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21세기의 우리는 IT산업, 정보화 사회, 기술혁신, 문화, 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용어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지난 세기에는 생소하였던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휴대폰과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인터넷 망을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와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들 말한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유형의 제품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유?무형의 콘텐츠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급격히 일어나는 기술진보에 의해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에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해야 한다는 지적들을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반복해서 듣고 있다.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의 짧은 기간동안 빠른 속도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진행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 우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적 성장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계를 드러냈고,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삼성이라는 기업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기술 등으로 대변되는 첨단기술의 개발이 그러한 새로운 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로 주목 받고 있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며 새로이 개척된 분야의 첨단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분야들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IT?BT기술의 개발 외에도 그동안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와 일본 문화에 종속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문화산업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의 약진이 돋보이고 있다. ‘한류’현상이 아시아 각국에서 나타나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연예인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가 경제적인 부가가치의 창출로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화산업의 아이템들은 산업화 시대의 상품들과는 달리 자원의 제약을 적게 받는다. 또한 정보화 시대의 상품들이 그러하듯 커다란 네트워크 효과를 가지고 있어, 선도자의 이익이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일정수준 이상의 물질적 풍요가 일반화 되면서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문화산업의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산업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아래에서는 2005년 9월 발표된 문화관광부의 ‘2005 음악산업 백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2.들어가서2.1. 2004년 국내 음악산업 현황백서에 나타난 2004년 음악사업 현황을 보면 전체적인 매출규모는 200년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음악산업의 약진이 돋보인다.구분2002년2003년2004년음악산업2,861억원1,833억원1,338억원디지털 음악산업1,345억원1,850억원2,014억원합계4,206억원3,683억원3,352억원음반판매 누적수와 역시 국내 음반시장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음반제작사의 지속적으로 늘어 전반적으로 소규모 영세사업자의 난립 및 음반시장의 경쟁구조 심화 및 수익구조의 악화를 예상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음반 유통사의 수가 2000년 도매상 32개 소매상 5,800개에서 2004년 도매상 5개 소매상 350개로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보아 음악산업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오프라인 중심의 음악산업이 빠른 쇠퇴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음악시자의 개편은 디지털 음악시장의 현황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구분2002년2003년2004년벨소리 / 통화연결음1,291억원1,767억원1,840억원스트리밍 / 다운로드39억원45억원173억원기타15억원39억원-합계1345억원1,850억원2,014억원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음악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는 복제와 공유가 불가능한 모바일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구분04년 10월04년 11월04년 12월05년 1월05년 2월05년 3월무료사이트1,150,974명1,125,527명1,037,251명698,919명652,583명663,814명유로사이트408,211명523,098명597,018명670,336명653,224명688,011명*무료사이트 : 벅스*유로사이트 : 벅스를 제외한 랭킹순위 상위 20개 사이트 + 포탈유료서비스무료사이트인 벅스 뮤직은 하루 방문자수가 최대 270만 명을 기록 했으나 2003년 7월 이후 감소세에 들어 유료화 이후인 올 4월에는 87만 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상위 20개 유료 온라인 음악 사이트 방문자는 2004년 10월 하루 40만 8천명에서 2005년 4월에는 81만 명으로 10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이처럼 디지털 음악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유료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유료화는 수익성 향상으로 디지털 음악 시장에의 신규진입자를 늘리는 결과를 낳아 기존의 벅스뮤직, Max MP3, 쥬크온과 같은 음악 전문 포탈사이트 외에도, 3대 이동통신사의 멜론(SKT), 뮤직온(LGT), 도시락(KTF)과 같은 서비스와 기존 거대 포탈사이트인 NHN의 네이버뮤직, 다음의 52Street, 야후의 비트박스 등과 같은 서비스가 새로이 등장했으며, 휴대폰 생산업체인 애니콜과 P&C와 같은 기업들 역시 온라인상으로 음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음악시장 진출을 음악시장의 경쟁구도와 수익모델 창출의 양상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2.2. 음악상품 소비자 인식 및 소비자 행태 파악백서에 나타난 음악시장의 소비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행태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자. 이 설문조사의 대상은 조사기간 전달에 음반 등을 구매한 적이 있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월평균 음악 감상시간은 15~30시간이 36.6%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61~120시간이 11.1% 121시간 이상도 약 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음악 감상 시간은 저 연령층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으며 직업별로는 학생이 학생가운데에서도 고등학생의 음악감상 시간이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음악감상 시간의 분포는 음악을 접하는 매체와 소비자와의 접근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음반시장을 주도하는 소비자 층이 10대 청소년층이라는 사실과도 일치한다.음악을 감상하는 매체에 대한 조사결과구분TV라디오CDMP3인터넷MD케이블비율24.6%18.5%16.1%15.6%10.3%8.6%4.4%고연령층 일수록 TV와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며 저연령층일 수록 MP3와 인터넷을 통한 음악 감상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향후 음악 시장은 보다 더 인터넷과 MP3위주의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어 갈 것임을 예측하여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음반시장의 현황을 보면 디지털 음악산업 중심으로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무료 다운로드와 복제가 불가능한 모바일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소비자의 음원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설문결과 알 수 있었다. 앞선 설문의 대상이 된 소비자들의 무료 다운로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70% 가량이 무료다운로드가 가능하다고 답했으며, 이러한 비중은 저연령층으로 갈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 역시 무료다운로드의 수단이 되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사용에 대한 연령별 접근도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무료다운로드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심각한 편이라 답한 소비자가 60%에 달했다.구분매우 심각심각한 편별로 심각하지 않음전혀 심각하지 않음잘모름비율9.3%51.9%22.4%3.2%13.2%이러한 비율역시 저연령층으로 갈수록 높았는데, 이는 무료다운로드 등 저작권침해 행위가 인터넷을 사용할줄 아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3.끝맺으며3.1전망과 제언이상에서 살펴본 음반시장의 현황을 요약해 보면 음반시장은 성장이 둔화되는 추세에 있으나, 이러한 매출부진은 음반시장이 디지털과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오프라인 음반 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음악시장 내부에서는 그동안의 성장은 복제와 무료다운로드가 불가능한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며, 이는 소비자의 무료다운로드 행태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는 이율배반적인 데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음반시장의 전망과 성장전략은 비교적 예상하기 쉬워 보인다. 음악시장은 디지털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은 음원 등 지적 창작물들에 대한 저작권 보호 장치가 분명하게 마련된 바탕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저작권 보호 장치가 소비자의 사용할 권리를 크게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역시 필요하다. 이는 얼마 전 마련된 음원의 저작권에 대한 보호방침이 법률로 정해지면서 발생했던 네티즌들의 항의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네티즌들은 많은 불편으로 겪었으며, 온라인상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행위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위축은 분명 온라인 음악시장 전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저작권보호의 분명한 기준을 확립하되 이는 소비자들이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이고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 한편 저작권이 확실히 보호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음원 소유자 및 음악시장의 생산자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이 보호되는 가운데 소비자가 편리하고 자유롭게 음악시장의 상품을 소비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온라인상의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모델의 창출이 절실하다. 디지털 음악시장에는 기존의 음악 포탈사이트 외에도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거대 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 업체들의 진출이 공정한 경쟁과 고민을 통해 디지털음악시장의 새로운 수익 모델의 창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역사 앞에서’를 읽고강의 첫 시간에 “한국 전쟁을 그저 객관적인 ‘큰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경험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민중에게 한국 전쟁은 무엇 이었나’를 비판적으로 인식해 보자”는 보고서의 취지를 처음 들었을 때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구술사라는 보고서의 형식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보고서를 통해 과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를 수업을 통해 김산의 아리랑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발표를 맡아 아리랑을 읽으면서 이 보고서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은 사라지게 되었다. 아리랑을 읽은 뒤 나는 한편의 영화를 본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혁명과 독립운동에 대해 수업과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김산이라는 개인의 삶을 통해 바라본 혁명과 독립운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말 그대로 그 속에는 개인의 삶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혁명의 중심에 서 있었던 혁명가의 삶을 그린 아리랑과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는 또 다른 것이었다. 김산은 말 그대로 혁명가 이자 ‘영웅’이라 할 수 있었지만 전쟁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리랑이 안타까운 결말을 가진 한편의 서사시였다면 역사 앞에서는 해방과 한국 전쟁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좁지만 진솔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한다.그의 일기는 해방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시작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심하고 생활 또한 궁핍하였을 그 시기에 지식인으로서 가졌을 고뇌가 드러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신탁통치 결정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분개하며,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에 대하여 걱정하는 김성칠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버려 책 속에서 멈춰있는 사실들이 당시의 그에게는 하루하루의 현실이자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일고 역사를 접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수많은 인간의 삶이 있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단순한 가치판단을 내리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겸손하고 진지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이제 이 책을 읽으며 가졌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저자의 일기는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기록이었고, 그 당시의 삶은 엄청난 역사적 변화의 시기 속에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역사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서있는 지식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역사를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되도록이면 소용돌이의 밖에 서서 객체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도 서울에 머무르며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시키고 국군이 다시 이를 수복하는 동안 이를 지켜본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인공기를 걸고 벽보를 붙이며 이들을 환영하지만 그는 가만히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다. 식민지시기를 거치며 식민지배를 받았던 많은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서 많은 지식인과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의 이런 행동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인식은 한 단계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그는 이미 공산주의의 폐쇄성과 독단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민군의 점령기 동안은 집안에 머무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그의 인식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오늘의 평가와 가깝다고 본다. 사회주의가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으로서 각광받기는 했지만 그 나름의 중요한 문제점 역시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사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정확한 현실 인식만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옳은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실천하지 않는 다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서 말한 혁명기 속의 혁명가의 삶과 전쟁 속에 있는 지식인의 상황은 다를 것이다. 근대국가 간의 전쟁 속에서 군인이나 정치가도 아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그가 처한 역설적 상황은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그의 눈에는 한 민족간의 전쟁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어제 본 국군과 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다르다면 그들의 복장이 약간 이색질 뿐, 왜 그 하나만이 우리 편이고 그 하나는 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이냐…서로 얼싸안고 형이야 아우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그들이 오늘날 누굴 위하여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이냐. 나는 길바닥에 털퍽 주저앉아서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래야 울 수 없는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어 있는 게 아니냐."식민지배기에는 적과 우리 편과의 구분이 객관적으로 명확했다. 식민 지배를 당하는 민중에 반하는 제국주의와 친일파 등이 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시기 동안에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특히 저자와 같이 비판적 이긴 하지만 공산주의도 하나의 가능한 대안으로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면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어느 하나가 옳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신념의 실천 방법이 과연 전쟁 밖에 없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한국 전쟁의 기원과 전개 그리고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존재하고 학생인 우리들 역시 수업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국전쟁에 대해 가지게 된 의문은 이 전쟁이 과연 정당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은 한국전쟁이 북침이었는가 남침이었는가 하는 차원과는 또 다른 것이다.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과 전쟁이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전쟁이 가져오게 될 자명한 피해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필연적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가지게 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일 것이다. 전쟁의 당위성이 사회주의라는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한 민중의 해방이든 공산주의에 저항하여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든 간에 전쟁이 일반 민중에게 남긴 상처는 보상하지 못한다. 몇 해 전 크게 흥행하였던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 전쟁 발발 이전에 주인공 두 형제 가운데 한명은 학생이었고 또 한명은 멋진 수제화를 만드는 것이 꿈인 구두닦이이다. 해방이후의 혼란한 사회였지만 그 속에는 이들처럼 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저자의 일기 속에도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학교에 나가 보았더니, 학교에서는 학교에 과동할 준비가 없고 또 선생들의 급료도 지불되지 않으므로 아동 매명 하 장작 값 20원과 선생양식 한 말씩을 모으겠다하였다.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면민 전체를 통해서 호세등급에 좇아서 교육비를 풀어서 중용하라고 제안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학부형 만에게 과대한 부담을 시키는 것이 불가하고, 그중에는 사실 그러한 부담을 할 만한 실력이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러면 그 결과 교육에서의 탈락자가 많이 생길 것이니, 교육을 진흥 보급시켜야겠다는 본지에도 어긋나고 또 갹금도 소정의 액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결국은 전곡을 낸다 아니 낸다 하는 문제로 교육에 이사한 피란이 생일 것이니 통히 재미없는 노릇이다.”
서론제 1부 신뢰의 이념 : 문화가 경제사회에 미치는 힘‘역사의 종말’로 널리 알려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책에서도 역시 역사의 종착지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그의 의견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그의 시각은 현재 소위 국제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몇 국가 위주의 강대국의 사회모습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여 나간다. 논의가 되는 사회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이념과 사회체제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회이다.다양하고 국제화되어 가는 세계질서 속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경제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논의는 전개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말하는 사회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이므로 경제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류와 양상이 주요한 논지를 이루고 있다.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에 동의를 하며, 저자 역시 시장중심의 경제질서를 부인하지 않는 철저한 자본주의자의 입장에 서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기적이며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하며 시장 질서를 형성해 가는 이성적 존재라는 경제적 인간관에 동의한다. 하지만 ‘20%의 해결책’이란 이름으로 현대 주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협소한 사고를 지적한다. 즉, 인간이 항상 효율성을 추구하며 최적의 선택만을 하는 것인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때로는 경제적인 비합리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예로 들면서 경제적 인간관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을 지적한다.그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경제 역시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답을 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의 개념은사회 구조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며, 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의미로서 물려받은 윤리적 관습(p.61)이다. 물론, 경제학의 논의에서 문화가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 하는 범주와 개념의 명확성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문화란 반이성적이고 사회적 관습의 양식으로 전승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각각의 문화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고 문화에 따르는 관습에 주목한다. 그리고제 사회에 있어서는 가족의 지나친 영세성과 혈연 중심이 경제 발전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각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바탕을 무시하고, 가정의 경제 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단위가 너무 강하여도 더 큰 기업망으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단점이 있고, 너무 약하여도 사회화의 기본적인 임무 수행이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제 2부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고 자발적 결사체가 미약한 네 개의 사회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이러한 가족 중심적인 사회의 논의는 중국으로부터 시작한다. 중국의 문화는 유교중심주의적이다. 그 중에서도 효(孝)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족이 중심이 되었고, 다른 어떠한 유교적 가치 , 예를 들어 충(忠)보다도 보다 상위의 개념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많은 전통왕조 속에서의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고, 국가의 무자비한 전횡에 적절한 사회보장제도가 없었으므로, 자연적으로 강력한 가족제도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족의 우선성은 기업조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전통적이고 계층적인 유교 사회에서 상인은 그리 존경받지 못하는 신분이었고, 이는 중국인의 상업, 즉 경제 활동에 대한 소극적인 성격을 나타내어 준다. 따라서 중국인 사회에서 기업이 영세적인 이유는 사실상 민간 부문의 기업이 가족에 의해 소유되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다. 중국 사회에서는 인척관계만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을 불신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가족중심으로 기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중국에서는 법인 형태의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 간의 자발적 사회성을 중심으로 기업이 확장되기는 어렵다. 또한 부계 중심적인 성향으로 인해 제 1세대에서 기업을 성공시키더라도 1세대의 죽음을 맞이하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창업주는 자신의 각 아들들에게 기업을 분배해주기를 원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기업은 보다 넓은 범위로의 확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모적으수 있는 융통성과 빠른 적응성을 지니고 발전해 왔다. 그리고 한가지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사회적 자본의 축척도가 가장 높은 이곳, 중부 이탈리아에서 소규모 가족 기업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관계망이 소규모 기업들로 하여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인과는 달리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토대로 이루어진다. 이는 소규모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발적인 사회적 친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강한 가족과 강한 자발적 결사체 사이에 필연적인 상호관계가 없다. 즉, 가족적 유대가 강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시민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지 않고 사업에 있어서는 뚜렷이 구별되는 형태를 띄게 된다. 이 ‘테르짜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일종의 대안적 위치로 성격 또한 이 양극단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이러한 이탈리아의 경제 구조는 중국과 문화적 역사적으로 상이한 면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 중심적이며, 비혈연관계에 기초한 조직이 미약하다.테르짜 이탈리아와 대만/홍콩 양측에서 기업은 영세성과 간단한 의사결정구조로 인해 급속하게 변화하는 고도로 분절적인 소비자 시장, 거대한 규모를 요하지 않는 공작 기계 같은 생산재 시장에 상당히 적합하다. (중략) 규모의 경제에 상응하는 것을 이룩하기 위해 관계망에 의존한다.(p.159)물론 이로 인해 보다 큰 세계적 규모의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제약이 있으며 이탈리아의 지역 역시 유교적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책 역시 유교적 사회의 해결책과 비슷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위의 두 나라와 같이 가족중심의 사회체제를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사회가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강한 국가의 체계 밑에서 민간부문이 전혀 역동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았고, 모험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유교적인 국가의 경제적 성격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프랑스에 있어서 가족의 의미는 강하거나 결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가족 사이의 여타 중간집단의 결여로 혈통, 대학 동창, 지역주의, 군대, 다수의 취미 클럽 ― 또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즉, 한국은 혈연을 떠나서는 비교적 신뢰도가 낮은 가족주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문화 속에서 한국정부의 개입으로 대기업을 만들어 냈다. 물론, 이러한 내부에는 빈부 격차의 심화, 중소기업의 약화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제 3 부 고도신뢰사회와 사회성의 도전제 3부에서는 앞의 저신뢰 사회와는 차별화 되는 고신뢰 사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일본, 독일, 미국은 ‘자발적 사회성’을 갖춘 ‘신뢰’의 사회이다. 신뢰는 경제에 있어 불필요한 불확실성에 대한 확인 작업등을 감소 시켜 줌으로써 경제 비용을 감소시킨다. 일본의 이러한 사회성은 봉건주의의 특성에 기인하고, 독일의 사회성은 길드라는 전통적인 조직에 기반 한다. 그리고 미국은 청교도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선 일본은 눈부신 성장에 있어서 많은 서양 사람들이 일본의 특징을 아시아적 특징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필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 기반적인 문화적 특성과는 달리 오히려 서방국가의 높은 신뢰의 사회와 유사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무수히 많은 소규모 가족기업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중국과 비슷하지만 이는 큰 회사와 계열관계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서로 협상하기 위해 상호 도덕적 책임을 강요하고 오히려 수직적으로 통합된 종속적 공급자로 보는 것이 옳다. 일본의 계열 관계망을 통해 작은 회사들이 큰 회사와 합작하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일본 경제에서 기술적이나 양적인 면에 있어서 대기업이 주로 지배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또한 일본은 경제발달에 있어 초기의 가족경영단계에서 빠르게 전문경영으로 대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일본의 가족의 형태가 중국의 사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따라서 자발적 사회성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중국의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 영향력은 훨씬 미약하다. 입양에 대한 열린 태도, 장자상속권에 있어서도 지적한다. 역사적 과정을 통한 독일의 거대기업의 등장을 살펴본 뒤 필자는 독일 경제의 특징들을 분석한다. 첫째, 기업의 중심에 금융기관이 위치한다는 점 둘째, 기업연합(카르텔)의 존재 셋째, '사회시장경제(Sozialmarktwirstchaft)' 개념의 한부분으로 규정된 ‘복합노사관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필자는 이른바 ‘임무가 없는 장교(Noncommissioned Officer)의 존재를 지적하며 독일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고도의 신뢰를 지적한다. 또한 필자는 베버 이후 등장한 관료화 등의 일련의 현상들에서 드러나는 제약의 증대는 경제에서의 자율성을 저하하며 이는 곧 신뢰의 저하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이른바 포드주의라 불리우는 대량생산체제와 함께 등장한 테일러주의는 노동에 대한 갖가지 제약의 증가를 가져와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경향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테일러주의의 등장으로 장인과 도제가 사라짐으로써 노동자들은 ’아주 중요한 것‘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테일러주의는 산업화의 필연적 귀결은 아니며 오히려 이는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 공장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며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호손의 실험 등에서 등장한 대안적 테일러주의가 체택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테일러주의를 위한 고도의 융통성 있는 신뢰관계에 대하여 언급한다. 또한 독일 경제에 대한 분석의 과정에서 필자는 도제제도를 언급한다. 도제제도의 역사적 영향 등으로 인해 독일의 노동력은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의 공동체적 경제체제는 성문화되어 있다는 단점으로 인해 경제의 성장기에는 유용하지만 경제침체기에는 도덕적 의무에 기반한 일본의 온정주의적 경제체제에 비하여 불리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지적한다. 따라서 독일의 경제가 미래의 발전을 위해 취해야할 선택은 경제의 공동체적 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제에 대다.
들어가며―마르크스주의의 현재적 의미와 방법론에 대한 논쟁마르크스가 엥겔스와 더불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사회주의 운동세력 내에서 자신의 맑시즘의 입지를 굳혀 나가던 시기와 마르크스의 사후 벌어진 수정주의 논쟁의 시기 그리고 레닌에 의해 러시아 혁명이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된 사회주의는 지난 한 세기의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사상적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구소련과 동구권을 몰락을 두고 일부에서는 사회주의 붕괴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사회주의는 우리의 주변에 여전히 살아있다. 오히려 사회주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역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일견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이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질 수 있다. 하지만 구소련과 동유럽 등지에서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맑시즘 전체를 대변한다 할 수는 없다. 역사상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던 구소련의 이데올로기는 러시아의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레닌에 의하여 선택되고 변형된 모습의 사회주의였다. 따라서 이러한 러시아 사회주의의 붕괴를 놓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이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겠다. 오늘날 사회주의에 관한 논의는 다소 변형된 모습으로 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전히 일하는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들은 계속되고 있으며,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대안적 이데올로기로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생명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과 이상향에 대한 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가 가지는 상징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와 여러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지적하고 저항하였던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여전히 시정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반되는 혁명을 통하여 수행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한 사회의 여건을 이용하여 점진적인 사회개혁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수행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르쿠제와 포퍼 간의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마르쿠제와 포퍼 간의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실현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담론에 대하여 고찰에 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논쟁은 단순히 사회주의이데올로기를 현실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써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대한 시각의 차이와 사회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사회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에 대한 시각의 차이까지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71년 독일의 TV 대담에서 벌어진 마르쿠제와 포퍼 사이의 논쟁의 요지를 간략히 살펴보자.들어가서―혁명과 점진적 사회개혁의 논리의 충돌마르쿠제의 사상마르쿠제(1898-1979)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가로서 고도산업사회에 있어 인간의 사상과 행동이 체제 안에 완전히 내재화하여 변혁력을 상실하였음을 예리하게 지적한 『일차원적 인간』이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마르쿠제는 현재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 속에 가려진 모순을 정확히 지적하여 낸다. 마르쿠제의 입장에서 현대의 경제적 생산력과 기술력은 이미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빈곤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도 남을 수 있는 수준에 까지 다다랐다고 지적한다. 또한 고도화된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육체적 노동에서 정신적 노동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고 있으며 자동화 등의 방법을 통하여 인간은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개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노동을 착취당하며 스스로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쿠제는 이의 원인으로서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지적하여 낸다. 현재의 기술력과 생산력의 수준에서는 이미 생존을 위한 경쟁은 불필요한 것이 되었으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통제를 통서 현대의 사회는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조직화되고 강화된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기성계층이 폭력 및 실정법적 권리, 그리고 이러한 폭력을 자기방어에 동원할 의무 등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p.107) 이러한 기성체제가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과 실정법 때문에 혁명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방법들은 필연적으로 '저항적 폭력'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에 의해 독점적으로 행사되는 전자의 폭력은 '억압의 폭력‘이며 저항의 과정에서 기성체제에 의해 폭력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으며 억압의 폭력에 대한 방어를 위해 필연적으로 행사될 수밖에 없는 후자의 폭력은 '해방의 폭력'이다. 이처럼 마르쿠제는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를 “유용한 생산력이 착취와 억압의 재생산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소위 자유세계라고 불리는 것이 자기의 잉여분을 보호하기 위해 군부와 경찰의 독재체제로 무장하고 있다”(p.112)고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사회에서 의식에의 통제의 결과 억압된 '의식의 해방'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인류의 하나로서 살아가고, 노동하며 행복해지고 싶다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체제와 연합하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p.113)마르쿠제의 시각에서 포퍼에 대하여 비판하기칼 포퍼(1902-1994)는 사회사상가이자 과학사상가로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의 저서인 『열린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열린사회’에 대한 논의와 50년대 중반 논리실증주의의 지도적인 철학자인 루돌프 카르납과의 논쟁과정에서 제시한 진리의 척도로서의 ‘반증가능성’에 대한 논의로서 유명하다. 이상적인 사회로서 그가 주장하는 열린사회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열린사회란 바로 비판에 대하여 열려있는 사회를 말한다. 포퍼는 인간의 이성의 절대성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의 불완전성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보다 바람직한 형태의 사회강점으로서 “민주 정치에서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p.145)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마르쿠제의 시각에서 본다면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포퍼는 점진적인 사회 개혁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종류의 폭력도 부정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사회문제는 본질적으로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며 수정될 수 있는 것이며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폭력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처럼 폭력을 부정하는 근거로서의 합리주의에 대하여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은 완비된 논증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성적 태도에 대한 비합리적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는 이를 가리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앙이라 표현한다.(p.155) 그러나 마르쿠제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민주적인 원리에 의하여 수립된 권력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통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하여 수립된 잉여분을 바탕으로 피착취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사회일 뿐이다. 또한 현 사회체제가 유형, 무형의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마르쿠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저지될 것이 분명하다. 마르쿠제는 기득권 세력의 이러한 반동성을 ‘억압의 폭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성세력들은 경찰권이나 군대와 같은 제도적 폭력이나 실정법 등의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권력에 도전하거나 저항하는 세력들을 탄압한다. 마르쿠제는 저항과 방어의 의미에서 혁명의 과정에서의 폭력을 정당화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포퍼의 주장은 역사적 사명에서 한걸음 물러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왜곡된 물질적 그리고 의식적 풍요 속에 안주하며 사회의 변혁에 관한 환상만을 꿈꾸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마르쿠제가 강조하는 학생운동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한 강조와도 상충되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만적인 억압있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포퍼의 시각은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의 건설과 계획은 불가능하다는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쿠제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는 역사적인 필연성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점진적인 개혁과 관련하여 그러한 해악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과 집단이 있으며 이들이 그러한 점진적인 개혁 노력에 교묘하게 대응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마르쿠제의 현실사회에 대한 인식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사회는 기성세력의 권력에 반하는 어떠한 저항도 용인되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점진적인 개혁이란 기득권 세력의 호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기두 사람의 논의의 핵심은 “서구 민주주의 사회 및 궁극적으로는 당연히 이 지구상의 모든 사회에 좀더 많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좀더 확대된 인간성을 확보하는 일”이다.(p.61)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두 사람의 주장의 현격한 차이는 현실사회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들이 느끼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만족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시각에서 현실사회는 근본적으로 부정되고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양에서 질로의 변화라 포현하였다. 이는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은 기존의 사회를 수정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동력이 되는 사회구성원의 욕구자체까지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단절과 변화를 의미한다.) 반면에 포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비판에 대하여 열려있다는 점에서 역사상의 어떤 사회보다도 우월하며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포퍼는 현재의 사회가 완전하다 가정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수정과 그에 따른 발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방법론과 시각의 차이는 사회 현실에 대한.
1. 들어가며“20세기 후반의 세계시스템의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패권이 쇠퇴했고 또 냉전이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나까 아끼히꼬는 그의 저서 『‘새로운 중세’』에서 20세기 후반의 국제정세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군사?경제적 측면에서의 민감성과 취약성의 증가라는 측면으로써 상호의존의 증대를 지적한다. 필자는 넓게는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의 국제관계에 대한 논의까지를 포함하여 20세기 국제관계의 커다란 흐름이라 할 수 있는 냉전과 미국의 패권의 성립과 소멸을 살펴보고 그러한 과정가운데에서도 국가 간 비국가 주체간의 상호의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따라서 20세기 후반 이후의 국제정세는 상호의존이 국제관계의 핵심이 되는 이른바 ‘새로운 중세’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세계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필자는 16세기 전후의 서유럽에서 이른 바 중세라고 불리 우는 시기의 국제정세가 가지는 특성과 오늘날의 국제관계가 가지는 특성의 유사성을 들어 20세기 후반 이후의 세계가 이른바 ‘새로운 중세’가 될 것이라 지적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의 논의의 바탕이 된 20세기 후반까지의 국제관계의 흐름을 살펴보고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시작에 걸쳐있는 오늘날의 국제관계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서 21세기에 대한 필자의 전망의 타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2. 들어가서2. 1. 20세기 후반까지의 국제정세20세기 전반의 세계는 이른바 이상주의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세계-정확히 말하자면 서유럽과 미국 등이 포함되는 서구권-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가 간의 상호의존의 결과 세계평화가 도래하리라는 믿음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이상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W.윌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세계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상호의존의 증대와 기술의 발달로 곧 실현되리라 던 평화에 대한 청사진이 수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차 대전후의 국제관계학의 주류는 이호 대립과 투쟁의 관계이며 국제관계는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그런 것이 된다.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 사이에 협력이 일어나기는 어려우며 설사 협력을 통하여 당사국들의 이익이 증대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파레토 효율이 달성되기는 어렵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현실주의의 입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정확히 설명해 내고 있는 것 같다.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의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들은 대립과 반목의 양상을 보여왔으며 국가 간의 협력과 상호이익의 증대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국가 간의 협력은 상호이익의 증대를 위한 협력이라기보다는 동?서 양진영간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협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궁극적인 목적이 평화적인 것이 아니라면 각 진영의 내부에서 이루어진 정책의 공조나 협조는 상호의존의 패턴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냉전구도의 한 축을 이루던 공산권이 쇠퇴하고 소련마저 붕괴하여 버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힘을 모아 경쟁할 공동의 적을 상실하여 버리고 말았으며 냉전이 종식되기 이전부터 미국의 패권의 쇠퇴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서 국가 간의 협력과 공조의 구심점은 상실되어 버렸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전종식과 미국의 패권쇠퇴 이후의 세계는 냉전의 과정에서 보여왔던 대립의 구도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미국은 패권의 상실 이후에도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지만 냉전시기의 소련과 같은 강력한 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간의 관계를 살펴보아도 20세기 후반 이후의 국제정세는 자유진영 사이에서의 협력과정이 전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논의처럼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양극의 대립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던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패권이 상실된 이후에도 혼란은 생기지 않았으며 국가 간의 교류와 평화의 가능성은 더욱더 통하여 국제관계가 과연 필자의 주장처럼 상호의존의 증대의 결과 「‘새로운 중세’」로 나아갈 것인지 혹은 헌팅턴 등의 주장처럼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대한 새로운 적의 출현으로 다시금 대결과 대립의 양상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2. 2. 오늘날의 국제관계의 특징2. 2. 1. 국가중심성의 쇠퇴우선 근대국제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가중심성이 급속한 해체의 과정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의 국제관계는 주로 국가간의 관계였으며 국제연합 등의 레짐과 같은 비국가 주체가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력이나 중요성은 국가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 이후 국제연합 등의 레짐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증가되었다. 그 수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증가의 추세에 있으며 개별 국가에 미치는 구속력 역시 크게 증대되었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증대함에 따라 비록 가입국이 아닌 국가들도 레짐의 합의에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레짐의 영향력은 레짐을 구성하고 지지하는 패권국으로부터 나온다는 패권론에 대한 반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에 있어서는 자국의 이익을 주장할 수 없었던 제3세계 국가들이 UN회의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초국가적인 국제기구의 영향력의 증대는 개별 영역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러한 국가정책의 실효성 감소와 한계의 증가는 결국 국가주권의 약화와 나아가 국가의 해체까지 일어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국가중심성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비국가주체로서 다국적 기업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등의 기업은 이미 모국인 미국의 이익과 의사와는 별개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 진출하여 있으며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GM과 같은 거대기업의 매출은 이미 어지간한 국가를 만들어 진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의 이익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충돌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언제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여러 NGO단체들은 국내적으로 국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사와는 별개로 국제적인 연대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그린피스와 같은 NGO단체들의 활동과 영향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처럼 레짐 등의 국제기구의 권한과 영향력의 강화 국경을 초월한 다국적 기업의 존재 그리고 다양한 NGO단체 등은 더 이상 개별국가의 정책결정이 대내적으로만 국한되는 것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개별국가의 정책결정과 행동은 국제적인 관계와 흐름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국가의 중심성은 이미 상당히 약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중심성의 약화의 이면에는 비국가 주체간의 상호의존의 증대가 있다는 사실 역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거의 유일한 행위의 주체로서 국가를 상정한 현실주의의 논의는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2. 2. 2.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의 증대또 하나 20세기 후반 이후의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원동력으로서 군사력과 같은 high politics 영역이 가지는 중요성이 감소되었다. 환경문제나 다양한 문화교류와 같은 low politics 영역이 가지는 중요성의 증대도 지적할 만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영역이 가지는 중요성의 증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 종식 이전의 국제관계는 현실주의의 분석처럼 high politics 영역에서의 경쟁이 국제관계의 중심을 이루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관계는 미?소 양국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low politics 영역이 가지는 중요성은 무시되고 있었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유럽이하는 과정에서 경제영역의 생산성이 급속히 증가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양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는 더 이상 군사력 위주의 경쟁에만 주력할 수는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국력의 지표로서 여전히 군사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경제력 역시 군사력 못지 않은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국가 간의 경쟁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군비경쟁보다는 경제적인 대외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기술경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산력과 경제규모의 폭발적인 증가의 이면에는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대가 있었다. 이러한 경제분야의 발전은 각 국의 비교우위에 대한 특화를 논리로 하는 자유무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날의 개별국가들은 대외교류가 없이는 성장할 수도, 나아가 존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거대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고 경제구조의 성격이 정보화와 기술위주의 경쟁으로 바뀌어 가는 오늘날 대외교류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경제분야의 중요성과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의 증대는 이해 당사국에 대한 배타적인 군사력의 행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할 수 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 군사력의 행사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세계 시장의 혼란과 붕괴를 가져올 것이므로 커다란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 간의 분쟁의 가능성은 상당히 작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의 증대는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의 독자적인 영향력의 행사를 그만큼 어렵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제정책은 국제적인 경제정책의 흐름의 범위 안에서 책정되어야 한다. 자유무역을 저해하고 자국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은 보복의 우려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로 자유무역의 관행에 어긋나는 성격을 가진 정책을 집행한 국가를 WTO에 제소하는 사례를 심심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제영역의 중요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