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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이먼샤마의 미술특강 - “Caravaggio 카르바조” VTR을 시청하고
    “Caravaggio” VTR을 시청하고...? Summary +Critic이 VTR를 보면서 로마시대의 유럽과 카톨릭(종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으며,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Canon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미술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데, 이에 반한 시대에 천재이자 악당이라고 평가되는 카라바조. 그의 인생과정과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러한 평가를 받는지... 기존의 Canon에 대한 대처는 어떠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과거 로마 기독교 제국에서는 역사상 유래 없는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개신교는 카톨릭 교회의 문제를 경고하고 성경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였으며, 거리에는 여러 계층에 사람들이 공존하였습니다. 카라바조는 이러한 시대의 어두운 밤거리 로마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약간은 문란하고 탐욕적인 현실 속에 살면서, 그의 작품에서도 신성함 같은 것을 배제한 세속적인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왔습니다.그는 어려서 밀라노에서 도제생활을 하였는데, 그 당시 거장들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습득하는 과정이 자신의 아름다운 작품을 그릴준비가 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그에 의문을 품고, 현실적인 지금 보이는 것이 예술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카라바조는 그 당시 예술경향에 대해 아무관심이 없었습니다. 한 예로 그의 작품 "병든 바쿠스"에는 과거 거장에 그림을 모방해야 하는 처지를 빗대어 나타내었습니다. 바쿠스는 원래 젊고 아름다움을 보이는 신이지만, 카라바조는 신성한 신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병든 현실적인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시대상 상당히 충격적인 발상과 시도였으며, 이는 그의 현실적인 것에 대한 추구와 표현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로마 프란체시스 성당 벽에 그린 그림에도 보면 종교화조차 그가 살던 세속적인 것까지 교묘하게 접목하였습니다. "성 마태오의 소명"에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예수를 신성한 곳이 아니라 로마의 어느 술집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는 충격적인 시도라 평가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 카라바조는 어둠속에 있는 인간들이 예수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의욕과 충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성 마태오의 순교"를 그리는데, 여기서도 기존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신성함 보다는 현실성을 교묘하게 투영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림에 모든 장면을 훔쳐보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후 카라바조는 카톨릭에서 인기 있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카톨릭 성직자들은 그가 예수의 신성함보다는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에 너무 빠져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성당그림에 조반니 발리오니가 대신 선정되었는데, 이후 발리오니를 무시하는 시가 퍼져갔고, 그로 인해 카라바조는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그가 가지고 있던 세속적인 면과 폭력성이 더 나타나게 되었고, 여러 이유로 감옥에서의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종교화를 그리는 천재작가가 광인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가지고 있던 현실적인 경험과 이념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Canon과 맞지 않음에서 나타나는 창작의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산타마리아 성당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때, 기존의 미술 전통과도 맞서 싸우려 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보면 기존의 마리아의 신성성보다는 핏기마저 사라진 인간의 시체처럼 그렸습니다. 마리아의 죽음을 통해 비통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은 유일하며, 이는 영원불명의 신성함이 아니라 현실 속에 마리아 죽음을 그리려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존의 카톨릭에서 추구하던 Canon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러한 시도는 그의 작품들에서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그 후 1600년 5월 그는 톰마소니와의 결투에서 살인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재판에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후원자들과 추종자들의 도움으로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는 작품 활동에 전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떠나 나폴리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는데, 이때에 작품에는 연민과 안식을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나폴리를 떠나 몰타로 가서 지위, 명예를 얻게 되는 기사작위를 받고, 자신의 과거를 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작품을 통해서 계속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참수"는 카라바조의 대작으로 여겨지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실제 사건처럼 여겨지길 바랬는지 너무나 참수과정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 신성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던 예수의 역할을 완벽하게 전복시켜버립니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을 통해 이중에 효과를 누리고 있는데, 죽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이러한 세례요한에 죽음을 통해 아름다움에만 빠져있는 예수에 대한 공허한 환상을 깨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유럽에서 나타난 Canon(카톨릭)의 비참함과 현실적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참수"를 통해 자신의 속죄를 구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그는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탈출까지는 하지만 간신히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그러다가 새로운 교황이 그의 면죄를 추진하게 되는데, 카라바조는 그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에 교황에게 선물로 주기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이 바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으로 어떤 작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자화상이었던 것입니다. 골리앗도.. 다윗의 머리도.. 자신에 대한 표현이며 구원과 현실의 갈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소망과 그로 인한 이기심-폐해 사이를 넘나드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저지른 현실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 위한 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그는 고향으로 왔다가 열병으로 옆에 어느 누구하나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인생과 작품에서 보이는 세속적인 비참한 현실, 그의 광적인 행위 등에서도 나타나는 결말이었을지 모릅니다. “천재이면서 악당”이 말은 카라바조의 예술적 천재성이 그 시대의 Canon과 맞지 않아 악당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카톨릭의 논리가 사회를 움직이던 그 당시, 많은 교회의 폐단과 맹목적으로 치닫던 메시아사상 등은 당시 미술적 Canon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세속적인 현실에서 예술을 표현하고 찾았으며, 카톨릭의 공허한 이념을 중요시 하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천재..그의 인생과 작품에서 나타나는 고생스런 삶이 말해주듯, 당대 Canon에 대한 저항은 개인에게 쉽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적-물리적 고통 속에서 그의 천재성은 더 빛나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의 생생함을 그리고 싶던 카라바조.. 그는 카톨릭의 신성함이 지배적이던 시대에서 더욱 독특할 수 있었고, 지금처럼 후대에는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이러한 미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에 전반적인 사전 지식과 생애를 토대로 평가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 시대를 지배하던 카톨릭적 Canon에 대한 그의 저항과 표현은 지금 여러 그의 작품들로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체능| 2009.07.10| 3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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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이먼샤마의 미술특강 - “자크 루이 다비드” VTR을 시청하고
    “자크 루이 다비드” VTR을 시청하고...? Summary +Critic이 VTR을 보면서 다비드에 대해 알 수 있는 동시에,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라는 그림을 수업 중에 본 것이 다비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와 프랑스혁명과의 관계는 잘 알지 못한 채, 다비드라는 작가도 잘 알 지 못하였습니다, 그동안 정치사회학이나 역사학 적으로만 프랑스혁명을 공부해왔던 저로써는 이번에 ‘다비드’라는 작가의 그림과 생애를 통해 프랑스혁명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1783년 9월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귀족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위기를 잘 알지 못하였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격정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시민들은 여전히 프랑스 혁명의 도래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당통’과 같은 뛰어난 언변가들이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하길 원한다면 예술가의 힘을 빌려 그들의 뜻을 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이에 ‘자크 루이 다비드’는 바로 시대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었는데, 그림을 통해 혁명기 프랑스 시민들을 계몽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비드의 그림은 예술이자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 을 보면 무언가 비극적인 아름다움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장 폴 마라입니다. 그는 피의 학살극을 벌인 혁명의 신봉자로 자신의 욕실에서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습니다. 프랑스의 역사는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평가했지만, 반면 다비드는 그를 마치 성자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라는 다비드의 화폭에서 말하는 순결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이처럼 당시 프랑스 국민들을 선동하는 그림을 많이 남긴 다비드를 교활한 사기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평생 현실을 외면하고 숭고한 이상에 집착하였습니다. 그를 단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단호하았으며 그러한 모습은 꽤 흔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에 혐오감을 들어내거나 놀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비드의 경우에는 달랐습니다. 다비드는 얼굴 종양 때문에 발음을 똑바로 할 수 없었고, 사람들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18세기 프랑스는 유머와 재치가 열혈한 환영을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다비드의 현실적인 고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그리고 한편 다비드는 자신의 그림 속에 담을 수 있는 순고한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다비드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곳이 바로 '로마'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조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세계관도 변하게 됩니다. 1785년 다비드는 로마에서 얻었던 자신의 영감을 아주 웅장하게 표현한 작품을 들고 파리로 귀국합니다. 당시 루브르 궁전에서 열린 예술 전람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 바로 애국적인 순간을 담은 입니다. 그림의 내용은 로마제국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적국의 용사와 대결하게 합니다. 마지막 남는 자의 나라가 승리한 것으로 합의하였는데, 이들 중 한 형제의 아내가 적국의 여자입니다. 하지만 삼형제는 조금도 주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세 형제의 확고한 결심과 용기가 힘줄이 붉어진 팔과 칼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맨손으로 날카로운 칼을 쥐고서 세 형제의 마지막 맹세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림에서는 무언가 조국을 위해서는 사소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용맹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러한 그림의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열광하였다고 합니다. 최소한 6만 명의 인파가 이 그림을 보기위해 루브르 궁전으로 몰렸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마치 위기의 순간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것 같았고, 그 장소는 고대 로마가 아니라 루이 16세가 통치하는 프랑스라고 외치는 듯 했습니다.당시의 프랑스는 시대적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인근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에서 모임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처음으로 귀족과 성직자, 부르주아 계급이 국왕의 허락 없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를 부등켜 안은 생생한 장면이 예술로 부활합니다. 다비드의 손의 그려진 이 그것입니다. 이 그림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흥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무언가 사람들은 활기차고 혁명의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듯 해보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것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혁명의 순간을 담으려 하였습니다.그리고 다비드의 혁명의지처럼 7월 14일 드디어 프랑스의 혁명이 발발합니다. 14일 오전 900여명의 군중들이 바스티 요새 앞으로 모여듭니다. 이들이 요새 안으로 몰려들어오자 놀란 병사들이 총을 쏘았고 희생자들이 생겨나면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83명이 희생된 후 요새 사령관이 항복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당시 군중들이 사령관의 안전을 약속했지만 결국 그의 목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비드가 유혈사태에 불을 지른 것은 아닐까요?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침울한 을 보면,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머리가 잘린 아들의 시신이 옮겨지지만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X자로 꼬고 있는 그의 두 발에서 무언가 억압된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그림은 제가 보기에도 VTR에서 소개된 다비드의 다른 걸작들처럼 섬뜩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조국과 같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을 스스로 해치면서까지 무언가의 혁명을 이루어져야 하며, 감정의 결단과 억제를 선동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한편 프랑스 혁명이 해를 넘기면서 희망은 광기로 변해가고 있었고, 다비드는 여전히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자신과 아주 비슷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인물이 바로 장 폴 마르입니다. 그는 급진주의자로 심한 독설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음모설과 소문이 파리 시내에 떠사건과 함께 루이 16세, 마리앙투아네트 그리고 세 아이들이 감옥에 보내집니다. 그리고 1793년 1월 21일 결국 감옥에 있던 루이 16세가 처형됩니다. 새로 제정된 헌법에 따라 그의 처형은 의회에서 투표로 결정되었고, 다비드도 왕의 처형의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는 공화정 체제로 바뀌었고, 다비드는 파리의 대표로 의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시대의 열혈하게 동참하였습니다.이처럼 다비드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의 운명도 프랑스 혁명의 길을 따라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뒤따랐던 혁명의 끝에는 독재의 폭압이 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국경 안팎에서 적들을 상대해야 했던 프랑스 입장에서는 결코 여유로운 시대가 아니었으며 나라 정국은 불안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이 계속되자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동참했다고 인정받던 사람들조차 비난을 받고, 고발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 중에 다비드의 옛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앙투안 라부아제와 마리안부부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살아남았지만 라부아제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립니다. 이처럼 혁명의 급진파 마라와 로베스 피에르는 수많은 정적들을 단두대에 올렸습니다. 1789년 몇 백 명에서 시작된 숙청자의 수가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막아야만 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25살의 젊은 아가씨 샤를로트 코르데였습니다. 그녀도 절대왕정이 아니라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마라와 그의 급진파에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온몸을 던져 조국을 구해야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1793년 7월 샤를레트 코르데가 마차를 타고 파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이 마라를 죽이려는 이유를 담은 글을 작성한 후 그것을 세례증명서와 함께 옷에 꿰맵니다. 한편 코르데가 암살계획을 세우는 동안 다비드가 친구인 마라의 숙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때에 마라는 욕조에 몸을 니다. 국회의사당이 슬픔에 휩싸이고 일부 의원들은 눈물까지 쏟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그들을 인도했던 마라를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 의원이 일어나 마치 연극을 하듯 다비드의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이 있었구려. 지금 당신이 해야 될 일이 있소"라고 합니다. 그에 다비드는 "내가 하겠소."라며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이 탄생하였던 것입니다. 다비드는 에서 마라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처 같은 그런 성스러운 느낌을 전해줍니다. 새하얀 천이 마치 위대한 성자의 몸을 덮고 있는 수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 그대로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것 같습니다. 단번에 보는 이로 하여금 숭배자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비드는 너무나 교모하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단, 이번에는 로마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프랑스인들이 알아보는 인물을 영웅으로 표현한 걸작을 완성시킨 것입니다.하지만 잠깐 다르게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미치광이 폭군을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알던 마라도 프랑스혁명 후 많은 인민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처형시킨 폭군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 다비드 자신이 지지하는 혁명을 위해 예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작품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비드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으니, 이젠 혁명을 숭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술의 순수성을 단번에 전복시켜버리고 정치적인 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의식까지도 바꿔놓습니다. 의 순고하고 비극적인 마라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믿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예술이 그 순수성을 잃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1793년 마라가 암살 된지 3개월 후, 마리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 오르게 됩니다. 사실 다비드에게 마리앙투아네트에 죽음은 너무나 사소했을 겁니다. 그는 이미 혁명정부의 선전감독관으입니다.
    예체능| 2009.07.10| 5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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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머리속에 지우개를 보고
    내 머릿속의지우개를 보고...11월 12일 금요일 저는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특별히 과제도 해야 되었지만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있어서 마침 잘되었다 싶었습니다. 저희가 본 영화는 이재한 감독, 손예진과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정통 멜로 영화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크게 관심이 가던 영화였습니다. 금요일... 수업이 다 끝나고 저희는 CGV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금요일이라서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극장 안은 한산했습니다. 여유 있게 표를 사고 팝콘이랑 음료수도 먹으면서 영화시작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 그리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극장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가 있었습니다.음... 이제 영화가 시작 되고 영화얘기를 해볼께요.일단 저는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영화를 봤는데... 충분이 감정이 전달될 만큼의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 흠이라면 뻔한 스토리라는 것이 좀 그렇지만 배우들의 연기나 그 스토리에서 주는 깊은 여운... 이 여운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잊어간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니까요. 그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의 떨림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전체적으로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영상미가 좋다는 말이 맞겠네요. 정우성과 손예진의 행복한 모습은 슬로우 화면에서 아름다운 배경에 좋은 음악이 함께 하는 그런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특히 화면이 손예진과 정우성의 주위를 계속 돌면서 그 행복을 다방면에서 보여주며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요.그럼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이 영화의 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보통의 정통멜로 영화가 대부분 그러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스토리는 여지없이 우리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주인공인 철수와 수진 이 두 캐릭터의 큰 특징은... 철수는 막노동꾼에서 건축사가 되는 터프한 이미지... 수진은 건망증이 유난히 심하면서 귀여운 여인의 이미지를 볼수 있습니다. 이 둘의 만남 역시 쉽게 나타나는 만남이 아니라는 점에서 얘깃거리가 될 만 합니다. 그럼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주인공이 만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바로 콜라입니다. 여기서 콜라는 그 둘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기억을 해내는 하나의 중요한 소재로 볼 수 있습니다. 수진은 건망증으로 편의점에 지갑과 그때 산 콜라를 모두 놓고 오고 다시 찾으러 가면서 문 앞에 철수가 콜라를 들고 서있자 그것이 자기 것 인지 알고 그 자리에서 뺏어 마셔버린다. 이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다. 그리고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수진은 철수의 건축사장 딸이었고 우연한 두 번째 만남부터 수진은 철수에게 관심을 보이고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중요한 장소로 꼽는 곳이 있다면 실내 야구 경기장을 들 수 있는데... 이곳은 철수가 자주 스트레스를 푸는 곳으로 수진은 철수의 의해 이 야구장을 처음 접하게 되고, 실수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둘의 애정도 깊어지게 하는 곳으로 큰 역할을 한다. 이렇게 행복한 여느 여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하지만 ... 수진의 건망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오지만 수진은 병원을 찾아가면서 이 건망증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불치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철수를 생각하면 할수록 슬퍼한다. 이 부분이 바로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는 그런 요소가 되고 있다. 처음 들어 보는 병으로 기억을 잃는 무서운 병...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한 순간의 그동안의 행복을 잃는 다는 생각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리고 수진은 이 얘기를 철수에게 숨기고 혼자 괴로워 하지만 이내 곧 철수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철수는 수진을 찾다가 실내야구장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서 보면 수진은 모든 것을 알고 온 듯한 철수에게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데...”이러한 말을 남긴다. 여기서 지우개라는 표현은 이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머릿속에 단백질 덩어리가 생긴 병이었지만 지우개라는 표현을 하면서 그 분위기를 깨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서로는 이 사실에 많이 슬퍼하면서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수진은 기억을 잃어간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슬픔을 주고 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곳이 있다. 이제 마무리 부분으로 수진은 거의 어린아이 수준의 기억만 가지고 있다가 집에 철수의 연장 도구를 보며 갑자기 모든 기억을 기억해 낸다. 여기선 연장도구가 수진의 기억을 찾는데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진은 철수에게 편지를 쓰는데 개인적으로 이부분이 제일 슬픈 부분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요... 당신 지금 울고 있나요? 당신 나 때문에 울게 하기 싫었는데...당신 슬퍼하는 모습 보기 싫은데.,, 당신 행복하게만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결국... 당신 마음 아프게 하네요. 철수씨, 사랑하는 철수씨...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난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만을 생각해요. 당신만을 기억해요. 할말이 너무 많은데... 내 마음 다 보여주고 싶은데... 기억이 남아있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아, 마음이 급해요. 나 김수진은 당신 최철수만을 사랑합니다.
    독후감/창작| 2009.07.10| 4페이지| 1,000원| 조회(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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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이먼샤마의 미술특강 - “윌리엄 터너” VTR을 시청하고 평가B괜찮아요
    “윌리엄 터너” VTR을 시청하고...? Summary +Critic이 VTR은 과제로서는 마지막이기 때문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윌리엄 터너”라는 작가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대표작 을 보면서 그가 19세기 영국의 역사를 얼마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담아내고 보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기. 노예제를 통한 많은 흑인들이 겪었을 고난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였고, 역사를 희생자의 시선에서 위안을 삼을 만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어딘가 음산하면서도 한줄기 구원의 빛을 표현한 터너. 사회학과로서 19세기 영국헤게모니를 배우고 탐구했던 제가 이러한 그를 왜 잘 모르고 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보았지만 그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터너가 처음부터 이러한 화풍을 보인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초기에는 영국에서 아름다운 풍경화의 대가로 알려진 윌리엄 터너. 그래서 언제가 많은 관람객들을 몰고 다니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터너는 아름다운 풍경화와는 다른 면을 표출하는 작품들을 그려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화 대신 혼돈과 파괴, 야성과 분노가 꿈틀거리는 작품을 쏟아내었는데, 이 때문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림을 그린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의 작품들을 보면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온몸을 내맡긴 채, 붓을 들었던 터너의 작품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몸서리치도록 암울한 야생의 세계가 꿈틀거립니다. 터너의 상상력과 손길의 의해 19세기 영국회화가 전성기를 맞았고, 그 중심에는 터너의 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하지만 터너는 초기, 을 완성하기 40여년 전만해도 젊은 터너의 미래는 아주 밝아보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었으며, 그의 화풍은 영국의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감미롭고 따뜻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때로는 장엄한 세상을 펼쳐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영국이 프 담는 것에 심취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기를 얻고 터너는 26세 젊은 나이에 왕립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왕립아카데미의 제출한 그림이 바로 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터너 작품들에서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라 확연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 웨일즈의 고웬고으 왕자가 마지막 운명을 맞았던 스노우도니아의 돌배던 성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 속 풍경만 보면 언덕위에 평범한 성 한 채가 서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터너는 뒤 배경을 강렬한 빛으로 채워 넣어, 성이 매우 암울하게 느껴지도록 대비시켰습니다. 마치 도도했지만 자유를 속박당한 채 성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아야했던 왕자의 마지막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또한 터너는 이 그림에 시 한편을 더했습니다. 터너는 이렇듯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그림이 갖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동적인 감정, 너무나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 대지와 하늘, 역사와 전설 등이 하나로 어울 어집니다. 이렇게 왕립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된 터너는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져나갔습니다. 하지만 터너의 가슴속에서는 또 다른 열정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도 인기와 명성만을 쫓아 아름다운 풍경들을 그리며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때론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이 그를 갈증 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 화가였다는 평이 더 맞을 것도 같습니다.그리고 터너는 가정을 꾸리는 대신 세상을 떠난 친구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미망인인 세라 뎀바를 가까이 살게 했고, 세상의 눈을 피해 두 명의 아이까지 두었습니다. 또한 그가 살았던 근교지역은 굶주림이나 비참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템스강은 터너에게 영국의 번영과 낭만을 한껏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 의 그림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며, 많은 미술애호가들을 매료시켰습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는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영국의 목가적 풍경 뒤에 감춰진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으며, 그런 우울한 시대상을 외면하지 않고 화폭에 담고자 하였습니다. 아마 그는 가장 불안했던 1800년대 초 영국근대사에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대영제국의 번영을 묘사하고 표현할 때, 현실을 직시하고 표현해내는 그의 행적은 그렇기에 더욱 남다른 것이었고, 인정받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이처럼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대영제국이었지만 영국 국민들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사회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보였지만, 심각한 실업문제로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민중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으며,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와의 세력다툼으로 국제정세도 안정적이 못하였습니다. 터너는 이런 영국의 어둡고 우울한 풍경을 외면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소녀에 어깨위에 축 늘어진 토끼가 걸쳐져 있고, 거칠게 패인 마차바퀴 자국이 보입니다. 희망의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얼어붙은 대지, 칼날 같은 공기가 온몸을 찌르는 듯합니다. 어둡고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이 그림 속에 풍경이 당시의 번영을 누리던 영국의 모습이 맞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이러한 그림이 탄생되기까지 터너는 요크셔에서 만난 친구 월터 포크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의 터너와는 다른, 세상에 대한 시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회운동가였던 포크스는 영국의 어두운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예무역의 폐지가 영국의 명예를 세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생각하였으며, 포크스의 이런 세계관이 터너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렸던 에서도 볼 수 있듯이 터너의 그림 속에는 대영제국의 깃발도 진군의 나팔소리도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영국인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터너 덕분에 영국에 근대 회화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정신병원에서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세상을 떠나고 난 뒤, 터너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림 속에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시기에 , 과 같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그림들이 많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면, 무척추동물처럼 기이한 형체나 정체불명의 이미지, 누더기 인형이 땅위에 나뒹구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정통미술 교육을 받은 터너가 그림 속에 기이한 형체들을 그려 넣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영국미술계에서 기이한 인물로 각인되어 갔고, 평단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결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터너는 판에 박힌 영국회화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기를 거부합니다. 자신까지 대영제국의 번영을 찬미하는 화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시적인 상상까지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림을 원하였습니다.그런데 터너는 평생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삶과 죽음에 문제에 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아버지와 친구 월터포크스도 터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터너는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터너는 시각적 환각증상에 시달리고 수시로 심한 악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시기에 그린 그의 작품 을 보면 해골모양의 사신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어딘가 불안전한 모습입니다. 아마 그림을 통해 죽음에 맞서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터너는 낭만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외면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정열을 짜내 자신을 괴롭히던 삶과 죽음, 고통과 구원의 이야기들을 화폭에 담아갔습니다. 그 때문에 그의 그림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터너도 60대에 접어들었고, 그는 템스강 하구를 볼 때마다 아름다운 해안을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암울했던 영국의 근대사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산업 혁명기에 격렬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림 불러일으킵니다. 그렇게 터너는 테메레르호가 은퇴하기 전,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항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특히 앞에서 전함을 견인하고 있는 작은 증기선이 새로운 영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터너는 테메레르호와 증기선을 대비시켜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를 표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동시에 담고자 했던 것입니다.1830년대 후반 반인륜적인 노예제가 여전히 영국인들의 양심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스페인 제국과 미국에서는 노예가 더욱 번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40년에는 노예제의 문제를 고발하고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런던에서 국제회담까지 개최됩니다. 하지만 터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노예제도는 그 추악한 실체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터너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영제국에 가장 치욕스런 사건하나를 재현시킵니다. 1781년 영국의 노예선 존호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약탈을 마치고, 영국이 지배하던 자메이카로 향해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판 아래서 노예들이 갑자기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선장인 루크 콜링우드가 너무나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는 병든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노예가 바다에 빠져죽을 경우 보험을 통해 보상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그러했다고 했지만, 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행위인가요? 이렇게 해서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해 132명의 흑인들이 카리브해 바다로 던져졌습니다. 그 후 결국 노예선 존호의 만행이 공개되면서 노예제에 무관심했던 영국인들에 가슴의 경종을 울리게 되고, 노예제 반대시위가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32명의 흑인들이 끔찍하게 죽어갔지만, 역사는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터너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역사책에 등장하는 하나의 사건 정도로 담담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의 손에 의해 노예선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예체능| 2009.07.10| 4페이지| 1,000원| 조회(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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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이먼샤마의 미술특강 - “빈센트 반 고흐” VTR을 시청하고
    “빈센트 반 고흐” VTR을 시청하고...? Summary +Critic이 VTR을 보기 전에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해바라기’,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등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왜 천재인지? 가장 불운한 삶을 살았다고 회자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VTR을 보면서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있음을 기대하며, 시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불운한 삶을 살다 미쳐버린 천재가 누구인지? 많은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지목할 것입니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심한 정신적 불안정, 결국 생애 마지막을 스스로 총을 쏘아 마감하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동기는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이런 사람이 이렇게 놀라운 작품들을 어떻게 탄생시켰을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정신병이라고 했지만 빈센트는 신의 계시와 예술에 대한 새로운 비젼, 그리고 지상에 도래할 천국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생각했고, 또한 사색가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가 아니라 사색적이고 예민한 관찰력을 가졌던 고흐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그의 편지를 읽어봐야 합니다. 그가 남긴 수백통의 달하는 편지는 거의 대부분 동생 테호에게 쓴 것으로, 그 안에서 고흐의 타오르는 지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흐는 맹목적인 본능에만 충실했던 사람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책벌레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빈센트는 무언가를 쫓는 자신만의 정신적인 삶을 추구한 것 같습니다. 빈센트의 방안에서 어두운 조명아래 책을 보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생각해도 화려했던 램브란트나 베르니니와는 정말 다른 삶이었습니다.그런데 오래 동안 예술은 그에게 첫 번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구원을 찾는 것이었고, 그건 그의 피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수습기간 후 그에게 수당을 지급하던 선교회에서 그를 해고한 것입니다. 열성이 지나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쉽게 포기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위해 다른 방법을 선택했는데,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림은 빈센트의 새로운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간단하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당시 거의 서른이었는데, 정식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붓을 잡아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던 것도 아니고, 어떠한 계기도 없었던 빈센트는 무작정 이러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의문이기도하고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던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그림이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이렇게 예술은 교회가 손을 놓은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구원과 위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빈센트는 모두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데,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기적 같은 삶의 힘, 그리고 고되고 단조로운 일상 때문에 오래 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되돌려주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한테 천국이 단순한 것. 예를 들어 굳은 살 박힌 손이나 꽃잎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빈센트는 직접 노동을 해보고, 낮은 계층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빈센트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사랑을 나누는데, '크라시나 후르니', '씨엔'이라는 별명을 가진 창녀였습니다. 당시 씨엔은 몸이 쇠약하고 알코올중동에다 미혼모, 게다가 임신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믿기는 어려웠지만 빈센트에게 그녀는 여신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을 보면 씨엔의 축 처진 가슴과 실 같은 머리카락은 빈센트에게 영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테호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나이든 여자만큼 대단한 존재는 없다고 썼습니다. 이렇. 실재 그 당시 빈센트의 그림은 화려함이 팽배했던 파리에서 절대 팔릴 수 없는 온통 어두운 그림들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보면 무언가 남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절대 환영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하지만 동생 테호만은 까다롭고 성미 급한 형 빈센트에게 충실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현모양처로 바꾸려는 빈센트의 노력의 지친 '씨엔'은 그만 뒷골목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빈센트는 서른 살이었지만 겉으로 주름이 많아 마흔은 되어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돈 문제는 동생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으며, 뒤늦게 출발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쏟는 그의 노력은 아무리 너그럽게 평가해도 성과가 있다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쯤 고흐의 첫 번째 걸작 이 탄생되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그때까지 그가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들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장차 그를 혁명적인 예술가로 만들어 줄 모든 것이 이미 그 속에 있었습니다. 을 보면 어둡고 탁한 색체는 회화적 효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철학적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물감을 계속해서 덧 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화가와 작품의 주제 사이에 완전한 일치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손이 그렇습니다. 램프 불빛아래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접시로 가져간 바로 그 손으로 직접 땅을 일구고 노동해서 정직하게 얻은 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늘 농부들의 생활을 그림에 담고 싶어 하였습니다. 의 사람들은 우아하게 감자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성스러운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 합니다. 무언가 소박하면서도 농부의 노동과 삶을 성스럽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느낌이 맞는 것인지는 확신은 없지만, 기존의 빈센트의 작품들 보다는 좀 더 세련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을 표현하는 고흐의 방식은 늘 더 현실적이면서, 사실적이고, 진실됬지만 세상엔 통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자신의 그림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 것이 테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빈센트는 한 낡은 카페에서 자신의 전시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그때에 전시된 그림에는 그 유명한 , 가 있었습니다. 다 낡은 구두와 가지가 잘린 해바라기. 그것은 정물화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정물화는 아니었습니다. 는 천국 같은 안식처를 향해 길고 험한 순례자의 길을 걸었던 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 낡은 구두를 보면 그러한 것이 더욱 잘 이해되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죽어버린 자연을 표현한 것입니다. 해바라기 중앙의 검은 씨앗을 불길하면서도 미스터리하고, 억제할 수 없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마치 불타는 별에서 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보아도 빈센트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죽어버린듯 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 보이고, 음울해 보이면서도 힘차 보이는, 어떻게 보면 괴기스럽게 보이는 등 무언가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는 그의 심오함과 천재성이 새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빈센트에게 인상파 화가무리에 합류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부적응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인상파 그룹 주변에서 배회하는 예술가, 어딘가 위험하고 창조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화가 '폴 고갱'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공통점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운한 삶을 산 것은 비슷하였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고흐가 아프고 쑤신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면, 고갱은 인상파 거물의 눈을 그 손가락으로 찌를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화상들에게 악담을 퍼부을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서 고갱은 술을 마셔댔고, 빈센트는 대가들 앞에서 더 건방지게 행동하였습니다. 그 후 냉담한 파리미술계를 떠나 고갱은 부르타뇨 지방으로 갔고, 고흐는 그를 따라가진 않았습니다.그 후 1888년러한 심리 속에 빈센트는 술의 절은 채, 오지 않은 고갱을 걱정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빈센트에게 고갱은 무엇이었을까? 확신은 안서지만 평생의 외로운 삶 속에 유일한 동료이자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러한 그의 마음을 아는지, 그 해 여름이 끝날 때쯤 마침내 고갱은 빈센트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맨 처음 고갱은 우정 어린 경쟁에 대단히 놀랐고, 창조적인 도전에도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차이가 들어났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고갱은 하루에 한 장 가끔은 그 이상을 그려내는 빈센트의 광적인 작업 속도에 질려버렸고, 결코 꿈도 꾸지 않았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질투였습니다. 그는 고흐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흐와 고갱은 심한 논쟁을 자주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빈센트 본인은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질 환자였고 우울증까지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그림을 그 누구도 사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테호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증상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곧 이런 좌절감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고갱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채었습니다. 그렇게 고갱은 고흐와의 관계를 끝내려 마음먹었고,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정서적 불안정을 극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동은 자신이 함께하려했고 애정을 쏟았던 고갱을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끔찍한 행동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고흐가 그 후 병원에서 퇴원을 하였지만 고갱은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그렇게 고갱은 떠나고 고흐는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습니다. 병원에서 빈센트는 의사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았지만, 점점 잦아지는 발작은 예측하기도 어렵고 두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아진 그는 조심스
    예체능| 2009.07.10| 5페이지| 1,000원| 조회(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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