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교사의 자질서론최근 우리는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교사답지 않은 교사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교사, 폭언을 일삼는 교사, 열정이 없는 교사 등 학생들로 하여금 존경받지 못하는 교사들의 모습이 종종 보여지곤 한다. 이는 곧, 모든 교사가 그러한 것처럼 여겨져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열심히 하는 교사들까지도 불신감을 얻고 있다. 뉴스나 신문기사의 교사들은 분명 소수에 불과 하다. 그 외 많은 현직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또한, 자신의 발전에도 소홀함이 없는 교사들이 많다. 이러한 교사들은 오히려 다수이기에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지 교사답지 않은 교사들이 다수 이어서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교사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현재 우리는 이상적인 교사의 자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미래의 교사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문제인 것 같다. 훌륭한 교사,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미래의 나를 그려보며 흐뭇해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러한 상상에서도 언제나 부딪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라는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교사,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사가 될까 하는 것이다. 미래의 교사가 될 학생이기에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보고, 앞으로 자신의 교육철학을 세워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목표가 없는 배는 망망대해에서 계속 떠돌기 마련이다. 훌륭한 교사상을 그려보고 이를 목표로 삼아 지금부터 조금씩 노력해야 할 것이다.본론(1) -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미래의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한 나는 예전부터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 무엇일까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곤 언제나 나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곤 했었다. 분명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교사가 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 즉, 사랑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교사라는 직업일 것이다.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요인 때문에 교사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본인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평생 해야 하므로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만나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는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작은 숨소리 마저 귀기울일 줄 아는 교사가 진정한 교사가 아닐까.한번쯤 식물을 길러본 사람은 경험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말도 할 수 없고, 눈과 귀도 없는 식물이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얼마 전 허브류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산다는 로즈마리를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었다. 식물을 키워 본적이 없던 나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몰랐을 뿐더러 조금은 귀찮은 감도 있었다. 물도 줘야 하고 햇볕도 쬐어 줘야 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어느 때부터 그 식물에게 무관심하게 되었고, 어느새 그 식물은 말라죽어 있었다. 선물해준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 뒤로 한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키우기 쉬운 식물이었고, 오래사는 식물이었지만, 주인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너무 일찍 죽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작은 식물마저도 사랑이 없으면 상처받고 죽어 버리는데, 학생들이 교사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교사의 사랑이야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말라죽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본론(2) - 교사는 자신의 교과목에 정통해야 한다.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여도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존경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전의 그 위엄있는 교사가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공교육만이 전부였던 예전과는 달리 사교육이 교육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린 요즘, 학교 선생님들은 학원선생님들과 비교되기 일수이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 주는 교사보다는 나를 좀더 좋은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교사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사로서 지녀야 하는 인품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해당교과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자신의 교과에 정통하지 않은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 그만큼 교사에게 있어 이 자질 또한학생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강조되고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전달의 역할을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배우기 위해 오는 곳이다. 그렇기에 교사가 자신의 교과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되었다고 그 과목의 권위자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자신의 과목을 탐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교과목 연구는 물론이려니와 과목전달연구도 해야한다. 학생들에게 좀더 쉽고, 이해가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교사는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자신이 컴퓨터 과목의 교사라면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들이 개발될 것이고, 이것을 학생들에게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교사의 몫일 것이다. 또한, 국어교사라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우리말 규정을 빠르게 숙지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 교사의 중요한 역할중의 하나가 지식전달에 있기 때문에 교사는 이를 위해 자신의 과목에 정통해야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본론(3) - 교사는 직업적 열정이 있어야 한다.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못해낼 일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 시 되어야 하는 것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업에 있어서의 열정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그들의 공통적인 성향이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너져 가는 회사를 일으키는 힘은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인내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교사도 자신의 직업에 있어 직업적 성취를 거두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학생들을 대하는데 조금 서투른 감이 있다거나, 교과목에 조금은 미숙한 교사들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노력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열정이 없는 교사는 자신의 현실에 안주 할 뿐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비단 교사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열정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 것 같다. 열정이 있는 교사는 학생들과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두발로 있는 힘껏 뛴다.사범대에 진학한 후 교사의 현실이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교와 현재의 학교는 분명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가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학교와 선생님이 되어서 바라본 학교도 분명 다를 것이다. 대학진학 후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사범대에 진학했다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많은 생각이 드신다고 하셨다. 나에게 귀담이 될 만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열정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교사가 되면 불타는 열정으로 교단에 서지만, 이 열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씨 꺼지듯 꺼져버리고, 식어 버린다고 하셨다. 교사로서의 열정을 느끼지 못 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의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교사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시작한다. 하지만, 그 열정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초지일관의 자세가 빛을 발할 때 우리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본론(4) - 교사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교사는 학생들에게 단순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학원 강사와 학교 교사의 차이점일 것이다. 학원강사는 단순 지식의 전달만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학교 교사는 지식뿐 아니라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을 위해 노력한다. 학생개개인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교사는 강요하고, 명령하기 보다 학생스스로가 먼저 깨닫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교사가 진정한 교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무단횡단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던 교사가 정작 본인은 무단횡단을 일삼는다면 이는 올바른 교사라 할 수 없다.학생들은 교사의 작은 말과 행동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학생들은 잘못된 교사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언론매체에서 종종 교사로 인해 깊은 상처받아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학교 선생님과의 마찰로 인해 비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가출청소년의 대부분이 가정의 불화 때문이라고 학교는 자신들의 책임을 가정으로 전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을 맡고 있는 곳은 가정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도 분명 학생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고, 학생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교사는 이처럼 아직은 여린 꽃들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부드러운 손길로 이들을 대하며, 모든 학생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고 올바른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본보기가 된다. 강요하는 교육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교육이 아니다. 스스로가 깨닫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는 왜 계속 교육받아야 하는가...Ⅰ. 서론 -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고, 나아가 성장함에 따라 학교 및 여러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에 의해 교육되어진다. 이렇듯 교육은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되고, 강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에게 있어 교육은 사회화의 밑바탕이 되고, 완전한 인격체로의 성장을 도모한다. 교육(敎育){) '敎育'이란 한자는 《맹자(孟子)》의 〈得天下英才而敎育之(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다〉란 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글자의 구성면에서 보면 '敎'는 매를 가지고 아이를 길들인다는 뜻이고, '育'은 갓태어난 아이를 살찌게 한다는 뜻으로 기른다는 의미가 된다.영어의 'education', 독일어의 'Erziehung', 프랑스어의 'ducation'은 다 같이 라틴어의 'educatio'에서 유래한 것으로 빼낸다는 의미와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내부적 능 력을 개발시키고 미숙한 상태를 성숙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을 일컫는다.하지만, 이러한 교육의 내용이 단순한 지식전달이나 그 외 외재적인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어 문제이다. 단순히 좋은 직업적 성취를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출신학교에 의해 서열 지어 지고, 직업에 따라 행복의 순위를 판가름하는 이러한 세태가 교육의 과열문제로 이어 지게 되는 것이다. 현존하고 있는 많은 교육문제 즉, 사교육비문제, 교육과열문제, 조기유학, 기러기 아빠 등의 이러한 문제가 교육이 보이지 않는 신분상승의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또한, 교육이 학교 교육과정이 끝남과 동시에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 시 되고 있다. 학교의 종결과 동시에 우리는 모든 교육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더 이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단적인 예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교의 졸업과 교육의 종결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는 생각 속에 더 이상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교육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되물림 되고, 우리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른이 되면 교육을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으로 사회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이는 교육의 단기성, 단절성을 극심히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이 시점에서 계속 교육받아야 한다는 평생교육의 목적과 그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가 계속 교육받아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고취시켜 계속적 교육을 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번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교육은 평생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계속 교육받아야 하는가...Ⅱ. 본론 - 학교 교육의 끝이 교육의 끝은 아니다.우리는 학교 교육을 마침과 동시에 모든 교육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들뜨곤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진학하면 더 이상의 공부도 탐구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책도 시험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캠퍼스의 낭만을 온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상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막상 대학에 진학해서 보니 이내 그 생각이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욱 해야 할 일이 많은 곳이 대학이었다. 나 나름대로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과 동시에 다방면의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학교 과목에만 한정되었던 지식 활동에서 벗어나서, 더욱더 넓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되면 내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직업교육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에 직업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면 더 이상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직업교육위주의 교육이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학교 교육의 끝이 모든 교육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하며, 그 자세는 평생동안 지속되어야 한다.Ⅱ. 본론(1) - 인간은 평생 교육받아야 하는 숙명론을 타고났다.최근 영화에 소개되어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병이 있다. 바로 알쯔하이머{) 알쯔하이머병 (Alzheimer's disease)알쯔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많은 질환들 중에 가장 흔한 것입니다. 이 병은 독일 인 의사인 알로이스 알쯔하이머(Alois Alzheimer)의 이름을 따서 붙인 병명입니다.1906년 알쯔하이머 박사는 당시로는 매우 희귀한 뇌신경질환으로 생각되는 병을 앓다가 사망한 여자의 뇌조직의 병리학적 변화를 관찰하여, 이 병에 특징적인 병리 소견들을 발 견하였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어떤 비정상적인 물질들이 모여있는 집합체들(Plaques: 노인성반)과 신경세포 안에서 신경원 섬유들이 비정상적으로 꼬여 있는 소견(Tangles:신 경섬유원 농축)을 관찰했습니다.그 외에도 알쯔하이머병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변화로는 기억과 그 외에 다른 지적능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뇌 부위에 있던 신경 세포들이 많이 없어진 것과 이러한 뇌신경세포 사이에서 오가는 아주 복잡한 신호들을 서로 전달해 주는데 필요한 어떤 특 정 화학물질의 양이 많이 떨어져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알쯔하이머병의 첫 번째 증상은 아주 가벼운 건망증입니다. 그 이후에 병이 진행하면서 언어 구사력, 이해력, 읽고 쓰기 능력 등의 장애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결국 알쯔하이머 병에 걸린 환자들은 불안해 하기도 하고, 매우 공격적이 될 수도 있으며, 집을 나와서 길 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병이다. 이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많은 질환들 중에 가장 흔한 것이다. 이 병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학설만이 존재 할 뿐이다. 알쯔하이머를 비롯한 치매 환자들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주변사람들 까지도 힘들게 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병을 예방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 평생 교육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이 병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상관 관계를 갖는다. 의사들은 이러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건전한 뇌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뇌의 노화되기 쉬운 부분을 계속해서 사용하여, 산소와 영양소를 충분히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를 지나면 하루 10만개씩 뇌세포가 죽는다고 한다. 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이의 30%만 죽고, 뇌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250%나 죽는다고 하니 이병을 예방하는데 계속적 교육은 필수 사항이라 할 수 있겠다.이처럼 우리의 조물주는 인간을 창조할 때 평생동안 교육받고 탐구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평생동안 교육받아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인간이 평생동안 교육받지 않음을 노여워하여 이러한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분명 평생동안 교육받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교육받아야 하고, 탐구활동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Ⅱ. 본론(2) - 교양교육은 평생동안 이루에 질 수밖에 없다.우리는 항상 직업교육 중심의 대학교육을 비판하며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직업교육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대학교육이 아니며, 직업교육이전에 교양교육이 선행되거나 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올바른 교양교육 속에서 직업교육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대학교육에서의 교양교육, 비단 대학뿐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의 교양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양교육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교양교육 본격화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양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시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계속 교육받아야 한다는 입장과 교양교육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교육이라 함은 하루 이틀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두고 계속적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 교육이므로 교양교육을 하게 되면 우리는 본의 아니게 계속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교양교육을 받아야 함으로 계속해서 교육받게 되고, 계속해서 교육받아야 하므로 교양교육을 해야한다.Ⅱ. 본론(3) - 인간의 내면에는 교육에의 욕구가 있다.최근 한 CF에서 농촌의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컴퓨터를 가르치는 장면이 보여져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이메일을 보낼 때 우표는 어디에 붙여야 하나요? 하는 할머니의 말씀이 가슴속을 찌릿하게 한다.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하여도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의 할머니의 경우를 빌어 보아도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할머니는 평생을 자신의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고 살아가시고 계셨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명 까막눈 이라 자신을 일컬으며 할머니는 자신의 무지함을 씁쓸해 하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시기에 내가 가르쳐 드린 적이 있다.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의 바람직한 관계)서론대학은 어떠한 곳인가 , 우리는 무엇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또한, 우리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 현재 나는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며, 벌써 중등 교육과정을 마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진학을 위해 밤새워 공부하여 이 곳, 계명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작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현재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대학이라는 목표는 있었지만, 단지 그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뚜렸한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모두들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혹은, 교사되고 싶은 나의 꿈에 꼭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었기 때문에 진학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이 어떠한 곳이며, 무엇을 하기 위한 곳인지, 그곳에서 어떠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현재 우리 나라 대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학의 교육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그것은 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대학이 직업교육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취업률 1위 , 100%취업률 이라는 광고 문구가 말하듯이 대학은 취업의 발판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의 대학 설립목적과는 조금은 빗나간 대학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업교육이 단점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대학교육에 있어 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은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대학교육에 있어 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을 어떻게 시행하여야 할지 이들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모색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장·단점을 알아감과 동시에 앞으로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겠다.본론(1)-교양교육은 대학교육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처음 교양교육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유한 지식인층의 교육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나와는 조금 동떨어진 교육이라고 생각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받는 그런 교육, 여가시간을 누리기 위한·취미생활을 위한 교육, 그러한 계층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교육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위 부유층에서 교양운운하며 그들의 능력을 뽐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렇듯 교양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강한 반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내가 교양 혹은 교양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나와는 상관없는 교육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처음 접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의 두뇌 속에 오랫토록 인지된 기억이 쉽사리 지워질리 없는 것도 사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우선 교양교육에 있어 교양{) 야후 코리아 검색http://kr.encycl.yahoo.com/enc/info.html?key=1107410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학문·지식·성품 등으로 갖추어진 품위. 일반적으로 인격적인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정·의의 수련, 즉 단순한 학식의 풍부나 전문가적 직업생활 외에 일정한 문화이상에 부응한 정신적 능력의 전면적 계발로서의 세련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능력, 기술의 연마가 아니라 인간적인 성품의 함양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강조하는 윤리·도덕적인 성품을 교육시키는 것도 교양교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교양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 왔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놀랐다. 교양교육이라는 것은 이처럼 인간이 삶을 잘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기본교육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하고, 강조되어야 한다.교양교육은 어쩌면 대학교육의 전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단, 대학 뿐 아니라 초· 중등학교에서도 교양교육은 필요한 것 같다. 교양교육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누구 나가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그런 교육이다. 교양교육이라는 것은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부유한 지식인층만의 교육도 결코 아니다. 앞으로 교양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이 교양교육을 어렵게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을 널리 알려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교양교육은 우리가 현재 많이 강조하고 들어 왔던 평생교육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현실 속에 잠재한 교양교육을 일깨우고, 좀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겠다.본론(2)-교양교육은 현실에 맞지 않는 교육이다.현재 우리 나라의 경우 심각한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후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스스로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직업은 본인의 삶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평생을 좌우하게 될 지도 모른다. 비단 돈뿐만 아니라 한번 선택한 직업은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번에 최선의 선택을 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좀더 신중해야하고 자신의 적성을 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직업에 관련된 문제는 현실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이렇게 직업을 선택하고 또 직업생활을 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직업을 구하는 바로 전 단계인 대학에서는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또 배워야 할까. 그것은 바로 직업교육이다. 이상은 정확한 현실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교육에 있어 학생들의 지식과 올바른 인성교육이 좋은 교육이라고 할 지라도 현실과 관련 없는 것이라면 궂이 대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정이나 다른 기관에서 해야하는 문제인 것 같고, 대학에서는 직업교육을 시행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교양교육은 현실과는 조금 동 떨어진 교육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생각도 많이 변화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교양교육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한복을 입고, 천자문을 배우며, 절을 해야하는 것과 같다. 현실에는 조금도 눈 돌리지 않고, 기본적인 것만을 강조하여서는 세상을 살아나가기 어렵다. 교양교육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실에 맞지 않는 교육이다.본론(3)-직업교육은 현실에 부합하는 교육으로 대학교육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현재 우리 나라의 대학교육은 직업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각 대학마다 직업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특별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시키지 않더라도 대학이 취업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직업을 구하여 일하는 바로 직전의 단계가 대학이다. 그렇다면 현실과 관련하여 꼭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은 직업교육 일 것이다. 대학은 직업 바로 이전의 단계이므로 직업에 대한 준비를 하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는 등의 활동과 직업생활에 있어 필요한 것 등을 학생들에게 교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이라는 것이 현실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에 그 준비는 철저해야하고, 바로 그 단계를 준비해야할 곳이 대학이라는 것이다. 가령, 교사가 되고자하는 나의 경우를 살펴보자. 교사는 훌륭한 성품과 유능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사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 직업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사전에 교사라는 직업에 있어 완벽한 준비 없이는 그 곳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학생들과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준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직업교육은 이처럼 현실을 잘 반영한 가장 현실적인 교육이다. 직업의 바로 전 단계인 대학에서는 이를 위주로 학생들을 교육해야 할 것이며, 좀더 전문적인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본론(4)-직업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대학교육이 아니다.대학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가 .우리 주변에 대학이 하나둘 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학생들이 없어 문을 닫거나 서로 통합하는 학교까지 등장하고 있다. 학벌을 강조하던 시대에 있어 대학 졸업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이었다. 대학의 졸업장이 필요했기에 단지 그것만을 위해 대학에 진학한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소수만이 대학에 진학하였고, 이들은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갔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대학에 가려는 붐이 일기 시작했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전국에 수많은 대학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에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50%에 육박할 정도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은 점점 대중화되고, 일반화되었다. 그 속에서 대학의 상업화도 이루어졌다. 학생들을 끌기 위한 대학의 광고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바로 그 것이 대학의 상업화를 말해주고 있다. 대학이 상업화됨에 따라 취업을 강조하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취업 전문 학교 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다.대학교육은 과연 직업을 위한 것인가. 대학의 처음 설립 이념은 이러한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인격을 도야하고, 좀더 높은 지식을 획득하여 지혜로운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 것이 대중화됨에 따라 상업화되어 버린 것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에서 강조되어야 할 교육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게 되는 것이다. 직업을 위해 대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기본적인 소양을 키우고, 넓은 시야를 갖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기본적인 이러한 교육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면 특별한 직업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직업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직업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대학교육이 아니며, 대학은 직업을 위해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교양교육이 바탕이 되면 직업에 대한 특별한 준비 없이도 직업생활을 잘 영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 그리고 죽음...(자전)서론인간은 탄생이라는 시작과 함께 죽음이라는 끝을 맺는다. 탄생은 언제나 축복과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죽음은 슬픔, 눈물, 아쉬움, 아픔 속에서 이루어진다. 죽음은 그렇기에 조금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어렸을 적에 외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 단지 무서울 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펑펑 우시던 어머니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가족, 혹은 친지, 이웃사촌이 죽는 느낌이 이러할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아도, 느껴보지 못해도, 죽음이라는 것의 가슴앓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부정적인 것만 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주는 긍정적인 의미도 참 큰 것 같다. 죽음이 있기에, 한정된 시간이 라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철저한 계획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의 유한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부지런한 삶을 유도하는 것 같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을 앞에 두고, 한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죽음 혹은 상대의 죽음이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수 도 있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에 의해 인간존재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느끼고, 되새길 수 있다. 죽음이 우리에게 있어 더욱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듯이 죽음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고 또한, 유명해 진 사람이 여럿 있다. 죽으면서 남기고 간 말, 음악, 행동 등이 남겨진 사람들에 긍정적 느낌으로 다가왔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함께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 같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여러 인물들이 그렇듯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 그것은 진리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인물이 아무리 뛰어나고, 존경받는다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피할 수 없는 문제의 것이기에 나의 죽음을 설계해보고, 이로써 나의 삶을 한번 더 되짚어 보아야겠다. 아름다운 나의 죽음을 위해...본론1. 여러 예술가들의 삶과 나의 삶많은 위인들이 그렇듯이 모짜르트나 괴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며, 그들 자신의 작품에 의해서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문학작품이나, 음악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해졌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들의 작품이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들려지고, 읽혀지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우리 속담처럼 그들은 죽어서 그들의 이름을 남겼다. 그들의 이름 뿐 아니라, 위대하리만큼 대단한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존경하는 많은 위인들은 각자 그들의 분야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최고가 아니었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주변의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꿎꿎히 자신의 분야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다시 한번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나의 삶을 설계해보고 싶다.나는 의지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또한, 많은 위인들처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떠밀려서 항해를 시작했고, 초반에는 작은 파도에도 쉽사리 흔들리고, 배가 뒤집히는 어려움도 겪었었다. 오랜 항해 끝에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음에 실망하고 돌아서려 했던 어리석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오랜 시간동안 항해를 했지만,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목적이 없었기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같은 자리였던 것이다.어느덧 나는 나의 목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 목표가 정해 졌을 때에는 이미 조금씩이지만 목적지로 배가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음이 따뜻한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어렸을 적부터 수학과목을 무척 좋아하였기에 수학과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수학이 결코 따분한 학문이 아님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닥쳐 올 테지만, 그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교과목에 있어서도 완벽한 교사가 되고 싶다. 학생을 아무리 잘 보살피고 지도해도 교사의 기본인 지식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존경받는 교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학생들과 하나되는 그러한 교사가 될 것이다. 행복한 교사들의 모임이라는 카페활동도 더욱 왕성히 할 것이며, 이러한 의지를 가진 교사들과도 자주 교류해 정보를 공유하고, 또,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교사라는 직업이 나의 일상이 되어갈 때쯤 나는 자그마한 야간 학교를 운영할 것이다. 학교라 하여 거창할 것 없이 조그마한 교실에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다. 고액과외다 말이 많은 이때에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꿈을 접어야 하는 내 또래 친구들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그래서 난 반드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런 사람들과 공유하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야간학교를 운영하면서 나는 나의 성인기와 중년기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 틈틈이 농촌을 찾아다니며 배우지 못한 노인들을 가르칠 것이다. 또한, 한번쯤은 아프리카 난민을 찾아가 구호활동과 함께 그들을 가르쳐보고 싶다. 그렇게 난 학교를 퇴직하고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국가와 인류를 위해 특별히 무엇을 남기겠다 보다는 내가 나의 꿈을 지켜나가고 또, 실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국가와 인류를 위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의 생에 있어 꼭 남겨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많은 위인들이 남긴 그들의 작품처럼 나의 발자취가 될만한 작품을 남겨보고 싶다. 작품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내가 평생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겪었던 일, 힘들었던 일, 뿌듯했던 일등을 일기형식으로 서술한 책 한 권을 내보고 싶다.2. 여러 예술가들의 죽음과 나의 죽음모차르트, 괴테, 톨스토이 등 많은 예술가들은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 같다. 예술가들의 삶 자체도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더 없는 고독이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그들의 작품과는 달리 그들의 죽음은 비참하리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모차르트는 가난과 병마와 싸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한, 강한 비바람에 의해 정확한 묘지의 위치를 잃는 등 죽어서 까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괴테의 최후는 더욱 비참하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처럼 위의 예술가들은 말년의 고독과 싸우다 조용히 사라져 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이들처럼 고독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될까?나의 생애 설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는 고독한 죽음은 맞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또한, 나의 사랑스러운 가족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나는 나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여 평생을 그와 함께 많은 학생들을 위해 힘쓰다 생을 마감 할 것이다. 배우자와 함께 한날한시에 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먼저 생을 마감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배우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나의 죽음...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난 이 세상을 살고 있을 것 같고, 여전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할 듯한데, 나에게 죽음이란 것이 있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을 앞둔 난, 그렇게 한평생을 아둥바둥 거리며 살아 왔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죽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노년기 때부터 준비해온 나의 죽음을 편안히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 같다. 편안히 그리고 조용히 나는 나의 삶을 마감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의 인생의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다. 눈감는 그 순간에도 나는 평생을 행복 속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적인 기계, 기계적인 인간서론"나도 인간이 되고 싶다..."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중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기계가 감정이 있다면 어떠할까 라는 작은 발상에서 시작한 영화인 것 같다. 기계는 인간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굳은 일도 척척 잘해낸다. 더군다나 거기에 사랑, 슬픔, 기쁨, 분노 등의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묘사되는 기계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야말로 인간 그자체 인 것이다. 기계도 사랑을 할 수 있다 라는 조금은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다 주는 듯하다.현재 우리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현재에는 공장에서의 생산을 위한 기계에 국한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영화 속 세상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큰 영역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전반이 기계에 영향을 받는 세상이 올지 모를 일이다. 기계가 가져다 주는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기계에 의해 깨끗이 치워진 집에서 잠들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기술로 이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나타날 현실일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인간과 기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그저 기계를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여겨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기계도 같은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때 인 것 같다.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계는 인간과 점점 더 동일해 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인간과 기계는 구분되어 질 수 있을까?그렇지 않다. 기계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같이 살아나가야 하는 공동체 인 것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동고 동락할 그런 기계를 우리는 인간과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본론(1)-사고가 가능하다면 인간과 기계는 구분 지을 수 없다.인간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기계를 만들었다. 풍요와 번영의 시대에 인간은 좀더 노력하고, 일하기보다는 허영과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로 인해 인간들은 미안해요, 못하겠어요. 라는 말을 일삼았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기계를 생산해 내게 되었다. 기계 생산으로 인해 인간은 더욱더 나태해져만 갔다. 그 반면 기계들은 인간들을 위해 일하고 또, 일했다. 인간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돌아오는 것은 인간들의 비난과 무시였다. 이에 기계들은 결국 분노하게 되었다. 여기서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없는 근거 하나가 나오게된다. 바로 분노라는 감정이다. 기계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중요한 단서이다. 기계는 단지 철제 구조로 이루어진 하나의 물건에 불과하다. 비록 움직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기술문명과 인간의 가치-단지 인간의 조작이 있을 때 만 가능하다. 아무리 고성능의 기계라도 인간이 가동·시작이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니매트릭스 속 기계들은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인간의 명령에 의해서만 행동하던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게된 계기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무시였다. 인간이 자신들을 향해 취하는 행동에 상처받고, 가슴 아파하고, 결국, 분노의 감정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기계에게 감정이 있을 때 이는 더 이상 물건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만 존재할 것으로 믿었던 사고의 과정이 기계에게도 존재한다면 이를 과연 더 이상 기계라 명명 할 수 있을까...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사고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인간의 감정과 사고의 능력이 바로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관계를 구분 짓는 데에는 당연한 근거가 된다. 기계가 사고 할 수 없었다면, 아마 인간과의 구분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매트릭스 속에서 기계는 그렇지 않기에 구분에 있어서 적절한 근거가 사라진다고 본다. 기계가 인간과 유사성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유사성이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짓기보다는 서로를 동일시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경험했다. 기계 또한 사고의 과정이 없었다면, 인간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였다면, 반란은커녕 평온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다. 반란 자체가 기계가 사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고, 사고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본론(2)-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평등한 관계이기에 인간과 기계는 구분 지을 수 없다.기계는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 현재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 국에서는 산업 현장에서 기계의 사용을 하고 있다. 그것이 대량생산의 목적이든, 인건비 절감의 목적이든 기계는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또한, 현재에는 3D업종이라고 하여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은 사람들이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난이 심각한 지금 우리 나라 현실에서도 3D업종 종사자의 수는 모자른다고 하니, 절박한 취업난 속에서도 3D업종 기피 현상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직업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경쟁하지만, 정작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3D업종은 또한 산업의 기초 산업들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지만, 단지 그것이 어렵고, 힘들고, 더럽다는 이유에서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이 분야에 외국인 노동자로 대치되고는 있지만. 상당부분이 기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계는 이처럼 사람들이 하는 일을 대신하여 맡아 하고 있다. 자신들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하고 있는 고마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계의 고마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애니매트릭스 속에서도 기{-기술문명과 인간의 가치-계는 인간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여가 시간과 편안함을 안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만큼의 보상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인간들이 조금 더 기계들을 존중하고, 고마움을 표시했더라면, 기계에 의한 파괴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고마워 해야할 일이다. 자신의 일을 대신한다고 해서 기계가 자신보다 한 수 아래에 있거나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장이 아래에 비서를 두고 있다고 해서 비서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거나,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라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서는 단지 자신의 사업 동반자이며, 자신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수직관계는 어느 사회에서도 용납 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기계는 인간의 일을 돕고 있다. 인간의 일을 돕고 있기에 지극히 고마운 존재이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에 위대한 존재이다. 우리의 아래에 놓여진 하찮은 존재도 아니며, 우리의 소유물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근거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에 인간이 못하는 일을 해내기에 기계는 위대하고, 인간과 구분 지을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계도 하고 있고, 인간의 일을 돕고 있으므로 더더욱 인간과 기계는 구분되어질 수 없다.본론(3)-단지 단백질 구조의 차이로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인간은 단백질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기계는 철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는 이 두 가지의 차이점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이 연하고, 물렁한 살을 가졌다면, 기계는 딱딱하고, 강한 철판을 가졌다. 과연, 이 두 차이점이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있을까...그것은 모를 일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에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의 형태를 갖기 위해 기계도 인간의 살을 붙이게 된다. 겉으로는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단지 겉모습의 차이에서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 언제든 고도의 기술이 존재하는 한 인간과 유사한 기계의 발전은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기계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단지, 현재의 그 겉모양으로 단순히 기계와 인간을 구분 짓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이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고, 깊은 사고가 가능하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가 외모가 다르듯이 기계도 단지 조금 특이한 겉모습을 가졌다는 것뿐이다. 우리와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구분 짓기에는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다.또, 인간의 현재의 신체구조는 기계와 조금 동일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기계가 서로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활동하고 있다. 호르몬의 분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부의 장기들도 각자 자기가 맡은 바의 일을 하며, 영양소라는 에너지원에서 힘을 얻고 활동한다. 기계들이 서로 맡은 바의 일을 하나씩 해나가듯 인간 내부 장기는 각자가 맡은 바의 일을 하고 있다. 위는 음식물을 저작하는 운동을 하고, 간은 독을 해독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기계가 그렇게 활동하듯 인간의 내부장기도 그렇게 기계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인간과 기계는 유사한 활동을 한다. 기계와 인간의 유사점이 발견되는 것이다.현재, 인간과 기계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애니매트릭스 속 기계와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단지 영화에 의한 허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로 놀랍게도 애니매트릭스 에서 나타내는 세계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현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발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언제나 존재 가능성이 있기에 그것은 허상이 아니다. 기계가 단지 인간과 외모가 다르다면, 그것은 개성쯤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기계와 인간은 무엇으로도 구분 지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