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주의와 인상주의1) 1830년의 세대19세기의 토대와 윤곽-즉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질서, 그 여러 원리와 모순이 여전히 계속되는 경제체제, 그리고 대체로 오늘 날에도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가지고 있는 문학- 형성된 것은 겨우 7월 왕정 기간 중이다. 스땅달과 발자끄의 세대들은 알지 못했던 도덕적 어려움과 갈등을 다룬 최초의 책들이다. 19세기의 모든 특정들은 이미 1830년경에 드러난다. 부르즈와지는 완전히 권력을 소유하고 이 또한 그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다. 귀족은 역사의 무대는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해진다. 1830년 이후에는 중간계급을 제외한 어떠한 대중독자도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형태인 자연주의 소설은 그 창시자들의 낭만주의적 취향, 새로운 세대의 비낭만적 정신을 표현한다. 계급투쟁이라는 범주에서의 정치적 사고와 더불어 경제적 합리주의는 소설가에게 사회적 현실과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의 연구를 불가피하게 했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말하자면 인간을 관찰하고 세계를 다루는 도구로 소설을 창작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증오하고 경멸하는 독자층의 필요와 취미에 봉사했던 것이다.스땅달의 여러 소설은 정치적 연대기들이다. 그러나 스땅달 이전에는 아무도 바로 자기 시대의 정치체체를 소설의 본격적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스땅달은 자기가 사는 시대를 대혁명 후 첫 세대에게 있어 운명적인 시대로 체험하며 깨어진 약속과 기대의 시대로서, 남아돌아가는 정력과 실망한 재능의 시대로 체험한다. 스땅달의 모든 위대한 소설들은 위선의 문제와 처세의 비밀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것들은 모두 정치적 현실주의의 교과서요 정치적 비도덕주의의 학습무대 같은 성질을 띠고 있다. 스땅달에게 새로운 사회는 무엇보다도 그 통치형태에 의해서, 권력의 교체와 계급이라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의 변화에 의해서 옛 사회와 구별된다. 자본주의 체제란 그에게 있어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발전단계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다. 부르즈와지의 생활도 스릴러의 성격을 띤다. 그는 자본조의를 하나의 사회적 병으로 파악하고, 한때는 의학적 관점에서 ‘사회생활의 병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그것을 취급하겠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발자끄는 모든 자연스러운 생활감정이 자기계급에 뿌리박고 있는 철두철미 부르즈와적인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르즈와지의 가장 성공적인 변호자로서, 이 계급의 업적에 대한 감탄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발자끄에 의하면 평등이란 한갓 망상으로서 일찍이 세계 어디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똑같으며, 누구나 자기의 편의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사회는 전적으로 계급투쟁의 논리에 지배되고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싸움은 한계를 모른다.발자끄의 세계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관찰하는 리얼리즘이다. 그의 사적 유물론과 이데올로기 이론은 그의 현실감각의 발현에 불과하다. 또한 발자끄는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들 앞에서도 진실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했다. 발자끄는 자연주의 작가로서 그의 예술의욕을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하는데 집중했다. 발자끄의 예술은 실생활에 몰입하려는 강렬한 욕망에 지배되고 있지만 그러나 직접적 관찰에 거의 아무런 혜택도 입지 않는다. 발자끄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작가의 사고와 감정이입을 통해 독특하게 고안된 것이다. 발자끄는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 문학의 순수 예술성에서 플로베르와 보들레르의 심미주의에 이르는 발전 사이에 끼인 일시적인 현상을 예술이 눈앞의 생활문제에 완전히 흡수된 짧은 시간을 대변한다. 발자끄의 소설은 그야말로 모든 미학적 규범을 무시하고도 훌륭한 작훔이 나올 수 있다는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그의 환경이나 배경과 똑같이 막연하고 이질성분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 그의 자연주의는 불완전할뿐더러 부정확하며 그의 심리학은 때때로 허황할뿐더러 재치 없고 개략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잡기 힘든 장광설, 과장된 비장조구미에 맞는 안이하고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저급하고 불확실하고 쉽게 만족되는 취미가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반면 진정한 예술은 예술가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해줄 능력이 없는 소수 전문가계층의 소유물이 되었다. 이 시기의 자연주의는 차후의 여러 발전 형태들의 싹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모든 공식이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집중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 운동의 목표와 원칙이 점점 구체화되고 이른바 사실주의 자연주의로 발전함에 따라 적대관계는 더욱 날카로워진다.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지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말과학의 원칙을 적용한 데에 있다. 자연주의는 진실성을 가능한 기준을 거의 전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서 가져온다. 그러나 자연주의적 입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1848년 세대의 정치적 경험이다. 자연주의의 정치적 근원이 그 반낭만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경행들을 설명해준다. 자연주의 문학 자체 내에서도 두 가지 다른 경향이 있다. 하나는 원래 보헤미안적 환경에서 나온 자연주의자들 다른 하나는 이른바 금리생활자들 같은 작가들이다. 이 두 그룹은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로 맞섰다. 보헤이안들은 모든 전통주의를 증오한 반면, 플로베르와 그의 벗들은 대중의 호감을 사려는 모든 작가들을 의혹의 눈으로 본 것이다. 플로베르의 피소사건과 쎈쎄이션을 일으킨 보바리 부인의 성공은 자연주의를 둘러싼 싸움을 이 대 조류의 승리로 끝맺는다. 이번에는 일반 독자들의 관심이 진보적 문학에 대한 비평가들의 태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것은 자연주의가 내부적으로는 보헤미안들과 금리생활자들로 갈라져 있지만 양자가다 자유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반정부적인 사회비평은 모든 자연주의 문학에 공통된 것이며 정치적 입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비순응주의에서는 모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폴베르는 비낭만적인 18세기의 마지막 유물인 합리주의에 집착한다. 낭만주의 정신에 대한 플로베르의 한층 더 유화적이여 기회주의적이다.디킨즈의 성공은 동시에 새로운 출판방식의 승리를 뜻하는 것으로서 폭넓은 독자층과의 끊임없는 접촉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 대중적인 스타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배로 대중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극소수의 예술가에 속한다. 디킨즈는 모든 시대를 통해서 가장 성공적인 문필가의 한 사람이며 자기 시대에 저항이나 환경과의 긴장된 관계에서 작품이 생겨나지 않은 독자대중의 요구와 완전한 일치를 이룬 낭만주의 이래 유일한 참다운 작가이다. 디킨즈에게 있어서 그의 세계관의 전체성과 완전성은 그 자신이 독자들과 똑같이 좁은 정신적 시야와 똑같이 분별없는 취미와 똑같이 소박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 양화가 우리 시대의 동시대적예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은 생생한 당대적 문학이었으며 그 예술적 결함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살아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이라는 탁월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의 예술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은 서로 분리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의 여러 죄악 제도적 조직체의 속성인 개인적 고려의 결핍에 대해서 불꽃 튀는 어휘로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고난의 외침과 만족감을 뭔가 좀 더 확실한 것으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그의 무비판적 인정주의, 치어리블리즘, 소유계급의 사사로운 선의와 선행이 사회적 결함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은 마지막까지 분석해보면 그의 애매한 사회의식에서, 계급들 사이에서 확정될 않은 그의 소시민적인 위치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의 감정과 사고는 모두 소시민적이었고 생활의 이상도 소시민의 그것이었다. 디킨즈는 자기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들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 그는 우중을 두려워하고 이상적 의미에서의 민중이란 중산계층이라고 생각한다. 디킨ㅈ는 정치적 진보성과 기존 상황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지배체제의 전제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일개 온순한 시민이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정과 공업 대소디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그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며 노동운동에일찍이 사회적 신분 상실의 느낌을 맛보았던 경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사회소설의 역사에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대도시를 그 소시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군중, 소규모 장사치와 하급관리 학생과 창녀 무위도식 자와 빈민 들을 망라하여 처음으로 자연주의적으로 그려낸 것이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철두철미 대도시의 어두침침한 모습을 어둡고 아무런 색채 없는 비참한 상태로서의 도회를 그린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지적 경험을 감각적 경험 못지않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줄 안 최초의 현대 소설가일 뿐 아니라 그 이전에는 아무도 감히 들어가보지 못한 정신적 영역에까지 파고들어간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정신적 구조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그가 사상세계의 낭만주의자로서 그에게 있어 사상의 움직임은 낭만주의자에게서의 감정의 홍수와 격랑 못지않은 정서적 혹은 병리적 추진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도스또예프스끼에 의하면 인간존재의 의미는 그 시간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쌓이면서 우리를 묻어버리는 그 세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 마치 자신의 운명과 일치됨을 선언하는 그런 지고의 순간에 있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항상 최고의 행복과 가장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초시간성의 체험으로 묘사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형식이 사회 소설 및 심리소설의 직접적인 연속인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발전의 시작을 뜻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연주의 소설의 가장 발달된 형태를 대표하지만 과장된 상황과 환상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을 즐겨 쓰는 도스또예프스끼의 태도는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극단적인 대조에도 불구하고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는 개인주의와 자유의 문제에 관한 그들의 태도에서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과 그의 고독 내지 고립을 최대의 악이라고 본다. 그들에게는 당대의 도덕적, 심미적 편견들을 무시할것이다.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한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옷을 말한다. 한복은 쭉 뻗은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룬 우리 나라의 전통 의상이다. 여성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로 우아한 멋을 풍겼으며, 남성은 바지 저고리를 기본으로 조끼와마고자로 멋을 냈다. 백의민족답게 기본색은 흰색이었으며 계절이나, 신분에 따라 입는 예법이나 소재, 색상이 모두 달랐다. 결혼과 같은 특별한 예식에는 평민들도 귀족이 입는 화려한 빛깔의 옷과 장신구로 한껏 멋을 냈다. 최근 국내에는 한복의 장점에 실용성을 가미한 개량 한복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한복의 흔적을 발견한것은 고구려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 속 벽화에서였다.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시대의 의상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의 왕과 몽골족 공주와의혼사로 중국 용안시대의 옷이 한국에 들어왔고, 그것이 한복의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오랜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변화는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고름의 색상 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 아낙이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기 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 이다. 명절과 결혼식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진다.
Report(문학과 예술혼)이름:학번:과목명:담당교수:제출일:개요1장) 개화세대에서 일제 강점기 세대-이광수의 (사랑)-한용운의 소설-이상 연구의 방향-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황순원의 (나의 꿈)에서 (말과 삶과 자유) 까지-한무숙의 소설-이범선의 소설-이병주의 (관부연락선)2장) 전후세대와 전란 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세대-손창섭의 소설-이호철의 소설-이청준의 (이어도)와 (비화밀교)-김주영의 (화척)-한승원의 (목선)에서 (동학제) 까지-전상국의 소설-김용성의 (앓은 자와 찾은 자)에서 (기억의 가면) 까지-김원일의 소설3장) 산업화 및 탈근대적 성격의 시대를 표방하는 작가들-윤홍길의 (장마)-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정래의 초기 소설에서 (한강)까지-황석영의 소설-서영은의 (먼 그대)-최인호의 (깊고 푸른 밤)-이문열의 (변경)-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4장) 우리 당대에 창작을 시작한 작가군 세대-양귀자의 (숨은 꽃)-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고원정의 소설-구효서의 소설-이승우의 소설-전경린의 소설-김경욱의 소설-천운영의 (바늘)1장) 개화세대에서 일제 강점기 세대이광수의 작품들은 작품 자체로서의 생명력보다는 창작 환경과 결부되어 그 효용성이 감정되는 상황을 야기하게 되었고 이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가 작품의 해명에 개입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과 당대에 그가 점유한 지도적인 위치로 보아 작품이 작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수긍할 만한 측면을 거멀못처럼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이 근대 의식의 개화기에 이광수가 그의 문학을 통하여 끝없이 높은 사랑을 찾아 향상해야 한다는 사회 개량의 사명감을 통하여 우리 역사와 민족을 향해 내던진 육성에는 한 시대의 중심을 울리는 통렬함이 있다. 그러하기에 그의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아무런 유보 조건 없이 폄하할 수 없으며 현대문학1백 년을 맞아 그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들을 다시금 진지하게 되새겨 보는 일이 요구되는 것이다.만해가 쓴 다섯 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심화를 가져왔다는 점 그리고 시적 리듬이나 소설적 기법에 있어서도 파괴적인 변형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일구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소설을 비소설 화하고 난해한 시를 쓰며 다다이즘, 심리 주의적 경향 무의식 상태의 기술 모험과 좌절의 표현 과다한 실험성을 내보이는 등 그의 문학은 한마디로 부정과 파괴와 가치 전도의 대명사 같은 것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우리 문학사의 문학적 쟁점 가운데 있고 문제적 시인 및 작가로 부각되어 온 것은 시대나 사회적 환경 속에서 꾸려가는 삶의 내용 및 형식에 대결하는 자세의 격렬함과 독특함 대문일 터이며 그러한 사실이 역시 유례없는 독특함으로 이름 불릴 수 있는 그의 문학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김동리는 한국 근. 현대문학사를 논술할 때 결코 간과하고 넘어 갈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특히 소설을 통하여 신성과 인본주의의 접점을 치열하게 탐색하고 평론을 통하여 현대사의 이념적 혼란과 그 와류를 헤치고 민족주의문학 또는 순수문학의 가치를 높이 들었다. 김동리는 인물 설정과 인적 구성을 토대로 신성과 인본주의가 서로 대립할 때 인본주의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게 되며 그것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추구해 나갔다.황순원과 그의 문학은 신앙심이 깊고 활동적이다. 1950년 동란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황순원의 작품 세계는 당초의 시적 정서가 초기 단편소설에까지 이어져서 작가 자신의 신변적 소재가 주류를 이루는 주정적 경향을 보여준다. 1965년 이후부터 황순원의 문학은 또다시 새로운 변화 곡선을 그려 나간다. 세상을 복합적이며 함축적이고 원숙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단편들의 지속적인 제작이 그 하나이다. 황순원의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과 순수성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했고 이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지켰다.한무숙은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에 걸쳐 현실적 삶 가운데 여성에 대한 억압 기제가 별다른 반성적 성찰 없이 하나의 환경 조건으로대목이다.1950년대와 1960년대 이범선의 작품들은 분단과 실향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부각시키는 동시에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정체성에 있어서는 끈질긴 사회고발의 비판적인 정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실종된 인간성으로 또 때로는 인간의 내부에 깊이 갈무리된 인간애로 나타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사회 고발의 차원을 외형적 현시화에 두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깊이의 시작으로 유실의 위기에 처한 인간애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예리한 비판의 정신과 따뜻한 인간애의 미덕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동시에 매우 소중한 일이다. 이범선은 그것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이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품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이병주는 분량이 크지 않은 작품을 정교한 짜임새로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인식되기로는 부피가 장대한 대하소설을 유연하게 펼쳐 나가는 데 탁월한 작가라는 점이다. 이병주가 너무 많은 작품을 간단없이 제작해 낸 관계로 곳곳에 비슷한 정황이 중첩되거나 중 단편의 내용이 장편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있는 양상도 적잖이 발견된다. 그가 보다 미학적 가치와 사회사적 의의를 갖는 주제를 택하여 힘을 분산하지 아니하고 집중했더라면 빼어난 문필력과 비슷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극적인 체험들로써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같은 웅장한 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2장) 전후세대와 전란 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세대지금까지의 대다수의 평자들은 손창섭의 소설을 암울하고 폐쇄된 현실 속에서 패배하고 정망한 인물들을 구도화한 것이라고 보아왔다. 당대의 사회적 배경 작가의 환경 조건과 기질 작품의 어조와 분위기 등으로 보아 그러한 평가는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의 유다른 개성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은 시대와 사회를 보는 작가의 부정적인 시각이 독자들의 주의력을 붙들어 두는 설득력 있는 문장력과 자기 폭로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스토리를 꾸려나가바탕으로 사실적 리얼리즘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강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는 언어, 작가 이청춘의 소설은 유토피아에 다가서기 위한 소설적 시도를 하였는데 결국 유토피아는 꿈으로 그칠 뿐이며 그 꿈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의 환상적 행복에의 주문에 얽매여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역사적인 꿈이 사람들을 정신적 위안의 극점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그의 소설이 유토피아의 형상 그 자체를 뭇사람들의 서선 앞에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이청준의 소설을 통해 삶의 어려움과 질곡 가운데 설정된 유토피아가 환상적 행복에의 도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적 활력의 충전을 예비하는 가능태로 전제될 때 그것은 내면적인 건강함을 촉발하는 유토피아이다.등단 초기 김주영은 주로 자전적이고 가족사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많이 썼고 한동안은 객지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밝혀 보려 한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이러한 중간 단계들을 거쳐서 그의 문학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 험난한 파고에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한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장강대하 같은 필치로 걷어 올리는 경계를 열게 된다.한승원의 문학 세계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워 상찬을 내놓을 만큼 충분한 축적을 이루었다. 우선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고 흉내 내기초자 어려운 다산성의 작가라는 점이다. 동시에 그 하나하나가 치열한 작가 의식과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일정한 수준 이상의 문학성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덧붙여서 여러 차례에 걸친 문학상의 수상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좌표 설정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전상국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저지른 죄악은 의도적인 범죄라기보다 인공 치하에서의 회피할 수 없는 정황에 의거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관점은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감성적 화해를 실현 시키는 전제조건이 된다. 전상국의 소설은 우리에게 6.25의 상처로 인한 삶의 어긋남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과거의 수난사와 현실의 삶을 꿰뚫고 있는 우리 민 없이 시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문학의 책무를 감당하려는 의지를 끈기 있게 붙들고 있다.3장) 산업화 및 탈근대적 성격의 시대를 표방하는 작가들윤홍길의 작품 세계는 몇 가닥의 지류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남북의 분단 현실과 그에 수반되는 모순의 문제, 산업화 시대에 굴절에 의한 계층 간의 갈등 문제, 교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순진한 어린이의 눈으로 괴기스러운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도 있다. (장마)는 그중 첫 번째 항목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강대국들의 자국 인도주의적 차원의 화해로 승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우리 분단 문학의 천정을 친 작품으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1970년대 중반에(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한 편의 소설로 우리 문학사에 지울 수없는 이름을 얻은 조세희는 이 소설을 필두로 한 우수한 문학성을 가진 작품들과 더불어 당대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헤집어 보인 공적을 남겼다. 조세희가 그의 소설 속에서 형상화한 난쟁이는 우리로 하여금 매우 깊은 자유의 공간으로 침잠할 것을 요구한다.조정래의 작품들이 붙들고 있는 역사 해석의 지평에 있어서 가장 새롭게 눈이 들어오는 것은 과거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주의적 역사관을 문학에 적용하는 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민중사관의 시각을 전면에 내세워 우리 민족사의 실체적 삶과 그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중인물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작가를 대신하며 이들은 결국 작가의 주관이 객관화되어 확립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조정래는 이들을 통하여 역사와 시대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안목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한편 견고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의 활력을 작품의 행각 속에 효율적으로 갈무리함으로써 소설적 갈등을 추수하는 데 소홀하지 않으려 한다.황석영의 소설을 살펴보면 이 작가가 분단 모순과 계급 모순의 양자에 걸쳐 그 문제의식을 배우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양자 각기의 문제가 문학적 표현을 획득하는 데 시발적 기능을 담당했으며 또한 그것의 확대 발이다.
여승???????????????????????????? ?-송수권?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나는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며장짓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 보았다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 보고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이 시의 주제는 여승에 대한 동경이며 형식은 자유시이다. 표현상의 특징은 산문체의 주정적인 밝고 섬세한 시어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표현을 하고 있으며 여승에 대한 정서의 충동이 설득력있게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산문시를 전개 시키고 있다바릿대를 들고 여염집으로 탁발하러 온 여승 고깔 쓴 여승의 낭랑한 염불소리에 감기를 앓던 소년이 장짓문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훔쳐보다가 그만 넋을 빼앗겨 뒤따라섰다는 스토리가 흥미롭다.제7~10행에서 순정적인 이런 순수한 정서는 다감한 소년시절에 대개의 소년들이 겪는 일종의 사춘기 의식이며 그 과정에 대한 진솔한 표현이 공감도 높은 서정시의 세 떠나 불가로 가버린 여성 즉 여승의 수도를 하는 젊은 여인을 상징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본다. 여성이 머리를 깎고 불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결코 범상한 행동이 아닌 참으로 인생으로서의 마지막 처절한 결의로서만이 가능한 고답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화자는 서두에서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고 묻고 있다. 그리메란 그림자의 옛말이거니와 그렇다면 가을산 그림자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이란 사랑의 별리를 가리킨다.명상 - 한용운아득한 명상의 작은 배는 가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되어 있고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이 나라에는 어린애기의 미소와 봄, 아침과 바닷소리가 합하여 사람이 되었습니다.이 나라 사람은 옥쇄의 귀한 줄도 모릅니다.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같이 살자고 합니다.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맞추어 우쭐거립니다.이 시의 주제는 이상한 나라 동경과 조국애 이며 형식은 전연의 자유시이다. 서정적, 상징적, 불교적경향을 띠고있으며 산문체의 알기쉬운 표현을 하고 있어 전달이 잘 된다.시인이 명상 속에서 찾아간 나라는 어디인가. ‘아기의 미소와 봄 아침과 바다 소리가 합하여’ 된 사람이란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이다.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웃음’과 ‘푸른하늘’을 좋아하는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는 일제 침략의 번뇌에서 해탈한 부처님이 사는 평화의 터전 피안인 것 같다. 시인은 명상 속에서 불타의 세계를 발견했다. 바로 그런 이상 세계를 조국 땅에 건설하기 위해 온갖 부귀영화며 아름다움을 물리치고 가혹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는 불멸의 조국애를 역설하는 것이다.국화 옆에서-서정주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 2, 4연에서 시인은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아픔과 어려움을 노래한다. 그 배경은 각각 봄, 여름, 가을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봄에 처절하게 우는 소쩍새, 여름의 천둥, 그리고 가을 밤 무서리와 그 자신의 잠 못 이룸이 모두 한 송이 국화꽃과 어떤 신비스러운 인연을 가진 것만 같다. 상식적인 생각으로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상상일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 논리를 넘어 생각해 볼 때 이 우주와 생명의 신비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더욱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어떤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이라는 불교적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상이나 비논리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인연의 가능성 위에서 한 송이 꽃의 피어남을 그 앞에 있었던 수많은 괴로움과 시련의 결과로 여기는 상상력이다.그렇게 하여 피어난 국화꽃의 모습을 제3연이 노래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화가 이제 젊음의 시절을 다 지나 보내고 차분히 자신을 돌이켜보는 누님의 모습으로 노래된 점이다. 이와 같은 비유적 관계를 파고 들어가서, 봄을 20대에, 여름을 30대에, 가을을 40대에 해당하는 것으로까지 해석하는 일은 아마도 지나친 것이겠지만, 이 부분에 나타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도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인생으로 친다면 그리움, 아쉬움 등과 같은 갖가지 젊음의 시련을 거쳐 지니게 된 성숙한 삶에 견줄 만한 은은함이 있다. 이 시가 노래한 국화란 해방 이전에 `생명파'의 일원으로서 들끓어 오르는 삶의 욕구와 격정들을 노래하여 온 시인이 그것을 넘어 보다 균형된 삶의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적 이상을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동천(冬天)서정주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이 시의 주제는 순수한 사랑의 외경추구 이며 전연의 자유시이다. 상징적, 불교적 초현실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현대문학’ 제 137호에 실렸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이 시의 주제는 한국 불교의 고전미이며, 형식은 9연의 자유시 이다. 서정적, 불교적, 고전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주정적인 섬세한 시어로 리듬감을 살리고 dLT고 승무하는 여인의 외면과 내면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적인 선미를 의식화 시키고 있다.얇은 사(紗 : 생견으로 발이 성기게 짜여 있으며 여름 옷감으로 쓰임)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나비같아라).[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1연) : 이승(尼僧-비구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깔만으로 표했다. 그녀는 아직 감추어져 있다. 다만 '날 듯이 가벼운 고깔'만 클로즈업된다. 특히 나빌레라는 예스럽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말을 통해 여승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양시키고, 음보율의 변화를 통해 시상 전개의 완급(緩急)을 조절하고 있다.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승려가 머리에 쓰는 모자의 한 가지로 베 조각으로 접고 맞추어 세모지게 만듦)에 감추오고,[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2연) : 박사 고깔 속엔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감추어져 있다. 머리를 깎은 모습은 측은함을 유발한다. 그녀의 애련미를 화자는 느끼고 있다.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3연) : 아름다움은 심화된다. 두 볼은 흐르는 빛이 고와서 서럽다는 표현은 과히 압권이다. 이 역설은 한국적 미감의 특색을 잘 드러낸다. 2연의 가련미도 결국 역설적 아름다움이다. 너무나 고와서 서럽게 느껴지는 비극미(悲劇美)는 우리의 전통 정서이다. 다시 말해서 춤을 추려는 여승의 모습은 젊고 아름다우나, 그런 젊은 여인이 승려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연 날아가는 발동작은 한국 춤사위의 기본 동작이기도 하지만, 이 시의 주제와도 관련되는 동작이다. 번뇌를 잊기 위해 내젓는 팔과 시름을 잊으려 훌훌 떠나려는 발동작의 단속(斷續)은 세사와 해탈의 경계 지점을 넘나드는 심적 상태와 통한다. '정(靜), 동(動) → 멈춤, 떠남 → 세속, 허탈'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이다. 까만 눈동자[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초월하고자 하는 염원을 시각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제시]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번뇌의 서러움을 극복한 종교적 승화를 의미]에 모두오고,[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6연) : 이승(尼僧-비구니)의 간절한 염원을 표상했다. 눈동자가 별빛에 향한 상태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심경은 선미(禪味)를 불러일으킨다. 부처를 향한 정성스런 기도는 정적감과 함께 지상과 천상이 교감하는 순간의 긴장을 주기도 한다. 명상의 순간이자 진리를 향한 염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와서 외면 묘사가 내면 표출로 전환되고 있다.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속세의 인연에 대한 회한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흘리는 눈물로, 정화(淨化)의 의미를 담고 있다.]세사(世事 : 세상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 : 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움)는 별빛(세속의 번뇌를 초탈하고자 하는 염원과 의지가 '별빛'이라는 시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 역설법)이라.[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7연) : 기도 순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었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진 눈물 방울은 세사에 시달린 고통의 눈물이지만 그것은 정제된 눈물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정제된 눈물이야말로 별빛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해탈의 경지를 향한 여과된 눈물일 것이다. 따라서 짙은 번뇌만이 진정한 해탈로 가는 길임이 역설적으로 가능해진다.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동적인 이미지]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휘어져 다.
-개요-1. 일제 강점기 시사의 형성과 전개1) 개화기 시가론2) 3.1운동과 초기시단 형성3) 현대시의 분화와 전개2. 분단시대 시사의 전개1) 해방기 및 한국전쟁 시기의 시2) 4.19와 1960년대의 시3) 1970~80년대 민족문학, 민중의 시 전개4) 1970~80년대 모더니즘과 언어미학 추구5) 21세기 현대시의 지평개화기 시가론일반적으로 개화기로 통칭되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10년대에 이르는 40~50년간은 주권상실의 위기와 근대화의 임무수행이 부여됐던 역사적 혼란기이자 전형기였다. 이 시기에 전개된 개화와 척사의 시대의지는 국권상실에 처한 비극적 역사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체계였다. 그러나 우리 기존문학사의 경우 개화라는 시대의지가 몰고 온 사회변화를 곧 한국 근대화의 결정론으로 수용한 인식체계가 적용되고 있다. 개화기 시가에 대한 일반적 평가에는 우리의 고전시가의 전통적 맥락을 외면하고 개화라는 외래지향적 시대의지에 편승한 문학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대체로 개화기 시가는 기존의 고전시가 양식을 계승한 전통장르와 개화기에 새롭게 등장한 신흥장르로 대별할 수 있다. 개화기 가사는 넓게는 1860년대 동학가사에서 좁게는 1896년 소재가사로부터 시작되어1910년대 말까지 개화기 전 기간 동안 창작된 장르이다. 개화기 가사는 4.4조 4음보의 연속체 시가장르의 전통적적 양식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찬송가, 창가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분절 및 반복구 첨가, 단형지향 등의 변형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시조는 기존 개화기 시가 연구에서 타 장르에 비해 인식이 미흡했던 장르였다. 개화기 시조의 장르상의 특징은 3.4조 3장6구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종장의 종결어미 생략, 3.5.4.3의 자수 배열의 혼란 ,2행 및 4행시조의 출현 등 장르 변형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개화기 한시는 전문 문인에 의한 것과 일반 대중의 창작 등으로 대별된다, 민요는 우리 시가 중 가장 오래된 구비 장르로서 개화기에 들어와서도 부단히 민중의 입에 회자되에서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의 상황은 민족국가의 생존권이 이미 왜적의 손에 넘어간 때로 문학적으로는 근대적인 문학 양식이나 문학정신이 새롭게 등장했던 시기로 새로운 시대의 문학과 예술은 이전의 것처럼 삶의 여유 속에서 잉태되고 생산된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생활을 진실 되게 반영하고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어야 했다. 일제강점기는 서정양식보다는 서사양식이나 극양식이 주도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서정 양식의 경우에도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민요적 형식인 노래나 이야기를 택하게 된다. 우리 근대문학사는 일본과 서양으로 대표되는 서구문학 근대문학의 이 식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개화기 시가는 기독교의 찬송가와 같은 서양의 악곡의 영향을 받았으며 창가나 신체시는 일본 창가와 신체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 우리 근대시는 이전 시기의 전통시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며 서구문학의 수용을 통하여 한국 근대 시문학 사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즉 우리 근.현대시는 개인적인 서정시나 자유시를 지향하게 되며 언어 정서 운율 시적법등에서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전혀 다른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운 문학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1920년대 중반 우리시는 서정시인 민족시인을 만나게 되고 일제강점기는 물론 우리 근 현대시를 대표하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들의 시를 우리 문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민족해방운동이었던 3.1운동의 실패는 우리 사회를 세기말적인 패배 분위기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런 패배적 분의기는 신흥 예술과 신흥 문학을 주장하는 신경향파문학의 등장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프로문학운동은 민족해방운동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문인들의 문학적 실천을 조직화하고 이를 전체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이끌었던 단체가 카프였다. 이를 통하여 프로문학운동은 이 당시의 계급운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상적 연대를 피하는 한편 조형성에 치중하여 내용적 빈곤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반면에 한용운은 이 편내용의 계몽주의와 편미학의 예술지상주의를 극복하면서 근대시사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만해의 시세계에 있어서 주된 모티브는 님과의 이별이며 이러한 시적 상황이 촉발하는 시적 정서는 깊은 상실감과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초극의지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풍부한 불교적 명상을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존재의 합일은 개체적 개성과 진실을 무시한 전체성이나 전체로서의 특성을 무시한 개체성의 어느 하나에 편중된 채 성립되지 않는다. 진정한 존재의 합일은 주체와 대상의 상호지향이라는 지향적 속성을 통해 서로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만해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초극은 부정의 힘을 통해 생성의 경지를 열어나가는 내적 동인으로 작용한다.정지용. 이상화의 시세계정지용의 시는 그가 탐구하고자 한 대상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된다. 정지용의 시 가운데서는 바다를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다룬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다를 다룬 정지용의 시는 성공작이라 하기 어렵다. 그는 바다의 표면적 이미지와 속성만을 건져 올렸을 뿐 바다를 통한 울림이 있는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산을 다룬 정지용의 바다를 다룬 시의 경우와 달리 산을 다룬 시에서 보다 실감 있는 묘사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지용의 시에서 고향을 다룬 시와 동심을 다룬 시 역시 산을 다룬 경우와 같이 성공적인 예가 많다. 감정적 과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기법적 장치 위에서 정지용의 이들 시편이 다룬 고향과 동심은 그의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농익은 체험 이미지의 재현에 의하여 감각적 새로움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제 끝으로 가톨릭 신앙심을 다룬 시와 문명을 다룬 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지용의 시 가운데 그 정신과 방법의 양면에서 객관성의 확보 즉 리얼리티가 가장 부족한 유를 만들어냈다. 시인이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독자에게 감염시키고자 의도한바 일제 치하 계급적 현실의 열악함과 부당성에 대해 독자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시적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임화는 철저히 인물 행위의 상황성과 배경적 분위기의 제시 및 그 상황의 현실적 의미에 대한 화자의 변사적 해설의 형식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김영랑 박용철의 시세계김영랑 시의 주요한 특징은 우선 시언어의 운영을 들 수 있다. 김영랑은 이상적인 내면 풍경을 실재 현실 속에 투사함으로써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현실의 모습을 탈색시킨다. 김영랑이 추구한 순수서정이란 곧 자연과 마음이 일체가 된 풍경이었다. 이것이 영랑이 식민지 현실과 이로부터 발생되는 비극적 분열의식을 시로부터 축출하고 고통을 초극하는 순수자아를 확립할 수 있었던 주요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영랑이 구축한 서정적 풍경은 타자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 미적 자율성의 추구는 세계에 대한 주체의 타율성을 제어하기 위한 미학의 본질적 측면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타율성의 존재이다. 그러나 김영랑에게 순수미의 추구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언어의 절대적인 자율성을 향한 유미주의적 욕망은 시인에게 가하는 타율적 제약을 모두 없던 것으로 치부하게 만듦으로써 게계에 대한 시적 탄력을 잃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박용철의 순수시론은 시문학파의 이론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용철은 음악과 같은 시언어를 순수서정시의 궁극적인 형식으로 이해한다. 박용철의 순수시론은 심미적 낭만주의 경향이 강하다. 그에게 시란 객관 현실에 대한 인식 및 성찰 이전의 것이다. 박용철의 많은 시에서는 고향을 떠나는 혹은 떠돌아야 하는 자의 설움이 내재되어 있다. 이때 식민지 현실 속에서의 이향이란 피식민자의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고향이란 존재의 집 즉 존재가 머무는 실존의 영역이며 보다 넓게는 국가와 민족을 상징한다.유치환 신석정의 시세계시는 삶에 대한 치열한 고투와 심각한 회의를 토로나자 시인의 민족애는 역사 속의 영웅이나 전통정신을 찾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모윤숙 시인에게 나타나는 민족의식은 계급투쟁문학으로서의 프로문학이나 해방적 관점에서의 민중 문학적 시각은 아니다. 그는 프로문학이나 해방공간에서 다시 대두되었던 이데올로기의 문학적 태도를 거부한다. 모윤숙의 문학은 낭만주의적 성향을 근본으로 하며 인도주의적 뿌리 위에 인간평등사상에 기초한 여성해방의식의 여성적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일제 강점기 불운한 시대적 비극으로 애상적 조국애로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모윤숙의 삶과 문학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사회 정치성향임에 비해 노천명 시인은 고독하고 도피적이며 비사회적 성향을 띠고 있다.1930년대 모윤숙과 노천명의 문학은 이 땅의 남성편향성 문학풍토의 척박성에 여성문학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윤숙 시인은 여성시인들의 영역이 아닌 것 같던 저항시와 전쟁시 그리고 서사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노천명 시인은 문학의 자아탐색과 언어 절제로 1930년대 시적 성숙을 보였고 여성시인의 위상을 놓였다는 점에 큰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저항시와 친일시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일련의 침략 전쟁을 감행한다. 폭압적 파시즘 체제 아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은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론을 지지하며 친일적 경향을 드러내게 된다. 일부 문인들은 일제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언어를 지키며 민족문학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또 일부는 절필로 항거하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다. 이들의 시문학은 그 지향점이 매우 다루지만 일제 말기의 저항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전후시단의 형성과 전개전후 50년대 전후 시단의 형성은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한국전쟁을 치른 후 전후의 황폐와 정신적 공허함은 50년대 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전후적 질서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물음들을 끊임없이 제기 하도록 만들었다. 전후 한국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