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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시스템] 박주영과 한국축구 그리고 유소년 시스템 개선
    서론 : 박주영이 주는 메세지2005년 초입에 한국의 축구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3년 전 한일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히딩크 사단 에 보여준 뜨거운 성원과 기대가 이제 막 20살을 넘긴 아름다운 한국청년에게 모아지고 있다. 한국축구 역사상 이처럼 화려하게 팬들의 관심을 받은 20살 선수는 70년대 차범근 이후 처음이다. 30년 만에 나온 한국축구의 보물은 27일 새벽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2005카타르 8개국초청 청소년대회 일본과의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3-0 승리를 이끌었다. 동갑내기인 일본의 괴물선수 히라야마 소타와의 맞대결에서 한국축구의 매운 맛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에서만은 결코 질 수 없는 한국의 자존심을 세운 청소년대표팀의 기둥은 누가 뭐래도 박주영이었다. 이 대회에서 무려 9골을 넣은 박주영은 대회 MVP와 득점왕에도 올랐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이 이렇다 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그의 등장은 팬들을 흥분시켰다. 축구팬들은 지금 당장 박주영을 국가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 며 뜨거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들은 박주영 같은 유망주를 국가대표팀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프로에서 충분히 실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외쳤다.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은 아직 경험이 모자란다 며 두고 보자는 입장이었지만 박주영이 프로무대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자 월드컵 최종예선에 그를 주전 포워드로 투입시켰다. 결국 박주영은 죽음의 원정 두 경기에서 연속 골을 뽑아내며 한국팀을 독일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박주영은 곧바로 네덜란드로 날아가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를 준비했다. 박주영이 합류한 청소년 대표팀은 83년 4강 신화 재연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박주영은 독일월드컵 공식홈페이지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소개할 만큼 성가를 더해가고 박주영 없이 치른 파크랜드컵 2005부산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서 3경기 동안 2골밖에 넣지 못해리아를 박주영의 무서운 뒷심으로 격파해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16강행 티켓의 향방을 결정짓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지나칠만큼 롱패스에 의존하는 전술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아쉽게 탈락했다. 박주영은 이번 대회에 앞서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와의 원정 2연전을 뛰고 왔다. 피로가 겹쳤지만 나름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 1인 가지고는, 11명이 펼치는 축구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박주영의 단짝 김승용도 아시아권에서는 통했지만, 세계수준의 빠른 수비수를 만나면서 특유의 스피드와 개인기를 살리지 못했다.지금까지 박주영 신드롬의 역사와 최근 그의 경기 등을 개괄해 보았다. 이 레포트에서 다루게 될 주제는 박주영으로 보는 한국축구의 나아갈 길 그리고 유소년 시스템의 개선이다. 경기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브라질은 분명 우리보다 한수 위가 아닌 세수 위의 팀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유소년축구를 어떻게 개선시켜야 되는지 여실히 드러낸 대회였으며 미래를 대비한 유소년 축구 활성화의 절실함을 느꼈다. 설령 감독의 전술상의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 대회서 나타난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박주영을 제외하면 아직 세계 수준과는 뚜렷한 격차가 있었다. 선수들의 정신력에 기댄 채 좋은 성적만을 기대하는 패러다임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는 냉혹한 현실을 이번 대회는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축구는 박주영 같은 천재가 우연히 나오기 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제2, 제3의 박주영이 나올 수 있도록 인위적인 노력을 감행해야 한다. 상처는 곪기 전에 치료해야 하듯 이번 대회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에 이제는 메스를 대야 하지 않겠느냐는 축구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1. 과거 한국축구의 천재들역대 한국 축구 최고의 선수를 뽑으라면 사람들은 단연코 차범근을 말한다. 중학교 때 하키 명문 영도중학교의 필드하키 선수출신인 그는 경신중학교로 전학하면서 축구를 시작했레스리가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308게임),외국인 최다 득점(98골) 기록하며 당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자리매김 한다. 승부만을 중시하는 학원 축구, 잔디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맨땅 경기장, 이런 인프라에서 차범근 같은 선수들가 나왔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차범근이 천재 공격수인 반면 홍명보는 천재 수비수였다. 약 13년간 가까이 한국 수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홍명보는 수비수로서 세계 올스타에 4번이나 선정되는 등 90년대아시아 최고의 선수였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년 대회까지 월드컵 4회 연속출전 했으며 한국 선수로는 최다이자 전 세계선수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A매치 135회(9골)출전'의 금자탑을 세웠다. 94년 월드컵 이탈리아의 한 해설자는 "홍명보 선수는 한국의 기형적인 축구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한국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라고 말하며 홍명보를 극찬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오죽하면 홍명보 선수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네스타, 말디니 보다 더 유명한 스타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정말 기형적인 축구환경에서 정말 신기한 선수들이 나오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열악한 신체조건에서 말이다. 그러기에 이런 천재 스타플레이어는 10년에 한번 꼴로 드물게 나온다. 재능이 있지만 맨땅에서 무릎 까지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공을 차게 되면 유럽의 유능한 선수들 같이 좋은 시설의 클럽 밑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결과인 즉 한국 축구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유소년 시스템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소년 축구는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는 편이다. 어린 선수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의 축구부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 폭력과 욕을 어린 학생들에게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코치, 잔디는커녕 풀 한 포기도 구경할 수 없는 모래구장, 안 의해 키워진 게 아니라 정말 척박한 환경에서 생겨난 돌연변이 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차범근(현 수원감독)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에 의해 지금까지 너무도 난도질 되어왔다. 그럼에도 소인이라면 백번은 자신의 조국보다도 더 자신을 사랑하는 나라에 가고도 남을 것임에도, 또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선진축구와 유소년시스템의 확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2.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점한국축구의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구조적, 경제적, 계절적 등 그러나 가장 근본인 유소년 축구를 말해 보겠다. 우리나라는 성인이나 유소년이나 할 거 없이 축구선수가 아니면 그라운드에 설수 없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그냥 공이 좋아서 차고 뛰고 싶은 아이들에게 뛸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아마 그들 중에 호나우도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상급학교로의 진학문제와 연관돼있다. 쉽게 말하면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하면 학교진학이 안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꿈나무들은 승부제조기가 되어가고, 감독과 코치들은 승부제조기 기능공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져주기 시합, 승부조작, 금품수수 등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 1학년 때는 시합에 뛸 생각을 못한다. 체격이나 체력이 월등 차이가 나서이기 때문이다. 3학년이 되어야 게임에 뛸 수 있는데 우리나라 시합들은 전부 토너먼트제도 이기 때문에 실력이 좀 떨어지는 팀의 선수는 첫 시합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러면 일년에 몇 개 시합에 나가도 고작 3~4게임이 고작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그 정도가 더해진다. 대학진학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대학이나 프로에 가려고 한다. 그 선수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6년 동안 뛰었던 게임은 최고 선수 빼고서 30게임이 안된다. 이런 선수가 대학과 프로로 가서 우리나라 대표팀에 뽑히는 것이다.3. 한국과 일본 유소년 시스템의 차이점일단 일본은 계획이나 구상에 있어서 련은 훈련대로, 지도자 강습회는 강습회대로 별개로 열리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유소년팀 훈련과 지도자 강습이 같이 이뤄지고 있었다. 일본 전국에서 250명 정도의 현장지도자들과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일정한 강습료를 지불하고 강습회에 참가한다. 스케줄은 12세 선수들의 훈련이 먼저 이뤄지고 곧바로 지도자들에 대한 교육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소년 선수들을 어떤 식으로 지도하는지를 직접 참관한 뒤 의문점이나 자신의 의견 등을 개진할 수도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유소년 지도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도 훨씬 수월하다.4. 포항구단의 선진화된 유소년 시스템경북지역 대표로 2004 동원컵 왕중왕전에 참가한 포철동초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프로팀 포항 스틸러스의 유소년 육성시스템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포항의 유소년 육성시스템의 가장 기본을 이루고 있는 팀으로써 1988년 창단된 이래 포항의 지역 스타들을 여럿 배출했다. 1992년 포철동초를 졸업한 이동국(현 광주)을 시발점으로 해서 본격적인 유망주 육성이 이루어졌고,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육성시스템의 상위 그룹인 포철중-포철공고로 차례대로 진학을 하게 된다. 이동국이 그런 경우이며, 현재 포항팀에도 송동진, 임경훈, 박원재, 이수환(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 신화용(GK,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청주대), 차철호(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영남대) 등이 이 코스를 밟았다. 모든 운영이 포항 스틸러스와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루어지며, 포철동초의 김동영 감독 역시 포항구단에서 임명하고 급여도 지급된다. 따라서 김동영 감독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무래도 우리 팀은 포항 구단의 클럽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성적 위주보다는 좋은 선수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구단에서 요구하는 것도 그런 것이죠. 성적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발전시키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기본기 위주로 아이들이 식상하지 않는 운동을 많이 하니다.
    예체능| 2005.06.19| 6페이지| 2,000원| 조회(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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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따문제] 집단따돌림 문제와 해결방안 평가B괜찮아요
    1. 서론최근 집단 따돌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떠오르고 있다. 각급 학교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집단따돌림 혹은 왕따 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초, 중, 고 학생 5명 가운데 1명은 집단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고, 4명 가운데 1명은 집단따돌림을 시킨 적이 있다는 통계 자료를 보아도 집단따돌림의 문제, 그것은 현재 우리 교육계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써 부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심각한 청소년 문제가 되었다. 뉴스와 신문에는 집단따돌림을 당한 아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이민을 가는 등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학교 차원이 아닌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집단 따돌림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장기적으로 일어나며 심지어는 다음 학년 혹은 중학교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중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한 아이들은 대체로 초등학교 시절에도 고통을 당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단따돌림을 장기적으로 받은 아이들은 대인 기피, 우울증, 등교 거부, 가출 등의 현상을 보이며 심할 경우 자살까지도 한다. 집단따돌림은 대체로 특정 학생이 학생 집단으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 문화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따돌림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면서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2. 집단 따돌림 실태남학생은 폭력을 가한 경험이, 여학생은 집단 따돌림을 당하거나 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와 강원교육연구소(소장:민병희도교육위원)는 지난해 9~12월 도내 33개 초 중 고교생 1,681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종합실태조사를 실시해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중 고교생 4명중 1명(23.9%)이 다른 학생을 때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업고(34.2%)보다 일반고(38.3%), 여학생(11.4%)보다 남학생(42.9%)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폭력서클에 가입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고 한 학생이 14.8%로 여학생(12.9%)보다 남학생(17.3%) 비율이 높았고 중학생(남 7.9%, 여 9.3%)의 경우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폭력서클에 들고 싶었던 학생의 21.6%가 실제 가입했다고 했다. 아울러 초 중 고교생의 13.1%가 집단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으며, 남학생(11.2%)보다 여학생(18.5%)이 따돌림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녀 격차가 커져 초등생 남 12.3% 여 14.4%, 중학생 남 9.7% 여 12%, 고교생 남 10.2% 여 19.5% 등이다. 다른 학생을 따돌린 적이 있다고 한 학생이 41.1%로 이 중 33.7%는 다른 친구들을 따라 했고 7.4%는 자신이 나서서 했다고 했다. 청소년 폭력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을 보면 학교에서의 경우 수업이 끝난 오후가 36.5%가 가장 많고, 쉬는 시간이 32.0%, 점심시간이 11.6%였다. 한편 지역사회에서는 방과후 학원이나 독서실 가는 시간 25.6%, 주말 오후 24.1%, 평일 하교시간 21.4%로 나타났다. 폭력피해를 당하는 장소는 학교의 경우 교실(21.1%), 학교 건물 주변 외진 곳(19.8%), 화장실(19.4%), 복도(14.9%)로 나타났는데 이와 같이 많은 폭력이 실내의 공개적인 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또래 청소년들이 폭력에 무감각하거나 보복이 두려워 폭력을 보고도 감히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지역사회 폭력의 경우 주택가 아파트 주변이28.8%로 가장 높았고, 실내 놀이시설이나 유흥시설(11.3%), 놀이터, 운동장, 공원 등의 공터(18.9%), 학교주변(11.3%), 학원, 독서실 주변(10.5%) 등으로 매우 다양한 곳에서 폭력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3. 왕따의 원인청소년들은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예를 들면 예쁜 척, 가진 척, 아는 척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왕따'가 되기 쉽다. 이렇게 외적인 요인이 있는가 하면 내적인 요인도 있다.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너무 심하거나 무뚝뚝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본의 아니게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왕따를 당하는 요인1 내성적이며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학생
    사회과학| 2005.06.17| 3페이지| 2,000원| 조회(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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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감상문] '금호미술관' 과 '갤러리 현대' 를 다녀와서
    '갤러리 현대' 를 다녀와서광화문 근처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들어간 곳이 갤러리 현대라는 미술관이다. 확실히 서울에 이런 문화시설이 잘 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근처에도 세종문화예술회관, 민속박물관, 바로 옆에 금호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들어간 곳은 일요일날도 운영을 하고 있었다. 70년대에 만들어 졌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꽤 의미가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일설에 의하면 이 곳이 인사동의 화랑가를 형성하는데 첫걸음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구조는 4층으로 되어 있고 입구를 들어서 몇 개의 계단차를 두고 있는 1층 전시실이 바로 눈을 끌었다. 1층 전시실과 지하 전시실은 완만한 호를 그리며 교차하고 있어, 지하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가면서도 1층의 전시도 한눈에 보였다. 지하 전시실을 둘러본 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시실로 올라가서 차례로 둘러보며 1층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적합할 듯했다. 3층에 내리면 왼쪽 창으로 길 건너 경복궁 돌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고 오른쪽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전시실이 있으며, 이 전시실에서 다시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2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데크 형식의 작은 전시공간이 있었다. 이 곳에 서서 2층과 3층의 전시실을 바라보면 색다른 느낌과 시각을 얻을 수 있는데, 천창으로 자연광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어 공간의 역동성을 더 높여주는 것 같다. 내가 갔을 때는 심경자 교수의 작품을 전시했었는데, 전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과 더불어 콜라쥬 등의 것들도 있었다. 여지껏 남성화가 작품들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 분의 작품들은 볼륨감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힘찬 붓놀림과 동시에 격정적인 동작, 구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양화에서 느낄 수 없는 여백의 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추상화에서 보여지는 비논리적인 그리고 무질서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화가 자신의 기억, 심정, 체험들을 정형화 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실제로 그 분의 추상화들을 보면서 (그 분의 작품들이 추상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런 것 같다) 내가 요전에 봤던 추상화들보다 매우 형상화, 규칙적 리듬이 중시됫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그림의 내용적인 면에서 봤을때 동그라미, 원형 같은 것들을 다양하게 형상화 한 것으로 보아 모성에 대한 본능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러 자연물 등을 많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자연요소를 이용해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지향적인 성격도 내포되어 있는것이 맞다고 확신이 들었다. 이 같은 판단들은 순전히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내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지만 아무튼 미술, 특히 추상미술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여러 생각과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깊이가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며 그런점에서 나에게 많은 생각과 해석을 준 이 전시회는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 미술관을 다녀온 전체적인 분위기들을 말하자면, 우선 미술작품과 전시공간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각각의 공간마다 다양한 높이와 넓이의 벽면으로 작품과의 어울림이 잘 이루어진 것 같았고 건물 전체적으로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와 밝은 느낌을 받았다.아마도 그 같은 미술관 측의 노력 때문에 감상의 흐름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금호 미술관' 을 다녀와서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가다보니 금호 미술관이 보였다. 솔직히 외관은 그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설프게 기와를 얹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내부의 구성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천장 인테리어가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장에 사각형 모양으로 유리를 여러개 박아놔서 그런지 몰라도 눈의 피로가 덜했다. 내 눈은 밝은 조명에 노출되어 있으면 쉽게 빨개지곤 하는데, 파란빛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와 그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 구조는 가장 윗층이 리싸이틀홀 인거 같았고 지하1층부터 지상2층까지 전시실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1층에는 중B1층과 연결이 되어있어 카페와 전시실을 일부러 커다란 차단벽을 세우지 않고 분리 시킬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일본 미술의 두 거장, 히로시게 & 아와즈: 우끼요에와 일본현대디자인' 이라는 주제로 목판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작품들이 바로 고흐등을 비롯한 인상파들에게 영향을 준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그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민속화는 인물중심의 해학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반해 일본의 민속화는 색채가 들어서 그런지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맛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이색적인 문화를 처음 접하다보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원색이 많이 쓰여서 강렬하게 와닿은 것이 원인인가 보다. 그러나 그런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색체가 작품들의 내용을 확실히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할 만한 점은 그림 중에 우리 놀이문화와 매우 관련있는 화투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있었다. 지금의 화투와 그림의 표현이 똑같다는 점에서 신기했고, 그것들을 관람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항상 "어 화투네!" 였다는 점에서 재밌었다. 무엇보다도 백여 년의 시간차를 가진 일본의 두 예술가의 예술세계가 한국의 문화적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과 문화적 차이를 건너뛰며 조우하고 있는 것, 또 그것들이 관람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100년전 다른 나라에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이 천박한 그림들이 19세기 고흐, 보나르 등의 서구화가들을 매료시킨 건 그런 점이 그 인상파들에게 각인되지 않았나 싶다. 그 명작 중에서도 특히 눈낄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명소에도백경' 일것이다. 무려 120장으로 구성된 히로시게의 만년의 대작으로서, 평생 청신한 표현을 추구해 온 히로시게 화업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구성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 있으며 나무와 꽃, 비, 안개, 눈, 달 등 각 계절의 다채로운 표정이 화가의 탁월한 기법에 의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무튼 여러 훌륭한 작품들을 보면서 물리적 거리로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문화적 정서면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일본의 예술을, 그것도 19세기 일본 풍속과 21세기 현재 일본의 감수성이 함께 혼합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일본의 문화나 일본 미술사에 대해 조금 공부해 보고 갔으면 좀 더 심도있는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독후감/창작| 2005.06.17| 3페이지| 2,000원| 조회(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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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인식] 포스트모던의 등장과 역사학의 진보
    포스트모던의 등장과 역사학의 진보(1)포스트모던과 역사가포스트모던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등에 이르러 시작된다.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그런데 1989년부터 일어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는 그 동안 역사의 전위에 섰던 사회주의를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했으며, 동시에 진보로서의 역사를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후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 포스트모던이 과연 오늘날의 역사학에 어떤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역사사는 이 포스트모던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주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2)거대담론의 종말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근대철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 즉 프랑스의 합리론을 양대 핵심 철학으로 언급한다. 이 두 철학은 서로 대립적 관계에서 주로 논의되지만, 실은 둘 다 근대철학이라는 공통점, 즉 동일한 기반 위에서 성립되었다.이때 이 두 "서양철학 일반의 공통적인 주제는 '관념(idea)'"이다. 근대의 "자연과학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법으로 탐구하려 한 것이 자연이었다면 그 자연을 바라다보고 탐구하는 주체인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지, 인간의 정신은 무엇이고 정신의 작동은 어떻게 되며 행동은 또 어떻게 하며, 해야 되는지 등등의 문제"가 철학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근대철학의 중심이 인식론이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식론의 중심문제는 앎의 문제이고, 근대철학자들에게 '관념'은 앎을 가능케 하는 기본 소재로서 본격적으로 탐구되는 것이다. 앎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면, 앎은 앎의 주체와 앎의 대상의 관계에서 성립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주체는 물론 인간 또는 인간의 마음이고, 앎의 대상은 외부세계 또는 외적세계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근대 인식론의 핵심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주관성을 극복하고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역사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이 시기 역사이성 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역사 자체를 신격화했다. 즉 이 시기는 거대 담론의 역사의 시기 이었다. 거대 담론으로서 역사는 근대인들에게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미래에나 이룰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매진할 것을 명령함으로서 근대를 혁명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 빠졌던 것이다. 거대담론이란 말 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전면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극단적인 다윈주의를 취함으로써 급진적 상대주의로 나아갔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과학주의가 강조하는 객관주의를 배척하고, 사회적 현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구성된다는 구성주의를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앞서 설명한 현상학적 접근법과 유사하다. 그리고 사물이나 사회적 현상을 보는 시각 즉, 세계관에 있어서는 상대주의이며, 다원주의이다. 또한 개인들은 조직과 사회적 구조의 지시나 제약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 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 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 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 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미국의 네오리얼리즘 이론가 제럴드 그래프는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파악해 온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이제까지 서구 세계를 풍미해 온 문화적 전통과 예술적 인습은 몇몇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 않고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가깝게는 모더니즘, 멀게는 낭만주의의 전통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이 견지하는 입장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운동의 기본 전제들을 논리적으로 발전시킨 극한점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일종의 '돌파구'로 파악하는 일부 이론가들의 태도를 가리켜 그가 '신화'라고 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한편 다른 일군의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작용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가들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낭만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더니즘과도 변별적으로 구별되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하고 고유한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뒤이어 나타난 급진적으로 새로운 예술전통이나 이론 또는 사조에 해당된다. 이런 입장을 내세우는 이론가들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은 '탈모더니즘'이니 '반모더니즘'적인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3)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이론의 미학적 관점에서 역사서술의 과학성을 해체시켰다. 또한 과학으로의 역사 대신 문학으로서 역사 를 부각시켰다.이러한 역사이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은 한마디로 언어로서의 전환 이라는 말로 일컬어진다. 즉 역사학의 중요과제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 자체를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해내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연구에서 텍스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지 근본적의 보수적 시각 즉 진화론적인 설명 방식 을 거부한다. 우리가 미세하다고 여겼던 것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다. 먼저 푸코 자신의 회고적 진술로부터 대답을 시작해보자. 그는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주체화subjectivation의 상이한 양식들의 역사"를 탐구해왔다고. '주체화'라는 개념으로써, 푸코는 '단일하고 연속적인 의식을 지닌 (초험적) 주체'라는 근대의 철학적 가정에 '이질적이며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 구성되는 (역사적) 주체'라는 가정을 대치시킨다.이때의 '경험'이란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라기보다는 비개인적이고 집단적인 한계경험이며, "한 문화에 있어 지식영역과 규범성의 유형과 주체성의 형태들간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푸코에게 있어 이 경험은 직접적인 것도, 원초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무엇보다도 언어에 의해 매개된다. 경험의 역사는 따라서 주체의 의도나 내밀한 자기반성을 지반으로 삼을 수 없다.그것은 오히려 (실천으로서의) 담론을 탐구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게 된다.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에서 푸코는 어떻게 광기가 18세기 유럽에서 갑자기 과학적 분석과 연구의 구체적 대상이 되는지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그는 식별되고 한정될 수 있는 광기라는 담론의 대상과, 그것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담론의 주체가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역사적 계기를 보여준다.더불어 광기와 (그것의 배제 혹은 결여로써만 가능한) '이성적' 인간의 탄생 간의 상호작용으로 특징져지는, 16세기로부터 19세기까지의 집단적, 다원적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광기는 담론 안에서, 담론을 통해, 담론을 가로지르며 구성되는 대상의 차원에 귀속되며, '담론이전의 지시물 r f rent pr discursif' 즉 특정한 뇌손상이라든가, 생물학적 기능장애와는 구별된다. 또 광기라는 대상의 형성과 변모는 담론에 고유한 자율성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와 '논리적으로' 구분 가능한 각종 비담론적 실천들,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게 된다. 수용형된다.
    인문/어학| 2005.06.10| 6페이지| 3,0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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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핵문제] 북한 핵문제 해결방안
    북한 핵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1)북한 핵무기 개발 역사21세기 통일한국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한반도는 국제적 측면과 국내적 측면을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그중에 하나가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에 관한 것이다.북한은 중국(1963년), 인도(1974년)의 핵개발,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남한의 독자적인 핵개발시도에 자극을 받고 핵개발을 계획하고 꾸준히 추진해왔다. '강성대국'을 외치면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달리고 있는 북한은 미사일의 계속적인 개발과 핵무기 소지로 인한 제목소리 내기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다. 사실 북한은 자주노선을 표방한 때부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김일성은 한반도가 적의 침공이나 식민지가 된 것은 군사력의 약세때문이라고 보았기에 막상한 군사력 증강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김정일 정권에서도 '벼랑끝 외교' 니 '베짱외교'니 하면서 펼쳐지고 있다. 북한은 1976년부터 개발연구를 시작으로 하여 1984년 스커드 미사일을 북한 고유모델로 생산하게 되었고, 1985년 사정거리 300Km에 해당하는 스커드B 미사일을 시험하였다. 이어 사정거리 500Km에 이르는 스커드 C 모델도 완성하였다. 또한 1993년 사정거리 1000Km의 노동1호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한국전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1998년 사정거리 3000Km인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즉 북한은 핵폭탄을 장착할 수 잇는 미사일을 완성한 것이다. 아울러 1998년 8월 31일 미사일에 3단계 로켓을 사용한 대포동 1호에 위성을 탑재하여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쏘아 올리려는 시도를 하여 서방세계를 놀라게 하였고, 실제로는 일본상공을 가로질러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은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지구위성' 이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혼비백산하여 미국의 전역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성의 발사로 북한책을 탈냉전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국가안보회의 실무진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는 경우를 1급 위기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위기상황이 생길 경우 미국은 일방적으로 무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같은 해 1월 26일 주한미군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는 제17차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을 3월에 재개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이번 훈련에는 핵무기를 실은 최신예 전략폭격기 비(B)-1비(B)가 동원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3년 1월28일 러시아 대외정보기관인 해외정보처(구 소련 KGB 해외부문)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처장은 28일 냉전종식후 세계의 대량파괴무기 확산실태 보고를 통해 북한 지도부가 명확하게 핵무기 보유의사를 갖고 있으며 핵무기 제조능력을 향상시켰다고 발표했다고 일본의 지지통신이 모스크바발로 29일 보도한다. 1993년 2월15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북한의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동북아 전반에 심각한 반발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93년 2월 미 공군대장 리 버틀러는 전략공군사령부가 북한에 전략핵무기를 조준하고 있다고 밝힌다. 1993년 3월 9일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이 개시돼 12만 명의 병력이 동원되었으며, 미군 병력 1만9천명이 추가로 파병됐다.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이 재개되기 하루 전날인 3월 8일 북한은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전신명령`을 발표하면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이틀 뒤인 3월 10일 김영남 당시 외교부장은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앞세워 강요하고 있는 `특별사찰`을 거부한다고 발표했으며 다시 이틀 뒤인 3월 12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한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은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은 기습공격이었으며, 핵 전략에 기초한 미국의 세계지배구도를 정면으로 거스르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워싱턴 타임스는 1993년 4월5일자에서 당시를 설명하며 "그것은 민주주의가 전세계를 휩쓸고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하였다는 자아도취적 환상이 북한이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radiochemical laboratory)을 사찰단이 제대로 사찰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미국은 이를 구실로 조·미 고위급 회담 개최 약속을 깨고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을 계획한다. 이에 맞서 북한은 미국이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조치를 취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완전히 탈퇴하겠다고 선언한다. 1994년 4월 28일 뉴욕에서 열린 조·미 실무접촉에서 로버트 갈루치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을 계속 준수하고 남북 대화에 나선다면 1994년도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을 완전히 취소하고 3단계 조·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겠다는 새로운 타협안을 내놓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위기를 풀자고 제안한다. 1994년 5월 13일 북한은 미국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영변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에서 사용한 연료봉을 꺼내기 시작한다. 이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1994년 5월말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전 야전사령관 및 4성 장군들을 워싱턴으로 불러 북한과의 전쟁 계획을 검토한다. 클린턴은 1994년 6월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고 6월 10일 북한이 연료봉 꺼내기 작업을 마친 날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 제재 결의안이 나오자 북한은 6월 13일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즉각 탈퇴하고, 어떠한 사찰도 더 이상 받지 않겠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며 맞섰다. 94년 6월 미국 정가는 북한에 대한 핵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다. 부시 정권 때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미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아놀드 캔터는 워싱턴 포스트 1994년 6월 15일자 공동 기고문에서 "만약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나중에 전쟁을 하느니 차라리 북한이 일정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하와이와 알래스카 일부를 사정권으로 하는 `대포동 2호`를 개발한 북한을 지목하고 "대포동 2호가 5년 내에 실전배치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앞으로 15년 내에는 미국이 북한 외에 다른 나라로부터 탄도미사일 공격위협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 주둔 미군의 전진배치를 강조한 것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능력에 대한 평가절한 것은 북한의 미 본토 타격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98년 8월31일 `광명성 1호` 발사 이후 시작된 `윈-윈 전략` 검토 과정과 2001년 9월30일 발표된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에서 전진배치 전략 수정과 본토 방위를 강조한 사실에 비춰보면 97년 한반도 정세 인식의 오류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1998년 8월31일 광명성 1호 발사는 이런 북 붕괴 시나리오 등 미국의 정세 인식을 환멸로 뒤바꾼 일대 사변이었다. 동북아 주둔 미군의 전진배치 전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윈-윈 전략`의 `변형태`라고 할 수 있는 `관여와 확장 전략` 즉, 북한을 급격히 붕괴시키기보다는 서서히 변질시키는 대북포용전략조차 사실상 통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99년 9월 페리보고서가 클린턴 정부에 대해 북한을 붕괴시킬 수도 없고 변질시킬 수도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에 나서라고 권고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인식의 반영이었다. 93년 5월29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미 `윈-윈 전략`을 뒤흔들었다면 98년 8월31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능력 과시는 윈-윈 전략을 뿌리째 뽑아 놓은 셈이었다. 미국 군사전략의 최고실무자인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이 `윈-윈 전략` 수정의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 시작한 것도 98년 8월말 이북의 `광명성 1호` 발사 이후이다. 98년 당시 미 합참의장 헨리 셸턴은 `광명성 1호` 발사 뒤 한 달 만인 9월30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미군은 추락하고 있으며 전투태세도 약화되고 있다"며 국방비 지출을 늘려줄 것을 호소했고다. 럼즈펠드가 부시에게 새 군사전략을 보고한 시점은 또한 미국의 대한반도전략을 재검토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는 미국의 대 한반도전략이 세계 군사전략의 중요한 축임을 입증한다. 이 때 한반도정책 검토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토머스 허바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이며 허바드를 중심으로 진행된 대북정책검토반에는 백악관, 국방부의 한반도 담당 외교안보팀도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국내테러문제에 대한 미 정부 핵심자들의 언급은 이후 점차 노골화되고 9월11일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테러로부터의 위협` 발언이 계속된다. 미국은 최소한 테러를 예상했거나 또는 상정했다. 미 상원은 또 체니가 `테러대책반 운영`을 발표한 이날부터 세출위원회, 군사위원회 및 정보위원회 합동으로 폴 오닐 재무, 콜린 파월 국무 및 노먼 미네타 교통장관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테러대책 청문회`를 시작했다. 9월11일 참사 약 3개월 전인 6월20일 워싱턴타임스는 미 국방부가 두 적성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 승리로 이끈다는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의 폐기를 결정했으며 부시가 전날 국방부를 방문, 럼즈펠드 장관과 만나 9월 작성예정인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서에 관해 협의했다고 보도, 새 군사전략이 완료단계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미 상원은 5일 삭감한 13억 달러를 9.11사건 열흘만인 21일 되살림으로써 부시 정부는 당초 요구했던 미사일방어계획 관련 예산 83억 달러 전액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상원은 또 같은 날 총 3,430억 달러의 국방예산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당초 국방예산안 3,290억 달러보다도 140억 달러나 더 많은 액수였다. 윈-윈 전략 포기 및 원-플러스 전략 수립에 따른 군비 지출 문제는 이렇게 해소된다.(3)북한 핵문제 해결의 강경론북한의 핵 위협은 그간의 김정일의 행태로 보아 그들의 최종적 목표는 핵을 보유하여 동북아의 세력판세에 영향을 주고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고 궁극적으로이다.
    사회과학| 2005.06.08| 7페이지| 2,000원| 조회(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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