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들은 말을 시작하게 되면 울기를 덜 한다. 이 진보는 당연한 것이다. 울음을 대신 말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언어를 너무 일찍부터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일찍 강요해 봤자 아이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의미만 이해할 뿐, 그 이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적은 언어를 가지고 짜임새 있게 결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시사점: 이 단계에서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울음 대신 말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무작정 울어대기보다는 말을 통해 표현함이 자기에게 훨씬 유리함도 알게 된다. 부모는 어린아이가 옹알이로 한 마디 내뱉자마자 그 것이 모든 언어를 할 수 있다는 마냥 기뻐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그들은 어른이 자기에게 가르쳐주는 단어를 기꺼이 따라해 보곤 한다. 하지만 말을 빨리 깨우치거나 늦게 깨우치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기상의 차이일 뿐 결국 언젠가 다 습득하게 되어 타인과 대화하게 된다. 물론 언어의 습득 속도가 이 시기만큼 빠른 때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에 어린아이가 일찍부터 그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경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강요받는 건 사실상, 그 나이 때의 적당한 표현 방법을 잃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어린이를 행복하도록 기르는 것과 버릇없이 기르는 것을 혼동한다면, 우선 그들에게 그 구별 방법부터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시사점: 시사하는 바가 많은 구절이다. 底출산 국가라는 현실에 맞추기나 한 듯 1가구당 한두 명의 자식만 낳아 기르게 되면서 정말 ‘금쪽같은 내 새끼’가 생겨나고 있다. 공공장소, 조그마한 음식점에서조차 버릇없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모들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 만큼 귀하디귀한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면서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안이라 믿고 있다. 너무 무책임한 행복교육법이다. 그 아이가 나이가 들어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될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뒷부분에 소유의 관념을 어린아이에게 주어야 할 최초의 관념이라 결론지었는데 나는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바탕이자, 앞서 말한 뭐든지 해줌으로써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부모에게 가르쳐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었다. 』『 그에게 주어야 할 최초의 관념은 자유의 관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유의 관념이다. 그 리고 어린이로 하여금 이 관념을 갖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그에게 그 자신의 것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시사점: 루소는 2단계인 아동기에는 전적으로 어린이가 경험을 통해 습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소유에 관한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경험을 통해 소유의 개념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처럼 농사일을 하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사실 자신이 경험하여 소유하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에 노동만큼 좋은 것도 없을뿐더러 아동이 전원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을 전제로 하면 그 노동은 농사일이 최적이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그 결과로 야채류가 싹이 나서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는 노동의 신성함을 알게 된다. 싹이 돋는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함을 물론일 것이다. 아이가 이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그의 시간과 수고가 바로 자신에게 그 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소유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남이 주는 것을 그냥 받거나 뜻하게 얻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진심으로 바랬을 때 그것은 진정 내 소유가 된다. 어린 시절에 소유의 개념이 잘 정립되지 못하면 커갈수록 욕심과 탐욕에 물들어 남의 것까지 탐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루소가 제시한 이러한 소유의 개념 제시는 이 시기의 아동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 배워야 할 부분이라 본다. 』『 어린이가 원하는 바를 말로써 요구할 수 있는데도 자기의 요구 사항을 한층 더 빨리 얻어내기 위해서, 또는 어른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울음으로 요구할 때는 그것을 단호히 거습관화’되는 것이다. 그 순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부끄러움으로 아이에게 이러한 잘못된 습관을 심어주는 것은 아이보다 어른의 책임이 더 크다. 루소의 주장처럼 울음으로 요구할 때는 그것을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거절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침울해지고 요구조차 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이에 루소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고 그대들에게 아무런 거부 의사가 없을 경우라면, 어린이들이 의사표시를 하자마자 당장에 그것을 들어줄 것이다. 덮어놓고 안 된다는 소리만 남발하지 말라. 그러나 일단 거부한 일은 번복하지 말라.‘일단 거부한 일은 번복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들은 변덕쟁이라 시시각각으로 바뀌곤 한다. 하지만 그런 변덕쟁이 꼬마를 만드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을 빈번히 번복한다. 예를 들어 한 부모가 아이가 과자를 너무 좋아해 체중도 늘고 이가 상할 것도 걱정이 되어 당분간 단 음식을 자제하도록 충고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승진하여 기쁜 소식을 안고 집으로 갈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서 아이에게 선심 쓰듯 말한다. ‘오늘은 먹어도 돼.’ 아이가 ‘오늘은’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부모와 자식 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교사는 일정한 규칙을 정하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체벌 규칙으로 지각은 5대의 매로 정해놓았다고 하자. 하지만 학생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체벌을 가중한다든지 생전 그러지 않은 학생에게는 ‘오늘 하루 사정이 있었겠지’하며 선처를 베푼다든지 하며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부한 일을 번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 자신의 잣대를 세우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신중한 인간이여, 오래도록 자연을 탐구하라. 여러분의 제자에게 한 마디를 말하기 전에 그대의 제자를 충분히 관찰하라. 우선 먼저 그의 성격의 새싹이 그 모습을 드러내도록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 아동에 대한 어른의 성실한 관찰이 요구된다. 이러한 끊임없는 관찰만이 아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를 토대로 바른 교육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한 관찰은 훨씬 먼 길을 걷게 되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유익하게 사용된 시간이 되어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다. 이에 루소는 이런 구절을 남겼다.▶ 여기서 나는 감히 교육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유익한 규칙을 얘기하려 한다. 그것은 시간을 절약하라는 말이 아니고 ,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라는 말이다. 』『 초기의 교육은 완전히 소극적이어야 한다.시사·비판점: 너무나 엄격한 속박으로 행해지던 그 시대 전통적 교육제도에서 아동들을 구제하고자 내 건 주장이었으리라 본다. 또한 그는 자연적 계발에 방해되는 교육을 배제시키는 것이 소극적 교육의 진의이며 인간이란 본래 선한 존재여서 내적 요구의 도덕성에 의해 인간성이 계발된다는 전제 또한 깔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소극적이란 것의 범위가 어디까지이냐가 최대 관건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소극적 교육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피하고 학생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만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인간이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가장 적극적 형태의 교육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본다.하지만 어른의 키 반도 안 되는 아동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서너 개의 학원을 전전하며 왜곡된 적극적인 교육을 받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부모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교육이 왜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하니까 하는 식의 따라하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시기에 아동들이 많이 알고 많이 외우고 있다해서 그것이 곧 인생의 성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특수한 분야에서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북돋고자 하는 것 또한 아이와의 협상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완전히 소극적인 교육을 ‘자유방임의 교육’이라 이해하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런 의미에서의‘완전히편을 알게 만들라. 그가 자기 방의 창문을 깨뜨렸다고 하자. 바람이 밤낮 할 것 없이 불게 내버려 두라. 감기 걸릴 것을 걱정하지 말라. 왜냐하 면 바보가 되느니보다는 감기에 걸리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시사점: 결핍을 가난이라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조그마한 불편조차 아이가 느낄 수 없도록 그 나이에 맞지도 않는 화려하고 좋은 옷과 장난감으로 치장하고는 한다. 가난도 나쁜 것이 아닐뿐더러 그러한 물질적인 결핍은 오히려 역경이나 고통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 풍족하게 자란 아이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후덕한 인심을 자랑할 수 있지 모르나, 조그마한 고난 앞에 무릎 꿇기도 쉬울 것이다. 이는 어른이 되어서 배우면 늦으므로 아동기에서부터 훈련해야 한다. 더구나 자기가 자기 방의 창문을 깨뜨린 잘못으로 기인한 결과가 아니던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혼내기보다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을 이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편이 아니라면 기꺼이 결핍과 불편을 묶어 그에게 그것을 이겨내는 법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핍을 통해 만족을 배우고, 불편을 통해 안락을 배워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여러분들은 거짓말에 대해서 결코 야단치지 말아야 하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만 가지고 는 그들을 벌주지 말아야 한다. 대신 여러분들은 거짓말에서 생기는 모든 나쁜 결과, 이 를테면 진실을 말할 때도 믿지 않는다든지, 저지르지도 않은 나쁜 짓에 대해서 아무리 변 명을 해도 책망을 준다든지 하여 이런 결과가 거짓말을 했을 때 그들의 머릿속에 박히도 록 할 일이다.시사점: 루소는 벌에 의한 교육방법을 거부하였다. 아동은 도덕관념이 없으므로 도덕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 혼내기보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특성 중 하나가 앞에 일어날 일은 생각지 못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