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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이상의 날개
    이상, 「날개」- 파편화된 관계와 극복 의지1. 작품보기1) 줄거리아내와 나는 열여덟 가구가 사는 삼십 삼번지에 각각 다른 방에서 산다. 나는 햇볕도 들지 않는 내 방에서 여러 가지 발명도 하고 논문도 쓰고 시도 짓고 놀면서 지낸다.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에서 돋보기 장난과 불장난을 하며 논다. 아내의 직업이 궁금한 나는 이불 속에서 내객이 가고 나면 아내는 내게 돈을 주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은화가 가득 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버리고, 아내의 밤 외출을 틈타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경성역’ 시계가 자정이 지나야 돌아올 수 있는 나에게 아내는 더 늦게 돌아와도 괜찮다고 돈을 쥐어주며 외출을 시킨다. 외출을 다녀오는 길에 아내의 방에서 내객과 아내가 내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이튿날 감기가 걸린 나에게 아내는 아스피린을 먹이고, 나는 한 달간 잠만 잔다.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아내의 방으로 놀러갔다가 최면약 아달린을 발견하고 까무러치게 놀란다. 아달린갑을 주머니에 넣고 양지바른 곳에 여섯알을 먹고 일주야를 잔다. 아내를 의심한 것을 미안해하며 집으로 돌아왔으나, 내객과 함께 있던 아내에게 구타를 당한고 만다. 나는 경성역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미쓰꼬시 옥상에까지 이른다.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면서 숙명적으로 맞지 않는 우리 부부가 갈 길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 때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현란을 극한 정오의 거리 모습을 본다. 나는 불현듯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며 다시 한 번 날아보고 싶어졌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2) 작품 발췌)「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만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해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 해이오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어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 놓으면 들여 비치는 볕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쪼끄만 「돋보기」를 꺼내 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그슬러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 가지고, 고 초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스르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놓는 데까지에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치 내게는 재미있었다.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이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중략 -따라서 나는 또 오늘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오 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처넣어 버린 것도 후회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오 원이 들어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번 휘둘러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원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 벌 다 떨어진 코르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고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닫듯 해서 자정이 어서 휙 지나 버렸으며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중략 -나는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나는 거기 아무 네다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어리가 따뜻하다.나는 또 희락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몽뚱이를 끌고 그 희락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으리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아내가 그럴 대체 까닭이 없을다방 ‘제비’를 경영하였다. 이 무렵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윤태영, 조용만 등이 출입하며 문단교우가 시작되었고,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였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여러차례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변동림과 혼인하여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그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그의 작품 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공복」,「삼각차설계도」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였다. 1934년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였다가 난해함으로 중단되었다. 1936년 「날개」를 발표한 이래 「종생기」,「봉별기」 등 창작에 힘을 쏟았다.그가 활동한 ‘구인회’)는 모더니즘 문학 건설에 앞장섰던 문인 조직체였다. 당시 일제 군국주의의 급격한 대두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인 불안도 모더니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 초반 카프의 프로문학은 1931년 KAPF) 맹원 검거와 전향, 지하운동화에 이르기까지 프로문학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게 되었고 문학은 서구에서 유입된 도시문명을 노래하는 모더니즘 쪽으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불행한 식민지 지식인인 이상도 모더니즘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3. 작품세계모더니즘은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고 20세기 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 등의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으로 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으로 세계 제 1차 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 1930년 그 시대의 모더니즘이란 ‘모던 생활의 바탕위에 서 있는 생각이 바로 모더니즘이며 그것은 세계성에로 연결되고, 거기에 모더니즘, 주지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또는 다르게는 표현주의, 전위예술, 미래파, 구성파들이 이어져 있다. 개인사적인 것과 보편적인 세계사적 정신의 흐름이 마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원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함으로써 욕구충족을 위한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을 말하였고, 유희로서의 시작은 그러한 욕구충족의 한 표현이 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모순을 언어적 유의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구제를 꾀하였다.1931년 《조선과 건축》 지에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파편의 경치」, 「∇의 유희」 등을 발표함. 1932년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함. 1933년 《가톨릭청년》 7월호에 「꽃나무」를 발표하고 「이런 시」, 「1933.6.1」,「거울」 등을 발표함.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하였으나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됨. 1935년에 시 「정식」, 「지비」, 수필 「산촌여정」 등을 발표함. 1936년 「봉별기」 발표, 《조광》)지에 「날개」 발표함. 수필 「서망율도」, 「조춘점묘」, 「여상」, 「약수」 등을 발표함. 1937년 동화 「황소와 두꺼비」와 수필 「19세기식」과 수필 「권태」 발표함. 1956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 전 3권이 양성출판사에서 간행됨.4. 이 작품「날개」는 1939년 9월에 《조광》지에 실렸다. 시「오감도」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가 난해함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금홍이와의 애정이 식을 무렵 자신의 처지를 소설화한 것이라고 한다. 1939년 김기림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소설다운 소설을 쓰겠소.’라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의식하고 쓴 첫 작품이었다. 「날개」는 모더니즘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하며, 그의 소설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시 모던 생활의 주체는 카페, 다방, 레스토랑, 영화관 등이 들어서 있는 새로운 풍경의 거리이다. 생활의 주체는 유산, 유한계급, 쁘띠부르조아 계급에 속하며 소비를 일삼는 부류로 모던걸, 모던보이라는 청년남녀이고 무직이며 대학생, 독신자들이 그 계층으로 공황기속에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날개」는 내적 정신세계와 외부현실이 철저히 이분화되어 있는 인물이 체험하
    인문/어학| 2004.10.14| 8페이지| 1,000원| 조회(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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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현대사] 원세개로 바라 본 중국 현대사
    1. 들어가기중국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 제한적이다. 중국사 관련 서적은 대부분 청의 전성기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다루는 근대사에서 끝난다. 현대사는 다시 국민당과 공산당이 경합을 벌이는 1920년대부터 시작한다. 이 두 시기 사이에는 백여 년의 역사가 묻혀있다. 그 시대의 주인공은 증국번, 이홍장, 원세개로서 과도기를 겪어낸 인물들을 중심으로 숨겨진 역사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원세개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인물이었다. 변혁의 시대로 나아간 중국의 현대사를 짚어보기 위해서, 바로 전 단계인 원세개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사상이나 흐름은 시대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과 절대성이론의 팽창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즉 현대사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는 근대사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근현대사의 과도기를 다룬 『원세개』는 우리의 역사와 연관성을 가질 뿐만아니라 상황적 유사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선정하게 되었다.여담이지만,『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불멸의 지도자 등소평』은 도서의 분량이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 정도로 방대하였다.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손문평전』은 발행 년도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활자의 조잡함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졌다. 도서 선정의 기준에 있어서 디자인 및 가독성, 레이 아웃이 중요해짐을 볼 때 인문사회 분야의 서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도서를 질로 평가해야 것이 당연함에도 이번 도서 목록을 하나하나 정검 해 나가면서 새삼 느낀 바는, 새로운 미디어 매체에 익숙해진 10대·20대들이 과연 정체된 인문사회 서적을 얼마나 접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밖에『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와 『이율곡과 왕안석에게서 배우는 경제개혁의 지혜』는 현대 중국 역사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과거로 소급한 것이어서 논외로 하였로 평가받은 혹은 발생했던 실존인물의 중대사를 중심으로 원세개의 생애를 살펴보았다.원세개(袁世凱) : 위안 스카이 [1859∼1916.06.06] 중국의 군인·정치가.자 : 위정(慰庭). 호 : 용암(容庵)국적 : 중국활동분야 : 군사, 정치출생지 : 중국 허난성[河南省] 항성[項城]여기서 그의 일생을 모두 짚어보는 일은 무의미하다. 인물 원세개 의 평전인 만큼 그의 행로에 따라 책이 기술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보와 간략한 『원세개』의 기둥을 잡아보았다.1859년 중국 항성 출생. 두 번의 과거에 실패한 그는 문(文)을 버리고 무(武)를 선택했다. 오장경[吳長慶]의 막하에 들어가 1882년(光緖 8년) 8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부임하였다. 이때 이홍장의 천거로 한성(漢城)에 주둔하면서 조선 방어임무를 맡아, 서울에 주재하며 조선의 내정·외교에 간섭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 패퇴한 뒤 직례안찰사(直隷按察使)가 되었고, 톈진[天津] 부근에서 서양식 군대를 훈련시켜 북양군벌(北洋軍閥)의 기초를 마련하였다.1898년 무술변법 때, 개혁파의 부탁을 받았으나 배반하여 변법을 좌절시키고, 서태후(西太后)의 신임을 얻어 산둥순무[山東巡撫]로 승진하였다. 1900년의 의화단(義和團)의 난 때, 의화단을 진압하고 외국인을 보호함으로써 열강의 신임을 얻었다. 1901년 이홍장 사후, 직례총독(直隷總督)·북양대신이 되어, 신식군대 - 신건(新建)육군 - 를 증강시켜 독립정권을 형성하였다. 1908년 순친왕(醇親王)의 명령으로 정계를 물러나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군사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11월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혁명파의 임시 대총통 쑨원[孫文]을 사임시키고 1912년 2월 임시총통에 취임함으로써 중국을 정식 탄생시키고, 수도를 난징[南京]에서 베이징[北京]으로 옮겼다. 1913년 3월 국민당 당수 쑹자오런[宋敎仁]을 암살하고 다수파인 국민당을 탄압하였으며, 열강과 차관협정을 맺어 그 힘으로 하여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1915년 5월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황제추대운동을 전개시켜 1916년 1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홍헌(洪憲)으로 개원(改元)한다. 1915년 윈난[雲南]봉기를 계기로 도처에서 일어난 반원(反袁)운동의 확대(제3혁명)로 인하여 영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강대국도 황제제도 취소를 권고, 1916년 3월 황제제도 취소를 선언하였다. 그 후 계속되는 반원운동에 휘말려 죽었다.2) 중국의 개혁과 혁명 - 신해혁명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전개되는 혁명기의 중국사는 다음과 같은 두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태평천국운동과 의화단운동으로 대표되는 밑으로부터의 변혁과 동치중흥운동 양무자강운동 무술변볍운동으로 이어지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그것이다. 이 두 흐름이 결합하여 마침내 본격적인 혁명운동이 시작됐다. 1911년의 신해혁명, 1920년대의 국민혁명, 그리고 1949년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귀결된 신민주주의 혁명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중국 현대사의 기반을 마련해 준 신해혁명을 그 중점에 두되, 각 개혁과 혁명운동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양무운동제국주의 침략 진행에 대처한 부국 강병의 필요성으로 등장한 양무운동은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등의 한인 관료 중심이 되었다. 서양 근대 문물의 수입을 통한 부국 강병 추진하였으나 중체서용의 입장과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로 실패하였다.변법 자강 운동(무술 변법)1898년, 광서제는 캉유웨이 등을 등용하고 입헌군주제 도입과 정치제도 개선 도모하는 변법 자강 운동(무술 변법)을 전개하였다. 서태후 중심의 보수파가 변법파 축출하면서 100여 일 만에 실패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개혁, 사회적 근대화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의화단 운동반식민지화의 심화로 의화단의 배외운동(1899) - 반제국주의·반크리스트교 운동 - 이 산둥성에서 봉기하였다. '부청멸양' 주장하며 서태후 등 청조 보수파의 지원을 받았으나, 의화단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8개국 연합군의 베이징 점제정치(專制政治)가 끝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하여 공화정치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11년 5월 청나라는 철도 국유령을 발표하여, 그 때까지 민영(民營)인 철도를 담보로 열강의 금융자본 연합체인 4국 차관단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려 재정난을 타개하려 했다. 이에 대하여 후난[湖南]·후베이[湖北]·광둥[廣東] 등에서 광범위한 반대운동이 일어났으며, 특히 쓰촨[四川]에서는 대규모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였다(쓰촨폭동). 10월 초 청조가 쓰촨폭동을 토벌하기 위하여 후베이신군[湖北新軍]을 동원하자, 우한[武漢] 지구에서 문학사(文學社)와 공진회(共進會) 등을 조직하여 신군(新軍) 공작을 전개해온 혁명파는, 10월 10일 우창에서 봉기하여 중화민국 군정부를 설립함으로써 신해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 혁명은 12년 1월 1일 쑨원[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고, 난징[南京]정부가 수립되어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그 지도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발족하였다. 청조는 원세개를 기용하여 혁명군의 토벌을 명하였으나, 영국의 중재로 화평이 획책되었다. 원세개는 청나라의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의 지위를 탈취, 3월에 정식으로 대총통에 취임하여 베이징[北京]정부를 조직하였다. 이 때부터 혁명은 급속하게 반혁명으로 전화(轉化)되었다. 정당이 난립하는 중에 혁명파는 혁명동맹회를 개조하고 소당파(小黨派)를 합쳐서 국민당(國民黨)을 창립, 의회정치의 실현을 희구하였으나, 열강과 입헌파의 지지를 받은 원세개는 혁명파에게 무력탄압을 가하여 제2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혁명파는 제2(1913.7), 제3(1915.12)의 혁명을 일으켜 원세개의 정권과 대결하였으나, 반제(反帝)·반봉건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고 5·4운동 이후의 혁명으로 미루어졌다.3) 한국의 근현대사한국근대사는 뿌리깊게 남아있던 '전통'과 외부로부터 이식된 '근대'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갈등 또는 결합하면서 특수한 모습을 형성한다. 그 동안 근대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는 리 민족사의 가장 특징적인 두 요소였다.기존의 입장에서 한국근대사를 규정지을 때 항상 붙는 수식어는 특수한 이었다. 하지만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까지 식민지 상황하에서 근대화를 겪은 국가는 상당히 많다. 제국주의 열강의 몇몇 국가를 제외한 전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식민 , 전쟁 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하여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 과연 다수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한 나라에 국한시켜 특수하다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보편적, 일반적인 근대화의 과정이란 도대체 어느 국가를 기준으로 한 것인가? 일부 서구 열강의 근대화 역시 제국주의를 통한 경제적 기반을 두고 가능했음이 주지의 사실인데, 과연 어떤 국가의 근대화를 특수하다 특수하지 않다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논의 할 점은 기존의 특수한 을 전제로 하여 다루기로 한다. 앞서 간단하게 한국근대화의 흐름을 살펴보겠다.[참고] 근대는 18세기 서양에서 이중 혁명의 결과 형성된 사회를 말한다. 이중혁명이란 바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다.중국, 일본 등 주변 나라들이 강제 개항을 하자, 조선도 새로운 근대화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고 봉건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자주적 근대화를 실천해야 했다. 당시 대응책의 형태는 척사운동, 개화운동, 농민운동 등의 세 갈래의 흐름으로 나타났다.1894년 농민전쟁이 좌절 후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구미열강과 일본의 경제이권 침탈은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정치, 군사적으로 청을 대신한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 나라를 半(반)식민지사회로 몰아갔다.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영국, 미국 등과 맺은 제국주의적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조선의 지배를 인정받아,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체결했다.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한국문제가 유엔에 넘어가면서 민족의 분단국가 수립이 더욱 현실화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된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신.
    인문/어학| 2004.10.14| 5페이지| 1,000원| 조회(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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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론] 브랜드란 무엇인가
    1. 브랜드란 무엇인가?1) 정의특정 판매주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경쟁자와 구별해서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 기호, 상징, 디자인 등의 총칭을 말한다.예) 맥도날드, 펩시콜라2) 명칭에 의한 구분-브랜드 명(名) -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브랜드 마크 -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기호, 디자인, 레터링 등-상표(商標:트레이드 마크) - 브랜드명, 브랜드 마크 중 배타적 사용이 법적으로 보증되어 있는 것3) 사용자에 의한 구분1 제조업자 - 내셔널 브랜드(National Brand; NB) 혹은 메이커 브랜드, 메이커가 자사 제품에 대하여 사용하는 것2 유통업자 -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PB), 대형 소매점, 도매점 등의 유통업자가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하여 사용하는 것, 품질에 비해서 가격이 싼 것이 특징3 프라이빗 내셔널 브랜드(Private National Brand; PNB)4) 기업이 자사 제품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이유브랜드 로열티 - 소비자가 어느 특정한 브랜드에 대해 갖는 호의적인 태도, 그에 따른 같은 브랜드의 반복적 구매 성향을 보여 구매빈도가 높고 그 품질을 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제품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높다.5) 브랜드 요인-브랜드 이미지-소비자 기호의 일치-소비자의 위험 회피적 태도 및 습관형성 성향6) 브랜드 네이밍의 요소-인명(personal name), 지명(place name), 창의성(invented scientific name), 신분이나 지위(Status), 좋은 연상(good association), 조어(artificial name), 서술어(Descriptive name)2. 브랜드의 역사브랜드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브랜드가 현대적인 개념으로 처음 사용되기 이전 수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어원적 기원-"burn"을 의미하는 고대 노르웨이 단어인 brandr(불에 달구어 지지다)에서 파생-16세기 초 영국의 위스키 제조업자들이 불에 달군 쇠로 위스키 나무통 위에 인두를 찍는다는 의미인 영어 burned에서 유래2) 상업적 측면-BC 7세기 경 그리스의 상인들이 항아리에 자신의 브랜드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이 최초로 기록-중세의 상인들이 저급한 모방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제품에 브랜드를 부착하여 자신과 고객을 보호-그리스와 로마시대 이전부터 제품의 식별이라는 브랜드의 본질적 기능 이외에도 제품을 판촉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 대부분 신발을 만드는 사람, 옷을 제단하는 사람이 어느 곳에 살고 있다는 식의 단순한 메시지들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방법3) 일반적 기원-고대 이집트의 통치자가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제품에 생산자 이름을 밝히도록 한 것에서 유래-초기에 가축의 소유주들은 실종과 도난에 대비해 자신들의 가축에 낙인을 찍어 소유권 표시. 도공들도 도기바닥에 자신의 손가락 모양을 찍거나 혹은 별, 원, 네모, 세모 혹은 십자가 등의 모양을 표시함으로써 자신이 제조자임을 증명.4) 19세기 이후-경쟁자들의 제품과 구별할 수 있는 식별의 기능뿐만 아니라 특정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정보의 구실을 반영-초기 광고와 마케팅은 특정 제조자의 이름을 사용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짐. 현대적으로 발전하여 간판을 점포에 부착하는 형태.(체인점의 유래)사례 1>고대시대에는 구매자들이 문맹이어서 오직 그림에 의해서만 특정 제품을 식별.1 로마시대정육점 - 한 줄의 햄을 묘사하는 그림,신발판매점 - 부츠의 그림,우유판매점 - 암소의 그림2 오늘날에도 관심을 끌기 위해 브랜드 네임과 함께 회화적 요소가 활용. 동음이의(同音異義) 사용미국 석유회사인 Shell - 심벌마크로 조개껍질(shell),식품회사인 Birds Eye - 심벌마크로 새의 눈(bird's eye),Nestle - 새의 둥지(nestlings)5) 파워 브랜드의 등장Coca-Cola나 Kodak과 같은 파워 브랜드들은 산업혁명 이후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산물인 철도와 증기선과 같은 새롭고, 빠르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힘입어 오늘날 거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미국의 경우, 철도의 출현으로 중서부의 농부들은 빠른 시간 안에 동부해안이나 서부해안까지 자신들의 농산물을 공급. 이처럼 사업을 확장하고 다양한 지역에 신규시장을 개척한 기업들은 미국 전역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인식시킬 수 있는 브랜드 네임의 필요성을 인식.영국의 경우, 철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마을에 지역공동체를 위한 자체적인 양조회사 존재. 철도의 출현으로 맥주는 장거리까지 빠른 시일 내에 운송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운송수단의 발전은 모든 소비자들의 구매를 증가. 최고 품질의 맥주와 혁신적인 판촉수단 그리고 강력한 유통망을 지녔던 양조회사들은 막대한 이윤을 획득.한편 제품의 수량과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소비자들의 수요는 급증하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는 제조업자들과 마케터들로 하여금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기억하기 쉽고 발음이 용이한 브랜드 네임과 제품의 직/ 간접적인 기술과 같은 효율적인 방법들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이러한 현상은 브랜드 네임의 필요성을 한층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는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가 오래된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브랜드 네임이 19세기 후반인 이때에 탄생.3. 브랜드 이미지(Brand Identity)1) Brand Identity의 개념Brand Identity는 브랜드의 경영과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 의미, 음성, 시각적 요소들 즉 네임과 제품의 경영을 통일화하는 것으로 제품의 차별화를 목적으로 경영전략에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새로 개발된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과 품격을 높여 짧은 사이클, 가격경쟁 등 시장 변수에도 불구하고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통합전략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브랜드 이미지 통일화 작업은 브랜드명 개발 및 그에 따른 시각적인 요소를 개발하는 것으로, 상품의 특성 및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주체적인 브랜드 표현 요소가 브랜드 전개의 모든 분야에 조직적이고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지는 것을 말한다.브랜드 이미지 통일화 작업은 시각적인 요소의 개발을 넘어서 브랜드가 경쟁 환경 속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한 지속적인 마케팅 전략과 경영계획의 수립이 중요하다.그리고 BI 작업은 경쟁 시장에서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브랜드 마케팅 성공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2) 등장 - Product era> Image era> Positioning era품질만으로 승부 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한 산업 내에 존재하는 다수의 기업들은 모두 소비자의 요구에 상응하는 수준의 품질을 제공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품질의 제품만으로 만족하였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그 이상을 원하기 시작 하였다. 제품 및 서비스의 소비에 의미를 담으려 하고, 감정적인 소비활동을 하며, 소비를 통해 자신의 모습까지도 표현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품질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주어야만 했다. 다른 기업이 제공해 주지 못하는 특별한 편익을 우리기업만이 제공해 줄 수 있다든지, 우리 기업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표현하고자하는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 할 수 있다든지 하는 등의 단순한 품질 이상의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따라서 21세기는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브랜드 경영 전략에 집중하는 시대이다. 기업들이 자기의 브랜드를 세계화하여 다양한 제품을 하나의 고유 브랜드로 생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이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이름보다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더욱 인식되며, 브랜드의 성공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구 분생산/ 제품 중심판매 중심마케팅 중심사회적 마케팅 중심고객지향성지업지향성고객지향성시대적 구분~1900년대1930년대~1950년대~1970~초 점제품생산품질제일주의대량판매/ 판촉고압적 마케팅소비자 만족저압적 마케팅사회전체 이익사회지향적 마케팅상 황제품만 좋으면 성공수요>공급수요
    사회과학| 2004.10.14| 8페이지| 1,000원| 조회(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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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사] 근대 소설의 내면성의 기원
    ...근대 소설의 내면성의 기원...1.근대 소설 발아기의 배경1) 시대적 상황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국내적인 수직적 상황변동만으로 기준하는 김윤식의 이식문화론 의 열강 제국주의적인 침략에 의한 아시아적인 국제적 시대 상황 을 기준해야 한다는 수평적 시점에서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중엽부터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침략행위에서부터 아시아인들의 정신적인 자각의 눈뜸 이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즉, 아시아의 근대화는 열강들의 제국주의적인 외세로 인한 민족적인 자각에 의해서, 19세기 말에 이러한 제국주의의 약소 민족 약탈행위는 20세기 초에 열강들끼리의 반목과 야욕으로 인한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 아시아적인 민족의식의 자각은 근대화로 몸부림치게 되는데, 한국도 갑오경장을 기준으로 정치·사회의 급변에 따른 문화·문학의 근대적 걸음마가 시작된다.2) 작가의 문학적 체험당시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서의 지식인들의 행위는 국사나 역사학 쪽의 학자들이 뚜렷한 민족 사상을 바탕으로 한 데 비해서, 시대와 역사에 가장 민감해야할 문학 쪽의 문인들을 좌절과 방황 또는 친일로 기울어졌다. 민족적이거나 저항적인 소재나 주제여야만 문학적 가치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당시의 작품들이 직접 간접으로 식민치하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철저한 긍정이나 부정, 또는 문학적 승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당시 세계적인 시대적 객체상황 아래에서 한국의 선각자들은 갑오경장 이후 일본으로 대거 유학을 떠나고 후에 국내의 문단활동의 주가 되게 되는데, 이렇게 시작된 일본적인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은 문학의 새로운 인식, 일본화 된 서구문화의 수용에의 시행착오와 실험의식을 거치게 된다.2. 근대소설의 형성1) 허구로서의 소설1900년대에 소설 은 자국어를 구상해 나가는데 핵심적인 계기였고, 자국어는 민족 국가의 형성에 중요한 고리였다. 1910년 국가 상실 이후에도 소설 은 민족적 가치를 토대로 예술적 00년대 신소설이 허구임을 부정하고 사실의 기록임을 주장함으로써 소설 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피하고자 했다면, 1910년대의 소설은 도리어 허구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소설 의 고유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과 허구에 대한 엄격한 분리가 이때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10년대는 공적으로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취택하고 그 사실성을 조회하여 객관적으로 알린다는 사실 의 제도가 등장한 시대다. 신문을 통해 정치과 교육적 계몽에 중점을 둔 이야기 식에서 공유할 만한 정보를 적절하게 평가·해석하여 제공하는 사실 의 영역으로 자리잡았었다. 공적 정보로써의 영역 위의 사적인 정보, 이야기의 영역은 배제되었다. 소설 의 근거를 허구성에 바탕하여 찾으려 한 시도는 사실 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배제된 대상, 즉 세세한 이야기의 요소와 개인의 내밀한 정보를 독립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로써 소설 은 사실과 별도의 영역을 갖게 된다.이로 소설 은 저마다의 개별성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객관적 외면이 아니라 각기 다른 내면을 다루는 글쓰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실을 다루는 대신 사실 너머를 다루되 보편적 진실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2) 신지식층의 등장1910년에 중반에 접어들면서 대두된 신지식층의 소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일본을 통한 서구 근대문학의 수용으로 이전의 혹은 동시대의 신소설 작가들과는 문학에 대한 기본 관점을 달리했다.예술을 위한 예술 을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국민의 정서와 생활을 대변한다는 주장{) 백대진의 「서양문학일별」(『신문계』, 1916. 8)에서의 러시아 근대문학에 대한 소개문은 당시 신지식층의 예술을 위한 예술 로서의 계몽주의 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소설이 대중의 값 싼 통속물로 전락하는 동안 신지식층은 자신의 예술적 기호와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또한 근대화로 인한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유입과 작가들은 개인과 집단, 개인과 민족(국가, 공동체)을 구태여 분리하려 하지 않았다. 개인과 집단을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파악하여 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과 국가의 운명과 장래를 개인의 실존 보다 우선 시 했던 계몽주의가 소설에 미친 영향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사회형편이 집단과 개인의 상호 분리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없을만치 미분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소설의 자아가 개체적 자아 가 아니라 집단적 자아 로 설정되었을 경우 소설의 형식은 사건소설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실존적 내면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탓이다. 소설 주인공이 겪는 고통도 집단이 겪는 고통의 일인칭적 표현일 뿐 주인공 그 자산의 것이 되기 어렵다. 신소설의 자아가 종종 비상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정점에 놓여 있으면서도 개인의 운명 속에 반영된 사회적 갈등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 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를 몰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신소설의 주인공은 존재론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 없다. 그는 현상적으로는 한 개인이되 수많은 타자의 또 다른 분신이자 그 타자의 여망을 실현시켜 줄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은 신소설의 자아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자아는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그러나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더 이상 이러한 집단적 자족감에 안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한국의 식민지화는 민족과 국가라는 집단의 관념 안에 개인의 운명을 결합시키는 계몽주의 세계관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으며, 일제에 의해 강제된 식민지 자본주의로의 급속한 사회 개편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상황의 근본적 변화에 눈뜨게 하였다. 그들은 집단적 자아의 해체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전체 속에 의탁했던 자기를 발견하는 것, 그것은 분명 나 의 회복이다.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회복이다.그러나 한 개인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자기 년대 단편소설은 근대의 문턱을 막 넘어서며 자기 실존의 모호함과 정처없음을 깨닫고 불안해하는 한국인들의 초라하지만 정직한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 근대 소설 내면의 목소리 --개인의 언어1) ∼다 체의 글쓰기 -- 「핍박」「핍박」은 절망과 무기력에 허덕이는 나 의 내면을 차분히 그려낸 작품이다. 핍박에서의 ∼다 체는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투, 즉 듣는 상대자를 알은곳없이 사물에 대한 자기 단정을 나타내는 말투로 소설이 개인의 내면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전조를 하고 있다. 핍박에서는 서술자인 나 의 단정한 ∼다 체와 다른 이들의 투박한 사투리 사이만큼 나 와 세상과의 거리는 멀게 느껴진다. ∼더라 의 서술자가 세계를 전일화(全一化)시킬 수 있었다면, ∼다 체를 쓰는 나 는 세계와의 불화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한다. 핍박 속에 등장한 근대 소설 최초의 나 라는 개인적 존재는 세계와의 고립에 병들어 가고 있다.∼다 체는 이처럼 고립된 개인의 언어로 단지 스스로 독백을 할 뿐인 개인의 문체인 것이다. 동시에 ∼다 체는 자기 자신을 향한 독백을 소설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인 앞에서 공표한다는 의미에서 내면의 엿보기 의 효과를 낸다. 개인의 사유로서의 내면임과 동시에 개인의 내면은 공감, 공유할 수 있는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늘 존재했었지만 문제적 무게를 지니지 못했던 내면 이라는 것이 여기서 비로소 핵심적 영역으로 대두되게 된다. 자기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정신적 과정, 다른 사람은 기껏해야 추측할 수 있을 뿐인 개인적, 사적인 영역 의 표출인 것이다.2) 3인칭 대명사의 사용 --「약한자의 슬픔」「약한자의 슬픔」에서 김동인은 3인칭 대명사를 처음으로 본격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He'와 She 를 모두 다 그 라고 보편적인 대명사로 대치한 것이다. 약한자의 슬픔 에서 그 란 실질적으로는 주인공 (강엘리자벳트)만을 가리키는 독점적 대명사로 쓰인 것이고 주변 인물들의 He 나 She 에 해더되는 인들에 그 라는 대명사를 쓰지는 않았다. 이처럼 그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의 의미가 된다. 자기 세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된 존재인 주인공이 나 로써 뿐이 아니라 그 로서도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단정의 체였던 ∼다 체를 나 의 언어로써 뿐 아니라 그 의 언어로써도 적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4. 작품 속의 내면성1) 현상윤의 「핍박」....2)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김동인의 처녀작인 약한자의 슬픔은 강 엘리자벳트라고 하는 신여성을 중심으로, 자기로서 살지는 못하고 누리에 비친 그림자로서 살고, 강해 보여도 약한 그의 슬픔과 자각을 그린 소설 이다.엘리자벳트는 K남작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여학교에 다니던 중 자의반 타의반으로 K남작에게 정조를 잃고 임신을 하게 되어 그의 집에서 쫓겨난다. 남작에 대한 배신감으로 정조유린에 대한 배상 재판을 소송하지만 패하고 아기를 유산하게까지 된다. 그 후 이러한 시련이 자신의 약함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닫고 사랑 을 통해 강한 자가 될 것을 결심한다.이는 한 인물이 시련과 고통을 겪은 후 얻게 되는 깨달음, 곧 자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자각 의 표출 방법으로 작가는 심리나 내면의 표출을 방법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소설에서 중심이 되어 소설의 갈등의 주가 소설의 현실에 나타나 있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주인공 엘리자벳트의 자신의 내면에서의 심리적 갈등이 됨을 알 수 있다.「약한 자의 슬픔」의 내면묘사「약한자의 슬픔」에서 주목되고 있는 주인공의 내면묘사 즉, 주인공 강엘리자벳트의 자기 모순에 빠진 내면 묘사는 일찍이 기존의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법의 정교함은 주인공이 을 보는 장면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작가는 이를 라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공의 내면과 통하는 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눈물로써, 슬프고 섧고 원통하고도 사랑스럽고 즐겁고 회포 많은 그 가 가리운 고로, 엘리자벳트는 눈물을 씻고 다시 그 을 들여다 보았다. 그 에는 참예술적 활인란
    인문/어학| 2004.10.14| 5페이지| 1,000원| 조회(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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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모방에 관하여제 1장예술의 본질과 기능, 플롯의 구조, 시 구성 성분의 요소와 본질, 다른 예술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각 장르는 모방매체(수단의 종류, 대상의 차이, 모방의 방법)에 의해 서로 구별된다.제 2장모방하려는 대상은 인간의 행위이며, 이 행위자는 선인 혹은 악인이다. 비극은 보다 우열한 자를, 희극은 보다 열등한 자를 모방한다.제 3장예술의 모방에 있어서의 차이점 중 하나는 각 대상의 모방방법이다.예술(시)의 기원제 4장시의 기원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 인간은 모방성이 있으며, 모방물을 접할 때 기쁨을 느낀다. 비극은 디튜람시의 전주에서 기원하였고, 희극은 남근찬가(팔러스곡)의 전주에서 시작하였다.제 5장희곡은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다. 희극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진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서사시는 하나의 운율을 사용하여 서술체로 쓰며 시간 제한에 의한 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비극은 태양의 일회전 시간 내에 지켜진다.비극의 정의와 효과제 6장비극은 진지함과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일정한 길이의 행동을,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와 어울리는 언어로 모방하는 것이다. 이것은 카타르시스를 이룩하게 해준다.조사법, 멜로디 는 모방의 수단, 장경 은 모방의 양식, 성격, 구성, 사상 은 모방의 대상에서 나온 것이다.비극은 사람의 행동과 삶, 행복과 불행의 모방이다. 극에서 행동함으로써 성격을 지니게 된다. 구성의 부분으로는 급전과 발견이 있다. 사상은 말하려는 것에 꼭 맞게 말하는 힘이며, 조사법은 언어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멜로디는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이며, 장경은 흥미를 끄는 것이다.비극의 구조제 7장전체는 시작, 중간, 끝을 가진다. 시작은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고, 끝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런 결과이며, 중간은 이어 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개연적 혹은 필연적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불행에서 행복으로, 혹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전도하기까지의 길이가 적당하다.비극의 특성과 시의 본질제 8장구성은 통일되어야 한다. 행동의 모방은 하나의 전체적 행동, 완전한 전체를 표현해야 한다.제 9장시는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역사는 개별적인 반면, 시의 서술은 보다 구체적으로 보편적이다.시인은 플롯의 창조자이어야 한다. 시인이 모방하는 것은 행동이다.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며,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주는 사건의 모방이다.구성의 종류와 요소제 10장구성은 단순하거나 복잡하다. 복합구성은 발견과 반전이 있는 것이다.제 11장급전이란 극 내에서 사건이 급격히 변화함을 말하는데, 이는 사건의 필연적·개연적 결과이다. 발견이란 숙명적인 인물이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상태로 바뀌는 것이며, 그래서 사랑하거나 증오하게 된다. 급전을 내포하는 발견은 동정심과 공포감을 일으킨다. 파토스는 파괴적이고 고통스런 본성에서 나온 행동이다.제 12장비극은 서사, 삽화 결미, 합창가요(등장가/ 간주가)로 나뉜다. 서사시는 합창대의 등장가에 앞서는 것이고, 삽화는 두개의 전체적 합창가요 사이에 오는 것이며, 결미는 마지막 합창가용 뒤에 오는 것이다.Catharsis제 13장구성은 복잡해야 한다. 모방은 동정심과 공포감을 주는 행동의 모방이어야 한다. 피해야 할 구성형태는, 선인이 행복에서 비참함으로, 악인이 비참함에서 행복으로, 지극한 악인이 행복에서 비참함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동정심은 적절한 불행을 보고 일어나며, 공포감은 우리와 똑같은 인물의 불행을 보고 일어난다. 완전한 구성은 단일해야 한다.제 14장비극적 연민과 공포는 장경, 사건의 구성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비극에는 비극에 적절한 쾌락만 요구된다. 비극적 쾌락이란 연민과 공포로부터 야기되는 기쁨이다. 무서움을 일으키는 방법으로는 알면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모른 채 행위를 하였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 알게 되어 그만 두는 경우,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의 네 가지가 있다.인물론제 15장인물의 성격은 선량해야 한다. 성격이 인물에 특유하고 적절해야 한다. 성격을 전설상의 것과 유사하게 꾸미되 일관성을 유지한다. 비극이 보통 이상의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뚜렷한 모습을 재창조하면서 유사성을 잃지 않고 실제 인물보다 더 멋진 인물을 만들어내야 한다.구성의 구조제 16장발견의 종류는 여섯 가지의 경우가 있다. 기호나 표식에 의해 발견(가장 저급)이 이루어지는 경우, 발견이 시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조작되는 경우, 주인공이 회상으로부터 깨닫게 되는 경우, 추론에 의해 발견하는 경우, 상대편의 잘못된 추론에 의해 일어나는 복잡한 발견의 경우가 있다. 발견의 가장 훌륭한 형태는 사건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제 17장시인이 언어 표현에 있어 유의할 점이다. 실제의 장면을 눈으로 보듯이 설정한다. 시인은 작중인물의 몸짓까지 스스로 행동해 보아야 한다. 시인은 자기의 이야기를 소묘하고 보편적 형태로 축약시켜야 한다.제 18장비극은 갈등 부분과 해소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갈등은 불행에서 행운으로 또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기 직전가지의 부분이며, 해소는 시점에서부터 끝까지의 운명의 전환이 시작되는 부분이다.비극의 종류는 급전과 발견이 모두 이루어진 복잡한 비극, 파토스를 일으켜주는 비극, 성격적인 비극, 장경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극의 네 종류로 나뉜다. 이는 구성요소의 수에 따른 것이다.가무단 또한 배우로 간주해야 한다.사상성과 조사법제 19장인물의 사상은 그들이 쓰는 말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것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심리과정이 실제 언사 및 행동과 일치해야 한다.조사법의 탐구 주제 중 하나는 말할 때 언어에 가해지는 어조이다.제 20장조사는 문자와 음절과 접속사와 관사와 명사와 동사와 격과 문으로 구성된다. 문자는 유의미한 음을 구성할 수 있는 불가분의 음, 음절은 무성음과 모음으로 구성되는 무의미한 음, 접속사는 유의미한 음을 하나의 유의미한 음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무의미한 음, 관사는 처음이나 끝이나 구분점을 표시하는 무의미한 음, 명사는 시간 관념을 포함하지 않는 유의미한 복합음, 동사는 시간의 관념을 포함하는 의미 있는 복합음, 격은 유사관계나 단·복수관계 및 어조의 차이를 나타낸다. 문은 유의미한 복합음이다.
    인문/어학| 2004.10.14| 4페이지| 1,000원| 조회(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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