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에 대한 고찰사범대학 교육학과2004190034 정원보교육학도로서 읽어야 할 필수 서적이지만, 내용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평소에 쉽게 손을 대지 못했던 ?에밀? 을 이번 기회로 접할 수 있게 되어서 교수님께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올린다.1762년 5월 말경에 출간된 ?에밀? 은 그해 금지되었고, J.J. 루소가 체포령을 피해 스위스로 도주해서 1766년 영국으로 피신하기까지 4년간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가 쓴 다른 저서보다 사실적인 면에서 덜 도발적이었음에도 그 영향의 파장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이었다. ?에밀? 은 루소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규정한 작품으로, 그의 인간학으로부터 도출된 교육론 체계를 담고 있다.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는 저명한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듀이’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현대 서양 철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실용주의를 대표할 수 있는 거장이다 )의 저서 중 하나인 ‘민주주의와 교육(Democracy and Education)’ 과 루소의 저서인 ?에밀? 을 필요에 따라 비교하며 글을 전개시켜 나갈 것이다.루소가 쓴 이 저서에는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이 결여되었다’ 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에밀’ 이라는 한 아이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루소가 책의 서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는 시각에 따라서 루소가 쓴 글을 교육론이 아니라 어느 몽상가의 글이라는 생각를 받을 수도 있다. 루소는 실용적이지 못한 생각들만 가득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책을 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논리적 근거를 통한 검토와 판단으로 비판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이를 통해 그 전까지는 활발하지 못했던 교육철학이 활발히 이뤄지길 내심 바라고 있었을 수도 있다.?에밀? 의 제 1부를 보면 태어나서부터 2세까지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론이 제시되어 있다. 그 시기를 ‘유아기’ 라고 부르는데, ‘자연적 욕구를 한정시키며 그의 바램을 가능한 한 그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총족시키도록 하여 아욕과 지배욕, 소유욕이 생기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연성을 보존하는 것이 과제’ 라는 것을 큰 골자로 하고 있다.거기서 교육의 목표는 ‘자연교육’에 사물교육과 인간교육을 맞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연교육’ 이라는 것은 그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소극교육론’ 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에밀을 키울 때 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유모와 교사 이외에 다른 어른을 알아서는 안 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저서에 언급했다.하지만 나는 그 ‘소극교육론’ 은 참된 교육을 위해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교육’ 의 제 4장 ‘성장으로서의 교육’ 을 보면, 성장은 행위가 그 다음의 결과로 축적되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는 교육은 ‘미성숙’ 에서 ‘성숙’ 의 경지로 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미성숙’ 이 나타내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의 두가지 특징을 알 수 있는 데 하나는 ‘의존성’ 이고, 다른 하나는 ‘가소성’ 이다. 전자에 의하면 사회와의 문을 제한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존 상태는 약점을 의미하는 아니라 강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의존 상태는 곧 상호의존 상태인 것이다. 개인이 점점 더 독립된 상태로 되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능력의 감소를 초래할 위험이 언제나 있다는 뜻이다. 개인을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도록 만들면 그 개인은 그만큼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무관심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흔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냉담하게 되고, 마침내 문자 그대로 혼자 서서 혼자 행동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루소가 살았던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결코 혼자는 살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루소의 주장은 신빙성을 갖기 힘들다.루소는 또 모델인 ‘에밀’ 을 상류계급 귀족의 자제로 정하고, 하류계급의 아동이나 장애자들의 교육에 대해 관심 갖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책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은 교육이 필요 없다. 가난한 상태 자체가 교육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자가 받는 교육은 매우 부적합하다. ...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상류귀족 자제라는 특정 한 모델에 대한 연구만을 책에 전반걸쳐 서술하였다. 사람은 다양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데, 특정한 한 환경을 모델로 하여 이런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경우에 대하여 일반화되지 않은 지식이기에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에밀? 의 제 2부를 보면 초기 교육은 소극적인 교육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악덕이나 정신적 과오로부터 어린이들의 마음을 보호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열두 살까지 어린이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기를 수 있다면 그들은 편견도 습관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어린이는 이성적인 눈을 뜨게 되면 가장 현명한 지혜를 가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민주주의와 교육’ 에서도 보인다. 앞에서 ‘미성숙’ 의 두가지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 한 바가 있다. 특징 중 후자인 ‘가소성’ 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를 해 보자. 미성숙한 생물이 성장에 대하여 나타내는 특수한 적응능력이 곧 가소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소성’ 은 반죽이 가지는 그 것과 성격이 다르다. 생물이 가지는 가소성은 외부적인 압력에 맞춰 그 형태를 바꾸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본질상 경험을 통하여 학습하는 능력, 하나의 경험에서 배운 것을 나중의 문제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활용하는 능력이다. 이 것은 곧 이전 경험의 결과에 비추어 행위를 수정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습관의 획득과 이어진다.루소는 어떠한 습관도 편견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서술하는 반면, 듀이는 성장을 위해서는 습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소가 말한 대로 어떠한 편견도 습관도 가지지 않게 아이를 키우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설사 그 것이 이루어졌더라도 이는 올바른 교육방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