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 1920년대 문학의 정착1. 3 ? 1운동과 민족의 발견2. 언론 ? 출판의 창달3. 문학동인지와 잡지 시대의 개막4. 민족주의와 계급주의Ⅱ. 1920년대 시의 흐름1. 시대적 ? 문화적 배경2. 문학적 ? 사조적 성격3. 시의 양상4. 민요시5. 서사시Ⅲ. 1920년대 근대소설의 전개1. 근대 소설의 정착2. 근대적 소설 미학의 탐구3. 신경향파 소설의 대두4. 본격적인 프로소설5. 계급문학운동과 동반자 소설6. 20년대 소설의 특징Ⅳ. 1920년대 연극과 희곡1. 20년대 희곡과 공연환경2. 사실주의 연극론3. 극예술협회와 사실주의 희곡4. 토월회와 박승희5. 계급주의 연극운동Ⅴ. 마무리Ⅰ. 1920년대 문학의 정착1. 3·1운동과 민족의 발견3·1운동의 결과는 같은 해 4월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어 대내·외적인 독립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만주지역의 항일독립군은 보다 결속한 체제로 투쟁을 벌였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김원봉의 의열단은 특히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이 거족적인 민족저항운동에 부딪혀 일제는 식민지 통치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동안의 헌병정치에 의한 우민화(愚民化)정치를 지양하고 소위 문화정치를 실시하게 되었고, 고전적 식민지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근대적 기업활동 등을 허용한 것이었다. 일제는 3·1운동의 거센 민족저항에 부딪혀 탄압만으로는 통치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국면 전환에 대응한 새로운 민족운동은 언론 및 교육을 통한 민족계몽을 강화했고, 문학의 근대화를 촉진,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를 표방한 민권운동을 전개했으며 일본자본에 대항하는 민족기업의 육성운동을 전개한 것이다.2. 언론·출판의 창달3·1운동 이후 일제는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동아일보』·『조선일보』·『시사신문』을 허가하였다. 이와 같이 3·1운동을 계기 되어 출현한 이 민간지들은 일제 식민지정책을 비판하고 우리 민족의 민권을 주장하고 나오는 한편, 언론기관들을 통하여 점차 국민에 대한 각20년대 시의 양상.3.1 주요한의 「불노리」와 김억의 「봄은 간다」유교적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의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회의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징주의 시운동의 감성적 주관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동경 유학생 출신의 젊은 시인들이 1910년대 계몽시가 낳은 공허와 추상적인 현실 인식이 깨어져야 한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우리 시는 진정한 자유시로서 근대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시 주제는 대체로 사랑하는 ‘님’과 화자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년대 전기에 쓰인 대개의 시들은 ‘님’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보다는 ‘님’을 향한 화자의 느낌과 태도가 현재의 시간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개성적인 운율과 정서적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한의 「불노리」는 그런 의미에서 1920년대 상징시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주요한은 『창조』창간호에 「불노리」와 함께 네 편의 시를 발표했고, 「불노리」는 한 때 한국 근대 자유시의 출발점으로 삼아지기도 했으나, 1960년대 서구주의의 맹목적 수용에 대한 비판과 민족문화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문학사가들에 의해 근대시의 효시로서 가치가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주요한과 김억의 시는 사설시조나 개화기 시가와는 많은 점에서 이질적이면서 오늘의 우리 시와는 많은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형태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 근대시의 독창성을 이루려는 주요한의 시 장르에 대한 관심과 표현미의 추구는 「불노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산문 형태 속에 담은 구어체의 연속적 운율의 흐름은 그 나름대로 감정적 분출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려는 표현법이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시의 의미 구조는 반복과 영탄의 어조를 삽입하면서 운율의 격정인 흐름을 방치하지 않고 휘어잡아 전환시킴으로써 외부 세계의 어둠을 내적 의지로 반전하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같은 시대 다른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준 병적이고 나약한 감상과는 달리 주요한이 절망과 좌절의 현실 속에서도 건강성과 낭만적 의지를 매개로 생의 잠재적 욕망을 본격적인 시 전문지이다. 넓은 의미에서 『금성』은 낭만주의 갈래에 든다. 그리고 문예 사조론의 입장에 의하면 그것은 『백조』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는 유엽, 백기만, 손진태, 양주동이 포함된다.『금성』은 창간호에서 양주동에 의해 보들레르의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고, 양주동, 백기만에 의해 타고르의 시도 번역 소개되었다. 2호에서 주목할 것은 그 지면 일부가 신인과 독자의 작품을 게재하고 있는 점이다. 3호에서도 독자의 시가 게재되어 있고, 정인보와 김창술이 참여했다는 것인데, 정인보는 그 후 해외문학연구회의 일원으로 그 활동의 구심점을 이루었고, 김창술은 후에 카프의 맹원이 되어 그 교의에 충실한 시를 쓴 인물이다.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를 보면, 이 시는 우리 나라 1920년대 초기의 작품으로는 대단히 뛰어난 기교를 구사한 감각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장희는 당시 시단을 풍미하던 감상적이고 퇴폐적인 풍조에 동참하지 않고, 날카로운 감각과 세련된 기교를 통하여 시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했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현대시 초기적 면모를 극복하고 시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적 위치를 차지한다.『금성』우리 시 문학상 최초의 본격적 시 전문지였다. 그와 아울러 그 구성원들 역시 열정적으로 개성적인 활동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이 잡지는 통권 3호가 간행되는 가운데 비교적 수준 높은 고른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이장희의 지적인 이미지와 감각을 사용한 시 「봄은 고양이로다」와 유엽의 「소녀의 죽음」을 통해서 서사시를 형성시킨 공적은 손꼽을 만하다. 이렇듯 한국 근대시의 형성, 전개에 『금성』이 담당한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3.3. 프롤레타리아의 시문학3.3.1. 염군사와 파스큘라(PASKULA)프로문학은 두 개의 방향에서 태동된다. 그 하나는 염군사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파스큘라의 움직임이다. 염군사는 1922년 이적효, 이호, 김홍파, 김두수, 최승일, 심훈, 김영팔, 송영 등으로 결성된 모임이었의식을 갖고 민요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년대 시단에는 민요시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스로 민요시인임을 자처했고, 당대 평자들에 의해서도 이의 사실이 공인되었다. 이후 서서히 민요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갔다. 민요 시인들이 활동한 시기는 3·1운동 이후부터 만주사변에 이르기까지의 약 10여 년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민요 시인들은 각기 다른 동인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같은 문학이념, 같은 문학세계를 지닌 동질 집단을 형성했다. 그런데 민요시는 창작보다 이론이 뒤졌으며, 이것은 우리 민요시가 자연발생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의미를 준다.1920년대 민요시파가 연구한 대표적 민요 연구론에 의한 민요관을 정리해 보면, 첫째, 민요시 속에 민족혼, 조선심, 조선혼 등이 담겨 있다는 것, 둘째, 창작 태도는 대체로 집단 창작설에 동조하고 있다. 자연발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민요가 민중에 의해서 창작된다는 견해이다. 셋째, 소재로는 향토성과 자연 친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고 넷째, 음악성은 대체로 4·4조를 기본 음수율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향유자는 민속적 민중이라는 것이고, 여섯째, 정서로는 원시적 정서, 민족 고유의 정서, 민중 생활 감정 등이라는 견해이다.20년대 민요론에 있어 그 쟁점은 사회주의 민요관과 민족주의 민요관의 대립에 있다.김기진은 ‘조선 문학의 현재와 수준’ 등의 글을 통해 민요 부흥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즉, 민요 부흥은 현실을 외면한 회고주의와 관념주의의 표현이며 현실 도피의 수단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또한 그는 ‘문예시평’에서 민요의 존재를 배격하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즉, 민요란 농업 경제 시대, 봉건 군주 시대의 산물로서 현대와 같이 생활이 발흥된 시대에는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식의 규율성은 봉건 군주의 윤리에 적합한 것이며, 내용 역시 현실 도피적, 현상 유지적, 현상 만족적인 굴종 정신을 표현하여 무산 대중의 생활 감정으로부터 유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이 논고 과감하게 멈추고, 음절의 생략과 첨가, 호흡절의 분철 및 시행의 병렬 따위의 방법을 동원하여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율격을 창안해 냈다. 즉 그는 민요 율격에 바탕을 두면서도 그것을 새롭게 가꾸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월의 이 같은 실험 정신을 전통 율격의 계승과 변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기도 하다.4.4. 『님의 침묵』과 한용운4.4.1 구성 · 전개 · 창작 동기만해 한용운은 다른 시인 및 작가와는 달리 어느 문학 동인이나 혹은 어느 유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그의 대표적인 시집 『님의 침묵』의 구성은 앞에 ‘군말’과 뒤에 ‘독자에게’가 붙어있다. ‘군말’에는 창작 동기가 제시되어 있다. 본문은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이별은 미의 창조」, 「알 수 없어요」, 「길이 막혀」, 「자유정조」, 「나룻배와 행인」, 「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기·승·전·결의 극적 구성을 취한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가령 「님의 침묵」에서 이별의 상황 제시(기), 이별 후의 고통(승), 슬픔이 희망에로의 전환(전), 만남의 성취(결)이라는 전개 과정을 지닌 것과 대응된다.나아가 『님의 침묵』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연작시적 구성 방식을 지닌다. 첫 시「님의 침묵」에서의 첫 구절은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이별의 시로 시작되어, 끝 시 「사랑의 끝판」에서의 마지막 행이 ‘녜 녜 가요 이제 곧 가요.'라는 님을 만나러 가는 시로 귀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 이별과 그것이 주는 고통과 절망을 통해 마침내 도달하게 된 만남을 맞이하는 것이다.창작 동기는 민족 항일 시대를 당면하여, 1920년대의 혹심한 언론 탄압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문학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시의 양식인 비유 및 상징을 통해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에서 문학적 저항을 시도한 것이다.4.4.2.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드라마시집 『님의 침묵』은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가버린 님과 그 님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있다.
◆ 목 차 ◆Ⅰ. 개관Ⅱ. 1930년대 시의 흐름1. 1930년대 시문학사적 특징2. 1930년대 시문학의 주요 경향3. 맺음말Ⅲ. 1930년대 소설의 전개1. 소설의 다양화2. 프로소설의 변모3. 농민소설4. 리얼리즘 소설5. 모더니즘 소설6. 순수주의 소설과 통속소설7. 역사소설Ⅳ. 1930년대 희곡1. 1930년대 희곡의 정착기2. 사실주의 희곡3. 카프계의 작품들4. 대중연극의 확산Ⅴ. 우리 비평의 근대적 성격1. 근대성과 비평2. ‘물논쟁’의 사상3. 일원론과 신이원론ⅤI. 마무리Ⅰ. 개관1930년대에 들어 파시즘의 팽배와 더불어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은 더욱 심화된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데서 출발하는데, 만주사변은 일본이 동양 전체를 그 지배하에 두려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불의의 침략전을 합리화시키고 자국 내의 반대 세력을 봉쇄해 두는 일이었다. 침략전의 합리화를 위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것은 아시아 각 민족은 서로 단결하여 서양의 침략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은 자국 체제를 ‘신질서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통제했다. 신질서는 명치유신 이래 확립되어 온 일본의 입헌 의회 정치가 가지는 민주주의 적인 체제와 질서를 천황 독재 곧, 군부 독재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즉, 1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이태리에서 조성되어 온 파시즘의 체제를 일본에 확립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국내 체제는 국가 목적을 위해 국민을 통제하려는 데 효과적인 것이며, 또한 국가 목적의 어떤 반대 세력을 봉쇄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이와 같은 일본 제국주의 사상과 그 파시즘적인 통제가 만주 사변과 함께 강화됨으로써 일본의 대 한국 정책에 일대 변동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한 가지 예가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이, 그 이전의 무단 정책으로 환원된 것이다. 일제는 1928년 발효된 치안 유지법에 기초하여 조선인들에 대한 사상 탄압을 가중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다시 검열 등의 방법으로 제한되었고, 사상통뱀 떼같이재재발렀다꼬리가 이루잡히지 않았다.흰 발톱에 찢긴산호(珊瑚)보다 불고 슬픈 생채기!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변죽을 들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이 애쓴 해도(海圖)에손을 씻고 떼었다.찰찰 넘치도록돌돌 굴르도록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지구(地球)는 연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바다 2」, 전문(『시원』 5호, 1935, 12월호)정지용의 초기 시에는 ‘바다’를 제목 혹은 소재로 하여 쓴 작품이 10여 편에 이른다. 그의 바다로 향하는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쾌적하며, 신비롭게 펼쳐진다. 상식을 뛰어넘는 시적 경이감으로 가득 찬 생명의 비의(秘義)를 드러내는 것이다. 「바다 2」는 ‘바다’ 시편들 중에서는 물론, 정지용의 시 전체를 통해서도 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대표적인 작품이다.「바다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지용의 ‘바다’ 시편들은 선명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동적이고 맑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의 힘찬 생명감을 환기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객관적 태도로 감정을 절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창작 태도는 지성을 중시하고, 사물의 직접적 표현에 이바지하는 언어의 선택과 세련미, 이미지를 중시한 영미 이미지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들였음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감각적이고 절제된 이미지의 편향이 단순히 표현 기법적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과 일체화되어 감성의 통일을 이루려는 보다 내면적이고 심층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 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유리창 1」, 전문(『조선지광』, 89호, 1903, 1)시 「유리창 1」은 자식을 잃은 30년대 후반은 문학사에서 ‘전형기’로 언급된다. 전형기라는 개념은 문단을 이끌어 갈 주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주조를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년대에는 카프가 문단을 주도해 왔고, 카프 계열의 작가들은 30년대에 와서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30년대 초반은 시문학파와 구인회 등이 서로 일정한 영향을 주면서 문단을 이끌어가고 있었다.카프는 해산되고, 모더니즘은 비생명적 메카니즘으로, 시문학파는 기교주의 중시로 비판과 자성이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여기서 30년대 후반의 문학 유파로 생명파가 등장한다.생명파는 프로 문학의 이념, 순수시를 표방한 『시문학』의 유미주의적 경향과 관념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감각적 기교주의와 반생명성에 반발하여 등장한 일군의 시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생명파의 일원으로는 『시인부락』(1936년 11월)을 중심으로 한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함형수 등을 들 수 있고, 그 외에 윤곤강, 신석초, 유치환 등을 생명파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은 『시문학』의 예술 지상주의적인 경향을 이어받으면서도 생명의 본질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이를 좀더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생명파가 인간과 생명이라는 보편적 테마에 새로운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현대 문학의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음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다.2.3.1. 서정주서정주는 1936년 시 「벽」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그 뒤 『시인부락』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생명파의 시 경향인 생명 탐구라는 문학적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첫 시집 『화사(花蛇)』를 남만서고에서 출간했다. 그는 후에 「한국현대시의 사적 개관」에서 생명파의 명칭을 언급했다. 즉 일본의 인생파와 구별하기 위해 ‘생명파’로 부를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명파를 ‘사람의 기본적 가치 의식, 그 권한 의식, - 이런 것 때문에 질주하고 저돌하고 향수하고 원시 회귀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벌써 희미한 초롱불을 들고 사방을 밝혀 가면서거친 산과 낮은 들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그려!아마 동리에 수탉이 밤의 적막을 가늘게 찢을 때잠자던 어느 골짜기를 떠나 분주히 나섰겠죠.김현승,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부분.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집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물 곳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제 산을 쳐다본다.노천명, 「사슴」, 전문.임 계신 곳을 향하여이 몸이 갑니다.검은 머리 풀어 허리에 매고불꺼진 조국의 제단에횃불을 켜 놓으러 달려갑니다.모윤숙, 「검은 머리 풀어」, 전문.김현승은 기독교적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고독의 문제를 탐색했다. 위 시에서 처럼 ‘새벽’이라는 전이적 시간의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바 있다.노천명과 모윤숙은 서로 다른 경향의 시를 창작한 여류시인이었다. 노천명은 고독과 향수를 노래하되 언어의 절제와 감정의 극기를 통해 여성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였다. 위의 시는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노래하면서 근원적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절제된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한편 모윤숙은 시집 『빛나는 지역』(1933)과 산문시 「렌의 애가」(1937) 등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을 낭만적인 열정과 남성적인 목소리로 노래했다. 위의 시는 모윤숙 초기시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압축이나 상징적인 면에 있어 시적 성숙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조국 독립의 염원에 대하여 관념적이지만 실천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점에서 1930년대 저항시가 부재하던 한국 문단사에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담고 있는 정열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는 그 후 「조선의 딸」, 「이 생명을」과도 연결된다.2.6. 백석, 이용악백석은 1930년 1월 조선일보에 소설 「그 모(母)소와 아들」이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러한 세계를 분열된 자의식에 비치는 대로 직접 드러내는 소설적 방법을 취했다.이상의 소설로는 1936년에 발표한 「날개」, 「봉별기」, 「지주회시」가 대표적이고, 죽기 직전인 1937년에는 마지막 작품 「종생기」를 남겼다. 그의 소설은 지문에서 한자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무시하는 등 외면상의 특징과 아울러, 전통적인 소설의 통념을 부정하고 작중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의 움직임에 충실하려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최명익은 「무성격자」(1937), 「폐어인」(1938), 「심문」(1939), 「장삼이사」(1941)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심리주의 소설을 실천하고 있는데, 특히 그의 작품들은 기차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인간들이 서로간의 단절 속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소외를 그리고 있다.6. 순수주의 소설과 통속소설6.1. 순수 서정적 소설1930년대 계급주의 문학이나 항일 민족문학이나 친일 어용문학이 아닌, 예를 들어 리얼리즘 문학이나 모더니즘 문학, 미적인 것을 추구한 모든 서정적인 문학은 순수문학일 수 있다. 그러나 서정적인 문학이라도 상업주의나 통속적 정서를 추구해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못한 문학은 순수문학일 수 없다. 그리하여 정말 순수문학에서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작품의 문학성과 예술성이다.소설의 예술성을 추구한 작품으로는 모더니즘에 기초한 이상의 심리주의 소설이 있겠고 한국적인 토속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이효석의 탐미적 소설, 이태준의 상고주의 소설, 김동리의 토속적인 소설들이 있다. 한편 한국적인 토속에 바탕을 두면서 예술성과 대중적인 흥미를 고려한 대중소설도 있다. 계용묵, 황순원, 김영수, 정비석, 최인욱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6.2. 대중적 통속소설1930년대에 통속소설이 등장한 것은 이 무렵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면서부터였다. 즉 30년대의 순수문학이 지나치게 사회적 공리성을 도외시한 작가 개인중심인데 비해 독자와 보다 친근할 수 있는 필요에 의해서 통속소설 또는 대중소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김말봉의 「밀림」, .
◆ 목 차 ◆Ⅰ. 시대구분1. 근대와 현대의 용어2. 거시적인 현대문학3. 근대 기점에 대한 논의Ⅱ. 18세기 후반 영?정조 기점1. 영?정조 기점설2. 영?정조 기점설의 거론3. 영?정조 기점설의 근거4. 영?정조 기점설의 한계Ⅲ. 1876년 개항 기점Ⅳ. 1894년 갑오경장 기점1. 갑오경장설2. 갑오경장설 거론3. 갑오경장설의 한계점Ⅴ. 이광수〈무정〉기점1. 의 근대적 구성2. 에 나타난 근대적 성격Ⅵ. 1919년 《창조》 창간 또는 3·1독립운동 기점1. 1919년 3·1운동설의 거론2. 1919년 기점설-조동일 한국문학통사3. 3·1운동 / 창조 의 근대 기점Ⅰ. 시대구분1. 근대와 현대의 용어우리는 지금 21세기 문턱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시대를 구분한다. 그러나 25세기나 30세기가 되어서도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이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을 근대의 기점으로 볼 것인가.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의 기점을 18세기 또는 19세기, 갑오개혁, 개화기 등으로 보는데 과연 25세기에 문학사를 기술하는 사람도 그렇게 볼 것인가. 그때는 또 다른 근대의 기점이 제시될 것이고, 그래서 역사는 늘 새로 쓰여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본질개념을 앞세워 근대나 현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논리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기술이나 시대구분의 문제는 결국 역사 기술자의 서술 시기가 언제인가와 역사를 해석하 는 매스터 코드가 무엇인가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사실 우리의 현대문학사 시대 구분은 대개가 신문학, 현대문학, 근대문학이란 용어를 혼동해서 사용해왔다. 그것은 근대문학의 기점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근대문학의 종점이나 현대문학의 출발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근대 문학 기점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여기서도 근대문학의 시점에 대한 논의만 있었지 종점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한편 1990년대를 전후한 최근의 문학사에서는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분수령을 1945년으로 잡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1945. 따라서 아직도 근대 기점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Ⅱ. 18세기 후반 영?정조 기점1. 영?정조 기점설서구의 근대화는 시민혁명을 겪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시기에 근대화를 이룩했다. 즉 신분제도에 대한 자체 내의 모순을 혁명으로 극복하고, 산업혁명을 통해 고도 자본주의로 들어선 것이다. 이처럼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신을 근대 의식이라고 본다면, 근대 문학의 기점은 자체 내의 모순을 언어로 표현하겠다는 언어 의식의 대두에서 찾아야 한다. 유럽식 진보 개념에 의거한 역사적 삼분법에 의하면 조선은 중세에 해당된다. 따라서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문자로 표현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한 체계적인 노력이 싹을 보인 영?정조 시대를 근대 문학의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2. 영?정조 기점설의 거론김일근의 「민족문학사의 시대구분」, 정병욱의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에 대한 좌담, 홍문표의 「민족문학의 근대적 전통」 등의 단편적인 논문에서 거론되었고, 김윤식?김현의 저서 『한국문학사』(1973)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김윤식과 김현은 근대는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문자로 표현하고 그것을 극복하려한 노력이 보이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영?정조 시대에 나타난 제반 특징을 중심으로 근대의 시작을 찾고자 하였다. 이들의 논의는 문학사를 단절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의 관점으로 탐색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주장이다.3. 영?정조 기점설의 근거① 영?정조시대에 이르면서 이조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신분 제도가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 경영형 부농의 등장② 상인 계급의 대두, 화폐 유통③ 실사구시의 성립④ 독자적인 수공업이 점차 대두⑤ 시조, 가사 등의 재래적 문학 장르가 집대성되면서 점차로 판소리, 가면극, 소설 등으로 발전⑥ 서민 계급의 진출로 인간평등 자각)4. 영?정조 기점설의 한계영?정 이후에 나온 작품들 가운데 사설시조, 판소리, 김립(金笠)시 같은 작품에 드러나 있는 정신은 서민의 자아각성과 비판정신에 복”되었다라고 하면서 영정시대와의 관련하에서 개항기 기점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본격적인 근대시를 《태서문예신보》(1918)의 출현에서부터 수술하고 있어 논리의 한계를 보여줌은 물론, 동학 창건 기점론의 대두와 마찬가지로 절충적 방법으로서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Ⅳ. 1894년 갑오경장 기점1. 갑오경장설1894년 갑오경장을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하는 견해로서 임화, 백철, 조연현, 안확이 주장하였다. 구한말(개화기)을 기점으로 잡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갑오경장을 중심으로 한다. 그것은 근대적 정치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때로 1876년 개항이 있은 이후부터 우리 사회는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서구사회의 영향력 하에 놓이기 시작했다. 갑오경장은 시대의 대세에 의해 결국 외세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후 우리 사회에는 서구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사회전반에 새로운 모습들이 확산되기에 이른다.2. 갑오경장설 거론임화는(『개설 신문학사』) 실제 근대가 시작되는 것은 갑오경장 이후라고 보고 개화의 과정이 바로 ‘조선 신문화 건설의 유일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임화는 조선의 신문학사가 서구적 문학의 이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현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초점을 두고, 그러한 것들이 본격적으로 대두한 시기에 주목한 것이다.백철(『조선신문학사조사』) 역시 1894년 갑오경장을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설정하였다. 백철은 신소설 이후부터 1924년경의 자연주의 문학까지를 근대문학이라 하고 신경향파 문학 이후를 현대문학으로 구분한다. 저자는 서구의 19세기적인 근대문학을 반영한 것이면 근대문학이고, 20세기 서구문예사조를 수입한 것이면 현대문학이라고 보았다. 이는 곧 서구 근대문학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비해 한국 근대문학사는 빈곤하고 불구적 양상을 지닌다는 관점을 보이는 것이다. 『조선신문학사조사』는 우리 근대 문학사를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나 문학사의 내적 필연성과 아무 상관없는 서구 문예사조의 ‘수입사’를 전락시켰 동안 이어져온 과거제도의 폐지로 한문학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갑오경장은 구한말(개화기) 시가 발생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발령을 비롯한 갑작스러운 사회적 변화를 꾀하려한 갑오경장은 열강의 강압적 요구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고, 주체적 진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일본의 조선 침략을 더욱 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서양의 문물의 도입만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문학의 내적 원동력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찾을 수 있다.)결국 갑오경장설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갑오경장 자체의 근대적 각성에 의한 근대화라기보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내정간섭과 함께 타율적으로 이루어진 요소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미숙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점과 서구의 문학을 무조건 우리의 그것보다 상위의 것으로 여기고 일본을 통해 우리 문학에 이식했다는 이식문화론적 문제), 그리고 고대문학과의 단절, 즉 시대적 개연성의 결여라는 문제를 지닌다.Ⅴ. 이광수〈무정〉기점1. 의 근대적 구성이광수의 은 소설문장의 시제를 완료형으로 충실히 개선하였다. 그는 현재형과 완료형을 의식적으로 구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완성으로 그친 근대소설의 문체를 처음으로 형성해 놓은 선구적 업적이라 할 수 있다.의 근대 소설적 특징은 인물 설정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주인공 이형식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고, 보수적인 영채와 진보적인 선형, 박진사와 김장로의 신구 대립적인 인물 배치가 당대의 사회적 갈등과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심리묘사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서두에서 이형식이 선형을 만나는 장면도 심리묘사의 본보기다.또한 구 가족제도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박영채와 자유연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형식과 김선형 사이의 삼각관계는 당대 사회의 풍속적 갈등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한 설정이며, 옛 가치제도와 새 가지제도 사이의 갈등을 잘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양면성과 갈등의 구조면?」「가라쳐야지요...인도해야지요...」「엇더케요?」「교육으로, 실행으로」「무정」, 123회의 일부분「무정」에서 또다시 근대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뚜렷한 언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의 문장은 한글로 씌여져 있을 뿐 정확한 산문문장이라고 하기보다는 고대 소설투의 문장이다 그러나 이광수의 문장은 고투를 완전히 벗고 나 현재 진행형, 과거형 등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그것은 서구문장의 번역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을 어느정도 뒷받침해 주는 의미심장한 구절을 「무정」은 제공해 주고 있다.다만 형식의 특색은 영어를 많이 섞고 서양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말을 이용하여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을 길게 함이었다. 형식의 연설이나 글은 서양 것을 직역한 것 같았다. 형식의 말을 듣건대 이러한 말이나 글이 아니고는 깊고 자세한 사상을 발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좇지 아니함은 그네가 자기의 사상을 깨달을 힘이 없음이라 하여 혼자 분개하여 한다)「무정」이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 이라는 데에 있다)구 가족 제도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박영채와 자유연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형식과 김선영 사이의 삼각관계를 당대의 풍속적 갈등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한 설정이며 옛날의 가치제도와 새가치 제도 사이의 대립을 통하여 시대의 흐름을 제시하고 있다.「무정」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창작되었다는 점 스토리 중심의 고대소설내지 신소설과는 달리 예술적 구조로서의 플롯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의의를 지니며 특히 주제 면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계몽성을 띠면서 ‘나’보다는 ‘우리’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시 되는 의식지향이 지적되고 있기는 하지만 민족적 성격을 강조함과 동시에 신문학의 필요 등 근대적 자각을 역설하고 있다.또한 고전소설이나 신소설은 ‘~하더라’의 어투가 강하고 판소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소설이 많지만 근대소설 「무정」에 보면았다.)
구분중세근대현대격조사1. 주격조사선행어(체언, 명사화한 句나 節)가 주어임을 나타내는 조사(-이, -ㅣ, ø )?이 :자음으로 끝난 체언 뒤에 쓰임내 가리?다 [용가 94장]?ø :ㅣ’모음으로 끝난 체언 뒤에 ㅣ쓰임녯 가히 내 도라오? 깃거 [두언 6:39]?ㅣ: ‘ㅣ’모음 이외의 모음으로 끝난 체언 뒤에 쓰임부텻 모미 여러가짓 相이 ??샤 [석상 6:41]특이한 주격 조사형 태현대어특 징보 기?셔, 겨오셔께서높임명사 뒤和平翁主?셔(화평공주께서),先人겨오셔(선인께서)?이셔, 애이셔에서단체명사 뒤나라해이셔(나라에서)셔서일반명사 뒤사공셔 오늘 日出이 유명?리란다.ㅣ라셔이라서‘누구’ 뒤뉘라셔(누구이라서)2. 지정사 ? 계사 (서술격조사)문장 속에서 체언이나 체언 구실을 하는 말 뒤에 붙어 서술어 자겨글 가지게 하는 조사‘이라/ㅣ라/?라’현대국어 ‘이다’와 쓰임이 같고, 형태와 환경은 중세국어 주격조사와 같다.? ‘이’ 뒤에 ‘ㄱ’이 오면 ‘ㄱ’은 탈락됨(책이고)→ 책이오}? ‘이’ 뒤에 ‘ㄷ’이 오면 ‘ㄷ→ㄹ’(이다)→이라, (이더라)→ 이러라 (이도다)→이로라? ‘이’ 뒤에 ‘오’가 오면 ‘오→로’父와母와 나와 세히 業이 ?가지로? 因??(?가지+이+옴+?→ ?가지+이+롬+?→?가지로?)3. 대격조사(목적격조사)문장 안에서 체언이 서술어의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조사(‘ㄹ, ?/을, ?/를’)? ㄹ: 준말 모음 뒤?야미 가칠 므러 즘겟가재 연?니 [용가 7장]? ?/를: 모음 뒤太子? 하?히 ??샤 [용가 8장 ]長壽를 求?면 長壽를 得?고 [석상 9:23]? ?/을: 자음 뒤려운(麗運)이 쇠(衰)?거든 나라? 맛?시릴?[용가 6장]야수(耶輸)는 … 법(法)을 모?? [석상 6:6]※ 님? 位ㄹ(임금 자리를), 필(피를)등은 ‘ㄹ’만이 표기되지만 ‘?/을’이 결합하면서 약모음‘?/으’가 강모음(‘?/으’를 제외한 모든 모음)을 만나서 탈락한 것이다. 이것은 중세어나 현대어에 널리 통용되는 규칙이다.쓰+어→ 써, 피+을 →필(꽃이 필 때)3. 속격조사(ㅅ, ?, 의, ’을 거쳐서 현대국어의 ‘(으)ㄹ랑’으로 변한 것이다.a. 대군?각그랑 우디 마라 (계축일기, 112)-현대국어의 ‘은/는’-‘대조’, ‘주제’의 의미1)대조 : 다른 것과 비교하여 배타적이라는 의미a. 나는 빵을 먹고 동생은 밥을 먹어요.(‘나’와 ‘동생’을 대조)b. 철수가 전화는 해요.(‘전화’와 ‘그밖의 다른 것’을 대조)2)주제 : 어떤 화제를 이끌어내는 기능을 말한다.‘-이란, -으로 말하자면’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뜻.따라서 주로 문두에서 ‘은/는’이 붙어서 나타나고문장의 여러 성분이 주제로 실현될 수 있다.a. 어제는 뭘 하며 지냈어요? (부사어)b. 불고기는 제가 시켰어요. (목적어)c. 철수는 내가 이미 선물을 주었다. (여격보어)d. 영희는 눈이 참 아름다워. (주제어)-명사뿐만 아니라 부사형, 용언의 활용형, 조사다음에 쓰인다.-선행명사가 자음으로 끝나면 ‘은’, 모음으로 끝나면 ‘는’과 결합한다.a. 가방은 있어요.b. 영희가 컴퓨터를 조금은 해요c. 거짓말만은 용서할 수 없다.d. 시계는 있어요e. 그 말을 듣고는 쓰러져 버렸다.f. 교실에서는 떠들지 마세요.-ㄹ랑 : 받침 없는 체언이나 조사 ‘에,에서’,어미 ‘-고서, -어서’ 따위 뒤에 붙어 (구어체로)어떤 대상을 특별히 정하여 가리키는 데 쓰는보조사. 흔히 뒤에는 충고하는 말이 온다.a. 돈 꾸어 달라는 얘길랑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라.b. 그 반질랑 아예 팔 생각 마라.c. 할머니 댁에서 며칠 보내고설랑 또 고모 댁으로 가야지.‘도’-‘역시’의 의미-현대국어와 중세국어에서 그 형태 및 용법이 동일.-주격, 대격(목적격)의 위치에 실현되면 주격조사와 대격조사는 생략되나a. 乃終ㄱ 소리도 ?가지라 (훈민정음언해, 12)b. 아비를 보라 가니 어미도 몯 보아 (월인석보 권8, 101)-처격조사 ‘에’, 구격조사 ‘로’에 지배될 때는 처격조사와 구격조사가 생략되지 않는다.c. 셜? 잀 中에도 離別??니 업스니 (석보상절 권6, 6)d. 겨로도 오히려 堯舜을 ??리어니 (법화경2, 2신문 1-21)-(받침 없는 체언류나 부사어 뒤에 붙어) 어떤 상황이 이루어지거나 어떻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조건이지만 아쉬운 대로 인정됨을 나타내는 보조사.a. 너나마 와 주어서 다행이다.b. 먼발치로나마 보게 되어 기뻤다.c. 네 덕에 늦게나마 일을 마칠 수 있었다.‘다?(다이)’, ‘다히’, ‘자히’-체언 및 동명사에 연결되어 ‘같이’(如)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다?(다이)’와 ‘다히’가 있다.-현대국어의 ‘대로’는 이들의 발달형인데, 이 ‘대로’는 중세국어에도 나타난다. 이들과 유사한 보조사로 ‘자히’가 있다. ‘자히’는 동작, 상태의 보유를 나타내며 동명사에 통합된다.a. ‘다?(다이)’ : 말다? 修行 몯?야도 (월인석보17권, 44)實다이 니?쇼셔 (법화경1, 165)b. ‘대로’ : 바? 머?대로 혜여 머굼과 (월인석보7권, 31)c. ‘자히’ : 안존자히 겨샤? (월인석보7권, 52)(‘자히’는 근대국어에 ‘채’로 변화되어 현대국어에 이른다.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 있다는 뜻인 의존명사.)-‘대로’-(체언 뒤에 붙어)앞에 오는 말에 근거하거나 달라짐이 없음을 나타내는 보조사.a. 처벌하려면 법대로 해라.-(체언 뒤에 붙어)따로따로 구별됨을 나타내는 보조사.a. 큰 것은 큰 것대로 따로 모아 두다.b.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상관 말고 살자.‘이나(이어나)’-‘선택’의 의미.-‘이나’와 ‘이어나’는 각각 현대국어의 ‘이나’ 혹은‘이거나’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a. ‘이나’ : 얼구리나 幻質이 ?외?니 (월인석보2권, 21)b. ‘이어나’ : 餓鬼어나 畜生이어나 (석보상절9권, 12)-어떤 정도에 도달하였음을 뜻하기도 한다.a. ‘ㅣ나’ : 아니한더디나 ?로매 니르러도 (법화경5, 12)*‘이나’-(받침 있는 체언이나 부사어, 합성 동사의 선행 요소 따위의 뒤에 붙어)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 또는 최소한 허용되어야 할 선택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때로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마치 그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인 것처럼 청자에게 질문하여 대답을 요구하는 문장 (-느냐, 냐)의문형 어미격식체비격식체하십시오체하오체하게체해라체해체해요체-습니까/-읍니까-오-나, -는가-느냐, -니, -지-아/어-아/-어요설명 의문문 :의문사가 포함되어 일정한 설명을 요구하는 의문문- 언제 오니?판정 의문문 : 의문사 없이 단순히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문- 네가 학생이니?수사의문문 : 굳이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서술이나 명령의 효과를 내는 의문문- 누가 그것을 모르니?반어 의문문: 겉으로 나타난 의미와는 반대되는 뜻을 지니는 의문문으로, 강한 긍정 진술을 내포하는 것이 보통이다.- 너한테 장난감 하나 못 사 줄까(→사줄 수 있다감탄 의문문: 감탄의 뜻을 지니는 의문문-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매우 좋다)명령 의문문: 명령, 권고, 금지의 뜻을 지니는 의문문- 빨리 가지 못하겠느냐?(→빨리 가거라)3. 명령문화자가 청자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하는 문장 (-어라)명령형 어미격식체비격식체하십시오체하오체하게체해라체해체해요체-십시오-오, -구려-게-아라/-어라아/어-아/-어요주어는 항상 청자가 되고, 서술어로는 동사만이 올 수 있으며, 시간 표현의 ‘었, 더, 겠’과 함께 나타나는 일이 없다.직접 명령문 : 얼굴을 서로 맞대고 하는 명령문, ‘-아라/-어라’와 결합하여 실현.- 지체 말고 빨리 가 보아라간접 명령문 : 매체를 통한 /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황 / 3인칭 불특정 다수나 단체에게 사용하는 명령문.‘-(으)라’와 결합하여 실현.-정부는 수해 대책을 시급히 세우라허락 명령문 : 허락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문 ‘-(으)려무나, -(으)렴’과 결합하여 실현. 부정적인 말일 때 안 쓰임-너도 한 번 읽어 보려무나.경계 명령문 : 경계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문 - ‘(으)ㄹ라’-넘어질라, 다칠라, 코피 터질라.4. 청유문화자가 청자에게 어떤 행동을 함께 하도록 요청하는 문장 (-자)청유형 어미격식체비격식체하십시오체하오체하게체해라체해체해요체-시지요-ㅂ시다-세-자아/어-아/--아져, -과?여, -긧고’는 그 쓰임이 소멸되었고, ‘-과뎌’는 그 쓰임이 드물어졌으며 어형도 ‘-과댜’로 변했다.1) -고져구박?며 가고져 ?거늘 (東新十, 8)2) -과댜모스슬 니?과뎌 ??뇨 (朴通下, 56)11. 한도의 어미18세기에 와서 ‘-도록’으로 굳어졌다. 이 어미는 현대국어에 그대로 이어졌다.1) -도록/?록목숨이 이믜 귿도록 손의 대? 노티 아니?더라 (東新十, 6)이웃짓 브른 바미 깁?록 ?갯도다 (朴通, 7)12. 중단의 어미계속되던 동작이나 상태가 그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가 이어질 때 쓰이는 부동사 어미1) -다가아비 묏고릐가 보리 거두다가 버믜게 자핀 배 되거? (東新孝, 2)13. 더해감의 어미근대국어에서는 ‘-ㄹ수록(ㄹ?록)’이 ‘-디옷’보다 더 널리 사용되었으며 현대국어에서는 ‘-ㄹ수록’만 남게 되었다.1) -ㄹ?록(ㄹ수록)?답?? 걱정?수록 더 걱정스럽다 ?고 (텬로력뎡,2)아당?을 갈?록 더 심?니 더욱 가쇼롭더라 (明義권수상, 58)14. 연속의 어미중세국어의 ‘-라’는 근대국어에서 목적의 어미 ‘-라(러)’에 합류되어 그 기능이 거의 소멸되었다. 현대국어의 ‘-자마자’와 그 의미가 같았던 중세국어의 ‘-ㄴ다마다’는 그 의미가 근대국어에서 현대국어와 같이 ‘-자마자’로 변화 된 것으로 생각된다.1) -락도료혀 올리락 도로혀 ?리오락 ?다?니 (朴通中, 60)15. 도달의 어미‘-긔/?’는 근대국어에서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게’는 현대국어에 그대로 이어진다.1) -게녕광의 귀양가 쟝? 화? 닙게 되매 (東新忠, 1)16. 부정대상의 어미근대국어에서는 ‘-디’와 이것이 구개음화가 된 ‘-지’가 있었다. ‘-지’는 현대국어로 이어진다.1) -디?짓기? 이븨 그치디 아녀 주그니라 (東新十, 6)2) -지?람과 볏츨 뵈지 아니케 ?야 (, 12)17. 긍정 대상의 어미15세기 중엽에 ‘-디?’가 있었고 ‘ㅸ’의 소실에 따라 ‘-디위,-디외, -디웨’ 등으로 나타났는데, 근대국어 초기에는 주로 ‘-웨’로 실현되었다.1) -디웨오 22)
4 -? 개 요우리는 대부분 미국식 영어를 배우고 그것에 익숙해 있다. 때문에 영어권 나라에서 우리가 배운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면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식 영어는 영어의 한 종류일 뿐이며 굳이 미국영어라 표현하는 것은 영국영어와 차이를 두기 위해서다. 영어에는 캐나다영어, 흑인영어, 호주영어, 뉴질랜드 영어, 중국영어 등 많은 종류가 있으며 각각 차이를 보인다. 특히 영국 영어와 미국영어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온 것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와 정치, 경제구조, 문화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1607년 5월 미국의 남부 Virginia의 Jamestown으로 Jhon Smith가 영국인 142명을 이끌고 처음 상륙한 이후 미국영어는 영어의 본토 영어와는 달리 약 370년 동안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발달하였고, 미국의 지위가 급격히 향상된 현재로서는 오히려 영국영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실정이다.그것은 분명 미국영어와 영국영어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최근 들어 영국영어의 어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미국영어의 어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발음과 철자에서 차이를 보이는 미국영어와 영국영어가 어휘 수의 증감에 까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영어의 어휘수 증가와 미국영어의 어휘 수 감소의 원인? 이주언어인 미국영어와 본토 영국영어우리는 본고장 언어인 영국영어가 이주언어인 미국영어에 비해 변화에 소극적일 것이라 추측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국영어가 영어가 발생한 본고장의 언어이기 때문에 여러 갈래 중 하나인 미국영어가 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개방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체로 미국영어나 호주영어와 같은 신생 영어들 보다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영국영어가 언어학적으로는 오히려 변화에 더 적극적이며 자유를 강조하고 개방적인 경향을 보인다. 영국영어는 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변화를 수월하게 받아들이면서 어휘의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이것은 언어가 본고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사용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변화에 소극적이 된다는 사실에 배경을 두고 있다. 실제로 한국어를 보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국내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보다 해외동포들이 사용하는 한국어에서 훨씬 보수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언어 역시 본고장을 떠나면 떠날 당시의 언어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언어 사용자들의 잠재된 보수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영국영어에서는 고어가 되어버린 어휘도 미국영어에서는 아직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표준어 선정에 따른 어휘수 변화영국영어의 특징은 특정계층의 말을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한국어의 표준어 제정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미국영어는 널리 분포된 언어를 표준어로 삼는다. 어찌 보면 미국영어의 표준어 제정 방법이 타당할 것이다.너른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를 표준어로 제정한 미국영어의 어휘 수 변화가 보다 적게 되고 그에 따라 어휘 수가 감소하는 것은 ‘변화’라는 것에 대한 자기 정화능력을 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 문화, 경제적 요소를 비롯한 각종 요소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것이지만, 너른 지역에서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너른 지역에 고르게 쓰이는 말을 선택해야 의사소통의 원활하므로 언어의 변화가 쉬울 수 없으며 어휘수의 증가 및 확산 역시 쉬울 수 없다.이에 비해 영국영어는 특정계층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표준어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언어의 변화 자체가 그대로 표준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자기정화 기준이 특정계층의 언어에 있으므로 쉽게 변화할 수 있고 어휘수의 증가와 확산이 용이한 것이다.? 인종분포에 따른 어휘수 변화영국의 인종 분포는 민족적으로 볼 때 잉글랜드에 거주하는 앵글로색슨족(Anglo-Saxon族)과 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에 사는 켈트족(Celt族)으로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 영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인종 및 민족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반면 미국의 인종은 ‘인종의 전시장’이라 일컬을 만큼 영토 내에 발붙이고 있는 인종과 민족이 다양하다. 물론 백색인종이 80%를 차지할 만큼 많지만 그들이 전부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백색인종은 아니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와 Non-WASP(독일인,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스웨덴인, 스위스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유태인 - 이들은 미국으로의 이주 초기 WASP들과 구분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았으나 2?3?4세를 거치면서 WASP 계로 동화됨)가 대부분이고 외부에서 유입된 아시아계, 아랍계, 아프리카계, 남아메리카계가 대부분이다. 그로인해 미국 내 인종의 다양함은 지금도 증가추세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라는 너른 영토에 분포된 수많은 인종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기반으로 삼는다고 생각해보라. 또한 우리가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까지 영어를 공부하고 미국에 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보라.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6년 전 한국 문학의 번역 문제를 공부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은 미국과 영국의 중학생 수준이라 들은 적이 있다. 사용하는 어휘 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적은 어휘수를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구가 많은 수를 차지하다보니 새로운 언어의 생성은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될 소지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사용하지 않게 되는 어휘들은 자연스레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반면 영국은 대부분이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인종과 민족이 살고 있으므로 의사소통의 부담 없이 보다 많은 어휘를 사용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어휘의 소멸이 줄어들 뿐 아니라 소멸하더라도 신생하는 어휘가 표준어로 분류되는 특정계층의 어휘 수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체 계층의 어휘 수 증가로 이어지므로 미국영어에 비해 어휘수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의 발전과 쇠퇴?크게 세 가지 요인을 가지고 영국영어의 어휘수 증가와 미국영어의 어휘수 감소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릇 언어라는 것은 사회적인, 문화적인, 경제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변화는 곧 진화를 뜻한다. 인간과 인간의 사고가 진화함에 따라 인간이 가진 다른 생물들과의 변별적 특질인 언어 역시 진화하는 것이다. 어떤 언어는 영국영어처럼 새로운 어휘를 무한정 생산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언어들을 보존함으로써 어휘의 양을 늘려가고, 어떤 언어는 미국영어처럼 어휘의 수는 마찬가지로 증가추세에 있으면서도 실제 사용하는 어휘의 수는 감소하는 언어도 있다. 그 차이를 두고 언어의 발달과 쇠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휘가 많으면 그만큼 언어 표현이 자유롭고 다양해 질 수 있으므로 분명코 어휘수의 증가가 언어의 발달로 연결되고 어휘수의 감소는 간단하고 신속한 언어로 편리할 수는 있겠으나 해당 언어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세계에는 약 7000여개의 언어가 존재하고 있으나 2주에 하나 꼴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미국 ‘사멸 위기 언어 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언어의 소멸은 곧 그 인종과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소멸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 틈에서 세계 공통어격으로 우뚝서있는 영어. 그 중 가장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영어가 영국영어(사용인구 : 약 10억 명)와 미국영어(사용인구 : 약 2억 5천만 명)다. 둘 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겠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당사자들은 영국영어를 품위 있는 언어로 여긴다. 미국영어의 사용자들 역시 그리 여기는 것이 최근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