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개념으로서의 도덕후세의 사람들은 ‘도’와 ‘덕’이라는 것을 합쳐서 도덕이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자와 노자는 도와 덕이 서로 독립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다. 공자의 논어에 나와 있는 구절과 노자의 도덕경에 나와 있는 구절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경을 살펴보면 도와 덕의 결합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 있으며, 도덕이 지금의 도덕보다 깊은 의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노자는 ‘언설로 규정할 수 없는 도’라 하며, 도의 본질을 개념적 사고에 의하여 규정하려는 시도가 무모하다는 말을 전하며 도덕경을 시작한다. 이 말은 도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초월해 있는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도 도가 우리에게 멀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말은 극히 알기 쉽고, 행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라는 말로 노자는 우리에게 도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말’은 도를 가리킨다. 즉, 도가 우리에게 너무 친숙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인 것이다. 이런 도와 함께 덕이라는 인격적인 감화력이 합쳐서 도덕이 된다. 그러므로 도덕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도와 또 한편으로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 나타내는 인격적 감화력을 동시에 지칭하는 것이다.서양에서는 동양과 다르게 르네상스 이후 지적 판단을 내리는 개인의 이성적 능력이라는 것이 도덕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서양에서는 사회 성원들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위하여 본능을 조절하는 지적 계산을 도덕의 본질로 삼는 윤리 사상이 주류를 이룬다.현재 우리나라의 도덕교육은 이성적? 합리적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 못지않게 규범의 실천이나 습관화, 실천 동기의 유발이 강조되고 있다. 이 두 가지 면은 서로 같이 교육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심각한 오류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도덕교육에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로 인하여 도덕의 전통적 개념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다. 일체의 도덕적 기반을 버리기 전에 지금 우리는 한번쯤 전통적 도덕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도덕적 영향력이라는 한가지면에서 지금의 도덕보다 전통적 그것이 더 표준으로 삼을 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이렇게 도덕이라는 동양적 개념과 도덕교육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역시 도덕의 개념을 결론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동양의 도덕은 도와 덕이라는 서로 다른 내용의 개념들이 합쳐저 만들어진 단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렇게 서로 합쳐진다는 것은 결국 서로 보완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생각했다.도라고 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사실 현재 나에게는 도보다는 도덕이 더 알기 쉽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여기에서는 도의 개념이나 정의보다는 단지 도의 특징이나 특성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도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도를 아십니까?’ 라는 막연한, 또 어려운 것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현재 도덕교육은 서양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전통적 도덕과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서양과 동양의 사고적인 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도덕교육에서는 동양의 전통적 도덕에 기인한 도덕교육이 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예비교사가 될 우리는 다시 한 번 도덕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고,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도덕교육의 동양적 전통도덕교육의 동양적 전통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 질문의 답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동양’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만들어내고, 또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문화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동양적 특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넓은 지역의 당양한 모습의 도덕교육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동양’을 한국을 포함한 중국문화권으로 한정하더라도 도덕교육의 동양적 전통을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방대한 고찰과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일반적으로 도덕교육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라는 교육목적에 관한 질문과 ‘그런 인간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라는 교육방법에 관한 질문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받아 도덕교육의 동양적 전통이라는 것은 위의 두 가지 질문으로 확인 가능할 수 있게 된다. 즉, 도덕교육의 동양적 전통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과 그 인간을 기르는 방법이라는 요소 사이의 관련을 특이한 방식으로 파악했다는데 있고, 이것으로 서양적 전통과 구분 지을 수 도 있게 된다. 하지만 교육목적과 교육방법의 구분은 서양의 분석적 사고방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교육목적에 관한 문제가 결정되고, 그것에 따라 교육방법이 결정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은 확실히 서양과 달리 이 두 문제를 별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도덕교육의 목적과 방법이 분리되지 않는데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을 규정하는 덕목의 성격과 그 정당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는 현재 개인이 따를 수밖에 없는,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도덕적 명령이 도덕적 덕목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입장으로는 그것이 옳기 때문에 따른다기보다는 자신이 그것을 따름으로써 그것이 옳은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렇게 동양적 전통에서는 덕목(교육목적)의 정당성은 세대간에 이어지는 도덕교육의 실천(교육방법)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덕목의 정당성은 도덕교육의 실천과 별도로 논의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덕목은 옛 성현의 말씀으로 신성불가침한 방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 점에서 동양적 전통에서 도덕교육은 언제나 종교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도덕교육의 종교적 기반이 르네상스 이후 무너졌지만, 동양에서는 그 자체의 르네상스가 없었기 때문에 도덕교육의 종교적 기반이 여전히 전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하늘의 이치라든가 자연의 질서가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느끼기보다는 인간의 복지와 조화롭게 양립하는,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도덕은 하늘이 내린 명령, 그 명령은 도덕교육의 실천에 의해 정당성을 띠게 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의 삶 속에 엄연히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전통은 잘 식별되지 않아 의식적인 노력이 없으면 점점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도덕교육은 이러한 전통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도덕교육은 종교적 기반 위에 올려놓은 전통은 우리의 도덕교육 속에 살아 있지만, 그것은 우리 현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