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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발달 일기
    사랑에서 ‘이별’이 가지는 의미는?( 영화 ‘새드무비’에서의 이별은? )인문학부 / 0310125 / 박 윤 미우리는 살아가면서 행복을 추구하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것과 사랑에 대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한다. 우리들은 이 세가지 행복 중 사랑에 대한 행복을 많이 찾고는 한다. 사랑은 사람마다 다른 방식을 가지며 다른 표현으로 사랑을 나눈다. 다양한 사랑만큼이나 헤어짐도 다른 방법과 다른 표현을 가진다.사랑과 이별은 색깔은 다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영화 ‘새드무비’에서 잘 보여주었고, 네 가지의 슬픈 이별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것 같다.네 커플의 서로 다른 이별 이야기 중 엄마 주영 (염정아)와 아들 휘잔(여진구)이의 이별은 다른 커플들의 이별보다 가장 슬프게 다가왔다.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휘찬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일기장에 표현하고 그런 일기를 본 주영은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영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휘찬은 자신이 볼 수 있을 때 엄마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엄마가 계속 아팠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러다 휘찬은 우연히 발견한 주영의 일기장으로 엄마와 한 층 더 가까워 지지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렇게 엄마 주영과 다른 휘찬은 서로 이별을 조금씩 준비해 가고, 비 오는 날 ‘엄마 죽지마’라고 울며 말한다.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엄마 주영과 아들 휘찬의 애절한 사랑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눈물을 안겨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의 아픔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 그러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린 것은 엄마를 보내야 하는 아들의 아픔보다는 가까워 진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의 사랑에 먼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헤어짐이 다른 커플들의 헤어짐보다 진한 눈물로 남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사실 이별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이별은 영화제목과 같이 모두 슬픈 이야기 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별은 그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별을 소재로 한 영화 이지만 제목과 달리 이별의 아픔을 통해서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심이 담긴 사랑을 깨닫게 되는 시간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네 커플은 이별을 맞이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의 이별 방식과 형태와 표현 등이 다르지만 ‘헤어짐’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나같이 슬퍼서 눈물이 나고 힘들어 한다. 그저 헤어져서 슬픈 것이 아닌 이별선고와 함께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순간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이별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것이다.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아 갈 수는 없다. 만약,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여 살아간다면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내기 때문에 인간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감정들의 깊이가 다르지만 사람들은 기쁘고, 행복하고, 슬프고, 힘들어하는 감정의 모습은 같다. 영화 제목은 모순을 가지지만 이별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별은 더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사랑에서 이별이 가지는 의미는 헤어짐의 시간을 통해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별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독후감/창작| 2008.12.16| 1페이지| 1,000원| 조회(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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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중 무대의 논픽션 궁중 소설
    궁중 무대의 논픽션 궁중 소설 - , , 목차1) 궁중 소설의 개념2) 계축일기1. 들어가면서2.작품해설3.계축일기의 시대적 배경4.창작동기5.이본6 .작자-작자에 관한 논란7.「癸丑日記」의 장르 또는 양식적 성격8.「계축반정론」과 「서궁일기」와의 관계9. 작품의 허구성10. 소설적 구성11. 결론3) 인현왕후전1. 들어가면서2. 작자3. 창작연대4. 배경과 주제4. 인물별로 살펴보는 인현왕후전5. 인현왕후전과 사씨남정기 비교6. 결론4) 한중록1.주제와 내용2.역사적 배경3.작자4. 其一의 성격5.결론5) 궁중소설의 위상참고문헌1)궁중 문학의 개념궁중문학은 봉건시대 최고의 통치자가 거처하던 궁궐과 그의 친족이 거처하던 궁가, 궁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하거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쓴 작품을 말한다. ,< 인현왕후전>, 은 궁정문학, 또는 궁중문학으로 분류되어 늘 함께 거론되었다. 그것은 이 작품들이 조선조 역사에서 한 장을 장식하는 큰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궁중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성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작품의 생성배경에 초점을 둔 것으로 작품의 내재적 질서와 원리를 존중한 장르 구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작품 연구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아직 장르의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혼란이 거듭되었다. 김용숙은 경직된 장르론으로는 이 작품들의 성격을 완전히 규명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P.hemardi 의 탈 장르적 입장에서 시도된 주제적 양식에 귀속시켜 실기문학 이라는 장르를 제시했다. 고소설에서 실기라는 명칭이 붙은 작품군을 발견하고. 이들 작품이 지닌 공통점을 추출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실기 문학의 장르 모색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작품의 주인공들은 전쟁이나 격동기를 살아가는 동안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실존 인물들이며, 그들이 겪은 사건들이 문학으로 승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의 내용을 역사 기록물과 비교, 검토하여 ‘실기문학’의 하위 개념으로 ‘궁정실기문학’이라는 장르를 제시긔뉵신뎐」은 인목대비 관련 사건과 유사한 내용의 것이거나 교육적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채록되었던 것임을 고찰했다. 그리고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 「계축반정록」은 표제에 써 있는 대로 반정에 관한 사건만을 중심으로 하여 기술했던 것이 아님을 밝혔다.9. 작품의 허구성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었음에도 인물과 사건을 표현, 서술함에 작자가 의도적으로 인물을 새롭게 창조해 등장시키고 있다. 작자는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광해군과 仁穆大妃를 서로 대립되는 인물로 작품 속에서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이들이 펼치고 있는 사건들은 사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의 즉위. 임해군 옥사, 계축옥사, 영창대군 사건 등 크고 작은 많은 사건을 묘사하면서 작자는 의도적으로, 물론 사실을 잘못 인식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조선왕조실록』과 야사를 보면 광해군은 재위기간중 對明, 後金과의 외교정책에서 놀라울 정도의 치적을 보이고 또한 세자로 책봉되기전에 선조가 그의 인물이 總名好學이며 이 때문에 세자로 세우고 싶어 대신의 의견을 묻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모든 신하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고 선조가 병을 이유로 禪位할 것을 명했을 때도 일곱 번이나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던 효심이 지극했던 인물로 나타난다. 또한 본문의 내용과 결부되는 부분 중 광해군의 즉위후 임해군 살해에 관해서도 본문과 다르게 『실록』에서는 “광해군은 단호하게 형제의 정 때문에 처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계속해서 강력히 대의를 위해 처형할 것을 주장하게 된다. 이런 임해군 변사를 마치 「癸丑日記」에서는 광해군이 주도한 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인목대비가 선조 사후 拜陵을 원했을때도 광해군이 막았던 것처럼 묘사했지만 이는 사실 조정에서 막은 것으로 『실록』의 기록을 보면 광해군이 陵行을 이룰 수 있도록 무척 노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후에도 광해군은 조정과 대비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대비의 편에 서기도 했으나 그 뜻이 제대로 이루지는 전제와 빈번한 하화, 왕권과 신권의 대립양상, 소수 권력층의 정횡과 수탈 등의 폐해는 왕도정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에 배경이 되는 숙종조 역시 역사상 당쟁이 심했던 시기였다. 당쟁의 사건은 주로 지배층 내부의 정치적ㆍ이념적 갈등을 서사화한 것인데 그것은 신료들끼리의 갈등에서 임금과 신료간의 갈등으로, 때로는 왕권과 신권간의 갈등의 양상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다.)5. 인물별로 살펴보는 인현왕후전1)인현왕후(1) 인현왕후의 출생 및 성장과정① 출생의 신비화(비범성)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현종 8년(1667년 4월 23일)에 서울의 서부 반송방 사저에서 출생했는데, 태중시부터 기이한 시몽이 많아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영웅소설 주인공이 그렇듯이, 탄생초기에서부터 그 묘사가 과장되고 규격화 되어있다.“모부인(母夫人) 송씨 기이한 신몽(神夢)을 꾸시고 정미(丁未) 사월 이십 삼일 탄생하오시니, 집 위에 서기 일어나고 산실에 향취옹실(香臭?室)하여 오래 되도록 없어지지 않으니 부모 지기(知機) 하심이 있어 가중(家中)에 말을 내지 못하게 하시더라”)생전에 도덕적 행적이 탁월한 인물의 탄생 묘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한 몽조나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거나 그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서사문학의 전통에서 고조선 단군, 고구려 주몽, 신라 박혁거세, 가락국 수로왕 등의 탄생이 신성화되어 있고, 성씨 시조의 탄생설화에서도 주인공을 모두 신비한 몽조나 기이한 행적 등을 그려 신성화하고 영웅화하였다.② 인현왕후의 성장과정그는 17세기 중세적 질서 속에서 병조판서 민유중을 부친으로, 영의정을 외조부로 둔 명문가의 따님으로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란다.여공재정이 민접 신이하사 일백 신령이 가르치듯 하시나 안색에 나타내시지 아니하시고 유정유일하시고 숙연하사 회포를 남이 알지 못하고 무심무려한 듯이 휴연하신 성덕이 유화 천여하사 덕행 예절이며 효의 특출하사 유한정정하시고 단일 성장하시고 너른 도랑이 어위하시고 백행이 구비하시니 종일 단 인현왕후의 즉위와 자신의 강등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내 만민의 어미요, 세자 있거늘 어찌 너희가 무례히 굴리요 내 부득이 폐비의 절을 받고 말리라’ 하며 격분하고 발악하며 중전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하였으며, 심지어는 왕 앞에서 밥상을 엎어버리는 행동까지 하면서 희빈으로의 강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4)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음희빈의 간악 방자함을 절분히 여기시되 세자를 보사 희빈을 존봉하고 무릇 공상범절(供上凡節)을 정궁 버금으로 하고 궐내 영숙궁 취선당에 거처하게 하시니 은영이 자못 호탕한지라. 사갈 시랑이라도 제 죄를 짐작하고 지극 감격할 바이로되 장씨 외람히 곤위에 있어 일국이 추존하고 상총이 온전하다가 졸지에 폐출하여 희빈에 내리니 앙앙분노하고 화심이 대발하여 전혀 원심이 중전께 돌아가니 불손한 언사와 패악한 흉심이 불 일어나듯 하여 세자를 볼 때마다 난타하니 마침내 병이 들지라. 상이 대로하사 세자를 영숙궁에 못 가게 하시니 세자는 이따금 아뢰되, “어이 어미를 못 보게 하시나이까.” 하며 눈물을 흘리니, 상이 위로하사 놀 걸주어 중전 슬하에 두시니 후가 심히 사랑하시니 생각지 아니하더라.)위의 지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장씨는 졸지에 중전의 자리를 빼앗기고 희빈으로 강등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낳은 세자조차 자신의 거처에 가지도 못하도록 격리 당하여 마음 놓고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장씨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가 없었고, 자신의 처소에는 숙종의 발길도 아주 끊겨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는데, 장씨는 이러한 처지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 순전히 인형왕후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인현왕후 처소의 벽에 귀를 기울이며 염탐을 하기도 하며, 세자빈을 얻자 생모인 자신보다도 인현왕후가 세자빈의 효도를 받게 되는 것에 더욱 분해 하다가 장희빈은 무속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한다.오직 장씨 심사는 전 같아서 고침이 없으며 세자는 기출이로되 세자빈을 얻어 무궁한 영화와 극진한 효성을 중궁에서 혼자 보시는가 하여 오매에 유연수가 서른이 다 되도록 자식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중 하나로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함을 근심하여 숙종과 유연수에게 득첩을 권하게 된다. )무진년 정월에 상의 춘추가 삼십이 되시나 농장의 경사를 보지 못하심을 근심하시는지라, 후께서 깊이 염려하사 일일은 조용히 상께 고하여 어진 후궁을 뽑아서 자경 보심을 권하신대....)유한림의 부부 성친한지 벌써 십년이 넘고 언긔 거진 삼십에 가까웠으나 담나 한날 자녀가 없으니, 부인이 깊이 근심하여 한림을 대하야 탄식하여 가로되, “첩이 기질이 허약하야 생산할 여망이 없삽고 불효삼천에 무후위대라 하오니, 첩의 무자한 죄는 조문에 용납지 못할 것이오나 상공의 널브신 덕택을 입사와 지금까지 부지하옵거니와, 생각건대 상공이 누대 독신으로 유씨 종사의 위태함이 급하온지라, 원컨대 상공은 첩을 괘념치 마시고 어진 여자를 택하야 농장지경을 보시면 문호의 경사 적잖고, 첩 또한 죄를 면할까 하나이다.” ....중략....“재상가의 일처일첩은 예전부터 있는 일이옵고 또 첩이 비록 덕이 없사오나 세속 부녀의 투기하는 것은 더러이 아는 바이오니, 상공은 조금도 염려치 마소서” )이것은 한 사람의 여성이기보다 가문 유지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행동으로, 유교적 가부장제의 모범적 이상을 실천한 것이라 볼 수 있다.결국 인현왕후와 사씨의 진심어린 청에 이기지 못하여 숙종과 유연수는 득첩을 하게 되고 각각 장희빈과 교씨에 의해 자식을 보게 된다. 인현왕후와 교씨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처럼 사랑으로 보살피는 점 또한 유사하게 나타난다. 첩과 그 자식을 투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주는 모습에서 인현왕후와 사씨의 미덕을 볼 수 있다.차세 동 시월에 희빈 장씨 처음으로 왕자를 탄생하니 상의 과애 하심은 이르지 말고 후가 대열하사 어루만져 사랑하심을 기출같이 하시니 )교씨 이미 아들을 낳으매 한림의 대접이 더욱 두려워서 사랑이 비할데 없으므로 백자당을 떠날 날이 없으며, 아이의 이름을 장주라 하고이다.
    인문/어학| 2006.11.26| 43페이지| 2,000원| 조회(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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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조의 개관과 역사적 전개 평가A+최고예요
    시조의 개관과 역사적 전개1. 시조의 개관시조는 고대 시가의 전통에 그 기원을 둔다. 그 후 중세․근세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한국 민족의 호흡에 가장 알맞은 시형으로 계승 발전되어 온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조는 한국 문학사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압도적이다. 그리하여 시조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한국 시가의 대표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1-1 명칭 : 단가(短歌), 혹은 시조(時調 - 조선 영조 때 창곡상의 명칭인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인 말)‘시조’라는 명칭은 조선왕조 영조 때에 비롯된 것으로 보아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조라는 명칭의 원의(原義)는 ‘시절가요(時節歌謠)’ 즉 ‘당대의 유행가요’라는 말이 줄어서 된 말이므로 엄격히 말해서 시조라는 명칭은 문학 장르의 명칭이라기보다 음악 곡조의 명칭이라고 하겠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와서 서구 문학의 영향을 입어 과거에 없었던 문학 장르, 즉 창가(唱歌)․신체시․자유시․산문시 등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들과 우리의 전통적인 옛 시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3章 45자 내외의 특정한 형태를 갖춘 이 시형을 음악상의 명칭인 ‘시조’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본다.그런데 이 시형은 ‘시조’라고 부르기 전에는 ‘단가(短歌)’라고도 하였고, 어떤 이는 ‘시여(詩餘)’ 또는 ‘신번(新翻)’․‘장단가(長短歌)’․‘신조(新調)’라고 일컬어 왔었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글로 지어졌고, 노래로 불려졌던 시조는 문학상으로는 ‘시조시형’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동시에 음악상으로는 ‘시조창’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불려져 왔다고 하겠다.1-2 기원시조의 기원에 관한 학자들의 설은 다양한 만큼이나 분분하다.먼저 시조의 기원을 우리의 전통 시가에서 찾는 학설을 보면, 우리의 원시종교였던 샤머니즘의 신가(神歌)로 보는 이도 있으며, 신라 향가나 무당의 노랫가락이 모두 시조체인 것으로 보아 그 기원을 삼국시대부터로 보기도 하며, 그 보다는 후 시기리 민족 생활과 민족 문화의 뒷받침이 되어 온 불교가 고려 말기에 들어서서는 누적된 폐단으로 말미암아 백성과 나라를 해치는 화근으로 전락되자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각광을 받게 된 주자학의 등장과 시조 형태의 완성이 때를 같이 한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시조는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서의 주자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유학도들에 의하여 창조된 새로운 시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말 충의지사들의 회고가를 비롯하여 조선왕조 건국 당초의 송축가 및 사육신의 절의가 등의 내용이 모두가 유교적인 충의사상이 지배하고 있음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이러한 유교 사상 외에도 시조에는 여러 가지 주제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음 항목을 통해서 살펴보겠다.1-6 특징 및 의의(1) 시조는 고전 시가 형태 중 가장 오랜 동안을 우리 겨례와 함께 하고 내려온 시가 형태이다. 시조는 고전 문학으로 시작되어 그의 기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고유의 시가 형태이다.(2) 우리의 고전시가 중 양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고 또 작가면으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시조로써 그들의 감정과 정서를 읊었다.(3) 고전시가 중 가장 단형의 시가이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엇시조와 사설시조로 발전되면서도 처음 형성된 기본형이 그대로 보존되었다.(4) 신라 향가로부터 시작된 감탄구는 속요와 경기체가를 통하여 후대로 연속되었고 또 그것은 시조에 와서도 종장 시구에서 그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즉 완성형의 향가인 십구체 향가에서 쓰인 감탄사는 시조에 와서 아희야, 어즈버, 아마도, 두어라 등의 구로 다양하게 쓰였다. 물론 이들의 구는 허사와 실사의 양면적인 의미로 볼 수 있지만 전통시가 여음의 계승임은 누구나 인정해야 할 것이다.(5) 고전문학 형태 중 그 시대의 전 사회계층이 총망라된 시가였다. 다른 시가 형태는 대체로 일정한 사회계층에만 국한된 문학이었으나 비로소 시조에 와서야 온 백성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 문학이 되었다.(6) 시조의 주제상의 특질은 애정 흐르는 물소리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옛날 영화로웠던 시대에 대한 안타까운 회상과 작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망국의 슬픔이나 분함보다는 잊어버리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점에서 일반적인 회고가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이성계의 오른팔로 개국의 일등 공신인 작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하고도 남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고려 유신으로서의 일말의 애수와 마음속의 괴로움이 풍기는 것을 보면, 이 시조의 문학성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②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면서 새 삶을 추구하기를 촉구하는 태도 - 태평성대 구가.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면서 새 삶을 추구하기를 촉구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노래에는 이방원의 가 대표적이다. 또 조선 왕조가 정치적 안정을 이룩함에 따라서는 왕조가 표방했던 유교 지향의 작품과 자연과의 조화를 노래한 작품이 보이게 된다. 맹사성의 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태평한 시대를 노래하면서 이것이 모두 군왕의 덕이라고 하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이는 자연 속에 유유자적하는 강호가도의 노래로 태평성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또 자연과 함께 하는 물아일체의 삶을 노래한 이현보의 가 있다. 주세붕의 는 유교적 덕목에 맞추어 생활할 것을 설득하고 권면(勸勉)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의 시조는 정철의 등으로 이어진다.< 강호사시가 - 맹사성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탁료계변에 금린어 안주로다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강호에 봄이 찾아드니 참을 수 없는 흥취가 저절로 나는구나.막걸리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서 잡은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 좋구나.이 몸이 이렇게 한가롭게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혜이시다.- 이같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근원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은혜로써 비롯되었다는 뜻을 담은 종장이 반복되는 연시조로서, 그 뒤 수없이 쏟아져 나온 서경시의 한 전형이 되었다. 언뜻 보아 자연시(自然詩)처럼 보이는 이들 작품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도 유교적인 충의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가르치고 계몽하는 교훈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훈민가 - 정철 >아버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두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하늘같은 가 업슨 은덕을 어데 다혀 갑사오리.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기르시니,두 분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살아 있었겠는가?하늘 같이 높으신 은덕을 어느 곳에 갚아 드리오리까?- 송강 정철이 그의 나이 45세로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그곳 도민(道民)의 교화를 목적으로 지은 훈민가(訓民歌) 16수이다. 계몽적. 교훈적 노래지만 문학적 기교가 세련되어 있어 작가의 문학적 안목을 엿볼 수 있고, 연시조의 형태를 취했으나 각 수는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다. 제시된 제 1수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권장하고 있다.㉢ 설득과 교훈이 전면에 강조되는 시조와는 달리 이념 지향과 조화의 태도를 시적으로 변용해 드러낸 작품.전 6곡 언지와 후 6곡 언학이라 하여 모두 12수로 이루어진 이황의 은 자연에 뜻을 두고 거기서 학문을 배운다는 취지를 담은 것인데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작품이다. 그와 비슷한 이이의 는 주희의 을 본받아 춘하추동의 계절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몰입해 인성을 닦고 배움을 더하는 태도를 드러냈고, 권호문의 도 자연에 은거하는 것을 노래했으나 이황이나 이이의 작품과는 달리 갈등이 있는 자신의 심경을 노출하고 있어, 이후의 작품에서 흔히 드러나는 갈등 해소를 위한 은일시조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청산(靑山)은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유수(流水)는 엇뎨하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한고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 호리라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침이 없는가?우리도 그치지 말아 영원히 푸르리라.-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고 후진 교육을 양성시키고 있을 때, 1565년에 지은 작품으로 푸른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고 흐르는 물은 영원히 흐르는 자연의 이별에서 우리의 심성도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을 권면게 되면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무인으로서의 굳은 결의와 충성심이 잘 드러나 있다.3) 일상의 생활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17세기)김광욱의 17수는 엄숙한 사대부의 체모를 버리고 삶의 곤궁을 드러냄으로써 시조의 새로운 변모를 보였으며, 위백규는 에서 순우리말 표현으로 농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는 우아하고 조화로움을 강조해야 했던 시조의 주된 경향에서 벗어난 것으로 일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4) 19세기에 458수의 시조를 남긴 이세보는 사대부 시조의 전통을 완전히 혁신하였는데, 작품의 양이 누구보다도 많거니와, 내용도 기녀들과 가까이한 것을 노래한 애정 시조도 있고, 귀양살이의 쓰라림을 노래한 시조가 있는가 하면, 삼정의 문란으로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괴로움과 관원들의 횡포를 대담하게 묘사한 점은 전에 볼 수 없던 경향이다.< 져 백성의 거동 보소- 이세보 >져 백성의 거동 보소 지고 싯고 드러와셔한 셤 쌀를 밧치랴면 두 셤 쌀리 부됵이라약간 농지엿슨들 그 무엇슬 먹자 하리저 백성의 거동 보소지고 싣고 들어와서한 섬 쌀을 바치려면 두 섬 쌀이 부족이라약간 농사 지었은들 그 무엇을 먹자 하리- 현실의 고발에 주저가 없는 표현은 사대부의 시조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창작동기는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삶의 표방만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려웠던 삶의 현실과 그 체험이 시적 제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5) 조선 후기의 시조에서 나타나는 가장 커다란 변화는 사설시조의 왕성하게 창작되었고 그것도 희화적인 내용이나 남녀간의 음담을 드러내 놓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사설시조 작품이라고 해서 꼭 해학적이고 좀스러운 것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교훈적이고 이념 지향적인 주제도 상당수이며, 평시조의 이형태(異形態)로서 사설시조가 지닌 형식적 성격이 후기 시조의 해학성과 결합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그런 주제의 창작과 향유가 984.
    인문/어학| 2006.11.26| 21페이지| 2,000원| 조회(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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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계소설
    Ⅰ. 판소리계 소설 개관1. 판소리계 소설의 기원먼저 판소리계 소설의 기원이 되는 판소리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판소리란 영 ? 정조를 전후해 양반 중심의 문학이 서민 중심의 문학으로 전환하면서 가창을 위주로 한 희곡적인 문학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두고 ‘판소리’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놀이판에서 불려 지던 노래들을 뜻하고 있다.설화를 바탕으로 먼저 판소리가 형성되고, 이것이 나중에 소설로 정착되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판소리계 소설의 형성에 대한 통설이다. 판소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형성 발전되고 19세기에 전성기를 맞는데, 판소리계 소설은 이른 것은 18세기 후반에 출현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나 그 대부분은 19세기에 이르러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판소리의 대본으로는 「춘향가」「심청가」「흥부가」「토끼타령」「장끼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변강쇠타령」「적벽가」「신선타령」「무숙타령」「매화타령」등 열 두 마당이 있었으나 이 중 소설로 정착한 「춘향전」「심청전」「흥부전」「별주부전」「화용도」「장끼전」「배비장전」「옹고집전」「변강쇠전」을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한다.판소리계 소설은 서민문학의 산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조선조 사회제도에서 파생된 양반과 상민의 불편한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신분계층은 대체로 양반, 중인, 서민, 천민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양반 중심인 지배계층과 중인, 서민, 천민을 상으로 보는 피지배계층인 불평등사회였다. 이러한 신분적 구조에서 야기된 갈등이 반영된 판소리계 소설은 양반과 서민의 종속적 관계에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면을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모순, 비리, 부조리 등 부정적인 면을 해학으로 불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신적인 즐거움을 누린다. 그것도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까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함께 웃고 즐겼다. 또한 이를 읽고 듣는 서민들도 즐거움과 동신에 정신적 통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판소리계 소설은 지속적으로 계승될 수 있 남원에서 이본이 발견되면서, 춘향의 아비는 성안의 이고 기생 월매가 성부사의 수청을 들어 춘향을 낳았다는 실존인물인 가능성을 말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것은 비석의 비록 여부를 가지고 사실 여부를 확정할 수 없으며 실재인물 여부가 춘향전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본다.2.춘향전의 사회적 배경소설의 요소에는 주제?구성?문체를 든다. 또, 인물?행동?배경을 들기도 한다. 이 중에서 배경(혹은 환경, setting)은 인물 설정이나 플롯에 비하여 그 비중은 덜하지만, 시간과 장소가 주어짐으로써 행동의 주체가 분명해 지기 때문에 소설의 배경은 중요하다.춘향전의 사회적 배경 또한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춘향전의 사회적 배경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의 신분 계급제도이고, 두 번째는 여성들의 정절의식에 대한 것이다.①신분 계급제도조선시대는 신분 계급 제도가 있어서 같은 인간이면서도 그 대접이 차별화되었다. 조선의 사회를 움직여 나간 지배적 계층은 양반 사대부였다. 이몽룡은 바로 이 양반 사대부의 자손이고, 춘향은 사회 계층 중에서 최하위인 천인에 속하는 기생의 딸이다.물론 그들이 결혼하여 신분계급을 타파했다고도 보여 지긴 하지만, 이미 이것은 당시 사회에 팽배하게 깔려있던 사상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는 신분 계급의 차이가 대화양식이나 인물의 행동으로 나타난다.『저기 오는게 춘향의 母로소이다』춘향의 母가 나오더니 수하고 우뚝 서며『그사이 도령님 안부는 어떠하오』도령님 반만 웃고,『춘향의 母 이라제, 평안한가』『예, 겨우 지내 옵내다. 오실 줄 진정 몰라……』『그럴 리가 있나』이는 이몽룡이 춘향 母를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말투를 보면 시종 춘향 母는 ‘공대’를 하고 이도령은 ‘하게’를 하는 것이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륜의 하나인 장유유서이다. 여기서 이도령은 二八이라 하였으니 16세이고 춘향 어미는 六十堂年이라 하였으니 적어도 환윤리 사이의 갈등을 통해, 현재에 있는 것은 속박?차등?예속이라고 하는 불합리한 규범이고, 자유?평등?해방이라고 하는 합리적인 규범을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결혼의 의미춘향가의 구성을 보면 대략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만남-이별-생일잔치-출도-결말이 되는데 이는 그대로 설화에 나타나는 결혼이야기와 그 구조를 같이 한다. 즉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을 획득하는 봄에 주인공들은 만난다. 그러나 이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그러나 여기에서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보다 더 고양된 단계로의 성숙을 의미하는 기간이다. 이별을 통하여 그들은 더욱 진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보다 굳은 결속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이별이 필연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조선의 엄격한 신분사회가 배경으로 나타나고 시련을 더해주는 변사또가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어둠이 지났을 때 느끼는 광명의 고마움과 같다. 이 남녀의 사랑이 고난을 겪은 후 보다 성숙하여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결혼은 만남의 장면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같은 은밀한 결혼이 아니라 만인의 환시리에 모든 사람을 증인으로 하면서 성대한 잔치 속에 이루어진다. 그것이 춘향가속에 나타나는 변 사또의 생일잔치이다. 만남에서의 결혼이 신분적 제약 때문에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에 반하여 성대한 잔치를 수반하는 결혼은 그들의 의식이 성숙하고, 그리하여 다른 외적 요인과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축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완판본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를 들어 대상을 살펴보니 걸객을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웃음 반울음에 얼씨구나 좋을씨고 어사낭군 좋을씨고. 남원읍내 추절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梨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이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 母 들어와서 가이없이 즐겨하는 맘을 어찌 다 설화하랴』여기에서 동헌에 모인 많은 사람은 두 사람의 결혼에 있에 밀착되어 있는 내용들이 많다. 그래서 전승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도 가장 민속성이 강한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제비-박’의 화소 연계로부터 농경생활의 풍토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그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는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의 세 가닥이 있었으나, 현재 동편제와 서편제의 소리만 전승되고 있다.동편제의 경우 김세종, 정춘풍, 송홍록 판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다른 판은 전승이 끊어지고, 송홍록 판만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이 송홍록 판은 송만갑을 거쳐 다시 크게 박봉술 창본과 복록주 창본의 두 줄기로 이어졌는데, 박록주 창본은 ‘놀부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만 짜여져 있어 ‘놀보 박타는 대목’은 부르지 않는다. ‘놀보 박타는 대목’은 입이 걸어야 제대로 엮어내는 재담이 많고 놀이패들의 잡가가 많아, 여성 소리꾼들이 소리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동편제 는 박봉술 창본이 이야기의 짜임새와 사설 내용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설편제의 경우는 정창업 으로부터 김창환에게 이어진 판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를 이어받은 정광수 창본과 박동진 창본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박동진 창본의 경우 동편제 박봉술 창본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고 사설 분량도 많다. 이는 후대로 전승되면서 연창자들이 필요에 따라 사설을 덧보탠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체로 동편제 가 꿋꿋하여 옹건 호방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설편제 는 부드러워 섬세 온아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설이 짧은 편이어서, 한 마당 모두를 부르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전상 판이나 창본에 따라 사설과 창조가 다소 다르게 짜여져 있지만, 이름난 소리대목으로는 대개 ‘놀보심술’, ‘돈타령’, ‘홍보 매맞는 대목’, ‘중타령’, ‘중이 집터 잡는 대목’, ‘제비노정기’,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등을 꼽는다. 는 도막소리로 할 때에는 이 가운데서 골라 하는 예가 많으며, 역대 명창들이 더늠으로 삼은 소리것인데, 에 그려지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서민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서민적인 시각이 중심에 위치하면서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능케 하는 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먼저 임병양란을 계기로 하여 악화된 조선의 정치적 기능은 왕권의 약화와 유교적 권위의식의 타락, 그리고 당쟁의 격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지배 계층에 대한 서민들의 부정적 ? 비판적 의식을 고조시켰다. 에서는 이러한 서민의식이 지배층의 무능과 알력, 그리고 모순된 정치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나타나고 있다.① 용왕조선의 왕은 유교 봉건 사회의 최고 권력자이고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다. 그런 왕이 에서는 최고 통치자로서의 위엄과 최소한도의 판단력마저 상실함 암주로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서 용왕으로 투영된 왕은 매일 주색에 빠진 결과 병을 얻어 그 고통으로 어탑에 앉아 울고 있다. 그리고 토끼의 교묘한 간출입론(肝出入論)에 간단하게 속아 넘어가서 오히려 토끼의 단죄를 요구하는 신하의 충간(忠諫)을 물리치고 대연을 베풀어 토끼를 극진히 대접한다. 토끼의 간교한 자라탕 주청을 받아들여 방금 토끼를 잡아오는 공훈을 세운 자라를 죽이려고까지 하는 우매한 존재이다. 결국 어렵게 생포해온 토끼를 대책 없이 육지로 다시 돌려 보내 자신의 유일한 생존지책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마는 판단 마비자이다.② 어전회의(수궁회의)의 신하들왕뿐만 아니라 왕을 보좌하는 신하들 역시 자기보신적인 행위만을 일삼음으로써 조정 전체가 무능하고 부패해있음을 드러낸다. 용왕이 병에 걸려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갈 신하를 택출함에 있어 상대방의 약점만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결핍요건으로 정당화하기에 애를 쓰기도 하고, 상대방의 추천을 받으면 핑계를 대면서 위험한 육지행의 모험에 빠지려고 기를 쓴다.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추구하고 상대방을 중상모략하고 파쟁만을 일삼는 이러한 어전회의의 모습을 통해 서민의식은 썩을대로 썩어 있는 중앙 정치풍토를 마구 공격하고 있다.③)
    인문/어학| 2006.11.26| 37페이지| 2,000원| 조회(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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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정희-새우와의만남 평가A+최고예요
    「 새우와의 만남 」- 문 정 희손에 쥔 칼을 슬며시 내려놓았다그에게 선뜻 칼을 댈 수가 없었다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기내식 속에그는 분홍 반달로 누어 있었다땅에서 나고 자란 그대와하늘 한 가운데 3만 5000피트짙푸른 은하수 안에서 만난 것은오늘이 칠월 칠석이어서가 아니다그대의 그리움과 나의 간절함이사람의 눈에는 잘 안 보이는구름 같은 인연의 실들을 풀고 풀어서드디어 이렇게 만난 것이다나는 끝내 칼과 삼지창을 대지 못하고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부드럽고 뜨거운나의 입술을 그대의 알몸에 갖다 대었다내 사랑 견우여☞작품감상인간과 자연사물이 하나가 되고, 모든 생명체의 동일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명파의 시들과 마찬가지로 사물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새우에 생명을 불어 넣어 마치 인간이 된 듯 상상하게 만든다.하늘이라는 공간에서 새우를 만난 것은 고전에서 나오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나와 새우와의 만남을 견우와 직녀의 만남에 대보 시키면서 그 만남을 현대화 시킨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여인이라고 보아도 될 만큼 새우에 대해서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새우와의 만남을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으로 생각 하였다면 1행, 2행, 14행과 같이 표현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식욕이 왕성한 한 인간의 본모습으로 새우를 먹는 모습을 표현 했다.
    인문/어학| 2006.11.26| 1페이지| 무료|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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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