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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2014.12.02| 1페이지| 300원| 조회(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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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르트르-실존주의
    서론 두 갈래의 실존주의실존주의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두 갈래의 실존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기독교인데 그들 속에 가톨릭 교파인 야스퍼스와 가브리엘 마르셀을 손꼽는다. 한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서 하이데거, 그리고 프랑스 실존주의자들과 사르트르를 손꼽을 수 있다. 양자에서 공통되는 점은 다만 야자가 모두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달리 말하면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불과하다.우리가 이를테면 한 권의 책이라든가 한 자루의 종이칼처럼 만들어진 하나의 물건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은 하나의 개념이 머리에 떠오른 공장에 의해서 제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만든 사람은 종이칼의 개념에 따른 것이며, 역시 그 개념의 일부분을 이루는 예비적인 생산 기술에 의거한 것이다. 이처럼 종이칼은 동시에 일정한 방법으로 만들어 진 것이며, 한편으로는 한정된 효용을 가진 물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물건이 무엇에 소용될 것인가를 모르고서는 종이칼을 만들 사람을 생각할 수조차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이칼에 대해서는 본질 - 즉 그것을 생산하게 하고 그것을 정의하게 하는 수단과 성질 전부 - 이 존재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는 그러한 종이칼이나 책의 현존은 한정된 것이 되고 만다.그러므로 이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술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에 의한다면 생산은 실존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창조자인 신을 우리가 상상할 때 그 신은 대부분의 경우, 우수한 공장에 비교된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든 간에, 가령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쯔의 이론과 같은 것이 문제가 되든 간에 우리는 의지가 여하한 오성을 따라가며 적어도 의지가 오성과 병행한다고 늘 가정하고 있다.또한 신은 자신이 창조를 할 때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개념이 신의 정신 속에는 마치 공예가의 정신 속에서의 종이칼에 대한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은 제조자가 종이칼을 어떤 정의와 기술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③자기본질을 선택하기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것은 인간에서 만이다. 왜냐면 우리의 경험세계에서는 인간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씨앗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음)들은 다 미리 정해져 있다.결국인간이 그가 실지로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그가 되어진 것, 즉 그의 본질을 알게 된느 것, 오로지 그의 선택 이후인 것이다.④주어진 것의 의미를 선택함으로써사람에게는 자기가 아닌 것은, 모두 다 처음부터 날 것으로 주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다 자기가 선택하는 를 마음대로 붙여줄 수가 있다.예를 들면, 잘 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명문 집 자식이나, 천한 집 자식이나/ 나면서부터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등은 내가 처음부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제 내게 던져지거나 주어진 날 것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두고 생각하는 방식, 이를테면 그렇게 주어진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 또 나아가서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이것을 ‘넘겨받는다’라고 말한다.⑤타인들에 대한 인식타인은 분명히, 진정한 자아의식에 이르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매개자이다.사르트르의 문학 작품에서 강박적인 관념으로 자주 나오는 것이 인데 그 수치심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치를 느끼는 것은 바로 타자의 시선 속에서이다. 주체의 위치에 있던 내가 갑자기 대상의 위치로 전락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만, 나는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단 나는, 타인의 존재에 의해 나를 대상으로 의식하고, 나의 행동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파악한다. “딴 사람이 나를 봄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존재와 무』)처럼 “내가 남에 의해 고통스럽게 바라보이고 평가되는 대상이 되었다는 자각이 수치심이 된다.” 자기가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서 자기가 즉자 존재로 전락했음을 말하고, 그리하여 나의 존재를 남에게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수치심은 생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또 사르트르의 ‘전체지’는 소외 구조의 ‘양해’에 역점이 두어져 있어서 존재와 객관적 구조의 파악에는 그다지 유념하지 않는 흠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굴절에 대한 경과를 ‘양해’하는 것을 정말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객관적 구조의 파악이 전제로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사르트르는 개인은 전체에서 ‘비지’로서 발견된다고 말한다.그러난 전체에서의 ‘잉여물’로서 발견되더라도 지가 아닌 ‘비지’로서 개시되더라도 그 ‘비지’로 서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 ‘지해’로서 파악되지 않는, 양해되어야 할 '비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르트르는 여기서 ‘자기인식’이라는 형태의 지에서 헤어져서 ‘비지’의 지로서의 ‘직관’=‘요해’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래서는 언제까지나 ‘양해’ 그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란 ‘양해’의 위치를 지우는 것뿐이다.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위치 지우는 것은 아니고 본체와 관계를 인식하는데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객관적 구조의 파악과 그 구조 속에서의 개인의 위치에 대한 파악, 그 개인의 위치에 대한 개인에 의한 ‘자기인식’이라고 하는 방법이 아닐까, 인식을 물리친 직관에 의한 전체상의 파악이란 결국 체험감각의 전체화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3.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1) 존재의 우연성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얼어붙은 것 같은 법열에 취하면서 로칸탕은 ‘욕지기를 이해하고 그것에 정통’하는 것이다. 그 욕지기란 의식으로 파악할 수는 없고 의식의 밖에 머물고 있는 ‘불필요한 것’과의 만남을 말하는 것이며, 다시한번 이 만남을 명확히 의식하고 명석하게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긴요한 것은 존재의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존재란 필연은 아니라는 것이다.’‘우연이란 지워버릴 수 있는 외관이나 가상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인 것이며, 그러므로 완전히 무상이다......’마로니에의 나무의 뿌리는 우리의 의식 밖에 있으며, 의식에 의한 합리화의 손이 닿지 않는 저편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자신에게 있의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 일정한 의도로써 대상에 도전하고, 이 대상을 의도에 따르게 할 의도가 있어야 비로소 대상에 도전하고, 이 대상을 의도에 따르게 할 의도가 있어야 비로소 대상에도 하나의 방향이든 가치든 의미든 생기게 된다 .사르트르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인간적 세계, 인간적 주체성의 세계 이외의 세계는 없다.’ ‥‥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 그자신 외에 입법자가 없을 것, 인간이 그 자신을 결정하는 것은 고독 속에 있어서라는 것'을 상기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유일한 입법자일 것, 인간은 언제나 현재의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극복하는 것과의 두 개의 요소가 결합하는 것으로써 이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5) 결여의 가능성사르트르에 의하면, 아직껏 없는 미래의 이상이야말로 자유의 의미가 있는 것이며, 현재의 자신이나 사물에 사로잡혀서 사는 삶의 방식은 능동성을 결여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현재에 불만을 느끼고, 미래의 보다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한다. 이것이 가치이며, 이 가치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극복하는 것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행위에 의미가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사르트르는 이와같이 해서 우리의 ‘대자’는 현재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껏 없는 자신을 항상 상정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자’는 자신이 그것이 아닌 (미래의 자신) 것에 규정된 존재로서 있는 한, 자신 속에 항상 ‘결여’된 부분을 갖는 존재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결여’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달에 비유한다면, 지금 조각달이 하늘에 떠있다. 이 경우 조각달의 이지러진 검은 부분이 ‘결여분’인 것이며, 지금 보이는 조각달의 ‘결여자’ 즉 현재 존재하는 대로의 달,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현실존재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조각달이 곧 만월로 되도록 바란다. 만월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 상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이 미래의 상태를 노려서 현재를 극복한다고 한다면, 이 있어 무를 힘이 없는 자가적 행동인 의식의 결여만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하겠다. 끊임없는 부정의 힘으로 다시 정의하면서 사르트르는 드디어 무를 의식 또는 대자와 동일시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무는 “존재의 고유한 가능성이며 그 유일한 가능성”으로서 긍정적 의미를 획득하며 존재로 하여금 즉자의 1차원성에 그치지 않고 다차원성을 지니도록 준다수성을 부여해 준다.대자화한 무는, 대자가 전체의 부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전체성 생성을 추구하는 만큼, 전체성을 지탱하고 전체성을 결정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종국에 가서 무는 스스로 존재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간주하는 인간 실재 자체가 된다. 대자화된 무는 대자의 속성을 지니고 완전한 존재 생성을 위한 ‘존재의 결여’로서, 즉자존재의 끊임없는 부정과 무화로서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자신으로부터의 벗어남, 끊임없는 미래에로의 존재 투기인 ‘자유’의 속성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이 점에서 무를 자유와 동일시하게 된다.무는 무화로서 대자, 자유와 동일시된다. 리츠크가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대자와 자유가, 전자는 ‘존재의 무’를 근거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또 후자는 존재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양자 공히 존재의 근거가 결코 되지 않으려는 공통점이 있음을 강조한 것은 옳은 지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무가 자유와 동일시되는 것은 무가 대자화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최초에 수동적으로 출현하고 존재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무가 이와 같이 능동적으로 변화한 것은 무를 대자화하고 의식화한 의식의 작용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간파해야 할 것이다.② 즉자적 무『존재와 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자화된 무뿐만이 아니라 의식화되지 않고 마치 사물처럼 근원적인 분리 공간을 이루는 것으로 주어진 즉자적 무를 발견하게 된다.이러한 무는 나의 이 본질로부터 나의 자유를 떼어놓는 무인데, 반성하는 것과 잔성되는 것 사이의 단순한 분리에 불과하며 타자와 나를 분리하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절대적인 거리로서 닌다.
    인문/어학| 2010.12.07| 19페이지| 4,400원| 조회(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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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페이첵을 보고
    reoport- 페이첵을 보고나서영화 페이첵은 오우삼 감독의 영화 중 졸작이라고 평해지는 몇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보니 재미만 있었다. 주인공인 마이클은 천재 공학자로 회사의 의뢰를 받아 타사의 제품을 실험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일을 하는 동안의 기억을 지우고 말이다. 그러다 엄청난 액수에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3년간의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사건은 일이 다 끝나고 받기로 한 돈 대신에 자신이 스스로 남겼다는 20개의 물품이 든 봉투를 받아들면서이다. 그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떄 FBI로 끌려가 국가기밀 누설의 누명을 쓰고 만다. 마이클의 봉투 안에 담겨 있던 담배를 피우자 경보기가 울리고 마이클은 썬글라스를 끼고 도망을 나온다.추격을 받으며 쫒기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봉투 안의 버스표로 버스를 타게되고. 봉투 안의 물건을 살펴보다가. 그 중 반지가 있었는데 그걸 버스 안의 어떤 아이가 훔쳐 달아났고, 그것을 쫒으려 버스에서 내리는데, 거기가 그 회사였다. 지미는 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그를 쫒고, 마이클은. 그 도중. 3년간 자신이 사랑했던 레이첼을 만나서 기억을 맞춰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래를 보는 기계를 만들었고 그 기계 때문에 지미의 회사가 급부상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봉투 겉의 우표 안에 또 다른 단서를 미리 숨겨놓았었다. 그것은 신문기사였는데, 미래에 대한 얘기가 적혀있었다. 사람들이 미래를 알게 되면서, 결국은 스스로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기계를 파괴하기 위해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봉투 안의 소지품은 모두, 마이클이 추격전을 피하거나, 죽음을 모면하는 도구로써 쓰여진다. 봉투 안의 출입증으로 자신의 연구실이었던 곳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미래를 다시 보게되는데, 역시 죽는 것이었어. 지미가 그를 죽이려고 쫓아오기 전에 그는 기계를 파괴하고, 죽음을 맞게되는 미래의 그 시점에, 예전에 미래의 죽음을 피했듯이, 또 한번. 죽음을 면하게 된다. 지미가 FBI요원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이런 줄거리의 영화였다.이 영화의 주된 논조는 뒷부분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미래를 알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 불행할 일들을 막고 위험을 미리 예견하고 피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알게되면서 결국은 스스로 파멸을 초래한다고 이야기한다. 미래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도 크지만 미래를 알게 됨으로써 오는 폐해도 그리 작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희망은 우리를 건전하고 바르게 노력하며 살 수 있게 한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리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주인공처럼 로또 번호 정도 알게 되는 것은 감사할 듯하다. 그래서 결국은 파멸만을 가져올 기계를 파괴한다는 결론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영화에서 말하는 두 번째는 기억상실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돈이 많이 벌리는 일을 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돈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한도 남아있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기억의 상실이 과거의 소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기억 속에 있지 않을 뿐이다.
    인문/어학| 2009.04.05| 2페이지| 2,000원| 조회(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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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과 논문 - 심론에 대한 연구
    학 사 학 위 논 문심론에 대한 연구-인심도심설을 중심으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심론에 대한 연구-인심도심설을 중심으로지도교수 _________________이 논문을 문학사 학위청구논문으로 제출함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목 차 -Ⅰ. 머리말 1Ⅱ. 심의 의미 2Ⅲ. 주자와 나흠순의 인심도심설1. 주자의 인심도심설 42. 나흠순의 인심도심설 5Ⅳ. 퇴계와 율곡의 인심도심설1. 퇴계의 인심도심설 72. 율곡의 인심도심설 8Ⅲ.맺음말 10* 참고문헌 11??Ⅹ?Ⅸ 들어가는 말인심도심론은 상서 , ?대우모?편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하게 지켜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며, 송대에 이르러 이 말은 유가의 수양과 실천의 문제로 중시되었다.정이는 인심 ? 도심을 각기 천리와 인욕으로 파악하여 ‘滅人欲存天理’의 수양방법을 제기하였으며, 진덕수는 이를 ‘요 ? 순 ? 우가 전수한 심법이며, 만세 성학의 연원’이라고 하면서, 인심과 도심을 각기 성색취미의 욕구와 인의예지의 리로 보고 그 발현 방식을 ‘發於氣’ ? ‘近於性’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그 뒤 주희에 이르러 인심 ? 도심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주희는 『중용장구』서문에서 인심과 도심을 구별하여 “인심은 기로 이루어진 사람 몸속에 들어 있는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오고, 도심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올바른 천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인심은 위태로워서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보기 어렵다”고 했던 것이다. 인심이란 사람이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생리적 욕구와 관련된 마음이다. 예를 든다면 먹고 싶고, 마시의 기이고, 그 발하는 소이는 성으로서의 리라는 것으로 퇴계의 리기호발설에 맞서는 것이다. 이러한 기발이승의 사상은 율곡의 인심도심론에까지 영향을 미쳐 인심과 도심이 전화 가능성을 지녔다는 인심도심종시설로 나타나고 있다.율곡은 인심과 도심을 이명을 지녔으나 일심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는 심의 발용에 있어서 인심과 도심의 두가지 양태로 드러남을 의미하는데, 도심은 도의를 위해 발하는 마음이고 인심은 구체를 위하여 발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발한 상태의 심(情)의 작용은 인간의 의식이 개입하여 인심과 도심으로 분화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심과 도심의 분화와 그 드러남에 대한 이해는 각 학자들마다 차이를 보이며 이는 조선조 율곡과 우계, 이황과 노수신 등의 인심도심논쟁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Ⅱ 주자와 나흠순의 인심도심설0 주자의 인심도심설모든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기는 인심과 성명의 올바른 것에 근원하여 생기는 도심으로 나누어진다. 인심과 도심에 대한 주자의 생각은 중용장구 序(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일찍이 논하건대, 심의 허령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혹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고, 혹은 성명의 올바른 것에서 근원하여, 지각을 한 것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혹은 위태로워 편안치 못하고, 혹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상지라도 인심이 없지 못하고, 또한 이 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하우라도 도심이 없지 않으니, 이 두가지가 방촌의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바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이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의 공변됨이 끝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여기에서 주자는 심이 하나일 뿐임과 그러나 그것이 나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상지이거나 하우이거나 모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주자는 인심과 도심을 사단과 칠정으로 나누어 보고 인심과 도심이 모두 심인 이상 이발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흠순은 도심은 성이므로 미발인 상태이고 인심은 정이므로 이발한 상태라고 생각하였다. 이 미발과 이발의 차이로 인하여 나흠순은 미발인 성(도심)이 체가 되고, 이발인 정(인심)은 용이 된다고 하였다.) 체용으로 인심과 도심을 설명하는 것은 하나의 심에서 나왔으므로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주자는 도심이 주가 되어 인심을 주재하여야 과불급의 폐단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나흠순도 자신의 체용론에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체는 항상 정하고 용은 항상 동하므로 정한 것으로써 동을 제어하면 길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심(인욕)의 이해에 있어서는 나흠순이 더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나흠순은 인욕을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욕망을 버리면 자연적인 것에 위배하는 것이므로 욕망을 인정하고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나흠순은 정일의 수양 방법을 정은 도심으로부터 인심이 발출되는 순간에 인심의 변화와 기미를 살피는 것이고, 일은 성실의 노력을 뜻한다.)이처럼 같은 경전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에서도 주자와 나흠순은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도심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주종론의 입장처럼 도심이 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흠순의 인심도심체용론은 주자와 유사하지만 주종의 병렬관계가 아닌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에 그 특색이 있다.) 이같은 나흠순의 체용론은 노수신, 율곡 등의 조선 성리학에 영향을 미쳤다.)Ⅲ 퇴계와 율곡의 인심도심설0 퇴계의 인심도심설퇴계는 일찍이 ?심경?을 얻어 보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유달리 마음에 관한 학문(심학)을 중시하였다.)퇴계의 인심도심에 관한 견해는 그와 고봉이 펼친 사단칠정논변에서 잘 드러난다. 퇴계는 사단이 이치가 발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치는 항상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온전히 착한 마음이이요, 인심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말하였다.) 더 나아가 칠정은 인심도심의 선악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고, 사단은 도심과 인심 가운데 선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일찍이 주자가 중용장구 의 서문에서 밝혔던 도심은 천리이기 때문에 선만 있고 악이 없다(有善無惡)고 하고, 성현도 음식이나 남녀 문제 따위에서 인욕이 있기 때문에 인심은 선도 있고 악도 있으며(有善有惡), 어리석은 사람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다.율곡은 각기 두 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심과 도심이 있으려면 동시에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심은 정과 의를 겸한 것이므로 인심도심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도심으로 시작하여 인심으로 끝날 수도 있고, 인심으로 시작하여 도심으로 끝날 수도 있다.율곡의 학설의 핵심은 도심은 다만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인심은 인욕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한 마음이 발할 때 도심인줄 알면 넓혀서 확충하고, 인심인 줄 알면 곧 정밀하게 성찰(省察)23)하여 반드시 도심으로써 절제(節制)24)하고 인심은 항상 도심에 청명(聽命)25)토록 하면 인심도 또한 도심이 될 것이니, 곧 인심이 도심과 합일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율곡에게 있어 인심은 극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찰하여 도심에 합일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된다. 이런 인심도심에 대한 율곡의 견해를 종시설이라 한다.) 종시설에 따르면 인심이 중절한 것은 인심으로 시작하여 도심으로 마친 것이므로 도심과 차이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형기에서 생기는 마음도 도심을 따라 중절하면 성명에서 생기는 마음과 같아지게 되니, 형기 ? 성명의 구분보다 중절의 여부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그 마음의 시작이 도심이냐 인심이냐가 아니라 그 마침이 도심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율곡의 인심도심종시설)은 율곡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 정밀한 이론을 전개한 것으로 율곡성리학의 공헌이라 하겠고 또한 정주성리학을 발전시킨 한국 성리학의 진일보라 아니할 수 학술논문 및 학위논문류· 김기현, ?소제 노수신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연구?, 전라문화논총 제2집, 전북대 전라 문화연구소, 1988.· 남지만, ?율곡 인심도심설의 특징?, 율곡사상연구 제7집, 율곡학회, 2003.· 유명종, ?나흠순의 기철학과 이조유학?, 인문과학 제8집, 성균관대학교, 1979.· 황의동, 율곡의 철학사상에 관한 연구 - 이기지묘를 중심으로 , 충남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87.· 이경식, ?율곡의 심성관?, 인문과학연구 제8집,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0.· 이동희, ?나흠순의 리기혼일의 철학?, 동양철학사상연구 도원 류승국박사 고희 기념 논문집, 1992.· , ?나흠순 성리설의 특성?, 유학연구 제8집,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0.· 이두찬, ?율곡 심론 연구 -심의 주재성에 대하여?, 율곡사상연구 제7집, 율곡학회, 2003.· 송휘칠, ?나흠순의 곤지기 와 기고봉 · 이율곡의 주기론?, 한국의 철학 제21집, 경북 대학교 퇴계학연구소, 1993.· 황준연, ?한국성리학에 있어 인심도심성의 특성?, 한국철학회, 철학 제38집, 1992.· , ?율곡의 철학사상 : 율곡의 인성론 - 사단칠정 (四端七情)과 인심도심 (人心道 心)을 중심으로 -?, 율곡학회, 율곡사상연구 제1집, 199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 예문서원, 2001, 485-511쪽 참고.) 한국사상연구회, 도설로 보는 한국유학 , 예문서원, 2000, 141쪽.“주희는 장식의 ‘심주성정’과 여조겸의 ‘심겸성정’의 견해를 받아들여 ‘통’에 ‘겸’과 ‘주’의 의미를 포함시킨다. 즉 겸이라고 할 경우에는 포섭, 포괄의 의미가 있고, 주라고 할 경우에는 행위의 주체라는 의미와 주재라는 의미가 있다.”) 오하마 아키라, 범주로 보는 주자학 , 이형성 역, 예문서원, 1997, 177-180쪽 참조) 송항룡, 동양철학의 문제들 , 여강출판사, 1987, 77쪽.“심통성정의 통은 통제한다, 통섭한다는 의미.
    인문/어학| 2009.04.05| 7페이지| 4,200원| 조회(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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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락사 발표 & 레포트
    우선 안락사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를 죽음이라고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심장사가 죽음인가? 뇌사가 죽음인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그에게 죽음과 다름없다고 이야기하며 안락사의 당위성을 강조할 수 있을까? 우선 의학계에서 이야기하는 죽음의 다섯 가지 분류에 대해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죽음의 분류1) PVS - 영원한 식물인간2) COMA - 뇌가 대부분 기능 상실(혼수상태, 간뇌의 기능 마비)3) Lockd- in syndrome - 의식은 있을 수도 있으나 반응은 없는 상태4) Dementia - 치매5) Whole brain death -뇌사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죽음과는 다른 좀더 세분화된 죽음의 종류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우선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는 뇌사에 대해 무엇이 뇌사인지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안락사에 대하여 좀더 논의해 보아야겠다.1. 뇌사란 무엇인가(1) 죽음이란 무엇인가?1생물학적인 죽음⇒몸을 이루는 세포가 모두 소실되는 과정⇒죽음은 하나의 과정 , 즉 죽어가는 과정(process)이 죽음이다.2사회적인 죽음⇒세포의 전체 소실까지 기다릴 수 없다, 3일장⇒죽음의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장례, 유언 집행등의 문제)3죽음의 기준⇒심장이든 뇌든 신체 기관의 특정 기능이 정지되는 것⇒그 정지는 불가역적이다 한번 정지되면 되돌릴 수 없다⇒모든 세포활동의 정지를 죽음으로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뇌나 심장이 멈춘 후에도 머리카락, 손톱은 계속 성장한다.4지금까지 죽음의 기준⇒맥박이 멈추면 죽은 것⇒지연적인 죽음 과정{) 전신체적 기준 : 호흡을 멈추면 산소 결핍이 시작 → 심장이 멈춤과 동시에 혈액공급 중단 → 뇌에 혈액공 급 중단되면 뇌조직 급속도로 파괴.: 호흡이 멈춤 → 맥박(심장)이 멈춤 → 뇌기능 손상 → 신체의 모든 기능 정지⇒ 심장의 박동과 호흡운동 및 인체의 각종 반사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 가 죽음이다.▷심폐기능이 정지된 시각으로부터 30분간 관찰, 소생술을 실시뇌의 상실은 곧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가 상실되고, 개인의 존재 의미가 소멸된 것. 그 것은 곧 죽음이다.ⅱ 호흡이나 심장은 정지 뒤에도 회복될 수 있고 또 인공 장치로 유지될 수 있지만, 뇌기능은 완전 정지 후에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따라서 사람의 생명은 뇌사에서 이미 죽음이 시작된 것이다. 뇌사 후 성인은 2일 후 어린이는 14 일 안에 모두 심장작동이 중지되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ⅲ소생가능성이 없는 뇌사자를 혈액순환을 통한 인공구급 소생술{) 인공구급 소생술 - 산소 호흡기를 통한 산소의 공급, 혈액 투석을 통한 혈액의 공급, 인공 심장이나 인공 배설기, 인공 소화기 등을 이용하여 환자의 신진대사를 강제로 되도록 하는 방법로 생명을 연장시키려면 엄청난 비 용이 들어 가족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준다.ⅳ뇌사를 인정하면 장기이식을 통해 다른 생명을 살릴 수도 있으며, 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 다.(3)뇌사의 종류1 전뇌사⇒대되, 소뇌, 뇌간의 모든 불가역적인 기능 정지를 뇌사라고 보는 입장⇒뇌사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 그러나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우리 나라도 전뇌사 인정)2 대뇌사⇒인간의 정신활동, 즉 인식, 느낌, 기억, 의식을 가능케 하는 고등 뇌인 대뇌와 피질의 정지가 바로 뇌의 죽음이고 이것이 인간의 죽음이다.(영국)⇒식물인간{) 대뇌만 죽고 뇌간은 살아있는 인간도 죽은 인간이다.⇒개인의 자아 정체성이 대뇌 소실과 함께 사라지므로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3뇌간사⇒뇌간이 뇌 전체를 통합하는 기능을 가지므로 뇌간이 죽은 것이 죽은 것이다.2. 안락사의 정의(1) 안락사란?안락사{) 안락사를 자비로운 죽음 이라고도 한다. (Mercy Killing)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 환자를 죽게 하는 것 으로서 과거엔 이와 관계된 이들간에서만 논의가 되던 것이었으나 점차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과거 독일에서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생명의 말살 도) 어원eu(Well, Good) + thanatos(death) =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3) 안락사의 역사1 원시 민족⇒ 한정된 식량면적에 기본인수를 적합시키기 위해⇒ 전시행군이나 이동행진에 필요한 행동에 자유를 위해 안락사를 허용하였다.2 고대 스파르타, 희랍⇒ 생활 능력이 없는 기형아나 기타 지능이 낮은 아이들을 도태하기 위하여 기아라는 형식으로 안락 사 시켰다.3 고대 로마⇒ 기형아를 출생 후 즉시 죽인다는 것을 법률로 허가하였다.4 게르만족⇒ 기형아를 낳으면 내다버려 굶어 죽게 하였다.3. 안락사의 분류(1)환자의 의지에 따라1 자발적(자의적) 안락사⇒ 생명주체의 자발적 의사에 따르는 안락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다시 두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어떤 생명주체의 명령, 의뢰 또는 신청 등의 적극적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의뢰적 안 락사라고 하며,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나 안락사를 승락하여 이루어지는 경우, 즉 적극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의사에 의한 경우를 승인적 안락사라고 한다⇒ 자살과 동일한 맥락에서 문제가 된다.2 비자발적(임의적) 안락사⇒ 생명 주체가 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그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외부에 서 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즉 표현되고 있으나 시행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때 이러한 상황 에서 환자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시술하는 안락사이다.⇒ 환자의 자율성과 생명권 침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3 반자발적(타의적) 안락사⇒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을 가진 환자의 동의 없이, 또는 환자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술하는 강제적인 안락사로 온정적 간섭주의에 기초한다.⇒ 이는 살인행위로 간주된다.(2) 시술 방법에 따라1 적극적 안락사 (죽임)⇒ 안락사를 시행하는 사람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것을 처음부터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능 동적으로 취하는 형태로 적극적인 행위로 생명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생명을 단축시키는 특수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죽음의 천사 케보키자가 이전부터 존재하던 질병 등의 원인이 되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섰을 떠 그 진행을 일시 적으로나마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방치함으로써 안락사 시키는 경우 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반 수단인 몰핀의 사용{) 이중효과의 원리 - 효과(고통의 감소) + 부작용(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있을 수 있다.⇒ 생명을 연장시키는 특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로 무뇌아에게 생명보조장치를 부착하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소극적 안락사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ⅰ 건강을 회복할 희망이 전혀 없어야 한다.ⅱ 그 치료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ⅲ 환자의 자유를 존중해 줘야한다.(3) 생존의 윤리성에 따라1 자비적 안락사인내하기 힘든 격렬한 고통이 진정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이러한 육체적 고통을 지닌 인간 생명은 무의미한 존재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즉 고통을 견디어 나가는 것이 일과의 전부가 되는 상태에서의 생명이란 무의미하기 떠문에, 그 생명은 단축시키는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행위라는 것 이다. 따라서 이것을 반고통사(反苦痛死){) 고통에 반대로 하여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 긍정적 입장에서의 표현로 표현하기도 한다.2 존엄적 안락사비이성적인 인간 생명은 무의미한 생존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없어 정신적 인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 산송장 으로서의 인간은 그 생존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존엄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3도태적 안락사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 일정한 연대성을 지니고 생활하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어떤 생명체가 때로는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의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공동체가 많은 부담이 되며, 그 희생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즉 이렇게 공동체에 큰 부담이 되는 생명 주체는 생존의 의미가 없다고 거부되는 것 일 종으로 처벌대상이 되었다.(2) 르네상스 시대 : 긍정론이 있기는 하나 역시 자살이나 안락사를 죄악시하는 사고방식이 지배적1 모어 - 카톨릭교이지만 에서 유토피아, 즉 비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본인의 의사에 의한 안락사도 시인될 수 있다.2 F.베이컨 -{)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우상 파괴의 부문이라고 하며, 인간의 정신을 따라다니는 선천적·후천적 이 돌라(idola:우상)의 적발과 제거를 논하였다. 제2권은 진리 건설의 부문이라 하며, 귀납법을 자연현상의 본 질을 포착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제시하고, 개개의 현상을 성립시키는 여러 조건을 면밀하게 음미하고 그 비본질적인 조건을 제거하면서, 본질적인 조건을 이끌어낼 것을 권한다.에서 유사나지아라는 말을 사용하여 긍정론 전개(3) 18세기 말 :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이 일 기 시작.(4) 20 세기 : 안락사 합법화를 요구하는 움직임 확대11930년대 : 영국이나 미국에서 가 연이어 발족되어 안락사 합법화의 제정을 요구하 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2제 2차 세계대전 뒤 : 나치스 독일에서 라는 명분아래 정신장애 자, 쓸모없는 노인, 열등 종족으로 여겨진 유대인 등 20 여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되는 사태가 발 생. 이러한 경험을 겪고 난 제 2차 세계대전 뒤에 안락사를 안이하게 긍정하려 는 사고방식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함.(5)오 늘 날 : 안락사가 형법적으로도 허용된다는 사고방식이 일부에서 주장되기는 하나, 일반적으로는 역시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5. 안락사에 대한 입장(1)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서 주장을 한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의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 환자를 위하여 고통을 진정시키는 진통제 사용 이외에 다른 어떤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그 고통과 비참함을 빨리 종식시킬수록 좋다는 것이다. 사실상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누워 있는 환자는 다.
    인문/어학| 2009.04.05| 6페이지| 2,500원| 조회(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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