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倫중 君臣有義의 現代的 意味전통가옥에서 살고, 전통복장을 하며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숭배해오던 우리나라가 개방과 식민지통치, 그리고 전쟁 등을 겪고 난 후 아주 큰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것이 100여 년도 안 지나서 생기고 사라진 일들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을 문득 돌아본다. 거리마다 아파트가 즐비하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달리고, 사람들은 예전에 洋裝이라고 불리던 옷을 입고 다니며 머리는 상투나 길게 딴 머리가 아닌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닌다.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국가였다. 유교란 儒家思想을 의미한다.유가사상의 胎動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은 춘추시대였고 유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공자가 내세운 사상이다. 하지만 당시 공자의 사상은 시대의 특수성으로 인해 크게 빛을 받지 못하고 대신 법가사상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진의 통일과 멸망 이후 한나라에 이르러 秦始皇때 焚書坑儒되었던 책들을 발굴하기도 하고, 訓 學이란 학문이 발달하면서 묻혀진 孔子, 孟子의 사상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공자의 학문은 공자에서 공자의 제자인 증자로 다시 공자의 손자인 자사로 이어지는데 맹자가 바로 자사의 제자이다. 이렇듯 유가사상은 그 명맥을 이어 내려오면서 논어와 맹자라는 책들도 전해져 내려온다.우리나라도 이 유가의 학문을 받아들인 것은 고려시대이다. 하지만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따라서 유가사상은 중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이 개국하면서 비로소 유가는 꽃을 피우게 된다.우리가 흔히 유가하면 떠오르는 덕목이 바로 三綱과五倫이다. 이중에서 이 五倫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맹자의 등문공상편 에서이다. 오륜이란 바로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의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한다. 위의 구절을 해석해 보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親愛가 있어야 하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義理가 있어야 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分別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次序가 있어야 하고,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信義가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이 덕목은 중시 여겨졌다.하지만 조선이 개방을 하고 일제 식민 치하를 겪으면서 이 같은 오륜의 사상도 많이 무너졌다. 이 오륜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덕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溫故知新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현대의 고도 과학기술 사회에서 왜 시경이나 논어 같은 경서가 필요할까? 바로 위에서 언급된 溫故知新때문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과거는 바로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오륜도 바로 그 중 하나이다.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대통령을 필두로 국회의원들과 정부각료들이 다스리는 국가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조선시대의 왕이 지금의 대통령으로 바뀐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대통령은 국민들의 신임을 얻어 국민투표를 통해서 당선이 되므로 조선시대처럼 절대군주이지는 않다.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각종 정책을 실현하려 하다 보면 어려움에 많이 부딪히는 것 같다. 예전엔 대통령 탄핵 사건도 있었고, 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도 있는 등 어느 때보다 국가의 위기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절대군주제로 돌아가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한 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 바로 君臣有義(군신유의) 라는 오륜의 한 덕목이다. 君臣有義란 임금과 신하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한 나라가 어려움에 빠진다면 오직 통치자가 불민해서일까? 통치자가 불민하다면 그 불민함을 채워주지 못한 신하들과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통치자와 신하 그리고 국민들이 서로의 이익을 채우려 하지 않고 다같이 국가의 대의를 위한다면 어려움에 빠지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예전에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 大統領의 彈劾事件이다. 대통령이 臣인 국회의원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국가의 경제 등이 날로 어려워지자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대통령을 처벌하고자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헌법재판소에 訴願한 것이다. 예전으로 보면 일종의 反正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것은 신하된 입장에서는 국정이 잘못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여 국가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고 판단한 신하들의 입장은 알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일 뿐이다. 그들의 입장이 국민들 전체의 입장은 아닌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오히려 대통령을 옹호하며 탄핵 주동 세력을 비판하며 촛불 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대통령이 탄핵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자기가 속한 당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제기됨으로 볼 때 대통령 역시 자신의 이익·정치적 목적을 위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이따. 孟子(맹자)의 <梁惠王上>편에 보면 上下交征利, 而國危矣(각자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문제를 풀 때 서로 협력하여 최상의 방책으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양측은 서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여 최악의 방책을 택하여 국민들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요즘에 또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憲法訴願문제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앞서 말했듯이 국민들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다. 또한 국회의원들도 역시 국민들의 대표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지키고 수도권의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책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택했다면, 국회의원들(야당)은 서울 공황이라는 문제점을 들으며 절차상의 문제점 지적하면서 대통령의 결정을 막았다. 이에 국민들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上下交征利, 而國危矣라는 것에 또 생각을 할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인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 의원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주민들까지 이 말을 새겼다면 사상초유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각자의 이익을 위한 결과 지금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의 지역감정까지 악화되는 국민간의 분열도 초래한 것이다. 孟子의<梁惠王上(양혜왕상)>편에서는 이어서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어질면서 제 부모를 버리는 이는 없고, 의로우면서 제 군주를 소홀히 하는 이는 없으니, 군주는 오직 어짊과 의로움을 말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국민, 신하(국회의원)는 인의로써 대통령을 대하고 대통령 역시 인의로 그들을 대할 때 어려움이 없다는 내용이다.대통령이 행정수도를 이전할 때 비록 자신의 정치적인 공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지만 국가의 중대사이므로 반드시 국민의 의견을 묻는 투표를 시행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또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여당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국가의 장래성보다 정치적인 목적달성을 위해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한 국민들도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 목소리를 저마다 내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 결과가 국가의 혼란상태이다. 모두가 君臣有義라는 이 한마디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면 좀더 과격하지 않은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나 싶다.이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君臣有義(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가 있어야 한다)를 생각해서 임금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은 자신에 반대된 의견을 제시하는 臣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보지말고 비록 政敵관계이지만 국정을 위해 寬容을 베풀어야한다. 이에 臣인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임을 覺醒하고 대통령을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좀더 與·野 할 것 없이 역시 국정을 위해 힘을 합하여야 한다. 이 君臣有義는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노·사 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서양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다면 동양에도 위대한 정복자가 있었으니,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광활한 국가를 건설한 칸, 그 이름이 바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몽골의 징기스칸이다. 그는 아시아와 아랍, 인도, 유럽에 걸친 제국을 건설한 장본인으로 본명이 테무진(鐵木眞)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태어난 시기인 11세기의 몽고는 통일된 국가가 없이 여러 개의 부족들이 패권을 다투던 중국으로 말하면 일종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몽고는 유목민족으로 초원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며 풀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 결혼을 할 때에는 사촌끼리도 결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물은 가까울수록 좋고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이다. 따라서 테무진의 아버지인 키얀족의 칸인 여서기도 신부를 멀리서 데려오기 위해 미얼키족의 칠레두에게 시집을 가는 웽질라족의 헐룬을 납치하여 데려온다. 그렇게 되면 훌륭하고 용감한 자손을 많이 낳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시간이 흘러 헐룬은 여서기의 자식을 임신하게 되고 여서기는 타타르족과의 싸움에 나간다. 타타르족은 싸움에 지고 패하여 도주하는 중 우연히 헐룬이 아이를 낳는 것을 목격하고 아이를 받아준다. 하지만 이때 타타르족장의 손의 문신을 보고 헐룬은 그가 누구인지 기억을 하게 된다. 이번 전쟁에서 여서기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아들을 얻었다는 기쁨을 누리지만 계속된 부족들 간의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이 지치게 된다.즉, 평화를 갈망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여서기는 자구책으로 자신의 아들인 테무진을 웽질라(헐룬의 부족)족과 약혼을 시켜 그들과 동맹을 맺고자 한다. 이에 칸의 징표를 부족의 2인자인 타홀타이에게 잠시 맡기고 테무진을 데리고 웽질라로가서 타타르와의 동맹대신 키얀족과 동맹을 맺도록 약조를 얻어낸다. 여기서 테무진의 일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래의 부인이 되는 보에티와 라이벌이 되는 자무하를 만나게 된다. 모든 국가가 그렇듯이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다. 여서기가 떠나자마자 타홀타이는 야심을 드러내고 타타르족과 짜고 몰래 여서기를 죽이고 자신이 키얀족의 칸이 되고자 한다. 이에 여서기는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에게 기습을 당하게 되고 결국 타타르 족에게 죽임을 당한다. 여서기의 시체가 마을에 돌아오고 타홀타이는 키얀족 앞에서 칸이 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헐룬은 타홀타이의 야심을 눈치채고 웽질라에 있는 테무진이 아버지인 여서기의 뒤를 이어 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타홀타이는 우선 여서기의 장례를 치르며 환심을 사려한다. 테무진을 약혼시켜 동맹하여 전쟁이 끝나길 원했지만 결국 끝이 난건 전쟁이 아니라 여서기 자신인 셈이 되어버렸다.한편 테무진은 자신에게 온 자객을 죽이고 타홀타이의 사주였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여기서 테무진은 보에티에게 허리에 두른 빨간 천을 징표로 주게 되는데 이는 몽고의 초원이 광활하기 때문에 또 유목을 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없어서 그 징표를 남겨두고 나중에 그 징표로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한편 타홀타이는 여서기의 장례를 치르면서 헐룬을 외면시킨다. 여기서 신기한 장면은 무덤을 만들지 않고 그들이 유목하는 말들로 하여금 묻은 자리를 흔적이 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민족 자체가 유목을 하기 때문에 묘지도 필요 없고 또 시체가 더 안전하리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여서기의 장례를 치른 후 타홀타이는 키얀족의 칸이 되어 타타르와의 약속대로 땅을 내주고 헐룬의 가족만 남겨두고 워난강 유역을 떠난다. 이사가는 장면에서 유목민족의 특징을 한눈에 드러낸다. 말에 탄채로 말과 양 등의 가출을 능숙하게 다루는 장면은 전형적인 유목민족이라 할 수 있다.웽질라를 떠나 테무진이 워난강으로 돌아왔을때 헐룬은 기다림에 지친 상태였고 초원에 눈도 내린 상태라 먹을 것이 없어 모두들 괴로워했고, 이에 헐룬은 생계를 위해 사냥을 한다. 몽고족 여인의 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처음으로 사냥한 후에 장남인 테무진에게 고기를 나누게 하여 권위를 세우게 한다. 하지만 배고픔에 지친 동생들끼리 먹을 것 때문에 다투게 되고 테무진은 엄마의 고기를 훔쳐먹은 동생을 보고 격분하여 결국 그를 활로 쏘아 죽인다. 테무진은 가장의 권한으로 죽인거라 생각하여 당시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만 어머니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평생 이일로 후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상 테무진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한명의 희생이 어찌보면 자연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 일로 테무진은 ‘생명과 단결’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테무진은 장성한 청년이 되었고, 보에티도 성숙하여 테무진을 찾아오고 헐룬과 만난다. 보에티로 인해 삶의 무게와 존엄,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새삼 각성하게 되어 징표를 찾으러 타홀타이에게 형제들까지 세 명이서 쳐들어간다. 타홀타이를 죽이고 징표를 되찾은 테무진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워난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편한 집이 아니라 미얼키족의 칠레두에게 당해 보에티가 끌려가고 홀로 남은 어머니뿐이었다. 이에 테무진은 격분하여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미얼키족을 쳐들어간다. 젊은 혈기에 의지했으리라. 하지만 화살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이 없던 터라 무참하게 패하고 만다. 이처럼 위대한 칸 징키스칸의 첫 전투는 패배로 시작한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테무진은 여기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때에 우연히 자달란의 족장이 된 자무하와 다시 만나게 된다. 자무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이해관계에 밝은 자무하는 이미 미얼키족과 동맹을 맺고 뒤로는 타타르와 손을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테무진은 병사를 빌리려 헐룬을 인질로 잡히게 하는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헐룬을 대가로 얻어온 병사는 고작 수백명에 그치고 만다. 테무진은 빌린병사들로 꼬박 1년여의 전쟁 준비를 하고 미얼키를 공격한다. 전쟁에서 테무진은 활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공격하여 결국 승리하고 칠레두를 죽이고 미얼키에 잡혀있던 보에티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된다. 하지만 보에티는 이미 원수의 자식을 임신해 만삭의 몸이 되어있었다. 여기서 테무진의 인간적 고뇌가 심했으리라. 자신의 아내인 사랑하는 보에티를 위해서 1년동안 전쟁준비를 했고 또 어머니를 희생시켜서 병사까지 빌려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켜 다시 만난 보에티였으니 말이다.
맹모삼천지교라는 중국의 고사가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인 맹자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는 고사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이 고사처럼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하다. 이는 우리 한국의 일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인 중국에도 해당된다.영상으로 보는 중국문화란 과목에서 중국의 교육에 대한 VTR을 시청했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식들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열은 마찬가지로 대단했다. 중국에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1가구 1자녀 운동을 가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25세정도 미만의 아이들은 대부분 외동자녀라고 보면 된다한다. 이런 외동자녀는 아주 귀하게 자라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들을 가르켜 小皇帝(소황제)라고 부른다.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중국정부는 학생들에게 어렸을때부터 사상교육을 시킨다. 아이들에게 해방군가나 사상에 대한 웅변 같은 것을 시키기도 하며 청년당 같은 공산당 비슷한것에 추천가입하는 학생들에게 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하지만 이것이 중국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중국도 개혁을 추진중이다. 경제개혁 정치개혁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진행되고 있다.중국에는 많은 수의 대학들이 있다. 중국의 고등학생들은 북경대, 청화대같은 일류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들이 이같은 일류를 지향하는 까닭은 일류대학을 들어가서 졸업할 경우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7~80년대의 서울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의 대학에서는 낙제제도가 있어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며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는 취업이 보장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전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취업률은 그 반대이다. 학생들의 능력이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한다. 한국은 이제 대학=취업이란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각 지역 대학출신들은 각지역에서 수급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배워야 할 점 같다.현재 한국의 대학은 그 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양이 많아졌다고 그 질까지 높아진 것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도 그러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211工程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과 학과의 합병으로 대학과 학과간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질을 높여서 학생들의 수준까지도 높이는 실정이다.이는 한국의 대학들이 중국에게 배워야 하는 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며 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한다. 이제 대학은 선택이 아닌 교육의 필수코스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은 예전 그대로 이며 학과커리큘럼 역시 옛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도 중국과 같은 프로젝트 같은 것을 추진하여 커리큘럼도 바꾸고 대학간의 중복되는 과 같은 것도 통폐합을 통해서 양적 보다는 질적인 교육의 발전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할 것 같다.
이 영화는 1994년에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중의 하나인 장이모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한남자의 일생을 다루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전반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보면 194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과 그 이후까지 그리고 있다.영화를 보면 부귀라는 지주계급의 한남자가 나온다. 소위 유산층 계급의 사람으로써 도박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그의 부친도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으며 그 역시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결국 용이라는 작자에게 집을 날리게 된다. 집을 날리던 날 부귀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병으로 누우신다. 게다가 그의 부인마저 임신한 상태로 딸인 봉하를 데리고 집을 떠난다. 부족한 것 없이 유복하게 자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던 부귀에게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염치 불구하고 용이에게 가서 그림자극 인형을 빌려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그렇게 살기를 몇 년, 아내도 봉하와 새로 태어난 아들인 유경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그들 가족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이른바 국·공 내전이 일어나던 시기였으며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에게 선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부귀는 국민당의 포로로 잡혀 그들 사이에서 그림자극을 하며 목숨을 건지지만 자고 일어나 보니 인형극 동료를 제외한 나머지가 공산당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동사, 병사 한 상황에서 결국 공산당에게 포로로 잡힌다. 여기서도 그의 특기를 살려 그림자극을 보여주고 목숨을 건지고 여비와 혁명증까지 얻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부귀는 어느 상황이던지, 그 상황이 나쁘던 좋던 그 상황에 적응을 잘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집마다 오성홍기가 눈에 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민군을 해방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곳곳에서 국민당보다 더 민심을 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 때 부귀에게 집을 빼앗은 용이는 지주계급으로 간주되고 공산당에게의 재산 헌납을 거절함으로서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중국의 고사성어의 하나인 새옹지마이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중국의 현대사가 부귀라는 인물처럼 새옹지마를 반복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결국 가족들과 극적으로 상봉한 부귀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1950년대에 들어서 중국은 대 변혁을 꿈꾼다. 이른바 대약진 운동으로 공동노동, 공동숙식을 통해서 노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부국을 꿈꾸는 모택동의 정책이었다. 모택동은 각 읍 단위별로 나눈 뒤 공동으로 작업을 시킨다. 이 때 각 부락마다 철을 모아서 중국이 15년 안에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슬로건 아래 각각 용광로를 만들고 제련, 제철 작업을 한다. 부귀도 여기에 참여하여서 공동 노동장에서 그림자극을 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읍장의 말이 참 가관이다. 우리가 만든 철으로 대포 3방을 만들 수 있다. 이것으로 하나는 장개석의 침실로, 하나는 식당으로, 하나는 화장실로 발사해서 장개석이 자지도, 먹지도, 싸지도 못하게 해서 대만과 통일하자 는 대화이다. 여기에서 중국이 대만과 통일하고 싶은 열망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렇듯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게 다시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결국 새옹지마이다. 부귀는 아들 유경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공산주의의 이상을 설명한다. 우리에게 병아리지만 커서 닭이 되고 닭이 크면 양이 되고, 양이 크면 소가 된단다." 유경이 묻는다. "소가 크면 뭐가 되죠?" 부귀가 말하길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된단다. 공산주의가 되면 매일 고기와 만두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단다." 이것이 모택동이 말하는 대약진 운동을 통한 공산주의가 바라는 이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날 바로 구장(춘생)이 몰던 차가 벽을 들이받아 그 뒤에서 자고 있던 유경이 벽돌에 맞아 숨진다. 여기서 유경도 잠이 부족하고 구장도 잠이 부족하다고 나온다. 대약진 운동의 폐단으로 노력에 비해 성과가 덜하다는 것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중국 전체의 희생이 따랐음을 부귀를 통해 대신 나타내고자 한 것 같다.세월이 다시 흘러서 1960년대로 접어든다. 이른바 문화대혁명의 시대이다. 곳곳에서 홍위병들이 돌아다니고 옛 것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산물로 모두 배척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벙어리인 딸 봉하가 역시 다리를 저는 한 기술자 청년과 혼인을 하게 된다. 혼인할 때에도 공산주의가 보인다. 그 당시 중국에서 최우선은 무조건 모택동이다. 혼인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쌍의 남녀가 모택동에게 맹세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봉하와 홍위병 청년이 결혼하고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부귀. 이때는 문화대혁명의 시기여서 춘생도 주자파(走向資本主義黨派)로 몰려서 비판대회를 받게 되고 읍장 역시 주자파로 몰린다. 소위 가진자들이 다 비판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잘나가던 이들에게 다시금 새옹지마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때에 봉하가 임신하게 되고 출산 예정일이 다 되어서 병원으로 간다. 병원으로 온 부귀와 가진은 아이의 이름을 짓기로 한다. 이들 둘은 유경이 일찍 죽은 점을 염려하여 사람의 이름을 짓지 않아 저승사자가 못 데려가게 하려 한다. 따라서 이들의 손자의 이름은 우습게도 饅頭(만두)가 되게 된다.하지만 병원 곳곳에 홍위병 학생들이 교수들과 의사들을 몰아내고 점령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신임하지 못한 부귀가족들은 급히 산부인과 권위교수인 왕 교수를 불러온다. 그 역시 문화대혁명의 희생자로서 체포된 상태였다. 하지만 홍위병인 봉하의 남편이 간호사학생들을 속이고 병원으로 데려온다. 병원으로 온 왕 교수는 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이에 부귀는 만두를 일곱 개를 사와서 먹으라고 준다. 왕 교수는 굶주려서 허겁지겁 다 먹고 나서 급체를 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물까지 먹어서 상태가 더욱 악화된다. 이 때에 봉하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한다. 하지만 역시 새옹지마, 호사다마가 적용된다. 봉하가 무사히 출산을 마쳤지만 지혈이 되질 않는다. 간호사 학생들은 급히 전문가를 찾지만 전문가인 왕 교수가 이미 급체로 쓰러진 상태라 손을 쓸 방도를 잃고 봉하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 대목을 볼 때 당시의 소위 잘나가던 계급층들이 문화 대혁명을 통해 많이 희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문화 대혁명의 시기도 지나간다. 이 시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의 大字報文化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