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물 주제 : 평생교육경영론평생교육기관의 조직변화 관리를 추진하고자 할 때, 평생교육 조직차원에서 대두될 수 있는 저해요인과 촉진요인으로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제시하고, 이를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제시하고,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시오.조직변화란 조직이 특정 상태에서 어떤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며, 조직의 적응수준을 변화시키고, 구성원의 내부적 행동을 변화시켜서 조직의 존속 내지는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조직변화의 유형으로는 계획된 변화와 계획되지 않은 변화가 있다.계획된 변화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가 이루어 진 것이고, 계획되지 않은 변하는 단순히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사후적으로 수용하기만 하고, 사전에 변화를 고안하거나 변화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한다. 평생교육기관은 일반 기업과는 그 설립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조직구성이나 조직의관리가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과는 고려해야할 부분들이 다르다. 특히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경쟁이 치열해 짐으로 학교교육으로는 경쟁의 가속화를 따라갈 수 없다. 또한 지식노동의 보편화로 인해 학습자의 교육에 대한 선호도가 변화하고, 반면 실질 소득의 정체로 교육 구매력은 감소하면서 기관들의 출혈경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조직변화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럼 평생교육 조직차원에서 대두될 수 있는 저해요인과 촉진요인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우선 저해요인부터 알아보자.1. 목표측면에서의 문제점.첫째. 조직변화의 목표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이 조직변화를 추진하고 있거나 추진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뚜렷한 방향과 목표점을 세우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존의 조직이 가지고 있던 문화와 부합되지 못하고 구성원들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 공감을 얻는데 실패하기도 한다.둘째. 목표가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평생교육기관이라는 기관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경제적 효율성 증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이다. 교육사업도 이윤창출이 궁극적으론 목표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다보면 본연의 핵심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컨텐츠의 질이 추락하여 기관의 경쟁력을 저해시킬 수 있게 된다.2. 제도면에서의 문제점평생교육기관은 평생교육법에 의거하여 운영되고 있지만, 각 기관마다 내규와 사규 혹은 기업의 풍토나 문화가 존재하여 거기에 따라 운영되는 부분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할 때 너무 급격하게 변화를 추진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부적응으로 기관의 능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혹은 반발로 인한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미래지향적 경영비전의 설정을 통해 조직변화의 구상단게에서부터 혁신적이 요소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성공적인 혁신을 지원하고 비전을 달성하는데 구성원들의 충분한 협의와 협조를 얻어내 견고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지금까지는 저해요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으로는 촉진요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촉진요인은 사실 저해요인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것이 촉진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조직의 변화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엔지리어링 적 접근과 심리적 접근으로 나누어 판단 할 수 있다.1. 엔지니어링 적 접근.평생교육기관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프로세스와 시스템,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 져 있는지 확인하고 보안책을 찾아서 문제점을 해결한다. 시행방법으로는 경영구조를 새로 조직한다던지, 전사적품질경영을 통해 교육컨텐츠나 교육서비스의 품질 뿐만 아니라 경영과 업무, 직장환경, 조직 구성원의 자질까지도 품질개념에 넣어 관리해야 한다. 엔지니어링적 접근의 출발점은 사업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기회를 얻는 다는 취지로 SWOT분석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래의 유치원교사로서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설명하시오.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성인기-노년기를 맞는다. 그것은 수천만년 전 인류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으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진행되어 왔다. 아기가 자라서 어른이되고, 그 어른이 아기를 돌보며 성인으로 길러낸다. 그 방법은 동서고금에 있어서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올바르게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미래에 유치원 교사가 될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할이나 자질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과거와 달리 유아들에게 이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도 단순해졌다. 그 말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시각정보와 혜택이 유아들에게 쏟아지고 있지만, 수동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유아의 입장에서는 활동할 수 있는 범위의 영역이 너무나 단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산으로 들로 골목으로 뛰어놀던 과거 세대와는 달리, 안전한 실내공간에서 주로 활동하고 형?누나?동생의 부재는 인간의 다양성과 어울림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치원교사들은 유아들에게 강한자극에 대해선 어느정도 차단을 시켜주어야 하고, 부족한 사회작용에 대해서는 길러줄 수 있는 자질과 역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자질과 역할은 다음과 같다.1. 섬세함과 성실함.유아들에게 유치원이란, 작은 사회이다. 아직 사회성이 부족한 유아들은 집에서 본대로 그동안 겪어 온대로 행동한다. 아직 타인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유아들은 자신의 행동에 선악분별이 약하기 때문에 유아들의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바로잡아 줄 성실함이 필요하다. 또 한, 아직 사리분별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고를 치고, 다칠 수 있는 여지가 역력하다. ‘미운 일곱살’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유아들은 말 그대로 사리분별이 약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악한 의도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보살펴야 한다.2. 단호함과 따듯함.아이를 키우다보면 육아에도 일명 ‘밀당’이 필요하다.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없어지고, 엄하게만 키우면 주늑이 들기 마련이다. 유치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아의 행동과 생각을 폭넓게 이해하고 따듯하게 안아주는 마음과 올바른 길을 인도할 때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예컨대 가정폭력으로 인해 유아에게 폭력성이 심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 아동에게 가정폭력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 아동을 배려한다고 폭력성을 내버려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 따듯한 관심과 사랑으로 아동의 상처를 치유해주면서 아동의 폭력성 또한 없어질 수 있도록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3. 끊임없는 공부와 다양한 시도.부모의 유아교육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교육개발 및 연구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교사의 실력함양도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는 부모의 학력이 높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교육에 대한 기대감도 예전보다 높아지고, 에듀케이션+케어가 합쳐진 에듀케어를 요구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유치원교사들도 교육을 준비 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교육프로그램들도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탄다. 본인이 어릴 때에 유행하던 교육방식과 현재 교육방식은 천지차이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연수를 참여하거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유치원교사는 교육전문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일반적인 교양부터 유아에 관한 폭넓은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4. 올바른 교육관과 직업윤리.아무리 좋은 교수기술을 가지고 공부를 많이 해도 올바른 교육관과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 긍정적인 성품으로 유아에 대한 올바른 아동관을 가지고 유아의 개성을 존중하며, 사랑과 믿음으로 교사라는 소명감을 가지고 유아교육의 발전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지금까지 유치원교사가 가져야할 자질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았다.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건,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교사로서 본인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사람을 사랑하며 내가 돌보는 아이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초기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유아기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 따라서 유치원 교사는 이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최근 일어나는 강력범죄 혹은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보면 끔찍하고 잔혹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범죄를 일으킨 사람의 과거를 보면 불우하고 특히, 유아기를 잘 못 보낸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반대로 성공적인 사람의 과거를 보면 유아기를 슬기롭고 즐겁게 보낸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헬렌켈러라고 볼 수 있다. 안보이고, 안들리고, 말못하는 장애를 가졌지만 설리번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으로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었다. 설리번과 헬렌 켈러의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아주 어릴 때 고열에 의해 보지 못 하고 듣지 못하게 된 헬렌켈러는 아무도 못말리는 흉폭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헬렌켈러가 불쌍해서 오냐오냐 대하고, 장애 덕분에 교육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였다. 하지만 헬렌켈러가 설리반 선생님을 만난 후 모든게 바뀌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던 헬렌켈러에게 선생님은 모든걸 하나하나 경험하게 하며 아무것도 모르던 헬렌켈러에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물을 만지게 하며 물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물의 원리까지 이해하게 만들었고, 이 것을 시작으로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기초적인 원리는 설리반 선생님의 지치지 않는 인내로의 반복교육과 따듯한 격려 였던 것 이다. 나는 모든 유치원교사가 모두 설리반 선생님의 교육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뛰어넘는 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헬렌켈러의 상황이 좀더 나빴을 뿐이지 모든 아이들은 헬렌켈러나 별반 다를게 없다라고 생각한다. 유아의 좁은 세계관을 키워주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해주고,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은 유치원교사의 가장 큰 몫이 아닐까? 나의 경험을 하나 이야기 하자면, 나는 선교원을 다녔다. 선교원의 특성상 수업의 3/1정도는 교리수업이었고, 굉장히 저렴한 원비 덕분에 교구들의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몇 년전에 샀는지 알 수 없이 더러운 인형들과 늘 부족한 간식과 모든 행사에 붙는 프로모션비용. 부모님은 교회라 믿고 보내셨지만, 늘 그런것에 불만이었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병원놀이를 한다고 병원놀이 세트를 사오라고 했다. 난 내것을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유치원 원감선생님이 유치원에서 다 같이 써야지 왜 이게 니꺼냐면서 일명 ‘싸대기’를 올려쳤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유치원을 졸업한지 20년이 넘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과 더럽고 불량했던 유치원 시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당시의 추억이 모여 현재 끈임 없이 교육계에서 일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 자녀는 그런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
I. 한국사의 바른 이해1. 역사의 학습 목적1) 역사의 의미1) 역사(歷史)의 개념① 역(歷):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랑케 사관)② 사(史): 주관적 기록으로 존재하는 쓰여진 역사2) 역사가의 올바른 자세: 사료(史料)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결과를 자신의 주관적 사관에 입각하여 서술(2) 역사 학습의 목적1) 역사 학습의 두 가지 의미① 역사를 배움: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 확대② 역사로서 배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음2) 역사 학습의 목적①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현재를 바르게 이해: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 확립② 역사를 통해 삶의 지혜 습득: 당면한 문제 해결, 미래 전망?대처 가능③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력 신장: 역사의 내면에 담긴 의미 파악(사고력 신장)2. 한국사와 세계사(1) 한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1) 역사의 특수성과 보편성① 모든 민족의 역사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② 올바른 역사 이해: 보편성과 특수성의 이해 필요2) 우리 민족의 보편성과 특수성① 보편성: 주변 민족과의 교류→인류의 공통 가치(자유?평등..) 추구② 특수성: 단일 민족의 전통 유지, 충?효 중시, 두레?계?향도 등의 공동체 조직(2) 민족 문화의 이해1) 우리 문화의 특징(특수성+보편성 존재)① 선사시대: 아시아의 북방 문화와 연계② 고대사회: 중국 문화와 깊은 연관(한자, 유교 등)③ 고려시대: 불교를 채택④ 조선시대: 유학의 생활화2) 민족 문화의 올바른 발전 방향: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융합3) 세계화 시대의 바른 역사 의식① 개방적 민족주의: 민족 주체성 견지, 외부 세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② 진취적 역사 정신: 인류평화와 복리 증진에 기여II. 선사 시대의 문화와 국가의 형성1. 선사 시대의 전개(1) 선사 시대의 세계1) 인류의 기원① 인류 변천의 원인: 직립 보행과 손의 사용→도구 발달, 뇌의 발달② 최초의 인류 출현㉠ 오스트랄로피테쿠스(350만 년 전): 직립 보행, 간단한 도구 사용, 두뇌 용량 작음삼국간의 항쟁4C백제의 전성기(근초고왕, 4세기 백제의 발전)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하여 대응5C고구려의 전성기(광개토대왕, 장수왕)백제의 쇠퇴기광개토대왕이 대제국 건설장수왕의 남하정책(평양천도)↔나?제 동맹 결성(중원 고구려비)백제의 웅진 천도(475)→대외팽창 위축6C백제의 중흥기신라의 영토 확장기 (법흥왕, 진흥왕)가야연맹의 분열, 대가야의 멸망→가야연맹의 해체동성왕-나?제 동맹 강화→고구려에 대항성왕-사비 천도, 한강 지역 회복(553)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556) → 나?제 동맹 결렬(단양 적성비, 순수비)7C신라의 삼국 통일기신라?수(당) ↔ 고구려?백제(여?제 동맹), 돌궐(국제전적 양상, 십자외교)(3) 대외 항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1)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① 6C 말 동아시아 정세㉠ 수의 중국 통일: 고구려 침략 시도㉡ 십자외교: 남북-동서 연합 세력 구축(돌궐-고구려-백제-왜 VS 수-신라)② 여?수 전쟁: 고구려의 요서 지방(전략적 요충지) 선제 공격→수나라 문제?양제 침입(2차례)→을지문덕의 살수대첩(612) 승리③ 여?당 전쟁㉠ 고구려의 정세: 천리장성 축조, 연개소문의 집권과 대당 강경책㉡ 당의 침입: 당 태종의 침입(요동성 공격)→안시성 싸움의 승리④ 여?수, 여?당 전쟁의 의의: 고구려의 방어로 당의 한반도 침입을 저지시킴2)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① 신라의 세력 강화: 김춘추의 권력 장악, 나?당 연합군 결성② 백제의 멸망(660)㉠ 멸망 원인: 정치 질서의 문란, 지배층의 향락㉡ 과정: 황산벌 전투 패배, 당군의 금강 침입③ 고구려의 멸망(668)㉠ 멸망 원인: 거듭된 전쟁?요동 지방의 국경 방어선 붕괴(국외), 정치적 불안정?민심 불안정?지배권 다툼(국내)㉡ 과정: 나?당 연합군의 공격→평양성 함락④ 부흥 운동의 전개: 백제-복신?도침?풍?흑치상지(주류성, 임존성),고구려-고연무?검모잠(한성)?안승3) 신라의 삼국 통일① 신라의 대당 전쟁㉠ 원인: 당의 지배 야욕㉡ 과정: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의 승리㉢ 결과: 당군 축출→방 유력자(호족)에게 빼앗김㉡ 남의 토지를 빌리거나, 노비로 자신을 팔거나, 유랑민이나 도적이 됨→고리대 성행으로 더욱 심화됨④ 향?부곡민: 농민과 비슷한 생활을 하였으나 농민보다 무거운 부담(천민 대우)⑤ 노비: 왕실?관청?귀족?절 등에 소속되어 물품 제작, 일용 잡무 및 주인의 땅 경작5) 발해의 경제 발달① 수취 제도㉠ 조세: 조, 콩, 보리 등 곡물 징수㉡ 공물: 베, 명주, 가죽 등 특산물 징수㉢ 부역: 궁궐, 관청 등의 건축에 농민 동원② 귀족 경제 발달: 대토지 소유, 당으로부터 비단?서적 수입→화려한 생활③ 농업㉠ 밭농사: 기후 조건의 한계로 콩, 조, 보리, 기장 등 밭농사 중심㉡ 논농사: 철제 농기구 사용, 수리 시설 확충, 일부 지방 벼농사④ 목축과 수렵: 돼지?말?소?양 사육, 솔빈부의 말은 주요 수출품, 모피?녹용?사향 생산 및수출⑤ 어업: 도구 개량→숭어?문어?대게?고래 포획⑥ 수공업: 금속가공업(철, 구리, 금, 은), 직물업(삼베, 명주, 비단), 도자기업 발달, 철 생산풍부, 구리 제련술 발달⑦ 상업: 도시와 교통 요충지에 상업 발달, 현물 화폐 사용, 외국 화폐 유통⑧ 무역㉠ 대당 무역 발달(산둥반도 덩조우에 발해관 설치)-수출품: 모피?인삼?불상?자기-수입품: 귀족들의 수요품인 비단?책㉡ 대일 무역: 일본과의 외교 관계 중시(당과 신라 사이에서의 고립 탈피)→활발한 무역 활동 전개3. 고대의 사회(1) 신분제 사회의 성립1) 사회 계층과 신분 제도① 신분 제도의 출현: 정복 전쟁(청동?철제 무기 사용)→부족의 통합 과정→지배층 사이의 위계 서열형성→신분 제도로 발전② 읍락 사회의 신분㉠ 호민: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 하호: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 노비: 주인에 예속된 천민층③ 귀족의 등장: 부여와 고구려 초기 가?대가 등의 권력자가 호민을 통해 읍락 지배→신하와 군사력 소유, 정치에 참여→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귀족으로 편제→삼국 시대에 귀족?평민?천민의 신분 형성④ 귀족의 신분제 운영: 출신 가문의 등급에 따라 극복?조화: 「십문화쟁론」(일심 사상?화쟁 사상)-불교의 대중화(정토종-아미타 신앙): 나무아미타불을 암송하는 것만으로 극락으로 왕생할 수 있다는 신앙→불교를 서민층에 널리 보급시키는데 기여(귀족-사후 극락 왕생, 서민-현세에 극락 왕생)㉡ 의상-화엄 사상 정립(「화엄일승법계도」):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상-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제자 양성, 부석사 건립: 불교 문화의 폭 확대-관음 신앙: 현세에서의 고난 구제㉢ 혜초: 인도로 구법, 「왕오천축국전」 저술② 발해: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성행, 상경에서 발굴된 10여 개의 절터와 불상5) 선종과 풍수지리설① 선종㉠ 등장: 삼국 통일 전후에 전래→신라 말에 유행㉡ 성격: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선종 9산의 개창: 호족 출신의 선종 승려들이 호족 세력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둠㉣ 영향: 호족과 함께 지방을 근거로 성장하여 지방 문화 역량의 증대, 고려 건설의사상적 바탕② 풍수지리설(신라 말 승려 도선이 당에서 전래)㉠ 성격-인문지리적 학설(산세?수세를 살펴 도읍?주택?묘지 선정)로 국토의 효율적이용과 관련-도참 신앙과 결합하여 산수의 생김새로 미래를 예측하는 경향 대두㉡ 경주 중심의 지리적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지방의 중요성 자각 계기: 국토의 재편성 주장, 신라 정부의 권위 약화(2) 과학 기술의 발달1) 천문학과 수학① 천문학의 발달: 천체 관측을 중심으로 발달㉠ 배경: 농경과 관련, 왕의 권위를 하늘과 연결㉡ 발달-고구려: 천문도, 고분 벽화의 별자리 그림(사실적, 정확한 관측이 토대)-신라: 첨성대(7세기 선덕 여왕)-천문현상 관측: 일?월식, 혜성의 출현, 기상 이변 등 기록(삼국사기)② 수학의 발달(조형물에 수학적 지식 활용)㉠ 고구려: 고분의 석실?천장의 구조㉡ 백제: 정림사지 5층 석탑㉢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석굴암의 석굴,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다보탑 축조2) 목판 인쇄술과 제지술의 발달① 배경: 불교문화의 자겸의 난(민심 불안), 서경길지론 대두㉡ 경과: 서경파의 서경 천도 추진과 칭제건원 및 금국 정벌 주장→개경파 귀족의 반대→서경 천도 불가능→서경파의 반란→진압㉢ 성격(서경파 귀족과 개경파 귀족의 대립)서경파 귀족개경파 귀족고구려 계승 이념신라 계승 이념전통 사상(풍수 지리설)유교 정치 사상자주적, 개혁적사대적, 보수적3) 무신 정권의 성립① 원인: 문?무반의 차별 대우, 군인들의 생활고, 의종의 실정 등② 과정: 정중부의 난(중방 중심의 독재 정치)③ 권력 쟁탈전: 정중부(중방)→경대승(도방)→이의민(도방)→최충헌(교정도감)④ 최씨 정권㉠ 강력한 전제 정치 실시: 민란 진압, 반대파 제거㉡ 최씨 정권의 기반-정치적: 교정도감(최고 집정부), 정방(인사권 장악), 서방(문신의 재등용)-경제적: 광대한 농장 소유-군사적: 도방과 삼별초(3) 통치 체제의 정비1) 중앙 정치 조직① 2성 6부(당의 3성 6부 제도를 토대로 함)㉠ 중서문하성: 최고 기구(문하 시중-국정 총괄)㉡ 상서성: 정책의 집행(6부 관장)② 중추원: 군사 기밀?왕명 출납 담당③ 삼사: 회계 기관(화폐, 곡식의 출납 및 회계)④ 귀족의 합의 기구(고려의 독자적 기구)㉠ 도병마사: 재신(宰臣)+추밀(樞密)들의 합좌 기관→국방 문제 담당(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칭되어 국정 전반을 관장)㉡ 식목도감(임시): 대내?외적인 법제?격식 문제 취급⑤ 어사대: 관리 감찰, 국왕 보좌, 언관의 역할⑥ 대간: 어사대+낭사(중서 문하성)→봉박?서경?간쟁(정치 운영의 견제와 균형)⑦ 6부: 상서성의 하부 기관, 행정 실무 담당2) 지방 행정 조직의 정비① 지방 행정 조직㉠ 12목에 지방관을 파견(성종)→5도 양계(현종)㉡ 5도(일반 행정 단위), 양계(북방 국경 지대)② 특징㉠ 주현(主縣)과 속현(屬縣) 존재(주현 수자주성)2) 예술계의 변화① 근대 음악 : 찬송가 보급, 창가 유행② 연극 : 민속 가면극 성행, 원각사(신극 공연) 설립3) 종교계의 움직임① 천주교?개신교 : 전통적 가치관과 충둘, 지나여
전각(篆刻) 이란 무엇인가?전각은 서화(書畵)에서 없으면 안될 정도로 중요한 용구이자,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예술품이다.잘 쓰여진 서예 작품이나 그림에 전각(낙관)이 찍혀있지 않으면 미완성 작품으로 인식될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1. 전각(篆刻)과 낙관(落款)① 낙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표시를 하게 된다. 유화나 조각은 사인으로 통용되지만 한국화, 문인화, 서예등에서는 낙관이란 용어로 흔히 불리고 있다.②그런데 여기서 낙관을 할 때 쓰이는 도장을 ‘낙관’이라는 고유어로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때 쓰이는도장은 ‘낙관’이 아니라 ‘전각’ 이라고 한다.③낙관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 관지(款識)를 하고 작가의 도장을 찍는 전체를 이르는 것.전각은 전자(篆字)를 돌에다 새겨 찍을 수 있도록 새기는 것. 전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서로 새긴 것을일컽는 말이 아니고 해서나 예서 등으로 새긴 것도 모두 전각이라고 한다. 즉 전각=도장④초형인: 그림이나 동물 따위의 형상⑤실용인: 일상 생활에서 널리 사용⑥관인제도: 인장 제도가 확실하게 지켜지던 옛날에는 공적인 용도의 관인 외에도 사인(私人)이 있어 여러방면에 두루 쓰였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관인 제도는 현재도 적용되고 있으며, 중국의 진나라 때부터 엄격하게 확립되었다.⑦전각의 재료: 금, 은, 동, 옥, 상아, 나무, 죽근(竹根). 예전에는 인장의 규격이 엄정한 제도 아래 있었기 때문에 새기고 싶다고 제멋대로 참외덩이 만한 황금에 제 이름을 새겨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재료, 크기,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사용2. 전각의 역사도장은 필기구가 발명되기 이전에 이미 사용하였으며,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고새와 진, 한 대의 도장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오늘날 우리가 작품에 사용하는 낙관용 전각은 일반적으로 중국 명나라 때 문팽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도장이 사용되었지만, 문팽 이전에는 주인과 착인의 많고 적음을 통해서 그 당시 사회 상황을 알수 있다.평화로운 시대가 길어지면 사회 전반이 여유롭기 때문에 주물을 가공한 주인이 많았고, 사회가 어지러우면주물로 제조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착인이 많아 진다.④인문: 태평시절- 훌륭한 인문, 난새-조잡한 인문⑤초형인: 초형인의 연대 추정은 확실하지 않다. 하?상?진 3대에 걸친 고물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이를 뒷받침한 이론을 새우 사람이 진보재 이다. 그는 “원초형인은 하나라가 아니면 상나라 때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때의 초형인은 일반적인 편지등을 보낼 때 봉인용으로 사용한 듯 하다. 그러나 현재 그것을 입증할 만한 예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문자를 곁들이 초형인은 한나라 때의 것이 비교적 많이 나타난다.사용한 문자는 대개 1,2 자나 2,3 자가 대부분이고 간혼 5,6 자도 보인다. 그것은 도장을 새기는 이가 자기 기호에 맞는 형상을 새겨 넣고 그 다음에 자신의 성 이나 이름 또는 자 호를 새겨 넣었기 때문 심지어출생년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후세로 내려오면서 많은 문인들이 문자가 곁들여진 초형인을 다투어 사용- 문자가 곁들여 진 것 4령(靈)인이라고 이름붙여 또 하나의 인격을 이룬 것을 중시해야 함.육조시대- 봉미(鳳尾)서가 성행 화서라고도 함. 송나라 때에 이르러 돌과 나무에 새겨서 실제로 사용-서압인이라고 함. 이것은 문자이면서도 문자가 아니고, 그림 같으면서도 그림이 아닌 것이지만, 문자를 필기하는 형식에서 그림의 모양을 갖추게 한 것. 엄밀하게는 초형인과 다름 요즘의 사인과도 같은 것임. 즉, 초형인과 서압인은 근본적으로는 분명히 다르나 현태가 모두 문자가 아니라는 공통점과 그림과 사인이라는 차이가 있다.전각의 창조도장이 왜 믿음의 표시가 되었을까-크기가 작으면서도 상징하는 의미에 함축성이 있었고, 보간과 운반이 쉬워서 사용이 편리했기 때문. 관청에 도장을 제조하는 부서를 별도로 두고 모든 도장을 관장케 함->이것이 시대를 거듭하면서 도장이 지닌 예술성과 조형성에 사람들이 매전을 만 듦전각이 단순하게 서화 작품에 이름을 쓰고 찍는 도장만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전각 그 자체의 예술성과 학문적 뒷받침 등에 이르기까지 규명해 보는 자세가 더욱 바람직하다. 또한 전각은 서화 작품만이 아닌 일반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예술이다.①봉니(封泥)인: 도장이 서로간에 신표로 등장하게 된 맨 처음 형태는 봉니인이라는 거시다. 이 봉니인은 청나라의 도광 연간 초에 사천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그 뒤에 산동의 임치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니(진흙)의 색은 거의가 청자색 이었다. 그러나 이 봉니인도 실제 사용된 것은 한나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니인은 공문서를 보내거나 어쩌다 사신을 보낼 때에도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밀봉하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죽간이나 목간은 한꺼번에 다발로 묶어서 매듭지워진 곳에 진흙을 발라 두고 그 위에 검인 같이 찍은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잘에 문서를 넣고 묶은 끈을 진흙으로 싸매고, 그 위에 찍었던 흔적도 볼 수 있다.=두검봉=문서를 봉하기 위한 도장두검봉의 모양- 네모난 것. 위는 크며 아래는 작은 대체로 한변이 8분 높이가 2분 4인자가 많고 주문으로새긴 것 진흙은 2분의 두깨로 바름봉니인의 매력: 형태 자체가 규칙적인 제약을 벗어남.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말단 벼슬아치난 학자,여러 계층에서 두루 사용.②장서인(藏書印): 구시대 명저 등에서 자주 대할 수 있는 도장. 소장하는 책에 찍어두는 도장. 비슷한 것: 감정인, 배관인, 과안인. 황제가 본 것은 어람이라 하여 보는 것마다 반드시 도장을 찍음.감정인: 특별한 작품을 감정한 후 찍는 도장. (조선 안기의 도장이 찍혀 있으면 명품 취급, 황제도장은 보물)도장이 적게 찍혀 있으면 작품의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하는 풍조도 생김③사인(私人):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것. 그렇다고 마구잡이식이 아닌 일정한 격과 규율이 있음.사인의 종류- 성명인, 아호인, 자인 .성명과 아호인, 아호인과 자인, 당호인과 자인 등을 짝을 지어 찍을 수기기 보다는 인측면에 시, 사라든가 인을 논할 말, 또는 인문의 출처, 새겨주는 상대에 대한 인상. 새기게 된 경위 등 형편에 맞는 좋은 글귀를 도장 측면에 남기게 되었다.이런 것으로 서령의 많은 전각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면서도 정교하고 능숙한 것으로 거의가 진(晋)당(唐)의 품격이 그대로 풍기고 있다. 장산당, 진추당, 황소송, 조차한, 서삼경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호곽은 측관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정교하고 중후하며 세련미 넘치는 측관 작품을 남겼다. 이는 지금도 후학들에게 훌륭한 교본으로 애용되고 있다.그러나 그때 까지는 초기의 초서에서 정경의 해서를 거쳐, 청나라 말기에는 거의가 비문 같은 육조풍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등완백에 이르러서는 손 가는 대로 전서, 예서, 광초를 새기기 시작했다. 등완백은 전혀 사전에 묵서하지 않았어도 결코 균형이 이지러진다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너무나 조화로워 참으로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었으며, 이 방법은 포세신과 오희재 등으로 이어져 발전하게 된다.전각의 기법도법붓에도 중봉과 측봉이 있듯이 칼에도 역시 중봉과 측봉이 있다. 글씨에 여러 서체가 있듯 도장에도 또한 주문 백문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있다. 이에 따라 칼 쓰는 법도 자연 달라지게 마련이다.칼 쓰는 법에는 칼을 잡는 집도와 칼을 움직여 나가는 운도가 있다.①집도- 손가락 만으로 잡는 쌍구법 - 세밀하고 까다로운 작업한꺼번에 손으로 도간을 잡는 악관법 - 선이 굵고 큰 도장을 새길 떄②운도- 붓으로 글씨 쓰듯 앞으로 당겨야 하는 것으로 규정, 요령에 의해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밀어붙여도 당기는 것과 똑같은 효과. 상업용 인장포에서 주로 밀어내며 새기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음.(밀어서 새기는 것이 5,6,배 쉽다.)장법방형안에 글자를 적당히 배체하는 것용구의 조건1. 인도: 전각도, 철필이라고도 하지요. 시중에 많은 전각도가 있지만 의외로 손에 잘 맞고 여러 요구사항을 충족시켜 주는 제품이 잘 띄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저는 중제)은 값도 비싸고 사용 전에 물이나 석유에 충분히 적셔야 합니다. 휴대도 곤란하구요.다이아몬드 강판에다 꼭 전각도 뿐만 아니라 인재도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따로 사포도 필요 없으니 좋지요~ ㅋㅋㅋ3. 사포: 동네 철물점에도 있지요. 거친 것으로 80번, 100번대 근방, 마무리하는 고운 것으로 400번 이하의 것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광을 내는 용도라면 1000번 이하라야 합니다.4. 유리판: 사포를 올려 놓고 인재를 평평하게 갈아내는 받침으로 씁니다. 두꺼워야 좋겠지요.저는 유리판 대신 적당한 크기로 재단하고 곱게 갈아낸 화강암 판을 공사장에서 얻어다 사용합니다. 유리판보다 안전하거든요.5. 세필: 최소한 두 자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먹을 적셔 사용하고 또 하나는 주묵용입니다.6. 먹: 전각용 먹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만, 전각용 작은 벼루에 쓸만한 작은 먹이면 좋겠지요. 쓰시다 남은 자투리 먹이면 딱 좋습니다^^ 어차피 다 새겨내고 씻어낼 용도이므로 고급 먹은 필요 없다고 봅니다.7. 주묵: 액체 주묵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묽어서 인재 위를 불투명하게 덮어 칠하거나 먹으로 포자한 글씨를 수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데다, 완전히 뽀송뽀송하게 마르지 않습니다. 찐득한 점성이 남아 있지요.차라리 오렌지색 포스터칼라가 더 낫습니다. 그러나 포스터칼라는 전각을 새기는 동안 손에 스치면서 비교적 쉽게 지워집니다.필방에 가 보시면 먹처럼 갈아 쓰는 동양화용 고체 물감으로 '봉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제는 질도 좋고 잘 지워지지 않는 점에서 최고입니다만 2천원짜리 국산도 전각 용도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씁니다.8. 벼루: 먹을 사용하는 벼루는 보통의 것을 써도 된다 하지만, 주묵을 갈아 쓰려면 따로 주묵용 벼루가 있어야 합니다. 연지가 둘 파인 전각용 벼루가 있습니다.9. 연적: 작은 벼루를 사용하시고 주묵을 갈아 쓰신다면 연적을 쓰시면 편리합니다. 전각은 몇 방울의 물을 자주 쓰기 때문이죠.필방에 흔히 있는 저렴한 연,
시기로 보는 팝아트1955년: 25세 미국화가 제스퍼 존스 미국 국기 연작을 제작하였다.30세 로버트 라우센버그 콤바인 페인팅을 제작하다.1958년 3월 라우젠버그 개인전1952년~1955년: 런던에서는 미술가들과 디자이너들, 그리고 미술사가들로 이루어진 한 소규모 집단에 의해서 영화, 만화, 광고, 상품에서 발견되는 대중적 형상에서 나타나는 상징과 표상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짐1956년: ‘이것이 내일이다’ 전 열림 - 건축과 시각미술의 영역이 협동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기 위한 것, 특징적인 것: 화가 리처드 해밀턴과 존 맥해일이 건축가 존뵐커와 협동하여 전시한 작품1958년 3월: 해밀턴-건축잡지(건축디자인)에 와 설명문 개제1959년: 카프로의 첫 번째 대중 공개 ‘해프닝’이 루벤 화랑에서 개최됨, 재스퍼 존스와 라우센버그가 참여---------------------------------------------------------------------------1960~61년: 리처드 스미스 ‘상황’전 출품1961년: 데이비드 호크니 뉴욕 방문12월 올덴버그 뉴욕에서 하나의 전시물로서 상점 개점1962년: 스미스 런던에서 개인전어빙 샌들러가 새로운 미국회화에 대해 지적영국의 평론가 알로위이- 매스컴이 집중하는 대중예술에서 현재의 의미로 팝아트의 의미 확대앤디 워홀이 팝아트 운동의 기념비적 작품인 을 그림,뉴욕의 제니스 화랑 ‘뉴 리얼리스트 전’ 헤밀턴의 사진 꼴라주 작품 중 보디빌딩 하는 남자 손 에 들린 거대한 캔디에 ‘pop'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것에서 팝아트라는 명칭 유래9월 뉴욕의 그린화랑에서 올덴버그와 리히텐슈타인 등 팝아티스트들은 전후 미국 사회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즐겨 풍자함1964년: 영국 비평가 데이비드 실베스터, 미국 평론가 시드니 틸림 - 팝아트에 대한 긍정적이고 예리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근거와 팝아트 내의 다양한 경향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반 제 공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라우센버그가 대상 수상1965~66년: 리히텐슈d Hamilton)“팝 아트는 콜라병 같은 사물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었다.미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을 즐겁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 by 필립 존슨미국의 팝아트와 영국의 팝아트※팝아트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그러나 상호 독립적으로 등장하였다미국영국- 팝아트의 주요 원천은 미국, 19세기 이래의 강한 사실회화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필요없었음추상표현주의, 다다의 반미학을 부정하며 등장-미국의 비평가들은 팝아트 이전의 미술을 옹호함, 몇몇 젊은 비평가들은 환영-미국인들에게는 화려한 소비경제의 세계가 그다지 강렬하게 마음을 끄는 요소가 아니었음-1960년대 초 팝 미술가들이 1970년대에도 남아있음 미술계에 동화됨-미국의 팝아트가 영국보다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영국에서 행해진 매스 미디어 형상에 대한 탐구는 팝아트가 표면화 되고 명명되기 전 몇 년간 그 지적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함-영국의 여타 화가들은 미술이 일화나 논쟁과도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데 주력-미술을 통한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오랜 전통을 수용한 예임-영국의 비평가들은 팝아트 옹호, 특히 미국작가들보다 낭만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중적 형상에 우호적으로 반응-각각의 미술가들이 보다 깊은 개인적 목표를 추구함에 따라 팝아트가 금방 해체됨※대서양 안쪽 연안에서 활동한 여타의 많은 작가들도 팝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작품 제작- 이같은 미술운동은 미국적이지만 빠르게 확산되어 소비사회 자체만큼 국제적인 것이 됨팝아트는 왜 등장했는가??① 추상표현주의를 비판하며 등장② 대량생산되는 대중 영상물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발견③ 이 당시 미국은 산업 국가로 낙관적인 사회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음. 팝아트는 산업 문명의 예술특히 미국이 팝아트의 구심점이 된 것은 소통의 극대적인 발전과 정보의 번창 , 고도의 기술적 실행 이 가능했기 때문④ 과거에는 귀족들이 문화를 지배했지만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대중이 문화를 지배하기 때문=그러므로 팝아트는 일상생활에 유행하는 대거의 미술이 가지는 영향력과 한계성에 대하여 폭 넓은 의식을 갖게 되었던 점에도 그 요일이 있다. 양 극단 중 하나는, 주로 기존 미술의 범주 속에서 아름답고 의미있는 미술작품을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미술가들이다. 우리는 이들은 ‘마티스 전통’이러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한 극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미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미술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에 새롭게 순응하는 태도로 도전하는 미술가들이다. 이같은 경향은 ‘뒤샹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팝아트는 뒤샹전통, 마티스는 옵아트로 이어진다.팝아트의 작가들 ( 미국과 영국을 분리해서 봅시다 )1) 영국의 Pop Art팝 아트는 흔히 미국적인 현상으로 간주되어 왔고 1962년 '뉴 리얼리스트전' 이후 일반화 되었으나 실재로는 195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초부터 젊은 작가들은 모여서 대중사회의 문화, 예술, 매스미디어와 같은 문제를 토론하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일련의 이런 활동을 통해서 팝 아트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영국의 팝 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갖고 구태의연한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 시키고자 했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전개 되었다. 영국의 팝 아트는??50년대 중반 인디펜던트(indipendent)그룹 안에서 생겼을때 아주 폐쇄적인 작은 협회로 런던의 '현대미술연구소 (ICA,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에 가끔 합류한다. 이 그룹은 서부영화, 우주 공상소설, 대중문화, 테크놀러지, 소비사회 그리고 광고에 대해 연구하고 1958년에는 다른 어떤 사소한 잡지에서보다 L.A.외곽 지역에서 발간된 공상과학잡지에 더욱 강한 상상력이 존재함을 이해함으로써 그 이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파올로치) 즉 그들은 당시에 반미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당대 상황의 여러 측면을 주목했다. 그들의 이러한 회합으로 부터 '뉴브르탈리즘(New Brutalism))'이라는 말이 나왔고 리차드 해밀턴, 파올로치 등의 작품에서 그 후 목적이 결코 풍자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도시문명의 추함과 불평등을 공격했던 1930년대 사회적 사실주의 작가들이나 게오르게 크로츠와 같은 표현주의자가 아니었다.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사실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즉 팝아트의 원류로 종종 다다가 거론되는데 그것은 언뜻보기에 다다의 기법, 즉 다다의 고찰물의 재생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팝아트는 다다의 반예술적 철학은 전혀 갖고있지 않았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경향이었다.⑵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Eduardo Paolozzi, 1924.5.7.~)영국 팝아트를 선도한 조각가. 극사실주의와 아르브뤼(art brut:생소한 예술)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1954년 이후로 미술과 기술공학의 관계에 몰두했고 팝문화의 진지한 대변자로서 활약했다. 그 외에 예술과 생활의 간격을 없애려는 팝아트적인 시도에 만화, 광고등을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자신이나 친구, 연인등의 생활을 이용하며 피카소, 마티스에게서 영감받기도 한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 팝아트 작가들중 가장 널리 알려진 피터 블레이크, 선정적인 이미지의 애렌 존스등이 주요 작가로 활동하였다.⑶ R.B.키타이(R.B.KITAI, 1932년 출생)영국의 팝 아트의 발전에 애매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미국인 R.B.키타이이다. 그는 왕립미술학교에서 군위탁병 수업을 쌓고 그 후로 주로 영국에서 살았다. 키타이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하며 평면적인 색면을 강하게 부각되는 선과 결합시켜 일상적인 장면이나 현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작품은 그 자체로 환상과 기묘한 느낌의 충격을 주는 불완전한 감각과 모든 종류의 연상이 함축된 단편화된 이미지로 되어있다. 만화같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팝 아트적 전통의 테두리 내에 한정시키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들은 영국 팝 아트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또 반대로 영국 팝 아트 작가들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마적》과 스트라빈스키의 《방탕아의 추이 The Rake's Progress》를 위한 무대를 디자인한 바 있다.펴낸 책에는 《호크니가 쓴 호크니 Hockney by Hockney》(1976), 《펜과 연필 그리고 잉크와 함께 한 여행 Travels with Pen, Pencil and Ink》(1978), 《종이 웅덩이 Paper Pools》(1980), 《데이비드 호크니 사진집 David Hockney Photographs》(1982), 《중국 일기 China Diary》(1983), 《호크니의 무대 미술 Hockney Paints the Stage》(1983) 등이 있다.작품에는 《배꽃이 핀 고속도로 Pearblossom Highway》 《빅거 스플래쉬 A Bigger Splash》(1697) 등이 있다.2) 미국의 Pop Art미국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의 애매하고 환영적(幻影的)인 형태와 주관적인 미학에 대한 반동으로 발생하였다. 미국의 팝 아트는 특히 전위적인 작곡가 존케이지의 지극히 평범한 것조차도 미적, 예술적인 기치가 있다는 사상에 고무되었고 현대의 테크놀러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초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제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특히 라우센버그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되는 물체, 이를테면 코카콜라병, 자동차의 타이어, 침대 등을 이용하여 이른바 컴바인 페인팅(삶과 예술을 결합시키려는 의도)을 창안해냄으로써 팝 아트가 성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의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상적으로 흘러넘치는 영상 또는 물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는 반미학적이고, 다다적인 사고방식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다이즘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팝 아트가 고도로 세련된 기술에 의해 '일상'을 미술의 영역 또는 사회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 있으며 또한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는 구상적이지만 회화 활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