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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보고 역사일기
    나는 반역자가 아니다,이 시대의 영웅이다.846년 3월 13일오랜만에 일기를 써본다.옆에서 딸아이가 울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너무 슬프다.나는 오늘처럼 나의 출신 성분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아니다, 그것보다도 나를 시기하는 자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성왕이 나의 딸을 둘째왕비로 간택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늘 신라조정에서 내 출신 성분의 미미함을 이유로 이를 받아 들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시기하는 자들이 나를 몰아내려고 하는 핑계일 뿐인 것 같다. 나의 출신 성분보다도 점점 커가는 나의 세력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내 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참으로 원통하고, 분하다. 내가 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았던가...!!30여년전.. 나는 그 때는 회상해본다. 나는 나의 절친한 친구 정년과 함께 당에서 무령군에 입대하여 영특한 성품과 뛰어난 무예로 군사 5천명을 거느릴 수 있는 ‘무령군중소장’까지 올랐었다. 너무 기뻤다. 이민족으로는 예외적인 것이었고, 젊은 나이에 군사 5천명을 거느리며 그런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더 기뻤고, 앞으로 다가올 고되고 힘들 일을 상상도 못한 채 그저 행복했다.내가 ‘무령군중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나의 동포들이 당나라의 해적선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서 함부로 대해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격분하였다. 당시 이런 노예무역이 당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나라의 그 높은 관직을 버리고 이런 노비매매를 근절시키고자 나의 나라 신라로 돌아온 것이었다. 신라로 돌아올 당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때만 하더라도 신라로 돌아와 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 삼국간의 무역을 모두 장악해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내가 신라로 돌아오던 당시 흥덕왕이 중국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서 장사로 번 큰 돈으로 그림 몇 점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신라로 돌아와 나는 이러한 노비매매의 실태를 흥덕왕에게 보고하고, 이 당시 1만명의 병력을 모아 나의 고향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할 것을 건의하였다. 1만명이라는 많은 병력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 완도지방에 나의 세력기반을 구축해나간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그 많은 병력과 청해진의 설치를 허락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에서부터 가져왔던 그림들은 흥덕왕께 선물로 바쳐서 흥덕왕이 나를 더욱 신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청해진대사’로 관직을 부여받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활동을 펼쳐 해적과 노예상들을 모두 소탕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포부를 이루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여러군데 난립해 있던 군수 해상집단을 평정하고, 중국과 일본내의 신라인과 고구려, 백제 유민들을 규합하여 신라, 당, 일본의 삼각해상무역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자위적인 군사력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되어 동북아시아의 해상교통권과 무역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내 포부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좋았는데...더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그 뒤 나는 원치 않았지만 신라의 중앙정치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흥덕왕이 돌아가시고, 신라의 무열왕계가 몰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에서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졌고, 내분이 일어났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때에 희강왕이 즉위하였다. 그 당시 김우징이라는 자가 나에게 의지해왔다. 그 후 희강왕은 피살당하고, 정치 혼란이 심해졌다. 내가 살아왔던 날 중에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 때, 나에게 의지하던 김우징이 '내가 왕이 되면 그대의 딸과 나의 아들을 결혼 시키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약속을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 일로 인해 내 인생이 이렇게 엉망으로 꼬여버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넘어가 나의 부하인 염장을 앞세워 달벌에서 민애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민애왕을 죽인 뒤 김우징을 왕위에 앉혔다. 그 사람이 신문왕이 되었다. 하지만 신문왕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즉위한 후, 돌아가시고, 아들 문성왕이 즉위했다. 그런데 문성왕이 즉위한 뒤 시중의 딸과 결혼하면서 나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나는 너무 분했다. 나를 미끼로 이용해 왕이 된 후, 약속을 저버리다니... 그러나 곧바로 문성왕이 나의 딸을 둘째 왕비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이로 인해 그 분함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조정의 중앙귀족들이 오늘 나의 신분이 해도인이고, 나의 딸이 천민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하는 것이다. 결국 골품제도를 이유로 내 딸의 혼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인가...골품제도...나라를 이렇게 어지럽게 한 그 골품제도... 나는 너무 분하다. 나는 그저 이용만 당한 것인가... 중앙귀족들은 정령 나의 신분의 미미함을 이유로 내 딸이 왕비가 되는 것을 반대한 것인가...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막강한 군사력과 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나의 이러한 부와 권력을 시기하고 나의 세력이 더 커져가는 것을 두려워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인문/어학| 2006.11.14| 4페이지| 1,000원| 조회(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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