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1. 개요2. 붕괴 과정3. 건물 붕괴 원인 조사를 위한 분야별 검토(1) 재료시험1) 콘크리트 압축강도 시험2) 철근의 인장강도 측정3) 콘크리트 내의 단위시멘트 함량시험4) 콘크리트의 염화물 함량시험(2) 지반조사(3) 설계도서검토1) 건축설계도2) 구조설계도(4) 시공검토1) 골조공사2) 콘크리트 공사3) 마감공사(5) 유지관리내용 검토1) 관리 조직의 전문성 결여2) 유지관리 인식 결여(6) 제도적 요인4. 종합적 고찰5. 사고의 예방책6. 교훈 및 대책7. 참고문헌1. 개요삼풍아파트는 서초동 법원 청사 맞은편의 국내 최고가 아파트중 하나인 삼풍아파트단지내 부지 4천6백66평에 자리잡고 있었다.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지하 4층)에 연면적 2만2천3백86평(매장면적 9천3백87평). 연매출액은 92년 9백37억원, 93년 1천1백88억원, 작년 1천6백46억원으로 전국 백화점 랭킹 7위에 올랐다. 단일 매장규모는 서울 롯데 본점에 이어 전국 2위의 매머드급이다. 백화점내에는 5백56개의 점포(직영 4백38, 임대 1백18)가 있으며 평소 직영 종업원 7백여명과 입주업체 판촉사원 3백여명 등 평소 1천여명이 근무해왔다. 백화점 건물은 같은 크기의 2개동(동)으로 나뉘어져 북쪽의 건물은 매장으로, 남쪽의 스포츠센터는 매장(1~3층)과 함께 레포츠시설(4~5층)을 만들어 놓았다. 두 건물은 가운데에 개선문 모양에 외벽을 유리로 한 연결건물을 세워 연결시켰다. 87년8월부터 우성건설이 시공하다 삼풍건설이 넘겨받아 89년 11월 매장면적 4천1백61평에 대한 가사용 허가를 받았다. 설계와 감리는 서초동의 우원종합건축(대표 임형재)이 했다. 90년 7월 준공검사를 받은 다음, 94년 10월 지하매장을 2백4평 가량 더 늘리면서 동시에 매장을 현재의 규모로 확장하는 공사 허가도 받아냈다. 붕괴된 북쪽의 삼풍백화점은 1층은 잡화, 2~3층은 의류, 4층은 학용품-완구매장, 5층은 식당가로 써왔다. 지하1층은 식품매장, 지하2~3층은 주차장, 지하4층은 기 직원들에게 금이 간 기둥 밑바닥을 뜯도록 했다. 직원중 1명이 가로 60㎝, 세로 1백20㎝ 크기의 바닥 타일 3개를 제거하더니 "철골구조물에 금이 갔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느낀 이사장은 아버지 이회장에게 보고하면서 중역들을 소집,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것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긴급 보수 를 해야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영업을 중지하느냐 아니면 강행하느냐"를 놓고 토론이 시작됐다. 이미 5층은 폐쇄됐고, 4층 가구 및 귀금속매장도 철수한 터였다. 물건들을 모두 지하 3층으로 옮겼다. 3층도 철수하자는 얘기가 오고 갔고 시설부장 이영철씨 등은 "백화점 문을 닫고 보수해야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회의에서 영업을 중지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중역은 없었다. 이회장은 "5층 보수가 시급하니 이날부터 긴급보수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보수공사가 결정되자 이사장은 재차 5층으로 올라가 "칸막이를 친 뒤 신속히 보수공사를 하라"고 다그쳤다. 오후 3시쯤 우원건축 임형재 현장소장과 구조기술자 이학수씨가 도착했다. 이들은 백화점 건물 감리를 맡았던 전문가들. 이영길 이사와 함께 5층과 옥상에 올라가 조사했다. 그러는 사이 건물은 붕괴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고 있었다. 오후 4시쯤 임원회의실에서 이준회장 주재로 2차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이사장 등 백화점 및 건설사 간부 9명과 임형재-이학수씨 등 11명이 참석했다. 구체적인 보수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임소장은 칠판에 건물구조도를 그려가며 "점검결과 건물의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됐으니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장 폐쇄여부가 관건이었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회의내용을 조사한 결과,당시 이학수 구조기술사가 신공법으로 보수를 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진행되던 침하는 현재 멈췄다 고 경영진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준회장도 검찰에서 "기술자들이 지지대를 받치고 보수를 하면 더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했고, 영업중지원이 표시되지 않았으며 냉각탑 하중을 고려하여 계산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② 지상 5층 설계최초의 허가신청 도면에는 지상 5층의 용도가 롤러 스케이트장으로 되어 있고 구조계산서에는 마감하중 60kg/㎡을 포함한 고정하중 800kg/㎡과 적재하중 240kg/㎡으로 총 사용하중은 1040kg/㎡으로 설계되어 있으나 후에 용도변경되어 식당가로 조정되었다.식당가로 조정되면서 주방, 칸막이 벽이 설치되어 하중이 증가하였으나 구조계산서에는 용도변경에 따른 별도의 검토가 없었고 5층의 슬래브 배근도는 2,3,4층의 배근도와 동일하게 설계되어 있어 별도의 보강은 없어서 과하중이 작용하였다.2) 구조설계도① A동과 B동 주요구조 비교구분A동B동구조형식플랫 슬래브 구조 :지하3층~지상5층플랫 슬래브 구조 :지상 4층 이하라멘구조 : 지상5층스팬수(X방향×Y방향)6Bay × 5Bay5Bay × 5Bay코아와 연결부 단부 스팬9.2m3.8m코아 부위와 옆 기둥의 지판 연결 부위연결 안됨연결됨② 구조계산서와 구조설계도면 비교-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스컬레이터의 위치가 A동 2~5층의 에스컬레이터의 위치가 E행과 F행 구간의 6~7열로 설계 변경되어 2군데에서 1군데로 변경되었으며 위치도 이동되었다. 이에 따라 구조계산서에도 설계 변경되었다.- 기둥의 규격 및 철근위치변경 전 에스컬레이터의 모서리에 있는 기둥의 부호는 5~6열의 기둥 4개를 C1a, 8~9열의 기둥4개를 C1b로 표시하였다.기둥층별구조계산서구조설계도면기둥 개수기둥직경철근량기둥직경철근량C1a4,580cm16-HD2260cm8-HD228C1b4,580cm16-HD2260cm8-HD228- 슬래브 보강철근층별위치부위별구조계산서설계도면비고17열, E-F구간하부근HD16+19@150HD13+16@150S-377열, F 구간상부근HD22 @150HD16+19@150B18열, E-F구간하부근HD16+19@150HD13+16@1509열, E 구간상부근HD22 @150HD16+19@1509열, E-F구간하부근HD16+19@150HD1실 슬라브 훼손부위 화장실 슬라브 훼손상태나. 기둥 철근ㄱ. 기둥의 주철근의 정상적인 위치, 즉 기둥의 콘크리트 표면에서 주철근 중심까지의 거리는 기둥 콘크리트 표면에서 철근 표면까지의 피복두께 약 4~5cm와 철근 직경의 반(직경 22mm:1.1cm)을 합하여 대략 5~6cm이다.기둥 주근 위치 : 단부에서 약 11cmㄴ. 직경 60cm 크기의 4~5층 기둥 : 약 7.5cmㄷ. 4,5층 원형 기둥 C1(7열 D행)의 5층부분 : 철근 22mm 약 12cmㄹ. 기둥 주철근의 좌굴 현상을 방지하고 발생되는 전단력에 저항하여야 하는 등 주철근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둥 주철근의 둘레를 감싸도록 설치하여야 하는 원형 띠철근의 일부가 기둥 주철근 안쪽에 시공.다. 보 철근ㄱ. 코아(#1) 5층 보 철근배근구분설계도서시공내용주근HD22 -8대HD22 -4대늑근HD13@150, @250HD13@300, @300설계보다 부족하게 시공되어 있음.라. 철근의 이음 및 정착ㄱ. 기둥철근의 이음 길이: 4층 기둥의 철근은 5층 슬래브 상단에서 직경 22mm 철근이 약 70~75cm 정도 위치까지 배근되어 5층 기둥 철근과 이음 시공되어 있었으며 시방서에서 규정한 길이(직경 22mm의 경우 88cm)보다는 다소 짧게 시공.ㄴ.슬래브 철근의 정착길이 : 대부분의 철근이 구부림 없이 직선으로 정착한 것으로 조사됨.2) 콘크리트 공사기둥 이어치기 부위의 콘크리트 상태① 타설전 청소상태시멘트 포장 종이가 콘크리트와 함께 타설되는 등 청소상태가 미흡② 콘크리트 재료분리각 층의 콘크리트 이음 부위인 슬래브 상단 벽체와 붕괴된 일부 원형기둥의 콘크리트 상태가 심한 재료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밀실하게 타설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남.③ 콘크리트 이어치기이어치기 부위에서 기둥이 수평으로 칼로 자른 듯이 분리되어 있고 벽체 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콘크리트의 일체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④ 지판과 슬래브 분리 타설슬래브 지판은 슬래브에 작용하는 힘을 기둥에 전달하며 9년 11월27일 매장을 3천㎡로 확장하기위해 1차 설계변경을 승인받았고, 같은달 30일 백화점 개장과 동시에 12월1일부터 90년 2월27일까지 3개월간 5만여㎡에 대한 1차 가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 당시 서초구청 관련공무원은 구청장 이충우(90년5월 명예퇴직), 도시정비국장 이승구(현 성북구 도시정비국장), 주택과장 김영권(54 91년6월 면직), 주택계장 량주환씨(44 현 중구청 건축계장)였고 담당직원은 김오성(33 현 건축계장) 정지환씨(39 무직)였다. 삼풍측은 90년 3월9일 판매시설 2천여㎡를 운동시설로 변경하는 2차 설계변경 승인을 받았다. 이때 서초구청 주택계 담당직원은 김오성씨와 정경수씨(34 주택과 주사보)였다. 삼풍백화점은 이어 같은 달 90년 2월28일부터 같은해 8월31일까지 백화점 건물 6만8천㎡에 대해 설계대로 시정한다 는 조건으로 2차 가사용 승인을 받았다. 서초구청은 4월에 운동시설 등 7천여평을 매장으로 변경하는 3차 설계변경과 확대된 7만1천9백53㎡에 대한 3차 가사용 승인을 내줬다. 3차례의 설계변경 승인과 3차례의 가사용 승인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이다. 삼풍백화점의 준공검사가 난 것은 90년 7월27일. 영업을 시작한지 만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준공승인서 교부당시 서초구청장은 황철민씨(현 서울시 공무원 연수원장), 도시정비국장은 임채근씨(시청 재무국 회계과장)로 바뀌었다. 주택과 담당직원은 곽영구씨(35)였다. 삼풍백화점은 준공검사를 받은 뒤에도 증축 및 용도변경을 계속했다. 94년 8월에는 지하 1층의 빈공간 6백72㎡를 증축, 판매시설로 용도를 바꿨고 체육시설이었던 약 1만5천㎡를 판매시설로 변경했다. 이 공사의 허가를 내준 구청장은 이번에 민선서초구청장으로 당선된 조남호씨였고, 도시정비국장은 심수섭현국장, 주택과장은 김재근씨(48 현 방배3동장), 주택계장은 이종훈씨(43 현 청소과장)였으며 담당직원은 정경수, 이명수씨(47 현 교통지도계장)였다.② 추가 하중 작용 내용삼풍백화점은 냉각탑을 89년 a동 삼풍해진다.
제 1장 서론데이비드 샐번은 1990년 2월에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한 방문객을 통해 최초로 문서를 보게 되는데 문서의 주인은 비유대인이었지만 문서 공개에 따르는 각종 문제와 문서 공개가 현명한지의 여부를 놓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꾸었기 때문에 문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내용을 해독해보겠다고 주인을 설득하기까지 여러 달이 걸렸다. 야콥이 문서를 작성했던 시기에는 이탈리아의 기독교도와 유대교도 사이의 종교논쟁이 후자에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문서에 담긴 종교적 문제에 대한 야콥의 반기독교적인 비판은 만약 그것이 공개되었다면 야콥과 그의 가족은 엄청난 재앙을 당할 수 있었을 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때문에 야콥은 문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했으며 그것이 이어져 유대인이 아닌 현재의 소유자조차 문서의 공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한편, 중세 이탈리어로 쓰인 문서를 해독하는 데에는 따르는 많은 어려움 뿐 아니라 문서의 존재 공개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서를 해독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셀번은 해독 작업에 착수한다. 유대인 학자이자 상인이었던 야콥 단코나가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보다 몇 년 앞서 극동지방을 방문하고 여행과정과 체험한 사건들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번역을 추진할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중세 때 근동과 극동 지방을 여행한 유럽인, 특히 이탈리아인 여행자들이 워낙 많았던 만큼, 그들이 작성한 여행기 원고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여행기들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모험적인 동양 여행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르코 폴로’조차도 과연 중국에 간 적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야콥 단코나의 원고 역시 수량과 분량 면에서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야콥 단코나의 원고에는 분명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짜이툰에서 야콥의 길 안내와 통역을 해준 ‘리훤리’ 에 관해서 언급한 내용으로 보아, 리훤리가 정성스레 기록한 요점이 던 듯하다.‘이단’을 색출하여 처벌할 목적에서 13세기 초에 시작된 종교재판은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다양하면서도 가혹한 장기간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쳤다. 종교재판을 주관한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이교도의 낙인을 찍었을 뿐 아니라 악마의 자식이라고까지 부르며 유대인임을 뜻하는 외부표지를 착용할 것을 강요했고 탈무드를 이단의 책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황청의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특히 이탈리아 거주 유대인이 존경받는 지역의 유지로 행세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중세 교황들과 성직자들은 잔인하고 차별적인 명령을 빈번하게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자기네’ 이탈리아 거주 유대인들에 대한 학대에는 반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야콥 시대의 이탈리아 거주 유대인들은 토착화한 지 오래 된 주민들이었으며, 해외무역 사업을 포함한 상업과 장인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법률상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시민으로 대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유대인들은 지방의 특별세와 금지 조항 때문에 항상 고통 받았으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더구나 1256년부터 교황 클레멘스 4세와 앙주가(家)의 샤를의 통치기간 중 유대인에 대한 적대정책이 강화되었으며, 따라서 야콥은 1270년 초여름 자신과 가족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과 초초한 마음을 품은 채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1270년 4월부터 1273년 5월까지 3년 1개월 동안 여행을 계속한 야콥은 중국 남부까지 갔다가 귀국했다. 중국에 도달하는데 16개월이 걸렸으며, 중세 중국 남부의 대규모 항구도시였던 ‘짜이툰’에는 약 5개월 동안 머물렀다.3장. 바다에서 구원받다9월 21일, 단코나의 아들 이삭은 이사야의 충고대로 고급 대추야자와 금사비단, 나키니 비단을 구입했고 아르멘투치오도 단코나의 지시대로 수많은 물품을 구입하여 배에 실었다. 항구에서 다노나의 배는 물론이고 메나헴 비보와 베네치아의 라자로, 엘리저 델 베키오의 선박들도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에 아르멘투치오와 투리오니는 대량으로 사서 나중에 큰 이익을 남기게 된다. 1270년 마지막 날 돛을 올리고 드디어 콜람에 도착하게 된다. 콜람에 대상인 아론이 먼저 도착했는데, 아론은 토라 모독행위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재물을 신앙상보의 의무보다 중요시하는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언급을 하는데, 단코나의 신앙심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시님에서 귀하게 여기는 향신료를 구입하고 세계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 아마포도 구입한다. 1271년 1월 12일 콜람을 출항해 남동쪽 코마리를 지나 세일란으로 간다. 단코나에게 세일란은 에덴 동산의 느낌이었다. 나라 전체가 향신료 냄새로 가득하고 향기가 공기 속에 떠돌아 경이롭기 그지 없었다고 기술했다. 비보와 함께 후추, 생강, 계피를 사고 세계 최고 품질의 보석류를 구입한다. 루비, 황옥과 자수정, 사파이어 등 최고 품질의 보석류는 이곳 세일란의 신들의 눈물이 굳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한다. 세일란 섬에는 16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지만 토라를 연구하지 않고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2월 4일 이곳을 떠나 소인도 지역으로 접어들기 사작했다. 소인도는 세일란 근해에서 시님 부근 해역까지 뻗어 있다. 벌거숭이의 땅이라는 뜻의 니코베라노 섬에 도착한 일행은 육두구와 향목, 생각을 들고 나온 원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하였다. 원주민들에 대한 안좋은 평판이 안좋아 조심하였으나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당부를 무시하고 출항을 했는데 곧 바람이 거세지고 하늘이 검게 변해갔다. 천둥과 파도로 인해 항로를 유지할 수도 진로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키와 돛이 떨어져 나가고 선두와 선미가 번갈아 바다에 잠기는 거친 폭퐁우에 다들 겁에 질려 있었다. 날이 밝고 바다가 진정하기 시작할 때, 주위에 비보의 배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친척 메나헴 비보는 이렇게 생을 달리하고 만다. 소자바의 람브리라는 곳에 도착한 일행은 폭풍우에 부서진 배들을 수리하기 위해 약 세달간 머무른다. 다행히 화물은 안전했다. 4월 14일 바람이 약해진 틈는 만쯔인들을 쾌락을 가장 중시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선택하며 어리석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식보다 재산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묘사한다. 시님에서 턱수염을 기른 사람들은 사라센이나 기독교도 혹은 유대인이었다. 사라센인들은 1만5000여명 이상이 짜이툰에 거주하고 있었고 기독교도처럼 여러 종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쯔인들은 외국인들을 구분하지 않았고, 색목인이라 물렀다. 30가지나 되는 이 도시는 언어도 가지가지여서 바벨 탑과도 같았다.단코나는 후추, 목재, 향, 피륙, 보석류 등을 높은 가격으로 팔고 나서, 자신의 하인들 그리고 만쯔인들의 몸과 영혼의 타락, 혼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상인들은 시님 국내외 교역으로 돈을 벌 뿐 아니라 천자와 그의 신하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이 돈은 천자가 얻는 소득으로 볼 수도 있다. 무역량이 너무 많아 금속이 부족하므로 종이로 만든 돈인 지전을 이용하였다. 지전을 내면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어 금과 은이 필요치 않다고 기술한 것을 보면, 화폐가 아직 생소했던 것 같다. 상인들과 장인들은 공식적인 길드를 많이 결성하여 보성상, 환전상, 식료품상, 도금공, 약재상, 의사, 심지어 인분을 퍼다 버리는 청소부들까지 조합을 결성했다. 그러나 조합원들 사이에 빈부의 격차는 우려할 정도로 크게 벌어지곤 했다. 이 부자들의 간절한 소망의 하나는 귀족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었다. 도시의 상인들은 빈민을 돕는 자선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도시에 많은 재물을 들여오는 한편 도시 행정의 모든 분야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반면 귀족과 관리들은 스스로를 가장 높은 계급이라 자처하고 상인을 낮은 계급으로 대우하여 갈등을 빚곤 했다. 단코나는 빛의 도시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이런 종교적인 차이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심신 양면으로 많이 괴로워했다. 혼자 있는 듯한 고독감에 도시는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질서도 없고 불합리한 곳으로 보았다.제 5 장 암흑의 빛 가운데에안코나보다 대략 10배 정도 큰 짜이툰을 포함한 남송의 도시들은 대규모로 급들이 모여 빛의 도시에 파견한 사자들과 함께 도시의 법률을 제정하고 각자 터득한 지혜와 실험의 결실을 교화하는 회의에 야곱이 초대 받았다. 학자들은 천성이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모두 얕보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이론이나 인식 가능한 세계의 여러 가지 물질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공허한 이론만 펴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말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우리의 현인들은 가르치고 있으며 현자가 타인에게 조언을 해주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혜를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표현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현인들의 말보다 궤변론자들의 말을 더 많이 듣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발언에는 의미도 대책도 없다. 짜이툰의 학자들은 자기네 학문이 세상에서 유일한 지혜이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네 보다 열등하다고 믿는다. 진정한 학식을 쌓은 스삐라는 학자는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하나이고 우주의 이치가 삼라만상의 으뜸 원리이며 인간은 지식을 쌓음으로써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잊혀진 이 같은 원리를 다시 터득하게 되면 지상에 다시 평화가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성의 근원을 묻는 야곱의 질문에 주희에 따르면 이성은 중국인들이 자연질서의 숨결 즉 기라고 부르는 에너지의 분출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진리 또한 기에서 나온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대답했다.현자로 행세하는 사람들은 빛의 도시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권력자들의 견해에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부족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사는 시대의 잘못으로 돌린다. 그러나 빛의 도시가 직면한 내우외환이나 혼란과 같은 문제의 성격을 구명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이 불평등한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높은 지위와 명예를 탐욕스럽게 추구한다. 빛의 도시는 암흑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학자들의 의견차이가 심해져 파가 갈리자 야곱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은 명분 이
< Part 1 >서론공간, 시간, 건축은 1960년에 쓰여진 책이다. 1960년대 당시의 건축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현대 건축에 담긴 전통에 관한 역사를 고찰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하여 내적으로 불안한 건축은 진부하며 혼란스럽다. 이러한 건축에서의 혼돈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 글이기도 하다.이 보고서에서는 부분과 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건축이라는 한 분야에서 우리 시대가 어떻게 의식화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부분에서 우리시대의 건축적 유산과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온 지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공간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특히 초기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견된 시각적 투시도법에 대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분에서는 이전시대의 도시 계획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현대 도시계획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하였다.< Part 2 >본론2장. 건축적 유산새로운 공간 개념 : 투시도플로랜스에서 시작한 르네상스의 발흥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공간 개념의 발견이다. 이 개념은 15세기 초 플로랜스에서 투시도법의 발견을 통해 예술적 용어로 바뀌었다. 이후 5세기를 걸쳐 투시도 기법은 예술사의 구성적 기법들 중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모든 예술적 재현에서 따라야만 하는 변하지 않는 규범이 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투시도 원리는 중세의 공간개념(예술적 표현상 평면적으로 부유하는 배열방법)과 비교할 때 파괴적이며 극한적인 단절을 일으키는 혁신적인 기법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투시도의 발견을 통해서 근대적 사고인 개인주의는 그것에 걸맞은 예술적 상응물을 찾았다. 투시도법상의 모든 요소들은 개별 관찰자가 보는 하나의 시점으로 귀결된다.투시도는 어떤 한 사람에의해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표현에서 비롯된 것인데 중요한 사실은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라는 측면이다. 르네상스는 전문가가 해당분야에서 독자적인 일을 수행하지 않고 통합된 삶의 개념에 귀기울일 수으로 가볍게 까치발을 댄 세 겹의 연속적인 처마장식은 지붕의 대칭적인 윤곽선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깊이 감이 두드러진 투시기법의 걸작으로 남아있다.브라만테와 열린 계단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광장과 거리를 접하고 있는 벽면을 대담하게 나누고 있었고, 서로 다른 평면에 면한 수평적인 표면들의 공간적인 상호관계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였다. 그들은 기념비적인 계단을 설치함으로써 이런 노력의 결실을 보았다. 야코포 벨리니의 스케치북에 있는 은필화는 계단이 무엇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르비노의 도나토 브라만테는 기념비적인 계단을 형태요소로서 소개한 최초의 건축가로 처음 실현한 장소는 바티칸의 벨브디르 앞마당 정원이다. 이 계단은 나중에 교회에 부가될 수 있는 멋진 박공벽이 되었다.미켈란젤로와 외부공간 구성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카피톨리나 지역을 중심으로 구축된 매스들간의 균형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지금 캄피돌리오 광장이라 불리는 이 광장은 넓은 경사로 형태의 계단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카피톨리나 지역의 사다리꼴 광장은 계단이 시작되는 난간을 향해 갈수록 좁아지고, 그 바닥은 대리석 조각들로 되어있는데 이 조각들이 이룬 환상적인 형태는 여러 가지 대조적인 모습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 디자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연대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예술분야의 각 시대를 연결한 보기 드문 천재였다. 그는 항상 움직임 이라는 문제와 그 움직임이 갖는 예술적, 물리적 잠재력에 관심이 많았다.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나 지역의 디자인은 축의 에찬 이라고 불리워진 18세기 도시계획의 구성원리가 되었다.캐피톨리나 지역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조상을 통해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캐피톨에서 고행 플로렌스의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려는 대가의 열정 어린 갈망일 것이다. 또한 그의 모든 작품은 삶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사회사의 단계들이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기 훨씬 전에 그 단계나의 성지로 만들고자 하였다.캄파냐 평원에서 부는 바람을 맞아들이고 북서쪽의 핀치오에서부터 에스퀼린, 퀴리날, 비미날, 켈리우스로 이어지는 고대 로마의 구릉지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식스투스의 목적이였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아무 체계없이 모여 있는 도로들을 단일한 도시 교통체게로 전환하는 작업에 즉시 착수하였다. 도시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게 대규모로 일어났기 때문에, 그가 죽은 이후에 로마로 돌아온 성직자들은 모두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건축물, 거리들, 분수대, 광장들, 수도교, 오벨리스크 등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식스투스는 기존의 도로를 연장하거나 도시자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도시 가로망을 결합해 갔다. 1589년, 바티칸 도서관 천장에 그려진 그림은 규모면에서나 완전성 면에서 미흡하지만 시간이 그에게 주어졌다면 대단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완성된 것에 기초한 지도보다 이 프레스코화에서 그의 마스터 플랜의 개념을 더 잘 읽을 수 있다.그는 마치 요술 지팡이를 든 사람처럼 다가올 세기의 가장 훌륭한 광장으로 발전하게 될 지점마다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그가 해낸 일 중에 100여년 동안 가장 놀랍고 특별했던 것은 베드로 성당 앞의 오벨리스크를 철거하고 운반하여 다시 세운일이다.(1585-86) 식스투스와 그의 건축가의 도시 계획에서 볼 수 있는 직관은 오벨리스크를 세울 장소로, 완공되지 않은 성당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는 곳을 선택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마치 베르니니 자신이 직접 열주랑의 신비스러운 중심으로 이미정해져 놓았던 것처럼 여겨진다.사회적인 측면식스투스는 최초의 근대적인 도시계획가였다. 처음부터 그는 도시를 복합적인 유기체로 생각하였으며 개방 광장과 넓은 거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보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분수에서는 전시용이나 시각적인 효과만을 노린 것은 아니였다. 로마에서 이 지역이 천년왕 국내내 전혀 물이 없을을 상기시키면서, 일종의 사회시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복잡한 공간 개념을 분석하지 않고도 감지 될 수 있다. 그러나 눈으로만 지상층 평면의 수학적 원리를 판독할 수는 없다. 브로미니가 잘 쓰는 모티브인 육각형 모양의 별은 평면을 이루는 비가시적인 핵심이다. 이 별은 이등변 삼각형이 교차되면서 만들어진다. 한 쌍의 삼각형이 교차된 곳에 생긴 여섯 개의 점은 디자인의 주요 좌표로 사용한 것이다. 이 점들이 엮어내는 이상적인 육각형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벽감을 만들었다.완벽한 원형 돔을 따라 단면을 잘라내는 방법, 즉 마치 돔이 움직이는 것처럼 다룸으로써 보로미니와 같은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에 의해 구성된 전체 패턴의 율동은 끊이지 않고 바닥에서 정탑까지 계속되며, 심지어 바닥과 채광창에서도 완전히 그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파이럴을 통해 건물의 각 부분을 관통하는 움직임을 연출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보로미니 그는 조각가이자 바로크시대의 거장중의 한 명이다. 그는 상식적인 차원의 조각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교회의 꼭대기에 있는 철 조각품과 추상적인 나선형태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보로미니는 항상 공간을 구성하는데 주관심을 두었다. 그가 주로 디자인한 형태는 파도모양의 선과 표면, 구,나선형태들이며 더 나아가 탑의 정점에 있는 철조각에서 발견되는 비정상적인 형태들이다.보로미니는 벽과 평면을 디자인하면서 건축에 새로운 유연성을 부여했다. 파동벽, 산티보의 도움을 잘라내는 단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나선으로 마무리된 큐폴라는 모두 운동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보로미니는 더 나은 발전을 위해 과거를 힘의 원천으로 여겼다.구아리노 구아리니, 1624∼1683바로크의 마지막 단계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튜린에서 구아리노 구아리니에 의해서 장식되었다. 구아리니는 로마를 거쳐 파리로 여행을 통해 프랑스의 고딕교회와 스페인의 무어양식의 모스크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와 자신이 속한 시대와 관계를 결코 끊지는 않으면서, 모든 역사를 품인 거대한 정원과 접하고 있으며, 파빌리온의 원칙에 의해 지어졌다.그러나 이러한 대저택과 대공원은 어떠한 것에도 경쟁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던 국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세우도록 르 보오와 르 노트에게 명령을 하고 푸케는 종신형에 처했다. 그 당시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아니었고 절대군주의 권력을 위해서는 대 재정가의 권력과 명성은 없어져야만 했다.베르사유 대저택은 교황의 종교적 권위가 국왕의 현세적 절대주의로 대체되고 있음을 뜻한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의 위대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거의 반세기를 보냈다. 특히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국왕을 매료시켰다. 루이 13세 때의 베르사유는 사냥터에 불과했지만 루이 르 보오는 거대한 규모로 발전시켰다. 중앙블록의 U자형과 연결된 두 날개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건축양식 이었고, 이 건물은 3가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국왕과 왕족, 그리고 프랑스 각 행정부서를 수용하였다. 베르사유의 적극적 활용은 절대군주의 흥망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베르사유의 의미와 구조적 사실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지는 실제로 건물자체의 일부분이고, 건물과 함께 거대한 힘과 웅장함을 연출하고 있다.루이 14세가 베르사유를 확장 건설할 때 로마식 웅장함은 성공을 거두었다. 직선, 평지붕은 단순함 속에 굉장한 용기와 확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대한 건축적 대답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복잡한 건물을 자연과 연결시킨 디자인 기법이다.베르사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생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무한한것을 지배하려는 바로크의 의지는 상젤리제와 루브르로 끝나는 도로뿐만 아니라 내부의 거대한 공원과 모든 종류의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된다.루이 14세의 전기작가인 루이 버트랑은 루이 14세를 옥외의 왕(The Open ? Air King)이라 불렀다. 베르사유의 구조적 사실들은 화려함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양식과 작은 도시에 가까운 구조물 안에서의 생활이.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건축가이자 건축이론가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에 활약하였다. 그가 쓴 는 르네상스의 고전연구에 따라 1415년경에 재발견되었으며, 84년에 로마에서 초판이 간행되었다. 그 후로 유럽 건축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도 고대건축 연구상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를 살펴보면 10개의 서와 각각을 설명하는 몇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서에서는 건축가의 직능과 어떤 사항에 정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건축의 기본적 원칙으로 오더와 공간배치, 미적 구성, 심메트리, 형식과 내용의 적정성, 및 경제성을 꼽고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건축술의 범위에 대해 한정짓고 있으며 도시의 입지와 성벽, 바람을 고려한 건축의 입지와 공공건물의 입지 등 성곽도시와 성내 건축물의 분할 배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2서에서는 건축 재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재료가 건축에 필요하며, 이들은 어떤 원소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벽돌, 모래, 석회석, 화산재 등 재료의 종별에 따라 기술하고 그 장단점을 정리하여 봄으로써 재료 사용 시 필요한 지식을 최대한 구비토록 배려한 것이다. 또한 주거의 기원과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원소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3서와 4서에서는 신전건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특히 신을 모신 신전의 균제 비례(symmetrical proportions)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서에서는 신전건축의 배치와 양식 및 다양성, 그리고 각 양식의 구성요소와 특질면에 대해 기술하되 양식 중 그 비례가 제일 정교한 이오니아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4서에서는 도리아(Doric)식과 코린트(Corinthian)식 형태의 원칙과 차이 및 특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장과 4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5서에 들어서는 공공으로 제공되는 건물의 배치와 이용에서 필수적인 면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 예인 포룸과 바실적합 또는 부적합을 시험해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빗물, 샘, 우물. 저수지등을 수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9서에서는 시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장치와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의 내용은 비트루비우스가 선인들의 지식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황도대와 행성, 달의 현상. 12행성과 그 사이의 태양의 행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두었다. 그리고 남북의 별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으며 점성술과 날씨를 에측하는 다소 비과학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드는 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마지막 10서에서는 기계류에 관해서 전시 혹은 평화시에 유용한 것들의 제조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도르레의 원리와 운동의 요소, 물레바퀴의 원리등에 대해서 기술하는가 하면 전시를 대비한 투석기나 쇠뇌, 노포, 거북장치등의 무기류에 대하여고 이야기하고 있다.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술을 건축물을 만드는 일, 해시계를 만드는 일, 기계를 만드는 일로 분류하였다는 점에서 건축물을 만드는 일 외에 9장과 10장의 내용이 건축10서의 일부를 차지하는 점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 중에서 그리스의 신전건축에 대해 어떻게 분류 정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와 신전에서의 오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그리스의 신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심메트리(symmetry)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전건축은 심메트리에 의해 구성되는데 심메트리란 건물이나 사물의 형태에 있어 전체와 부분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척도 단위와, 그 기본 단위로서 이루어져 있는 각 부분의 산술적인 비례관계를 총칭한다. 이중 인체의 심메트리는 건축으로 많이 환원되어 활용되고 있다. 사람의 몸에 있는 팔꿈치, 발, 손바닥, 손가락 등 기타 미세한 부분에까지 존재하는 일종의 비례적인 조화로움이 훌륭한 건물에도 마찬가지로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심메트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신전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것으로 쌓는다. 이렇게 해야 돌의 중앙이 맨 가운데 세로 줄눈을 고정시켜 건물의 내구성을 강하게 할 수 있고 부풀어 보이는 표면 미장으로 그 외관의 상쾌함을 더할 수 있다.이러한 신전을 평면 양식에 따라 분류해 보자.1. 인 안티스식은 전면에 신상실을 둘러싸고 있는 벽의 안타와 안타 사이에 두 개의 기둥이 있고 그 위에 박공이 놓여진 경우를 말한다. 여러 신전들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발달이 덜 된 형태라 할 수 있다.2. 프로스타일은 인 안티스와 동일하지만 전면에 기둥이 4개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타와 마주보는 방향의 모퉁이에 아키트레이브가 인 안티스처럼 전면 뿐만 아니라 좌우 양쪽에 있다.3. 엠피프로스타일은 프로스타일과 같으며 뒤쪽에도 열주가 있어서 전후주식이라고도 불린다.4. 페리프테랄은 전면 및 배면에 6개, 측면에 모퉁이 기둥을 합쳐서 11개의 기둥이 있는 것으로서 주위에 놀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 형성 될 수 있게 하였다.5. 프쉐도디프테랄은 전면 및 배면에 중앙 기둥과 서로 마주보도록 기둥을 세우고 셀라에서 외측 열주 사이의 공간은 두 기둥의 하부 굵기를 합한 만큼 띄워준다.6. 디프테랄은 전면과 배면의 포티코에 8개의 기둥이 있는 방식으로 신상실의 외부에 이중의 열주가 있다.7. 노천식(hypaethral)은 전면과 배면에 모두 10개식의 기둥이 있고 그 외에는 디프테랄과 같으나 중심부에 지붕이 없고 정면과 배면 양쪽이 다같이 각기 끝부분까지 닿는 접문이 있다. 셀라를 둘러싼 열주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셀라는 상대적으로 발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스인은 로마인과 대조적으로 내부공간에 관심이 있었고 외부공간 요소로서 신전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 안티스(in-antis), 프로스타일(prostyle), 엠피프로스타일(ampi-prostyle), 페리프테랄(peripteral)신전의 평면을 분류할 때 기둥과 기둥사이의 비례를 이용하여 분류하는 방식도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신전을 5가지로 분류하게 되며 그 이름이 기둥사이가가늘게 보정해야 한다. 이 보정 역시 간격과 높이에 맞는 심메트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신전의 분류는 평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입면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그 중 가장 구별이 명확한 것으로 주두의 양식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주두의 양식으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 식이 있다. 로마에서는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합친 형태인 복합식과 터스칸식의 주두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 중 그리스의 대표적인 3가지 오더양식에 대해 살펴보자.오더(order)란 기단, 기둥, 엔타블레이춰의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릭 오더는 그리스 본토에서 사용된 그리스 최초 오더로서 남성적이고 강함을 표현한다. 세 가지 오더 중 비례관계가 가장 굵으며 기둥 하부에는 基盤(Base)이 없이 주두와 주신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스테레오 베이트(stereobate)와 스타일로 베이트(stylobate)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둥은 주초없이 스타일로베이트 위에 서 있다. 주신에는 플루팅이라고 하는 날카로운 능선을 이루는 수직홈이 있으며 배흘림 양식과 상단부에 횡띠가 두드러진다. 주두는 방석 모양의 에키누스와 엔타블레이춰를 받치는 아비쿠스로 나뉜다. 기둥의 상부에 있는 엔타블레이춰는 아키트레이브와 프리즈 코니스로 나뉜다. 아키트레이브(architrave)는 상부하중 받거나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며 프리이즈(frieze)는 아키트레이브 위의 수평띠로서 트리글리프와 메토프로 나뉜다. 메토프부분의 조각장식은 도릭양식의 우아함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코니스(cornice)는 두개의 경사 코니스와 함께 박공면 형성하고 있다.이오니아식 오더는 에게해의 섬들과 소아시아에서 발달하였으며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단 사이에 홈이 있는 기단을 가지고 있으며 도릭보다 얕은 플루팅처리를 하였다. 주두는 소용돌이 형태의 나선형인 볼류트가 에키누스를 대신하고 있다. 아키트레이브를 보면 2개의 수평홈에 의해 3부분의 띠벽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코린티안 오더는 세 가지 오더 양식중 가장 후모양이라 하였다.주두를 살펴보면 아바커스는 기둥 굵기의 1/18을 더한 길이와 폭을 가지며 주두는 볼류트를 포함해서 기둥 굵기의 반이다. 볼류트 역시 정밀한 비례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볼류트의 면은 아바커스의 끝쪽에서 내쪽으로 기둥 굵기의 1/12만큼 후퇴시켜야 한다. 네 면의 소용돌이와 접한 곳에서 카테티가 아바커스의 가장자리 필렛을 따라 밑으로 그어져 있다. 또한 주두 두께가 9와 1/2로 나뉘었을 때 그 중 1과 1/2는 아버커스의 두께이며 나머지 8부분이 볼류트의 두께가 되어야 한다. 또한 아바커스의 끝에 접하여 내려가는 선에서 내측으로 폭이 1과 1/2부분 정도 남도록 나눈다. 주두의 높이는 주두를 7과 1/2로 나누었을 때 주신 위에 있는 아스트라갈 밑이 그 중 세 부분의 길이에 해당하며 나머지가 아바커스의 눈 크기와 같다. 볼류트의 축은 눈 크기보다 굵지 않으며 소용돌이는 그 높이의 1/12깊이만큼 새겨진다. 7.5미터 이상 높이의 기둥의 경우는 기둥이 높을수록 기둥 끝이 많이 가늘어지므로 기둥의 길이와 폭은 기둥 하보 굵기의 1/9를 더한다. 이처럼 주두가 많이 튀어나올수록 자신의 부분 증가분이 너무 작아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주두가 기둥 전체의 모듈에 맞게 되었다면 아키트레이브도 다음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 간다. 기둥의 높이가 12피트에서 15피트 사이인 경우 이키트레이브 높이는 기둥 하부 높이의 반이며 15피트에서 20피트 높이의 기둥을 가질 경우에는 기둥 높이의 1/13, 20피트에서 25피트 높이의 기둥에서는 1/12.5이다. 25피트에서 30피트사이에서는 기둥 높이의 1/12이다. 이것은 높은 곳을 바라볼수록 정확한 대상의 파악이 어렵고 이에 따른 시각 조정 기법의 하나로 사용된 것이다.아키트레이브와 시마티움은 수평보 전체의 높이의 1/7이도 돌출부도 같은 크기를 가지고 있다. 에키누스를 제외한 수평보의 나머지 부분을 12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위로부터 3/12, 4/12, 5/12의 크기를 지지하는 세 층의 파시아는 높이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