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구를 통한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갈등 해소 방안 연구목 차Ⅰ. 서 론11. 연구의 목적12. 연구 범위와 방법 1Ⅱ. 이론적 배경21. 지방의회의 권한과 기능22. 집행기관의 권한과 기능 33.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갈등 유형41) 제도적 갈등42) 행태적 갈등53) 운영적 갈등64) 기능·규범적 갈등75) 환경적 갈등7Ⅲ. 갈등사례 분석 - 경상북도 도청 이전 문제를 중심으로81. 개 요82. 사안별 진행 경과93. 주요 갈등 요소 도출104. 갈등 유형별 원인 분석11Ⅳ. 갈등사례 방안 제안121. 지역 정보 통합 센터122.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개혁133. 시민 단체의 감시 기능 확대154. 운영 형태 및 절차의 개선165. 지방의회 및 집행 기관의 조직 개혁176. 권한 재분배 및 관련 제도의 개선17Ⅴ. 결 론 18참고문헌20Ⅰ. 서론1. 연구의 목적주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지방자치는 궁극적으로 주민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러한 지방자치의 기구는 크게 입법기관과 집행기관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상 이 두 개의 기관은 각기 독립된 기관으로서 서로를 견제함으로 인해 권력분립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견제와 균형을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한다. 따라서 이 두 기관은 근본적으로 갈등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집행기관의 단체장은 지방의회의 의결에 대한 제의 요구 및 제소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예산 상 집행 불가능한 의결이나 삭감에 대한 제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결처분권과 동의권, 의견 진술권 역시 가지고 있다.반면에 지방의회는 의결권을 통한 의결과정에서의 견제, 행정사무의 감사, 조사를 통한 통제, 주민청원의 심사 및 처리를 통한 견제를 지방자치법에 의해서 보장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기관은 지방자치의 중심축이자 동시에 서로를 견제하는 독립된 기구로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양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특히 우리지방자치 제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집행기관과 입법기관을 중재해줄 중재기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또는 합의제 행정기관을 설치할 수 있는 소속 행정기관의 설치권을 가진다.자치단체장은 관할 하급 행정기관과 자치단체를 지휘?감독하는 권한도 가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로부터 위임된 사무에 관하여 시?도에 있어서는 주무부 장관의 감독을 받으며, 시?군 및 자치구에 있어서는 1차는 시?도지사의 감독을 받고 2차는 주무부 장관의 감독을 받는다. 단, 시?도가 시?군 및 자치구에 위임한 사무는 시?도의 지휘 및 감독만을 받는다.또한 자치단체장은 당해 자치단체의 고유사무, 그리고 법령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위임된 사무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사무의 관리?집행권을 가진다.지방자치단체장은 인사권도 가진다. 자치단체장은 소속 직원을 지휘 감독하고 법령과 조례?규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임면, 교육훈련, 복무, 징계 등에 관한 사항을 처리한다. 소속직원이란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기관(부지사, 부시장, 부군수, 부구청장)과 지방공무원법에 규정된 일체의 공무원을 지칭한다. 따라서 독자적 집행권을 가진 교육위원회 등의 보조직원 및 지방의회 사무국 직원은 포함되지 않는다.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의회에 대하여 임시회의 소집요구권, 재의요구권, 선결처분권, 재의결에 대한 제소권 등을 갖는다. 즉 의회에 관한 각종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지방자치단체장은 그에게 위임된 범위 내에서 그에 상응한 권한과 의무를 가진 국가의 지방행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자치 단체장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해당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책임자이다. 지역이란 한 자치단체의 관할 구역인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국가의 관할 구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는 그 자치단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의 건강한 활력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적용하게 되고, 지역에서의 불평·불만의 소리는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치단체장이 자기 관할구역을 훌륭하게 관리해 나간다는 것은 그 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국가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3.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집행기관으로부터 제공되는 요인을 살펴보면 공무원의 권위주의 의식 및 보수적인 태도, 비민주성과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 부족, 상급기관 및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심, 의원의 전문지식 및 도덕성에 대한 불신,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적 태도와 자기방어적 태도, 비밀주의와 비협조적 태도 등을 들 수 있다.4) 기능?규범적 갈등기능?규범적 갈등은 사회와 주민의 요구와 지지에 의한 기관운영 및 활동에 있어서 감시 및 통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이다.조례의 제정 및 개정이나 예산의 심의, 승인 그리고 행정사무감사나 조사를 실시하거나 또는 집행부를 대상으로 정책질의나 답변을 요구할 때에 발생하고 의회사무처의 운영이나 지역개발정책에 관한 추진과정에서 일어나기도 하며 집행기관이 의회에 대하여 재의 요구 시나 선결처분 승인요구 등이 있을 때도 발생한다.보다 구체적으로 기능·규범적 측면에서의 갈등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이용 가능한 정보의 불균형이다. 집행기관의 공무원들은 지역개발 정책 결정과 관련해서 많은 전문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에,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며 이로 인해서 갈등이 야기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둘째, 지방의회 운영의 미숙함을 들 수 있는데, 지방의회 의원들의 의원활동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지방의회 운영이 미숙한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셋째, 과도한 통제의 예가 있는데, 지방의회의 집행기관에 대한 통제는 집행기관이 의결한 정책을 바로 집행하게 하고 모든 관련기능이 올바르게 움직이도록 감시하는데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통제와 상호 비협조적 분위기의 조성으로 인하여 갈등이 유발되기도 한다.넷째, 의사 전달이 미흡한 경우가 있는데, 의회와 집행기관과의 상호의존관계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의사 전달이 담보되어야 한다.5) 환경적 갈등(정치, 행정적 갈등)환경적 갈등은 지역주민의 참여나 중앙정부와 정당 등의 개입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말하며 지역주민의 행정참여정도나 중앙정부의 개 관련 실국장 및 과?계장 등 22명으로 도청이전추진기획단을 구성하였다.그리하여 94년 3월 도청이전후보지 선정을 (주)동명기술공단에 용역기간 94년 4월부터 95년 2월까지로 하여 연구용역을 의뢰하였다. 또한 93년 4월부터 6월까지 총 5회에 걸쳐 도 전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지역별 순회간담회를 개최하여 도청이전 입지기준 설정에 관한 합리적 방안 등의 도민의견을 수렴하였으며, 93년 5월부터 7월까지 경남도와 경기도의 도청이전사례에 대한 추진경과, 재원조달, 준비과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94년 10월에는 도민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여 신도청소재지의 기능, 규모, 형태와 도청이전 입지기준 설정 및 평가방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고, 12월에는 도청이전 예정지에 대한 부동산 투기방지대책을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를 개최하고 95년 2월에는 연구용역 결과 2차 후보지역 6개 지역에 토지거래 규제지역을 지정?공고하였다.그러나 의회 도청이전특별위원회 내에서도 연구용역결과보고서에서 최종후보지로 3지역을 결정하였으나 용역결과보고서 불신 결의안이 상정되어 부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도청이전후보지로 보고된 3개 지역과 도민화합차원에서 2차후보지까지 포함한 6개 지역 모두를 후보지로 하여 집행부에 통보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최종 결정권을 집행부로 넘겼다.3. 주요 갈등 요소 도출이러한 추진과정을 살펴볼 때 의회 내 의원들 간에도 도청이전이 확정되면 확정지 이외 지역 도의원들이 주민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본인들의 선거 운동 시 도청이전에 대한 공약사항의 미이행 등으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내부갈등이 심각하였으며, 의회 내에서 후보지 단일화가 사실상 불가능하여 그동안의 연구용역 및 특별위원회 운영 등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어 도민들의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이의 정치적인 해결책으로 후보지 6개 지역 모두를 집행부에 이송하여 결정권을 도지사에게 미루는 형태로 나타났다.사실상 도청이전 추진과정에서 안동시, 포항시, 구미시안이상의 사례연구를 살펴본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의회와 집행부의 갈등에 있어서의 원인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는 갈등이 의사소통의 불일치와 정보의 미제공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의회와 집행부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동일한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를 일컫는 것이다.둘째,갈등의 공통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경북도청이전 문제와 같이 정치적 견해 차이 혹은 중앙당과의 관계에 의한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셋째, 갈등의 해결의 문제에서 가장 큰 것이 중재를 할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러한 갈등이 법원으로 까지 이송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에 가장 시급한 것이 중재할 주체를 마련하는 것이다.이에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1. 지역 정보통합 센터지역정보통합센터 추진 계획은 각 자치단체에 산재한 기존 정보자원과 차세대 지역정보서비스 제공을 위한 신규 정보자원을 통합하여 경제성, 효율성, 안전성 높은 민간 데이터센터 수준의 공통전산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기존 지자체 전산실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센터를 설치하되, 주민의 서비스 요구와 기술발전 속도, 자치단체별 재정여건 등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지역의 정보시스템을 통합?연계하는 지역정보통합센터를 구축 하는 작업이 요구된다.이러한 지역정보통합센터를 지역 현안 관련 문제에 대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숨김 없이 제공하게 될 것이며, 통해서 바른 지역여론을 형성하게 함은 물론, 여론을 바탕으로 한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정책 결정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2.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개혁실질적으로 지방자치 부활의 배경은 지방자치실시의 원론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지역 할거주의와 거물 정치인들 간의 권력 분점이 그 정치적 배경으로 적지 않게 깔려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은 시작부터 중앙정치의 예속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중.
Ⅰ. 시작하는 글교육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목적과 방식을 세워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교사는 학생에 있어 하나의 모델로서 조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교사상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실천적 모습이 조망되어 왔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에 대한 논의는 요청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 교육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교육의 장면에서 어떤 한 점들이 중시되어야 할 것인가?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경구가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교육에 있어서 교사 역할의 중요성을 의미하면서도, 어떤 교사상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가 수행하는 역할은 철학적 관심에서부터 구체적인 실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방대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점은 우리가 어떤 교사상을 그리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이러한 관심에서, 이 글은 “전문가로서 교사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전문가로서 교사상을 그려보고자 하는 관심은, 교사의 구체적 일상을 담아내지는 못할지라도, 오늘날 교사들의 집단적 공공적 관심에서부터 개인적 일상에 이르기까지, 교사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이다.Ⅱ 교사의 가르치는 일과 전문성(1) 교사의 가르치는 일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우리는 교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사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가지 가르침이 있다.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경사(經師)'라 하고 '경사'는 지식의 전수자로 일컬어진다. 즉 '글을 가르치는 일'은 지식의 전달을 의미한다. 다음, '인간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인사(人師)'라 하는데 '인사'는 참된 인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즉 '인간을 가르치는 일'은 참된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의미한다.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은 완전히 별개의 것은 아니다. '인간을 가르이다.교원이 일에 대한 보수를 봉사보다 우선 시킬 때 사회에서는 교원을 비난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원이 경제적 대우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경제적 보수와 봉사 중 어느 편에 비중을 둘 것인가에 대한 상대적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교원이 전문직이라면 생활수단으로서 직업을 생각하지 말고 교직을 봉사직 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3) 교원의 자율성과 책임교직이 전문직이라면 교직은 자율적인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한명희(1980)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자율성의 개념을 정의하자면 외부적인 교인이나 권위에 의해 지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의 행위를 결정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교사가 교직 수행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교원은 어떤 조직의 기대에 무조건 종속해서는 아니 되며 폭넓은 자유와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교육이 인간 형성이라는 과제를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율성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원은 학생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하므로 획일적인 지시나 명령을 지양하고, 사태나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자율적으로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이것은 교원이 교재를 연구하고 교수할 자유, 정치적, 종교적으로 중립적 위치. 자신의 교육철학에 의한 교육목표, 교육과정, 학급경영에 있어 독창적인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교직에서 기본이 되어야 할 이러한 자율권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이상의 논의에서 보면 교직에서의 자율권은 최대한 확보되어야 하며 강조되어야 교사가 창의적으로 학생지도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율에 따른 책임 문제이다. 또한 김종철(1989)은 자율이라는 개념의 3가지 하위 요인을 지적하고 있다. 자율은 (1) 의 단순한 전달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접촉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며, 교사가 학생들의 동일시 대상이 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 경우 교사의 권위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 할 대 만이 태도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요즘 같이 인성교육이 강조될 때일수록 교원의 권위는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사의 권위는 학교는 다른 사회 체제와는 달라서 교사라는 집단과 학생 집단간에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특수한 위계성이 있다. 이와 같은 위계차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데 우선 신체적인 차이가 있으며, 지적인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 차가 있고, 도덕적 행동이나 표준에 있어서 차가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될 수 있게되고, 교권의 문제는 이와 같은 위계성에서 발생한다. 교사와 학생이 신체적, 지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의 차가 큰 초등학교일수록 교권은 강하고 상급학교에 이르면 점차로 약화되는 것을 보아도 교권이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차에서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성은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학부모와 지역사회에도 전달된다. 즉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성의 차가 크면 클수록 교권은 확립되고 교사는 학부와 지역 사회인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교권의 실추를 개탄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적 격차가 적어 졌음을 뜻한다. 특히 신체적 측면의 격차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나 다른 측면, 이를테면 지적, 도덕적 측면에 있어서는 그 격차가 줄어든 것을 부인 할 수 없다.4) 교직의 직업 윤리교직은 다른 어느 직업 종사자 보다 높은 직업 윤리와 도덕 수준을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며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가르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면에서 본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교총에서는 교사의 윤리에 관련된 강령을 제정 발표한바 있다. 리고 교직자가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교육의 장래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교원의 장래 또한 암울해 질 것이다. 요즘 교육개혁의 목소리가 높으며 교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제도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전문성 제고를 위한 자기연찬 의식이 앞서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교직자는 무엇인가 다른 가치관과 생활 자세로 교직의 권위를 지켜야 할 것이다. 교사란 사람을 재생산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3)교사의 전문성교사의 전문성이란 특정 분야에 대한 연구와 실천으로 깊이 있는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출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그 교육을 보다 잘 해내기 위해 교사가 어떻게 해야 하며, 또 무엇을 채우고 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교사의 전문성’이 이야기되어야 한다.교사의 전문성 또는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란1)교사의 전문성은 교육의 전문성.2)자기 교과 교수법에 대한 전문성3)학생(계층)에 대한 전문가.위와 같은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여러 영역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숙달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인문계 학생에 대한 이해보다는 고교학생 전체에 대한 이해, 학생문화 보다는 문화 일반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4)교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의 성격1) 단순한 기능 인력(전문가)으로 보는 관점에서현재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교육내용에 대한 전문성은 서비스 상품으로서 평가되고 있으며 교사는 단순 기능 인력으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이른바 5.31 교육개혁 이후 수요자 중심 교육학이 학교 현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수요자 중심 교육학은 그 동안 교육수요자로서 묻혀졌던 학부모의 대리권이 '돈을 낸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것으로 격상되고, 기업의 권리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라 현재 우리 나라는 교육정책의 화두가 과중한 '사교육비 해소(절감)'에 놓여 있고, 이에 따라 교육관료와 학부모의 연대을 강조한다.이러한 일반적이며 공통적인 조건을 rkwcnadmfhTJ 상위의 사회 계층으로써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앞에서 구분한 바와 같이 전문직이라 할 수 있다.(6) 교사의 책무성교사의 전문성을 앞에서와 같이 말할 때, 여기에는 반드시 책무성이라는 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책무성이란 직책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책무성의 요소에는① 교사로서의 전문성 확보의 책무성② 학생의 학습 및 생활 지도의 책무성③ 교직 발전을 위한 연구 기여의 책무성④ 교사로서의 인격적 품위 유지의 책무성이런 면에서 교사들의 책무성을 말할 때에는 두 관점에서 살필 수 있다. 그 하나는 바로 교육자로서 교육에 이바지할 때의 책무성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로서 사회적 역할을 할 때의 책무성이다.1) 교육적 책무성여러 가지 책무성 중 가장 중시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문성의 확보의 책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 전문성은 시대와 교육 목적에 따라 달리지는 것인데, 이렇게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들은 꾸준히 연구하고 연수할 책무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무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책무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교사 개인에게 요인이 있을 수도 있고, 국가의 교육 정책에 요인이 있을 수 도 있다. 비록 교육 정책상의 혼란이 있고,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비전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교사들은 전문성 확보에 다른 책무성, 학생들의 학습 및 생활지도에 따른 책무성, 교사로서의 품위 유지에 따른 책무성을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교사 개인들이 책무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여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교육은 언제나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2)사회적 책무성교사는 학교 지향적 속성이 강하면서 동시에 사회 지향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 우선, 학교 지향적 속성은 위에서 말한 교육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사회 지향적 속성은다.
I. 나치정권의 등장과정1. 불안한 공화국*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황제의 추방* 바이마르 공화국의 상징성: 베를린의 호전성, 문화와 평화의 도시 바이마르*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불만: 일방적인 전쟁책임, 과다한 배상금, 경제적 손실, 영토 의 상실, 주권 침해* 권력기반이 약한 사회민주당 정부: 좌파와 우파로부터 협공, 중도파의 허약* 공산주의 혁명의 위협: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군대에 의한 진압, 공산주의자들의 계속된 혁명 시도2. 우익세력의 도전* 군주주의자,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 군국주의자들의 건재함* 우익의 공격: 1차 대전의 패배를 불인정, 공화국의 존재를 부정* 우익의 적: 자유주의자, 평화주의자, 공산주의자, 유대인* 군부의 쿠데타 시도(1920): 공화국 정부의 도피, 노동조합이 공화국 구출* 히틀러 나치당의 쿠데타 시도(1922): 히틀러의 감옥 생활, ‘나의투쟁’ 집필3. 경제위기와 급진파의 득세* 전후 경제 상황: 막대한 국가채무와 극심한 인플레이션* 배상금 지불의 부담: 프랑스군의 루르점령* 중산계급의 와해: 정부에 대한 불만 고조* 경제 대공황(1929년)의 결과: 대중의 사상적 과격화 야기, 극좌파인 공산당과 극 우파인 나치당의 세력 확산* 경제계의 나치 후원 이유: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군수산업에 대한 욕심4. 나치당의 집권* 총리가 된 히틀러(1933): 합법적인 선거에서의 승리, 나치당의 제1당으로 부상* 나치당의 일당 독재 체제의 구축: 공산주의자 체포와 탄압, 정당 해산, 국민투표 를 통해 정당성 인정* 군부와의 협조: 군부의 요구에 돌격대 숙청, 권력유지와 전쟁준비에 절대적 필요II. 나치의 무장조직1. 돌격대(Sturmabteilung, SA)* 1921년 나치스 대중 집회의 경호원 모임이 조직화된 단체, 예비역 군인들로 구성* 반나치스 세력에 대한 무력행사와 나치즘을 선전하는 중심체 역할* 나치당 대회 보호, 나치스 대회에서 행진, 정적을 공격하는 임무* 1932년(대공황으로 인한 실업자들의 대거 입단)에는 40만 명, 1933년(히틀러가 권 력을 장악한 해)에는 200만 명의 규모, 독일 정규군의 20배에 해당* 히틀러는 1934년 친위대(SS)를 동원해 돌격대 고위 간부 수백 명을 처형* 숙청 후 친위대에게 정치적 지위를 빼앗김2. 친위대(Schutzstaffel, SS)* 1925년 히틀러의 소규모 개인 경호대로 창설* 순수 아리아인 혈통만이 대원으로 모집* 히틀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 초기에는 300명 정도였으나, 1933년에는 5만 명 정도의 규모, 1939년에는 25만 명* 독일의 전 경찰력을 장악하고 조직을 통합 정리* 일반 SS: 경찰과 인종 업무를 담당, 정보의 수집과 첩보활동* 무장 SS: 정규군보다 강도 높고 철저한 훈련, 최신 무기와 전투장비로 무장, 상 당한 특권과 사회적 지위 보장, 나치스 단체 가운데 가장 폭력적* 집단강제수용소의 관리, 정규군과 함께 전투부대로 활약* 히틀러 인종말살정책의 수행 집단3. 게슈타포(Gestapo, 비밀국가경찰의 약칭)* 1933년 창설, 친위대와 더불어 체제강화를 위한 국가권력기구* 국가위험에 대한 수사와 단속*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탄압, 자유주의자와 교회의 감시, 유대인의 추방과 학 살, 지식인, 노동조합운동가 등의 테러행위*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임무를 수행III. 나치 체제의 성격1. 반합리주의* 1차 대전 후의 비관적 분위기의 영향: 이성에 대한 회의, 감정에 호소, 인간의 비 합리성과 부조리성을 강조* 반민주주의적 성향: ‘초인’에 의한 통치(독재자의 옹호)* 상대주의적 관념: 절대적인 진리의 부정2. 극단적 민족주의와 국가 지상주의* 전체주의: 개인은 민족의 한 구성원, 개인과 민족은 분리될 수 없는 유기체* 민족공동체 의식: 민족에 대한 충성심과 의무감의 강조,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 국가의 절대성: 국가는 민족문화와 정신을 실현하는 도구* 군국주의: 전쟁을 미화, 질서와 복종의 정신, 군대문화3. 영도자 통치원리* 지도자의 역할: 민중의 의사를 파악하고 대표하며 실천* 일인 독재 정치: ‘총통’의 절대적 권력* 위계적인 통치조직: 나치스의 무장조직은 지도자의 명령을 수행4.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 국민생활의 안정(대공황으로 인한 실업자 구제)과 전쟁준비를 목표* 공업의 발전을 위해 소련의 계획경제를 도입* 2차에 걸친 4개년 계획: 독일군의 재무장을 위한 군수산업의 육성* 자급자족 경제의 건설: 기술 개발, 가솔린과 인조고무와 같은 합성제품* 실업자 문제 해결: ‘아우토반’의 건설, 재무장 사업, 공공사업* 노동자에 대한 통제: 노동자의 파업 금지, 정부가 노동자의 직업을 지정, 국민관 광제도의 도입(‘기쁨을 통한 힘’ 단체의 조직)* 기업에 대한 통제: 고용주의 공장폐쇄 금지, 기업들의 사업 확장 감시, 수출과 수 입의 조정, 물가 조정, 가격 결정, 원자재의 배분
I.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1.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 유럽에서 가장 뒤진 정치, 경제제도: 봉건적 농노제의 강화, 억압적인 전제정치* 니콜라이 1세: 데카브리스트(12월 당)의 난 (청년 장교 중심의 자유주의적 입헌주 의 운동)의 진압(1825) - 보수적 반동 정치 강화, 남하 정책의 계승 - 그리스정 교도 보호를 구실로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 크림 전쟁의 패배(1854년)* 알렉산드르 2세: 농노 해방령(1861) - 크림전쟁의 패전 후 근대화의 필요성 절감,효과는 미흡, 지주들의 저항2. 지식인(인텔리겐치아)의 분열*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지식인들의 정치, 사회적 참여* 서구주의자들: 표트르 대제가 시도했던 서구화와 근대화의 강행* 슬라브주의자들: 도시적, 부르주아적, 물질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서유럽식의 개혁 비판, 토착적이고 전통주이적인 방안 제시, 농촌공동체(mir)의 정신을 실현3. 지식인의 과격화*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의 사회 개혁 운동: ‘브나로드(인민 속으로)’, 농촌 계몽을 통한 철저한 사회 개혁 시도, 농촌의 인습적인 생활방식의 개선* 인민주의운동의 실패: 지식인의 현실성 결여로 농민들과 충돌* 허무주의(니힐리즘)?무정부주의의 성행: 폭력과 암살로 정부에 대항* 알렉산드르 2세 암살(1881년)의 영향: 러시아 절대 왕정의 노골적 반동화, 전제 정치의 강화, 지식인에 대한 탄압4. 마르크스 혁명사상의 도입* 민중에 대해 실망한 지식인들은 혁명적인 사회개혁 방법을 주장* 1898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회민주당 창설* 혁명의 주체는 도시의 노동계급, 산업화의 급진전으로 노동운동의 발생II. 러시아 혁명1. 1905년 혁명과 개혁의 좌절* 개혁 세력의 증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사회민주당, 인민주의자들의 사회혁 명당(1895년 창설), 자유주의 개혁을 주장하는 입헌민주당(1903년 창설)* 피의 일요일 사건(1905): 러?일 전쟁에서 전세 불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민중 의 불만 폭발, 군대에 의한 무자비한 진압, 전국적인 파업과 민중들의 저항* 자유주의적 개혁: 최초의 의회인 두마 설립, 입헌군주정 채택* 스톨리핀의 농업개혁: 농민의 법적지위 향상, 자영농민의 육성* 개혁의 좌절: 지주층과 자본가를 대변한 의회, 스톨리핀의 암살2. 1917년의 2월 혁명* 배경: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대의 계속되는 패배, 전쟁의 장기화로 물자 부족과 물가 앙등 초래, 차르의 계속되는 반동 정치* 경과: 페트로그라드(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식 개명) 노동자의 파업과 폭동, 군대 의 진압 거부, 노동자?병사 대표의 협의회인 소비에트 결성* 로마노프왕조 붕괴: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자유주의적 임시정부의 수립(온건파인 입헌민주당이 주축)* 임시정부의 어려움: 농민들의 토지 분배 요구, 민중의 전쟁 종결 압박* 소비에트 조직의 확산: 공장의 접수, 자율적인 공동체 생활3. 공산주의자들의 전략* 임시정부 통치력의 한계: 연합국과의 조약 때문에 전쟁의 지속, 개혁에 대한 소 극적인 태도, 보수 세력을 대변* 볼셰비키의 정치적 공세: 토지개혁과 전쟁 반대를 선전, 임시정부의 타도를 목적* 레닌의 귀국과 4월 테제: 소비에트 공화국의 건설, 사유재산의 몰수, 토지의 국유 화, 전쟁의 즉각적인 중지* 민중들의 지지 유도4. 1917년의 10월 혁명* 배경: 계속되는 폭동, 군부 쿠데타 시도, 임시정부의 권위 상실* 10월 혁명: 소수의 볼셰비키 당원들이 정부의 주요 건물 장악, 임시정부의 저항 포기, 무혈 혁명* 볼셰비키의 선거 패배: 의회 구성을 위한 보통선거 실시, 총 투표수의 1/4 획득, 사회혁명당의 압도적인 승리* 볼셰비키의 일당독재: 제헌의회의 강제 해산, 공산당 외 모든 정당 금지* 전시 공산주의 체제 돌입: 산업의 국유화, 국가가 생산과 분배를 관리, 비밀경찰 의 반혁명세력 탄압, 연합국으로부터 탈퇴하여 독일과 단독강화 조약 체결III. 내전과 신경제정책1. 백군과 적군간의 내전(1918-1921)* 볼셰비키의 공산화에 반발: 혁명파와 반 혁명파 사이에 내전 발생* 군부와 대지주세력이 공산당에 저항* 연합국의 백군 지원: 독일과 휴전한 것에 대한 배신감, 공산혁명이 자본주의 국 가로 퍼지는 것에 대한 우려, 볼셰비키정권의 채무 상환의 거부에 분개, 반 혁명 파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 적군의 전략: 토지분배를 약속하여 농민의 지지를 확보, 백군을 외세의 앞잡이로 비난, 조국을 수호한다는 명분* 백군의 취약성: 볼셰비키에 대항할 새로운 목표의 결여, 지도부의 구심점 부재, 반 혁명세력안의 갈등 심화, 민중의 지지 상실* 적군의 승리: 트로츠키의 탁월한 지도력2. 신경제정책(NEP)* 공산화의 일시적 중단* 내전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 공업생산은 전쟁 전보다 1/8로 감소, 농업생산은 30% 감소, 경제 질서의 마비* 계급투쟁의 강화로 민심의 동요: 사회의 질서와 도덕의 붕괴, 기아와 굶주림이 만연,* 공산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 농민 폭동의 발생, 병사들의 폭동* 신경제정책의 도입: 급격한 공산화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 혁명과 내전 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복구하기 위한 필요성* 자본주의 경제 방식의 인정: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자본과 기술의 수입, 토지의 소유권 허용, 부농의 지위 향상, 빈농의 농업노동자로 전락, 개인기업의 허용
I. 자유주의의 발전1. 빈 체제의 성립1) 빈 회의(1814-15) - 프랑스 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유럽 사태 수습 목적2) 빈 체제* 빈 회의의 정신에 입각한 19세기 초의 유럽 외교 체제* 정통주의 원칙 - 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중심,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 지배 세력 복귀, 구 영토선 회복3) 빈 체제(보수?반동주의) 유지 기구* 신성 동맹 - 알렉산드르 1세(러시아)의 제창으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 참가* 4국 동맹 - 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 중심으로 러시아?프로이센?영국 참가2. 빈 체제의 동요1) 자유주의 운동* 빈 체제에 대항한 자유주의 사상운동 - 학생과 지식인이 중심, 입헌군주제 주창* 독일의 학생 조합(부르셴샤프트) 운동 → 실패, 이탈리아 카르보나리당의 혁명 운동 → 실패, 러시아의 데카브리스트(12월 당) 운동 → 진압됨2) 라틴 아메리카와 그리스의 독립ㄱ)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자극받음* 영국의 독립 지지 - 시장 개발 목적* 미국의 먼로 선언(1823) -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간섭 배격ㄴ) 그리스 독립*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 운동 전개* 러시아?영국?프랑스의 원조로 독립 달성(1829)ㄷ) 빈 체제의 붕괴 과정 - 자유주의?민족주의 운동의 발전 의미3. 7월 혁명(1830년)1) 원인 - 부르봉 왕가의 샤를 10세(루이 18세의 뒤를 이음)의 반동 정치→ 의회 해산과언론?출판의 자유 억압2) 경과* 자유주의자를 중심으로 파리 시민계급 봉기 → 샤를 10세 추방* 자유주의자 루이 필리프 추대 → 부르봉 왕조 붕괴, 7월 왕정(입헌군주제) 수립* 은행가?대상공업자 등의 지도권 장악, 유산 계급에게만 참정권이 부여됨* 산업혁명의 본격적 추진3) 7월 혁명의 영향 - 빈 체제에 큰 타격을 가함* 벨기에의 독립 - 영세 중립국화(입헌군주제)* 폴란드 독립 운동 - 러시아의 탄압으로 실패* 독일의 민족주의 운동 - 실패, 경제적 통일 운동 노력 - 관세 동맹 체결* 이탈리아의 민- 실패* 영국의 1차 선거법 개정 운동(1832)에 자극을 줌4. 2월 혁명(1948년)1) 원인 - 프랑스 7월 왕정의 선거권 제한2) 경과* 산업혁명 진척 - 중산계층(산업자본가)?노동자의 선거권 확대 요구 - 관철 안 됨* 2월 혁명 - 파리 노동자와 시민계급의 봉기 → 7월 왕정 붕괴* 임시정부의 구성 -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참여* 온건 공화주의자의 주도권 장악 - 노동자?사회주의자의 반발 → 6월 폭동, 진압됨* 제 2공화정 성립(1948.12) - 보통 선거(성인 남자), 루이 나폴레옹의 대통령 당선3) 2월 혁명의 영향 - 빈 체제의 해체*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3월 혁명 - 메테르니히 추방, 프로이센왕의 헌법제정 약속 * 독일의 민족주의 운동 성장 -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소집(1848.5) - 실패* 이탈리아 통일 운동 - 마치니의 청년 이탈리아 당 중심 전개, 진압됨(오스트리아)* 헝가리?보헤미아의 독립 운동 - 진압됨(오스트리아)5. 영국의 자유주의 개혁1) 종교적 차별 철폐* 심사령 폐지 - 비국교도들에게도 관직 개방* 가톨릭교도 해방령 - 가톨릭교도들에게 시민적 자유와 권리가 부여됨2) 자유주의와 의회 민주주의의 발전 - 선거권의 쟁취 투쟁* 1차 선거법 개정(1832) - 부패 선거구 폐지, 신흥 상공 계층에게 선거권 부여* 차티스트 운동(1838) - ‘인민 헌장’, 노동자들의 선거권 요구 운동 → 실패* 2차 선거법 개정(1867) - 도시 공장 노동자와 소시민에게 선거권 부여* 3차 선거법 개정(1884) - 소작인, 농업 노동자, 광산 노동자에게 선거권 부여3) 자유주의 경제 체제 확립* 곡물법 폐지(1846) - 수입 곡물에 부과하던 관세 폐지 → 지주 계급에 대한 산업자본의 승리와 자유방임주의의 확립을 의미* 항해조례 폐지4) 노동자의 지위 향상* 공장법 제정(1833) - 미성년의 노동시간 제한, 9세 이하 어린이의 고용 금지* 노동조합법 제정(19세기 후반) - 노동자의 노조운동이 합법화됨* 보통교육법 제정 - 노교육 수혜5) 의회 민주주의 확립 - 양당제도의 성립, 이해 계층을 대변* 빅토리아 시대 - ‘해가 지지 않는 대영 제국’,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의 반영* 자유당 - 휘그당이 산업자본가와 진보적 중산층을 받아들여 성립됨* 보수당 - 토리당이 종래의 귀족과 지주층을 중심으로 개편되어 성립됨II. 민족주의의 전개와 각국의 발전1. 이탈리아의 통일1) 19세기 전반의 통일 운동* 카르보나리 당 * 청년 이탈리아 당 - 마치니 → 실패2) 사르데냐의 통일 운동* 1848년 이후, 자유주의자 카보우르가 주도* 국력 신장 - 산업 진흥, 군대 개편 등* 이탈리아 통일 전쟁 - 북부?중부 이탈리아 합병(베네치아와 로마교황령 제외)3) 가리발디의 시칠리아?나폴리 점령- 사르데냐에 합병됨→ 이탈리아 왕국 성립(1861)4)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 베네치아 병합(1866)5)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교황령 통합, 수도를 로마로 옮김(1870)2.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의 통일1) 관세 동맹(1834) - 관세 폐지와 자유 통상 → 독일의 경제적 통일(프로이센 중심)2)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1848.5) - 자유주의적 통일 방안 논의, 실패3)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적 통일 운동* 융커(토지 귀족)와 군부 주도 하의 통일 추진*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1862) - 의회의 반발을 누르면서 군비 증강*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 오스트리아 격파, 북독일 연방 성립(프로이센 중심)*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알자스?로렌 획득, 나폴레옹 3세 항복4) 독일 제국 수립(1871) -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의 황제 취임, 독일 통일 완수3. 프랑스의 제 2제정1) 제 2제정의 성립*제 2공화정 대통령인 루이 나폴레옹의 친위 쿠데타 - 나폴레옹 3세라 칭함*시민의 자유 억압 - 독재 강화*경제적 번영 도모 - 산업 발전에 주력, 파리 시의 정비*대외 정책 - 크림 전쟁?이탈리아 통일 전쟁에 참가,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출,멕시코 원정 실패,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패배 → 제 1870)2) 파리 코뮌 - 파리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자들이 프로이센과의 전쟁 패전 후 굴욕적인강화를 거부, 파리에 자치 정부 수립(1871) → ‘유혈의 1주일’, 진압됨3) 제 3공화정(1875)* ‘1875년의 헌법’으로 성립 - 공화파의 정권 장악* 대통령제, 삼권분립제, 보통 선거* 왕당파와 군부 세력 등 보수파의 도전으로 정치적 불안4. 미국의 발전과 남북 전쟁1) 미국의 발전* 독립 후의 민주주의의 발전* 영토 확장 - 루이지애나(프랑스)?플로리다(에스파냐) 매입, 텍사스?캘리포니아 (멕시코) 획득, 태평양 연안 도달, 서부 개척 운동과 이민 유입에 따른 인구 급증2) 남?북의 대립 -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사회 여건 변화에 기인* 남부 - 농업 중심(대농장 경영) → 노예제 유지, 자유무역, 지방분권 주장* 북부 - 공업 중심, 자영농 우세 → 노예제 폐지, 보호무역, 중앙집권(연방주의)주장3) 남북 전쟁(1861-65)* 노예제 폐지와 연방주의를 표방한 공화당 링컨의 대통령 당선* 남부 7주의 연방 탈퇴 - 아메리카 연방 결성 → 남북 전쟁 시작(1861)* 링컨의 자영농 창설법 제정 - 서부의 지지 획득* 노예 해방령 발포(1863)* 북부의 승리(1865)4) 남북 전쟁의 결과* 국가적 단합 공고화 - 민주주의와 연방주의 정치제도의 발전* 대륙횡단철도의 완공(1869) - 서부 개척의 활성*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III. 사회주의의 대두와 국제 협조의 움직임1.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 운동1) 사회주의 사상ㄱ) 사회주의의 대두* 산업혁명 - 자본주의의 발달* 사회주의 세력의 대두 - 자본주의의 문제점 비판ㄴ) 공상적 사회주의* 선구자 - 생시몽?푸리에(프랑스), 오언(영국) 등* 성격 - 인도주의적 박애 사상, 계몽과 설득으로써 이상 사회 건설 가능성 주장ㄷ) 과학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엥겔스 - 변증법적 유물론에 바탕, 유물사관 제시, ‘공산당 선언’ 작성* 사회발전의 원동력 - 경제적 생산력이 역사 발전의 결정적 요인* 인류의급투쟁의 역사 → 노동자 계급의 혁명으로 자본주의 몰락 주장2) 노동 운동ㄱ)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 - 각국 노동자들의 단합 강조ㄴ) 제1인터내셔널(국제 노동자 협회, 1864) - 각국 정부의 탄압과 내분으로 해체ㄷ) 제2인터내셔널(1889) -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존속3) 수정주의: 노동조합운동과 정당 조직ㄱ) 민주주의적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주의 건설 시도ㄴ) 페이비언 협회(영국)와 베른슈타인(독일 사회민주당)이 대표적 모델2. 국제 협조의 움직임 - 19세기 후반 이후1) 국제 적십자사* 나이팅게일의 헌신적 활동에 영향 받음* 뒤낭 - 적십자사 창설 제안 → 만국 적십자사 동맹 조직 → 국제 적십자사로 발전2) 만국우편연합, 만국전신협회 - 교통?통신 기관의 발달에 따른 세계적 조직의 활성3) 국제 올림픽 위원회 창설* 쿠베르탱 - 제안* 제1회 올림픽 대회(1896) - 그리스 아테네4) 만국 평화 회의(1899) - 네덜란드의 헤이그, 전쟁 방지와 군비 축소 논의IV. 19세기의 서양 문화1. 자연 과학의 발달1) 과학과 기술의 발달* 산업 혁명의 진전으로 과학 기술의 혁명적 진척* 19세기는 ‘과학의 세기’ - 기술 혁신, 개발과 발명의 가속화2) 과학의 발달* 물리학 - 에너지 불멸의 법칙(독일, 마이어?헬름홀츠), 열역학의 이론적 기초확립, 발전기의 기초 이론 확립(영국, 패러데이), X선 발견(독일, 뢴트겐), 방사선 원소 라듐 발견(프랑스, 퀴리 부처)* 화학 - 유기 화학 발전(독일, 리비히), 원소의 주기율표 작성(러시아, 멘델레예프)* 생물학 - 진화론(영국, 다윈) → 종교계와 사회과학에도 큰 영향 끼침, 유전 법칙 발견(오스트리아, 멘델)* 의학 - 세균학 발전, 예방의학과 보건위생에 공헌(프랑스?독일, 파스퇴르? 코흐),종두법 발견(제너)3) 응용 기술의 발달* 내연 기관의 발명 - 증기 기관, 가솔린 기관, 디젤 기관* 전력과 석유의 이용 - 발전기, 전동기, 전차 발명* 전신기(마르코니), 전화기(벨), 축음기?전등(에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