여전히 니느웨는 관심이 없다. 요나는 여전히 순종하기 보다는 여전히 하나님에게 자기 주장과 강요를 하고 있다. 회개와 순종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심판의 위협앞에 그럴만한 일이 있는지를 스스로 돌이켜보고 잘못이 있다면 정직하게 시인하고 개혁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겸허한 회개의 길만이 임박한 신의 심판앞에 선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니느웨 심판이란 요나의 선포앞에 니느웨 백성과 군주는 미덕을 보요준다. 바로 전국민이 하나가된 회개와 금식이 선포된 것이다. 니느웨는 회개하는 동시에 희망했다. 그리고 그 희망과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뒤집었다. 요나의 심판 멧세지로 니느웨는 회개하고 구권을 받는다. 하지만 요나는 심판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원망한다. 인간의 예상과 기대, 그리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와 조건에 초월하여 자유롭다.아낌없는 신학 시지푸스적 요나 극복하기.요나가 분노중에 드린 기도전반부는 세가지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첫째:야웨를 꾸지람 한다.둘째:자기 행위를 정당화한다. 셋째:이상의 두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신이 도망하게 되었다고 해설한다. 이것은 기도라기 보다는 과거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천명하는 것과도 같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요나는 딴청을 부린다 . 요나는 본능처럼 초막을 짖고 그속에 들어가 안주 하고자 한다. 이런 요나의 행도은 모이면 흩어져야 하는 물리적 파괴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유이다. 한국교회는 요나를 닮기보다는 야웨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요나에게는 죽음에 앞서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껴줌이다. 하나님은 요나의 박넝쿨에 대한 사랑을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니느웨 사라에대한 사실을 일깨워 주신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있어서 분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지적하신다. 그것은 바로 아낄줄 아는 마음이다.요나서의 주인공 요나는 교회의 지도자, 전통적 신학 옹호자, 신앙공동체의 과거가 이루어 놓은 산물이요 결정체를 대표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요나 극복하기란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양태를 극복하기인 것이다.요나서의 생명신학근래에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성서가 관심하는 생명은 인류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연과 생태계의 보존과 회복도 포함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10.27| 3페이지| 1,000원| 조회(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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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피터슨의 이책을 먹으라
    이 책을 먹으라....저자소개목회자들의 목회자, 개신교 영성신학의 대표주자유진 피터슨은 개신교 영성 신학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목회자.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전트 대학(Regent College)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쳤으며,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장로교회(Christ Our King Presbyterian Church)에서 30년 간 목회자로 섬겼다. 지금은 리전트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책들은 깊은 영성과 성경 신학적 바탕, 상상력이 풍부한 탁월한 문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1932년 11월 6일 워싱턴주 스탠우드에서 태어나 곧 몬타나주의 캘리스펠(Kalispel)시로 이사하여 거기에서 자랐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뉴욕신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히브리어를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고, 시애틀 퍼시픽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메시아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미국 장로교(P.C. USA)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뉴욕에서 목회 생활을 시작하여 1962년부터 1991년까지 29년간 메릴랜드주의 벨에어(Bel Air) 우리 왕 그리스도 장로교회(Christ Our King Presbyterian Church)를 개척하여 담임 목회를 했다. 여러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교회를 사임한 후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칼리지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쳤다. 은퇴 이후에는 몬타나주의 레이크사이드에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와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성경강해를 중심으로 33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또한 신약성경을 일상적인 영어로 번역하였는데, 1993년에 「더 메시지」(The Messag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총 500만부가 출판되는 큰 호응을 받았다.기록 의도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저자는 그의 손자인 한스의 천진난만한 행동을 통해 기록의 의도와 함께 누구를 향해 글을 써야 할 것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단순히 그저 읽어 치우거나 보여주기 위해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치 젊은 사자가 사냥 후 사냥한 고기를 먹으며 잔잔한 희열과 만족이 휩싸이듯이 사냥한 고기의 구석구석을 음미하며 그 맛과 성취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듯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단순히 읽는것에서 벗어나 성경을 읽는동시에 그 맛과 의미를 그리고 삶속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성경의 읽기는 단순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험남한 영적독서 훈련을 통해 이룰 수 있는것이다. 마치 아주 천천히 마름모꼴 사탕이 입안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녹아 버리는 것 같이 우리의 성경 읽기는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는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독서방식을 개발하는데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독서는 참여을 독서이며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내면이 되도록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리듬과 이미지가 기도의 실천, 순종의 행위, 사랑의 방식이 되도록 말씀을 받아들이는 독거인 것이다. 이러한 독서의 방식과 접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자는 이글을 시작하고 있다.내용요약제 1 부 이 책을 먹으라성경은 기독교 영성에서 일차적 텍스트다. 기독교 영성은 온전히 성경 텍스트에 뿌리박고 있으며 성경텍스트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영성 생활은 자신이 좋아하는 텍스트들과 개인적인 상황의 임의적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 텍스트와 일치하는 성령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대체로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권위있는 텍스트라는 입장을 받아들인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성경은 실제로 살아 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경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일한 텍스트인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성경을 먹고자 애쓰고 그들의 방법으로 성경을 먹고 삶으로 녹여 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몸에 건강함과 온전함 생명력을 가져다줄 성경을 먹어야 하는것이다.우리의 경험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삶을 형성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험이 형성의 과정을 주관하는 텍스트는 아니다. 그 텍스트는 바로 성경이고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계시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사는것의 의미를 인격 대 인격으로 알려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성경은 또한 하나의 형식이다. 여러 종류의 단어와 문장이 울타리 안에 들어있는데, 그말들은 안정적 리듬으로 그 일을 수행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것에 참여하되 통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우리의 삶을 복종 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영성신학의 텍스트이기도한 그 텍스트는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성령을 굳게 붙들며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고 삼위일체의 틀을 가진 성경이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성경 하나하나의 구조는 우리를 초청하는 문장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이 성경은 대본으로서 우리의 인생에 해야할 말과 행동 삶의 기준을 말해주고 있다. 만약 대본이 없는 우리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과 행동에서 모두 불안한 말더듬이로 살아갈 수박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일을 제대로 한다면 성경을 먹고 이 텍스트를 내면화 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받아 들인다면 우리는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제 2 부 렉치오 디비나“텍스트를 질문과 대답, 개념 정의와 교의로 탈 인격화 하는 것을 경계하는 독서 방식”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증언이다. 그리고 ‘렉치오 디비나’는 바로 이 성경이 기독교 공동체에 뿌리 내리고 그 공동체를 성장시키게 하는 성경 독서법이다.인쇄는 기술이다 단순하게 인쇄된 성경을 우리손에 쥐고 있을때 우리는 그것을 통제하고 사용할수 있고 마음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독자들이여 주의하라는 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물건을 파는 자와 사는자 사이에 기대와 가치의 차이가 있는것 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 기록한 자와 글을 읽는자 사이에 기대와 이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다 소유하고 있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보는것에서 듣는 것으로 발전해야 함도 기억해야 한다. “메디 타티오” 더 나아가 독서는 듣는것에서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묵상의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성경읽기는 이것 묵상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이러한 묵상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읽기는 단회적인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성경 읽기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 즉 관상의 단계에 까지 미쳐야 한다. 관상은 단순히 습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상은 읽는바를 살아내는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것도 낭비하지 않고 그 어떤것도 저장해 두지않고 삶에서 그것을 다 써버리는것이다. 그 삶은 하나님의 말씀, 읽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된 삶인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10.27| 3페이지| 1,000원| 조회(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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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대 신념 평가A+최고예요
    기독교인은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떤이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비유나 시로 표현한 하나의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고대 전설을 빌려서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분야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부분은 전적으로 무시할 수 도 없고 어떠한 부분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애매한 입장에 처해있다. 하지만 창조과학을 포함한 또 다른 기독교인들은 창세기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히 기록한 책으로서 적혀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과연 창세기의 기록은 기독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세상을 문자그대로 6일만에 창조하셨다고 믿든지 아니면 수십억년을 걸쳐 창조하셨다고 믿든지 무슨큰 차이가 있을까? 이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창조와 진화에 대한 문제를 과학과 종교의 대결로 몰아가는데 있다고 하겠다. 진화론은 단적으로 순수한 과학의 산물이라는것이 아나라 진화론 역시 종교적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다시말해 진화론은 과학자의 편견이며 그의 신앙인 것이다.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다 인생에 관한 종교적 견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론과 진화론은 인간의 역사와 삶의 목적에 대한 성서적 기록과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믿음, 시간과 우연에 의해 우주만물이 만들어 졌다는 믿의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그러한 면에서 창세기는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 되는 기록인 것이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화론의 확신에 대해 그렇게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론이 창세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며, 창세기는 바로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진화론자들이 공격하고 있는 창세기는 성경전체에 대한 기초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기본 진리는,1.하나님은 태초부터 계셨으며 그는 영원하시다.2.하나님은 우주와 하늘을 포함한 모든 것의 창조자 이시다.3.창조는 계속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완성하셨다.4.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5.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다.6.사람은 짐승이 아니며 사람들은 짐승보다 더 귀하게 창조되었다.7.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8.선과악이 구별되어 있다.9.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다.10.최초의 세상은 낙원이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 심히 좋았다.11.사람은 처음에는 무죄한 상태였다.12.사람은 처음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조주와 친밀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13.하나님은 인간의 일에 역사하셨으며 처음부터 그러 하셨다.14.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해야할 법을 만드셨다.15.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알고 계시며 처음부터 그러하셨다.16.인간의 최초 범죄 상황17.우리의 근본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죄로인해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유전되다.18.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19.하나님은 죄를 벌하신다.20.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낙원이 파괴되기 시작하였다.21.죽음이 죄로인해 우리가운데 들어왔다.22.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근원23.여자는 남자로부터 지음 받았다.24.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25.남자가 부모를 떠나게 된다.26.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룬다.27.결혼관계에 있어서 남편이 머리가됨28.동성애와 다른 성적 타락을 정죄함29.선택괸 민족의 기원 -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 그리고 기타.... 창세기는 이러한 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근간이 되는 책이다. 그중에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천지창조, 타락, 대홍수, 바벨탑사건, 인간으로 태어나신 창조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완벽하게 이해 할수 없을 것이다.창세기와 복음은 어떠한 연관관계사 있을까?인간의 범죄로인해 세상가운데는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죽음은 인간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인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범죄한 인간에대한 정당한 형벌을 내리셨으며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을 이겨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수 있는 길을여신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의 죽음은 죄된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또한 우리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온전함을 회복시켜 주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러나 진화론은 이러한 창세기의 권능을 배척한다. 다시말해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무신론적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배척하고 있다. 이러한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회는 무정부 상태로 빠지게 되기가 쉽다.많은 기독교 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의견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반성서적 신념과 행동들을 용납하거나 관용한다. 그렇다면 모든 믿음을 관용해야하는가? 관용에 대한 일반 철학에는 아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틀리기 쉬운 인간의 소신에 기초를 두면 안되는 것이다.진화론은 하나님의 복음을 파괴한다. 진화론은 죽음과 피흘림의 근원을 부정하고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무시하며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도 무신한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도 경외시하며 전능하신 완전함 그 자체임을 부정한다. 또한 본래의 낙원과 원상회복에 필요도 없게만든다. 또한 항상 진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며, 하나님의 죄에대한 심판도 없을 것으로 말하며, 대홍수에 대한 성서적 모든 근거를 무시하는데 과학을 이용하여 이 모든것을 부정하고 있다.때문에 신앙의 선배인 우리들이 다음세대를위해 올바른 창조신앙을 후대에 가르쳐야 할것이다. 올바른 가르침과 교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가올 세대에는 더욱 많은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은 현대인류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 수백만의 어린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의 세계관이 이러한 교육에 의해서 형성 되었다. 기독교 인들은 이렇나 불행한 세상풍조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러한 세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7.09.30| 3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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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십은 예술이다
    이책은 허먼밀러사라는 한 가구회사의 경영속에서 발견되어지고 나타난 모습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이며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이 책에서는 리더십이란? 의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을 던져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리더십은 예술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이 책에서 저자는 시를 즐겨 썼던 한 기계공의 죽음을 통해 이 사람이 시인 이였을까 아니면 기계공 이였을까를 고민하면서 진정한 리더는 기업의 한 개인에게 분명한 목표와 한계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인간관을 제시해 주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24p)또한 지도자가 가장 먼저해야할 일은 현실을 규명해야 하는 일이고 그 마지막 책임은 감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27p)저자는 지도자는 청지기로서의 지도자의 역할과 개념에 대해 이야기 하며, 지도자는 자산과 유산을 남겨야 하는 책임이 있고, 추진력을 제공하고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효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예의와 가치관을 개발하고 표현하며 옹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지도자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신념과 기관에 기여하는 은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참여관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며, 신념이 정책이나 실무보다 앞서야 되며, 일관된 여러 가지 권리들을 인정하고, 계약상의 동의와 언약의 각각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조직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37~41p)저자는 어떠한 일이던 간에 단체의 필요는 각 개인의 필요가 채워질 때 가장 잘 채워지는 것이라 말한다. 다시말해 하나의 비젼을 품고 함께 추구해 나갈 때 모두의 효과성과 생산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일의 개념도 근본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45p) 이러한 일의 개념들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8가지의 권리가 보장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필요한 사람이 될 권리, 참여할 권리, 언약관계를 맺을 권리, 기업을 알 권리, 자신의 운명을 직접 통제할 권리, 책임질 권리, 발언할 권리, 헌신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기업이 최고의 효과를 내기위한 기본도구와 같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저자는 또한 현장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장 리더십은 문제지향 적인 개념이며 현장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렇한 현장 리더십이 잘 세워 지려면 우선적으로 서로를 세워주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며 매우 깊은 신뢰와 분명한 상호 의존 의식이 요구된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특별한 능력의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리더십을 공유하는것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전쟁은 분명 게임과 실전이 다르다. 전쟁을 직접 치러본 사람이 현실의 긴장된 기분과 비현실의 차이를 알며 공포와 위험과 죽음의 냄새가 무엇인지 안다. 친밀함이란 오직 가슴 뛰는 실전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일과 친밀하려면 실전경험이 중요하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친밀함으로 대할 때 능력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또한 배타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자본주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며, 오늘날의 사회 구조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에게는 배타성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취하고 싶어하는 끝없는 욕구가 있다고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다.특히 광도업자들이 그러하며 이 모든 복병 뒤에는 “나만 가지면 된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를 참여가 잘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참여를 유도시키고, 기업이나 기관을 잠재력을 실천하는 장소로 생각하며, 구성원 전원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방법을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저자는 각각의 기업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을 거인에 비유하며 이들이 기업과 단체속에서 한 사람으로 기여하며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거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첫째, 다른 사람이 문제를 보는 곳에서 거인은 기회를 보며, 둘째, 거인은 다른 사람에게 공간을 부여하고, 셋째, 거인은 빠른 공을 잡으며-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받아들이며 실천하는 사람-, 넷째, 거인에게는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또한 한 기업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기업정신을 지켜주고 다시 새롭게 해줄 이야기꾼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업의 정신을 듣지 못하게 되면 기업은 공통의 가치관을 잃어버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한다. 뿐만아니라 이는 기업의 정체성까지 히미하게 하는 요인이 되므로 기업안에 정신과 의미를 이야기 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랑이란 정의하기 불가능한 단어이며 사랑의 표현은 세미하면서도 무한한 것이다. 사랑의 정대 조선은 하가지 밖에 없으니 바로 무한한 책임이다. 남을 향한 책임에 조금이라도 조건이 붙는다면 사랑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소유주가 이런 관점으로 직원을 대한다면 회사는 어떻게 달라질까? 진정한 리더십은 주인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라 말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직원들은 피고용인으로 또는 주인으로서 행동하게 되고 그렇게 될 때 회사는 최고의 가치와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뿐만아니라 지도자에게 있어 중요한 수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대화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손에 익고 믿을 만한 연장을 즐겨 사용하기 마련이다. 지도자에게 그런 연장이 있다면 그것은 대화의 기술이고 논리와 애정과 건전한 이성에 바탕을 둔 대화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 그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기업에 훌륭한 대화가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과되는 요구에 정확히 반응하고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지도자는 조직 내에서 발생되어지는 위험요소를 감지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업내에서 모든 분야는 점점 쇠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리더는 이러한 위험신호를 적시에 감지해야 하며 이러한 요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또한 조직에서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히 회사의 경우 실적이라는 것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계기가 되는데 이때 정말 중요한것은 실적에 대한 단순한 평가 보다는 서로의 신뢰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독후감/창작| 2007.09.30| 3페이지| 1,000원| 조회(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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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목 : 예수의 이름으로저자 : 헨리 나우웬서론“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이 나를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했는가? 나는 25년간 성직 생활을 했건만 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다름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편이며, 긴급한 문제들에게만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의 성공이 나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하는 내면의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깊은 목상의 기도의 부족과 나의 외로움과 가장 긴급해 보이는 일들에 항상 걷잡을 수 없이 말려드는 것은 바로 성령이 점차적으로 억압당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가 하고 자신에게 묻기 시작 했습니다.영적 죽음을 일컫는 아주 적합한 심리학적 용어가 바로 “탈진"입니다.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사역지에서의 경력이 쌓여갈 수록 사역자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무감각과 탈진이다. 주변에서의 칭찬과 칭송에 길들여지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인양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깊은 묵상가운데서 자신이 느끼는 것은 탈진이다. 영적으로 재충전되지 못함으로 인한 두려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의 원활치 못한 나를 발견 하게 되는 두려움.... 이런 나를 발견하고 생각하게 한다.1장 : 현실지향에서 기도로.나우웬은 사단으로부터 예수님이 격으셨던 세 가지 시험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그 첫 번째 시험은 돌들을 빵으로 바꾸라는 것이였다.나우웬은 영양실조와 오염으로 어린이가 죽어 가는 패루의 리마 변두리 지역에 있는 신흥 도시들를 다녀본 경험을 이야기 한다. “만일 내가 길거리에 쫙 깔려 있는 먼지 투성이 돌들에게, 저수지의 썩은 물들에게 신비한 마술을 부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빵과 우유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이란 생각 속에서 우리의 사역은 이들의 필요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사역의 현장에서는 현실의 문제로 사역자들을 압박해 오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는 현실적인 것이며 그 현실들은 해결할 해답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 옳은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 한다.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그리고 아무 조건이나 제한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나우웬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훈련을 이야기 한다. 그 일환으로 묵상기도를 말한다.목회자로서 우리가 가져야할 진정한 질문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하는 질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역자들의 지도력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영속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묵상기도를 통해 어떤 문제이든지 모든 해답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2장 - 유명세에서 목회로예수님의 격으셨던 두 번째 시험인 높은 성벽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을 통해 사역자들의 유명세에 대한 유혹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역의 방향은 공동체 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사역은 개인의 인기와 유명세에 의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이라 말한다. 사역자는 남을 알지만 또한 자신의 문제를 알려야 하며, 남을 돌볼 뿐만 아니라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사역자는 치료자도 아니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니다. 사역자는 돌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요, 깨어지고 연약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사역자의 개인적 영웅주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훈련은 고백과 용서의 훈련을 제안하고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은 깊은 정서적 외로움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애정과 친밀감에 대해 아주 강한 욕구를 느끼며, 때로는 교인들 앞에서 뿌리깊은 죄책감과 수치를 느끼기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말한다.고백과 용서의 훈련이 없이 자신의 영성을 외적으로만 체계화 하면 육신의 삶은 정욕적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그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의 온전한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며, 공동체의 사랑과 지원을 필요로 하고, 상처입은 자아를 포함한 그들의 존재 전체로 사역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자신의 숨겨진 고통들에 관심을 가져주고, 점잖은 충고와 사랑어린 성원으로 목회자의 소명을 지켜 나가도록 해주는 공동체를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3장 -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함 받는 자리로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은 세상의 모든 권세(힘)주겠다는 시험이였다.나우웬 자신은 나이를 먹을수록 말할 수 있는 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삶을 제어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느꼈었지만, 라르쉐 공동체에서의 생활로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게 된다.나우웬은 자신이 아는것, 가진것, 경험한 것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의 힘을 형태를 통해 복음선포의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려는 것이 가장 큰 하나의 유혹이라고 말하고 있다.11세기의 교회 대분열과 16세기의 종교 개혁, 20세기의 거대한 세속화와 같은 교회사의 큰 위기들의 주요원인은 가장 힘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행한 그 “힘”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진정한 성숙(힘)은 지신이 가고 싶지 않을 곳으로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많은 목회자들이 힘과 지배로 리더쉽을 이야기 하고 행사 하지만 크리스쳔의 진정한 리더쉽은 힘과 지배의 리더쉽이 아니라 무력(powerlessness)과 겸손의 리더쉽이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의 힘 없음과 겸손은 예수님을 깊이 사랑해서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생명을 찾고 또 풍성히 찾을 것이라고 언제나 믿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 이야기 한다.이러한 힘의 원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성찰이 필요 하다고 이야기 한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은 성경적 용어로 포장된 심리학적이거나 사회학적인 질문들이라 이야기한다. 따라서 진정한 신학적 사고 즉, 예수님의 마음에서 나온 사고는 실제 사역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진정한 과제는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조그만 기여를 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도와 그 방법들을 확인하고 선포 하는 것이 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미래의 크리스천 리더쉽은 신학적 리더쉽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시대의 징후를 바르게 분별하도록 훈련하는 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독후감/창작| 2007.03.21| 3페이지| 1,000원| 조회(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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