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하루키 노병식 옮김삼진기획 1988처음으로 읽은 하루키의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였다. 일본 문화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과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의 소설에서 강하게 일본 문화의 독특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다른 나라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게 잘 구성해 놓은 하루키의 실력에 감탄했다. 어떻게 보면 인이 없는 것 같은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로 인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 낮은 소설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조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다양한 지식과 호기심이 곳곳에서 흥미를 더해 주면서 전개될 사건에 대한 기대도 충분히 유도하고 있다. 아직 그 말들이 얼마나 깊은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지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 되뇌는 의미 있는 인생의 법칙들도 소설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이것들은 개인적으로 그의 책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내가 그의 책에 재미를 느끼고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인공의 인생관이 환경과 격정적으로 충돌하지 않아 -어쩌면 관조적으로 보이지만- 조용히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이다. 도가의 무위자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전개가 가장 맘에 들었다. 그의 소설은 최근에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러운 세상의 순리가 강조되어 가시화되어 비현실적인 혼령이 나타나고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판타지적인 수준까지 갔지만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전인 상당히 현실적인 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도 주인공은 모든 것에 친화적이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이 깊은 인물이지만 그는 적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고 짧은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특히 여자들이 그의 그런 성격을 좋아하고 더욱이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라곤 사소하고 그때그때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다.나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머리 속에서 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 실재로 자신이 하는 일이라곤 무수한 환경의 자극에 대해 그때그때 반응하는 일 밖에 없다. 전체로 보면 아주 작고 하찮은 일들을 끊임없이 해대는 것이 인간이고 그러한 세계는 마치 태엽에 의해 시계가 돌아가듯 돌아가고 있다. 역시나 하루키의 책에는 빠지지 않고 태엽이 나온다. 그러다 결국 ‘태엽 감는 새’ 라는 소설도 나왔었다. 세상의 어떠한 알 수없는 이치에 따라 태엽을 담아야 할 때가 있고 쉬는 때가 있다. 인간은 그러한 힘에 저항은 할 수 있지만 운명은 물 흐르듯이 항상 흘러간다.내가 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소재들도 있다. 이 소재들은 흥미도 있지만 하루키 소설의 흐름에 빠질 수 없는 적절한 재료들이다. 그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로 보면 대학생, 우물, 태엽, 재즈, 클래식 음악, 유명한 고전 소설, 섹스, 죽음, 가출 등이 있다. 항상 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중요 장면에선 어떠한 음악이 나오고 있고, 주인공은 특정 책을 좋아한다. 주인공은 가출을 하거나 자신에게 심신의 구속을 하는 근친이 없다. 죽음이 자주 등장하고 삶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섹스도 하나의 자연의 흐름인 듯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해서는 안 될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한다. 섹스에 관해서는 그의 소설이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민감한 부분을 그는 당연한 듯이 세밀하게 표현을 했다. 그의 소설만으로 모든 남녀가 그러한 생각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 잘못이지만 아무튼 그의 작품에선 끊임없이 섹스가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이- 단순히 한 행위에 불과하고 세상의 흐름에 필요한 도구로 표현된다. 내가 일본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도 그것이다.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 이현우옮김21세기북스24세 남요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서점에 검색을 해보면 새로 나오는 책들이 정말 홍수를 이뤄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휩쓸어 가버린다. 하지만 조금만 침착하고 페이지를 넘겨보면 수 십 편의 논문에 맞먹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명저가 있는가하면 한 때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현시점의 이슈를 부각시켜 키워드만 포함시킨 텅 빈 듯 한 책들도 있다. 같은 책이지만 그 배경 지식, 서술의 난해도, 구성 등은 천차만별이다. 독서를 멀리하던 사람들은 양서를 고르고 끈기를 가지고 읽을 능력이 모자랄 수 있다. 내용이 알차지만 단어가 생소하고 설명이 어려운 책들은 꾸준히 익숙해 지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내용도 충실하면서 친숙하고 쉽게 풀어서 전달해 주는 책도 있다. 나도 쉽게 독서에 남다른 노력을 들인다는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이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은 분명 깊은 사회과학적 지식을 쉽게 재미있게 표현한 책임은 확신할 수 있다.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바쁜 사회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많은 논문과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딱딱하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게 설명해 놓았다. 짧은 만화를 첨가하여 흥미도 유발시키고, 실례를 들 때면 항상 참고 자료를 명시하였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의 편지의견도 실어 독자들이 자신들의 일인 듯 친숙함을 줬다. 어쩌면 심리학의 전문가인 저자가 독자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한번 보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도록 설계해 놓은 하나의 책 이상의 학술적 창조물 같다.우리는 넘쳐나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따져서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너무 시간이 모자란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결정들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느낌이나 본능에 따라 결정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판단은 하등의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법칙을 그대로 따르기도 한다. 어떤 어미 새는 아기 새의 특정한 울음소리만으로 아기 새임을 확인하고 품에 안는다. 적이 그 소리를 내더라도 그 적을 품는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들도 이러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고 있다.이 책은 6개의 큰 설득의 심리학 법칙을 소개했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전문성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호감의 법칙, 사회성의 법칙. 우리는 남이 자신을 칭찬하거나 일을 도와주면 언젠간 자기도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사회에 의해 은근히, 꾸준히 가지게 된다. - 상호성의 법칙. 그 사람이 그 분야에 전문가라는 확신을 가지면 거의 전적으로 비판 없이 그의 의견을 받아 들인다. - 전문성의 법칙. 어떤 일,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한 번 하면 그 자리에서 그 것에 대해 비판하기는 힘들어 진다. 처음 거절하는 것이 나중에 거절하는 것 보다 쉬운 이유이다. - 일관성의 법칙. 나도 안타깝지만 우리는 외향에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더 호의적이 된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생각은 이 법칙을 너무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호감의 법칙. 모자라면 절실해 진다. - 희귀성의 법칙. 잘 모를 때는 남들이 많이 하는 것을 따라 간다. - 사회성의 법칙.아무런 배경 자료 없이 소개 됐을 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그 당시 상황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 900여명의 신도들이 약을 먹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주위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 집단 구성원들의 유사성이 유발시간 상호성의 법칙의 결과라고 한다. 또 어떤 살인 사건이 30여 명의 목격자가 있는 가운데 일어났지만 아무도 소리를 지르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사건이 뉴욕에서 일어 났었다고 한다. 목적자들이 보는 가운데 강도가 한 사람들 3차례나 간격을 두고 칼로 찔렀지만 주위의 반응을 없었고 그 사람이 죽은 후에 뒤 늦게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누군간 신고를 할 테니 내가 호들갑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는 판단을 모두가 했고 그것이 상호성의 법칙에 의해 서로서로 태연한 척을 하다보니 일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 다음의 칼로 찌름에 대해서도 무덤덤하게 반응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설명한 것 같다.
태백산맥을 읽고24살 남고등학교 때부터 장편 소설을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지만 내 역량이 모자랐던 것 같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1,2권 정도에서 덮어야 했던 소설 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몇 년을 바쁘게 지낸 후에 도서관에서 접한 태백산맥은 새로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과연 이제는 장편 소설을 끈기 있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심과 함께 책을 빌렸고 몇 달이 걸리기는 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술술 읽어 나가게 되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기에 뿌듯함은 더욱 컸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 지리 등을 아주 싫어했었고 한국사, 한국전쟁과 같은 단어에 무조건적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내가 태백산맥을 재미있게 10권까지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대학생활에서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가졌고 우리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한마디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처절하고 비참하고 지독한 이야기다. 그만큼 삶의 밑 바닥을 잘 드러내 주는 소설이었다. 우리민족의, 우리나라의 가장 힘들고, 가장 존재의 여부가 위태했던 중요한 시기의 삶의 모습들을 명확한 인물 설정으로 명료하게, 그러면서도 끈적한 대화체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수하게 표현했다. 여순 반란 사건부터 한국전쟁 이후 분단의 시기까지 전라도의 한 작은 마을을 바탕으로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해 나간 것이 정말 있었던 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감각도 살려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 이유인 것 같다.일제 시대이후 굳어져 버린 지주 계급의 횡포에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힘들었던 소작 농민들의 삶은 지금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을 해버리면 환경에 적응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염상진, 김범우와 같이 삶의 소명이 남다른 사람들은 사회의 구조를 변화 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힘을 키워나간다. 잘못된 계급주의를 바로잡고 모두가 비슷하게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사람들의 순수한 그 운동을 하나의 주의라고 이름 붙이기가 싫다. 이미 우리에겐 무슨무슨 주의에 대한 색깔이 모두 정해져 있다. 사회는,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다. 그들의 그 순수하고 희생적인 정신과 투쟁을 잠시나마 그대로 이상적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들은 조직을 구성하고 작은 사회를 만들어 기득권의 큰 사회에 대항했다. 결국엔 전쟁이라는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했고, 소설에서는 결국 완전한 단절은 아니더라도 거의 소멸하기에 이르렀지만 끝까지 그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작가가 이러한 소설의 색깔로 받았을 국가로부터의 고통과 고난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더 느껴졌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 체제 유지 사이의 균형. 사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소설을 접하게 된다면 사상 자체의 혼란, 변화를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는 전시에는 극단주의만이 있을 뿐이다. 아군이냐 적군이냐 둘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편도 아닌 사람은 기회주의자, 방관주의자로 낙인찍혀 처벌받고, 종교를 믿으면 허무주의자로 고통 받는 상황. 자신의 확고한 의지나 신념이 없이는 살기 힘들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면 그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한 순간의 결정이 손쉽게 생사를 결정하므로 개인의 모든 배경, 지식, 의지,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순식간에 표현이 되고 교환이 된다. 우리 민족성을 알 수 있고 계급에 따른 다른 사고가 그대로 반영 된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확대되어 보는 이의 눈에 들어오고 독자는 극과 극의 비난과 동정의 감정을 느낀다. 한 마을 단위로 눈 깜짝 않고 학살 시킨 후 돌아서서 어떻게 뒤로 돈을 끌어 모을지 고민하는 기득권층과 입산하여 빨갱이로 생활하는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찰들로 부터의 감시와 동네 사람들로 부터의 눈치 속에서 끼니 때울 죽도 없이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 가는 여자들.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최인자 옮김서적포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소설이다. 오페라 하우스라는 생소한 공간이지만 충분히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사랑, 공포, 인내, 열정의 감정들이 뒤 얽혀 긴장감이 흐르고 판타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균형 잡힌 소설이다. 명작의 느낌이 난다.요즘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인기에다가 영화까지 개봉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한 것 같다. 나도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유명한 오페라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뮤지컬, 오페라 보다는 책 읽는 것에 더 익숙했기에 자연스럽게 소설로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장미 꽃, 흰 마스크로 가린 얼굴, 검은색 표지가 인간의 근원적인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처음 느낌은 그야말로 난해하고 새로웠다. 구경 해본 적도 없는 오페라 하우스의 구조와 외향은 상상하기 힘들었고 어려운 외국 사람이름들과 오페라 용어들이 자칫하면 소설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뻔 했지만 의외로 호기심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의문의 죽음, 알 수 없는 전설적인 유령의 존재, 오페라의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여주인공 크리스틴! 두려움, 아름다움, 호기심, 사랑, 질투 서양 소설의 근원적인 작품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팍 들었다.크리스틴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가난한 아버지와 함께 한 평생을 떠돌아 다닌 아름답고 능력 있지만 가난한 신데렐라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음악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크리스틴은 그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어린 시절 크리스틴 부녀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라울은 성장하여 백장의 지위를 물려받는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의문의 편지와 죽음, 그림자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두려움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있었다. 그 유령의 선택을 받은 자는 역시 크리스틴,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크리스틴에게 전해주고 크리스틴은 그를 음악의 천사로 믿지만 가면에 가려진 그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 라울백작과 크리스틴은 사랑에 빠지고 오페라의 유령의 질투를 받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져 단지 위대하고 알 수 없는 진정한 유령의 모습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 유령이고 비현실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르시아인의 등장과 서서히 밝혀지는 그의 참모습을 보면서 두려움, 위대함의 감정이 동정, 사랑, 분노의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상적인 몰입을 경험했다. 정말 재미있고, 잘 구성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유령은 사실 선천적으로 해골 같은 망가진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심지어 어머니로 부터도 버림을 받고 이리저리 집시 생활을 해오다가 천재적인 건축, 음악, 디자인의 재능을 보여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결정된 불우한 인생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하고 결국 그가 만든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곳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함정의 마술사적인 기질이 복합된 요새이자, 그만의 보급자리였다. 곳곳의 지름길, 함정들은 그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지하 5층에 있는 호수를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의 집! 그곳에 초대된 자는 오직 크리스틴 뿐이었다. 페르시아인은 그 유령과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평생 그를 좇아다니는 운명이었다.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이 절망과 시기로 바뀐 뒤 유령의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분노를 막기 위해 페르시아인은 라울 백작을 도와 크리스틴을 구출하기로 결심 한다.결국 라울백작에 대한 사랑을 알면서도 크리스틴의 자기와 함께 살겠다는 그 한 마디 말을 듣기 위해 유령은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인 음악을 가르쳐 주고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다 주었던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를 협오하고 다른 남자에게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해야만 하는 유령의 마음! 평생을 그렇게 살면서 자기 인생에 단 한번만 이라도 사랑을 얻고 싶었던 유령의 마음은 결코 인정 될 수 없는 운명적인 비참함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유령은 크리스틴의 키스를 받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이... 모두를 풀어주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 한다.
클래식 아는 만큼 들린다최영욱 지음문예마당인간이란 어찌보면 너무 단순하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이 아니면 곧 외면해 버린다. 사실 자신도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티비에서 나오는 수많은 제품들을 보면 뭐 저런 것까지 사람들이 신경 쓰고 쓸까 하는 잡다한 아이디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 하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제품의 손잡이 부분이 얼마나 손에 편한가의 차이가 그 회사의 생사가 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몇 초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하다고 느끼면 쓰고 아니면 사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제품들이야 돌이켜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잘 없지만 우리 일상에서 많은 소재들을 우리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고 멀리한다. 그런 예로 클래식이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분명 어느 한 소절이 신금을 울리는 연주가 있었지만 그 전후로 길게 이어지는 알 수 없는 형식의 연주는 언제 끝날지 어디서 박수를 쳐야할 지를 모르게 만들어서 사람들은 멀어져 버린다. 책 몇 자 읽어서 알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나는 방학 중이나 시간이 날 때면 내가 좋아하고 배워야 하는 것들 중에 그렇게 숙고 없이 넘겨버린 것들을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한다. 이번 방학에는 클래식 음악과 드로잉, 경제학 등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클래식의 품위와, 순수함이 좋아서 듣고는 싶었지만 역시 그 귀찮음으로 접어 두었던 마음이 생각나서였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음악 부분의 책을 뒤졌다. 그리고 가장 직설적인 제목의 책을 읽었다. 다른 클래식의 거장들을 열거하고 그들의 삶, 음악적 가치를 작가 중심의 방식으로 전개한 책은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알고 싶었고, 꽃다발을 얼마나 큰 걸 들고 가야하는지와 같은 사소하고 물어 보기 부끄러운 것들을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욕구를 충족 시켜주었다.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대충 옛날 것으로 훌륭한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책의 설명에 의하면 classical music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런 가치 있는 예술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음악사의 한 장르의 의미도 있었다. 크게 18세기의 고전음악과 19세기의 낭만음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사의 한 부분을 가리키기 때문에 혼돈을 느꼈었던 것 같다.유럽 음악사의 큰 흐름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중세의 교회음악에서 바로크 시대의 바흐, 헨델, 고전음악의 모차르트, 베로벤, 낭만음악의 슈베르트, 국민악파, 인상파, 현대음악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이 있다.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음악마저 금지를 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저 신만을 우러러 보던 그들은 인간의 오락, 즐거움마저 없애버렸다. 하지만 교회에 사람들을 끌기 위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성가, 성극을 만들었다. 그레고리안찬트 라고 불리는 성가와 카톨릭의 예식에서 쓰이는 미사 등이 발전을 하였다. 그 뒤로 17세기부터 18세기 중엽에 이르는 바로크 시대가 있다. 바흐, 헨델, 비발디로 대표되는 음악의 어버이들이 탄생한 시기였다. 당시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비발디가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하여 바이올린을 들고 곤돌라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공연을 하는 모습이 눈에 비칠 듯 떠오르면서 비발디의 음악이 300년을 뛰어 넘어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주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그 뒤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한 폭발과도 같은 시기가 있었다. 최고의 천재로 여겨지는 모차르트와 교향곡의 완성자 악성 베토벤이 살았던 시기로 낭만음악의 시절이었다. 음악의 순수성을 찾고 인간 중심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고픈 사람들이 고전파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등의 형성의 근본인 소나타와 같은 음악 형식이 완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형식이 중시되면 반드시 내용이 중시된 시기가 온다. 그것이 낭만음악이다. 슈베르트 바그너,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거장들이 많았던 시기이다. 많은 전문 연주가들도 나와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린 쇼팽이 탄생했다.그 뒤로는 프랑스혁명, 나폴래옹의 민족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국민악파 음악이 번창했었다. 민족주의 음악이 아니라 그 나라의 민요풍, 생활사가 담긴 음악들이 작곡되고 연주되었다. 그 뒤로는 19세기말 인상파 음악이 있었다. 현실에서 얻은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자는 미술의 사조처럼 음악도 색다른 음계를 찾아 자신의 느낌대로 표현하고자 한 시기였다. 20세기 이후의 음악은 현대음악으로써 많은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음악의 운명은 그 당시의 사람들로써는 알기고 힘들 듯 하다. 우리의 후손들이 평가해 주는 대로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