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머니(MFFP)1. 의의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을 재정정책의 재원(Money-Financed Fiscal Program : MFFP)으로 하며,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 중 양적완화*에 이은 최후의 정책조합이다.*양적완화양적완화는 확장재정정책과 확장통화정책의 정책조합을 일컫는데, 이때 확장재정정책은 정부의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조달(Debt-Financed)하는 것을 말하고, 확장통화정책은 채권가격하락압력(금리인상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2. 헬리콥터머니 실행절차 : 1) 또는 2)1)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화폐를 지원한다.2)정부가 부채를 발행하면 그 즉시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매수 및 보유한다.3. 헬리콥터머니 효과 :1) 기존 양적완화와 비교하여 가계소득이나 일자리,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직접적이다.2) 기존 양적완화가 국가부채의 증가를 수반하여 국민의 미래 세금부담을 증가시키는 반면, 즉각적인 통화량 공급은 미래 세금부담을 증가시키지 않을 수 있다.3)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다.4. 헬리콥터머니 문제 :1)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여지가 다분하다.2)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오용될 소지가 있다.3)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발생할 경우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헬리콥터머니의 효과를 기축통화국과 그 외 국가로 나누어 설명해볼 것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재정정책보다 국채발행을 재원으로 하는 재정정책이 그 효과를 더할 것이라는 의견은 세금이 재정승수에 미치는 부(-)의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카도 등가정리는 국채를 발행한다고 해도 그 국채는 미래의 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므로, 결국 재정정책의 재원확보수단이 세금이든 국채발행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을 확장해보면, 헬리콥터머니가 미래 세금을 대비한 저축이 아니라 현재의 소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재 지급된 화폐가 미래에 다시 세금으로 거둬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헬리콥터머니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중앙은행이 정부에 지급하는 통화에 대해 이자를 받지 않고 회수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필요로 한다. 이 약속은 소비주체가 지급된 통화를 소비하여도 된다는 기대를 형성하게 한다.하지만 이 시혜적 약속은 교환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화폐에 대한 중요한 도전이므로, 이 약속이 화폐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정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책목표를 갖게 된다. 즉, 화폐가치가 급락하여 발생하게 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한다는 공통과제를 부여한다. 하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 온 양적완화가 있었음에도 그 징조가 나타나지 않아 현재 당면한 과제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이에 미국은 물가에 관한 통화정책의 정책목표를 변경하여 물가안정목표제를 평균물가안정목표제로 변경할 것을 천명하며, 헬리콥터머니의 실효성을 제고할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기축통화국의 경우는 기축통화의 발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축통화의 부족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정책의 시행 여부만 결정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경우는 외환유출까지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처럼 대규모의 헬리콥터머니 정책을 사용할 경우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원화를 보유할 유인이 적어지면 외화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35 요단강 가에서?????????구민 운동장 앞 작은 삼거리의 노인정 쉼터에서 길 건너 바라보이는 산등성은 내 아이들의 유년시절, 놀이터였다.노인정 쉼터의 커피도 좋고 물고기 모양의 풍경 소리도 좋지만 길 건너를 바라보는 재미로 나는 곧잘 그곳을 찾는다. 산등성 두 기의 묘는 사시사철 그 모양, 그 모습이다. 메뚜기 뛰는 대로 따라 떼던 아이들의 총총 걸음, 그리고 그들의 낭랑한 웃음소리도 묘들 사이에 무형의 모습으로 묻어있는 채, 그 또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이미 다 자라버린 아이들은 제 아비의 키를 훌쩍 넘기게 생겼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저희들의 유년시절 놀이터에 대해 티끌만큼도 연연하지 않는다. 백발성성한 이 어미만 아이들을 지나 흘러가 버린 시간들이 아직도 이리 낯설어 목을 빼고 앉았으니, 생각하면 우습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이상하다.어째서 이 자리만 앉으면 이렇게나 한 결 같이 바로 지금 보는 듯, 듣는 듯 그리 느껴지는 것일까. 하긴 100번 째 생일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신 Y 권사님도 예닐곱 살 추억담을 바로 어제 일처럼 말씀 하셨더랬지. 들을 적마다 백수 노인의 예닐곱 동안이 상상되지 않더니 내가 지금 그 노인의 마음 나이를 살고 있나보다.그나저나 저 공간에서 곰실대던 내 어린 아이들과 지금 이 시각 각자의 자리에 있을, 다 자란 내 아이들 사이에 숱하게 널리고 널렸던 시간들은 도대체 모두 어디로들 가 버린 것일까. 역사라는 강줄기 속으로 잠겨 버렸나? 겨우 두 글자가 집어 삼킨 게 맞다면 Y권사님과? 나의 느낌은 생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지난날의 어느 새벽, 이마를 살짝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 느껴지는 짧은 순간, 문득 인류사 꼭대기의 첫 사람이 마셨던 새벽 공기가 이랬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 하는 식으로 수 백 대나 거슬려 올라가야 하는 조상이 아니라 마치 동시대의 바람 기운을 같이 마시는 이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크리스쳔들 간의 형제 호칭이 그만큼 실감나기도 처음이었다.교회의 장례예식에서 더러 불리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요단강 가에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내 눈에 희미하다.’그 새벽, 내게 마치 가까운 형제처럼 느껴졌던 이는 아담이다. 오묘하게도 그 이름의 뜻은? ‘사람’이다. 물론 요단강이란 것도 상징적인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역사라는 제법 크낙한 강을 사이에 두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이 편과 저 편에 죽 줄지어 늘어선 광경이 연상된다. 강의 표면에 순간이라는 시간단위가 끊임없이 반짝이고 있다.
36 고무줄 잣대?3인조 도둑이 어느 부자 집을 턴다.? 한사람은 대문 안팎의 망을 보고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들 중 하나는 척후를 맡는다. 그 덕에 다른 한 사람이 한 살림 풍성하게 챙겨 나왔다. 자기들의 아지트까지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 수확물을 분배할 차례다.장물을 지고 나온 이가 자기는 최 일선에서 일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며 역할비중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단연 내 몫이 으뜸이라’고, 척후를 맡은 이가 응대한다. 그러자 망을 보던 이가 말한다.“너희들, 양심적으로 하자.”맹자가 역설한 인간 본성의 4단, 인의예지를 적당히 아우르면 양심이 되겠다. 그 기본 어의는 차치하고 3인조의 분배 문제만 놓고 볼 때는 이만한 기준이 없다. 양심이 기본 어의에서 쭉 늘어나 고무줄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세상에는 고무줄 잣대라는 것이 온 천지에 널려있다. 위 예화만 해도 그렇다. 부자면 얼마마한 부자인가, 세 도둑이 주장하는 각자의 수고는 어느 만큼인지, 어느 만큼이란 것 자체가 또 얼마나 신축성 있는 잣대인지.?맏이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금방, 아직 채 면식도 익지 않은 어떤 아이와 몸싸움을 크게 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우연히 알 수 있었다.초등학교를 신나게 다녔으니 중학 생활도 으레 잘 할 것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입학 첫 날부터 아이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하루 이틀, 두고 보는데 한 주간이 지나도록 호전될 기미가 없다. 급기야 그냥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위기감까지 든다. 조용한 시간에 담임교사에게 상담 전화를 냈다. 전화선으로 감지되는 담임교사는 차분하고 조신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아직 아이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다음 전화는 자기가 먼저 걸겠단다. 그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를 꼼꼼히 살펴 본 모양인지 그녀는 아이에 대해 훤히 아는 사람처럼 그 때의 생활을 잣대삼아 아이를 점검해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 가운데 저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큰놈은 그 날, 조례시간에 제출할 신상카드를 마지막 점검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이가 등 뒤에서 슬쩍 건너다보다가“네 엄마가 이현경이가?”하고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소동이 터졌다. 아이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서 뒤로 돌면서 말 건 아이에게 훅을 한방 질러버린 것이다.“하이고,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겠네요,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지요?”황당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알고 있는 줄 알고 말했다면서 교사가 더 미안해한다.“이 시대에 의겸이 같은 아이가 있습니다.”싫지 않은 소리까지 덧붙인다. 전화를 끊고 되짚어 생각해봐도 그 말이 정말 싫지 않다.? 뿌듯하기까지 하다. 어미 이름이 마구잡이로 불리는 것을 온몸으로 반격해 주었단 말이지? 그 후로도 아이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싸웠던 아이와는 화해를 한 건지 어떤 건지,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무튼 아이는 당연한 행동을 했고 나는 맏이의 울타리 같은 존재감을 누리고 있었다.그런데 제 딴에는 의라고 판단했던 행위가 때로는 남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도 나도 그 해 말, 종업식 날에야 알았다.
34 바람이 실어 온 그때 그 물맛????남편이 먼 길 가는 날이다. 식구들 기둥이니 운전 조심하라는, 판에 박은 인사말에도 남자는 신이 나나보다. 한 손 번쩍 들어 보이고는 이내 무덤덤한 듯 뒤 돌아서지만 오늘도 등판에 나만 읽는 씩씩함이 넘쳐흐른다. 이 인사법은 아마도 사람 중, 처음 지아비와 처음 지어미로부터 본능적으로 배워 익힌 인사법이리라.정수기로부터 냉수 한 컵 받아들고 새벽을 만난다. 그 나라 어디쯤에서 오기를 시작하였는가, 한 줄기 미풍이 지나며 흘려주는 이슬기운에 이마께가 상큼하다. 오, 이 신비스런 태곳적 기운이여.?그대로 눈을 감고 마음을 챙기어 첫 사람 부부를 만난다. 그들도 서로간의 사랑과 격려와 신뢰로 하루를 열었을 터이요 이 바람 또한 그들의 이마를 스쳐 불어 지났으리라.그들, 한 남자와 한 여자로부터 시작하여 인류사에 생명이 넘실거려 왔으나 기실은 신과 지구의 품앗이가 그 보다 먼저다. 그 일을 성서는 이렇게 증거 한다.“둘째 날, 신이 말한다.‘ 푸른 하늘아, 물의 가운데에 확 펼쳐져서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하라’ 그리고 셋째 날, 신은 천하의 물에게 한 곳으로 모이라고 명했다. 그것이 바다다.”이렇게 하늘 아래의 물은 예부터 지구의 양수였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궁이다. 천하의 물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생기가 충천했고 지구는 제 덩치의 7부 이상이나 되는 물에 안온히 둘러싸여 열심히 생명들을 낳고 길렀다.스물 안팎의 나이 때 나는 어느 등산 서클에 속해 있었다.그 때만해도 산길 가다 골짝 물 만나면 손 바가지로 하나 떠서 앞머리를 적신 후 그 자리에서 그냥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비가 오면 하늘로 얼굴을 쳐들고 받아먹었다. 그 물 맛, 그 비 맛 ……. 그 때, 그 맛은 지금껏 내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하는 것 들 중 하나다.?산행 중 진한 추억으로 치자면 주왕산을 오른 것이 단연 으뜸이다. 그 중에서도 마무리장이 정점이다. 그 때만 하더라도 주산지 등 주왕산 자락에 자리한 명소들이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산행은 산에게서 초대 받은 귀빈의 걸음으로 행해졌다. 그 밤의 캠프파이어에서 우리는 바다를 가져와 노래했다.“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다음 날 아침, 신이 설치해둔 궁창 너머로부터 족히 주먹만은 해 보이는 송이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전 대원은 하나같이 입을 꾸욱 다물고 마치 무슨 성스러운 예식이라도 치루 듯이 돌아 올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눈발 사이로 각 사람의 가슴마다에서 애틋하도록 아쉬운 마음이 내 비쳐 보인다.
33 마음의 삼 계절‘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다’이렇게 시작하는 ‘마음아 너는 어이’라는 시조는 서화담이 황진이의 유혹 앞에 자기 마음을 붙잡으며 쓴 것으로 추정된다.점심 자리에서 누군가‘이제 몸도 마음도 늙었다.’고 자탄하자 한 문인이 의미심장한 정보를 내놓는다. 어느 의학박사가 한 말이라며 믿을만한 근거도 제시한다. 사람의 몸은 나이를 먹어갈지라도 마음 나이는 삼십오 세를 넘기지 않는다는 거다.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100세에 돌아가신 양 권사님이 당신의 다섯 살 적, 일곱 살 적 얘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도 신기하게도 매양 똑같이 말씀하시더니 그게 풀린다. 35세 마음 나이에서 기억해낸 것이라면 정확도가 100인들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폴 토루니에의 책, 에 의하면 삼십오 세라는 나이 숫자는 기껏해야 가을이라 할 성년기에 든다. 그것도 초입이다. 사람의 마음 나이에서 삼십오가 마지막 숫자라면 토루니에가 말한 겨울은 없는 셈이다. 그러면 저 시조, 중장은 틀린 소리인가.?‘내 늙을 적이면 넌들 아니 늙을소냐’ -내가 늙을 때면 너인들 늙지 않겠는가.그러나 종장을 가만히 곱씹어 보니 작가가 틀린 소리를 한 게 아니다. 그저 모른 척, 흘린 소리다.‘아마도 너 좇아다니다가 남우일까 하노라’ -아무래도 너 따라다니다가는 남의 비웃음이나 살까 봐 걱정이다.그러니 내 나이에 네가 이끄는 대로 매양 따라다닐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냐, 그 뜻이겠다.황진이가 누구인가. 임 그려 떠도는 제 마음을 두고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갔다.’라고 표현할 줄 알았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정열의 화신이 아니던가. 그만한 요정이 흘리는 유혹을 끝내 물리치고 말았더라고 전해지기는 하나, 삼십오 세의 정열을 주저앉힌 고뇌가 노래 전체에서 면면히 출렁인다.내 큰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하루는 아버지가 놀러 오셨다. 아버지는 성품이 어린아이 같으시다. 아이와 금세 어울리신다. 아이가 마침 공을 안고 있었다.“의겸아, 공 좀 줘봐.”그 소리는 공 마술의 신호탄이었다. 접대를 준비할 양으로 부엌으로 갔지만 내 어린 시절에 하도 많이 본 것이라 나는 아버지의 마술을 훤히 다 안다. 아이의 공은 아버지의 신체 여러 부위로 동글동글 굴러다니며 나타났다가는 이내 숨고 숨었다가는 순식간에 다시 보일 것이었다. 얼마를 있었을까, 아버지의 요절복통할 듯한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쨍쨍 울린다. 외할아버지에게서 공을 되찾고 싶어진 아이가 공을 따라 뱅글뱅글 돌다가는 갑자기 손가락을 뻗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