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곳곳에서 뛰어난 CEO들이 수많은 경영전략과 경영사상으로 많은 신화적 성공사례들을 일구어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리더십 또한 여러 가지의 형태로 분류되어지고 있다. 나는 그 많은 CEO중 인터넷 제국의 황제라 불리고 있는 재일 교포 3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선정하여 그가 이룬 성과와 그 성공의 원동력인 그의 리더십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중략..>수많은 CEO가 있으며 그들 각자는 그들이 종사하는 분야의 일인자이자 타인의 존경을 받으며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내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선택한 이유는 IT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의 1인자라 할 수 있는 빌 게이츠 회장 또한 말 할 나위 없는 최고의 CEO라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 회장의 성공신화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해 있지만 일본의 빌 게이츠라 불리는 손정의 회장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손정의 회장에 대한 조사를 결정한 것이다.
1. 칭기즈칸을 선택한 이유역사인물의 리더십을 주제로 발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인물에 관한 어떠한 부분을조사해야 할지 애매한 부분이 있었기에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인물 선정에도 많은 갈등을 했다. 너무나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의 머릿속을 채운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칭기즈칸’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800여년이 흘렀지만 세계는 아직도 광활한 몽골대륙을 통일하며 세계를 정벌해 나가던 그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삶을 영화화 하고 그의 업적을 바탕으로 수많은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래서 칭기즈칸이란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보기로 결정했고, 그가 가졌던 리더십이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관해 조사해 보기로 했다. 아물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에게 배워야 할 리더십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도 알아볼것이다.2. 칭기즈칸 그는 누구인가?칭기즈칸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먼저 그가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 알아볼 필요가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인물이었으며 무엇을 했기에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0여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독교나 여타 다른 종교에 관련된 책을 읽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교훈과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어서 유익했다고 느끼고 있다.일단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얘기하자면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그들에게 주는 삶에 의미는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자리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첫 번째로는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시작한다. 나 역시 이러한 질문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던져본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답변은 어떠할지가 궁금해진다. 성경이란 하나님이 기록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인격, 생각, 경험, 표현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그들을 사용하여 뜻이 바르게 전달되도록 영적인 감화를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이 지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그에 대한 궁금증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그 기록이 모두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성경의 기록은 역사와 같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역사 역시 기록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일뿐 현재 사람들이 보고 느끼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증명해줄만한 증거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도 마찬가지로 왜곡 할 수 있다면 그 역사적 사실 또한 허구일수 있다는 것이며 성경역시 그러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두 번째의 질문에서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을 물은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이러한 차이점의 뚜렷한 증거로서 성경의 통일성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종교들은 그 종교의 기원이나 의미가 매우 신화적이거나 영웅적이라면 기독교는 그의 통일성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것은 수세기가 차이 나는 기록의 시점들이 있으면서도 그 성경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는 통일성을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성도 마찬가지로 타 종교와의 차이점으로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성경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만 바르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이 책은 문자 주의적 해석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사상을 피한다면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또한 성경의 4단계적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해석의 방법으로는 첫째 문법적 해석의 단계로 문장의 장르를 구분하여 문맥을 파악하고 둘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살핌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셋째로 신학적 해석단계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던진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묻고, 그것을 통하여 영적인 통찰을 현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물음으로써 적용점을 찾는 것이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생각해 봐야할 내용이 된다.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재미는 내가 하고 싶은 질문들을 모두가 책안에서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 질문으로 선악과를 왜 만들었을까??라는 질문도 있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에게 형벌을 내리도록 했을까?그에 대한 답변은 이러하다. 책에서의 알 수 있었던 선악과의 의미는 그것이 현재의 국가질서를 규정하는 헌법과도 같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과일이든 무엇이든지 먹어도 좋지만 에덴동산의 중앙에 자리 잡은 선악과만은 건들지 말 것을 강조하심으로 다른 것을 허용할 수 있는 관대함과 함께 사람과는 구별되는 어떠한 법규와도 같은 것을 지정하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물주와 피조물주의 구분을 두신 것이다.그렇다면 이렇게도 관대하신 하나님께서 그 과일을 따먹은 것과 같은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이러한 잘못에 대해서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루게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선악과에 대한 말씀이 아니시고 다른 것에 대한 말씀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에덴동산의 특정한 곳을 말씀하셔서 그곳에는 절대로 발을 들이지 말라고 하셨다고 가정한다면 그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마찬가지로 같은 형벌이 주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형법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 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피조물주라면 조물주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해석에 대해서 나에 대한 견해는 조금 다르다. 내가 만약 기독교 신자라면 위에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은 당연한 것이며 그 말씀을 어긴 것은 크나큰 죄악이 분명할 것 이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과연 인간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산물일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위에 대한 내용은 당연하게 수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나님의 종으로써 치부되어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내가 만약 누군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면 이러한 나의 생각은 그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 부분일 것 이다. 내가 너무 기독교 신자와 비기독교 신자와의 차이를 두고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물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여타 다른 종교의 신자라고 가정할지라도 나의 생각은 동일하다. 인간은 태어날때는 동일한 위피에서 태어난다. 물론 그들의 환경과 주위의 여건으로 인한 사상의 차이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자아가 확립해 나갈수 있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보편적이며 일반적이고 당연시 되는 것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존재의 이유를 또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있다. 나의 입장을 말하자면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한계적 의지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이 풀어나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을 합류화 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편적인 예로 기독교를 생각해 본다. 그 이유는 이 책이 기독교 관련 책이기 때문에...기독교에서는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의 피 조물주이며 따라서 그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사상으로 보았을 때 내가 왜 태어날 때부터 그의 종이어야 할까? 나는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의 오류라고 생각한다.다시 말해서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어떠한 현상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과학자들은 그것을 알아 내기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또한 노력을 투자한다.그렇지만 기독교인들에게 묻는다면 어떠한 초자연적 현상이 당연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산물의 결과라고 말할 것 이다.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것 일까? 가령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난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을 지가 상당히 궁금하다. 그리고 그 기원을 알고 싶어서 평생을 투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러한 질문은 우스운 것일 수도 있다.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러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할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히 이 한마디로 끝날 것 이다. 너무나도 의지적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들이 현명할 수도 있다. 풀리지 않는 궁금 점을 하나님의 산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입증이 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만약에 지구의 창조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말할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 나와 있다.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고 보지는 못하지만 그 존재에 대한 힌트는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증명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을 존재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비 기독교인으로써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바로 이곳이다. 이러한 설명은 원천봉쇄의 오류가 아닐까?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답변이다. 나의 말이 너무나도 흑백논리에 의존하거나 반기독교 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은 기독교에 대한 입장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애초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며, 모든 종교가 같다는 나의 입장에서의 객관적 생각일 뿐이다.또 다른 내용으로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그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악을 제거하지 않으셨냐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하게 위해서 악을 제거하지 않으신 것 이라고 설명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명쾌했다.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오는 이유에 대한 답변은 수궁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기독교에서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죄악을 저질러서 오는 경우와 사람에게 그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면서 더욱 성숙해지게 하기 위해서 주는 경우이다. 물론 사람이 고난과 고통을 이겨낸다면 현재보다 더욱 더 성숙해질 것 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 경우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절실한 기독교인이 죄악을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병마에 시달리다가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했을 경우이다. 물론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육체는 곁에서 떠나갔지만 하나님의 곁으로 다가갔으니 더욱더 행복한 것이라고...그렇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가 떠난 것 에 대해서 매우 슬퍼할 것 이며 대에 따른 아픔을 격을 것 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곁으로 간 것 이라 생각하고 슬픔에 빠지지 않을까? 그 점이 궁금해진다. 또한 이 책의 질문에서 이러한 질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