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페이스북이라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이다. 나는 현재 페이스북에 가입은 되어 있지만 사용은 하지 않는 휴면사용자이다. 주변사람들이 짬짬이의 시간이 나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계속 페이스북에 접속을 해서 시간을 보내는데 솔직히 나는 그러한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에게 뭐가 재미있냐고 물어봐도 그저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자신의 일상을 올리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서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그냥 사생활침해 같아서 딱히 마음에 안든다.이번에 E-비지니스 과목 북리뷰로 페이스북과 관련된 책이 있어서 페이스북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해해보고 싶어서 선정을 했다.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주커버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룬 책이라 페이스북의 개발자가 어떠한 의도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페이스북에 대해 다른 책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마크 주커버그는 1984년에 태어나 현재 한국나이로는 불과 29살, 미국나이로는 28살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젊은 CEO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이다. 총 재산 175억달러(약 21조원)을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갑부이다.이렇게 불과 20대에 많은 재산을 쌓은 주커버그는 처음부터 이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주커버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프로그래밍 기술을 엄청난 속도로 습득했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는 치과 의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집과 병원을 연결해 환자의 내원을 알려주는 ‘주크넷’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인 ‘시냅스’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소프트웨어는 온라인에 게시되자마자 많은 호평을 받아 MS나 AOL같은 유명한 회사들이 100만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을 해왔지만 주커버그는 거절하였다.대부분의 평범한 학생이라면 고등학생때 100만달러를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없이 이 소프트웨어를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커버그는 돈보다는 사람들이 기뻐할 만한 재미있는 일을 추구하였다.주커버그가 추구하는 페이스북의 목적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 힘을 기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초창기의 페이스북은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만 이용이 가능했었다. 페이스북은 학내 교류를 위해 학생들의 사진과 이름을 정리해놓은 명부를 일컫는 말이다. 페이스북에 가입하려면 하버드대학의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고 실명 가입이라는 조건만 충족시키면 되어서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 그리고 교직원까지 가입을 할 수 있었다. 서비스가 시작되고 한 달만에 1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급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경쟁심 유발에 있었다. 누구는 친구가 100명인데 나는 친구가 50명밖에 없다는 식으로 경쟁심이 생겨 친구를 더 많이 만드는 식으로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처음에는 사교적인 목적으로 페이스북이 사용되었지만 점차 스터디 그룹의 조직이나 각종 활동과 파티에 관한 공지에도 유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페이스북을 자신의 학교에도 서비스해달라는 메일이 쏟아졌다. 이에 페이스북은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로 서비스 범위를 넓혔다. 아이비리그 학교만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실시되면서 학생들에게 배타적인 우월감을 심어주었다.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페이스북은 미국 전역의 대학에 서비스를 서비스를 개방했다. 2006년에 이르자 사용자 수가 약 700만명으로 늘었고,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단순히 대학생들을 위한 용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고 곧이어 고등학교와 일반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 했다.주커버그는 2004년 4월에 플로리다 주에서 유한책임회사 등록을 했다. 공동 창업자는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크리스 휴스 그리고 에두아르도 세브린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페이스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주커버그밖에 없다.주커버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스티브 잡스이다. 스티브 잡스가 내세운 철학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덧붙일 것이 없어졌을 때가 아니라 깎아내릴 것이 없어졌을 때 드러난다’라는 것이었다. 주커버그 또한 ‘서비스의 핵심은 더하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기능을 가려내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누구나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함이 폭발적인 사용자 증가에 한몫을 하였다.내가 생각해도 성공한 사람들은 범인과는 무언가 다른 것 같다. 흔히들 휴대폰이나 카메라에 이런 기능, 저런 기능 등 많은 기능이 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주커버그는 필요 없는 기능을 최소화하여 웹페이지의 속도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기 간단하게 만들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하지만 내가 페이스북을 잘 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페이스북을 어떻게 사용을 해야되는 지를 잘 몰라서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사용자들이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편리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사용하기 간단한지를 잘 모르겠다.주커버그라고해서 실패없이 현재의 페이스북을 완성 한 것은 아니다. 지금 페이스북에서 많은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뉴스피드는 처음 사용자들에게 공개 되었을 때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뉴스피드는 친구가 어떤 흥미로운 일을 하면 본인이 그것을 알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정보를 보내주는 획기적인 기능이었다. 뉴스피드는 주커버그가 성공을 확신하며 1년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서비스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예기치 못한 결과가 벌어졌다. 뉴스피드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보냈다. 사용자들이 느끼기에 뉴스피드는 마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엿보고 스토킹하는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하였다. 주커버그는 뉴스피드에 대해 “친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알려주는 멋진 방법”이라고 설명했지만 항의는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주커버그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과 대상을 제한할 수 있게 하는 제어기능을 추가했다.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경영학 콘서트, 경제학 콘서트 등의 콘서트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을 많이 읽어 왔지만 한 번도 나를 실망 시켰던 책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 회계학 콘서트는 스토리텔링으로 되어 있어 회계라는 과목자체를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보다 쉽게 다가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선정 하게 되었다.이 책은 경영에 문외한인 주인공 유키가 회계 전문가인 아즈미 교수의 도움을 받아 회계와 경영을 배워 가는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결산서를 읽는 방법이나 현금주의 회계 등 경영에 필요한 주제들이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또한 각 장마다 해설을 마련해 각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어 회계자체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참다랑어 초밥은 왜 이익을 올릴 수 없을까?’, ‘만두 가게와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 어느 쪽이 더 돈벌이가 될까?’라는 챕터제목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여 더욱 이 책의 내용에 빠져 들게 했다.주인공인 유키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 업무만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임시 주총을 통해 연간 매출액이 100억 엔인 ‘한나’를 상속해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취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주주총회 다음날부터 유키에게는 시련이 닥쳐온다. 한나의 주거래은행 지점장으로부터 융자상환 요청을 받게 된다. 1년 안에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경영 정상화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일체의 추가 융자는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유키는 이 문제를 회사의 임원들에게 상담을 해봤지만 모두 쌀쌀맞게만 굴어 일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키는 회계전문가인 아즈미에게 컨설팅을 의뢰하게 되었다.이 책에서는 회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한 것 때문인지 회사의 임원들이 경영자인 유키에게 지나칠 정도로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특히 경리이사의 경우 회사임원이 아니라 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회사의 임원인지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고 해도 임원이나 직원들이 지나칠 정도로 비협조적이라면 누구라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회사를 이끌어나가기 힘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 책의 내용은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든다.아즈미는 유키에게 컨설팅을 수락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첫째, 강의는 한 달에 한번. 가르쳐 준 사항은 반드시 그 달에 실행에 옮길 것.둘째, 강의는 맛있는 식사와 함께 할 것.셋째, 보수는 1년 후에 유키가 지급하고 싶은 금액으로 할 것.이렇게 아즈미는 유키와 회계에 대해서 알려주는 컨설턴트를 시작했다. 아즈미가 말한 내용 중 몇몇 챕터가 가장 읽으면서 재미있었다.첫째로 ‘참다랑어 초밥은 이익을 올릴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갔다.참다랑어 초밥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벌이가 안 된다. 초밥 1개당 5000원 이상 하지만 초밥 1개당 단가가 높아 이익이 많아도 돈벌이가 안 된다. 참다랑어 초밥과 전어 초밥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참다랑어 초밥이 비싸다 하지만 전어초밥을 팔아야 현금이 증가한다고 한다. 참다랑어는 구입단가가 높고, 언제든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참다랑어를 발견하면 약간 넉넉하게 구입하게 된다. 구입한 참다랑어가 전부 팔릴 때까지 1개월이 걸린다면, 최초에 지급한 현금이 모두 회수될 때까지 1개월이란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어는 그렇지 않다. 일단 전어는 구입단가가 낮다. 초밥 1개당 판매가격도 싸기 때문에 주문량도 많다. 신선함이 자랑이기 때문에 한 번에 대량으로 구입하는 일도 없다. 하루 분을 구입해 그날에 다 판다고 가정하면, 오늘 구입한 전어는 가게 문을 닫을 무렵에는 모두 현금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된다.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입한 자금이 다시 현금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전어는 참다랑어보다 그 시간이 훨씬 짧다. 전어는 적은 자금을 반복해 회전시킴으로써 많은 현금을 벌어 들일 수 있지만 참다랑어는 다 팔릴 때까지 1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자금이 휴면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즉 전어처럼 현금의 회전속도를 높여야만 재고도 줄고 적은 자금량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는 것은 비싼 제품을 조금씩 파는 것보다 값이 싼 제품을 많이 팔아 박리다매형식으로 자금의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이득을 높이는 비결이 될 수 있다.둘째로는 ‘셜록 홈스의 예리한 관찰력과 행동력 따라잡기’ 였다.이 부분에서는 유키의 회사인 한나가 갑자기 반품이 늘어서 이에대한 부분을 아즈미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 특히 반품되는 물품에는 유키가 한나의 CEO를 맡기 전에 디자인을 하여 자신있게 신제품으로 출시한 여성용 비즈니스 슈트가 섞여있어 유키에게는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여기서 한나의 경리부장은 경리업무가 아니라고 반품의 이유를 대답하는 것을 거절하여 반품이 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즈미는 여기서 진정한 경영자라면 결산서의 이면에야 말로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를 통해 유키는 계속되는 적자의 원인이 신제품에 있다는 회사 분위기를 조장하여 유키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경리부장과 생산관리부장이 꾸민 술수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된다. 생산부의 부하직원을 통해 알아본 결과 생산관리부장이 처음 예약을 받던 카탈로그의 색상과 디자인을 다르게 하여 고객들에게 발송을 하여 고객들의 클레임이 쏟아 진 것 이었다. 이를 통해 아즈미는 유키에게 반품이야 말로 경영에서 최악의 현상이라고 알려준다. 반품이 되면 애써서 만들어 고객에게 건네준 제품이 다시 회사로 돌아와 폐기된다는 의미로써 낭비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여기에서도 회계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계는 사실을 파악하는 실마리를 제공함으로서 현장에 가서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게 하여 개선의 방법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회계전문가들은 회계수치를 가만히 주시하면 숫자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고 말한다고 한다. 회계수치에서 회사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회사 내부활동 실태를 가시화할 수 있는 관리회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통적인 관리회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결여된 정보를 자신의 눈과 발을 사용해 보충하는 방법이다. 물론 전자의 방법이 편하고 쉽기는 하지만 회계수치에서 진실을 파악하려면 회사의 비즈니스를 정확히 이해해야 된다. 따라서 회계지식만으로는 숫자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이 절대 보이지 않으므로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가며 회사의 정보를 알아내고 이를 회계수치와 함께 연관지어 생각을 한다면 회계수치에 숨겨진 사실들이 속속 들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것은 안철수라는 사람이 이번 제18대 대통령선거 대선주자로서 출마하였지만 안철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이 책을 통해 안철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내가 안철수씨에 대해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은 안철수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V3를 만든 안철수연구소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로 있었다는 것 밖에 없다. 물론 현재는 안철수연구소는 Ahnlab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명을 바꾸었고 안철수씨 또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있다.이 책은 서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들,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관악초청강연’이라는 강연에서 안철수씨가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책은 드라마나 연극의 대본처럼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아주 상세히 적혀있다. 책을 처음 훑어보았을 때 어떻게 이런 것으로 책을 출판할 생각을 했지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이미 안철수씨는 많은 대학교나 기업체등에서 강연을 많이하여 이미 들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안철수씨가 직접 강연한 내용뿐만 아니라 질문 및 답변들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일반적인 책들과 차이를 두고 있다고 한다.안철수씨는 80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대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공학석사를 따고 또한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엄청난 인재였다. 안철수씨는 서울대 의대에 재학하는 동안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해결하는 문제에 매달리면서 우리나라 컴퓨터 백신프로그램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안철수씨가 처음 컴퓨터를 접하게 된 것은 그가 전공하는 기초의학과 관련된 의학 실험을 더 잘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원시절 우연히 신문을 통해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의 반환점이 아니었나 생각 된다. 안철수씨는 이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느껴 자신의 디스켓을 검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되었다.컴퓨터 바이러스의 본질은 복사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내용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취미생활로 삼고 있지만 엄연히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부품 쪽인 하드웨어이다. 컴퓨터 조립을 할 실력도 있고 컴퓨터 부품을 교체하는 것에 많은 흥미가 있다. 하지만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소프트웨어는 배울 기회도 부족했고 배울 엄두도 나지 않아 잘 알지 못했다. 평소 무료 백신 프로그램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하지만 바이러스의 본질적인 원인과 속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이런 부분의 기초적인 지식을 알게 되어 좋은 것 같다.안철수씨가 처음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은 후배가 바이러스로 날아간 디스켓을 복구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바이러스가 복사프로그램이니 이 뒤죽박죽으로 복사된 프로그램을 다시 원래상태로 되돌려 놓는다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착안된 발상이였다. 이렇게 완성된 프로그램이 지금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 V3의 첫 번째 버전이다.그 후로 안철수씨는 7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침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에는 의사로 일하면서 양쪽을 병행하였다. 하지만 시간이지나 바이러스가 매년 두 배씩 늘어나자 새벽 세 시간동안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졌다. 그래서 안철수씨는 이 중 한가지의 일에만 몰두하자는 결심을 내려야 될 시기를 맞게 되었다.이 때 정리를 한 생각은 첫째 ‘과거는 잊자’는 것이였다. 흔히들 실패가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안철수씨는 오히려 성공이 실패보다 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자신이 지금 현재 이룬 조그마한 성공이 나중에 더욱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닥치었을 때 그 기회를 잡기위해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되는데 하지만 그 조그마한 성공을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두 번째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주로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곤 하는 데 그렇게 하다보면 처음의 초심이 많이 약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주장대로 선택한 일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 평가에 너무 연연해하면 안된다고 한다.
이 책을 북리뷰 도서로 선정하게 된 것은 평소 이런 역사적인 내용이 들어간 경영학 서적을 좋아해서 선정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의 저자가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라는 책의 저자여서 읽게 된 것도 있다.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 책은 작년에 북리뷰 도서로 선정이 되어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아일랜드 명문 오닐 가 1500년 지속성장의 비밀’ 이 책을 선정하는 데 적잖은 영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솔직히 오닐가가 명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가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명문가라고 한다면 함부르크 가문 같은 세계사에 많이 등장하는 가문 밖에 알지 못했는데 오닐가가 왜 명문가라는 점에서부터 의문이 들었다.오닐 가는 헤레몬 오닐이 처음으로 아일랜드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기원전 1015년 헤레몬 오닐은 노르만의 해적 두목으로 북아일랜드의 해안지방을 점거하기 위해 해상원정대를 조직했다. 이 때 또 다른 북유럽 해적의 두목과 경쟁을 했는데 두 사람중 어느 쪽이든 새 영토에 먼저 손이 닿는 사람이 아일랜드의 국왕이 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양편의 배는 동시에 출발해 같은 때에 목적지가 보이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오닐의 상대방이 갑자기 속력을 내어 땅을 빼앗길 상황이 되었다.하지만 이 때 오닐은 자신의 오른손을 칼로 잘라 손목을 뭍을 향해 던졌고 오닐의 오른손은 경쟁자의 오른손과 간발의 차로 육지에 닿았다. 그리하여 헤레몬 오닐은 북아일랜드 얼스터의 초대 국왕이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오닐의 완조는 오랫동안 얼스터지방을 다스리게 되었다.이 헤레몬 오닐의 붉은 손에 대해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손을 ‘욕망의 손’ 또는 ‘탐욕의 손’이라 부르며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붉은 손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성’과 손을 자르는 고통을 이겨낸 ‘비장함’ 때문이다.이처럼 자신의 손을 잘라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헤레몬을 보면서 경악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처럼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은 작은 것을 포기하고 큰 것을 얻어야한다는 이론을 아주 철저히 적용한 사례라고 보여진다. 이 오닐의 붉은 손은 대대로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하여 후대에게도 오닐가문의 시초를 잊지않게 남겼다고 한다.이 책에서는 용기(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용단), 비전(낙토를 향한 간절한 꿈), 핵심가치(유전자 만들기), 시스템(제도와 정보의 힘), 이노베이션(변화, 생존의 법칙) 이렇게 5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중에서 핵심가치가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인 것 같다. 오닐 가는 무려 기원전 1000년전에 생성된 가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문에서 벌써 장자상속을 하지않았다는 점에서 큰 흥미를 느꼈다. 이 때 당시 아일랜드는 엄연히 장자상속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닐 가는 장자가 아닌 리더로써 가장 능력있고 신망있는 지도자를 왕으로 선택하였다. 이 방법은 당연하다고도 생각 될 수 있지만 훨씬 후인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인 지금도 잘지켜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현대의 기업들을 보더라도 재벌그룹들의 총수들은 대부분 CEO를 자신의 첫째아들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의문이라고 들 수도 있는데 지금의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도 자신은 3째 아들이었지만 그룹을 물려받은 것에 반해 자신은 첫째아들에게 물려줄려고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하지만 이 고전의 명문가인 오닐 가는 형제간들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하여 후계자 자리에 가장 걸맞는 아들을 뽑았다. 이러한 방법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대의 변화 속에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그렇지만 이 방법이 장점만이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 된다. 이 방법은 흡사 조선 초기에 있었던 형제의 난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형제들과 경쟁을 벌이게 되면 물론 취지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형제들의 능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가문의 발전과 리더로써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정하기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초기에는 선의의 경쟁이 잘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나중에는 변질이 되어 온갖 음모와 암투가 난발하게 되는 것은 오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이러한 단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이러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오닐 가는 1500년이란 아주 긴 시간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100년도 유지한 기업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적은 현실이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오닐 가는 1500년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은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오닐 가를 알지 못했던 이유는 지금은 오닐가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닐 가는 오랜 시간동안 명문을 유지 했지만 결국 쇠퇴하여 사라진 이유는 결국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고 도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오닐가의 특징인 용기(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용단), 비전(낙토를 향한 간절한 꿈), 핵심가치(유전자 만들기), 시스템(제도와 정보의 힘), 이노베이션(변화, 생존의 법칙)들 중에서 아무래도 오닐가가 가장 잘 보여주는 장점은 용기라고 생각 된다. 초대 가주인 헤레몬 오닐이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가면서까지 낙토를 먼저 선취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용기가 있지 않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된다. 어느 누구에게나 물어보아도 아마 대부분은 똑같은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을 읽고북리뷰 도서로써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것은 평소 광해군이나 정조를 좋아해서였다.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한번쯤 ‘아……. 이 사람이 이렇게만 했더라면’ 혹은 ‘이 사람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인물이 광해군과 정조였다.보통 광해군하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폈던 왕이지만 이 중립적인 외교정책이 서인이나 남인들에게는 우유부단한 외교정책이라고 판단되어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긴 사람으로 알고 있다.그렇다면 비운의 왕 광해군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광해군은 1575년 선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후궁이었던 공빈 김씨였다.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가 자식이 없어 광해군이 둘째가 된 것 이었다.어렸을 적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내용이 있지는 않지만 많은 형제들 중에서 총명하고 학문에 힘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광해군에게 기회가 오게 되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선조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말라고 하였기에 아직 왕세자가 존재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왜군의 득세로 피난을 가야할 상황이 되자 신립의 형 신잡의 건의로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대신들의 논의가 이어지자 선조는 광해 군을 언급하고 신하들도 선조의 말에 동의를 했다.이렇게 얼떨결에 광해군은 왕세자에 책봉이 되었다. 당시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원래 서열상 광해군은 둘째였기 때문에 엄청난 파격적인 왕세자 책봉이 아닐 수가 없었다.왕세자가 된 광해군은 선조의 명으로 분조를 맡게 되었다. 분조는 조정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임시정부를 광해군이 맡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분조는 왜란 초 일본군에게 어이없이 유린되었던 조선 조정이 비로소 본격적으로 항전을 독려하고 전쟁 수행에 나서는 시발점이 되었다. 백성들은 조정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광해군의 분조를 향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이렇게 광해군이 큰 활약을 펼치자 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무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선조는 걸핏하면 양위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광해 군과 신료들의 자세를 떠보려는 수작 이였다. 또한 자신의 광해군의 뛰어난 활약으로 약해진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위한 하나의 생존책이었다. 아버지 선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남으려 했던 광해군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했던 경험이 뒷날 광해군이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로 인식되는데 빌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왜군들이 점차 북상하자 명나라는 왜군이 요동까지 밀려온다면 북경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임진왜란의 참전을 선택 하였다. 하지만 명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긴 하였으나 벽제관의 패배로 일본과의 강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명군의 협상 책임자인 심유경은 영남 일대의 일본군들에게 ‘심유경 표첩’이란 것을 발급해주었다. 일종의 통행 허가증이였는데 이것을 소지한 일본군이 조선인 마을을 들락거려도 조선 사람들은 그들에게 적대행위를 할 수 없었다. 만약 일본군을 공격하게 되면 명군 지휘부에 붙들려가 곤장을 맞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한편으론 일본군에게 시달리고, 또 다른 한편으론 군량만 축내는 명군한테도 엄청난 피해를 보아야 했다.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하는 나라의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가장 최근의 일로 이라크 전쟁 때도 이라크의 무고한 국민이 미군에게 폭행당하는 등의 사건들로 미루어 보아 전쟁은 표면상으로는 군인들 간의 싸움이지만 실제로는 국민들도 같이 전쟁을 치루는 것 같다.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는 1602년 당시 광해군보다 무려 아홉 살이나 어린 처녀를 취하여 장가를 다시 들었다. 이 여인이 바로 인목대비였다. 그리고 1606년 봄 인목대비에게서 왕자가 태어났다. 광해군과는 다르게 후계자로서 전혀 하자가 없는 적자인 영창군이었다. 왕세자인 광해군은 적자인 영창군이 태어남으로 인해 앞날이 불확실해져만 갔다.하지만 1608년 왕위에 오른 지 41년 만에 선조는 눈을 감았다.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실 최고어른은 인목대비가 되었다. 인목대비는 선조가 죽은 다음날 광해군을 즉위시켰다.인목대비가 이렇게 성급하게 광해군을 즉위시킨 것은 자신의 아들인 영창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영창군이 성장할 경우 광해군에게 위협이 될거라고 판단한 신하들은 영창군을 귀양을 보내라고 상소를 올렸다. 그리하여 영창군은 강화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지만 귀양을 가던 도중 암살을 당했다. 또한 인목대비도 덕수궁에 유폐시켰다.어느 왕들을 보던 그 왕들을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보필하던 신하들이 있었다. 광해군에게는 정인홍과 이이첨이라는 인물들이 있었다. 정인홍은 광해군이 왕세자인 시절부터 광해군을 옹호하면서 광해군의 오른팔로 자리잡았다. 이이첨도 광해군의 시강원 사서 즉 광해군의 스승으로서 광해 군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광해군이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었지만 광해군의 앞은 캄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어루만지고 무너져내린 국가의 기반을 재건해야 했다. 또한 첩의 자식이자 둘째인 처지에서 왕이 되었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왕권을 높여야만 했다.그래서 광해군은 즉위 직후 경기도 지역에 대동법을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당시 방납의 폐단으로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대동법은 현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바치는 것이었는데 백성들에게는 많은 환호를 받았다. 또한 동의보감과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편찬해 내며 민생안정에 힘썼다.하지만 광해군은 조선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궁궐을 많이 지었다. 이것은 광해군의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과 관련지을 수 있다. 광해 군은 왜란 중에 겪었던 간난신고, 맏아들이 아닌 생태에서 왕세자가 되었다는 콤플렉스, 아버지 선조와의 미묘한 갈등, 적자 영창군의 출생 등등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통해 그는 소심해졌을 뿐 아니라 운수에 대한 집착이 병적으로 심해졌던 것으로 보였다. 광해군은 왕권강화 차원에서 술사들의 말을 믿고 명당을 찾아서 궁궐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이 왕권강화 차원에서 그토록 집착했던 궁궐영건 사업이 농민들을 병들게 하고 궁극에는 광해군 자신을 몰락하게 만들었다.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명의 도움을 받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 후 은혜를 갚으라는 명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명군의 임진왜란 참전을 재조지은이라고 불렀다. 즉, ‘망해가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혜’라는 뜻이다. 명은 이를 빌미로 조선에서 많은 은을 갈취해 갔다. 당시 명은 은을 화폐로 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은으로 예물이나 뇌물을 받는 다면 여러모로 편했다. 왜란 전까지는 모시나 부채, 화문석과 같은 토산물을 예물로 주었으나, 명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에도 은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은을 요구 하였던 것이었다.명이 이렇게 재조지은을 들먹이며 조선을 수탈하고 있을 때 누르하치는 점점 더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광해군이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에 취했던 대응책은 기미책이었다. 기미책은 오랑캐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견제하되, 정복하거나 지배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은 피하는 것이다. 즉, 소극적인 현상유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의 영향이 아직 가시지 않은 때에 사나운 후금을 상대할 여력이 없다는 데서 나온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힘을 길러 침략에 대비하려 하였다.광해군이 펼친 외교적 대응책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정보 수집을 위한 노력이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강홍립의 심하전투에서의 항복을 들을 수 있다.후금이 명을 공격하자 명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임진왜란의 은혜를 강조하며 생색을 내는 것이었다. 사대부들은 지성을 다해 보답하고자 원병을 보내자고 광해군에게 강력히 주장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피폐한 상황에 군대를 보내봤자 전멸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였다. 하지만 명과 비변사의 신료들의 압박으로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전권을 맡긴 뒤 1만 여명의 병사를 파견하였다.이 내용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다.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은 한국에도 군대의 파병을 요청하였다. 생색만 내는 의료부대가 아닌 전투부대를 파병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여론은 꼭 전투부대까지 파병을 보내어야겠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 편을 나누어 싸우던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추어 파병을 보내자고 하여 의결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과거를 알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서를 읽다보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과거를 다시 답습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