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물을 읽고스펜서 존슨 박사의 이야기는 위대한 진실을 가장 단순하고도 감동적으로 우리들에게 전달해준다. 20년 넘게 일터와 삶에 고나한 간단하면서도 지혜로운 이야기로 전 세계 수백만 독자들을 감동시킨 그의 이야기들은 평범하지만 세대와 국적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선물’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쓴 저자 스펜서 존슨의 두 번째 이야기책이라고 하여 많은 기대를 하고 보았다. 첫 번째 책이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 주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어떠한 화두를 던져줄지 매우 궁금했다.는 한 소년이 같은 마을에 사는 지혜로운 노인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성장해가며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쓴 글이다.이야기는 빌과 리즈의 간단한 전화통화로 시작된다. 빌의 갑작스런 큰 성공에 의아함을 느낀 리즈가 전화를 건 것이다. 빌은 성공의 가장 큰 비결 이였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크게 소년과 노인 2명이다. 어느 날 노인이 소년에게 꺼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에 대한 이야기는 소년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소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 끊임없이 헤메이던 중 결국 포기를 하게 되고, 직장에서 힘들어하며 불행을 느끼게 된다. 소년은 결국 다시 노인을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다시 묻게 되고 이때부터 이 책의 큰 교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 -첫 번째 교훈은 소년이 어린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 찾아낸다. 바로 “현재 속에 살기”이다.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소명을 갖고 살며,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이 첫 번째 교훈으로 행복을 느끼던 소년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동료와의 협동 업무에서 마감시한을 넘기고 만 것이다. 자신감을 잃은 소년은 결국 다시 노인을 찾아간다.두 번째로 노인이 소년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과거에서 배우기”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며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승진을 계속하며 승승장구 하던 소년은 두가지 교훈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며 또다시 노인을 찾아가게 된다.세 번째로 얻은 교훈은 “미래를 계획하기”이다. 멋진 미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실현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기는 값진 교훈이다. 세 번째 교훈까지 모두 깨달은 소년은 사회에서도 성공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때 노인이 죽음을 맞게 된다. 소년은 엄청난 당혹감에 휩싸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중, 노인의 장례식에 참가하게 된다.노인의 장례식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을 보며 소년은 “어떻게 해야 그 분 같은 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곧 그 해답을 찾아내게 된다. 그 해답은 바로 앞에서 말한 세가지 교훈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을 갖는 것이었다.이제 “이야기”를 끝까지 메모하며 경청한 리즈의 변화된 삶이 소개된다. 리즈의 삶은 너무나 변화되어 “이야기”의 교훈대로 열심히 살아가며 성공하게 되고, 교훈들을 남에게 전달하는 위치로까지 성장하게 되며 책은 마무리 된다.- 2 -어떻게 생각하면 의 교훈들은 참 진부한 표현들이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들이고, 너무나 당연하여 잘 의식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이 진부한 교훈들을 명확하게 전달해 주는 데에 있다. 단순히 교훈들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강한 의식을 뇌리에 각인 시킨다. 평범한 것이 진리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교훈들이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난 이대로 하지 못했었다. 현재에 최선을 다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거의 잘못들에 가슴 아파하며 고민해서 바뀔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였다. 또한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정작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인생은 카메라를 지지하는 삼각대와 같다는 말이 나온다. 삼각대의 어느 기둥하나 소홀하면 삼각대가 쓰러지듯 우리의 인생도 현재, 과거, 미래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면 행복해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한 나의 생각우리는 우리 고대사를 볼때 이런 가정을 해보곤 한다.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저 만주지방과 드넓은 땅이 모두 우리의 영토였을텐데`,`백제가 통일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해상강국이 되었을텐데..`역사에는 가정이란 없습니다. 물론 다른 결론을 예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닌 가정일 뿐입니다.신라의 삼국통일은 ‘정당하다, 아니다’ 라고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삼국은 모두 하나하나의 개별국들입니다. 서로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한국, 일본, 중국, 미국과 같은 서로 다른 나라일 뿐이었습니다.당시의 정세를 살펴보면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백제에 의해 금성(경주)으로가는 중요한 길목인 대야성이 함락되는가 하면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군에게 당항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당항성은 당나라와 교류하는 중요한 길목이니 이곳이 함락된다면 신라는 정말 그대로 고립될 위기였습니다. 신라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중재를 요청합니다. 결국 당의 중재로 당항성의 함락은 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을 피할 수 는 없었습니다. 백제는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해 들어갔고 고구려도 그에 동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신라는 위기를 타계할 목적으로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하지만 연개소문의 거절로 무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신라가 도움을 구할 상대가 누가 남았겠습니까? 왜(倭)? 왜는 바다를 사이로 두고 있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신라와의 사이도 좋지 못했습니다. 백제는 신라가 한강유역을 빼앗은 뒤로 복수할 날만 벼르고 있는데...백제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남은 선택은 당나라뿐이었습니다.당시의 세력 구도는 백제+고구려+왜 vs 신라+당 이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에 김춘추를 파견하고 김춘추는 자신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는 한편 관직과 관복을 모두 당나라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하고 구원을 청합니다. 당나라가 아무리 강대국 이라해도 바다건너 있는 신라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못했습니다. 신라는 주변 3국에게 포위된 상황을 타계하기위해 당황제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당나라는 이번기회에 한반도를 병합할 생각으로 소정방에게 13만 대군을 주어 먼저 백제를 무너뜨리게 합니다. 신라와의 협공으로 백제가 무너지고 이어 고구려까 멸망당하기에 이릅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위기만 극복하면 그만이지 굳이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릴 생각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당나라는 그동안 걸림돌이 되어왔던 고구려도 무너뜨리고 한반도를 병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까지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신라가 이겨 삼국이 통일된 것이구요.
청년시대를 보고..나는 전통예술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의 감상 레포트를 쓰기 위하여 아는 친구와 함께 서울 국립극장(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청년시대를 보러갔다. 국립창극단 제 107회 정기공연으로써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 의거 70주년 기념 창작 창극이라고는 하는데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것이었다. 우리야 매번 무엇을 보러 간다고 해도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영화나 보러다녔지 창극이라는 상연이 아닌 직접 그 자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러 간적은 처음이었다. TV에에서 하는 공연이라는 형식의 뮤지컬이나 발레같은 것은 채널을 돌리다 언 듯 보기는 했지만 창극은 말 그대로 낯설고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여서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런 궁금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좌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표는 친구가 아는분에게 구했다고 했는데 으뜸석을 구해와서 무대가 너무나 잘보였다. 공연이 시작하자 흰 소복을 입은 여자가 무대 안으로 걸어들어와 창을 하였다.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지금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배경을 창을 통해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여인이 들어간 뒤에야 무대에 밝은 조명이 밝혀지며 윤봉길이라고 생각되는 한 남자가 보이며 그남자가 우리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내용의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대사하는 방법이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 창을 부르기도 하고 다시 평범하게 말을 하기도 하는... 참 신기했다. 말을 하면서 창을 하는 그 순간순간을 잘 맞추어 대사하지 않으면 무지 어색하게 하게 들릴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우가 창을할 때 내 뒤쪽에 않아계시는 할아버지께어 얼쑤 , 그렇지 하면서 크게 말씀하시는데 창극에서도 원래 그렇게 해야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판소리에서는 관객들이 그렇게 추임새를 넣어준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아~ 창극도 원래 저렇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하게됫다. 하지만 나는 그 할아버지처럼 추임새를 넣어주지는 못했다.(너무 쪽팔릴 것 같아서+.+)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또 한가지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을 확인한 것은 배우의 목소리였다. 그냥 대사를 할 때에는 보통사람과 다른점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데 창을 할 때에는 목소리가 남자들이 자고 일어나서 바로 말할 때처럼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왔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서는 창을 하는 창자들이 선호하는 목소리가 탁한음을 내는 수라성을 가장 선호한다고 했는데 아마 저런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연은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서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힘들었다. 그만큼 배우들의 행동과 몸짓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1부 공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눈이 피로하다는 것을 느꼈다. 라식수술을 하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이나 컴퓨터를 해도 아직은 오랫동안 하지 못한다. 눈이 쉽게 피로해 져서 침침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쉬는 시간 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2부가 시작하자마자 다시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영화와는 비교할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2부에서는 윤봉길이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마지막에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장렬하게 죽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공연을 보다보면 윤봉길이 일본의 경관한테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는 정말 화가 났다. 배우들이 맞는 연기를 하는 것을 직접 보기 때문에 더 그런것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한테 우리나라의 대표로 나오는 윤봉길 의사가 맞는 장면은 정말 눈에 불을 켜게했다. 그 장면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이런 , 저놈의 개새끼 하는 분을 참지 못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나는 더 화가 나는게...윤봉길. 이름에서도 보듣 윤씨다...나랑같은...감히 나의 조상님을...정말 저놈의 일본인... 때려주고 싶었다. 공연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여러명의 배우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들어와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도 나왔다. 그런 장면은 서양쪽에서 들어온 것 같은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그리고 무대 장치가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배우들이 공연할 때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거리의 원근감이 느껴지는 아주 신기한 무대 장치였다. 그리고 매번 상황 때마다 많은 인물들이 들어와 집단 항거나 농민봉기 같은 장면을 표현할 때에는 정말 내가 이시대에 직접 와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윤봉길이 도시락 폭탄을 던져서 일본의 고위관직 인사들을 죽일때는 정말 통쾌한 참..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윤봉길이 높은곳으로 올라가 소리치고 연설할때에는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공연 한편을 보면서 난 많은 감동을 느꼈다. 영화관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보는것과 직접 배우들이 공연하고 그 열기가 느껴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통 소리인 창이 같이 아울러져 공연됫다는 점은 나에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였다. 다음에는 레포트를 쓰기위해 인위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보고싶은 작품 하나를 골라 자의적으로 한번 와서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정리먼저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공자, 노자, 석가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점에 대해 간단히 적은 다음 각각의 사상을 정리하고 마지막에 비교하는 형식으로 요약을 하겠습니다.1. 공자, 노자, 석가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책에서는 공자, 노자, 석가의 본론적인 사상을 말하기 전에 세 명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들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써 각자의 사상과 생각하는 바를 살짝 엿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그럼 간단히 적어보겠다.공자 : 공자의 취미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공자는 예를 아주 까다롭게 가르쳤는데 예라는 것은 구별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므로 잘못하면 폐단이 생기기 쉽다. 이런 폐단을 없애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하였다. 또한 음악은 화합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같이 모여 연주를 하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기도 하기 때문에 음악을 한다. 그리고 공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높은 산은 세계를 내려다보는데 알맞고 광활한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자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향원이다. 그래서 공자는 향인으로부터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으나 실제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덕의 도둑이니라 라고 말하기도 했다.노자 : 노자는 산보다는 물을 더 좋아한다. 노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물은 진실로 부드럽고 약하며 다른 것들과 공적을 다투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물이라는 것은 가장 겸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다른 것들과 공적을 다투는 일들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이 약한 것은 아니다. 물은 단단한 돌이나 철을 뚫을 수도 있는 강력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밖으로 내비추지 않기 때문에 물을 산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였다. 노자는 물과 마찬가지로 갓난아기도 좋아한다. 갓난아기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며 무심,무표정한 모습은 마치 도덕을 몸에 익힌 인간의 진정한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자는 가공하지 않은 재으로 보고 있다.2. 공자, 노자, 석가의 사상공자 공자의 사상은 인과 덕으로써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공자는 노자와 석가와는 다르게 현실의 삶을 중요시 여기는 사상가이다.인 '효제충신의 윤리와 시서예악의 학습'을 실습하여 인격을 닦은 군자의 품성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뜻한 인간애, 정의로움, 명석함, 꿋꿋함, 온순함, 선량함, 겸손함, 소박함, 친절함 등의 덕성을 가진 사람이 된다. 이런 모든 덕목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고 한다. 공자는 그 뿌리를 인(仁)이라고 생각하였다. 공자가 인을 두고 한 말을 살펴보면-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예절은 배워서 무엇하겠는가?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음악은 배워서 무엇하겠는가?",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떻게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사이에도 인을 어김이 없으며, 급히 갈 때도, 넘어질 때도 인을 어기지 않는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목숨을 유지하려고 인을 팽개치지 않고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룬다.", "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등 공자는 인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은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공자는 '인'을 '사람다움이다(人)', '남을 아껴 주는 것이다(愛人)', '자기 욕심을 누르고 보편적 규범에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외에 '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남이 먼저 할 수 있게 해 주어라'라고 한 말도 '인'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공자는 어떤 제자에게도 선뜻 '인'이라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인'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한다. '인'은 강제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은 사람과 사람이 공감하고, 서로 통하게 하는 '인간애'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선행의 바탕이 된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다움'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가장 뛰어난 제자 안회가 석 달을 '인'할 수 있고 다른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 뜻이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위정자의 모범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 공자는 모든 정치 문제는 통치자나 관리들의 인격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열쇠는 윗사람이 훌륭한 지도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노자 노자는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상가이다.노자의 대표적 사상은 무위자연, 소국과민, 상선약수, 등이 있다. 노자는 자연을 저절로 그러함 을 나타내는 도의 절대성으로 보며 모든 인위적인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유가들이 모두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자라고 비난 하였고 인생 태도를 소극적으로 숨어 사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형식적 덕치주의는 중앙집권적 통일국가 형성에 불과하다고 본 노자는 소국과민주의에 의하여 강권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즉 각각의 개인에게 최소한의 간섭만 허용하는 나라를 지향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의 임금도 위대하기는 하나 전제군주로서보다는 무욕의 서민의 지도자로서의 임금으로 보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며 자위 존립상 부득이한 방어에 한해서만 전쟁을 인정하였다. 또한 노자는 겸허와 부쟁을 강조하여 스스로를 낮추며 다추지 아니하는 무위자연적인 삶, 즉, 상선약수를 강조하였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결국은 가장 낮은 곳 까지 흘러가게 된다. 이런 물을 본받아 스스로를 낮출 것을 주장하였다.석가 석가는 인과의 법칙을 중요시 하며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선행 과 악행에 의한 결과라고 말하고 내세에서의 삶을 중요시 한다.석가는 인도의 전통적 종교인 바라문교의 권위를 부정했다. 바라문교는 뒤에힌두교로 발전하는데, 기도주의 종교여서 신에게 기도를 하면 인간이 구제된다고 주장하고있었다. 그러나 석가는 그러한 기도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석가가 설한 교리 체계는 4가지 진리란 의미인 4제로 불린다. 그럼 이 4제를 현대 의학과 비교하며 설명하겠다. 그 네가지 진리란, 첫째, 고제 ……고에 관한 진리이다. 니까 비만을 방지하려면 칼로리의 섭취를 적게하고 또 운동으로 칼로리의 필요량을 크게하면 된다. 이것이 원인의 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이상적 상태를 알고 있어야 된다.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영양실조가 된 사람이 자주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어느 정도의 체중이 이상적인가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의 도제 방법에 관한 진리는 어떻게 하면 욕망을 조절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의료로 말하면 치료의 단계에 해당된다. 그 방법은 한마디로 말하면 올바른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다. 올바른 지혜가 있으면 우리는 욕망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가가 설한 불교는 본질적으로 지혜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부처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현실 시계의 관찰로부터 출발하는 데 그 독특한 특징이 있다3. 공자, 노자, 석가의 사상비교 (차이점과 같은점)공자와 노자의 인간관: *공자는 군자형의 인간을 지향하고 소인형의 인간을 비난한다. 군자와 소인에 대해 간단히 정의 하면 군자는 모든 일을 의에 입각해서 이해하고 소인은 사리사욕에 입각해서 이해한다 라고 할 수 있다. 군자는 진실로 마음을 합해서 행하며 자기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옰은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소인은 모든 것을 편파적으로 생각하며 붕당을 만들러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려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남의 잘못만 탓한다. 그리고 공자는 중용형의 인간을 좋아하며 극단적인 인간을 싫어한다. *노자는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는 인간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이 욕구를 쫑아 헤메이면 본심을 잃을 위험이 있다. 또한 노자는 현덕의 사람. 즉, 겸허 겸손한 사람을 추구한다. 총명하여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알고 능통하며 전혀 그러한 것을 의식하지 않고 기색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현덕의 사람이다. 반면에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인간관은 가기 자신을 알각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다고 믿었다. 공자는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제의 본분에 충실한 사상가였다. 지금 살아가는 있는 인생 자체를 중요시 여기고 현실에 완전하게 힘쓰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대신 현실의 삶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 라고 하였다.석가의 공, 노자의 무, 공자의 천: *석가가 말하는 공이란 텅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짐으로써 바깥 세계를 인식하고 갖가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 몸을 움직여 행동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을 포함한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결국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요컨대 변하지 않고 늘 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더구나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맺은 관계의 그물, 즉 인연에 따라 생겨났다가 소멸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 천년만년 언제까지라도 계속 지금 상태대로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행동한다. 인간의 괴로움은 바로 그런 착각에서 비롯된다. 결국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만물의 공성, 즉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무수한 인연의 그물 속에서 생겨나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멸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을 뜻한다. *노자가 말하는 무도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노자에 따르면 무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없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노자가 말하는 무는 유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만물을 낳는 절대적, 보편적, 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무라는 말을 사용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과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자의 무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상적인 사물이나 존재와도 같지 않다'는 뜻에 가.
@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종교는 사회와 문화를 형성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 뿌리를 알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잠재적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았다. (여기에서 종교라 함은, 우리사회에 있어서의 비단 기독교나 천주교처럼 서구에서 유입된 종교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 그리고 민간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무속신앙 등에 이르는 부분까지 모두 포함된다.) 종교가 인간의 내면과 관련된 의식이니만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종교는 금욕, 금기 등의 종교 용어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금(禁) 이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다. 예컨대 십계명과 같은 나름대로의 규율과 제도를 그 뼈대로 구성 짓고 그대로 지켜나가고자 노력한다. 종교는 이러한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사회변동을 억제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사회 규범, 법률 등 제도적인 측면을 신성화하여 강조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제도적 사회를 세우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기능은 사회응집에 기여하는 측면들이다. 과거, 사회가 단순하고 소규모로 이루어진 집단이었을 때의 종교는 이처럼 사회 통합과 유대감 조성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반면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종교는 또 다른 집단을 형성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제 종교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는 요소가 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는 사회 통합적 기능과 동시에, 사회 갈등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기제로 작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가치에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현실과는 우원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에 보다 치중하게 한다. 종교에서 저마다 주장하고 있는 유토피아를 향한 갈망은 세속적이라기보다 신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때로는 법보다 더 강력한 믿음을 주지시킨다. 종교는 인간에게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일과 의무에 대한 충실한 수행이 정당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보상의 윤리가 포함된 합리적인 윤리종교를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때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이러한 윤리종교는, 사회가 다원화되어갈수록 종교와 사회 간의 가치 지위적 갈등을 가져왔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종교는 개인에게 소속감을 지니게 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지대가 되어주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종교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는 개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삶의 변화는 사회적 파장에 영향을 끼친다. 종교에 임하면서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사회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영향이 모두 긍정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지녀야 하는 과제는, 참된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곡된 종교관은 오히려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며, 개인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켜 건강한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는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