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장 정보사회의 진전과 행정관련 유비쿼터스1. 정보사회의 진전10여년 전만해도 인터넷이 이렇게 까지 우리 삶의 일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이 들어 보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빼고 개인 또는 사회생활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e-mail은 생활의 필수가 되었고 웬만한 정보는 웹 검색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쇼핑도 하고, 예약도 하고, 음악은 물론 각종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메신저를 통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현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인터넷 말고도 휴대폰을 들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하게 된 휴대폰의 등장은 족쇄라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삶의 일부로써 급속히 파고 들어들었다. 이제 거의 모든 국민이 휴대폰 하나씩은 가지고 다닐 정도로 필수품이 되었다.각각 다른 기술적 바탕을 두고 발전되어 온 이러한 기술 요소들이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계가 되고 있다.인터넷과 휴대폰의 결합이야말로 유비쿼터스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요즘 유비쿼터스가 많은 관심과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에 따른 사회적 기반의 구축이 잘 되어 있어 현실적으로 유비쿼터스 사회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2. 행정관련 유비쿼터스나는 사회과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2학년이 되면 행정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것이며 행정관료를 인생의 목표로 노력할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는 내가 전공하고 삶의 목표로 세운 행정에 관해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 본론에서 먼저 유비쿼터스의 개념, 기초이론, 국내 정책, 외국 사례와 정책, 문제점 등을 정리 기술한 다음 이를 종합 감안하여 내가 기대하는 행정관련 유비쿼터스 사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본론2장 유비쿼터스 이론1.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개요유비쿼터스(Ubiquit같다.가. MEMS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 미세전자기계 시스템) 기술은 전 자 (반 도체) 기술, 기계 기술, 그리고 광 기술 등을 융합하여 마이크로 단위의 작은 부품 및 시스 템을 설계.제작하고 응용하는 기술을 말한다.나. RFID주파수 인식시스템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바코드, 마그네틱, IC- CARD 등과 같은 자동인식의 한 분야로서 초단파나 장파를 이용하여 기록된 정보를 무선 으로 인식하는 최첨단 기술이며, 태그는 그 고유한 정보를 담은 신호 를 발생하고 이 신 호를 안테나를 통해 콜트롤러가 인식하고 분석하여 태그의 정보를 얻는 원리로 되어 있 다.수십m 전방에서 Tag에 담긴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초소 형 마이크로 칩과 안테나로 구성되어 있다.다. IPv6IPv4 문제점인 IP 어드레스부족, 보안성 취약, QOS/ 멀티미디어 제공을 위한 성능 부족 등의 문제점 해결 목적으로 등장하였으며, IPv6는 IPv4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128Bit 주소체계로, IPv4인 32bit 보다 수용능력이 4배 많은 차세대 인 터넷 Protocol이다.3. 국내의 유비쿼터스 정책국내에서 유비쿼터스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전자신문사가 2002년 4월부터 기획기사 시리즈로 유비쿼터스를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2003년에는 U-Korea 포럼이 결성되는 등 관련 모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으며, 2004년 올해에는 정부는 물론 기업, 학교 등에서 유비쿼터스에 대한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상태이다.정보 통신부에서는 광화문 청사에 유비쿼터스 전시관을 개관하는 등 유비쿼터스 홍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디지털 홈,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U-우체국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비쿼터스 IT Korea 포럼(약칭 U-Koera 포럼)을 통해서 유비쿼터스 IT 개념을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및 개발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미국에서는 기업(HP, MS, IBM, Intel, AT&T 등), 대학(MIT, 버클리 등), 국가연구소(NIST)를 중심으로 유비쿼터스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연구 중인 주요 프로젝트로는 UC버클리의 ‘스마트 먼지(Smart dust)’ 프로젝트, MIT 미디어랩의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프로젝트, MIT 컴퓨터과학연구소(Computer Science Lab)의 ‘옥시전(Oxygen)’ 프로젝트, MS의 ‘이지리빙(Easyliving)' 프로젝트, HP의 '쿨타운(Cooltown)' 프로젝트, IBM의 “Pervasive Computing" 등이 있다.대학연구소 쪽에서는 미국 MIT의 미디어 랩이 가장 활발하고 대표적인 유비쿼터스 연구기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미디어 랩은 현재 34개의 연구 집단에서 360여개의 세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중 유비쿼터스와 가장 밀접한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연구 컨소시엄은 23개의 세부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같은 MIT대학의 컴퓨터 과학연구소의 옥시전 프로젝트는 우리가 항상 들이 마시는 산소처럼 주변의 컴퓨터 환경을 구현하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센서, 단말기,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유럽연합에서는 정보화사회기술계획(IST)의 일환으로 “사라지는 컴퓨터(disappearing computer)”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라지는 컴퓨터”는 정보기술을 일상 사물과 환경 속에 내장하여 인간의 생활을 지원하고 개선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현재 모두 17개의 세부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럽 연합 소속 나라들이 프로젝트를 나누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SmartIts’, 'Paper++', 'Grocer', ‘2Wear' 등이 있다.일본은 정부 주도로 네트워크 중심의 유비쿼터스 전략을 수립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IT기술을 앞지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으며, 관련된 프로젝트로는 도쿄대학의 'TRON(T 누 군가에 의해서 정보를 실시간 수집,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와 정보보안의 확 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현재의 통신정보 환경에서는 개인의 신상정보가 주류를 이루는데 반해 유비쿼터스 환경 에서는 임베딩된 칩, 센서, 에이젠트 시스템에 의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할 수 있다. 또한, 유비쿼터스 환경에서는 저장이나 전송이 어려웠던 개인이 보유한 고유 한 지식이나 기술의 노하우를 쉽게 저장 전송할 수 있어 개인의 인격권과 재산권의 총합 체 수집이 가능하다. 유비쿼터스 정보는 신상정보, 소비정 보, 위치정보, 이동정보, 대금결 제 정보, 건강정보 등 개인의 생활을 공개한다. 모든 사물에 임베딩된 칩의 내장이 가능하 여 개인 주체들이 대부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정보를 수집 당하는 상태 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웹사이트에 가입하고 동의란에 클릭하고 영수증에 서명하는 행위 와는 다른 능동적인 정보를 발생하는 환경이다.3장 유비쿼터스 전자정부1. 유비쿼터스 전자정부 개념유비쿼터스 전자정부는 정부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공무원이 언제 어디서나 전자정부에 접속하여 민원서비스를 제공받거나 업무처리를 할 수 있는 전자정부를 뜻한다. 기존 유선인터넷 중심의 전자정부를 모바일 환경에 맞춰 고도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2. 유비쿼터스 전자정부 전망전자정부에도 유비쿼터스가 적용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를 도입한 최근 사례를 보면 유비쿼터스 전자정부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은 저소득층 건강취약주민을 위한 가정간호 업무에 개인휴대단말기(PDA)를 도입키로 하고 관련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정부로부터 2억여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가정방문간호사업소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간호사에게 환자별 정보와 방문일정 등을 문자메세지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올해 말까지 보호관찰 업무에 지리정보시스템(GIS)과 PDA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보호관찰 대상자의 소재를 신신고 결혼신고 같은 것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직접 동사무소나 법원 같은 공공기관을 방문해서 오랜시간 걸려서 처리해야 할 것을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호적서류를 떼러 공공기관에 갔다가 오랜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요즘같이 시간이 경쟁력이 되고 보다 빠른 것을 주문하는 시대에 보다 빠르게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개인과 나아가 국가에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나. 행정업무에서의 국민 참여 향상전자정부에 대한 기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컴퓨터라는 기술을 이용해 정부 기능을 효율화하는 데 대한 관심이 한 측면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고민도 있다.요즘 선거에서 보면 투표율이 예전보다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이유중 하나는 투표소까지 직접가서 투표하는 것이 귀찮아서 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전자정부에서는 집에서 간단하게 전자선거를 하게된다. 시간도 적게 걸리며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과반수의 표도 못 얻어서 당선되는 일을 막을 수도 있다.또한, 전자선거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국민이 불편하게 여겨졌거나 필요하다가 생각하는 제도나 법을 인터넷을 통해 청원할 수 있다. 국민이 이미 정해진 보기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대신, 의제 설정이나 대안 제시 등에서 정부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 공동 결정을 하는 것이다. 청원하기까지는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였지만 유비쿼터스 전자정부에서는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용가능해진다. 또 이 모든 과정은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청원자는 자신의 청원에 대한 처리 과정을 알 수 있다.다. 공공관리 업무처리방식의 변화의료, 보건, 교육, 정부조달 분야에는 개인의 특성이 더욱 고려된 새로운 서비스 제공방식이 모색되어야 하며 특히 도시교통이나, 환경, 국토관리 분야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리기술이 등장하고 었다.
Ⅰ. 서론지난 광복절 서울시청 앞과 종로거리. 해방 이후 역사의 풍광을 담고 있는 그 거리와 광장에서 저마다의 광복절 행사가 치러졌다. 해방 공간에서 우익과 좌익으로 나뉘어 반탁과 찬탁을 외치며 서로를 처절하게 증오했던 그 어두운 그림자를 우리는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시청 앞에서, 종로에서 다시 보았다. 반세기에 걸친 외세 강점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밀어제치고 맞이했던 그날을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온겨레가 하나 되어 부르는 축제의 노래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결국 올해도 어김없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치러진 반쪽의 광복절을 맞이했다. 경찰은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버스를 이용한 사상 초유의 장벽으로 양쪽을 갈라놓았다.또한 최근 정국에서는 국가보안법,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청산법 등을 폐지하거나 개정하거나 입법하려는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문제를 두고 노무현정부 및 그 지지세력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보수세력 사이에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낼 것 같은 치열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이처럼 최근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념적 갈등의 양상은 어떠하며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대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Ⅱ. 본론1. 한국사회 이념 갈등의 양상대한민국 건국에서 1987년까지는 보수의 시대였다. 진보 진영은 권력의 탄압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래서 보수는 자기를 보수라고 상대화할 필요조차 없었다.해방(45년)에서 건국(48년)을 거쳐 전쟁(5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나라의 시스템을 사회주의 좌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 자본주의 우파 체제로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투쟁을 벌였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교수는 "한국에서 진보가 인권.분배.평등을 선호했다면, 보수 세력은 안보.성장.경쟁의 가치를 중시했다"고 했다. 우파가 미국의 도움으로 승리한 뒤 좌파세력은 갈 곳이 없어졌다. 좌파는 빨갱이로 낙인찍혀 정치적.법적.사회적으로 제거되거나 우파.중도로 전향해야 했다. 혁신.진보 같은 용어도 넘겨줘야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의 86%는 자신의 성향을 진보 혹은 중도로 답변했다(중앙일보 4월 17일자 설문조사).{2.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지배먼저 지난 한국사회에서 왜 보수세력만이 존재하게 됐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지향하는 보수세력 외에 그에 대칭할 만한 또다른 세력들, 예컨대 혁신세력이라든지 급진세력 내지 진보세력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회세력들이 왜 한국사회에는 존재할 수 없었는가를 무엇보다 먼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만일 한국사회 사회세력이라는 집단의 역학적 범주가 한국사회에 대두하기엔 발전의 기간이 아직 너무 일천하다고 한다면, 혁신파니 진보파니 혹은 급진파니 과격파니 하는 수준의 파벌이나 특정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가능했다고 진단 할 수 있는가?우선 설명을 위해 해방 후 한국사회의 갈등의 주요 형태들을 요약해보면 6 ·25이전까지는 좌우대립이 그 중심형태였다고 한다면 6·25이후는 여야 대립이 그 중심형태가 돼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50년대에도 진보당사건에서와 같이 좌우 대립적인 혁신 정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회세력화할 정도의 크기나 사회적 기반이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앞으로 논의도리 오늘날의 삼민운동가들이나 민중론자들만큼의 체제공격적 과격성이나 급진성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더더욱 어렵다.이러한 면에서 한국사회는 적어도 80년대 초반까지는 철저히 보수 세력 일변도의 사회였고, 그 일변도인 보수세력만을 중심으로 그들사이에서 오직 지위의 차이만을 가지고 여야가 나누어져 있을 뿐인, 적어도 이념적 수준에서 극히 원시적 분화만이 이루어져 있는 사회였다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분화를 이념 내지 지행성에 기준해서 구분할 때, 주요 지위나 혜택받는 지위의 점유자들은 대개 보수세력이 되고, 반대로 그 지위에서 탈락되거나 소회된 사람들은 혁신세력 내지 급진세력이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지위 점유자든 탈락자든 모두 지향성의 차이 없이 보수세력이 되고, 그들 보수세력 내에서 다만 자익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에 존재해서 크게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보수세력만의 독존적 존속과 지배 그리고 그들만이 경쟁할 수 있고 다툴 수 있는 권리의 독점 그 지배와 독점의 현장이 바로 여야갈등의 현장이라 한다면 그 80년대 초반가지의 한국사회야말로 보수주의자들의 천국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메카로 가는 도장에 있었던 사회로 단정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3. 한국사회 급진세력의 등장과 좌우갈등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의 도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진로가 된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가는 것이 미래라고 한다면, 다가오는 시간에도 보수세력 중심의 혹은 보수세력 일변도의 사회구성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인가? 그 보수세력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운영이 무풍지대에서처럼 자생적 도전세력 없이 그렇게 순탄히 유지해갈 수 있는 것인가? 적어도 내부로부터의 위협만은 받지 않는 지금 그대로의 체제-동질적인 갈등상태만이 노정되는 그같은 체제지속이 앞으로도 내내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이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분명히 어렵다 할 수 잇다. 지금과는 다른, 많은 변화의 징후군들이 한국사회 내에 드러나고 있고 이 징후군들에 의해 한국사회는 이미 동질적인 여야갈등에서 이질적인 좌우갈등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벌써부터 내려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치면에서든 경제면에서든 그 핵심이 되는 자유를 지금처럼 최상의 가치로 계속 유지해나가기 힘들다 할 수 있고, 따라서 평등이 자유의 종속적 가치가 아니라 등가적 가치로, 더 나아가선 오히려 자유와 자리바꿈이 강요되는, 그러한 체제전환의 도전이 이제부턴 한국사회 내부에서 간단없이 일어나게 될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이는 다른 말로, 신성시되고 보호받기만 하던 사적 소유의 절대성도, 영리적 동기라면 그 어떤 행위도 별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던 사회적 관행도, 능력의 차이에 따라 자유로이 성취하게 하는 경쟁의 규칙도 그리고 절차에 하자만 없으면 남과 차이가 날수록 높게 평가되는 업적지향도 이 모든가 훨씬 더 넓어져서 삶의 수준이나 삶의 질이 이처럼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지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는 대다수사람들이 불만계층으로 바뀌는 역상승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산업화의 특정 단계에서 거의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다 경험하는 공통현상이 되어 있다.거기에다 산업화는 사회 내의 모든 하위부문과 그 하위부문들이 내포하고 있는 제반 요소들을 활성화시키면서 진행해간다. 차라리 전통사회라면 그냥 잠재해 있을 모순까지도 이 산업화과정에선 모두 현재화되어서 햇빛 아래로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는 예외없이 마치 모순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회인 양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모순투성이들이 노정된다. 이리하여 산업화가 진행되는 곳이면 그 어디든, 특히 그것이 급격히 진행되는 곳이면 진행되는 곳일수록 거의 예외없이 명암이 짙게 나타난다. 밝은 면은 지나치게 밝아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어두운 면은 반사적으로 더욱 어두워지는 진행이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자유의 이념보다는 평등의 이념을, 상층의 이념보다는 하층의 역할을, 자본가의 지배보다는 노동자의 지배를 강하게 내세우고 격렬히 요구하는 급진주의·민중주의가 등장하고, 그리고 그 급진주의·민주주의 운동은 지원하고 또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좌경화되고 좌익화된 집단들이 사회 주요 세력으로 부상한다.거기에는 하나의 작은 예외도 없이 자유·자본주의 체제 지지와 그 체제 도전자간에 야기되는 이질적인 좌우갈등 상태가 때로는 제도권 내에서 때로는 제도권 밖에서 여러 가지의 형태와 여러 가지의 강도를 보이면서 벌어져온 것이다. 미증유의 대풍요를 누려왔던 미국에서도 1984년 Rhode Island 주에서 인민헌법이 만들어지고 인민정부가 들어섰던 경험처럼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산업화과정에서 등장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사회세력으로서의 부상은 이미 다 경험한 바였고, 러시아에서도 1981년 농노해방과 더불어 고조되기 시작한 산업화가 피터스버그, 모스코우 오뎃사 등 6대 도시에 노동자를 대거청년들에게 더욱 연민의 정을 쏟는, 그리하여 뭐든 아낌없이 지원해줌으로써 인생의 의의를 더욱 만끽하려고 하는, 그같은 유의 아마추어 자선가들이 여기저기 솟아나서 지원을 하게 된다.따라서 사회적 잉여가 증대되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혁명운동도 이전 사회에서처럼 굶어 죽는 사태 때문에 못 벌이는 일은 없게 된다. 더구나 그러한 사태가 야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성 때문에 갈망하는 행동을 못하는 일은 더더욱 없게 된다. 오히려 사회적 잉여가 증가되지 않는 절대빈곤의 상태에선 그 빈곤을 없애자고 벌이는 운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버티어가지 못한다. 반대로 사회적 잉여가 증대되어 절대빈곤이 이미 퇴치된, 그 절대빈곤이 오히려 없어진 상태에선 기존 체제든 절대빈곤이든 그것을 공격하는 운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속해나갈 수 있게 된다. 반정부·반체제운동을 극렬히 벌이다 지명수배된 학생이 2,3년을 숨어서 보통으로 버티는 것은 이 사회적 잉여의 증대에 의해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급진주의 세력의 등장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공격되고 좌우갈등이 나타나게 되는 소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애초에 가능케 했던 산업화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산업화의 진행이 가져다주는 사회구조적 과정과 결과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창출이며, 창달이며, 창성이라 한다면, 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밑뿌리에서부터 그것을 버티는 줄기이며 활력소를 뽑아내는 잎가지 송두리째 부정·거부·비판·공격하고 그리고 무너뜨리려는 이데올로기와 신념, 그리고 운동도 역시 같은 맥락이 산업화의 진행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시즘이 자본주의를 모태로 해서 나왔듯이, 기타의 급진주의 역시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산업화의 궤적에 따라 진행을 같이해가고 있다고 한다면, 한국의 자유미주주의 체제 역시 아무리 6·25를 경험하고 남북관계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해도,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 그 급진주의의 출현과 그 세력들의 형성 및 공격에서 결코 예외일 수는 없을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그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대답도 모두 조국의 완전독립이라고 대답하겠다던 백범 선생, 선생은 남북에 분단정권이 들어선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1949년 6월 26일 흉탄에 의해 돌아갔다. 암살자의 배후에는 분단 고착화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정권적 차원의 세력이 있었음이 국회진상규명특별위원회에 의해 밝혀졌다. 그것도 선생 가신 지 46주년이 되어서야 겨우 국민의 이름으로 시해(弑害)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으니, 그동안 정처 없이 떠다니는 선생의 고혼(孤魂)을 홀대함이 그 얼마며, 민족의 스승을 멸시함이 얼마나 심했던가. 임정을 국가적 정통으로 삼겠다는 나라에서 이같은 무관심은 우리 시대 모두의 부끄러움이다.만약 김구 선생이 암살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구선생이 오늘날 한국정치를 어떻게 보실지 지금부터 백범김구 선생이 바라본 한국현대정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백범김구 선생이 바라본 한국현대정치1. 독재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주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어니와,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거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중에서김구선생은 위와 같이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셨지만 우리나라는 이승만,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로 이어지는 독재를 경험해야 했다.1) 정권별 독재이승만 정권 독재1948년 5·10선거 이후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으며, 7월 대통령중심제로 헌법이 제정·공포되어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6·25전쟁중 1952년7일 광주민중항쟁이 끝날때까지 광주는 군인들에 의한 학살이 자행된다. 이것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그후 전두환은 특별기구인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해임하고 정치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최규하대통령은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전락하여 사임을 하게 되고 전두환은 체육관에서 투표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또 깡패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서 깡패나 부랑자만이 아니라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다 마치 북한의 노동수용소처럼 만들었고 그리고 언론사를 자기 마음대로 통폐합하고 자신의 집권에 반대하는 수많은 언론인들을 강제해직하고 언론을 자기의 홍보도구로 하였다.7년단임의 임기가 끝나갈무렵 후임 대통령선거를 국민의 여망인 직접선거를 고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것이 87년 4월 13일에 발표한 4.13호헌조치이다.이런 와중에 박종철열사의 고문치사사건이 알려지게 되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하여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다. 전두환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계엄령으로 맞서려 했으나 대통령후보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6월항쟁은 끝나게 된다.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독재가 이루어지다보니 한국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2) 군사독재시대의 잔재오늘의 한국정치는 좀도 자세히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군사독재시대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을 중심으로 그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 미약첫째로 대통령제의 핵심인 삼권분립과 이에 기반한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매우 약하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군사독재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행정부의 시녀로 남아 있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포함한 신한국당 의원들이 몇 대의 버스에 실려 야당 의원들 몰래 국회에 나타나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새벽 시간에 기습적으로 처리하였다. 과거의 군사독재정권들은 문제가 되는 법안들을 국회에서 야당의 실력 저지를 몇 번이고 받은권력 획득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파당은 권력 획득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할 때, 한국의 정당들은 파당화하고 있다. 정당이나 후보들 사이에 공공 이익의 정의와 실현방법을 둘러싼 공적 대결이 없고 권력 획득을 둘러싼 거래만이 있기 때문이다.셋째로 정당과 더불어 민주정치의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언론은 문민시대는 군사독재시대와 커다란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부 신문사들은 재벌 그룹에 속해 있고, 그렇지 않은 신문사들은 신문사 자체가 거대한 사업체이다. 일부 재벌 기업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수지 타산은 개의치 않고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언론도 최근 대기업에 합병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나, 미국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다. 사실보도에 철저한 미국 언론의 전통 때문일 것이다. 미국 언론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한 한국 신문은 소유구조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문민시대에 들어와 대통령의 아들이 국정에 광범위하게 간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신문은 한보 사태가 터진 최근까지 이를 보도하지 않았고, 현대에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ing)는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의 언론이 어투 게이트 사건에 대해 보인 바와 같은 철저하고도 끈질긴 보도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의 소유주들이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텔레비전은 정부가 실질적 소유주거나 정부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에 편파적인 성격이 신문보다 더 강하다.언론의 소유구조뿐만 아니라 언론인들과 정치인들과의 관계도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취재기자들에 촌지를 제공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관행은 군사독재시대에 강화되었다.넷째로 지방자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었지만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지방 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나, 이시작한 것이다. 군사독재시대에 더욱 깊은 뿌리를 내렸다. 군사독재정권은 기업들을 지원하고 기업가들로부터 헌금을 받아 정권 유지비용을 충당하고 정권 참여자들 개인의 축재도 하는 관행을 수립했던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오랫동안의 민주화 투쟁으로 군의 정치 개업을 중단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돈의 정치 개입을 막는데는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2. 반공이데올로기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중에서김구선생은 위와 같이 사상에 있어서 어느 하나가 옳은 것이 아니라서 하였는데 우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무조건 나쁜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반공이데올로기의 내면화조선은 식민지반봉건적 사회질서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로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조선의 민족적 지향은 미국의 제 3세계지배전략, 반공과 반혁명으로 좌절되고 만다. 남조선에 진주한 미군 당국은 당시 조선의 혁명적 사회변혁을 막고 반공의 보루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반공이데올로기는 한국전쟁을 통해 내면화 되었다.이승만 정권기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북진통일론 를 통해 나타난다. 이승만은 내적으로는 학생, 시민등을 동원해 북진통일 궐기대회나 시위를 조직화했으며, 외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북한과의 전쟁 재가요청 등과 같은 지속적인 강경발언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했다. 진보당을 결과 원칙은 탁상공론이다’는 선동 지침이 흡사하다”고 주장했다.주성영 의원은 “유신시대에 판사를 지내고 세금전문 변호사를 거쳐 20여년 전 요트동호회 회장을 지낸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가 될 수 없다”며 “그는 좌파도 아니면서 실력 있어 보이기 위해 좌파인 척 하는 핑크 콤플렉스 환자” 라고 말했다.김정훈 의원은 “국보법 폐지 반대 여론이 높은 것은 폐지 후 친북 좌파세력이 득세해 북한이나 구 소련처럼 몰락하지 않을까 하는 국민불안 때문”이라고 말했다.우리당은 이에 대해 “낡아 빠진 메카시즘적 수법”이라고 일갈한 뒤 국민 대 통합 을 제안했다.김종률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지목, “과거의 음침한 이념논쟁의 동굴 속에서 광명의 평원으로 나오라”며 “386의 애국심과 충정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였다.김태년 의원은 “허구적 이념공세로 가득 찬 냉전 마케팅은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자해행위이자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은 녹슨 폐품” 이라며 “이제는 국리민복으로 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이철우 의원도 “국민 대 통합과 대 화해를 이뤄 소모적이고 적대적인 이념의 찌꺼기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제안했다.3. 과거 청산 문제- 친일파"민족정기가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의심했으나 과연 민족정기는 죽지 않았다. 보라! 눈부신 특위의 활동을! 우리는 기대한다. 누누히 지적한 바와 같이 반민자의 처단은 결코 보복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살리고, 사리사욕 때문에 민족을 파는 반역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교훈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 1949년 2월 2일자 사설의 한 대목이다. '반민족행위 특별처벌법'이 발효되고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반민족행위자를 체포하기 시작할 때 특위활동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통일민주국가 수립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좌절되었으나 민중의 친일민족반역자 처단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단호하게 반대해온 민중들은 친일파를 비호하여 단선을 수립한 이승장이다.
1. 국가보안법이란?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4개월도 안 된 1948년 12월 1일 공포.시행되었다. 1948년 11월 발생한 여순 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좌익세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서둘러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것이다.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구성되었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반공, 반통일, 반민중적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후 정권의 독재강화로 국가보안법은 확대,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2. 주요 논점의 정리우리 나라에선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이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만큼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는 개폐 찬성론(이하 찬성론)과 개폐 반대론(이하 반대론)의 양대진영으로 뚜렷이 나뉘어져 전개되고 있다. 주요 논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1) 시대적 상황 판단개폐 찬성론과 반대론은 우선 시대적 상황 판단을 달리한다. 찬성론은 멀리는 소련붕괴로 시작된 탈냉전의 세계정세, 가깝게는 북한과 미일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협상과 교류 등 탈냉전의 동북아정세,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탈냉전의 남북정세가 시대적 상황과 여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판단한다. 반면, 반대론은 북한의 변화가 진정한 변화인지 아니면 단순히 전략전술상의 그것인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고, 오히려 본질적인 상황은 바뀐 게 없다고 판단한다.2) 국가안보 측면찬반론 모두 국가안보는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찬성론은 국가보안법이 개폐된다고 해서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그것은 다른 법으로도 얼마든지 보장이 된다고 판단한다. 반면, 반대론은 국가체제수호를 위해 필수적인 법이며, 섣불리 법을 개폐해버렸을 때 우리 사회가 일대 혼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본다.3) 현실 및 다른 법과의 관계찬성론은 국가보안법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교류와 맞지 않고 남북교류법 등 다른 법과 모순된다고 판단한다. 반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반문명적인 법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반대론은 부단한 법개정, 보완 노력이 계속되어옴으로써 그와 같은 소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본다.5) 북한과의 형평성찬성론은 북한과의 형평론이 내세우며, 악법을 개폐할 수 없다는 것은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교류,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반면, 반대론은 북한 노동당의 규약 및 형법이 국가보안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고려할 때 북한의 상응하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개폐 논의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6) 외국의 경우찬성론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대만도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비상계엄법을 이미 1991년에 폐지했다는 점과 UN인권위원회, 국제사면위원회, 미국무 성의 법개폐 권고와 건의 등 세계적 여론이나 추세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도 비슷한 법이 있음을 들며 그러한 주장을 반박한다.3. 국가보안법 폐지 찬성의견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10 가지 이유국가보안법의 폐해, 곧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들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기본적 인권을 탄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을 억압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정당을 탄압함으로써 정치의 민주화를 억압했고,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했고,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도록 했다. 국가보안법은 경제적으로는 재벌체제와 사유재산 절대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재벌독재체제와 부동산투기 고지가 문제를 야기했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적으로는 민주적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사학재단의 부패와 전횡을 옹호했다. 국가보안법은 문화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 사상을 억압하고 우파사상을 만연하게 했다.첫째,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했다. 일제하부터 최근까지 계속되어온 종전의 전향제도나 9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에게 사면을 할 때 제출을 강요하는 준법서약서 제도는 바로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한국에서 종교도 심하게 왜곡되어 기복신앙이 판치는 것도 국가보안법 억압했다. 학문은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고 진실을 추구한다. 그런데 학문적 연구결과를 사법적으로 재단할 경우 사회과학분야에서 진리 추구라는 학문의 존립근거는 없어지고 학문에게는 체제정당화 기능만이 남게 된다. 검찰이 1988년 학술단체협의회 심포지움의 서관모교수 발제문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 한 것이나 1994년에 경상대학교 교양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적성 서적으로 규정해 저자들을 기소한 사건은 학문의 자유 침해의 전형적 실례이다. 조선일보가 김대중정권에 자문역할을 한 최장집 교수에까지 ‘마녀사냥’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었던 근거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고 민주화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조선일보의 안보상업주의를 잠재울 수 없고 제2, 제3의 최장집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국가보안법은 문학과 예술의 자유를 억압했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인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화가 신학철 그림의 초가집이 김일성의 생가와 닮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선생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레드헌트}라는 영화는 대법원에서 이적 표현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났지만 이 영화상영을 주도했던 인권운동 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는 구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작품,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심리적으로 인간의 창의력을 침해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무의식적인 공포를 조장해왔다. 많은 사회인사, 진보인사들은 자신의 발언과 글이 혹시 국가보안법에 걸려들까 봐 자기검열에 전전긍긍하였다.이제 한국은 중국 경제의 급속한 추격에 대응하여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고 인문사회과학에서도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이론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창의적인 활동을 억압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셋째, 국이 심화된 한국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근로대중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정당을 조직하고 선거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1958년에는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1987년 6월 항쟁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1997년 외환위기 후 민주노동당이 2000년에 결성될 때까지 진보정당의 존립은 불가능했다.넷째,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통일을 지연시켰다. 국가보안법은 변화된 남북관계에 맞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사회주의 진영도 해체되었고, 북한은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당국자 회담이 진행되고 있고, 개성공단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고 있는등 남북 교류도 활발해졌다. 그런데도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다.다섯째, 국가보안법은 대미종속적인 외교, 국방의 원인이 되어왔다. 국가보안법의 뒷받침을 받아 남북이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배경으로 한국은 미국에 군사적 외교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세계 12위에 있는 지금 군사 활동, 국제통상교섭 등에서 개도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라크 파병요구 거부 등 평화외교를 펼칠 수 있는 자주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여섯째, 국가보안법은 사유재산 신성시 관념을 강요했다. 우리 사회에는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회주의국가나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의 규제가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사유재산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국가보안법이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가와 주택 임대차의 권리 보호를 지연시켰고, 부동산은 투기대상이 되고 가격 폭등이 일상화되었다. 국민소득에 대비한 지가수준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은 국가보안법의 탓이 크다.일곱째, 국가보안법은 재벌체제에 대한 공격을 저지해왔다. 재벌체제는 독점 대기업들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이 독점대기업들을 소수의 재벌총수가 미미 따갑도록 들어와고, 부모들로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교훈을 들어야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참아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고 노동자단체들이 사회주의적 주장을 하는 것을 억압했다.아홉째, 국가보안법은 사회의 공공적 부문에서도 족벌의 전횡을 조장했다. 국가보안법은 사립학교와 사립 병원, 족벌 언론, 족벌 교회의 전횡을 뒷받침해주었다.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들은 학교를 사유물로 취급하고 학교 재산과 수입을 자기 것으로 빼돌리는 범죄행위를 저질러왔다. 이에 대응해 전교조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 하며 반발한다. 국가보안법에 의지해서 사학에 대한 전횡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언론기관이 집권세력이나 특정재벌 및 족벌의 사유물로 전락하게 되는 데도 국가보안법은 기여했다.열째, 국가보안법은 이기주의,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만연시켰다. 국가보안법이 인간평등론과 연대를 통한 저항을 강조하는 좌파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우파적 사고방식을 조장한 것이다. 우파들은 불평등은 선천적인 것이며, 따라서 제거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불평등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파들은 대답은 “억울하면 출세하라”이다. 우파 정치세력은 현재의 불평등구조를 존속시키거나 확산시키려 한다. 우파는 사람사이의 관계를 수직적 지배종속관계로 본다. 위 사람과 아래 사람으로 구분하고 위 사람을 잘난 사람으로 우러러보고 부러워한다. 우파는 지위와 재산을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시하고 지위와 재산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우파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마구 구박하고 심지어는 죽어버리라는 극언하는 등 자녀를 자살로까지 몰아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우파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평등주의를 본질로 하는 좌파적 사고방식.
과학이 발달하기 전 우주는 인간에게 상상의 날개를 펼쳐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성을 떨어뜨리고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신들이 살았고 신화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우주는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또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의 발달로 그 신비를 벗겨나가는 중이며 인간의 상상은 과학이라는 것 앞에서 차츰 시들어져갔다. 그럼에도 우주는 여전히 신비롭다. 끝을 모르고 뻗어나간 어둠의 공간은 아직 인간의 상상만으로 채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우주의 역사 라는 이 책에서는 우주에 대해 품어왔던 신비를 존중하면서 과학적인 설명을 그림을 곁들여 나타내고 있다.그럼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콜린 윌슨(Colin Wilson)에 대해 알아보자.콜린 윌슨은 평론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이다. 1931년 6월 26일 영국 레스터(Leicester) 지방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업학교를 다닌 것 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독학을 계속하다가 불과 24세의 나이에 를 발표했다.당시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필립 토인비가 [업져버]지에 '콜린 윌슨은 누구인가'를 발표하여 그를 격찬하였고 그는 전세계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소설, SF, 평론등 다방면에 걸쳐 120여편에 달하는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해오고 있다.이 책은 크게 3편으로 나누어 고대의 우주론, 발견의 세기, 다이나믹한 우주 로 설명하고 있다.콜린 윌슨은 샤머니즘이 창궐한 선사시대부터 우주선을 날리는 현대까지 이르는 천문과학 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 관점이 대단히 특이하다. 그는 인간의 '인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이성과 계산의 와 감성과 직관의 라는 패러다임을 세운다. 현대인도 세우기 어려운 피라미드는 어떻게 세워진 것이고 그 신비는 무엇인가 ? 그리스의 천문학은 어떻게 발전하였을까? 평범한 글쓴이라면 재미없는 이론으로 천편일률적인 설명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린 윌슨은 좌뇌와 우뇌를 바탕으로 하여 정신분석학 적인 시각으로 고대인들은 현대인들과 사유구조가 달랐다고 체계적으로 논증해나간다.아라비아 인들은 앞서 들려 온, 무엇인가 떨어지는 둔한 소리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통로의 천장에서 돌 조각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뚫린 천장을 통해 직사각형의 문 같은 것이 보였다. 통로에 횃불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놀랍게도 이미 그곳에 들어왔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마 로마 인이었을 것이다.”이 글은 7세기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아라비안들이 피라밋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피라밋의 내부를 탐사하는 내용을 서술한 본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넋이 빠지는 듯 했다. 콜린윌슨의 설명은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했다.또 서론부분에서는 대략 우주에 관한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우주의 역사는 아주 간단하게 하면 대략 이렇다. 진공에서 에너지가 폭발하며 생긴 우주는 처음에는 우주에 오로지 에너지 뿐이었다. 이 에너지로부터 입자가 생기고 이 입자들이 다시 모여서 원소가 생기고, 이 원소들이 모여 은하, 별, 행성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거기에는 수많은 작용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쿼크, 빅뱅, 인플레이션, 밀도 요동 등이 있다.중세시대 천문학 설명도 대단히 재미있다. 중세시대에는 드디어 '좌뇌'의 시대인다. 콜린 윌슨은 고대에는 인류가 우뇌, 즉 직관과 감성, 샤머니즘과 종교 등에 의지하여 세계를 파악하였지만 온갖 재난과 환란을 겪은 뒤부터는 계산과 이성 등의 '좌뇌'에 의지하여 근대까지 이어져왔다는 반박하기 어려운 설명을 하는데 주역 인물이 바로 "갈릴레이", "티코 브라헤", "케플러", 그리고 "뉴턴"이다. 콜린 윌슨은 이 과학자들의 알지 못했던 측면을 흥미로운 드라마로 기술하고 있다. 갈릴레이와 교황의 싸움은 알다시피 과학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그 자신의 자존심이 빚은 트러블이었다던가, 티코 브라헤가 변태였다는 것 등. 자칫하면 구설수로만 끝날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가 "좌뇌" 위주의 과학자들이 근대과학을 성장시킨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콜린 윌슨의 탁월한 작가성을 말해주지 않나 싶다.그 중 티코에 관한 설명을 살펴보면, 티코는 코페르니쿠스보다는 프톨레마이오스 학설에 관심을 보이므로 천문학을 후퇴시키는 일에 가담한 셈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가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위대한 인물, 즉 위대한 관측자 중 한 명이었음을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티코는 돈 많은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지만 실속 없고 사치스런 생활에는 환멸을 느꼈다. 오히려 천문학에 대한 타고난 갈망으로 별을 정확히 관측하는데 열정을 쏟았다. 그러므로 그는 26세 때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별을 관측하기에 이른다. 즉, 초신성과 혜성을 최초로 관측했으며 태양과 달은 지구를 돌되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돈다는 절충 우주 모델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