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화학 조 Linus Pauling한문학과 ***독문과 ***심리학과 ***생활 속의 화학 1조 발표 Linus Carl Pauling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년 2월 28일 - 1994년 8월 19일)그러나 수많은 그의 업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1920년대 말 완성되고 있던 새로운 양자역학의 개념을 활용해 원자 오비탈의 혼성화(hybridization)와 공명(resonance) 등 화학결합의 핵심적인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노벨상은 바로 이 공로가 인정된 것이다.○ 소개DNA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이 자신이 쓴 《이중 나선(Double Helix)》에서 라이너스 폴링을 "당시 생화학 분야의 권위자였으며, 가장 높은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는 분자생물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마리 퀴리에 이어서 노벨 화학상과 노벨 평화상등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화학자○ 출생과 학창시절폴링은 1901년 미국의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약사였으나, 돈을 잘 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은 1903년에서 1909년 사이 오리건 주의 여러 도시로 이사 다녔으며, 결국엔 다시 포틀랜드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궤양으로 1910년에 사망한 후 어머니는 폴링과 다른 두 자녀를 부양해야 했다.폴링은 어린 시절 대단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폴링의 초등학교 친구인 로이드 제프레스는 자기 방에 작은 화학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프레스의 실험실에서 했던 실험은 폴링이 화학공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폴링은 할아버지가 수위로 근무했던 제철 공장에서 많은 실험 기구와 재료를 얻어 화학 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나 폴링은 미국사 과목을 낙제했고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이 학교는 45년 후에야 그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그때는 그가 이미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후였다.○ 대학과 대학원 시기1917년 폴링은 오리건 농업 대학(the의 모든 물질은 분자라는 기본 단위로 구성돼 있고, 분자는 다시 원자들의 화학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1백9종류의 원소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안정한 상태로 흔하게 존재하는 원소는 약 40여 종류에 불과하다. 몇 가지 안 되는 원소들이 모여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원자는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 주변에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구름처럼 둥근 공 모양을 하고 있다. 원자의 크기는 대략 수Å(옹스트롬, 10-8cm) 정도이고, 원자핵은 그런 원자의 1만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입자다. 이렇게 작은 원자나 전자의 움직임은 야구공이나 천체의 운동에 적용되는 '고전역학'으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고, 20세기 초에 정립된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한다.양자역학에 의하면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입자는 단순히 입자적인 특성과 함께 파동적인 특성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미시적인 입자는 거시적인 물체와 달리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때문에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만 오비탈(orbital)이라는 수학적인 함수를 사용해 원자핵 주변에 뿌연 구름처럼 퍼져 있는 확률분포만을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오비탈오비탈 이론에서는 s 오비탈은 구형, p 오비탈은 아령형의 전자구름을 나타낸다. p오비탈에는 아령형 전자구름이 놓인 축에 따라 다시 x, y, z 3개의 서로 다른 오비탈이 있다. 전자는 아래층의 오비탈을 채우면 연이어 위층의 오비탈로 차들어간다. 이때 최하층은 1s, 2층에는 2s, 2p, 제3층에는 3s, 3p, 3d 등으로 각 층에 마련된 오비탈 수도 달라진다. 각각의 오비탈에는 기본적으로 2개의 전자가 들어갈 수 있다. 제1층에는 1s에 2개로 총2개, 제2층에는 2s에 2개, 2p에 6개(x, y, z 각각 2개씩)로 총 8개, 제3층에는 3s에 2개, 3p에 6개, 3d에 10개(d 오비탈은 5개의 서로원자의 2s와 2p 오비탈에 있는 6개의 전자들 중에서 4개는 결합에 참여하지 않은 채 원자핵 주위에 남아 있고, 나머지 2개의 전자는 반대쪽 산소가 제공하는 2개의 전자와 함께 2개의 (공유)전자쌍을 이루어서 "이중결합"을 형성한다.이렇게 되면 산소 원자 주변에는 결합에 참여하지 않은 4개의 전자와 결합을 형성한 4개의 공유 전자가 있게 돼 최외각전자(제일 바깥층의 전자의 총 수)가 모두 8개가 되는 안정한 상태가 된다.이처럼 화학결합을 형성하면서 한 원자 주위에 8개의 전자로 안정화되는 것을 '8전자 규칙'이라고 부른다. 2개 이상의 원자가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는 여러 경우에도 루이스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복잡한 구조 해명 못해그러나 1개의 산소와 2개의 수소로 만들어진 물분자(H2O)의 구조는 루이스의 이론으로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산소는 제2층에 6개의 원자가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 중 4개의 전자는 2s와 z방향의 2pz 오비탈에 각각 2개씩 들어있고, 나머지 2개는 서로 직각인 2px와 2py오비탈에 각각 1개씩 들어있다. 루이스의 이론에 따르면, 2개의 수소 원자는 각각 x와 y쪽을 향한 산소의 2p오비탈과 결합을 만들기 때문에 물 분자에서의 결합각은 90o일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실제 물분자에서의 결합각은 104.5o로 루이스의 이론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루이스의 이론은 화학결합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으로는 유용하지만 분자의 정확한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유기화합물이라 불리는 탄소화합물의 구조는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다. 유기물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메탄(CH4)은 정사면체의 중심에 탄소 원자가 있고, 4개의 수소는 사면체의 꼭짓점에 위치해 결합각이 109.5o인 대칭적인 모양을 갖는다. 이중결합을 가진 에텐(CH2=CH2)은 삼각형의 중심에 탄소 원자가 위치하고, 2개의 수소와 나머지 탄소가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 평면 구조다.삼중결합을 가진 아세틸렌(C2H2)에서는 모든 원자가 직선으로 결합돼 있다. 벤었다. 이를 'sp3 혼성 오비탈'이라 부른다.폴링에 따르면, sp3 혼성 오비탈이 형성되면 이들 4개의 혼성 오비탈들은 탄소를 중심으로 하는 정사면체의 꼭짓점을 향하고, 오비탈들 사이의 각도가 메탄에서의 결합각에 해당하는 109.5o가 된다는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폴링은 안정한 2s의 전자가 2pz로 올라가게 되면 에너지가 높아져서 불리하지만, 결과적으로 4개의 원자와 대칭적인 모양의 분자를 형성함으로써 충분히 안정화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혼성 오비탈의 개념을 사용하면 시클로헥산과 같이 단일결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탄소화합물의 모양은 물론이고, 물(H2O)과 암모니아(NH3)와 같은 분자의 모양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만약 1개씩의 전자가 들어있는 2s, 2px, 2py, 2pz 오비탈 중에서 2pz를 제외한 3개의 오비탈만 혼성되면 정삼각형의 꼭짓점을 향한 3개의 'sp2 혼성 오비탈'이 만들어진다. 이때 혼성에 참여하지 않은 2pz오비탈은 삼각형 평면에 수직된 방향으로 있게 된다.2s와 2px 오비탈만이 혼성이 되면 직선형의 'sp 혼성 오비탈'이 만들어지고, 이 직선에 수직인 2py와 2pz 오비탈의 전자는 아세틸렌에서와 같은 삼중결합에 기여한다. 이런 혼성 오비탈의 개념을 사용하면 유기화합물과 전이금속 화합물의 모양을 매우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공명효과평면에 놓인 정육각형 모양을 가진 벤젠의 구조는 이런 혼성 오비탈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벤젠의 탄소는 sp2 혼성 오비탈을 만드는데, 이때 혼성에 참여하지 않는 2pz 오비탈은 벤젠 평면에 수직된 방향으로 있으면서 인접한 탄소 중의 하나와 이중결합을 형성한다.이 경우 탄소 주변에 만들어지는 3개의 sp2 혼성 오비탈 중에서 하나는 수소와의 결합에 사용되고, 하나는 탄소와의 단일결합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탄소와의 이중결합에 사용된다. 그런데 이중결합은 단일결합보다 그 길이가 조금 짧기 때문에 벤젠의 구조는 정육각형이 아니라 짧은 단일결합과 긴 이중결합이 교대로 배열돼 던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폴링이 프로젝트의 화학부분 책임자를 맡아주기를 원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거절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일은 폴링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됐다. 자신이 원자탄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된 과학과 과학자들을 비난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자탄 계획에 대한 비밀을 강조한 연방 정부의 구속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원자탄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와 비판을 할 수 있었다.1946년부터 폴링은 아인슈타인, 유레이 등이 주도하는 원자과학자비상위원회에 참여했다. 당시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의 개발을 반대하다 소련의 첩자로 몰렸지만 폴링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소폭탄의 개발을 반대하면서 오펜하이머를 지지했다.1950년대 초반 미국은 메카시즘)의 선풍이 불고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모두가 상대방이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또 자신이 의심받을까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이 폴링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폴링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했다. 1957년부터 폴링은 아내와 함께 대기 중 핵실험 금지를 위한 서명 작업을 시작했다. 또한 강연을 통해 대기 중 핵실험이 수백만의 생명을 방사능에 노출시킨다며 대중을 설득해 나갔다. 이 운동으로 49개국 1만 1천여 명의 과학자가 서명한 청원서가 만들어졌으며, 폴링은 이것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 폴링은 그의 책 'No More War'에서 과학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쟁의 시녀로 전락해 갔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과학이 전쟁에 봉사할 것이 아니라 평화의 시녀가 돼야 함을 역설했다.굽힐 줄 모르는 폴링의 신념은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였다. 1962년 폴링은 미국 정부가 핵실험을 재개한 것에 항의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초대한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찬에 참여해야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은 폴링을 비난하는 대신 자신.
학과: 조선해양공학과학년: 3학년학번: A387038이름: 최 민 근?보고서 주제: 동?서양의 문화적 핵심을 이해하고 어떤 점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잘 나타내는지 조사?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 동양과 서양을 비교함에 있어 문화가 가장 중용한 맹점이라 생각해서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다.?기술 방법: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인 요소들 즉, 공동체 의식 및 개인주의, 종교문화등 여러분야에 걸쳐 차이점을 기술하고 동?서양의 절충점을 제시한다.< 목 차 >>1. 주제2. 주제를 선택한 이유3.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점 비교(1)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2)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3)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경험(4) 유교문화 기독교문화(5) 기업경영문화(6)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7) 동양과 서양문화 기본비교 도표4. 결론5. 참고문헌(1)문헌1. 주제: 동양과 서양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 비교2. 주제를 선택한 이유: 문화란 인류의 지식, 신념, 행위의 총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이해 하는데 있어서 문화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 생각한다.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는 각기 다른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고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그 특성만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일 뿐이다. 동양이나 서양문화에 대한 참된 이해를 위해서는 두 문화를 같은 차원에 놓고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펴볼 때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일부분만 살펴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의 특성을 살펴보고 차이점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3.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점 비교(1)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서양인들은 자신에 대해 서술할 때 성격형용사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동양인은 자기 소개를 할 때에 주로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2남1녀 중에 장녀야” 라고 소개하는 반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물건을 소유하며, 자아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의복행동에서도 그들은 "어떻게 하면 착용자의 개성이나 선호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줄까"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자신에게 어울리고 개성있는 의복을 즐겨 착용한다. 다시 말해서 서구인들은 단순히 주위와 일체감을 갖기 위해 의복을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의복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구인은 다른 사람의 기대보다는 착용자의 이미지에 맞고 착용하기에 편리한 의복을 선호한다.반면에 동양인들은 자신에 대해서 서술할 때 사회적 맥락과 집단내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다. 동양인 화자는 상대의 신분, 장소, 시간, 주위 분위기 등을 감안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표현하며, 기존의 질서와 문화를 존중하여 가능한 자신의 강한 주장은 피하고자 한다.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의 느낌을 먼저 생각한 후 그들이 생각한 것을 제안한다. 이와 같은 '하이 컨텍스트 컬쳐'(High-context culture) 로 특징 지어지는 동양문화에서는 주위 분위기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서 의사가 진행되며, 이에 따라 피전달자는 언어로 표출되지 않는 내면의 의미까지도 파악하도록 요구되고 있다.이처럼 동양사회는 고맥락사회이다. 상대의 신분 등을 감안한다는 것으로 보아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는 신념이 있다. 쉬운 예로 영어에서 “당신”에 해당하는 단어는 “you” 하나뿐이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상대와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서 “아버지와 자식”, “선생님과 제자”라는 구체적인 신분에 대한 단어들이 있다. 또 가끔 서양인들은 우리를 보고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로 동양사회에서는 피전달자가 화자의 내면의 의미까지 파악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것에 익숙한 우리는 간접화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그리고 동양사회의 집단주의와 의복의 관련성에 대해서 우리는 동양사회가 외집단은 멀리하고 내집단을 더써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이나 부담을 주는 의복행동을 삼가하고 집단주의적 성향이 높은 일본인들은 주위와 똑같이 행동하기를 원하며, 그들의 진정한 감정표현 보다는 집단의 기대에 따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2)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동양은 주로 연역적 추리 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큰 단위의 사물을 생각하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작은 부류들을 연역해 내려 한다. 즉 철학적 방식에 유사하다.이에 비해 서양은 주로 귀납적 추리 방식을 사용한다. 사말적인 사실을 중시하고 이들을 모아서 공통점을 찾아 큰 개념을 구성해 가는 것 같다. 즉 과학적 방식에 유사하다.※ 예를 들어 주소 표기하는 방식을 보아도 이 점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동양은 한 나라에서 시작하여 그 하부 구역인 도(道) 군(郡) 면/ 리 등으로 전개하여 맨 끝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보통 자기 이름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으로 전개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가 아닐까 한다.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를 개별적 독립적 사물들의 조합으로 생각했지만 고대 중국 철학자들은 우주를 하나의 연속적인 물질로 간주했다. 같은 나무 조각이라도 중국 철학자들에게는 하나의 연속적인 물질이었지만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는 미세한 입자들의 결합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현대 동양과 서양인에서도 발견된다.동양인들은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려하기 때문에 타인의 태도나 행동에 서양인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심리학자인 지리준, 노버트 슈워츠 그리고 '생각의 지도'저자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베이징대학 학생들과 미국의 미시간대학 학생들을 비교해보았을 때 실제로 중국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결과의 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운동경기의 관람이다. 미식축구를 관람할 때, 서양인은 뒷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서서 관람하는 반면에 동양인은 주변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려 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있다.그러면 동서양에서는 '세상'에 관하여 어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변한다고 믿었다. 현대 서양인들 역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고대의 중국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고를 이어받은 현대의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 이며 현재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들은 일이 어떤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 있다면 그것은 곧 정반대 방향으로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는다.'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를 예측하지 않게 된다.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처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고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런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의 동양인들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매우 가변적인 곳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과 조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의 서양인들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을 보다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물을 주변 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개인이 그러한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3)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경험: 서양의 논있다. 그러므로 모든 독수리는 척골동맥을 가지고 있다.2번, 모든 새는 척골 동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팽귄은 척골 동맥을 가지고 있다.1번에 많은 동양 사람이 논리적이라고 동의한다. 그런데 동일한 질문에서 서양인들은 1,2번 모두에 고르게 손을 들었다고 한다. 즉 이를 볼 때 펭귄은 날지 못하니까 잘 나는 독수리보다는 왠지 새 축에 못 끼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펭귄은 새가 맞다. 즉 동양인들이 논리적 사고에 좀 약하다고 볼 수 있다.차이의 시작을 서로 다른 생태 환경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환경은 농경에 적합하다. 농경문화 바탕 위에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상업의 발전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진 상인이 형성되었고 항상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을 접하는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적 호기심이 유발되었다. 다양성의 세계 이해를 위해 형식 논리가 발달하였다. 그들에게 지식이란 부나 권력과 관계없이 유희적인 것이었다.▶ 사회구조가 주의와 형이상학적 신념에 미치는 영향.중국의 개인들은 중앙집권적인 전체적 사회의 일원이었다. 자신을 우주전체 커다란 네트워크 안의 존재로 파악한 것이다. 이에 반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굳이 외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사물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규칙을 범주화하려고 노력했다.즉 두 사회의 생태환경의 차이가 경제적인 차이를 낳고 이는 다시 사회 구조적인 차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 구조차이는 사회적 규범과 육아 방식의 차이를 낳고 우주 본질에 대한 다른 이해 그리고 지각과 사고 과정의 차이를 낳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4) 유교문화 기독교문화: 동양문화는 유교문화라 칭해도 좋은 만큼 유교정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유교는 귀족사회 중심의 윤리였으나 지배층이 사회 지도 원리로써 확산을 시도하였고 일반 평민계층들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회윤리로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활철학으로서의 유교는 동양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서 서구의 기독교적
“결혼에도 웰빙은 있다”<`여자가 다시쓰는 결혼이야기‘를 읽고 나서..>-선택의 시대 남자랑 살까? 여자랑 살까? 결혼할까? 혼자 살까? 동거는 어떨까? 때가 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인생 공식의 시대를 벗어나 결혼과 출산을 따져보고 결정하는 선택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현대 여성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그만큼 고민도 더 많아졌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개인적인 성향, 가족과의 관계를 고려해 행복한 삶의 양식을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결혼이다. 그만큼 지혜로운 의사결정과 건강한 관계맺음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성공적인 결혼과 가족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386세대 11명의 여성학자가 저술한 지침서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결혼과 가족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한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쓴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의논하고 저술했다는 것이 내 마음이 이끌렸다. 또한 이 저자들이 전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연애를 하는 대상도 모두 여자이다. 내가 본질적으로 알고 싶은 것도 여자의 심리, 행동, 마음, 삶의 방식 등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볼 때 여성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기본 개념은 물론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까지,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까지 제시되어 있다. 사랑의 기본 개념부터 결혼 후 행복한 부부가 되는 비결까지 인생을 아우르는 대사건들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재구성되고 재해석된다. 또한 세대가 바뀌면서 변하고 있는 남녀만남의 새로운 풍토(사이버팅)와 기본적인 실용 연애 전술, 이별의 기술까지,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들이 이어진다. 결혼을 결정하는 방법부터 예비부부의 준비물, 결혼 후 양가 가족들과의 관계, 부부관계, 건강한 부부싸움의 비결까지 인생과 결혼을 망라한 참고서다. 그럼 지금부터 결혼이라는 도착지를 향해 먼 항해를 시작해 보자.
YACHT1. 서론2. 요트의 개념 및 종류2-1. 요트의 정의2-2. 레저 선박의 종류2-3. 요트의 종류2-4. 요트의 역사2-5. 요트의 특성2-6. 국내 레저 선박 현황2-7. 요트의 전망3. 선형설계3-1. 주요치수3-2. Lines3-3. General Arrangement4. 차세대 에너지 - 태양열 에너지4-1. 태양열 (太陽熱)의 정의4-2. 태양열 발전의 정의4-3. 태양열 발전의 원리4-4. 태양열 에너지의 선박에 대한 적용 : 초전도 고속선4-5. 초전도선의 특징4-6. 태양열 요트의 가상 모형4-7. 실제 사용되고 있는 태양열 선박4-8. 태양광 발전4-9. 태양에너지에 대한 견해5. 결론1. 서론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여 국민의 소득 수준이 증가하면 가정 생활의 질적 향상에 대한 요구 수준도 상승한다. 통상적으로 국민 소득 10,000$ 수준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일상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자가용이나 고급 가전제품 등의 수요가 증가한다. 또한 국민 소득이 10,000$에서 15,000$ 수준으로 증가하는 과정에서는 육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레저 산업과 여러 가지 고급 관람문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축구나 농구와 같은 대중 스포츠도 더욱 조직화 된 형태로 대중화되어 가고 있고, 마라톤을 비롯하여 수영, 헬스 클럽, 인라인 스케이트 그리고 골프나 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하려는 인구의 수가 늘어 나는 양상은 현재 한국의 경제 수준에서 보여 주는 국민 여가 활용의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의 전례로 볼 때, 국민 소득 15,000$는 국민 여가 시간 활용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분수령으로 육상 레저가 담당하던 여가 시간 활용의 상당 부분이 해양레저로 옮겨가게 된다. 특히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사회적 요소와 3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지리적 요소는 그와 같은 현상을 가속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국내의 레저 시장 규모도 1990년의 4조원 수준에서 2000년에는 14조원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다.-핀킬 보트(fin keel boat)-헤비킬보트(heavy keel boat)4) 추진방식에 따른 분류-세일요트(sail yacht): 돛으로 항주하는 요트-모터요트(motor yacht): 기관에 의해 항주하는 요트-보조기관 요트: 보조기관을 가지고 돛으로 항주하는 요트5) 메일세일(mail sail)의 형태에 따른 분류-스퀘어 세일(square sail)-라틴 세일(lateen sail)-러그 세일(lug sail)-개프 세일(gaff sail)-슬라이딩 건터 세일(sliding gunter sail)-버뮤단 세일(bermudan sail)6) 선체수에 따른 분류-모노헐(monohull): 선체가 하나로 이루어진 형태로 모노헐 또는 싱글 크래프트 라 하며,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서 조타성이 뛰어나다.-카타마란(catamaran) : 선체가 두 개로 이루어진 형태로 수면에 대한 저항이 작 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요트를 설계할 수 있는 반면 조타성이 좋지 않다.-트리머랜(trimaran): 선체가 세 개로 이루어진 형태로 삼동체 또는 다동체라고 하며, 비교적 넒은 선상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속도면이나 안전성이 뛰어나다.7) 타는 장소에 따른 분류-수상요트(water yacht): 일반적으로 해수면이나 호수·강에서 타는 요트-아이스 요트(ice yacht): 얼음판 위에서 타는 요트로서 밑바닥에 스케이트가 달 려있다.-스노우 요트(snow yacht): 눈 위에 타는 요트로서 밑바닥에 스키가 달려 있다.-샌드 요트(sand yacht): 모래 사막에서 타는 요트로서 밑바닥에 바퀴가 달려있 다.2-4. 요트의 역사요트라는 말은 옛날 독일어 Jacht(Jachtschiff의 준말)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네덜란드어의 Yaght가 영어로 관용어가 되어 yacht가 되었다고 한다. Yaght는 hunting ship(추적선)이란 뜻의 작고 가벼운 슬루프(sloop)식 쾌속범선으로 14세기경 해적들에 의해 해적선으로 사용되었고, 네덜란드에서는 출몰하는 해적선을 나포격을 3천만원으로 가정) 이 시장규모로부터 국내 개발된 레저 선박이 충분한 판매 수요 및 잠재 수요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모터보트 및 요트 등의 레저 선박이 다수 수입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레저 선박의 국내 개발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와 년간 80억불의 거대한 미국 레저 선박 시장에의 진출에 따른 해외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또한 현지가 10만불(약 1억 3천 5백만 원)선의 30 ft급 세일 요트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경우 운임, 세금 등이 추가되어 국내 판매가는 3억원을 초과하나 동급의 세일요트를 국내 생산하는 경우 생산원가는 약 9천만원이며 최종판매가는 약 1억 5천만원으로 추정되어 국내 개발된 레저 선박이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레저 선박의 국내 개발에 의해서 수입 레저 선박 보다 저렴한 레저 선박을 공급함으로써 국내 해양레저 인구의 저변확대 및 해양레저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2) 레저 선박관련 기술력우리나라는 세계 제 1~2위의 조선 산업국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대형 선박의 설계, 성능 평가 기술 등을 갖추고 있다. 대형선박의 주요 핵심기술인 선형설계 기술, 추진기 기술, 유체성능해석 기술, 선실 및 의장 기술 등은 레저 선박의 주요 핵심기술과 공통되는 분야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에 도달한 대형선박관련 기술과 관련 연구 성과, 연구시설 및 연구인력을 충분히 활용하고 적절한 형태의 지원 체계만 뒷받침된다면, 4~5년 내에 우수한 성능의 경쟁력 있는 레저 선박의 개발 및 건조, 국산화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국내의 중소형 조선소에서 연간 약 3,000척의 10톤 미만 FRP어선이 신조되고 있다. FRP관련 기술인 의장품 및 욕조 등의 대형 생활용품 등이 수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레저 선박 건조의 기본이 되는 FRP가공 기술도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어 정부 주도의 적절한 기술지원만 이루어진다면 국내의 중소형 조선소 및 FRP어선 건조업체중의 일부는 충분한 경쟁력비하면서 다시 열교환기로 루프를 구성하여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열교환기는 항상 열에너지를 축적하고, 밤이나 비가 올 경우에는 발전할 수 있도록 증기터빈에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태양열 발전에 사용하는 터빈에는 증기터빈ㆍ가스터빈ㆍ유기매체 터빈등이 있는데, 집열온도를 300~500。C정도로 가정한 대용량형의 증기 터빈을 주로 사용한다. 집열온도가 낮은 경우에는 끓는점이 낮은 프레온가스 등의 매체를 사용한 유기매체 터빈을 이용한다. 일반전력공급외에, 폐열을 지역난방에 이용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1) 홈통형 집광기홈통형 발전 시스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물선형으로 구부러진 홈통처럼 생긴 집중장치와 그 초점들의 연결선에 길게 자리한 흡수장치이다. 집중장치로는 보통 포물선형으로 구부러진 긴 금속반사판이나 유리거울을 사용하는데, 이 장치가 길게 남-북 방향으로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축은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해가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움직일 때 집중장치를 해를 따라 돌게 해서 가능한 한 많은 직광을 받도록 한다. 흡수장치는 긴 관의 형태로, 내부에는 섭씨 400도까지 올라가는 기름이 들어 있다. 이 뜨거운 기름은 물을 증기로 만들어서 증기터빈을 회전시키고, 이 회전에 의해 전기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남부에는 전체 발전용량이 354메가와트에 달하는 홈통형 발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1980년대 중엽에 세워진 이 발전소에서 1998년까지 생산한 전력의 양은 약 80억 킬로와트시에 달한다. 홈통형 시스템은 발전만이 아니라 공장의 제조열을 얻는 데도 쓸 수 있고, 흡수장치의 관 속에 폐수를 흘려보내 자외선을 흡수하도록 해서 폐수 정화처리에도 사용된다.2) 접시엔진 집광기접시/엔진 시스템은 여러개의 접시형 반사판을 반사된 빛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이도록 오목거울 형태로 조합하고 초점에는 흡수장치와 엔진을 설치한 모양을 하고 있다. 햇빛은 접시에서 반사되어 흡수장치로 집중되고, 흡수장치에서는 흡수된 에너지를 엔진의 작용공업이 1백58인승, 30노트급 공기부양선을 개발했고, 현대중공업은 이탈리아에서 기술을 도입해 71인승 32노트급 수중익선을 건조했다.1980년대 말부터는 일본, 노르웨이, 프랑스등은 21세기 해상화물 수송의 큰 역할을 예상해 초고속 화물선의 개발을 정부의 재정지원하에 수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대형 7대 조선소가 연구조합을 결성해 1천t의 화물을 싣고 파고 5m의 해상에서도 50노트(시속 93km)의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는 테크노 슈퍼라이너(Techno Superliner, TSL)라는 초고속화물선을 정부와 조선소의 지원으로 89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내년에는 초고속 실험선의 시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도 역시 1천t이상의 화물을 싣고 50노트의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는 초고속 화물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 90대와 승객 450명을 싣고 50노트 이상으로 운항할수 있는 카페리선을 개발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세모가 최대속력 50노트의 공기부양선을 1992년에 개발해 인천-백령도간 항로에 지난 1月부터 본격적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에서 개발한 42노트의 쌍동여객선도 올해 상반기에 시운전할 계획이다. 또한 대우조선공업에서는 해사기술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복합지지형 초고속선형을 이용한 50노트급 쌍동형 초고속페리를 서례하고 있다.초고속선 개발에 필요한 핵샘기술은 크게 고속화 기술, 대출력 추진장치기술, 선체구조 경 량화 기술, 선체 운항자세 제어기술, 설계 및 건조기술 등의 다섯가지 기술로 구분된다.고속화 기술은 가능한 한 적은 동력으로 요구되는 속력을 얻을수 있도록 선박의 중량을 지지하는 세가지 힘, 즉 부력, 양력, 공기압력을 적절히 조화시켜 저항을 최소화시켜주는 복합지지형 선형기술을 말한다. 선진 조선기술국은 오래된 조선기술과 훌륭한 연구시설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해 초고속 성능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핵심기술을 확보, 어떠한 형태의 복합지지형 초고속 선형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였다.
◆ 보고서 주제: 중국 or 일본 양국에서 역사적 의의가 깊은 인물을 대상으로 생애와 관련지어 시대상을 설명하기.◆ 손문(쑨원)을 선택한 이유: 중국의 공산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국 혁명의아버지라 불리우고 신해혁명을 일으켜 중화민국을 건설한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선택하게 되었다.◆ 기술 방법: 손문(쑨원)의 생애를 설명하고 생애와 관련지어 역사적 의의와 시대적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도록 기술 하였다.※ 이하 내용부터는 손문(쑨원)을 괄호 표기 없이 '손문'으로만 기재 하겠음.《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손문(孫文)(1) 손문(孫文)의 생애(2) 손문(孫文)에 대한 평가2. 신해혁명(辛亥革命)(1) 역사적, 시대적 배경- 서양 제국주의 속에서의 나약한 중국 , 淸- 끊이지 않는 변화의 물결- 신정의 폐단과 인민들의 반감(2) 중국혁명동맹회(3) 신해혁명의 불씨 - 무창봉기(4) 중화민국의 탄생(5) 원세개의 등장 - 군벌체제로 변모한 혁명3. 신해혁명의 의의(1) 부르주아에 의한 혁명(2) 봉건주의에 대한 승리(3) 실패한 혁명(4) 사회주의로의 발전4. 삼민주의(三民主義)5. 5.4운동Ⅲ. 결론『참고문헌』'중국 혁명의 아버지...손문'Ⅰ. 서론손문은 중국근대화 시기에 혁명의 지도자로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삼민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체제의 개혁을 시도한 실천적인 이론가였으며, 거듭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항상 미래의 광명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한 인물이었다. 이런 면에서 손문은 그 자신으로도, 또 그가 남긴 사상으로도 중국 혁명사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중국이 청일전쟁의 충격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살았다. 손문은 강유위와는 달리 서방의 열강에 대항할 수 있는 근대국가의 건설은 청조지배 아래서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만주 이민족지배를 먼저 타도한 후 민주주의에 따르는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혁명운동을 시도하였다. 즉 그는 당시 체제에 반하는 혁명운동을 추구하였던 것이다.그는 중국 최초의 민주공화국인려 중국 전체의 통일된 중화민국 수립을 위해, 원세개를 끌어들여 청나라 조정을 완전히 타도한다는 조건으로 대총통의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였다.그 후에도 사회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송교인이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일어난 제2혁명이 실패하자, 또다시 일본으로 망명, 중화혁명당을 창설하고 군벌들이 얽혀 싸우는 틈에 호법운동을 벌여, 광동을 중심으로 정권수립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군벌 뒤에 제국주의가 있다는 것과, 인민들과 단결하여 반제? 반 군벌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러시아혁명을 본받아 국민당을 개조한 뒤, 공산당과 제휴(국공합작), 노동자?농민과의 결속을 꾀하였다. 그리고 국민혁명을 추진하기 위하여 북벌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혁명은 아직 이룩되지 않았다 는 유언을 남기고 베이징에서 객사하였다. 1929년 그의 유해는 난징 교외의 중산릉에 묻혔다.(2) 손문에 대한 평가손문의 정치사상은 삼민주의로 대표되는데, 그것은 태평천국의 혁명적 전통을 이어받고, 19세기의 자연과학(진화론)? 프랑스의 혁명사상(인민주권설)과 영국의 사회학설(H.조지의 單稅論 등)을 받아들여 중국 현실에 맞게 적응시킨 것이었다. 만년에는 연소? 용공? 농공부조의 3대 정책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미연에 막으려는 자본절제 와 토지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경자유전의 견해를 표명하여, 제국주의 단계의 후진국 혁명이론으로써 특권과 독점을 반대하는 삼민주의로 크게 발전시켰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그는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군벌 뒤에 제국주의가 있다는 것과, 인민들과 단결하여 반제?반군벌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혁명을 본받아 국민당을 개조한 뒤, 공산당과 제휴(국공합작), 노동자?농민과의 결속을 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정확한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당도 그를 추앙했다. 사망 당시 국민당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삼민주의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구국의 목적에서 최선의 방법이었고 공산정권이 세워지기 전까지의 근대 중국혁명의 뿌리적 역할을 한 혁명이념이었다.- 신정의 폐단과 인민들의 반감신정의 가장 큰 폐단은 민중에게 터무니없는 중세부과였다. 이러한 중세의 부과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농민이나 도시빈민층은 각지에 반세투쟁이나 쌀소동, 항량, 항조 폭동을 일으켰다. 190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양자강 중류, 하류 유역에서만 90회 이상의 크고 작은 폭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역시 청조지배를 약화시키고 흔들어버린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1905년에는 일본의 도쿄에서 대동단결하여 손문의 주도 아래 삼민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중국동맹회를 결성한 혁명파는 입헌파와 이론투쟁을 벌이면서 청조타도의 무장투쟁을 화중, 화남의 각지에서 전개하였다. 그러자 혁명운동의 고양에 대처하기 위하여 청조는 1906년 입헌정치의 실시를 선언했고 입헌파의 국회개설 제원운동에 대해서는 뒤늦게나마 1911년 5월에 책임 내각을 조직하여 대응했다. 그러자 중국 최초의 이 책임내각은 만주족 중심의 황족내각이었기 때문에 입헌파의 실망과 반감은 컸다. 게다가 황족내각은 간선철도 국유화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에 각지에서는 입헌파를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고양되었고 특히, 사천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혁명파가 지도하는 민중의 반청 무장투쟁이 전개되었다. 열강의 침략이 격화되고 청조에 대한 환멸과 불만이 높아가는 가운데 1911년 10월10일 혁명파가 거느린 신군이 무창에서 봉기했다. 이것이 신해혁명이다. 1911년 10월에 청조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고, 1912년 1월에 공화정체제의 중화민국이 수립된 변혁을 흔히 신해혁명이라고 부른다.(2) 중국혁명동맹회1905년에는 손문이 다시 동경에 도착하여 각 혁명단체와 유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때 각 혁명단체들은 협의를 거쳐 새롭게 통일된 혁명조직으로 ‘중국동맹회' 를 결성하였는데, "만주족을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며 민국을 창건하고 평5명이 황족이라서 '황족내각'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는 내각을 조직하지만, 이로 인해 입헌파마저도 큰 실망을 하고 만다. 소위 입헌군주국이라는 것은 사기극임을 조정 스스로 남김없이 폭로하여 버리니 남은 것은 오직 한 길 혁명뿐이었다. 청 왕조는 최후 한 차례의 목숨을 연장할 기회도 잃어버렸던 것이다.동맹회가 입헌개량파와 혁명과 개량 어느 것이 옳은가를 가지고 논의하는 가운데, 청조정에서는 연거푸 가짜 입헌국 연극이나 하고 있었던 셈인데, 이 과정에서도 청 왕조를 타도하려는 반란은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동맹회의 성립시기에서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불과 몇 년 동안에 10여 차례의 이른바 '기의'가 발생하였던 것이다.청 왕조는 혁명의 열화를 박멸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동분서주했다. 1911년 청조정이 호북성 등의 군대로 사천동지군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는 사이에, 혁명의 봉화는 호북성에 있는 중국의 중부지방 무창에서 먼저 올랐는데, 이것이 청 왕조를 뒤엎어버린 '무창봉기'이다.(3) 신해혁명의 불씨 - 무창봉기당시 중국인들이 자비로 건설하던 철도공사가 별 진척이 없자 청 정부는 이를 국유화하고 차관으로 건설하려 했다. 이에 사천에서 철도국유화에 반대하는 보로운동이 일어나 폭동으로 확대됐다. 폭동진압을 위해 무창에 주둔하고 있던 군이 사천으로 출동했는데, 그 틈을 이용하여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따라서 신해혁명은 무창기의 또는 무창수의라고도 부른다.1911년 10월 11일 중국 호북성의 성도 무창에 주둔 중이던 청나라 군대 사단장 여원홍에게 일단의 반란군이 들이닥쳤다. 전날 ‘청조 타도, 민국 수립'을 내걸고 봉기한 군인들로 이들은 비밀 혁명 조직인 공진회와 문학사가 이끌고 있었다. 숫자는 약 6천명. 이 지역에 주둔 중인 청나라 군대의 3분의 1이 넘었고 잘 조직돼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지역을 점령하고 호북군 정부를 수립했다.혁명군은 여원홍에게 최고 지도자인 도독에 취임할 것을 종용했다. 봉기 과정에서 정부군에 의해 지도부가 궤멸된 때문이었다. 반란군과 아무 관련 지도자로 하는 민주혁명파가 공포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교육 등의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정채고가 법령은 사회 전체에서 필요로 하는 현대화에 대한 요구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중화민국 성립 초기에 중국 부르주아 계급 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적 현대화에서의 정치 제도적 현대화를 최고조에 이르도록 추진했음은 분명하다. 또 이것은 중국 부르주아 계급의 민주주의자들이 중국에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당시 중국사회에 현대화의 맛을 보게 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에 이 국면이 능히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었다면, 중국의 민주화와 현대화의 추진은 매우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막 태어난 현대적 요인은 아직 유치하였고, 오랫동안 버텨온 반현대적 요소는 몹시 두터워서 민국성립 후 얼마 안 있어 구세력은 곧 회복되어 나타났던 것이다.(5) 원세개의 등장 - 군벌체제로 변모한 혁명신해혁명은 또 한 명의 뜻하지 않은 인물을 역사의 전면에 부상시켰다. 남방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확대되는 혁명에 놀란 청 왕조는 한인 관료로 군부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얻고 있던 원세개를 총리로 기용하여 혁명을 잠재우려 했다. 1908년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가 즉위한 후 고향에 은퇴해 있던 원세개는 화려하게 복귀하여 반란의 진압에 나섰다. 원세개의 군대가 한구와 한양을 점령하는 등 위력을 발휘하고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양측은 타협을 시도했다. 손문이 청나라가 폐지된다면 총통직을 원세개에게 양보하겠다고 제의했던 것이다. 원세개가 이를 받아 들여 이듬해 2월 선통제 부의를 퇴위시킴으로써 마침내 청은 268년 만에 막을 내렸다.결국, 그는 혁명파의 임시 대총통 손문을 사임시키고 1912년 2월 임시총통에 취임함으로써 중국을 정식 탄생시키고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 뒤 1913년 3월 국민당 당수 송교인을 암살하고 다수파인 국민당을 탄압하였으며, 열강과 차관협정을 맺어 그 힘으로 리례쥔? 보원위 등의 토원군을 진압하였다. 이것을 제2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해 1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