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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윤리학 레포트
    목 차 TOC o "1-3" h z u Hyperlink l "_Toc326999709" 제 1장 유전공학 PAGEREF _Toc326999709 h 1 Hyperlink l "_Toc326999710" 1.1. 유전학의 발견결과와 이에 대한 평가 PAGEREF _Toc326999710 h 1 Hyperlink l "_Toc326999711" 1.2. 복제기술과 이에 대한 평가 PAGEREF _Toc326999711 h 1 Hyperlink l "_Toc326999712" 제 2장 줄기세포 PAGEREF _Toc326999712 h 3 Hyperlink l "_Toc326999713" 2.1. 배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PAGEREF _Toc326999713 h 3 Hyperlink l "_Toc326999714" 2.2. 배아줄기세포추출의 문제점들 PAGEREF _Toc326999714 h 4 Hyperlink l "_Toc326999715" 2.3. 성체줄기세포 PAGEREF _Toc326999715 h 4 Hyperlink l "_Toc326999716" 2.4. 생명윤리법안의 문제점 PAGEREF _Toc326999716 h 5 Hyperlink l "_Toc326999717" 2.5. 배아복제에 대한 교계의 반응 PAGEREF _Toc326999717 h 5 Hyperlink l "_Toc326999718" 제 3장 시험관 아기 PAGEREF _Toc326999718 h 6 Hyperlink l "_Toc326999719" 3.1. 윤리적인 반성 없이 발전되어온 인공출산기술 PAGEREF _Toc326999719 h 6 Hyperlink l "_Toc326999720" 3.2. 인공출산기술에 대한 평가 PAGEREF _Toc326999720 h 6 Hyperlink l "_Toc326999721" 제 4장 동성애 PAGEREF _Toc326999721 h 9 Hyperlink l "_Toc326서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을 성공시켰다. 이후 아무 제한 없이 배아실험을 지속하고 염색체 검사를 통해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과배란’이 필수였다. 에드워즈 이후 호르몬 주사와 약물주입으로 다수의 난자를 생성하는 것이 인공수정의 표준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그의 연구에 있는 온갖 윤리적 문제들은 아무 검토 없이 무시되었다.존 델 지오와 도리스 델 지오 부부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험관아기 출산을 시도했다. 쉐틀즈의 시술 가운데 그 감독관인 레이몬즈 반데 빌르 박사는 인공수정과정의 비윤리성을 간파하고 중단시켰으나 도리어 법원은 자녀를 얻는데 실패한 델 지오 부부의 편을 들어주었다.1978년, 30회 가량의 실패 끝에 에드워즈와 스텝토우 박사의 시술로 최초의 시험관아기 루이제 브라운이 태어났다. 의료계는 실패의 사례는 주목하지 않고 성공에 대해서만 찬사를 보냈다. 성숙한 난자를 얻기 위해서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반인륜적 학대가 발생하며 그의 실험 가운데 많은 배아들이 손상을 입거나 기형화되었다. 또한 1982, 1987년, 미국 UCLA 후버연구소에서도 27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시험관 수정실험을 실시하는 가운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심각한 학대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부작용의 위험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이 개관은 인공출산기술이 윤리적 타당성의 고려나 통제가 거의 없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시행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추진되어 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공출산은 이제 당연한 의료기술인듯 정착되어버리고 말았다.3.2. 인공출산기술에 대한 평가인공출산기술의 개발은 불임의 고통을 해결한다는 동기로 시작되었다. 이 말은 불임이 질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임은 질병의 범주에 넣을 수 없으며, 불임치료술은 질병상태가 아닌 대상에게 시술되는 일이 빈번하며 오히려 불임을 치료하는 시술 때문에 신체에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게다가 불임은 20% 이상이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각각 검사결과가 다르게 아니라 정당한 사용, 즉 하늘에 쌓는 것이 이어져야 청부가 된다. 이 ‘하늘에 쌓는다’에 대해서 김동호는 구체적인 사용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우선 돈을 세 가지로 나누어 ①하나님의 몫, ②다른 사람의 몫, ③내 몫으로 구분하고 내 몫을 사용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돈이라고 한다.먼저 하나님의 몫은 십일조를 뜻한다. 김동호는 하나님께서 헌금과 구제를 최소한만 요구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수입의 1/10(신 14:29)과 1/30(신 14:28-29)를 하나님께 돌리면 나머지 돈은 개인의 돈으로 자유롭게 가진다고 본다. 또 희년의 정신을 살려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제안하면서 식구 수에 하나님을 더한 숫자로 수입을 나눈 몫이 각자의 몫이라고 한다. 하지만 식구 수에 따라 하나님의 몫이 심히 변동할 수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이 방법은 실질적으로 유산을 분배하는 셈이 된다.둘째로 다른 사람의 몫으로 세금의 정직한 납부, 임금의 지급, 노동의 성실한 제공, 빚갚기, 구제(제 2의 십일조)를 제시한다.셋째로 나머지 몫은 자신의 몫으로 얼마가 되든, 어떻게 사용하든 문제가 없다고 본다. 또한 요셉의 예와 잠언 6:6-8을 들면서 저축을 장려한다.김동호가 돈 문제를 신앙생활의 중심주제로 채택하고 설교하며 실천지침을 제안하는 것은 이 땅에서도 구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인적인 구원관 때문이다.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이며 그 안에는 육적인 극복이 포함되고, 육적인 극복 안에서는 부자가 되어 곤경을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서 마 16:19를 인용하는 것은 예수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할 뿐, 돈 버는 법이 아니다. 또한 청지기인 우리가 주인의 것을 마음대로 쓴다는 주장 역시 그 재산은 주인의 것이지 청지기의 것이 아님을 고려할 때 모순된 주장이다.그의 청부론은 인간의 죄성을 고려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유토피아니즘까지 나아간다. 김동호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는 부자선포하신 것이다. 이 법을 동해보복법으로 표현하며 실정법적 조항으로 축소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로서 이 본문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뀌는 실정법이 아니라 모든 실정법의 입법정신을 천명해주는 보편법이다. 이 법은 모든 법이 지향해야 하는 형사적 공의의 기본원칙이며 생명을 취한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생명을 취하는 것 이상의 공의로운 형벌은 존재할 수 없다. 보편법으로 인정되는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부당한 살인을 금하는 단어이다.일부 루터주의나 세대주의 등의 혹자는 구약시대는 보복법이 적용되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사랑 안에서 보복의 정신이 극복되어 사랑의 법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대강령은 이미 모세오경 안에 있던 것으로 사랑의 대강령과 더불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공의로운 형벌의 원칙이 존재했다. 이 경구는 공정성이라는 공의의 원칙의 천명이며 사랑의 대계명과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사형을 부인하신 적이 없으셨다. 사랑의 대강령은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개인 윤리의 규범으로 작용하지만 재판은 공의의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의 대강령은 재판정에서 공의의 원칙의 엄격한 실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로마서 13:1-7의 말씀은 사랑의 실천과 국가의 사법권의 시행이 서로 독립된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호보완적임을 의미한다. 로마서 12:10-21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권고는 원수의 악행을 넘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원수의 악행은 반드시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기독교인 개인적으로 손을 대지 말라는 의미이다. 원수에게 손을 대지 말고 사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수의 악행을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3장에서 원수의 악행에 벌을 내리시는 방법을 국가기관을 통한 형벌의 시행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원수사랑이라는 행동과 완벽하게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보완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역시 사랑의 실천과 형벌로서의 죽음이 가능의 문제이다.12.2. 자살의 교회사적 관점교회에서는 자살을 윤리적으로 정당화 된 적이 없다. 락탄티우스, 어거스틴도 그랬고 중세시대에는 자살자의 매장을 허용하지 않고 범죄행위로 인식했다. 토마스아퀴나스는 ①자살은 자연적 성향에 대항하며 ②공동체의 소유물을 자의적으로 훼손하고 ③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므로 범죄임을 지적했다.종교개혁자들은 자살을 비윤리적 행위로 비판했으나 구원문제와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루터는 자살자를 악마의 힘에 사로잡혀있는 것으로 보아 정죄받음을 반대했고, 칼빈은 사울의 자살과 아히도벨의 자살에 대한 설교에서 자살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나 자살이 성령훼방죄로서 사함 받을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퍼킨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살하는 것은 자신 원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행위를 결정하는 순간에 회개할 수 있다고 보았고, 아메시우스는 자살을 극히 심각한 죄로 규정한 후 죽음이 직접적인 목적이 아닌 희생적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으나 일반적인 모범으로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12.3. 자살과 관련된 성경의 사례와 가르침교회사상 자살을 성령훼방죄로 분류하여 다른 죄보다 더 악한 죄로 다루는 전통이 있었지만 성경은 자살에 대해 명시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제시하지 않는다.삼손의 자살 성경에 처음으로 기록된 삼손의 자살은 비상한 전쟁의 상황에서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전사로서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였다. 히브리서 11장에 삼손을 소개하는 것이나 삼손의 죽음이 기도의 응답이었음을 고려할 때 삼손의 죽음은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죽은 죽음이 된다.사울의 자살 사울은 이스라엘의 수장인 자신이 이방인에게 찌름과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했다. 이에 대한 해석이 역대상 10:13-14에 제시되는데, 사울의 죽음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해설만을 제시한다.아히도벨의 자살 아히도벨은 후새의 전략이 채택되자 압살롬의 통치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어보이는 이 자살에 대해서 원
    사회과학| 2013.05.30| 48페이지| 2,5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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