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찌바 시는 하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8백km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빠라나 주의 수도이다. 브라질의 수도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유럽의 영향을 받은 꾸리찌바는 제 2차 세계대전후 꾸리찌바는 주요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입지적 우위(優位)때문에 새로운 경제활동을 위한 서비스산업의 중심지(中心地)가 되었다. 그 결과 급속한 인구증가와 도시환경 문제로 고통받는 다른 제3세계 도시와 유사(類似)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계획(計劃)된 파괴는 이에 저항(抵抗)하였던 자이메 레르네르의 출현으로 1962년부터 상황이 역전(逆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공만은 아니었다. 이는 시민을 생각하는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합심인 것이다.그 합심의 결과로 꾸리찌바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독창(獨創)적인 통합교통망의 개발이다. 60m폭의 광로 건설 대신에 그들은 세 개의 평형도로의 가능성을 제공(提?)하였다. 각 축은 ‘3중 도로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그중 역방향으로 운행하는 첫 번째와 세 번째 도로는 승용차 및 대중교통 버스를 위한 급행도로이다. 특이하게도 꾸리찌바는 지하철이 없고 버스들이 그 역할까지 대행(代行)하고 있었다. 버스를 컬러로 부호화해 급행버스와 지구간 버스,지선버스,완행버스로 색을 차별화(差別化) 했다.그리고 버스들간에 환승(換乘)을 할수 있는데 승객들은 터미널에 도착하여 환승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변화(變化)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에 전쟁(戰爭)을 하듯 뛰어 가는 사례는 물론이고 시간거리까지 단축(短縮)시키는 부수적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그리고 교통쪽 말고도 도시환경 개선(改善)을 위해 폐기물 관리정책을 펼치기도 하는데 일명“쓰레기 아닌 쓰레기”라는 프로그램은 재활용품과 교환(交換)한 전표를 농산물과 바꿔주기도 하고 학교 교재나 장난감으로 바꿔주는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그 외에도 꾸리찌바는 관료제에 물든 기존의 관행(慣行)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시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무원들의 노력도 볼 수 있다. 그들은 환경 친화적인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빌라 벨랴 주립공원과 같은 자연과 도시문화를 융합(融合)한 관광개발을 한다. 또한 "꾸리찌바에서 태어난 생명은 가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추진(推進)된 보건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보건과 교육에 힘쓰고 직업훈련, 일자리 알선등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학대와 폭력, 사회적 무관심등을 접수하고 상담해주는 전화 서비스등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사회복지도 뛰어나게 이행되어 가고 있다.그다음으로 브라질에스 가장 심각한 문제(問題) 가운데 하나인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실험을 들 수 있다. 연방정부의 주택기금이 운영 중이던 시기에 꾸리찌바 시는 자조주택 건설 프로그램으로 개발(開發)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실험이 실험주택마을과 주상복합주택단지이다. 이 중 한 아이디어는 ‘1996년 국제 베스트 실천상’에 선택된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그 밖에도 시민의 거리나 지혜의 등대도 그 노력(努力)의 산물이다.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개발도상국 도시들이 흔히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나아가 높은 삶의 질을 주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시 당국에 의해 개발된 창조적인 해결책 덕택으로 꾸리찌바 시는 국제 사회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꿈의 도시 꾸리찌바...예전 교양 과목때에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과학의 발달이냐 환경보존이냐 라는 주제의 토론시간이었던 거 같다)그때는 흘려버리고 지나간거 같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자세히 알게 되었고 참으로 많이 놀라고 부러워 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중 첫 번째는 교통 운행체재였다. 작년 7월부터 시행하던 버스운행제가 꾸리찌바의 교통체제랑 거의 똑같은 것이 우리나라가 꾸리찌바의 체제를 본받아 따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영버스나 지선버스같이 우리도 버스의 색을 구분해 다니고 환승제도까지 있지 않은가. 비록 그 곳은 추가 요금제는 없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 나라에도 터미널 같은 곳이 발달하여서 좀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시간을 이용해 문화공간같은 것을 건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또한 꾸리찌바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많은 것이 상당히 좋은 현상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정부에서 잘 한다 해도 주민들 스스로가 지키지 않고 그러한 사고를 가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될 계획들과 정책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자신들의 공간이라 생각하고 가꿔나가야 하는 것을 꾸리찌바 시민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어렸을때부터 주입식 교육이 아닌 체험으로 교육되고 있는 것은 전 세계가 배워 나가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쓰레기 아닌 쓰레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은 재활용품을 주워와 학교 교재나 장난감등으로 바꾸면서 학습해 나가는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자연 친환경적 도시를 만들면서 빼놓지 않고 신경을 쓰는 것이 바로 유산을 지켜나가는 거라는 것이 놀랐다. 선구의식으로 도시를 만들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옛것의 소중함을 아는 듯 했다. 다민족인 꾸리찌바가 그토록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모두들 자국의 문화유산과 역사 보존 태도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어찌보면 참으로 간단하다.‘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제목에서부터 강한 호기심을 유발시킨 것이다. 편지형식으로 쓰여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보는 독자에 대한 호칭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또 존대어로 이루어져있고 구수한 사투리 역시 문법의 구애를 받지 않고 쓰여있었던 것이 다른 책과 차별을 느끼게 만들었다.이 책의 저자가 전우익이라는 80세의 농사꾼 노인이라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번 더 놀라게 되지 않을까. 나 역시 놀랐었다. 물론 농사꾼이라는 직업이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비하 하는 의미로 놀란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사람들이 책을 펴내는 것이 극소수인만큼 흔한 일이 아니기에 놀란 것 뿐이다.책에서 이 저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대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 터득하고 자리를 매우면서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뒤늦게 나무에 반하여 사는 보람을 또 하나 알아버린 그이는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사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노인인 것이다.시종일관 농사에 관한 내용이 전부지만 그 속내는 깊다. 힘에 겨워 논농사는 그만두고 밭농사에 정성을 쏟는다. 농사를 지으며 생각하는 것이란 잡다한 푸념이 아닌 진정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이다.그가 말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무의 품위있고 멋있는 풍채를 지켜주는 것은 뿌리일진데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 뿌리보다는 확연이 들어나는 나무가 되기를 바란다고..나 자신조차 나의 뿌리는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벌써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또 그가 말했다. 미숙한 대중은 세상에 끌려가고 성숙한 민중은 세상을 바로잡아 갈 수 있다고.. 그 만큼 그는 개개인이 주체적 인간이 되기를 강조한다.아직까지 내가 세상을 바로잡고 이끌어 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내 삶의 주체가 나임을 다시한번 머리속에 박아둔다.평범한 농사꾼이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교훈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책 중간중간에 보이는 그의 모습들에 나는 눈을 떼기 힘들었다. 많은 풍파를 헤쳐온 얼굴이기도 하고 삶의 모든 진리를 담아둔 얼굴이기도 하다. 한번쯤 어루만지고 싶은 것은 왜일까?농사의 이야기를 세상 사는 것과 빗대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것이 참으로 절묘하게 들어맞아 아직 많은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도 공감이 가고 교훈을 얻게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이 있다. 어찌보면 이 노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중학교를 나와 일반사람들이 말하는 지식을 쌓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더 풍요롭고 편안하게 인생을 잘 살고 있지 않은가.얇은 책을 이토록 오래 읽어 본 적이 없다. 한 문장을 읽고, 잠시 의미를 되새기고, 한 페이지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한 주제를 곱씹으며 다시 소제목을 본다. 간간히 나오는 유머조차도 유머인지 아닌지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정도로 진지하고, 진실된 모습에서는 구도자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깊고 굵은 주름살에서 스며나오는 듯, 그가 자연에서 배운 삶의 방식과 철학에서는 나무와 들꽃의 은은하고, 자유로운 향이 가득하다. 수유와 제비꽃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풀뿌리와 서설에서 인간의 진리를 탐구하는 그의 자연 친화적 태도와 그가 추구하는 철저한 개성중심의 개인주의에 이웃, 환경, 사회와 연대를 형성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은 우리가 사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가 내뱉는 가볍지 않은 주제 뒤에 나오는 충실한 농부로써의 삶은 마치 세상을 비웃는 듯 하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농부는 말한다. 독한 농부에게서 문명과 물질에서 얻을 수 없는 '인간적 풍요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사실 사는 데 지쳐서 하루 하루 내 삶을 되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요즘이다.어였을때부터 중요하게 여기던 사랑, 믿음, 진실 등의 가치는 내 안에서 빛을 잃어 흑백의 글씨만 남은체 떠돌고 있고 어느 새 나도 물질과 감각의 즐거움에 취해 흥청거리며 나와 내 가족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소시민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저 내 하루가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우물안 개구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