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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거울에 비친 유럽을 읽고 평가A좋아요
    ♠ 이 책에 대한 소개은 기존의 유럽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새로운 해석과 유럽사 전반의 재조명이라는 작업으로 프랑스의 쇠유, 이탈리아의 라테르차, 독일의 C.H 벡, 영국의 블랙웰, 스페인의 크리티카 등 유럽 5개 언어권을 대표한다는 출판사의 공동 작업으로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의 저술가인 조셉 폰타나는 스페인 역사가로, 지난 반세기간에 걸쳐 분단 이데올로기에 쌓여 금기시 되었던 맑시즘(유물사관) 계통의 역사가이며, 수정주의 경향의 역사가이다. 그의 이 책에서 유럽사의 새로운 제시와 함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이 책은 유럽의 역사를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일종의 함정과도 같은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 촌뜨기의 거울, 궁정의 거울, 미개의 거울, 진보의 거울, 대중의 거울이라는 아홉 개의 왜곡된 거울을 통해 비추어 보고 있다.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혹은 자기 합리화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제시한 이 아홉 개의 거울을 통해 이면에 숨겨진 유럽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거울은 분명 모든 것을 그대로 반사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 거울은 우리에게 좌?우를 반대로 보이며, 거울이 뒤틀리면 빛도 굴절되어 왜곡된 형상을 드러낸다. 조셉 폰타나는 바로 이러한 빛의 굴절을 바로잡아 우리에게 보다 실물에 가까운 유럽의 지난날을 말하고자 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 요약1.야만의 거울 - 아홉 개의 거울은 각각 그 시대를 대표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거울의 종류도 거기에 비치는 사물도 각기 바뀌는 것이다. 유럽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야만의 거울은 무엇인가? 유럽인들에게 비춰진 야만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럽을 제외한 다른 것들, 즉 비유럽적인 모든 것이 야만의 범주에 묶이게 된다. 유럽은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다른 문명을 야만 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인들이 자부하는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 문화 그리고, 민주주의와 헬레니즘이라는 자신들만의 문명이외에도 유럽전역의 정치?사회?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유럽인들 사이에 이렇듯 큰 영향력을 가진 이 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한 철저한 배타성으로 기독교 이외의 것을 이단으로 몰아 세웠다. 중세의 십자군 원정에서 나타난 그들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나 이교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실체를 작가는 ‘기독교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기독교의 거울은 우리에게 유럽의 모습을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세계로 비추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상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널리 확산되고 유일하게 공인된 신앙으로 추앙 받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 스스로 이단이라고 치부했던 새로운 믿음이나 이교도적인 의식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왔다. 비단 그것은 일찍이 유럽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 야만의 거울에 등장하는 게르만 인이나 여타의 동방 이민족들뿐만 아니라 로마의 지배층에서 조차 그런 의식이 행해져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식된 철저한 기독교 주의와 독실한 신앙으로 물들여진 유럽의 모습은 실상 그렇게 독실하거나 엄숙한 사회가 아니었음을 보이고 있다.3.봉건제의 거울 - 유럽의 봉건제는 로마인과 야만인 사이의 관계의 종말과 함께 시작 되었다. 그들이 숭배해 마지않던 찬란한 로마 제국이 한낮 야만인으로 밖에 보지 않았던 게르만족에게 무참히 무너진 이래로 유럽은 봉건이라는 새로운 체계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변모해간다. 하지만 중세의 사람들은 이 봉건제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로마적인 것과 로마의 전통을 쫓으려고만 하였다. ‘봉건제의 거울’은 철저한 암흑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번영에서 쇠퇴로 빛에서 어둠으로 끊임없이 추락해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폰타나는 유럽의 봉건제와 봉건제가 존재하던 중세를 도태의 시기가 아닌 발전을 위한 준비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바이킹족 등 수많은 민족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동방과의 활발한 무역과 십자군 전쟁 등의 결과로 나타난 상업혁명은 후세 유럽의 부흥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봉건제의 거울은 우리 권위로 자신들을 절대적인 선으로 착각한 이들의 광기에 가까운 행동은 수많은 사람을 악마로 몰아 ‘마녀사냥’을 자행케 했으며 그들과 동일하다고 여겨지지 못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우를 범하게 했다. 악마의 거울은 그들의 광기 이면에 이러한 광기가 있게 한 절대적인 믿음 혹은 그들만의 정의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비추고 있다. 하지만 폰타나는 이러한 외적 투영과는 별개로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거울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성스러움과 신에 대한 존경으로 위장된 그들의 행위 대부분은 이면에 세속적인 욕심과 자기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물의 좌우를 반대로 투영하는 거울의 특성처럼 악마의 거울에 비추는 악마의 진짜 모습은 누구를 비추고 있었던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5.촌뜨기의 거울 - 14세기 초기까지 지속된 성장을 거듭하던 유럽은 이후 심각한 위기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시기의 지속된 성장에 있었다. 즉 전시기의 기술적 진보가 배제된 양적인 팽창에만 의존한 성장은 자연의 재해 앞에 너무나도 힘없이 그 한계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유럽 인들은 체력적으로 극도로 나약해 졌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퍼지기 시작한 페스트는 전 유럽을 빠른 속도로 강타했다. 낙후한 위생상태와 불량한 영양상태 그리고 의학지식의 한계는 유럽 인구의 1/3 가량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농촌 보다는 인구의 집중도가 강한 도시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생명을 위협했다. 페스트의 피해가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데 반하여 페스트 이후에 감내해야할 피해는 농촌의 몫이었다. 인구의 감소로 인해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농촌은 경작지의 감소와 더불어 경제적인 피해를 감내 해야만 했다. 촌뜨기의 거울에 비친 당시의 유럽은 이처럼 농촌의 피해가 확산되는 와중에서도 영주나 국가는 그들 제정의 필요를 여전히 농촌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의 수탈에 맞서 농민들은 도시민들이 과거에 영주에 맞서 대한 탄압 역시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궁정에 비취진 유럽은 이런 계속되는 혼란의 시기를 넘어 17세기 대발견의 시기까지를 비추고 있다. 지리적 발견뿐만 아니라 과학과 수학 등 학문적인 분야에서의 발견과 발전이 이시기 유럽의 발전을 주도하였다.7.미개의 거울 - 지리상의 발견으로 유럽 사회는 이제 유럽 대륙을 넘어 팽창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내륙으로의 진출은 유럽 인들에게 새로운 수입원을 제공하였다. 그것은 비단 금?은과 같은 제화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는 자원의 공급을 의미했다. 아직까지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능가하지 못했던 그 시절 아프리카 흑인과 아메리카의 인디오들은 값싼 노동력의 보고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신의 창조물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마치 물건인양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이 피부색이 다른 창조물을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무참하게 학살했다.이전의 십자군 운동에서도 그랬듯이 이들의 외부세계 진출은 언제나 신에게서 그 명분을 구하고자 하지만 실은 절대적으로 경제적인 이윤추구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이 포교를 목적으로 선교사를 파견할 때 그들이 타고 간 배는 군함이었던 것이다. 미개의 거울은 이런 이중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흰 피부의 침략자들에게 저항한 원주민들은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그들보다 과학적으로는 뒤떨어져 있을 지라도 적어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이들보다 훨씬 깊은 사고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원주민의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폰타나는 미개의 거울을 통해서 유럽의 이런 이중적인 성향을 비판 하고 있다. 또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인종 학살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서구인들을 지적하고 있다.8.진보의 거울 - 지리상의 대 발견은 이제껏 닫혀있던 유럽인의 인식의 창을 열게 했다. 이러한 인식의 확대는 유럽있어왔던 ‘촌뜨기’들의 저항뿐 아니라 이제는 ‘노동자’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이 노동조합의 형태로 지배 계급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때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중의 거울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그들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로 간주하였다. 외부에 대한 경쟁력의 확보라는 명분으로 여전히 그들의 희생은 강요되었다. 이전 세대에서 그들은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데 성공했지만 유산자 계급은 그들의 부를 노동자와 나누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권력은 부유층과 결탁하여 이러한 움직임에 탄압을 가하였다. 노동자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되고 있으나 이미 한번의 패배를 경험한 지배계급의 자기보호 수단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대중의 거울에 비친 유럽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인 동시에 자본이 곧 힘인 세계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이 책의 장점(동의점)역사는 승리한 자의 편이라고 했던가? 아니 어쩌면 역사 자체가 승리한 이들의 기록일 것이다. 유럽의 이와 같은 발전은 유럽을 선진적인 것으로 역사에서의 승자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면에서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길게 잡아도 500년을 체 넘지 못하는 유럽의 발전을 그 이전의 모든 역사에 까지 소급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이전까지 유럽보다 훨씬 우월했던 동방의 문명을 야만적인 것으로 단정 지어 놓았던 것이다.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의 유럽 중심적 세계사 해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유럽 역사학을 형성해온 주요한 개념들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로마 제국의 몰락은 북방의 야만인들의 침입과 지배 계급의 풍기 문란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저자는 외부의 야만적인 세력이 제국을 무너트리려고 하는데, 지도 계급이 단결하지 못하고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앞세우는 바람에 제국이 몰락했다는 해석은 실제로는 중세의 기독교적 역사의식이나 최근의 냉전 시대의 역사관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었다.
    독후감/창작| 2005.04.18| 7페이지| 1,000원| 조회(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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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 영화피고인을 보고
    영화 ‘피고인’은 여성의 강간문제를 다루고 있는 법정영화이다. 비교적 오래된 영화라 그런지 비디오를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꽤 보유하고 있는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가서야 겨우 구할 수가 있었다. 상당히 화질이 떨어졌지만 구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기고 영화를 감상하였다. 혼자 보기는 심심해서 애인과 같이 보았는데 초반만 보다가 애인은 옆에서 골아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애인이 잠들기 전 영화의 사라를 보고 한 말이 곱게 자고 있는 애인을 한 대 쥐어 패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말이었다. 그 말의 요점은 ‘여자가 당하는 것은 그 여자가 헤프기 때문이다’이다.난 영화를 보면서 계속 ‘헤프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헤프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이런 풀이였다.헤ː프다[헤프니·헤퍼][형용사]1.물건이 닳거나 없어지는 동안이 짧다.¶ 식구가 많아 쌀이 헤프다.↔마디다.2.몸이나 물건을 함부로 써 버리는 버릇이 있다.¶ 쉽게 번 돈은 헤프게 쓰게 된다.3.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데가 있다.¶ 말이 헤프다./웃음이 헤프다.나의 얄미운 애인이 말한 ‘헤프다’는 사전에서 ‘몸이나 물건을 함부로 써 버리는 버릇이 있다’에 속하는 여자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함부로 써 버린다는 기준은 누구의 잣대에서 나온 것인가?영화에서의 사라는 내가 보아도 보통의 여인네와는 달리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구석을 가진 여자이다. 욕도 잘하고 술, 담배는 물론 마리화나까지 복용하는, 그리고 언제든지 남자 하나쯤은 유혹할 수 있는 그런 여자이다. 사라가 강간을 당하던 날도 울적한 마음에 술집에 와서 싸우고 나온 동거남에 보복하고 싶은 가벼운 충동에 처음 보는 남자들과 어울리다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남자들의 시선은 처음 보는 남자들 앞에서 헤픈 웃음을 짓고 유혹하는 몸짓으로 춤을 춘 사라가 강간을 자초했다고 보는 것이다. 내 애인마저 저 여주인공도 잘한 건 없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남자들은 태어나면서 헤픈 여자는 정조라는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조라는 것이 꼭 순결한 처녀이고, 또 그런 고결한 처녀만이 정조를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같은 여자들마저 상대방을 ‘헤프다’고 표현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소위 잘 나간다는 애들을 속어로 ‘걸레’라고 비유하듯이 말이다. 남성들 사이에서의 성경험이 많은 애들은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고 능력이 있다고 칭찬을 들을 지언정 ‘걸레’라고 비하시키진 않는다. 유독 여자만 비하되어 낡아빠지고 더러워진 ‘걸레’라는 칭호를 들어야만 한다. 왜 같은 여자마저 여자를 비하시키는 이런 현상이 생겨난 걸까? 그건 아마도 오래전부터 뿌리 내려온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때문일 것이다.어릴 때부터 여자는 얌전하고 순결하고 참해야 한다고 세뇌당하며 자라난다. 고등학교 시절 순결사탕을 주며 우리의 순결은 지켜져야 아름답다며 순결서약 캠페인 같은 걸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사탕을 받으며 왠지 찝찝한 마음에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던 기억이 난다.누굴 위해 순결은 지켜야만 하는 것이고 왜 순결은 지켜져야 아름다운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지금 내 나이가 24살이 되고 보니 그 당시 말하던 순결이라는 말 자체가 아주 웃기게 들리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솔직하게 여자도 즐기고 싶을 땐 즐길 수 있다고 본다. 즐기는 방법이야 남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야 본인의 마음 아니겠는가? 영화의 사라는 꿀꿀한 기분을 전화시키고 즐기기 위해 바에서 춤을 추고 낯선 남자와 술을 마시고 게임을 했던 것이다. 그 중 한 남자와 장소를 옮겨서 더 진한 관계를 가지는 말든 그것은 온전히 본인의 자유의사와 상대방과의 동의에 의한 것이지 헤픈 짓 좀 했다고 그곳에 있던 여러 남자들에게 강간당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바에 있었던 남자들은 확실히 거부 의사를 밝힌 사라를 잡아서 포박한 채 오락처럼 즐기듯 강간을 한다. 정말이지 그 장면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강간을 하는 남자는 물론 그것을 마치 운동경기 구경하듯 가까이에 모여 박수치고 응원을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남자들도 다 같이 인간같이 보이지 않았다.영화에서도 그랬듯 흔히 강간범죄는 가해자보다도 피해자의 신분, 행동거지, 유발요인 등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일쑤다. 즉, 여자의 처신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사회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평소에 이성관계나 생활방식이 매우 자유분방하고, 게다가 사건 당일에도 스스로 함정을 팠다고 비난 받을 수 있을 만큼 통념상 동정이 가지 않는 사라를 피해자로 등장시켰다. 그러나 강간당하는 순간에 분명히 "NO"라고 소리치며 거부 의사를 밝힌 이상 이 여자의 인권은 존중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강간은 결코 순결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강제와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하는 기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힌 것이다. 사라처럼 품행에 단정치 못 한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여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원인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조에 관한 죄’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조가 없는 여자라고 해서 그 자유의사를 침해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선동한 자들이 교사죄로 판정받아 비록 2주일 구류형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지만 그 의미는 큰 것이다. 살인은 방조한 죄도 죄가 되듯이 강간을 방조하고 오히려 부추긴 그 자들은 어쩌면 강간을 저지를 자보다 더 큰 죄인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길레 강간하는 사람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더 부추기고 구경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재판의 마지막 부분쯤 캐서린검사가 이런 말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라가 폭행을 당한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고, 있어서도 간과해서도 안 될 일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으로 들렸다. 이만큼 중요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성범죄는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의 성범죄 신고율이 발생 건수에 비해 단지 2.2%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도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현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범죄자 보다 피해자가 밝혀지기 두려워하고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다음은 많은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이다.① 강간만이 성폭력이다?강간은 성폭력의 일종일 뿐 요즘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의 성적인 접촉, 음란 전화등도 성폭력이다.② 젊은 여자들에게나 일어날 것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의 실제 통계에 의하면 피해자 나이는 갓난아이에서부터 80여세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다.③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과 행동이 강간을 유발한다?남자 어린이를 포함한 어린이들, 할머니 피해자들의 옷차림과 행동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인 것이다.④ 성폭력은 주로 캄캄한 밤에, 한적한 골목에서, 낯선 사람에 의해, 우연히 일어날 것이다?피해 장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집을 비롯하여 직장과 학교, 병원들의 공공장소, 숙박업소와 유흥업소등 실내가 약 60%이며, 거리와 골목, 기타 유원지, 공원, 야외 등 실외가 14%이다.⑤ 성폭력은 본능적이고, 억제할 수 없는 남성의 성충동으로 일어난다?성폭력은 남성의 성적 충동이라기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 행동까지는 남성다운 행동으로 자칫 묵인하는 잘못된 성문화 풍토 등이다.⑥ 성폭력 가해자들은 정신 이상자들이다?물론 남달리 포악하거나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해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 정상적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이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⑦ 강간은 폭력이 아니라 조금 난폭한 성관계이다?강간은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과 심리적 강제로 성적인 행위를 빌어서 일어난 상대방 인권에 대한 폭력 행위이다.⑧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대부분의 경우는 말로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한 협박과 폭행, 흉기 사용으로 저항 불가능 정도의 무기력 상태가 된다.⑨ 피해자 스스로 조심하는 것 말고는 성폭력을 방지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지금까지의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은 실제 상황이나 피해자의 경험에 대한 충분한 근거자료 없이 기존의 성차별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 비합리적인 인식으로, 오히려 피해자를 의심하며, 사회의 폭력 문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 왔을 뿐이다. (네이버 오픈백과에서 발췌)
    독후감/창작| 2004.10.28| 4페이지| 1,000원| 조회(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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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디자인이론] 데이비드 카슨
    데이비드 카슨-대담한 디자인으로 모더니즘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해체주의의 광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90년대 최고의 디자이너.-전제군주적인 모더니즘의 열병사열대를 향해 ‘나만의 자유, 나만의 표현’이라는 살수차를 무차별하게 뿌려댄 디자인 테러리스트.-전 세계로 강연과 연구집회를 다니며 수많은 잡지와 TV의 초점이 된 디지털 시대의 우상.90년대는 디지털 방식이 본격적으로 잡지 제작에 중심 역할을 한 시기였다. 아날로그 방식의 미덕은 더 이상 유효성을 상실한 듯했다. 디지털의 영향으로 전위적인 타이포그래피,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실험적인 디자인 그리고 인습을 타파한 새로운 시도 등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급진적 작업양식이 무차별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같이 혁명적인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간 데이비드 카슨은 해체주의의 선구자로서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결국 그는 X세대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디자이너로서 대중스타로 군림하게 된다.작품전적-데이비드 카슨은 학교 선생님 신분을 유지하면서 시간제 디자이너로 4년간 활동했던 「트랜스월드 스케이트보딩」의 작업을 통해 디자인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재능이 때를 만난 건 「뮤지션」을 거쳐 1989년 「비치컬처」의 아트디렉터를 맡으면서였다. 뒤이어 그를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아트디렉터로서 확고히 자리잡게 해준 잡지는 다름아닌 「레이건」이다. 「레이건」은 1992년 11월 마빈 스콧재릿이 창간한 얼터너티브 음악잡지로, 전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레이건을 통해 카슨이 뿜어내는 영감과 감성에 의존한 즉흥성이 강한 디지털 작업은 젊은 독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가독성에 대한 논란과 갖가지 부정적인 비난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15만 명이 넘는 독자를 확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흥분한 젊은 독자들이 독자투고란에 “레이건은 곧 나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오기까지 했다.이 시기에 디자인계에서는 그의 작업을 두고 가독성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해체주의적 작업은 7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영향력이 약화된 모더니즘에 위협을 가했다. 격앙된 모더니스트들은 그의 작업에 대해 ‘읽을 수 없는’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공격해 왔다. 이에 대해 그는 “가독성이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이 가는 주제라면 결국 읽게 마련이다”고 태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시지를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업을 할 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직관을 믿고, 내가 받은 그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 보라. 결국 디자인이란 그러한 메시지를 시각화하고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합리주의는 또 다른 권력이라고 규정했다.실험적인 선구자 데이비드 카슨은 영감과 직관에 의존한 즉흥적인 디지털 작업으로 잡지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가 표출해낸 디자인의 회화성은 기존 타이포그래피의 관례를 끝없이 조롱하듯 가독성을 무시하며, ‘읽는 디자인’이 아니라 ‘보는 디자인’으로 그 흐름을 분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자유롭고 대담한 레이아웃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타이포그래피로 대표되는 그의 작업은 ‘카슨 스타일’의 아류를 탄생시키며 주목받았다. 그의 디자인은 전 세계 150여 개의 유명 잡지와 신문에 소개되었다. 1980년대 말 이래 150여 개 주요 디자인사을 휩쓸었으며, 「레이건」은 미국에서 탄생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실험적 디자인의 예-1990년대 「비치컬처」에 실린 라일 로벳에 관한 기사.이 작업에서 그는 라일 로벳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식상한 얼굴 대신 기존 잡지에서 시도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로벳의 얼굴을 과감하게 날려버리고 포지션 테이프 위에 있는 그의 발을 버젓이 드러낸 것이다. 그는 그 사람을 알려 주는 듯한 모든 요소가 사실은 쓸데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잡지를 보는 사람들의 무한한 감성의 자유를 존중했다.-감자 부대자루에 적힌 집 전화번호와 감자로 만든 도장 등을 이용하여 디자인하기도 함.-1994년 16호 「레이건」의 목차 페이지 디자인.여러 밴드의 이름을 실어야 했는데 그는 천편일률적인 목차 디자인이 지겹다고 느껴 이들 밴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알아볼 것이라 가정하고, 밴드의 이름이 정확하게 읽히도록 디자인하지 않았다. 밴드 이름을 음악적인 리듬감을 살려 시각화했다. 글자의 크기와 굵기를 다양하게 하고 자간과 행간을 무시함으로써 불규칙 속의 리듬감을 극대화하려 했다.프레드 우드워드-1953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우드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좀 복잡한 행보를 걸었다. 미시시피 주립대에서 멤피스 주립대로, 저널리즘 전공에서 체육학으로, 또 정치학으로 바꾸었다. 처음 디자인 일을 시작한 것은 「멤피스」에서였고, 그 전에는 단지 두 강좌의 디자인 과목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롤링스톤」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월간 텍사스」를 포함하여 몇몇 잡지에서 디자이너로서 이력을 쌓았다. 결국 아트디렉터로서의 그의 인생은 「롤링스톤」에서 시작되어 「롤링스톤」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롤링스톤」은 우드워드가 풋내기 청소년이었던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간된 이후 미국 대중음악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로큰롤 음악 잡지다. 이곳은 1987년 그가 아트디렉터로 오기 이전에 이미 기라성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이 거쳐 간 이른바 별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우드워드 역시 대학 시절 「롤링스톤」을 읽으며 사진과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디자인을 배웠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예체능| 2004.10.28| 3페이지| 1,000원| 조회(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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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 간판과 광고의 컬러 마케팅
    < 간판이나 광고에 나타난 컬러의 경향에 관하여 >1 컬러 마케팅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각 제품간의 품질의 차이가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수많은 제품,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사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더욱이 치열한 광고전 속에서 어떻게든 소비자의 눈에 들 수 있도록 “튀어야한다”는 것은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컬러마케팅은 이런 고민들 속에서 대두되었다. 브랜드 이름이나 슬로건, 캐치프레이즈 보다 컬러는 더 빨리 인식되기 때문이다. 로고와 마크, 브랜드가 기업 고유의 자산인 것처럼, 이제 컬러는 기업을 상징하는 마케팅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미국에서 컬러마케팅의 효시는 1920년 파커사가 내놓은 빨간색 만년필을 꼽는다. 이전의 검은색이나 갈색의 만년필을 벗어나 립스틱을 연상케 하는 빨간 만년필을 내놓음으로써, 파커사는 엄청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컬러의 위력은 오늘날 더욱 강해졌고 세계의 유명기업들은 컬러를 마케팅의 중요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2 컬러 마케팅의 성공 사례.①LG그룹: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사용하는 로고색은 모두 원색들이다. 원색은 눈에 잘 띄는 장점이 있는 반면 컬러를 사용하는 주체가 대기업인 경우에는 권위적인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LG그룹은 이 점에 착안하여 종전의 빨간색을 다소 차분한 LG레드로 바꾸었다. 기업은 이제 더 이상 고객 앞에 군림하는 권위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컬러의 변화와 함께 그룹의 이미지 광고 역시 “사랑해요, LG”로 바꿈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했다.②코카콜라: 일반적으로 빨간색은 사람을 다소 흥분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조사되고 있다. 코카콜라의 빨간색은 색상의 특징과 제품의 특징이 잘 부합된 대표적인 사례, 빨간색의 강렬함과 코카콜라의 짜릿한 맛이 하나로 잘 어우러진다.③코닥: 코닥은 노란색을 브랜드의 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코닥사의 노란색은 철저한 소비자 조사를 통해 선정된 것으로 노란색은 주의를 끌면서도 따뜻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 패키지가 한 몫을 했다. 일체의 다른 색을 쓰지 않고 오직 파란색과 흰색 글씨만으로 이루어진 포카리스웨트 패키지는 시원한 느낌,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차가운 음료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 예이다.⑤UNITED COLORS OF BENETTON: 베네통은 특유의 컬러마케팅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대표적인 예이다.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고 불리우는 원색의 다채로운 컬러감각은 베네통의 소량다품종 전략과 잘 부합되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⑥가전, 식료품 흰색 탈피: 백색가전이라 불릴 정도로 흰색 이미지가 강했던 냉장고는 최근 인테리어 기능을 가미한 레드, 블루 등이 인기를 끌면서 냉장고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일반 흰색 냉장고와 인테리어 냉장고는 같은 용량의 경우 가격이 40~5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색상이 가미된 인테리어 냉장고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는 것이다.⑦흰색 식품의 대명사인 우유와 밀가루, 마요네즈의 컬러상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E마트의 경우 검은콩우유 매출이 흰우유 매출의 60%까지 차지하는 등 인기가 높다. 제일제당은 시금치, 호박, 흑미 등을 첨가해 초록색과 붉은색을 띠는 기능성 밀가루를 출시했는데 일반 밀가루에 비해 가격이 3~4배 높지만 20, 30대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고 있다. 마요네즈 역시 키위, 바나나, 딸기맛을 첨가한 색색깔의 제품이 나왔다. 시금치, 카레, 백년초 가루를 섞어 초록, 노랑, 붉은빛을 띠는 돈까스는 일반 돈까스 판매량의 3배가 넘는다. E마트 관계자는 “칼라는 적은 비용으로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최근 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위해 색다른 칼라를 사용하는 제품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3 유행 컬러①레드 마케팅지난 6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월드컵의 현장에서 한번쯤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응원했던 국민이라면 ‘빨간 티’하나쯤은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 티가 바로 전세계에 대한민져 큰 빛을 발했다. 가을 혼수 시장을 놓고 한샘, 리바트, 보루네오가구, 에이스침대 등 국내 가구 업체들은 붉은 색상의 가구를 앞다퉈 내놓고 있어 월드컵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레드 마케팅’의 불을 지피고 있다. 보루네오가구는 강한 붉은 색 계통의 차이니스 레드컬러인 ‘레드 트렌드’장롱을 내놓고 지난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부엌가구 업체인 에넥스도 가을 혼수시장을 앞두고 ‘2002 레드’상품을 내놓았는데, 이 제품은 상판을 제외한 가구 전체가 붉은 색으로 디자인 돼 있다. 리바트는 ‘SL2420’과 ‘SL8510’이라는 붉은 색 소파를 새롭게 출시했다. 붉은 색상이 은은하게 나타나도록 가죽을 특수 코팅한 소파와 함께 출시한 장롱도 체리색상과 닮아 있다.SK텔레콤은 이번 월드컵으로 그 어떤 기업보다 큰 홍보효과를 누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동통신업체란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바로 붉은 악마였던 것이다. SK텔레콤의 이러한 후원은 공익성 캠페인이라는 명목과 국가적 행사임을 주지시켜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이동통신’이라는 명제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화문, 대학로의 단체 거리 응원전과 붉은 악마들의 응원구호를 CF에 연결시켜 전 국민에게“대~ 한민국!”을 직접적으로 교육시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내내 스피드011과 함께 ‘Be the Reds’의 구호가 걸린 붉은 티셔츠는 2천만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판매고를 올렸다. SK텔레콤은 이같은 광고에 50억원을 투입했지만, 이는 기존 스피드 011광고를 내리고 대신 실행한 것이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월드컵이 폐막된 지 약 3개월이 지난 지금도 SK텔레콤은 지난 6월 결성한 포스트월드컵 프로젝트팀을 발족시켜 놓아 후속 마케팅 전략에 월드컵을 이용하고 있다. 레드 마케팅의 후속타는 비단 SK텔레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KTF는 얼마전 애국심에 호소하는 내용의 광고 ‘독도편’을 내놓았으며, 삼성전자도 월드컵 기간 동안 40인치 이상의 소 선정적인데다가 소방차를 연상시켜 그 동안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던 ‘빨간 자동차’가 월드컵 이후로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최근 마티즈나 칼로스 등 빨간색의 승용차를 찾는 고객이 늘고, 영업점에서도 전시용 차량으로 빨간 색 모델을 갖춰놓는 등 레드 트렌드 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패션업체인 제일모직은 하반기 상품기획이 끝난 ‘FUBU’의 제품 중 붉은 색을 10%정도 늘리기로 했으며 쌈지는 의류에 태극 무늬를 활용키로 했다. 현대백화점도 태극 무늬를 넣은 여성용 수영복을 판매했으며, 지난4월부터 이용액의 0.2%를 축구발전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는 비씨카드도 온라인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②오렌지 마케팅8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신조어 중의 하나로 ‘오렌지 족’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오렌지 족이란 부유층의 자제들이 강남의 디스코텍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의 테이블에 오렌지를 주문함으로써 파트너가 돼달라는 뜻을 전한 것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 당시 오렌지 족은 사치와 향락의 상징으로써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압구정동의 유흥업소에서 적발된 오렌지족의 부모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이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오렌지였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 오렌지와 그 컬러는 새삼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먼저 제품 마케팅에 이용한 경우로 ‘오렌지 색 엔시아’라는 카피로 유명한 화장품이 있다. 이 화장품 브랜드는 오렌지색을 제품 광고와 패키지에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오렌지=엔시아’라는 등식으로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성공한 컬러 마케팅의 사례로 꼽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렌지를 회사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례다. 마이 오렌지 닷컴을 비롯해서 오렌지 택배, 오렌지 소프트, 오렌지 월드 투어 등 많은 업체들이 오렌지를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 그밖에도 많은 업체들이 회사의 CI에 오렌지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오렌지를 마크로 사지색 사자를 CI로 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서는 ‘오렌지 컬러 히스토리’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의 상징인 오렌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오렌지일까? 오렌지색은 젊음의 활력과 창조 정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과감하게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오렌지색 아이맥으로 채팅을 한다. 그들은 오렌지의 가벼움, 값 싼 이미지, 튀어 보이는 이미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웹사이트가 형광빛 나는 오렌지색으로 페이지를 메우고 있고, 많은 벤처 기업들이 오렌지를 회사 CI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③옐로 마케팅노랑색을 이용한 컬러 마케팅에는 어떠한 예가 있을까? 코닥 필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노란 약 트라스트’가 있다. 이 제품은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인데 광고 캠페인의 주제로 노랑색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확실히 인지시키는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콤비 옐로 콜라’, 엽기 콜라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콜라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코카 콜라, 펩시 콜라와는 180도 다른 충격적인 색상으로 주요 소비자 계층인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승산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고정관념을 뒤엎는 정면 대결로 나름의 성과를 거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마티즈’도 빼놓을 수 없는 예다. ‘마티즈’는 펄이 함유된 황금색으로 금색, 베이지, 아이보리로 대표되는 자동차 분야의 노랑색 유행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황금색, 연두색 같은 독특한 자동차 색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흰색, 회색, 검정색의 무채색에서 벗어나 점점 다채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덧붙인다면 ‘에쿠스’의 목련색을 얘기할 수 있다. 대형 세단이라면 당연히 검정색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다양한 색상의 고급 외제 차와 상아색 ‘에쿠스’덕분에 사장님 차는 검정색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놨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전 컬러 아이덴티티도 노란색이었다. 노무현의 ‘노’에서 노랑색이 주는 있다.
    경영/경제| 2004.10.28| 5페이지| 1,000원| 조회(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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