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이번 과제를 조사하면서 제일 먼저 알게 된 점은 처용가 연구에 대한 자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용설화를 보는 학자들의 시각은 매우 다양하였다.「처용랑 망해사」설화의 분석에 앞서 지금까지의 주요 연구 결과들을 경향별로 정리해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첫째, 본문비평적 방법으로써 언어학적 연구경향이 그것이다. 이 본문비평적 경향은 이두로 표기된 작품의 뜻을 밝히고 고증하는 어석적 연구들로 연구의 기본단계에 속하는 가장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둘째, 종교적 관점, 즉 불교설화의 한 유형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 관점의 저변에는 『삼국유사』의 저자가 승려이고 이 책의 찬술의도 자체가 불교적인 것인데다가, 이설화의 내용에도 분명히 창사(創寺)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등 한 편의 불교설화로서 상당한 외양을 구비하고 있다는 판단이 개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셋째, 민속학적 경향, 즉 설화나 시가를 무속적인 측면에서 고찰하는 경우이다. 이 연구들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역신(疫神)과 그 벽사의 과정, 역신 구축방식 등이 제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춤과 연희의 형태로도 계승되고 있는 점에 대해 그 중심이 무속적인 것임을 주목하고 있다.넷째, 역사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 설화의 중심인물격인 헌강왕도 실재했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시대, 지명, 절의 이름이나 산 명칭 등은 지금도 확인 가능한 고유명사들이다. 그래서 일종의 기술 양식을 달리한 일종의 사서(史書)라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연극 즉 굿에서 드라마로 발전된 고대의 연희양식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이렇게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다섯 가지 관점 중에서 나는 역사학적, 민속학적, 불교학적 관점과 위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화랑과 불교신화가 합쳐진 복합적 관점에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Ⅱ. 본론1) 역사학적 관점역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두 편의 잘 알려진 논문, 즉 이우성)의 「『삼국유사』 소재 처용설화의 일분석」과 이용범)의 「처용설화의 일고찰」을 살펴보자. 이우성의 논문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이 설화가 역사적 사실의 우의라는 관점에 있다. 따라서 헌강왕대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은 입증 불가능한 설화의 배경이 아니라 입증 가능한 사실의 세계로 성립된다. 가령, 처용은 지방호족의 자제이며 헌강왕의 개운포 출유는 지방호족에 대한 일종의 무마책이고, 동해 용왕이 구름과 안개를 끼게 한 것은 지방호족의 중앙왕권에 대한 도전의 표시로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처용이 서울로 임금을 따라간 것은 지방호족의 자제가 인질이 되어 잡혀간 것이고, 역신과 처용의 관계는 지방호족이 중앙귀족에 느꼈던 갈등의 한 표현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또한 이용범은 이슬람 상인이 신라시대 울산만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에 대해 여러 모로 자료를 분석하여 논증하고자 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이 설화에서 용의 출현을 외국선박과 선원의 출현에 대한 분식으로 보고 용의 아들이 일곱이었다는 점은 외국 선원이 다수 상륙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2) 민속학적 관점)민속학적 관점에서 본 처용설화를 살펴보면, 처용의 무당설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논의는 서대석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대석은 처용이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에서 처용을 용신을 모신 인간의 무(巫)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하고 처용처는 무녀라는 근거가 없다고 하고 역신과 동침을 역병이 들은 것으로 보면서 처용의 역신구축의 굿으로 해석 하였다. 그리고 처용이 물러났다는 것은 굿을 하고 끝냈다는 것이고 노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은 축귀의식의 첫 단계로서 사리를 따져 점잖게 꾸짖었다는 의미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무로서의 자기과시, 무적 영능의 표현 정체를 드러내라는 명령, 문책으로 전개되는 주술시가로서 성격을 논하였다.(서대석,1975) 이러한 연구사의 흐름은 보다 포괄적인 민속학적 접근으로부터 처용중심의 본원설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해명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김열규는 민속학적 입장에서 해석하면서 처용전승은 신성(神聖)전설이고 역신 퇴치 기능을 가진 문신(門神)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며, 처용은 역신을 퇴치하는 의무주술사(醫巫呪術師)이고 처용가는 감염법칙의 주술원리가 작용한 것으로 이해했다.3) 불교적 관점처용가를 설화 문학으로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불교 설화로 규정한 이가 황패강이다. 그는 처용가를 제외하고 그 설화만을 면밀히 분석한 뒤에 망해사연기를 주된 소재로 하여 짜인 불교적 설화의 성격임을 밝히고 있다.)또한 다른 연구자들은 처용을 불교적 호국호법(護國護法)의 용으로 본다든가 처용의 가무를 불교적 교화가무로 해석하는 것이 그 사례에 속한다.)4) 복합적 관점)김학성은 복합적인 관점으로 처용설화를 해석하였다. 처용은 미륵사찰과 직접 관련을 갖는 동해 용의 칠자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헌강왕을 따라 왕경(王京)으로 와 급간직을 받고 왕정을 보좌하는 존재로 되어 있다. 즉 처용은 신격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정사에 참여하는 인간적 존재이다. 게다가 처용랑이라 하여 화랑으로 약호화 되어있다. 처용의 신분과 존재의 특성은 이러한 모든 점을 충분히 설명 할 수 있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용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해 보고자 한다.우선 처용이 인간(특히 화랑)이면서 신격인 동해 용의 子로 설정된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필사본《花郞世紀》에 의하면 화랑은 仙徒로서 神官을 모시고 신을 받드는 것만을 주로 하였는데, 國公列行 이후에는 道義로서 열심히 수련하여 국정을 어질게 보좌하는 忠臣과 훌륭하고 용기 있는 將卒들이 여기서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화랑은 애초에 神官에서 신을 받들어 모시는 국가적 제전을 주관하는 존재였으나, 법흥왕 이후에 화랑으로 개편?창설되면서 신을 받드는 임무 외에 도의로써 인격을 연마하여 국정을 보좌하고 나라를 수호하는 충신들과 장졸들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 때 仙徒 곧 화랑도들이 모신 신격은 명산대천의 聖所에 모셔져 있는 각종 호국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화랑 처용이 東海龍子로 설정된 것은 그가 신라의 호국신인 동해 용을 모시는 仙徒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동해 용이 미륵사찰을 창건해 주겠다는 왕의 약속에 그 덕을 찬양한 것은 화랑 세력과 미륵신앙의 긴밀한 관계이서 볼 때 더욱 심증이 간다. 즉, 화랑문화권에서는 미륵불이 현세의 화랑으로 환생하여 彌勒仙化가 되어 국가를 수호한다는 화랑 특유의 風月道的 미륵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풍월도 에서는 화랑을 미륵과 동일시하는(화랑인 미시랑을 미륵선화라 하고, 김유신의 화랑집단을 龍華香徒라 하여 미륵과 동일시 하며, 에서 風月主(화랑의 우두머리)를 ‘미륵좌주’로 호칭한 사례가 그것임) 독특한 미륵신앙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화랑 처용랑이 동해 용 子로 설정되고 그 동해 용이 화랑의 사찰인 미륵사찰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