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란’이란 나라는 걸프전, 호메이니, 이슬람교, 극렬한 테러, 이라크와의 전쟁, 강남의 테헤란로 등의 이미지가 굳혀져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란이라 하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은 한창 꿈도 많고, 그만큼 고민도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유난히도 이란영화를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이 영화들은 헐리웃의 성공한 영화들처럼 많은 관객들의 끌만한 흥행작들은 못되었지만 가뭄에 단비 오듯 나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 ‘제 3의 영화’는 모두 이란의 세계적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었다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에서 「체리향기」(1997)라는 영화는 소재와 주제는 약간씩 다르지만 키아로스타미 감독만의 특유함이 모두 베어나온다. 이 작품들을 통해 이란이 낳은 세계적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그린 삶과 죽음에 관한 그림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 대하여...이란의 세계적인 감독 키라로스타미는 1940년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테헤란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즐겨보았으며, 13년 동안 교통 경찰청에서 근무하면서 주경야독 끝에 대학을 졸업한 다음, 1960년부터 광고 분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10여년간 150편의 광고 필름을 만들었다. 1969년 이란의 청소년 지능개발센터(카눈)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영화인들과 함께 카눈에 영화부문을 신설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후 20년 동안 카눈 영화부의 중심을 활동하면서 그 영화제작소를 이란영화의 산실로 키웠다.초창기의 단편영화 ≪빵과 오솔길≫(1970), ≪쉬는 시간≫(1972), ≪리포트≫(1977)와 중편영화 ≪체험≫(1973), ≪결혼 예복≫(1976계속 진행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영화의 특징은 철저하게 현장중심의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다큐멘터리의 장점과 어린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만의 독특한 담백의 미학을 가진 데 있다고 할 수 있다.Ⅱ.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준 그의 영화들...1.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영화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선 소년을 좇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미학적인 구도, 간결하고 재미있는 대사와 어린이의 순수하고 착한 정서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이란 코케 마을의 한 초등학교,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출현으로 일순간 긴장에 휩싸인다. 바로 공포의 숙제 검사 시간이다. 숙제를 공책에 하지 못한 네마자네는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고, 옆에서 짝꿍 아마드는 그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집에 돌아온 아마드는 숙제를 하기 위해 공책을 펼치다가 실수로 네마자데의 공책까지 가져온 사실을 알게 된다. 곧 아마드의 눈앞에 네마자데의 우는 모습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한 번 더 숙제를 안해오면 퇴학시키겠다던 선생님의 엄포에 생각이 미친 아마드는 친구의 공책을 집어들고 집을 나선다. 네마자데가 산다는 마을 포시테를 향해...영화는 1시간이 넘게 이 아이가 친구를 찾아 갈짓자형 지그재그 산길을 오가는 고생스런 모습을 놀랍도록 끈질기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의 다큐멘터리 수준이다.지그재그로 된 높다란 언덕길을 이리 오르고 저리 내려가면서 이 집에서도 물어보고 저 집도 들어보고 여기서 노인네에게 묻고 저기서 아저씨에게 집을 안내받는다. 밤이 늦도록 친절하게 나마자데네 집에 데려다준 어떤 할아버지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그의 집에는 네마자데가 살지 않았다. 그 동네엔 네마자데라는 이름이 한둘이 아니라나...사실 이 부분에서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시계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구성상 여기가 클라이 맥스려니 아마드가 친구네 집을 결국에 찾겠지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감독은 한 수 위였다.다음열어준 작품이었다.2.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 영화는 우리 나라에선 뒤에 쓰게 될 두 작품보다 늦게 소개되었지만, 먼저 간단히 소개하자면,「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속편격인 작품이다. 1990년 이란의 지진 참사 후에 감독 자신이 아들과 함께 전편의 주인공 두 아이의 생사를 묻고 돌아다니는 형식을 통해 폐허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희망을 그려냈다. 일종의 가짜 다큐멘터리이며 로드무비이다.이 영화 스토리는「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보다 더 간단하다. 이번에는 키에로스타미 감독 자신이 3년 전에 영화를 찍었던 아이들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이다.지진으로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막 풀린 테헤란 톨게이트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물론 감독 역할은 케라드만 이라는 배우가 대신한다. 함께 차에 동행한 사람은 감독의 아들이다. 가는 길은 온통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진 사람들이 눈물조차 메말라있다. 지나치는 곳 모두에서 아이들의 생존을 물어도 누구하나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다. 코케 마을이 다가오자 점점 가슴을 태우다 우연히 전편 영화에 출연했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기뻐하며 아이들 소식을 물었지만그 분도 아이들의 생사를 모른다. 어린아들은 철모르고 아빠를 보채기도 하지만 감독은 애가 타서 붕괴된 집터만큼이나 가슴이 무너진다.이 영화의 라스트씬은 무척 인상적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그랬던 것처럼...코케 마을을 눈앞에 두고 감독이 탄 차가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다 힘에 부쳐 다시 내려오는데 이 때 조금 전 지나쳤던 무거운 짐을 진 청년이 차를 밀어서 내려가는 것을 도와준다. 청년은 다시 짐을 지고 고개를 올라가고... 내려갔던 차가 탄력을 부처서 올라와 마침내 고개를 넘고 그 청년을 태운 뒤 떠나게 된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면 영화의 맛을 전하기 보다 횡설수설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장면은 웃음과 함께 깊은 감동을 주었던 명장면이라 기억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자동차가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을 빌어 재해민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희망적인 메시지의 전달은 특히 음악을 통해서도 이루어 졌다고 생각되는데 장례식 장면 위에 밝은 음악의 흐름... 의외이면서도 잘 어울리고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이 영화는 비록 키아로스타미의 주관적인 현실이 기록된 작품이긴 하지만, 당시 이란의 실상을 배경으로 한 '현실성 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감히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란' 이라는 제 3세계 에서 '한국' 이라는 나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예술성이 짙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묻혀질 뻔했던 그들의 '역사'는 타국인인 나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3. 올리브 나무 사이로이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이은 이란 북부 3부작읜 결말을 이루는 작품이다. 하지만 앞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연출방식을 기도한다. ‘영화에 관한 영화’ 그러니깐 결국 3부작은 세겹의 이야기가 겹친 것이다.「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결국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던 두 아이가 훌쩍 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새로움을 제시했던 이 영화는 영화 안의 영화에 출연하는 아마추어 배우 호세인이 예전부터 흠모하던 상대역 배우 테레헤에게 촬영기간 내내 일편단심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매달리는 호세인과 항상 외면하는 테레헤... 그 . 촬영이 끝나고 자기를 외면하고 집으로 향하는 테레헤를 쫓아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구혼을 하면서 지그재그 언덕길을 따라 오르내린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가 짝 나마자데의 노트를 돌려주려 그렇게 오르내렸던 언덕길, 그리고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아이들을 찾아 감독이 자동차로 쩔쩔매며 올랐던 그 고갯길을 연상하게 된다. 이 영화 세편에서 몇 번씩이나 지겹도록 반복해서 보았던 갈짓자형 고갯길은 우리의 고당한 인생의 오르막을 상징한다는 것을 세 번째 영화에서야 깨달았다.또한 감독은 앞의 영화들처럼 이 영화에서도 평범함과 익숙함에록 한 감독의 배려라 생각된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삶의 주변에, 그리고 두 주인공이 걸어갔던 길가에 정말 흔하게 심겨져 있던 올리브 나무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보이는 올리브 나무, 우리들이 걸어가고 있는 올리브 나무 숲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4. 체리향기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이 항상 그래왔듯이 이 영화에도 인기스타는 없고 우연히 길을 가다 감독에게 캐스팅 된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한 역시 앞의 3편의 영화 속에서 각인된 꼬불꼬불한 산길이 나온다. 하지만 전편이나 카눈 시절의 초기 단편들을 통해 주로 동심의 세계를 다뤄왔던 키아로스타미 영화에 익숙했던 나는 「체리향기」를 통해 전혀 새로운 느낌의 그를 만날 수 있었다.영화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탄 자동차는 공사 현장에 놓인 폐자동차 안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만난다.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단골 주인공들인 그 어린아이들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놀랍게도 그 곳을 지나친다. 이 영화 「체리향기」는 아이들의 순수를 넘어 선 보다 넓은 경지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마주치는 붉은 셔츠를 입은 청년이 등장 한다. 자신의 셔츠 위에 쓰여진 글씨를 읽지 못하는 그를 보며 얼핏 의 남자 주인공 호세인이 떠올랐지만 그것도 예상을 뒤엎고 화면은 깜깜해지고 붉은 체리 빛깔의 오프닝 크래딧이 떠오른다. 그 후부터 키아로스타미의 놀라운 변신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주인공 바디는 무색, 무미, 무취의 그야말로 물과 같은 남자였다. 그에 대해 분명한 것은 그가 끊임없이 죽음을 원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나이도, 직업도 자살하려는 이유조차 감독은 알려주지 않는 다. 그리고 연극무대처럼 그의 차 안 으로 세 명의 남자가 차례차례 등장하고 퇴장하게 된다.첫 번째 사람은 애띤 얼굴의 군인으로, 온갖 전쟁과 탄압들로 얼룩진 쿠르드족인 이 청년은 돈 때문에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 Gordon Willis -대부를 보는 내내 마이클이 느끼고 있는 불안함과 떨림, 긴장됨을 내가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 단지 그들의 뛰어난 연기뿐만 아니라 그렇게 보여 지게 하는 요소들 때문이라는 걸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야 손에 땀을 딱아내며 비로소 알 수 있었다.사람들의 긴장된 표정과 심리상태까지 표현이 될 만큼 얼굴은 어두웠으며 난 그걸 보는 그대로 인식했을 뿐이다.대부에서 고든 윌리스가 사용했던 탑 라이트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불안으로 만들어 줬으며 모든 인물들의 긴장감과 무게감을 나타내는데 뛰어난 역할을 해 주었다.특히 영화 중반 부분 5개의 보스들의 회의 장면에서의 개개인의 탑 조명은 각 보스들의 위엄과 그들이 서로 경계하며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여 주었다.실외 장면이나, 조명기가 아닌 자연광이 있는 곳에선 네스트로 알멘도로스 같이 자연광을 충분히 이용하였고 그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빛의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특정시간이 아니라 대부분 햇빛이 강렬한 오후 시간 때의 장면들이 많다. 그 시간때에 찍어서 그런지 화면이 건조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충분히 광을 이용하여 자연스런 분위기가 나타났지만 실내 장면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빛이었다. 촬영방법에 있어서는 대부분 안정된 느낌이었지만 한 가지 옥의 티를 찾는 다면 큰 형뻘인 소니가 여동생의 남편, 카를로를 찾아가 길거리에서 때리는 장면이다. 길가에서 때리는 장면은 옆에서 촬영됐는데 소니의 주먹은 멀리 빛나가지만 그는 얻어맞은 것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너무 티 나게 NG가 났지만 그냥 사용 된 것이 약간의 아쉬움과 흠으로 남는다.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이 걸어 찍기인 것 같다. 그가 화면을 아직까지 의도는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화면의 미장센을 생각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창문의 창살이라던가 문의 틀, 벽 등을 걸어 찍어서 화면에 벽과 사람이 같이 보인다던지. 창문의 창살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영화에서 보다 찾아보기 쉬웠다.앵글의 사이즈나 카메라의 위치와 높이마저 상당한 고심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인물들의 긴장감과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영화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약간의 높이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팬과 틸트에 순서에 따라서도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윌리스만의 고민이 살짝은 느껴진다.고든 윌리스의 촬영이나 조명을 볼 때 알멘도로스가 주로 사용한 자연광의 이용이나 빅토리오 스트라로가 보여줬던 색의 사용을 적절히 혼합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뭐랄까 그들을 반반 섞어 놓으면 고든 윌리스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자연광이 충분할 때는 풍부한 자연광으로 찍으면서도 실내장면과 같은 조명이 중요시 되는 장면에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명방식이나 자신만의 색깔로 촬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마이클이 창고에서 총을 받는 장면에서 백열전구가 위에 있는데 가식적인 조명보다는 그런 조명을 보여줌으로서 영화적인 거짓조명보다 사실적인 조명을 바탕으로 거짓조명을 잊게끔 되었으며 무엇보다 주위의 조명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루이스 레스토랑에서는 마이클이 솔로조와 맥클레이를 죽이려 할 때의 긴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으며, 세례식장면과 상대 조직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장면의 교차 편집 또한 음악과 장면들의 새로운 이미지 조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 같다.두 번째로 본 맨하탄을 보면서는 오 수정의 느낌이 약간 있었다. 흑백이라 색감에 대해 논하기는 힘들지만 검정과 흰색의 어두움과 밝음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은 있었다. 누가 촬영 해 논 영상을 본다기 보다 내가 그들 옆에서 보는 것 같은 사실적인 느낌이 들었고 이 영화에서도 역시 주변의 빛들을 충분히 이용한 것 같다.방안에는 꼭 갓등이 있었는데 항상 등장인물들이 갓등을 버릇처럼 켰던 것이 기억난다. 이 영화에서도 벽이나 사물을 걸어 찍는 장면들을 볼수 있었고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갈등을 스토리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보여줌을 잊지 않았다.그리고 이삭과 메리가 산책을 하다가 비를 맞고 미술관에 잠시 피하는 장면에서 둘의 대화가 그림자로 보이거나 검은 화면에 대사만 들리는 장면도 시대에 훨씬 앞서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상태나 마음 상태를 화면에 차지하는 위치나 인물들의 사이즈로 잘 나타낸 것 같다.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는 예일 모습에서도 화면의 왼편 2/3이상이 도로이고 예일의 모습은 오른쪽 하단 맨 구석에 아주 작게 보이는 것이나 메리가 이삭과 함께 있으면서 예일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메리도 외편에 벽이 필요이상으로 걸어 찍힌 것을 보고 이삭과 메리 사이의 벽을 느낄 수 있었다. 예일과 부인 에밀리, 그리고 이삭과 메리가 같이 만나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에서도 이삭, 메리, 예일, 에밀리 순으로 앉아서 이삭과 예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메리의 심정을 잘 나타내 주었다. 또한 이삭이 메리와 예일이 연락하는 사실을 알고 예일에게 찾아가 과학실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예일의 모습을 중앙에 담은 것과는 상반되게 이삭의 왼편엔 해골이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논의가 끝난 다음엔 이삭이 왼쪽으로 프레임 아웃이 되고 카메라는 벗어나는 이삭을 따라 팬을 하다가 원래 이삭이 있던 오른편 위치에 정확이 해골을 놓음으로서 이삭의 심리를 느낄 수 있었다.
표현주의 영화를 보고...『칼리가리박사의 밀실(1919. 로베르트비네), 노스페라투(1922. 무르나우), 마지막 웃음(1924, 무르나우)』♣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을 보고일단, 다른 수업시간에 전반적인 지식을 듣고 영화를 봐서인지, 솔직히 재미없긴 했지만, 표현주의 특징을 맞춰가는 재미는 흥미로웠다. 무성영화라서인지-수업시간엔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기 위해 그랬다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그렇고, 간간이 나오는 자막과 행동으로만 연기해야 하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과장되었고, 눈에 꼭 다크써클처럼 어두운 빛들이 돌았다. 세트들은 기하학적으로 생겼고, 세트들은 뾰족했다. 사회의 불안과 암울한 시기를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마지막장면이 아닐까 싶다. 칼리가리가 범죄자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걸 뒤집는 반전, 그것도 정말 어처구니 없게 또, 허무하게 확실한 결론도 맺어주지 않고 말이다.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은 보기전이나 후에 표현기법이나 영화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어서인지 다음 볼 영화는 별다른 지식없이 보고 싶었다. 과연 사전 지식없이도 저런 표현주의적 요소가 눈에 보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노스페라투와 마지막웃음은 비디오케이스에 있는 아주짧은 줄거리만 읽고 영화를 보았다.♣노스페라투를 보고흡혈귀 영화라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섭진 않았다. 옛날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노스페라투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에 비해 화면이 전체적으로 밝아서 보기에는 수월했다. 대략의 줄거리는, 거래차간 드라큐라 백작성에서, 남편 조나단이 가져온 흡혈귀 책을 아내 니나가 본후, 흡혈귀 퇴치법을 알아내어 사람들을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해 노스페라투를 죽인다는 내용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자극적이고 강렬한 최근 흡혈귀 영화에 비하면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표현주의적 요소를 찾을수 있었다. 영화에선 자막이 꽤 많이 나왔는데, 그 자막들은 다음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다. 마차가 달리는데 테이프를 빠르게 돌린 것 같은 장면-이것도 표현주의 요소인지는 확실치 않다-이 눈에 띄었고, 흡혈귀 그림자가 사람을 덮치려는 장면, 이것은 칼리가리박사의 표현기법과도 비슷했다. 그리고, 니나가 남편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에선, 십자가들이 사방에 무덤위에 꼽혀있었는데, 똑바로 꽂힌 것은 거의 없고, 거의 눕다시피 꽂혀 있었다. 이것도,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처럼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노스페라투를 아래에서 위로 비추기도 하였고, 끊어 찍는 모습, 예를 들면, 배 갑판 문이 열릴 때, 쓰윽하고 한번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만화처럼 끊겨서 열리는 모습같은 것, 노스페라투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이 새로웠다. 왜 저렇게 표현했을까 생각해보면, 좀 더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표현주의 영화에 대해 점점 흥미를 느끼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Der Letzen Mann’을 보았다.♣마지막 웃음을 보고이 영화는 내가 가장 할말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자막이 마지막에 잠깐 나와서 이해는 느리긴 했지만,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아주 많아서, 그거 찾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영화의 대략 줄거리는 도어맨으로 살던 남자가 도어맨일때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나이가 들어 그 일을 못하게 되고 세탁실 근무자로 전락하게 되고, 옛 근무복을 훔쳤다가 걸려서 더 큰 비난을 받고 한없이 처량해지지만, 유산을 받음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내가 만약 감독이었다면, 세탁실 근무자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해피엔딩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오히려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이나 노스페라투보다는 훨씬 재밌었다. 이 영화에서는 칼리가리 박사와 마찬가지로 Key Light만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보기에는 노스페라투보다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속 표현주의적 요소들은 친절하게도 정말 많았다. 도어맨인 주인공은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해고 편지를 받는 순간, 편지의 글씨가 흐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것은 주인공의 몽롱함, 또는 믿지 못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해고 편지를 받은 순간 화가나 가방을 던지려하지만 나이가 들어 던지지 못하는 것과 대비시켜, 새로운 젋은 도어맨의 번쩍 가방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줘, 그를 더 처량하게 만들었다. 또, 해고 통지후 억지로 벗겨내는 정복에서 떨어지는 단추. 그것의 클로즈업. 뭔가 암시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그가 정복을 훔쳐 입었을 때, 단추가 없는 불완전한 정복이 그의 불안한 맘을 표현하는 듯 했다. 그가 예전의 명예를 찾기위해 도어맨 정복을 훔쳐나왔을때는 건물이 그의 쪽으로 쓰러지려는 듯한 모습이나, 터질듯한 눈. 그것이 그의 불안감을 더욱더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정복을 입고 기분이 좋아 술을 마셨을 때는 카메라도 술에 취한 듯 돌았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을 표현한건지, 가짜 도어맨의 불안감을 표현한건지, 그의 얼굴과 과거 도어맨시절의 모습이 겹쳐져 표현됐다. 가짜 도어맨 행세를 하다 이웃주민들에게 걸려 소문이 퍼지는 장면은, 사람들의 입모양이 클로즈업되고, 다시 귀가 클로즈업 됨으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를 비웃는 주민들의 얼굴이 겹겹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후반부에는 유산상속기사가 클로즈업 되면서, 다시 명예롭고, 깔끔한 모습으로 주인공은 돌아가는데, 다소 허무하긴 했지만, 비참한 모습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구성 때문인지 오히려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노스페라투 보다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Der Letzen Mann’이면 마지막 남자여야 되는데, 마지막 웃음이라 번역된 이유도 이 해피엔딩 때문이 아닐까라고 같이 본 친구가 얘기해줬는데, 듣고보니 그런 것 같았다.
광고에는 정말 여러 가지의 종류와 방법이 있다. 그중에 난 인터넷 광고에 눈을 집중해 봤다. 신문, 라디오, tv 등의 매체를 통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 광고는 이젠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으로도 파고들어 갔다. 이제까지의 인터넷 광고는 타 매체와 별반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특정업체 “옥션”의 광고를 보면 인터넷 광고가 얼마나 제한이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동영상은 모텔 방에 젊은 남녀가 들어선다. 셔츠를 벗은 남자가 여자의 티셔츠를 벗긴 뒤 침대에 눕히고 청바지를 끌어내리려 하지만 몸에 딱 붙는 바지여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 결국 여자는 화를 내고 남자가 욕설을 뱉는 화면 위로 자막과 함께 내레이션이 흐른다. “속궁합이 맞는 청바지를 찾으신다면? 옥션!”두 번째 광고는 더욱 가관이다. 학교 주변 골목길. 교복 차림의 불량스런 남학생 4명이 남녀 학생을 벽에 몰아세운 채 주먹과 발길질로 위협하고 있다. 겁에 질린 두 학생이 지갑을 꺼내줬지만 이들은 가방을 뒤져 청바지,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을 빼앗고는 한마디 내뱉는다. “이제부터 네 별명은 옥션이다,옥션.”이어 화면에 자막이 뜬다. 쇼핑은 옥션!...또한‘독한뇬’‘시체놀이’‘대한민국 승리 기원’‘싸대기’등 4편이 함께 게재됐다. 하지만 옥션은 이들 CF를 올린 지 하루만에‘의도적’으로 삭제했다. 옥션 홍보팀 관계자는 “네티즌이 이들 CF를 내려받아 여러 블로그와 사이트에 퍼지도록 하려는 의도로 제작했다”면서 “게릴라성 광고란 홍보 전략에 따라 하루 만에 삭제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옥션 측의 의도대로 이 CF는 인터넷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지만, 많은 네티즌이 선정성과 폭력성의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학교 주변 폭력과 금품갈취, 모텔정사 장면, 날치기 범죄 등을 희화화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게 뻔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불특정 다수들이 들락날락 하는 곳이라 쳐도 이런 광고는 정말 한마디로 쓰레기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이건 전에도 말했듯이 온라인 광고가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광고들이 가능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옥션의 광고가 과연 실패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이들은 단기간에 저자본의 짧은 광고를 잠깐 게시했지만 사람들은 화가 났든 어쨌든 이것이 이슈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고 광고의 효과를 누렸으며 게다가 규제할만한 법령이 없어 처벌받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들이 어쨋건 간에 결과론적으로는 이들이 원하는 대로 시나리오가 흘러 간 것이라고 본다. 최대 이익을 보았으니 옥션광고는 성공한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좋은 광고란 무엇인가...광고의 최대의 목적이 상품을 알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기 때문에 옥션의 광고는 좋은 광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적어도 우리 인간은 이런 인간들의 장난에 휘둘리면 안 될 것이다. 광고 중에 지나친 과대광고를 하지 않으면서도 상품에 대한 설명과 인식이 분명하게 되어 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난 생각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타사를 비판하는 광고, 비싼 연애인들의 얼굴을 통해 소비자를 혹하게 만드는 광고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 중에 개인적으로 올바른 방향의 광고라 생각 되는 것은 바카스 광고 정도? 인상깊었던 것은 한 청년이 아침에 직장에 가는길에 동네 구멍가게주인에게 취직했다고 자랑을 한다. 주인 아저씨가 어떤 회사냐고 물으니 이 청년이 작은회사예요..라고 하자 주인은 '열심히 일해서 큰회사 만들면 되겠네~' 이런식으로 말씀해주신다. 마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 출연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한마디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이런 광고들도 많이 있다. 광고도 미디어의 하나의 매체이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미디어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광고 하나 때문에 사회문제가 하나라도 생긴다면 그건 광고의 책임임은 분명하다. 아무쪼록 광고에 대한 규제도 하루 빨리 제정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언제나 따뜻하고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광고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가 만들어 가야할 이상 지표가 아닐까 싶다.
녹 색 광 선(The Green Ray, Le Rayon Vert, 1986)주연Marie Riviere조연Basile Gervaise로메르의 사계 시리즈중 세 번쨰 작품에 해당하는 여름 이야기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 멋진 로맨스를 찾아나선 한 델핀의 여정을 통해 젊은 날의 소망과 그 성취를 상징하는 '녹색 광선'의 의미를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감독 에릭 로메르는 프랑소와 튀르포, 쟝 루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쟝 리베트 등 프랑스 신세대 영화 작가들의 등용문이 된 영화 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가 배출한 또 한 명의 뛰어난 영화 감독이다. 그는 항상 거의 아마츄어에 가까운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서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진지하면서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그의 영화의 특징이며 또 그의 영화이외에서는 그 연기자들을 다시 보기 힘들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이용해 그의 영화에서 자연스런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상에 담는다. 이 영화도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평론가는 그의 영화를 'Elegant Simplicity'라는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작품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가 바로 이것이다.이 영화는 8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금곰상을 수상했다.영화를 '공부'하려는 학생들, 나같은 사람에게는 필요한 영화 이다.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청순하고 갑갑한 여자인 델핀(마리 라비에르 역활)은 여름휴가를 맞이하지만 친구들로부터 함께 휴가를 보낼 기회를 거절당한다. 파리에서는 휴가철에 휴가를 가지 못하는게 가장 수치라고 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그녀는 휴가 기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남자 친구를 구할 수 있기를 내심 바리지만 자신의 성격탓으로 뜻대로 되질 않는다. 그러나 델핀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던중 그녀는 친구로부터 녹색은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노르망디에 있는 친구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거기에서 델핀은 남자를 사귀기는 고사하고 그곳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실망 속에서 델핀느는 집으로 돌아간다. 우연히 비아리츠역에서 만난 한 남자와 몇마디의 대화로 서로가 쉽게 통할 수가 있게 된 델핀느는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해변에 대양이 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일몰때 둘이는 보기 힘들 정도로 녹색빛을 발하는 바닷가에 지는 태양을 응시하고 있다. 빛의 굴절로 인해 일시적으로 녹색광선 발한다. 델핀은 녹색의 빛을 향하여 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결국 그는 꿈을 이룬 것이다.가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물론 이야기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개성과 파괴력, 그것들의 영향력은 연출자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연기자이다. 녹색광선은 일상적인 연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적인 연기를 하게 한것이고 연출자는 거기서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뽑아냔것이다. 그에 비해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는 인위적인 것(정신병자도 있었지만.)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 또한 일상적인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놀라운 연기이다. 일상적인 연기와 인위적이지만 우리는 놀랍게 여기는 만들어진 연기 연기자들의 몫은 연툴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영화에서 배우들은 문어체의 말을 많이 하며 또 철학이나 문학 시간 외에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의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게다가 영화 속에선 주로 문학작품들이나 철학책들이 언급된다. 역시 랭보의 시로 시작해 쥘 베른을 거쳐가며, 델핀은 소설을 읽다가 마침내 자신의 꿈의 연인을 만난다. 한 평자는 그의 영화들에서 프루스트와 파스칼, 발자크, 헨리 제임스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문학적인 것만큼 또 영화적이다. 빛의 움직임, 특히 일광과 석양을 인물의 심상에 맞추어 잡아내는 솜씨나, 배우들의 감탄할 만한 즉흥 연기 그리고 프랑스 도시들과 해안 지방의 풍광을 풍요롭게 활용하는 것 등은 분명 문학적인 경지를 넘어선다. 또한 그의 영화는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볍고, 속물적인 듯하면서도 질박해서 주인공들의 지적 허영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