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이야기』제목 : 귀주 이야기 (1992) 『추국타관사(秋菊打官司)』감독 : 장예모출연 : 공리, 류 페이치, Liuchun Yang, Laosheng Lei상영시간 : 100분장르: 드라마1. 영화의 제목우선 영화의 제목인『귀주이야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원제는 『추국타관사(秋菊打官司)』로, '추국(가을국화...)'이란 여주인공(공리)의 극중 이름이고, '타관사'란 중국어로 '소송을 걸다'는 뜻이다. 곧 라는 뜻인데 지금의 『귀주이야기』란 제목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중국어의 병음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추국'을 병음방식으로 영문표기하면 'Qiu Ju'가 되는데 쉽게 ‘귀주’라고 읽은 것이라 추정된다. 중국의 지역 중 ‘귀주’(貴州)'와는 상관이 없다.2. 『귀주이야기』내용 탐구자 그렇다면, 영화의 속사정을 살펴보자. 영화의 배경은 ‘귀주’(貴州)'와 상관없는 협서성 구석의 산골짜기 마을로 중요한 것은 ‘시골마을’이라는 것이다. 장예모 감독이 중국의 유명한 북경, 상해 등의 지역보다 이곳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정한 데는 시골마을이라는 데서 풍겨지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시골마을의 이미지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시골마을은 농업을 생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대가족으로, 온가족이 농업 일에 매달려 있는 있고 농업을 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남성의 힘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물씬 날뿐더러, 여성의 지위가 낮고 작은 마을을 이끌고 있는 관료적인 제도의 배경이 있는 것이다.영화의 시작배경에 추국은 남편과 시부모, 시누이와 함께 살고 있고 고추밭을 전업으로 삼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은 고추밭에서 촌장에게 국부를 걷어차이게 되면서 사건의 발단이 드러난다. 촌장의 행동으로 고요한 마을에 풍파를 던지게 되고, 추국과의 관계를 이상전선으로 이끈다. 자신의 남편이 국부에 차인 것에 흥분하지 않을 부인이 어디 있겠냐만은 대부분이 ‘화’의 정도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분위기이다. 허나 추국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에 살고 있지만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처음에는 가벼이 촌장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촌장이 이를 거부하자 법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향’의 공안 당국에서 고소를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얼마의 보상금만 명령할 뿐 추국이 원하는 ‘사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 이에 추국은 승복하지 않고 ‘현’, ‘시’의 공안당국 까지 찾아가서 고소를 하게 된다. 여기서 부각되는 추국이라는 여성은 현재 임신한 상태라는 점이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려운 몸을 이끌고 시골마을에서 현, 시까지 시누이와 함께 올라간다는 것이다. 갈 때마다 집안에 있는 고추를 팔아서 가게 되고 갈 때마다 없어지는 고추를 보며 걱정하고 나무라는 남편의 말은 뒤로 한 채 추국은 자신의 고집의 꺾지 않는다.그렇다면 과연 여기서 추국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속에 드러난 것은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인간적인 말 한마디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인간관계는 돈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감독의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듯싶다. 그것인 즉, 인간에 대한, 자신에 대한 존엄성의 회복이라고 본다. 이곳의 배경인 시골마을에는 권위주위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시골마을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중국전체의 분위기일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감독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자 추국이라는 나약한 임산부를 내세워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이유는 사회 속에서 좀 더 약한 자의 승리쟁취가 강한자의 쟁취보다 더 값지기 때문이라 본다.감독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으로 중국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살펴보았을 때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벗어나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다소 시장경제체제의 분위기를 추구하는데 있어 감독은 낡은 관료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한 인간의 존엄성이 관료주의의 낡은 사고관에 무너지는 것은 사회정의 실현에 옳지 않다고 보지는 않았을런지. 결과적으로 통쾌하게 한 번의 고소로 추국이 승리할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영화의 흐름상 재미가 떨어질뿐더러 그만큼 낡은 사고관이 쉽게 사라 질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은연중 알려주고 있는 듯싶다.마지막 부분에 보면 촌장은 결국 구속이 된다. 이것을 결과론 적으로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추국의 승리이지만 추국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승리였고 승리를 하면서도 모순된 입장을 보이는 추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중국의 시대적 배경에 영화의 등장해인 1992년은 개혁?개방의 시행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추국의 사고관은 아직 자리 잡지 않았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낳는 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추국이 여러 번이나 고소를 행하는 행위를 보고 마을사람들과 가족들은 따사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추국의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었고 널리 사회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영화를 너무 딱딱하게만 이끌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압도하게 되는 것은 추국의 출산장면이다. 추국의 난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추국에게 계속 고소당한 촌장인데 남편의 부탁에 촌장은 약간의 투정을 부린 후 곧바로 추국의 출산을 도와주게 된다. 촌장의 도움으로 추국은 아들을 낳게 되고 고마움에 다시 추국은 아들이 태어난 한 달 후에 촌장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잔치를 열게 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날 촌장은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이로써 추국은 달려 나가며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영화는 끝나게 되는데...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너무 강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한 걸음씩 물러나는 관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위에서 잠시 말한 추국의 모순된 입장이라는 것은 그렇게도 촌장과의 관계를 법적으로 해결하려했을 때 승리하고 싶었었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고마움을 베풀어준 사람에 대해 화해의 순간에서 승리를 맛보기에는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맛이기 때문이다.여기서 시사하는 바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추국이라는 여성과 촌장이라는 남성의 싸움은 법적이면서도 다분히 사적이다. 1차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일 테이고, 2차적으로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 3차적으로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첨밀밀》(甛蜜蜜/Almost A Love Story, 1996)감독 : 진가신출연 : 여명, 장만옥, 증지위,두가풍, Len Berdick홍콩 / 1997.03.01장르: 멜로드라마상영시간: 118분1. 서론이 영화를 볼 때마다 들곤 하는 생각은 참..편안하다는 느낌이다. 수업시간에 본 횟수까지 총 3번을 봤지만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우선 내용상에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다른 액션영화도 공포영화도 아니고 비극적인 결말을 갖는 드라마도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또한 주인공인 장만옥과 여명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배우기 때문일 것이다.이 영화를 수업시간을 통해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중국의 홍콩반환문제와 관련되어 있는지 몰랐다. 이 영화의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서 인가 보다. 그래서 인지 수업시간에 보면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던 것 같다.마냥 홍콩의 영화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첨밀밀’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첨밀밀’로 다가온 것이다. 수업시간 상영을 통해 이런 기회를 갖게 되서 좋은 경험이다.2. 본론1) 영화의 평가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저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흥행했음은 물론이거니와 홍콩에서 개봉 7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흥행수위 1위, 흥행수익까지 1위를 차지한 것은 홍콩 영화계에 드문 일이라고 한다. 더구나 홍콩하면 그 당시 액션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첨밀밀’의 등장으로 멜로영화로 대세가 기울어 졌다고 하니 영화의 호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2) 진가신 감독금지옥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진가신 감독이 1997년 첨밀밀이란 영화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신고식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 그를 살펴보면 80년대 T.V를 통해 감독수업을 쌓은 후 증지위(曾志偉), 종전, 이지예 등과 함께 U.F.O(The United Filmmaker's Organization) 제작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영화사업에 뛰어 들었다. 영화 후반부의 배경인 뉴욕은 한 때 영화 흥행 실패로 참담하게 보냈던 90년대 뉴욕에서의 경험이라고도 한다.그는 이영화로 홍콩 금상장 영화상에서 9개 부문을 석권할 정도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크게 성공하였다. 그 대표작중의 하나인 이 작품을 진가신 감독은 의 촬영 당시 구상했고, 그는 홍콩에서 80년대의 촬영 분을 마치고 자리를 뉴욕으로 옮겨 그곳을 배경으로 90년대 촬영 분을 완성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영화의 제목을 으로 계획했다가,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이 등려군을 연결 고리로 해서 맺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그녀가 부른 '첨밀밀'이란 노래의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따왔다고 한다.3) 영화의 구성이 영화를 보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선 중국최고의 여가수 ‘등려군’의 ‘첨밀밀’ 이란 배경음악이다. 중국 최고의 가수를 등장시킨 것 자체가 영화에 주목을 끌게 만들었지만 이것이 영화를 구성하는데 있어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가 아닐까??사람들이 추억을 떠올릴 때는 무엇인가의 매개체가 필요한데 이때 음악이라는 요소를 이용하면 음악이 우리의 청각을 타고 흘러 들어와 흡수되는 효과는 크다고 본다. 흔히들 아침에 들은 음악은 저녁까지 생각난다 말하고, ‘百聞不如一見’이라 하거늘, 영화를 보면서 듣기도 하니 어찌 음악이 뇌리에 남지 않으리요. 여기서 음악은 보는 것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니 그야말로 一石二鳥(일석이조)이다. 이 음악을 듣고 떠올리는 것은 등려군과 ‘첨밀밀’영화일테니 말이다.그렇다면 이 음악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먼저 말하자면 사랑의 연결고리이다. 이 음악으로부터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시작하게 하고 사랑을 맺어, 끝까지 이어주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 음악이 시사하려고 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음악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고, 일상생활 속의 음악은 우리에게 피로를 해소시키며, 걱정하는 마음을 이완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영화를 발표 할 당시의 97년도 중국의 상황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음악을 접목시키려 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반환이라는 사회적 혼란이 있었고, 이를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어차피 현실이고 하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 듣던 음악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 중국과 홍콩의 현실적 괴리감을 음악이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여소군과 이교는 같은 날, 같은 목적으로 홍콩에 도착하지만 둘이 만날 당시에는 여소군은 중국인, 이교는 홍콩인으로 등장한다. 이는 한동안 분리되었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둘이 처음으로 친해지게 된 것은 예상대로 첨밀밀의 음악 때문이다. 이를 전체적으로 해석할 때 현 중국의 중국인과 홍콩인의 조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중간 부분에는 둘이서 등려군 음반을 판매하는 장사를 함께 하지만 망하게 된다. 허나 망한 것은 사업뿐이지 그 둘의 인생과 사랑은 아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더욱더 가까워 진고, 마지막 부분에는 그동안 헤어진 여소군과 이교가 등려군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이로써 영화의 역할은 톡톡히 해낸 것이라 본다.총 영화의 배경기간은 86년부터 95년까지 10년의 오랜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둘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 부분에 있어 영화는 다소 세심하게 다루었던 것 같다. 그들이 중국을 떠나 홍콩을 온 이유, 사랑을 하면서도 고민하는 과정, 여소군과 이교의 주변 인물들, 뉴욕으로 간 이유,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이다. 모두다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심하고 감정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이 영화가 자칫 무게가 있어 보일지도 모르겠다.여소군의 고모는 오래 전 홍콩에 왔던 할리우드 스타 윌리엄 홀든을 잊지 못하는 독신녀로 등장하여 관객에게 허왕 된 생각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여소군에게 버림받은 ‘소정’ 또한 이곳에 온 것이 후회스럽고 비참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다소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교의 표형은 뉴욕에서 길거리의 아이들과 말다툼 끝에 죽음을 맞이해 허망함을 안겨주며, 에이즈에 걸린 창녀와 크리스토퍼 도일이 연기한 알코올 중독 영국인 선생의 얼마 남지 않은 삶까지 홍콩인들의 불안한 심경을 직접 발언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들 현지인이라기보다 이래저래 왔다가 다시금 떠날 사람인 듯한 불안감을 안겨 주어, 이는 중국인의 홍콩이민이라는 역사의 아픔을 다루기도 하였다.
목차들어가는 글자본주의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마르크스 레닌사상이 중국에 들어온 배경과 영향사상해방운동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참고자료들어가는 글중국의 사회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부터 알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것이 어떻게 발생 되어 져 왔으며 중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중국은 지금 어떻게 이어오고 있고 중국의 그것은 자본주의와 다른점은 무었인지를 알아야 한 다고 생각한다.자본주의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현재 서유럽과 미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체제’라는 경제체제 아래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체제가 발생한 것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이 경제체제는 16세기 무렵부터 점차로 봉건제도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18세기 중엽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점차 발달하여 산업혁명에 의해서 확립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와 독일과 미국 등으로 파급되었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처음에 사회주의자가 쓰기 시작하여 점차 보급된 용어인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자본주의란 말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윤획득을 위한 상품생산이라는 정도의 뜻으로도, 단순히 화폐경제와 동의어로도 쓰이며(이 경우 부분적으로는 고대와 중세에도 자본주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대하여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경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K.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등으로 보았다. M.베버는 근대자본주의는 ‘직업으로서 합법적 이윤을 조직적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라고 정의하였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란 상품생산에 의해서 이윤을 획득하려고 하는 정신적 태도를 말하며, 자본주의체제 또는 자본주의경제란,론의 체계.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인 마르크스주의는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및 프랑스의 혁명적 학설과 결합된 프랑스 사회주의를 그 원천 또는 구성부분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체계는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통일시킴으로써 형성되었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방법론은 그의 학설의 모든 구성부분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며, 레닌은 경제학의 전체를 근본으로부터 개조하는 일, 즉 역사·철학·자연과학·노동계급의 정책과 전술 등에 유물론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하였다. 즉, 마르크스는 철학에 관한 책은 따로 쓰지 않았으나, 자연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변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인간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설명하는 유물사관을 정립한 다음 공산주의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도덕적 감정을 근거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경제학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필연적 붕괴 위에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삼고 잉여가치론을 분석장치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힘으로써 그 필연적 멸망을 증명하는 데에 반생을 바쳤다.. 마르크스주의는 그의 사후 K.카우츠키에 의한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에 의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갈라졌다.마르크스 레닌주의레닌에 의하여 계승·발전·구체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사상 및 이론. K.마르크스 사후 그의 사상은 독일의 K.카우츠키와 러시아의 레닌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전자는 독일파 마르크스주의인 사회민주주의이고, 후자는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공산주의이다. 이는 레닌이 마르크스와 F.엥겔스에 의해 성립된 과학적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19세기 이후의 독점자본과 제국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현실을 명론과 전술은 레닌에 의하여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17년 이후 소련의 지도이념이 되었으나 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에 의하여 수정되었다. 이 대회에서 스탈린 비판이 있은 후 이탈리아·프랑스·에스파냐 등의 공산당, 즉 유러커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독재 및 레닌주의의 포기, 모스크바로부터의 이탈을 선언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결정적 시련에 봉착하였다.마르크스 레닌사상이 중국에 들어온 배경과 영향영국과의 아편전쟁을 치르고 전쟁의 패배 충격에서 굴욕적인 남경조역을 체졀 당한 중국은 계속되는 열강의 친입에 처하자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서양에 대한 이식을 새롭게 하고 서양문물을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다. 청말에 양무 범법운동이나 해방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사상적 차이점은 모두 서양의 선직적 방법을 이용하는 점에서는 같은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다., 모택동의 경우 중국의 부강을 위해 서양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그 대상은 자본주의 국가인 서방진영으로부터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이 성공한 소련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는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적합한 방책을 제시할 것을 믿었는데 그것은 레닌주의가 비서구 국가들이 어떻게 서구적인 가치와 기술을 도입하는가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항거하는 방법을 교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따라서 모택동의 혁명사상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방식에 의한 중국의 근대화와 경제건설을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원형 그대로 중국혁명에 적용하는 것을 금하고 부단한 학습을 통해 중국의 구체적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중국의 혁명을 위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도입하되 그것을 중국적 실정에 맞추어 재 창조한 것이 모택동 사상의 주체로서 “중국적 마르크스 레닌주의 였다.사상해방운동80년대 후반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선 이후, 중국의 사상계에는 전에 없이 가치 태도와 시장 경제, 그리고 민주 정치는 자연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 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80년대는 "계몽"이 지식인들에 의해 공통의 목표로 설정된 시기이다. 당시 일어났던 문화열현상이나 민주에 대한 열렬한 토론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당시 지식인들의 총체적인 가치와 사상, 그리고 관점의 동질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는 문화 살롱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대학에서는 각종 강좌가 열렸으며, 한 편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부의 감시를 피해 사상 학술 토론을 진행하였다. 비록 이러한 프로그램을 주도한 사람들의 지위와 신분은 달랐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문제 의식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가 다시 극좌 노선으로 회귀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정치상에 있어서의 민주와 경제상에 있어서의 개혁 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주장들을 쏟아내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자유주의 사조를 전면에 내세운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이런 사조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오랜 세월동안 젊은 지식인들이 폐쇄적인 전제주의 정치 제도 하에서 비슷한 환경의 영향(문화 대혁명과 사인방의 극좌 사조, 문화전제주의, 경제적 낙후, 생활의 빈곤 등등) 아래 있었고, 기본적으로 동질의 사회 구조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분명한 계층 분화나 이익 대립의 현상이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생존 조건의 동질성은 역행 심리의 동질성을 만들어 냈으며 이것이 바로 80년대 지식인들의 자유 계몽 사조의 심리적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사상 해방에 대한 갈구는 20세기 초의 5.4 운동의 기본 정신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 4대 원칙은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견지하고, 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하고, 인민민주독재를 견지하는 것으로 이것을 기본으로 생각해 왔다. 중국은 1949년부터 과거와는 달리 중앙집권적 계획경제하의 사회주의 발전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전형적인 중앙계획경제체제는 실정이다.경제체제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자본주의경제체제와 사회주의경제체제, 시장 경제적 사회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경제활동의 의사결정구조, 경제활동정보의 이용, 생산요소의 소유상태, 인센티브제도의 차이에 기준을 두고 있다. 각각의 특성은 매우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 발전의 단계도 역시 많은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현재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는 시장을 배척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으로부터 탈피, 시장이 바로 사회적 자원을 안배하는 기본메카니 즘이며, 정부는 국민경제의 총량 및 구조와 생산력 안배 등에 대한 거시적 조정 통제 기능만을 하는데 그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정부기능의 획기적인 전환과 관리체계의 개혁이 선결조건임을 강조 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기능과 경제관리조정체계를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체제 및 계획적 상품 경제체제로부터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요구에 부합되도록 전환시키지 않고는 건전한 시장이나 기업을 육성 발전시킬 수 없고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건립 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4대 보고와 14대3중전회에서 정부기능의 신속한 전환을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 건립의 중요 요소의 하나라고 강조한 소이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현재 중국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거시조정관리체계를 시장체제에 초점을 맞 추어 우선적으로 정부기능의 전환, 기구의 개혁을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참고자료 HYPERLINK "http://blog.naver.com/goldencsh?Redirect=Log&logNo=90004016000" http://blog.naver.com/goldencsh?Redirect=Log&logNo=90004016000 HYPERLINK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8&eid=e/moz7sV0PobMDWD+PVCEFi0xXMJMnWZ&qb=t7m00cHWwMc" http://kin.nave 1
동아시아 경제의 변화FTA체결 다음은 중국이다.중국학과목 차서론본론1.동아시아 자유무역의 필요성2. 협력 필요성의 증대(1) 안행형 발전의 붕괴와 대안(2) 중국시장의 성장과 효과적 활용3. 중국과의 FTA결론참고자료서론현대 사회는 글로벌 시대이다. 한 국가 내에서만 경제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지금 지역 경제 협력 또는 지역주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은 EU라는 단일 경제체제를 만들어 지금의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미국과 아메리카 국가들은 NAFTA를 만들어 세계속에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제 2차 세계 대전이후 GATT의 무차별원칙과 최혜국대우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범세계적인 자유무역주의가 회원국간의 이해 대립으로 크게 흔들리면서 동아시아 에서도 자유 무역을 실현하려는 지역주의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80년대 이후 자유무역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많은 거대 경제체계들이 생겨나는 흐름에서 우리는 얼마 전 한미FTA가 긴 협의 끝에 체결 되었다. 은 세계의 경제지역협정 건수들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많은 경제지역협정이 생겨나는 것임을 알수 있다.우리는 한미 FTA를 시작으로 앞으로 많은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 할 것이다. 한미 FTA 체결후 일본은 중단 했었던 한일 FTA를 다시 협상할 뜻이 있음을 밝혀 왔으며 중국은 원자바오 총리의 입을 빌려 한국과의 FTA를 적극 희망한다고 말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국과의 FTA이후 앞으로 먼저 어떤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될지 우리나라의 다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GATT/WTO에 통보된 지역무역협정1948-541955-591960-641965-691970-741975-791980-841985-891990-941995-9*************352자료: WTO(1998), CRTA Internal Document본론1.동아시아 자유무역의 필요성지난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동아시아는 금융부문의 합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며 무역무분의 협력 논의는 통합유럽과 미국 주도의 FTA 등 지역주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장기간 점진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특히 미국에서의 IT붐 진정,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어 동아시아 경제는 비아시아 지역에 대한 심각한 수출 정체에 시달리게 되었고, 2001년 중국의 WTO가입과 함께, 2002년 이후로 동아시아 국가의 대 중국 수출증가는 동아시아 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되었다. 대중국 수출의 증대는 일본의 경기를 되살리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으며, 현재 동아시아는 중국의 생산력과 시장, 일본의 기술과 자본이 주도하는 시기로 접어들며 경제통합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EU,미주지역에 대응하는 경제 지역의 필요성이 증대 되고 있다. 동아시아지역내 자유무역협정 추진 동향(2004년말 현재)협정 대상국진행 상황한국-일본정부간 협상중(2006년 타결 목표)한국-태국양국간 FTA 효과 공동연구 완료한국-싱가포르협상타결(2004년 11월)일본-싱가포르2002년 1월 13일 FTA 체결일본-말레이시아협상중(2004년 11월6차 협상 진행)일본-필리핀협상타결(2004년 11월)일본-태국협상중(2004년 12월5차 협상진행)일본-아세안FTA창설을 위한 공동선언문 서면(2005년4월1차 협상진행)중국-홍콩발효(2004년 1월)중국-아세안정부간 공식적인 논의 진행 중한국-중국-일본한?중?일 FTA 설치 공총검토제안(2002년11월), 공동연구중자료: “아시아 경제, 공존의 모색” 삼성 경제 연구소2. 협력 필요성의 증대(1) 안행형 발전의 붕괴와 대안90년대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산업 발전 패턴을 설명했던 안행형) 구조는 후발국의 성장을 이끌며 동아시아의 순차적 발전을 지탱했으나,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이 체제를 결정적으로 붕괴시켰다.세계 무역에서 지역별 비중 추이(수출 기준)동아시아일본NIEs동남아4중국198013.46.43.82.30.9199020.48.37.82.51.8199525.68.610.43.72.9200025.77410.34.13.9200325.46.39.53.75.9(단위:%)(NIEs =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 동남아4 =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WTO. 세계 무역통계1995년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세계시장 수출비중은 최고조에 이르지만, NIEs, ASEAN 국가들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 급증과 직접적인 대체관계가 작용한 결과라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발생한 ‘기러기 대열 후미의 혼잡’)은 대열의 선두이자 투자, 기술이전을 통해 안행형 동아시아 발전의 기관차가 되어 온 일본의 혼돈과 함께, 안행형 구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2) 중국시장의 성장과 효과적 활용199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방과 개혁의 효과는 수출보다도 빠른 수입의 증가를 불러왔다. 2003년 기준으로 중국이 기록한 4131억 달러의 수입은 세계2위 경제국 일본보다 많은 양이며, 미국, 독일에 이은 제3의 수입량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부터 이 기간의 년 평균 수입 증가율은 24.1%에 이르는데,) 이와 같은 중국의 시장역할 증대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동아시아 국가의 대중국 수출 증가율 추이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태국인니필리핀총 증가율4.4-0.93.51.57.15.35.24.2대 중국28.610.611.023.561.326.723.697.7(2000-2003) (단위 : %)IMF, DOT(한국 무역협회 KOTIS 통계데이터), 대만의 경우 대만 재경부 동아시아 국가의 수출에 대한 중국의 기여율일본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태국인니필리핀31.545.243.470.817.227.318.515.347.12003년. (단위 : %)IMF, DOT(한국 무역협회 KOTIS 통계데이터), 대만의 경우 대만 재경부위의 표에서 보듯이 중국이 경쟁자일 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체임을 우리나라뿐만 아시아 각국에서 증명하고 있으며, 그 관계를 유지, 발전하기 위한 협력의 증대는 필수적이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3. 중국과의 FTA중국은 지금 우리나라와 가장 많은 무역 규모를 가지고 있는 무역국이자 가장 많은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이다. 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무역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더 이상 무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가 된것이다. 우리는 이런 중국과의 FTA는 오래 전부터 추진중에 있다. 는 중국과의 FTA진행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3월 산,관,학 공동 연구가 순조롭게 끝나면 아마도 내년 2008년에는 FT가 본격적으로 협상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FTA는 미국과의 FTA보다 많은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표 은 한국과 중국의 FTA체결후 한국의 국내 총생산과 수출확대 효과 고용창출과 우리나라에 가장 파급력이 있을 농업 부문에 대해 조사한 표이다. 중국과의 FTA체결 후 국내 총생산,수출 고용등 모든면에서 미국과의 FTA보다 많은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농수산물은 중국의 값싼 농수산물에 많은 타격을 입는 것으로 보여진다.한,중 수출,입 동향 단위:백만달러( )은 전체교역량중 상대국이차지하는비율구분한국의 대중교역중국의 대한교역수출69.459(21.3%)44.558(4.6%)수입48.557(15.6%)89.818(11.3%)5대 수출품목반도체,석유제품,컴퓨터,무선통신기기,합성수지송신.수신기제품,전자직접회로,컴퓨터 부품,알루미늄자료:국제무역연구원.2006년기준한,중 FTA 추진 일정2002년 중국 한,중 FTA 공동연구 제의국무원 발전연구 중심내에 태스크포스팀 설치2004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2년간의 민간 공동 연구 합의2005년 한.중 FTA 민간공동 연구 개시2006년11월 민간 공동연구 종료,1년간의 산,관,학 공동연구 합의2007년 3월 1차 산,관,학 공동연구회의 개최2008 한.중 FTA 본격협상 개시(정망)자료: 외교 안보 연구원한중.FTA가 체벽 될 경우 7~10년 후 경제적 파급 효과시나리오국내 총생산수출확대효과고 창출농수산물 생산농업.제조업관세완전 철폐3.13% 상승5.43%상승+94.924명14.7%하락농업,제조업관세철폐되거 서비스산업무역장벽50%감축3.17% 상승5.48%상승+96.836명14.7%하락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일반균형 모형을 바탕으로 추산.생산성 효과는 제외이렇게 농수산 방면에서는 우리나라 여기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런 부분만 해결한다면 곧 협상이 시작될 것 같으며 중국은 빠른 협상을 위해 농수산업 부분은 유보할수 있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이외에 일본과도 FTA를 체결할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은 지금 역사적 문제로 많은 대립적인 입장에 노여있다. 그런 이유에서봐도 중국은 우리나라와의 FTA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도 우리나라 역시 적절히 대처 해야 할 것이다.미국과의 FTA체결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그 중에서 중국과 일본은 우리라와 미국과의 FTA 체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와 FTA 체결을 원한다고 말해오고 있다. 일본은 중단되었던 FTA협상을 다시 시작하자고 전해 오고 있으며 중국은 정부 관료 대부분이 하루빨리 한국과의 FTA를 체결하자고 전해 오고 있으며 일본보다 적극적인 입장이다. 우리는 일본보다는 중국과의 FTA가 경제 적으로 미국과의 FTA보다 많은 경제적 이윤과 파장을 몰로 올것으로 기대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다음 FTA는 중국으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3. 결론동아시아가 겪은 97년의 외환위기와 지속적인 경기침체는 같은 시기 유럽연합의 성공적 출범과 대조되며, 동아시아 각국에게 있어 국내 개별적 문제를 포괄하는 지역적 현상 대응의 필요성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한미FTA 체결은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많은 인식을 심어준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선두주자는 아니지만 중요한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다. 한미FTA는 일본에게는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을 준 것으로 생각할것이며. 중국은 한국이 경제 규모가 커져는 것을 지켜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것이다.
한미 FTA 득과 실 20000706 송명근FTA무엇이 문제인가?FTA란?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협정한미FTA 시작 및 경과2005년 쌀 관세화협상 통과 된 이후 부시2기 시기부터 FTA 논의 시작하여 2006년 2월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에서 한미 FTA 협상 공식출범을 선언했다. 협상일정은 2006년 5월 5일 공식협상에 돌입하고, 2007년 3월 협상타결, 2007년 6월 30일까지 협상 서명 및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FTA 긍정적효과에 따른 찬성이유경제내의 생산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비교우위산업으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생산측면에서 볼 때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증가하고, 소비측면에서는 보다 값싼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되어 후생수준이 증가하게 된다.찬성이유 : 세계최대 시장의 안정적 확보대외 신임도 및 외국인 투자 확대국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서비스 산업의 발전계기통상 마찰 완화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전력 및 FTA 허브미국과의 외교 안보적 강화 단계FTA 부정적효과에 따른 반대이유FTA 체결 자체가 체약국간 무역 자유화를 의미하므로 경쟁력이 취약한 기존 국생산업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반대이유 : FTA 피해 그룹의 보상 미흡사회경제적 충격심화,양극화 심화사회적 합의 과정이 생략된 무리한추진한국 통산 시스템의 부족국제 협상력의 열세한미FTA 주요쟁점한·미 FTA는 농축산품, 자동차, 전자제품 등 상품 분야뿐 아니라 의료, 교육, 법률 등 서비스 분야와 외국인 투자 등 투자 분야에서도 미국과 한국 사이의 벽을 허무는 전방위적 협정으로 한국의 경우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 스크린쿼터와 관련한 영화제작자들의 반발, 개성공단 상품의 한국 원산지 인정 여부 등이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며,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시장장벽에 대한 미국자동차 업계의 불만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한미FTA의 한국의 가장 큰 효과와 가장 큰 악영FTA 체결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수출산업이다. 한미 간에 FTA가 체결될 경우, 4년 이후 미국의 대한 수출이 54%, 한국의 대미수출은 21%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가장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의 농업부문이다. 많게는 8조원에서 적게는 1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