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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강경애 연구
    <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생애2.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2.1 남한에서의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2.2 북한에서의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3. 작품3.1 3.2 < 소금>3.3 < 지하촌>3.4 그 외 작품들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1930년대라는 식민지 조선의 문학적 상황은 1935년을 기점으로 리얼리즘 소설의 퇴조현상을 보이며 소설의 내적 형식에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파시즘의 본격화와 카프 해산등 객관적 현실이 악화되면서 모순된 현실 상황과 부정적인 인물을 그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형상화하는 방식은 작가가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 현실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포기하고 세태소설이나 내성소설로 퇴조할 수 있고 세계를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 인간과 사회가 겪는 위기와 부정적인 양상을 묘사하여 그 몰락과 필연성을 드러냄으로써 비판적 리얼리즘을 달성할 수도 있다.)1930년대는 파시즘의 본격화로 일제의 탄압과 경제적 수탈이 가장 극심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1930년대 한국문학 연구에 있어서는 우선 식민지 사회라는 특수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 고발의 문학이 거의 발표될 수 없었던 이 시기에 간도지방의 조선 이주민의 삶과 현실을 체험에 기초하여 문학적 형태로 재현한 강경애는 19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을 이룩해낸 작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에서 보이는 일본제국주의 탄압에 의한 노동자 농민의 분해상과 현실 변혁 의지는 리얼리즘의 실현으로 평가될 수 있다.Ⅱ. 본론1. 생애황해도 송화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녀는(1907) 아버지를 잃은 두 해 뒤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다. 의붓아버지와 남매들 속에서 가정적인 안온한 느낌을 전연 가질 수 없이 외롭게 구박받으며 소녀시절을 보낸 강경애는 열 다섯 살 때(1921)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숭의학교에 입학하나 이듬해에 학내문제로 퇴학당한 채 서울 동덕여학교에 편입한다.강경애가 작가하면서 ‘여성문학의 평가 기준으로 진실성을 들어 등장 인물의 삶을 작가의 삶과 비교’분석하였다.)이처럼 남한의 경우, 강경애가 문학활동을 하던 1930년대 당시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는 주로 여성작가로서의 사회의식 내지 역사의식을 밝혀내는 것에 중심을 두고 이루어졌으며, 차츰 그 평가 기준이 확대, 심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의식 내지 역사의식에 대한 탐색의 확대와 심화란 초기에는 주로 동반자작가로서의 위치 규정에 따른 항일문학 또는 사실주의 문학으로서부터 근래에 들어오면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또는 페미니즘 작가의 전범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음을 자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의식 내지 역사의식을 강경애의 생애 및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잠복해 있는 기호로부터 세밀한 분석을 통해 성립시키려는 시도가 있어 상당히 주목된다.2.2 북한에서의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북한에서의 강경애의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는 “카프가 아니였으나 그의 작품을 가운데는 프로레타리아적 경향성을 띠는 작품도 있었다. 장편 는 그러한 사정을 말하는 하나의 실례이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즉, 북한에서는 강경애를 일제와 그 주구들의 억압과 착취를 반대하여 싸우는 로동자, 농민들의 생활을 반영하는 작품을 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북한에서의 강경애의 문학사적 위치 및 평가는 주로 를 중심으로 작품의 진보적 성향과 계급의 경향성에 주목하여 이루어졌으며, 비판적 사실주의 내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으로서의 평가는 행해지지 않았다.3. 작품3.1 선비의 아버지는 용연 마을의 지주인 정덕호의 일꾼인데, 덕호의 지시로 빛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아 죽는다.어머니마저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서 몸종으로 지내다가 결국 덕호의 꾀임에 빠져 순결을 잃는다. 선비는 덕호의 집을 도망쳐 나와 자기처럼 덕호에게 당하고 서울로 간 간난이를 찾아간다.선비를 좋아하는 남자는 고향 청년 첫째와 서울 사람 신철인데를 빼앗겼던 간난이 그리고 선비 등이 농촌을 떠났다. 둘째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다. 즉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의 노동자가 된 주인공들은 점차 사회에 눈을 떠나가면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일본인 공장주와 감독의 횡포와 함께 선비가 죽게 되는 원인인 노동 조건 등 현실의 모순이 주인공의 의식 속에 포착되는 것이다.한편, 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자의 일생'형 소설로 보는 관점도 있다. 여자의 비극적 일생이 개인적 결함에 기인하는지, 아니면 시대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는지를 검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가난한 머슴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주인에게 짓밟혀 고향을 떠나 방적 공장의 여직공으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는 것이 선비의 일생이다. 사회 고발적 요소가 강한, 목적 문학적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강경애는 를 쓰기 전에 인간의 근본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또 문제를 해결할 힘을 구비한 인간이 누구인가를 지적하려고 애써 왔다. 이러한 노력의 한 증거는 민족단일당인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인 근우회(槿友會)에 강경애가 가입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강경애는 근우회 활동을 통해서 짓밟히는 자라든가 빼앗기는 자로서의 여성의 현실적 위치를 인간문제의 한 갈래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근우회에서 여성은 억압, 착취, 투쟁 등의 개념에 눈뜨게끔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선비의 시련 과정과 이로 인해 빚어진 연민의 플롯, 지식인인 신철이 보여주는 모험과 타락의 플롯, 첫째가 주역이 되어 나오게 된 계몽의 플롯 등이 포개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의 프로문학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인간문제’의 선비라든가 첫째와 같은 주요 인물은 의지도 박약하고 전망도 결여된 소극적 인물로 비치기 쉽다.“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천만년을 두고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단으로 유행했었으므로 주인공 봉식어머니가 소금밀수입에 나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밀수대렬에 낀 봉식어머니는 흔히 일행으로부터 뒤떨어지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길잡이의 도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갖은 고생 끝에 어느 산마루턱에 당도했을 때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걸음을 저지당한다. 일행은 오로지 그들이 마적단이나 공산당이기를 바랄뿐이다. 잘 빌기만 하면 그들은 소금을 빼앗지 않았지만 관청의 집사대라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뒤 그들의 연설이 시작된다. “여러분! 당신네들이 왜 이 밤중에 단잠을 못자고 이 소금짐을 지게 되였는지 아십니까”라는 내용에서 그들이 공산당임을 직감하였고 그와 동시에 봉식어머니에게는 연설하는 사람의 음성이 꼭 딸 봉염의 학교 선생의 그것처럼 들린다. 이 대목은 작가의 계산에서 가장 관건이 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흘만에 돌아온 방안의 소금자루 앞에서 새삼스럽게 일어나는 가족(남편, 봉식…)생각에 소금 처분할 것도 잊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달픈 심신을 달래다가 순사에게 들키게 되였을 때 바로 공산당인들의 연설 내용을 다시 떠올리는 어머니의 행위는 이점을 실증해 주는 것이다.이 작품은 적어도 한 이주민여성이 남편과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공산당을 한때나마 원망하지만 자신의 실제적인 삶의 체험을 통하여 결국 공산당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는, 이념에의 각성을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아버지를 그르다고 백번 생각했지만 막상 아버지가 총에 맞아 넘어진 것을 용애 아버지에게 듣고 현장에 달려가서 보았을 때는 어쩐지 ‘너무들 한다?’ 하는 분노와 함께 누가 그르고 옳은 것을 분간할 수가 없이 머리가 아뜩해지군하였”던 봉식이 본인이 공산당이 되여 처형된다는 이야기는 이같은 이념에의 각성을 한결 더 강화시키고 있다. 강경애는 공산유격대의 활동에 민족의 운명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작가가 줄곧 작품 활동을 통하여 표현하려고 했던 주제의식이고 강경애의장이 있을 것을 감안하여 맹서방네의 조건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게 된다. 집단파업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며칠 후에 수방이는 머리에 맹서방이 사다준 핀을 꽂은 채 소문 없이 죽고 만다.수방이의 죽음은 무엇인가를 암시한듯한데(아무래도 이붓어머니인 “마마”의 보복으로 죽임을 당한 듯한 분위기다) 그 암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또 무엇 때문에 죽었다는 암시도 주지 않아 돌연감 만을 유발시킨다. 초기작품의 미숙성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그리고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아니면 이국적분위기 조성을 노렸던 것인지는 모르나 하필이면 중국인들의 생활을 주제의식의 매개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제의 심각성에서는 상당히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3.4.2 《축구전》은 완전히 이념화된 작품이다. 지난해 검거선풍에 다수의 급우들이 영사관으로 잡혀들어감으로써 학교가 너무나 위축되어있다고 판단한 이주민의 아들 승호(학생대표쯤으로 보인다)는 반드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들의 꺾이지 않는 존재를 대중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뜻에서 ××회 주최로 열리는 축구대회에 참가하고자 제의하며 희숙이와 합의하여 출전을 결심한다.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남학생들은 길회선 철도공사 인부로 들어가고 여학생들은 경마장의 임시 여급으로 일하기로 한다. 그러나 경기에 출전한 D학교팀은 비록 잘 먹지도 못하고 운동장비 역시 미비하여 경기에서는 졌지만 학생들의 투지를 앙양시키는 데에는 성공한다는 이야기인데 소설에서는 “동무”, “동지”라는 칭호들이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고 운동권학생들의 형상을 직접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강경애의 계급적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결말부분에서 남루한 옷차림을 한 부인의 D학교 학생들에 대한 동정의 표현은 이러한 작가의 사상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작품에서 “행진곡이 쾅쾅 울린다. 얼핏 바라보니 승호가 기발을 쥐고 앞장섰다. 행진! 그 뒤로는 군중이 물밀듯 따라섰다.”나 “마저 넘어가는 햇볕에 D학교의 기발다.
    교육학| 2006.12.04| 18페이지| 2,000원| 조회(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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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문학사적 위상Ⅰ. 작품 분석Ⅱ.이광수Ⅲ.의 의의Ⅰ. 작품 분석1.무정(無情, 1917년,)2.등장인물① 이형식: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주인공. 개화기의 지식인. 개인과 민족,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갈등하며 우유부단하고 이중적 성격을 보이기도 하는 인물. 신교육을 받았고 도덕적인 면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 이익을 결국 받아들이나 인간적 의리 때문에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린 마음을 지녔다. 또한 진취적 기상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선형과 결혼하여 미국 유학을 함.② 김선형: 김장로의 딸로서 유복한 가정의 아가씨. 형식과 결혼하고 미국유학에 오름③ 박영채: 이형식의 옛 은사인 박진사의 딸이자 형식의 어릴 적 친구. 어릴 때 농담반 진반으로 형식과 결혼을 암시받음.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으나 나중 부친과 두 오라비는 세상을 떠남. 형식을 사모하며 절개를 지켜 왔으나,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 김현수에게 겁탈 당한 뒤 평양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러 떠남. 평양행 기차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동경 유학생 신여성인 김병욱을 만나 생각을 바꾼다.④ 김병욱: 일본에 유학중인 신여성. 우연히 영채를 만나 깨우친 후에 두 사람은 일본으로 유학 가는 길에 형식과 선형(신혼여행 겸 유학길)을 기차 안에서 만난다.⑤ 신우선: 이형식의 친구. 신문기자, 쾌할,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 삼랑진 수해 현장을 취재하러 왔다가 형식, 선형, 영채, 병욱과 만나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신구 질서가 충돌하던 격변기의 조선 사회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들이다. 주인공 이형식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서 민족의 선구자로서 부각되고 있으며, 전형적인 구시대의 여성 박영채는 전통적인 윤리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김선형과 김병욱은 자유 연애 사상과 반봉건적 사고를 지닌 신여성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영채의 경우 소설의 전개와 더불어 구시대적 사고를 탈피하여 신여성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점에서 영채의 성격은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변화해 가는 '입체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3.주제① 자유 연애와 민족의식의 고취② 세속적 사랑의 계몽적 민족주의로의 승화4.의의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장편 소설5.문체구어체(언문 일치), 산문적 묘사체6.성격민족적, 계몽적, 설득적7.시점전지적 작가 시점 - 작가 개입이 많다.8.배경계몽주의, 민족주의, 인도주의9.갈래장편소설, 현대소설, 계몽소설, 126회의 연장체 소설.Ⅱ. 이광수이 작품을 쓴 춘원 이광수는 다양한 작품과 함께 굴곡진 삶의 모습으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작가이다.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춘원은 집안이 점점 기울어져가는 것을 보며 성장한다. 열한 살 되던 해에 콜레라로 아버지, 어머니, 막내 여동생을 잃게 된다. 그는 다섯 살 아래 여동생을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친척집을 전전한다. 형뻘 되는 사람 집에서 형수의 학대로 뛰쳐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동학의 대접주인 서병달이란 사람의 눈에 띄어 박대령(대령-동학의 한 직책)이란 이의 집에 머물며 서기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 박대령의 딸 예옥은 춘원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1905년 그는 일본 유학생 모집에 합격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 유학생 사이에서는 병든 조국을 지키고 외국 세력을 몰아내자는 애국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다. 이런 민족사상의 영향을 받고 한편으론 문학에 눈뜨기 시작했다.방학중 고향으로 돌아온 춘원은 부친과 잘 알던 가난한 선비의 딸 백혜순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사흘 만에 백혜순의 곁을 떠났고 나중에는 이혼하게 된다.1910년 메이지 학원을 졸업한 춘원은 오산학교 교원에 취직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광수는 남강 이승훈의 감화를 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뒤 이광수는 오산을 떠나 상해, 미국 등을 전전한다. 이후 그는 김성수의 도움으로 다시 동경 유학을 떠났다.그리고 나서 바로 이 을 연재했다. 무정의 등장인물인 영채나 형식의 행적은 이광수의 행적과 흡사하다. 이후 춘원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지만 일제가 패망해가는 시기인 30년대말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리고 민족의 비극 6.25전쟁 중 세상을 떠나고 만다.Ⅲ. 의 의의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에 연재된 이광수의 첫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이다. 은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정열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따라서 무정은 공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러한 공리성과 목적성 앞에 모든 개인의 고민과 갈등은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런 결과로 에는 '우리'만 있고 '나'는 없다. 봉건 도덕 의식을 가진 박영채와 근대적 인간형인 이형식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과도기적 인물을 설정하여 상호 갈등을 전개시킴으로서 전환기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직유의 표현 기교와 화자(話者)의 격앙된 영탄이 드러나고 일부 문어체(文語體)적인 문투와 극적인 필연성이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참신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도 부분적으로 존재한다.흔히, 의 한계로 지나친 계몽성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무정의 계몽성이란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일까? 의 계몽적인 성격은 인물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잦게 등장하는 관계 유형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다. 첫 장면부터가, 선형을 가르치러 가게 되는 이형식의 묘사이며, 선형과 형식 외에도 형식과 하숙집 노파, 형식과 영채, 병욱과 영채 등의 관계가 모두 사제 관계라 할 수 있다.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는 삼랑진 수해 장면에서 이 점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형식이 영채, 선형, 병욱에 대하여 교사로서의 권위를 회복함에 따라 소설이 결말을 맺게 되는 것이다. 우유부단하고 통일성도 부족한 형식의 성격은, 교사로서의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확신에 찬 선각자의 그것으로 변모한다. 교사는 학생을 계몽하고, 학생은 다시 그의 학생들을 찾아 나선다. 이것이 의 계몽성인 것이다. 의 이러한 계몽성은 김동인, 주요한 중심의 가 나오면서 비로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삼랑진 수해 사건과, 이후의 작중 인물들에 대한 부연 설명은 신소설의 티를 벗지 못한, 계몽성, 민족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이 소설은 신소설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한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신소설과 비교하여 인물들의 내면 공간 확대를 통한 심리 묘사, 생생하고 개성적인 인물의 창조 등이 발전된 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는 큰 기둥은 민족주의 이념과 자유 연애 사상인데 이는 이광수의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드러나게 된다. 물론, 예술의 효용성면에서는 사회적 공리성(功利性)에 지나친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 결점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문단 상황으로서는 분에 넘친 것이었다.이 소설의 표면적인 주제는 근대 문명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라는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선형과 영채를 사이에 둔 형식의 갈등에서 나타나는 삼각 관계를 단순한 애정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인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 사이의 대립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삼랑진 수해(水害) 사건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서 민족 계몽주의라는 이상을 통해 통합되고, 삼각관계는 화해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이 민족 계몽주의가 민족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이광수의 관념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데 있다. 이처럼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 방도가 제시되지 못하고, 다만 유학을 통한 신지식 습득이라는 막연한 대안으로 작품이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6.12.04| 5페이지| 1,000원| 조회(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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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후문학
    한국전쟁이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력은 막대한 것으로써 1950년대 문학의 특징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이후의 문학사는 이른바 분단시대로 불리우는 민족사의 질곡 속에서 제기된 삶의 양상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조망해왔다. 오늘날까지 분단의 아픔은 민족의 문제적 현실의 심층에 자리잡은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0년대의 문학을 살펴 보는 것은, 단순히 문학사를 정리하는 차원이기보다 오늘날의 문학을 태동시킨 요인에 대한 탐구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1) 한국전쟁기의 전시문단1950년 공산군의 남침은 한국 문학의 큰 영향을 준다.첫째, 한국전쟁은 많은 작가와 시인들, 문학을 지망해 나가던 젊은 학도와 독자들을 잃게 했다. 유능한 신진 작가와시인을 잃었으며, 이광수가 납치되고 김동인이 작고하게 된다. 또 박영희, 김억, 김진섭, 김동환, 김기림 등도 납북되고 김영랑은 포탄에 맞아 작고했다. 문학 성장의 절대적 배경이 되는 독자층들이 한꺼번에 파멸하게 된다.둘째,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문인들이 일시적으로 좌경화 되거나, 부득이 부역을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문인들 사이의 분파와 반목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며, 한국문단의 아름다운 풍토를 조성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셋째, 휴전이 성립된 1953년까지 창작활동은 매우 부진했다. 남하한 대부분 문인들은 종군작가로 활동했으며, , , 등이 결성되었다. 여기에 정비석, 박영준, 최태응, 김송, 박연희, 마해송, 조지훈, 황순원, 김동리 등 상당수의 기성문인들이 참가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문인들이 종군작가단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의 민족적 비극에 대한 진실한 증언과 고발의 문학, 리얼리즘의 문학 면에서는 높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그들의 후배들이 성과를 냈다. 안수길의 , 김동리의 , 황순원의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개가 후방 전선이 소재로 되어있고, 객수의 센티멘털리즘이 깔려 있어 6.25의 참된 전쟁문학을 기대 할 수는 없었다.(2) 전후문학의 창작계전후 문학은 휴전과 함께 시발되고 재건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많은 신인들이 , , 등을 통해 등장하였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신세대 작가라고 통칭되는 이들은 전쟁에 대한 상처를 뼈저리게 통감하는 휴머니티를 강렬히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1950년대 문학의 특징으로 요약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첫째, 시, 소설, 평론등 모든 문학 분야의 기술적 역량이 현저히 향상됐다. 우수한 인재가 많이 등장했고, 대표적인 작가로 손창섭, 선우휘, 강신재, 이범선, 이호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쟁 시기의 전후반을 진지하게 파고 들어 좋은 전쟁문학을 남겼다.둘째, 시단에서는 김규동, 박인환, 김경린 등이 등장하여 )쉬르 리얼리즘이나 )이미지즘의 경향을 추구하며 종전의 에 반발을 시도했다. 김구용, 송욱, 박남수, 김춘수, 이종학 등이 새로운 현대시의 지평을 개쳑했다. 한편 박두진, 박봉우, 김수영 등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양심적 비판의식과 함께 독자와의 간격을 좁혀 나갔으며, 박성룡, 박재삼, 이성교 등은 전통적 )리리시즘을 추구해 나갔다.이처럼 50년대 문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발전했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첫째는, 전후문학의 후방성이다. 조지훈의 이나 황순원의 등과 같은 작품은 한국전쟁에 대한 리얼리즘적 형상화가 미흡하다고 평가 받는다. 즉, 전쟁을 야기시킨 원인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에 대한 진실한 측면이 치열하게 모색되지 않은 것이다. 대신 후방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에 대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인식에 머무르고 만다. 이것은 50년대 풍미했던 실존주의의 영향 속에서 두드러지는데, 서기원의 , 손소희의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50년대 문학은 전후파나 실존주의와는 상관없는 인간과 사회의 내부에서 문제의식을 추구하여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정직한 문학이 생산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기도 한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김광식의 , 이범선의 , 박경리의 등이 있다.50년대 후반의 작가들은 50년대 전반의 작가들과 많이 다르며, 그 문학적 특징도 퍽 이질적이다. 전의 작가들이 전쟁 체험을 전후파적인 기질로 연소시킨데 비해, 50년대 작가들은 비판적인 안목으로 문학행동을 펼쳐갔다.(3) 전후문학의 비평계한국문학사에 비평문학이 성립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평계는 신, 구 세대 비평으로 양분되어 나타났다. 더욱이 50년대 후반에 와서 신, 구세대의 교체가 현저히 드러났다. 50년대 등단한 신진 비평가들은 대개가 우수한 학벌을 갖추고 있어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의 경향을 크게 나누면 전통의 단절을 선언하며 외국 사조에 영합해 나간 쪽과 그 반대로 한국 문화 속에서 전통의 명맥을 되착고 주체성을 살리려 한 쪽으로 나눌 수 있다.2. 한국 전쟁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한국전쟁은 작가들에게 절박한 생활현실을 제공했고 이러한 극한 상황은 이들에게 작품의 창작동기를 제공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담고 있었고, 인간성의 옹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란 이름으로 명명되는 이 시기의 문학은 그 본질적인 내용규명과 개념 규정이 확실치 않아 지속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전쟁을 수용한 작품들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할 수 있다. 하나는 후방성의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적군에 대한 관용과 동포애로 그려진 작품의 경향이다. 대표적 작품으로 황순원의 , 김동리의 , , 안수길의 등이 있다.(1) 구세대 작가군에 의한 전쟁의 형상화구세대 작가들에 의한 소설적 형상화의 작업은 전후 신세대 작가들의 그것과 구별된다. 그것은 구세대 작가들이 이미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안수길의 은 한국전쟁을 통해 본 지식인의 세 유형을 그린 것이다. ‘조운’‘미미’‘석’을 통하여 한국전쟁에 따른 인간의 변모를 파악한다. 이외에도 황순원의 , 김동리의 , 김동리의 , 박영준의 등이 있다. 특히 가장 사실성을 높인 작품으로는 오유권의 을 들 수 있다.이와 같이 전쟁소설들이 후방성을 띠는 것이나, 적군에 대한 애정과 관용으로 표현된 것은 어디까지나 동족상쟁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작가정신의 산물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거의가 종군작가들에 의해서 씌어졌기 때문에 선전적이고 도식적이고 공식주의 등의 획일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흠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1955년을 전후하여 등단한 신세대 작가군에 의해 극복의 실마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객관적 현실 인식에 토대를 둔 문학적 형상화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2) 전후 신세대 작가군의 출현신세대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 , 및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호철, 김광식, 오상원, 서기원, 선우휘, 이범선 등이 있다. 전쟁이 종결된 후 그들은 , , 등의 문예지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다.선우휘의 은 전쟁을 제재로 한 휴머니티 소설이다. 주인공 을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인간형을 제시해 놓고 그 갈등 속에서 반항하는 과도기의 인간을 그려간다. 휴머니티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를 보여준다.오상원의 는 전후 신세대 작가가 창작한 전쟁소설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초인적인 인간의 의지를 그린 행동주의적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하근찬의 는 전쟁피해의 비극을 휴머니즘으로써 승화시킨 작품이다. 일제식민지 치하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가지 민족적 비극을 겪은 두 세대인 아버지와 아들의 삶의 단면을 통해 민족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팔이 없는 아버지와 다리가 없는 아들이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비참한 현실을 휴머니즘으로 극복함을 보여준다.3. 한국전쟁의 충격에 따른 시적 대응소설과 달리 시는 장르적 속성상 급변하는 현실에 첨예하게 반응하는 만큼 한국전쟁으로 인해 불모화된 상황을 즉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우선, 반공이념을 고취시키는 시편들이 대량으로 발표되었다. 대부분이 와 에 소속된 시인들이 쓴 격전시와 선전시로 문학의 밤, 시화전 등을 통해 정훈 및 전시 문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종군작가단을 중심으로 이라는 문예지도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들은 한국전쟁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맞대면하고 있다는 데서 그 의의가 획득될 뿐이지, 전쟁이라는 보편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극한적 실존에 대한 탐색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특수성에 대한 본질을 몰각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전쟁 자체에 대한 시인의 시적 탐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말이다.(1) 전통적 서정시 계열민족의 현실이 억압받고 고통스러울 수록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적 열정은 더욱 긴장된 시편으로 승화시켰다. 서정주, 최재형, 함윤수, 박양군, 이형기 등이 이 시기에 서정시를 쓴 대표적 시인들이다. 대부분 참담함과 허무감을 노래했다.이런 시는 전후의 현실이 탈각 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모든 서정시 계열이 형상화와 시적 인식에 있어 문제점을 노정한 것은 아니다. 서정주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이래 줄곧 전통적 서정시를 추구한 시인으로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승화시켜왔다.(2) 동인을 비롯한 모더니즘적 계열전쟁이란 극한 상황을 거치며 새로운 문학의 기운은 움트기 시작했고 이봉래, 조향,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등의 신인들에 의해 동인이 결성 되었다. 이들은 기성문학에 대한 부정의 정신으로써 자신들의 문학 입장을 선명히 한다. 박인환은 영미 주지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조향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기법을 실험했고, 김경린은 일본의 ‘VOU'모더니즘 그룹에 가입해 활동했다. 동인들은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시 지평을 새롭게 개척하고자 모더니즘에 기반한 시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시쓰기의 지평을 연 것은 확실하지만 관념적 인식과 퇴폐적 감상성은 1930년대의 모더니즘의 성과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낳았다. 이들의 시적 인식이 갖는 추상성과 관념성으로는 현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했다.
    인문/어학| 2006.12.04| 5페이지| 1,500원| 조회(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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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원평가제
    -목 차-Ⅰ. 서론Ⅱ. 본론1. 교원 평가제의 기준2. 교원 평가제의 쟁점3. 교원 평가제의 주체Ⅲ. 결론Ⅰ. 서론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연가투쟁을 22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당국은 연가투쟁 참가 교사들에게 단호한 징계를 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양측이 이런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작 교원평가의 취지와 영향에 대한 고찰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교육부는 교원평가를 왜 도입하려는 것인지, 전교조는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기에 반대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교원평가에 관한 다양한 쟁점들이 서로 뒤섞여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와 관련된 쟁점들을 간추려 살펴본다.Ⅱ. 본론1. 교원 평가제의 기준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자질이나 인간성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교원의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람직한 교육활동이냐"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현재 입법예고된 교원평가제의 내용에 따르면 교원평가의 항목은 개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교육부는 평가항목 구성을 위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바람직한 교육활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평가항목을 구성하는 것은 무리다. 평가의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 쉽지 않은 셈이다.그리고 '바람직한 교육활동'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교원평가를 추진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교사나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사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교원평가 시범사업 실시계획이 발표됐을 때 전교조 측이 배포한 유인물의 내용도 이런 것이었다.많은 학부모들이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교육활동의 목표로 여긴다는 점이 교원평가 반대 측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시되는 교원평가는 교사들로 하여금 인성교육보다 입시지도에 더 힘을 쏟게 만들리라는 것이다.또 사회의 주류적 가치관이 아닌 진보적 지향을 담은 교육활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전교조 조합원은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해도 단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불안감을 드러냈다.하지만 찬성 측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현재 입법예고된 교원평가제는 해당 교사와 교장에게만 결과가 통보되는 설문조사 수준에 불과하다며 반대 측의 불안감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진보적 내용을 가르치거나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게 학생, 학부모 등의 정서와 어긋나더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이상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원평가 결과가 해당 교사에게 인사 및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낳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또 진보 성향의 교사들은 기존의 권위적인 교육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자칫 자족적인 수업을 하기 쉬운데 교원평가제의 도입은 피교육자들의 냉정한 반응을 통해 이런 함정을 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교원평가제 실시를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과연 바람직한 교육활동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가항목을 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2. 교원평가제의 쟁점첫째, 지금까지 실시됐던 근무평정제도의 폐지이다. 전교조 측에서는 교원평가를 실시하기에 앞서 우선 근무평정제도 먼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평가와 함께 실시되는 것은 낭비라는 지적이다. 또 근무평정제도는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근무평정 점수는 승진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으로 교장과 교감이 매기도록 되어 있다. 이러니 전교조로 교장과 교감에게 찍힌 교사는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다는 부정적 의견이 깔려 있다.둘째, 부적격 교사의 문제를 교원평가제도로 해결하려한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부적격 교사' 문제와 교원평가는 관계가 없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의 목적은 오직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있을 뿐 그 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며 "부적격 교사 문제와 교원평가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령 학생과 학부모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교사라 해도 비리를 저질렀다면 명백한 '부적격 교사'가 된다. 즉 교원평가와 부적격 판정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부는 '부적격 교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원평가와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전교조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부적격 교사 문제는 교원평가가 아닌 다른 법령의 적용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게 전교조의 입장이다. 교원평가와 부적격 교사 문제를 연계시킬 경우 자칫 '마녀사냥' 형태의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이 대목에서는 전교조와 교육부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부적격 교사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교원평가에 대한 지지로 교묘하게 결부시키는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셋째, 교원평가제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원 구조조정 문제는 교원평가에 대한 교육당국과 전교조 간 입장차이를 첨예한 대립으로 몰아간 주요한 원인이다. 현 전교조 지도부는 교원평가를 신자유주의적 교원 구조조정 정책의 신호탄이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교육부는 교원평가는 교원 구조조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교원평가와 교원 구조조정을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전교조 안에서도 미묘하게 입장이 엇갈린다. 전교조는 현재 세 후보 진영이 참가한 가운데 위원장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현 지도부인 장혜옥, 차상철 후보 진영이 교원평가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입장을 가장 강하게 취하고 있다.반면 정진화, 정진후 후보 진영, 강신만, 김현 후보 진영은 이런 입장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원평가와 교원 구조조정은 다소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 후보 진영 역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교원평가도 반대한다"는 현 지도부의 입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따라서 12월 초로 예정된 선거에서 현 지도부가 패배할 경우 교원평가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3. 교원 평가제의 주체“교사의 교육활동도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거부하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누가 평가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다르다. 진보 성향의 교사들은 현행 근평과 같은 학교장 중심의 평가에 대해 반발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학생이 교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교사들도 많다. '스승'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학| 2006.12.04| 5페이지| 1,500원| 조회(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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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과 체벌
    Ⅰ. 체벌이란Ⅱ. 체벌의 긍정적 ? 부정적 효과Ⅲ. 체벌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1. 체벌의 사회학적 접근2. 체벌의 윤리학적 접근3. 체벌의 심리학적 접근4. 체벌의 법률적 접근Ⅳ. 체벌의 교육적 대안Ⅴ. 결론Ⅵ. 참고문헌Ⅰ. 체벌이란체벌이란, 일정한 교육 목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것으로, 물리적 도구나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반드시 직접적으로 교사가 학생의 신체를 접속하여 고통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체에 간접적 고통을 주는 것도 벌의 목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인 이상 개념적으로 체벌이라 할 수 있다. 즉, 체벌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접촉을 통해 고통을 주어 처벌하는 것은 물론, 직접적 접촉은 없으나 여러 유형의 행동 제약을 통하여 처벌하는 것도 포함한다. 단체기합을 체벌 범주에 포함 시키기도 하는데, 일부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은 따돌림이나 수치심, 모멸감 유발 역시 합법적인 체벌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유럽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체벌도구로서 회초리 등을 널리 사용하였다. 반면에 체벌에 대한 비판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J.A 코메니우스, J.J루소, J.F 헤르바르트 등은 체벌에 반대한 사람들이다. 19~20세기에 이르러서는 체벌에 대한 비판, 반대론이 일반화되어 많은 나라에서 법률적으로 체벌을 금지하게 되었다.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표적인 체벌은 달초 또는 초달이라고 하는 회초리 매이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전날 배운 학과를 다음날 학우들이 열좌한 가운데 책을 덮거나 등지고 앉은 채로 배강하는데, 이를 못하면 목침 위에 서서 훈장으로부터 달초를 받았다고 한다.Ⅱ. 체벌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1. 긍정적 효과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변형시키기 위하여 시도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행동 통제의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는 것이며, 때로는 다른 방법으로 불가능한 것이 체벌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② 개인의 책임감을 발전 시켜준다.③ 학생들의 자기 훈련 능력을 길러준다.④ 도덕성의 발달을 도와준다.2. 부정적 효과① 회피행동을 유발한다. 체벌을 받은 학생은 권위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겁해지거나 적대적으로 되거나 또는 반항하게 된다.② 은혜행동을 유발한다. 체벌을 받은 학생은 자극의 판별을 학습하게 되어 벌주는 교사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을 때에만 바람직하지 못한 반응을 억제하게 된다.③ 공격적 성향을 유발한다. 체벌을 받음으로써 학생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구두로 설득하는 것 보다는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Ⅲ. 체벌에 대한 다학문적 접근1. 체벌의 사회학적 접근체벌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개념들을 요약하면, “학생의 학업과 생활이 부진하거나 그릇됨을 질책하여 보다 향상시키고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행하여지는 교사와 부모의 학생지도 행위로써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훈육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체벌은 가르린다는 전제하에 교육의 장에서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제재로서 신체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벌의 일종이다.이와 같은 체벌은 훈육의 한 형태로서 교육의 역사와 같이 할 만큼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최근까지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인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제거하거나 억제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러한 체벌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금하는 국가가 증가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상과 인권을 중시하는 현대사조의 영향으로 인간주의 교육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어린이의 인권존중 사상의 고조와 더불어 교육수단으로서의 체벌이 부당한 것으로 간주 되어 체벌 폐지가 등장하게 되었다.이러한 이유를 사회상의 변화에서 찾아보면 사부일체관의 약화를 들 수 있다. 스승이 부모를 대리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전통적 사고의 붕괴에 따라 최근 사부일체관이 약화되고 있고, 아울러 학교에서 사용되는 체벌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게 일고 있다. 아동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입장이 확대되면서, 교사의 임의적, 자의적, 즉흥적이고 적벌 절차가 결여된 체벌은 아동의 기본권 차원에서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다.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인간주의 교육과정의 운용도 체벌 사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실제 법원 판례의 결과도 정도에서 벗어난 체벌의 사용을 금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2. 체벌의 윤리학적 접근체벌의 정의와 관련지어 체벌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체벌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크게 응보주의와 공리주의의 두 가지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다.첫째로, 응보주의 입장에서 반도덕적 행위 또는 범죄에 대하여 체벌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옳으며, 그러므로 범죄자 내지 규칙 위반자가 그에 상응하여 체벌을 받는 일은 마땅한 일이다.둘째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체벌은 해로운 것이요 본질적으로 악폐이므로 그것은 보다 큰 악을 물리칠 가망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어야 한다.학교 체벌에 있어서 응보주의자들은 학교 안에서 규칙을 위반한 학생들에 대하여 체벌하는 점에 찬성할 것이다. 반면에 공리주의자들은 학생을 체벌하는 것이 보다 큰 악을 제거하는 명백한 수단이 되지 못하는 이상 체벌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이같은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양자의 입장을 활용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체벌의 문제가 논의되는 광범한 사례들을 놓고 심사숙고 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3. 체벌의 심리학적 접근체벌의 효과와 그 부작용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가 Thorndike로부터 시작된 이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Bandura는 공격적 행동은 관찰이나 모방을 통하여 학습되며, 반복 강화 될수록 모델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 또는 문화의 아동들은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고, 부모가 체벌을 할 때 이 체벌은 공격적인 모델을 제공하여 공격성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였다.Kounin and gump는 벌을 많이 사용하는 교사가 맡고 있는 학습에서는 그렇지 않는 학급에서보다 더 많은 적개심과 공격성이 나타났으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행동에 혼란을 일으켰으며, 학습활동에도 관심이 적음을 지적하면서 벌이 오히려 비행을 증가시키므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체벌에 관한 거의 모든 연구 결과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익이나 효과를 얻지 못하며 잘못되면 후에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통 심리학에서 체벌은 강한 벌의 범주에 포함되는데, 이러한 벌이 학교현장에서 체벌로 적용된다고 하였을 때 야기되는 부작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4. 체벌의 법률적 접근우리나라 교육법 제76조에 규정된 학교장의 징계권 속에는 체벌권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통설 판례의 입장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체벌이 구체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교육법 제 76조나 동법 시행령 제 77조 규정으로 볼 때 교육상의 체벌이 과연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바탕으로 생각해봐야 한다.첫째, 교육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목적성)둘째, 교육상의 필요가 있는 것이라야 한다.(필요성)셋째,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 교정이 불가능하여 부득이 행하는 것이라야 한다.(보충성)넷째, 체벌은 그 방법과 정도가 사회 관념상 비난받지 않을 객관적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객관성)다섯째, 체벌은 학생들의 자존심 등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인격성)교육현장에서 체벌이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전제하에 부득이 행해졌다 하더라도 과실로 신체기능에 이상을 가져오면 행사적 책임을 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기도 하고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까지도 각오해야 하므로 학생체벌은 어디까지나 인격향상을 위한 교육목적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방법으로 행사되어야 한다.Ⅳ. 체벌의 교육적 대안체벌 사용을 억제하려면 먼저 대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철학, 심리학 영역에서 도출된 원리를 토대로 하여 교사들에게 학교 분위기를 개선하고 학급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 체벌보다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다양한 이론과 실제를 제공할 수 있다.체벌에 대한 교육적 대안으로는 행동주의 모형, 인간관계 모형, 훈육 모형, 상담 모형, 교수 모형, 예방 모형 등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행동주의 모형과 인간관계 모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1. 행동주의 모형행동주의적 접근에 의하면 지적 영역이든 정의적 영역이든 행동은 강화의 원인에 의하여 점진적 형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긍정적, 부정적 강화가 체벌보다는 바람직한 학생행동의 개발에 더 효과적이다. 교사는 학생이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방안으로써 강화를 준다.
    교육학| 2006.12.04| 7페이지| 1,500원| 조회(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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