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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폐기장 뒤집어보기 감상문
    핵폐기장 뒤집어보기- 도마(Defend Only My Area)위에 오른 위험 -1. 서론2. 핵폐기물과 핵폐기장 알아보기1) 핵폐기물과 핵폐기장이란2) 핵폐기장 건설 계획3) 핵폐기장에 대한 생각들 - 스티그마와 도마4) 문제 해결을 위한 채비3. 결론1. 서론『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전쟁이 치열하다. 2년 전 부안 사태 때만 해도 기피 대상으로 여겼던 방폐장이 요즘 전국적으로 구애를 받고 있다. 엄청난 경제적 지원에다 방폐장에 대한 인식이 다소간 바뀐 결과다.그렇다고 방폐장에 지지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반대 의견이 만만찮고 ‘이웃’이 ‘앙숙’이 되는 갈등 국면도 심각하다. 핵연료가 본래 ‘효용’과 ‘위험’이라는 양날의 칼을 지닌 에너지원인 만큼, 그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 역시 효율성과 안전성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주간한국 2005.8.31 기사 中위의 기사에서 나와 있듯이 방폐장과 같은 핵폐기물 처리 시설에 관한 설치 유무는 언제나 찬성과 반대의 극한 대립 속에서 추진되어왔다. 책 『핵폐기장 뒤집어보기』에서는 핵폐기장 설치에 관한 대립을 도마(DOMA, Defense Only My Area)에 얽힌 문제로 판단한다.지난 20년간 핵폐기장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만 치중하면서, 반복되는 양극단의 대립만이 존재하였고 정작에 더 중요한 문제인 핵폐기장을 어떻게 하면 덜 위험하게, 보다 안전하게 만들어 관리하느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드러난 이야기들이 없었다. 시민의 참여와 정보의 공개를 배제한 정부의 일방적인 핵폐기장 정책추진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였고, 오히려 핵폐기장에 관한 불신과 적대감만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또한 정부는 님비(NIMBY) 현상으로 지역 주민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고, 지역 주민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서로 간에 양보 없는 치열한 대립만이 오갔다.그리고 핵폐기장 건설 문제를 둘러싼 정부, 반핵단체, 지역단체, 전문가, 언하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란 원전 내의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사용한 장갑, 작업복, 기기교체 부품 등과 전국의 병원, 산업체, 연구기관에서 사용한 주사기, 시약병, 장갑 등으로 방사선의 세기가 낮은 것을 말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폐장 설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관한 것이다.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등을 말하며, 열 발생량과 및 방사선 세기가 높다.마지막으로 사용 후 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 3~5년 정도 사용하고 나온 연료로 직접 처분 시에는 고준위 폐기물, 재처리 시는 에너지 자원이 되는 핵폐기물을 말한다.이렇게 발생된 각종 핵폐기물은 그 형태에 따라 적합한 처리 방식을 거치게 된다. 기체의 경우 밀폐탱크에 저장했다가 일정 수준 이하로 방사능 세기가 낮아지면 필터를 통해 바깥으로 내보낸다. 액체 폐기물 역시 각각의 특성대로 나누어 탱크에 저장해서 방사능 세기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방출하거나, 여과?증발?농축의 과정을 거쳐 부피를 최소화한 후 시멘트와 함께 드럼통에 넣고 밀봉해 보관한다. 고체 폐기물은 첨단 기술을 통해 압축하여 드럼통에 밀폐한다. 이러한 처리 과정을 거친 핵폐기물은 현재 임시저장시설에 그야말로 임시로 저장되어 있는 상태다.그 다음으로 필요한 단계가 바로 핵폐기물의 처분이다. 처분이라 함은 처리된 핵폐기물이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특정 시설에 가두어둠으로써 사람과 생태계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처분은 자중 차단벽을 세워 완벽한 방사선의 차단을 전제로 한다. 제 1방벽은 핵폐기물의 처리를 통한 안전성 확보를, 제2방벽은 다양한 공학적 방벽에 의한 안전성 확보를 의미한다. 마지막 제3방벽은 토양이나 암반 등의 자연방벽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핵폐기물을 완전히 격리시켜 그 안전성을 확보한다.이러한 차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사선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을뿐더러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에, 즉 그 안전의 여부가 직시 저장해 두는 일은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르고 또 핵폐기장의 건설로 한곳에서의 관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핵폐기장의 건설은 꼭 필요하다.핵폐기장 건설의 전제 조건에는 ‘기술공학적 안전성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안전하다는 것은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설사 문제가 생긴다 해도 시민에게 심각한 위험을 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뜻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러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핵폐기장이란 극도의 불안감과 혐오시설로 다가온다.핵폐기장 같은 기피 시설의 입지 정책은 국가 및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확실하고 국민 전체에게는 이익을 제공할 수 있지만, 부정적 외부효과의 초래는 불가피하다.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기역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 주민 생존권에 대한 불안, 지가 하락 등의 부담을 감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2) 핵폐기장 건설 계획지금까지 핵폐기장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대표적인 메커니즘은 결정-공표-방어(DAD : Decide-Announce-Defend)의 방식이다. 우선 시설의 필요성에 대해 공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기술적인 선택을 하여 결정한다. 결정의 과정에서는 이와는 다른 선택을 기대하는 어떤 이해집단과의 논의도 생략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는 수립된 정책을 시민에게 공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발표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반대와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다시 정부는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이러한 DAD방식으로 여태껏 핵폐기장 건설 계획은 추진되어 왔고 또 번번이 실패하였다.정부는 1987년 경북의 울진, 영덕, 영일 등 동해안 3개 지역을 핵폐기물 처분 가능 지역 후보 부지로 선정한다. 내부적으로 선정된 3개 지역을 대상으로 부지 조사에 착수하였고, 당시 비공개로 진행되던 이러한 사실이 해당지역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국도 점거 등 지역 주민과 마찰을 겪게 된다. 정부는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밀려 부지에 대한 세부조사를 실이다. 바로 이러한 사고를 흔든 것이 안면도다.안면도투쟁 이후 정부는 핵폐기장 후보 지역 선정을 위한 용역 시행과 첫 부지 공모를 시행한다. 그리고 1993년부턴 새로운 지원 계획과 각 지역단체의 자율적 유치 활동을 시행하였다. 1996년부터 기술공학적 안전성, 전문성, 신뢰, 참여 등에 강조점을 두게 된 정부는 핵폐기물 정책 추진 체계를 다시 세운다. 사업자와 안전 규제 기관의 분리하고, 주변 환경과 새로운 여건 변화를 고려한다는 취지 아래 핵폐기장 부지 확보 방안으로 유치 공모와 기존의 사업자 주도 방식 두 가지를 병행하기로 선언한다.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각종 시행 계획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채, 핵폐기장 유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는 핵폐기장에 대한 유치 신청을 하는 지역에 대해 양상자가속기 사업유치에 대한 특별 가산점 부여, 한국수력원자력(주)의 본사 이전과 3000억 원 지역지원금 용도의 자율 선택 그리고 직접 지원 확대 등을 내세우며 핵폐기장 유치지역에 각종 혜택을 내세웠다. 유치 공모 기간 동안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다. 유치 신청의 움직임에 따라 반핵단체의 활동 역시 격렬해졌다. 촛불시위와 무력시위와 과잉진압 등 이 지속되었고, 정부와 반핵단체의 대화 역시 끝내는 결렬되고 만다. 반핵단체는 무조건적인 반핵만이 살 길이라며 지역주민의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부안에 대한 핵폐기장 유치 반대를 넘어 원자력발전 자체를 반대하는 ‘반핵운동’의 기폭제로 삼고자 했다. 반 년 이상 부안사태를 마무리하지 못한 정부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의 신규 유치 공모’에 관한 공고를 발표한다. 그리고 예비 신청 마감일인 2007년 9월 15일, 정부는 또 한 번 ‘부지유치공모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3) 핵폐기장에 대한 생각들 - 스티그마와 도마핵폐기장 건설과 관련한 설문에 의하면 지역주민이 내세운 핵폐기장 유치 조건 1순위는 ‘시설의 안전보장’, 2순위는 ‘지역주민의 되고 있음을 말한다. 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전문가에 비해, 핵폐기장 유치 시에 환경피해와 건강피해 등에 관해서는 실제보다 배로 넘는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반핵단체들이 느끼는 핵폐기물의 위험도는 전문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지역주민과 시민은 물론 대부분의 모든 집단이 ‘방사성물질 유출’에 따른 건강 위협과 환경오염에 주목한다. 핵폐기장이 이러한 방사성물질의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따라서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핵폐기물을 가장 ‘덜 위험’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는 편이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핵폐기장에 대한 인식의 격차에는 스티그마 효과가 포함되어 있다. 스티그마란 사람, 장소, 기술 혹은 지역 생산물에 대한 특정한 속성, 즉 비정상적이고 흠이 있는 부정적인 속성과 관련된 표시라 할 수 있다. 스티그마는 무엇인가 왜곡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며, 이러한 왜곡으로 말미암아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명성이 공포와 실망으로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시설에 대한 위험 이미지는 시설뿐 아니라 그 시설이 위치한 지역,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그리고 그 지역에서 나는 생산물까지도 위험하다는 딱지를 붙이게 된다. 이러한왜곡된 위험인식은 사회적인 확산을 통해 아예 사람이나 지역의 정체성까지 바꿔놓는다. 그것이 바로 스티그마의 영향이다. 스티그마는 잘못된 인식이다. 하지만 잘못된 인식은 실제적 피해를 동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위험의 문제는 그 존재성보다 인식의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이러한 스티그마로 인해 핵폐기장에 대한 인식은 집행주체와 수용주체 간의 명백한 인식 격차가 드러난다. 누구의 인식이 옳고 그리고 식의 편 가름이 아니라, 인식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핵폐기장 자체에 대한 정보나 지식에 관해서는 정부가 시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지역주민과 시민 스스로가 그 필요성
    독후감/창작| 2009.11.11| 8페이지| 1,5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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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회운동
    신사회운동과목 :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목 차 >1. 신사회운동의 정의 & 발생배경(1) 신사회운동이란(2) 발생 배경(3) 연구 쟁점2. 신사회운동과 구사회운동 비교3. 한국 사회와 신사회운동 : 운동조직 분석4. 한국 사회와 신사회운동 - 참여자 분석 : 누가, 왜, 어떻게 참여하는가?(1) 구성원의 특성(2) 참여형태 - 연고적 동원5. 신사회운동의 평가1. 신사회운동의 정의 & 발생배경(1) 신사회운동이란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이라는 말은 유럽에서 1968년 혁명 이후 일어난 사회운동의 변화를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정권이 종식된 1993년 이후 이른바 ‘시민사회운동 (civil society movement)’ 또는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무렵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하지만 당시의 시민운동은 과거 반독재 민주화 운동 시대의 재야와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럽의 신사회운동에 비견될 만큼 뚜렷이 구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운동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신사회운동론은 그에 걸맞은 현실 운동을 지칭하기 위한 용어라기보다는, 노동자 운동에 주력하는 사회주의 좌파나 통일 운동에 주력하는 민족해방파를 비판하는 담론으로 소비되었을 뿐이다.1990년대 후반 들어 한국의 사회운동에서도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노동자 정치운동의 제도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거대 시민운동 단체들이 개혁 정권의 이중대로 전락하는 모습이 뚜렷해졌다. 그와 함께 거대 사회단체들이 주도하는 이른바 ‘전선체’)에 참여하지 않으며, 기존 사회운동의 도덕관이나 질서 의식을 거부하는 자율적이고 급진적인 소규모 운동들이 활성화되었다. 이들 운동은 유럽과 달리 폭발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진 않지만 신사회운동이라는 개념에 걸맞은 행동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노동자 운동을 비롯한 기존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않아도 소수화 되어가고 있는 학생운동을 포함한 청년 세대의 운동이 신사회운동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모습은 탐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사회운동 내부에 않으며 또한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선거 역시 이러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게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신사회운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하버마스 : 사회를 크게 정치, 행정, 경제 등을 아우르는?체계와 사적 영역인 생활세계로 구분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생활세계는 합리적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데 경제, 행정복합체의 성장이 생활세계를 침해해 옴으로써 생활세계가 구속당하고 의사소통을 방해하면서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데 신사회운동이란 이러한 생활세계가 식민화되는 경향성에 대한 저항이다.-오페 : 신보수주의적 기획에 따라 비정치적 영역이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정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설정하고 국가 강제력을 확립할 수 있는 부분에서 권위를 강화하도록 한다. 이런 신보수주의적 기획과 동일한 통찰력으로 국가는 시민사회를 보장해주려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권위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페가 본 신사회운동이란 시민사회의 제도들이 국가의 통제, 개입으로부터 구속되지 않도록 재구성하려는 것이다.-멜루치 : 선진산업사회를 통제가 생산구조를 넘어 소비, 서비스, 사회적 관계에까지 이르게 되는 사회라고 보고, 기술 관료적 지배가 일상생활을 파고듦으로써 자기정체성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는 개인적 집합적 저항을 불러온다. 탈근대사회의 새로운 형태의 사회통제에 반응하는 것이 신사회운동이라고 주장한다.-투렌느는 산업사회를 프로그램화된 사회로 보고 사회통제가 물질적 영역에서 인간관리 메커니즘에까지 이르게 되자 이런 관리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신사회운동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3) 연구 쟁점신사회운동이 표방하는 좌파 자유주의가 이념적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자발적 참여의사에 기반을 둔 조직이 어느 정도 지속성을 갖출 수 있으며, 기존의 사회운동과 같은 사회적 충격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와 쟁점 이동과 더불어 신사회운동의 '새로움'은 탈색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이 연구의 대상이다. 또한 문화적것과 마찬가지로, 신사회운동은 근대서의 발판 위에서 탈 근대적 가치를 완결시키고자 하는 변혁적 운동의 한 형태이다.그런데 이 운동의 몇 가지 점에서 종래의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독자성을 갖고 있다. 이 영역의 연구자들은 신사회운동의 신기성을 강조하고 구사회운동과 비교해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개념을 정의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신사회운동은 구사회운동의 이념적, 조직구조, 동원방식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신사회운동의 특징-첫째, 사회운동이 하나의 운동 이데올로기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다면 신사회운동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신사회운동이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물질 차원의 이익갈등을 해소하는 수단인 사회운동과는 다르게 탈물질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둘째, 사회운동은 운동의 목적과 그에 따른 주제가 비교적 단일하고 선명한데 반하여 신사회운동은 그 목적과 주제가 매우다양하고 운동의 이슈도 매우 빠르게 바뀐다.셋째, 사회운동이 조직적인 측면에의 의존도가 높은 반면 신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조직이라는 개념이 미약하며, 따라서 관료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회운동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조직원과 비조직원의 구분이 불분명할 때가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다.넷째, 사회운동에는 운동의 지도자가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한 반면 신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 조직이 미약하므로 운동지도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운동에 있어서의 지도자의 역할도 비교적 적다고 말할 수 있다.다섯째, 사회운동이 의존하고 있는 행동방식은 비교적 일정한데 비해 신사회운동은 행동양태에서 매우 다양함을 보인다.여섯째, 신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여러 종류의 독자적인 신사회운동들 간의 필요에 따른 연합이 용이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존재한다.일곱째, 사회운동은 집단적 이익 실현을 위해 사회전반의 변혁을 꾀하고 있는 반면 신사회운동은은 탈산업사회, 참여민주주의, 광의의 휴머니즘이라고 대략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신사회운동이 정치와 결합하는 방식은 녹색당 등 정치조직의 건설, 참여민주주의 개발,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NGO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피셔와 클링(Fischer &Kling, 1994) 또한 신사회운동의 특성들을 (1) 지역사회/커뮤니티? 기반, (2) 초계급적? 집단화와 문화적 정체성, (3) 새로운 직접민주주의의 추구와 위계서열적? 사회관계의 거부, (4) 문화와 사회적 정체성을 위한 투쟁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부여, (5) 정치적, 문화적 영역의 파편성 그리고 (6) 지역사회의 자립성과 자주성 강조라고 기술하고 있다3. 한국 사회와 신사회운동 - 운동조직 분석80년대 진보적 운동은 좌초했다. 물론 이 국면을 운동의 부침주기에 따른(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침체기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중단기적 예측에 따르면 과거와 같은 형태의 사회운동들이 또 다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운동의 퇴조 경향은 역력하다. 저항 운동의 중심을 형성해온 학생운동은 활력을 상실했으며, 아직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 운동가들도 급변하는 상황 가운데서 좌절하고 있으며,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글자 그대로 ‘상실세대’ 로 전락하거나 일부는 생존과 출세를 위해 변신을 거듭했다.반면 새로운 형태의 운동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특히 환경운동, 여성운동 그리고 각종 개발 사업에 맞선 피해 당사자 주민 집단의 자발적 저항운동 등은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서구 산업 사회에서 일고 있는 조직적, 대중적, 정치적 성향의 신사회운동들과 비교할 때 우리 사회의 새로운 운동은 여전히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적어도 서구적 규모와 질의 신사회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1) 각종 위기와 관련해 광범한 운동 연결망인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연결망은 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는 주로지역의 서점이나 카페를 통해 구축되어졌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인터넷이 연결망의 구축과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한편 신사회운동은 지역적 차원의 운동으로서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집권적 조직에 반대하고, 관료적 기구의 창설에 반대하며, 권위적인 대변조직 역시 반대한다는 것이 그것이다.4. 한국 사회와 신사회운동 - 참여자 분석 : 누가, 왜, 어떻게 참여하는가?누가 신사회운동에 참여하는가? 그들은 어떤 동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 잉글하트는 이 질문을 인지적 동원(cognitive mobilization) 개념으로 답했다.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새로운 이슈에 새로운 대안을 갖고, 정치적 토론을 통하여 사회운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바로 인지적 동원의 내용이다. 잉글하트는 신사회운동 참여자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탈물질적 가치를 선호하며, 좌파지향적이며, 젊은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교육수준이 높고, 정치적 토론을 자주하며, 중산층에 속한다는 것이 그것이다.서구 신사회운동의 동원과는 달리 한국의 신사회운동은 인지적 동원이 아니라 '연고적 동원' 에 의존하고 있다. 연고적 동원이란 운동단체의 참여가 개인적 친분과 연고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데, 연고적 동원의 정도는 실무자와 일반 회원간에 차이가 있다. 실무자들이 일반 회원보다 연고적 관계를 통하여 운동단체를 선택하고 있는 경향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고적 동원은 사회운동에 대한 일반 회원들의 자세를 소극적, 수동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실무자들 수준에서는 '이심전심' 내지 '상호이해'를 고양시켜 이념적 갈등에 의한 조직의 분열을 방지하는 긍정적 측면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연고적 동원은 실무자)들간 개인적 신뢰를 구축해온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연고적 동원이 사회운동에.
    사회과학| 2009.11.11| 11페이지| 1,500원| 조회(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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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멜모더니티풍경-개인. 평가A+최고예요
    제4장 『개 인』1.머리말게오르그 짐멜은 도덕 과학적, 사회학적, 미학적, 철학적 저술에서 ‘자아’, ‘개체성’, ‘개인주의’, ‘영혼’, ‘인격’, ‘개인법칙’등과 같은 개념을 다루고 있다. 짐멜에게 개인은 ‘모든 사회현상의 출발점이자 소실점’이다.「돈의 철학」에서 주로 인격이론과 문화이론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는데, 여기서 짐멜은 객관적-물격적 문화가 주관적-인격적 문화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는 현대의 화폐 경제적 사회질서에서 어떻게 인간적 관계와 개인의 인격발달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짐멜의 문화개념의 기저에는 인간의 영혼이라는 개념이 깔려있는데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모든 역사세계, 문화세계 그리고 사회세계에 대한 철학적 및 경험 과학적 인식의 선험적-초월적 전제조건이 된다.2.호모 듀플렉스-개체성과 사회성의 변증법적 관계짐멜은「사회학적 미학」에서 개체성을 점점 더 의식적으로 명백하게 양적 개체성과 질적 개체성으로 나눈다. 양적 개체성은 사회집단이나 영역의 교차점이나 결절 점으로서 개인의 존재와 행위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환경 안에 위치하는 개인을 가리켜 양적 개인, 그리고 이 양적 개인에게 귀속되는 자유와 자기 책임성을 가리켜 양적 개체성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지지 않으면서 내적으로 자족적인 또는 외적으로 배타적인 개인을 질적 개인, 그리고 질적 개인의 고유한 존재와 삶의 방식을 가리켜서 질적 개체성이라고 부른다. 양적 개체성이 공통적인 것, 일반적인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면, 질적 개체성은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이상 그리고 행위와 삶의 규범과 법칙을 특징으로 한다. 양적 개체성이 동일한 다수의 개인 존재를 가리키는 반면, 질적 개체성은 “개별인간이 다른 개인과 구별되며, 그의 존재와 행위가 형식과 내용에서 또는 양 측면 모두에서 오로지 그 자신에게만 귀속되며, 또한 이러한 차이가 그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초창기 짐멜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 자유와 평등을 결합시켰으며, 경제적 자유주의와 이론적 합리주의에 의해 대변되었다. 개인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전근대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종교적 구속과 의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확산되었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은 “개인은 자유롭게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또한 바로 이와 더불어 전체 사회가 최대한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은 그가 다른 개인과 마찬가지로 보편타당한 이성적 존재인 한에서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평등한 한에 있어서만 자유롭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양적 개인 또는 양적 개체로 존재한다.18세기 양적 개인주의의 근저에 깔려 있는 인간의 보편성은 “사회적 융합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의 내용적, 법적 또는 가치적 동일성”을 가리킨다. 피히테는 18세기 사회적 이상을 “이성적 존재는 오지 개인이어야지, 이러저러한 특정한 개인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개별적 자아는 도덕적 과정에서 다시 순수한 절대적 자아로 상승,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피히테에 의하면 “영혼은 자신이 존재하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활동하고 자신을 스며들게 하는, 즉 극복하고, 고유한 상태에서 근절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을 소유하기 위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이처럼 피히테 철학에서 자아는 절대적 자아 또는 절대자로서 자아로 귀결되는데, 여기서 짐멜은 영혼원리의 절대화, 아니 영혼원리의 과대망상증을 발견한다.b. 칸트18세기 양적 개인주의는 또는 단일성의 개인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이론가는 칸트 이다. 짐멜은 칸트 철학에서 출발했으며, 그의 지적 세계는 칸트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칸트는 피히테와 마찬가지로 “자아의 무제한성, 무한한 자유를 윤리적 규범의 중점에 설정했지만, 자아가 실현시켜야 하는 가치의 내용에는 평균화가 존재했다. 법칙 앞에서의, 법칙 안에서의 평등이 그들의 윤리학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적 개인주의 또는 단일성의 개인주의의 이론적 완성자이다.고 하였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것을 인간의 모든 운명, 교양, 내면성을 통해 명시하고 관철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최초로 전적으로 개인 각각의 특성에 의존하고 오직 그를 통해 조직되는 세계가 묘사 되어 있다.질적 개인주의는 예술작품에서 최초로 완전하게 형성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는 처음으로 전적으로 개인의 개별적 특징에 의존하고 오로지 이를 통해 조직되고 발전하는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들 각자의 궁극적인 근거에서는 운명적으로 접촉하는 다른 인물들과 구별되며, 삶과 발전의 중점은 동일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고유한 것에 주어진다.괴테의 예술작품이 지닌 의미는 짐멜에 의하면 일단 미학적-문학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서 인간은 세계의 한 점으로 묘사될 뿐 아니라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 “하나의 세계의 근원”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관의 이름”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괴테가 미학적-문학적 형식으로 현대인에게 그의 구체적인 삶의 주관적-개인적 인격이라는 더 깊은 토대 위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음을 의미한다.b.니체니체는 사람들 사이의 서열은 그들이 행하는 것, 즉 원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생긴다. 결과적으로 그는 존재를 균등하게 만들어 더 높은 의지와 도덕적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일종의 폭력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요소들의 평등과 동등한 권리에서 이상을 찾는 개인주의와, 이들 사이의 차이에서 인류의 전체 의미를 찾는 다른 개인주의의 차이- 전자는 형식적 자유를, 후자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명령과 복종을 전파한다 ―는 여기서 절대적인 도덕철학적 표현을 발견했다.처음에 짐멜은 니체의 저술을 온통 사소한 과 모순적인 것들의 혼동이라고 폄하할 정도로 그의 철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니체의 사회현상은 짐멜이 보기에는 자연과학적-자본주의적 시대인 19세기에 형성, 우리는 니체의 도덕철학을 귀족적 개인주의 또는 엄격한 윤리적 인격주의라고 부른다.칸트가 개인과 사회의 결합을 보장하는 최조의 윤리적 심급을 정언명령에서 찾았다면, 니체는 개인과 인류의 결합을 가능케 하는 최종 윤리적 심급을 영겁회귀에서 찾았다. 전자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초개인적이고 보편타다한 객관적 도덕법칙을 매개로 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후자는 개인의 존재가 영원하며, 그의 삶과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니체의 영겁회귀 이론은 단순히 동일한 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개념은 인격 주권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자신의 다양한 삶과 행위의 동일한 중심이자 근거가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체의 동일성과 삶이나 행위의 반복성은 개인의 삶과 행위가 단지 일회적이고 자의적이거나 주관적인 차원과 수준을 넘어 지속성과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개개인의 인간은 영겁회귀의 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자아 고양을 위해, 그리고 바로 이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도덕적 정언명령에 따라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칸트 철학이 다수 개인에 의한 사회적 병존관계에 지향되어 있다면, 니체 철학은 동일한 개인에서의 연속성을 문제시한다. 바로 이러한 인간 유형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명명한다.(3)양적 개인주의와 질적 개인주의의 종합을 위하여짐멜은 현대세계에서 질적 개인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시키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개인의 특성과 개성, 그리고 유일성을 발전시키고 보존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기 때문에, 개인은 점차 다른 개인과 비교할 수 있고 혼동할 수 있으며 또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적 개인과 양적 개체성이 질적 개인과 질적 개체성에 대해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 상황을 직시하면서 짐멜은 질적 개인 및 개체성의 형성과 발전을 현대세계에 주어진 중요한 문화가치나 이상으로 내세운다. 질적 개인주의를 정당화 하고 옹호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짐멜은 현대세계에서 짐멜은 장신구라는 미학적 형상물을 소유하고 이를 통해 인격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돈을 소유함으로써 물질적-경제적 생존의 문제를 넘어 문화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근대적 화폐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영역에서의 심미적 요소가 증가하게 되었으며, 짐멜의 「장신구의 심리학」은 사회적 삶의 심미화 현상을 현대세계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루려는 의도를 반영한다.5. 현대세계와 개인 - 인격이 가능한가근본적으로 실질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규정되고 목적지향적인 사회관계와 사회질서가 발달된 현대세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단편적인 인격의 유형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점차로 증가하는 사회분화와 직업적 전문화는 개인의 인격을 “특정한 기능이나 지위의 단순한 담지자”로 전락시킨다. 특히 돈이라는 사회적-경제적 매개체의 존재는 현대인을 탈인격화하며 탈개성화한다. 더불어 대도시적 삶의 공간과 환경에 의해 야기되는 순간적이고 선정적인 외적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은 점점 더 조화로운 인격을 발전시키기 어렵게 된다.따라서 현대인은 “늘 새로운 자극, 센세이션, 그리고 외적인 활동에서 만족감을 찾도록” 내몰린다. 다시 말해 현대인은 “혼란스러운 불안정성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는 때로는 편력광으로, 때로는 거친 경쟁의 추구로, 때로는 취향, 스타일, 심정 및 관계의 영역에서 현대의 특유한 변덕으로 나타난다.”이와 같은 진단은 현대세계에서 인격적 관계와 인격적 특징이나 특성 또는 능력의 발전 및 촉진이 현대인에게 “특별히 호의적이며, 그에게 개인적으로 적합한 삶의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짐멜은 이를 예술, 종교, 사랑 그리고 친교에서 찾는다. 이들 삶의 영역은 일상의 삶과 직업세계에서 추구하는 물질적-경제적 임무나 행위로부터 해방된, 자족적이고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세계라는 공통점을 지닌다.여기에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언뜻 인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자본주의적 화폐경제가 실상은 문화와 인격의 형성과 .
    사회과학| 2009.11.11| 12페이지| 1,500원| 조회(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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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이론의발달 평가A좋아요
    조직이론의 발달목 차Ⅰ. 서 론Ⅱ. 1900년대 ~ 1960년대 조직이론1. 고전적 조직이론1)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2) Weber의 고전적 관료제론2. 신고전적 조직이론1) 인간관계론3. 과학적 관리론과 인간관계론의 비교Ⅲ. 1960년대 이후의 조직이론1. 개방-합리적 조직이론2. 개방-자연적 조직이론Ⅳ. 결론Ⅰ. 서 론조직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인간사회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조직의 효율적 설계와 관리는 조직구성원의 인간성 유지와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조직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에치오니(Etzioni)는 조직에 대한 정의를 조직은 일정한 환경 하에서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조를 형성하는 사회적 단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테리(Terry)는 조직이란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제반 활동을 결합하고, 이를 집합하고 배열하며, 이와 같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인적 요인을 배정하고 적절한 물적 요소를 준비하며, 각기 책임을 맡은 각 개인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다.) 그러므로 조직에 대한 문제는 인간생활의 근본문제라고 할 수 있다.조직이론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시작되고 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로 볼 수 있다. 고전이론은 1900년대 초에 싹트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 확실한 윤곽을 드러내고 1940년대에 성숙되었으며, 신고전이론은 1930년대에 출발하여 195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심도 깊은 연구를 지속하였다. 1960년대 이후의 현대이론은 지금까지의 이론을 수용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온 조직이론이다.Ⅱ. 1900년 ~1960년대 조직이론0. 고전적 조직이론0) Taylor의 과학적관리론(0) 과학적 관리의 기본가정과학적 관리론은 경영학에서 시작하여 생산관리, 사무관리, 인사관리, 산업공학, 인간공학 등의 지식체계로서 발달하였다. 이러한 기업경영의 원리들을 행정에 도입하려는 노력이 행정학자들에 의하여 시도되어 조직의 원리, 부서편성의 기준, 관 있다는 확신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따라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자신의 업무분야에서 최고수준으로 일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1) 과학적 관리방식과학적 관리에서 관리자들이 자진해서 맡는 임부와 부담은 네 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이 네 가지 유형을 과학적 관리의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① 작업 구성요소관리자는 노동자의 작업 구성요소에 대하여, 과거의 구태의연한 방법을 대신할 과학적 방법을 개발한다. 그리고 관리자와 노동자의 협력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룬다.② 훈련관리자는 과학적으로 노동자를 선발하고 훈련하며, 각 노동자를 자기의 업무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으로까지 계발시킨다.③ 협력관리자는 모든 업무가 앞서 개발된 과학의 원리들에 입각해서 행해질 수 있도록 노동자들과 진심으로 협력해야 한다.④ 업무과학적 관리는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의 일과 책임을 거의 균등하게 분배한다.(2) 과학적 관리론의 공헌첫째, 최고 관리자에 의해 통치되던 조직을 세부업무 분야별로 나누고 기계적으로 연결시켜 효율성을 달성하였다.둘째, 조직의 합리적 구조화를 통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행정의 일관성을 증가시켰다.(3) 비판과 한계이 이론에서는 인간 유기체인 조직에 있어서 인간적인 요인을 과소평가하여 인간을 마치 기계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인간의 개성이나 잠재력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단지 기계적인 체계에 대한 인간의 적응 능력을 합리적 경제인관에 입각하여 평가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 관리론은 업무의 표준화 ? 규격화, 절차의 합리화 등에 의한 능률향상을 추구함으로써 조직 내의 비공식 집단이나 인간관계도 능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했다.1) Weber의 고전적 관료제론(0) 조직의 형태베버는 권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타인을 부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정의한다. 베버는 권력의 형태에 따라 조직을 크게 전통적 권한형태, 합리적 ? 법적 권한형태, 카리스마적 권한 형태로 분류했다)전통적 권한이란 전통적인 것을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고와 같은 분류를 통해 베버는 합리적 ? 법적 권한을 기초로 한 합리적인 관료제를 조직의 구조로 규정할 경우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1) 관료제의 특징베버의 근대적 관료제는 법규성), 계층제, 문서주의, 전문가주의), 보수주의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2) 관료제에 대한 비판관료제는 1930년대 말 미국의 경험주의 사회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베버의 근대적 관료제 모형은 공식적 측면만 강조하고 비공식적 측면을 무시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역기능적 측면이 있으며, 이해관계의 상충에 따른 갈등으로 조직내외의 권력현상을 설명 하지 못하였고, 폐쇄체계적 관점에서 조직이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측면을 무시했다고 한다. 또한 관료제의 지나친 전문화 추구는 전문화가 아집화되고 다른 분야에 대한 몰이해로 바뀌어져서 오히려 무능이 촉진된다고 비판하였다.1. 신고전적 조직이론시대의 변천에 따라 생산업체에서는 전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어 기술습득 기간이 길어지고 전문화의 수준은 높아지게 되었으나 근로자의 불만과 이직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근로자 집단의 세력이 커지고 파업 등 노동쟁의가 출현하게 되자 관리 층은 자본 ? 경영 ? 노동의 협조체제를 내세워 이러한 사태에 적응해 보려 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고전이론의 합리성을 크게 저하시켰으며 결국 이들 조직 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0) 인간관계론(0) 메이요와 호손실험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첫째 근로자의 작업량은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며, 둘째 근로자의 만족과 동기유발에 비경제적인 보상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셋째 고도의 전문화가 결코 가장 능률적인 분업형태는 아니며, 넷째 관리 층의 요구나 규범에 근로자는 개인적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반응을 보인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 조직행태의 정서적인 면과 미리 계획되지 않은 또는 비공식적 요인들을 중시하게 되었고 조직에 참여하는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가진 사회적 존재 혹은 전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민주화 ? 인간화가 요청된다.셋째, 조직의 종속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관리의 주체적 대상으로서의 인간행태에 새한 연구를 유발시켰으며 이러한 이론은 행정학의 주요 핵심이 되고있다.(2) 인간관계론에 관한 비판첫째, 표면적으로 인간관계론은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조직을 인간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교묘하게 조직구성원들을 착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둘째, 경제적 환경, 노동시장의 조건 등 외부 조직환경의 영향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셋째, 조직에 대한 시각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론은 조직구성원의 심리적 ? 사회적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조직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넷째, 인간관계론은 조직 내의 집단적 인간관계를 중심적 요소로 간주하게 되어 인간관계의 안정적 ? 현실주의적 속성으로 인하여 개혁과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초래하게 되었다.2. 과학적 관리론과 인간관계론의 비교(0) 유사성인간관계론은 과학적 관리론을 비판하면서 그 보완책으로 주장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여러 유사점을 지니고 있는 이론이다.과학적 관리론과 인간관계론은 둘 다 조직 목표인 생산성, 능률성의 향상이나 합리성의 추구와 조직구성원의 개인목표인 인간의 행복추구 하이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없으며 양립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조직의 목표와 관련된 조직 내부의 능률향상, 조직구성원의 동기부여 등에 집중하였으며 환경과 상호작용이라는 개방체제로서의 조직특성은 무시하였다(1) 차이점과학적 관리론과 인간관계론의 차이점은 수단적 ? 방법적인 차원에서의 차이를 의미한다.)첫째, 합리성과 능률의 절대적 의미에 초점을 두었던 과학적 관리론에서 기계적 능률관(조직내 ? 공식적 능률)이 주장되었으나 비공식 조직에 초점을 두었던 인간관계론에 의해 능률 개념의 한계가 인정되면서 절대적 ? 기계적 능률보다는 상대적 ? 사회적 능률관이 부각되었다.둘만 그 균형의 유지방법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학적 관리론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방법으로 양자 사이의 저해요인만 제거되면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인식하는 반면 인간관계론은 양자 사이의 이상적 균형상태가 의식적으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상대적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Ⅲ. 1960년대 이후의 조직이론1. 개방-합리적 조직이론0) 체제이론체제론적 접근 방법에서 조직이란 유기체와 같이 그들의 환경에 대해 개방적이며, 생존을 위해서는 항상 환경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체제이다.(0) 특징개방 체제는 분화의 증가, 그리고 전문화를 통한 역할 분화 및 통일 귀착성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도 있다. 즉 개방 체제의 경우 체제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유일 최고의 방법이 존재할 수 없으며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1) 사회체제모형사회체제모형은 조직을 하나의 체제로서 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체 사회권 내에서 기능하며 전체 사회권과 관련된 사회체제로서 파악하는 것이다.즉, 대규모의 근대적 조직들은 기능분화에서 발생되며 이런 조직들이 다른 사회체제와 구별되는 특징은 특정한 목표달성을 제1차적으로 지향한다는 데 있다).여기서 목표달성이란 일종의 생산품이나 산출로서 보며 이것이 다른 조직에게는 투입이 된다. 이처럼 조직은 전체사회 속에서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조직은 저마다 소규모의 사회인 동시에 대규모의 체제 즉, 사회의 부분을 이루며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1) 구조적 상황이론구조적 상황이론은 1960년대부터 조직연구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체제이론을 구체화하고 실용화하는 방안으로서 강구된 중범위 이론이다.체제이론에서 나온 구조적 상황이론은 조직 간의 차이점을 강조하며 조직구조 및 조직의 효과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 요인을 규명하려 한다. 즉 조직과 환경의 상호관계, 하위 체제의 상호관계, 변수의 형태 또는 유형의 정의를 통해 구체적 상황에 적합한 조직설계와 관리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즉 이 이론은 성과를 중시하여 조직의 설계는
    사회과학| 2009.11.11| 11페이지| 1,500원| 조회(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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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nd and Freedom 감상
    < Land and Freedom >랜드 앤 프리덤(Land An Freedom)감독 : 켄 로치주연 : 이안 하트, 로사나 파스트로, 이시아르 볼레인, 마크마르 티네즈, 톰 길로이제작국가 : 이탈리아/스페인/영국/독일 / 109 / 1995켄 로치 감독과 작가 짐 알렌이 오랫동안 준비한 이 작품은 원래 1988년말 TV 시리즈물로 기획되었다. 로치와 알렌의 전작인 (90)처럼 이 작품도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영화 속 사건들은 수많은 영국의 시민군 자원자들과 1936-37년에 있었던 스페인의 짧은 혁명 기간에 참여한 각국 시민군들로부터 채집한 실제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이 영화는 3개국 3개사의 합작품으로 영국의 Parallax Pictures가 55%, 스페인의 Messidor가 25%, 독일 빔 벤더스의 영화사 Road Movie Dritte Produktionen이 20%를 투자했다. 이 3개 영화사는 각각 자국 내에서 TV와 극장 배급사에게 판권을 프리세일 함으로써 할당량의 제작비를 수급하였다. 그 외에 유럽 영화제작 지원 기구인 Eurimages가 추가액 10%를 지원했다.1. 감독소개 : 켄 로치(Kenneth Loach, 1936.6.17 ~ )켄 로치는 1936년 영국 워웍셔 주의 뉴니튼에서 태어났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1964년 데뷔하여, 《레이닝 스톤》, 《빵과 장미》 등 주로 노동계급, 빈민, 홈리스 문제 등 사회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많이 제작했다. 켄 로치 감독 자신도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사회주의적 신념을 표현하는 좌파 영화작가로 유명하다.66년에 제작된 는 가난해서 집세를 낼 수 없는 형편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아 홈리스의 문제와 사회복지의 허상을 다루었다고 있다. 16미리 흑백 필름 제작되었으며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고 있으나 뉴스의 진행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시청자가 드라마를 뉴스처럼 받아들여서 그것을 현실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600 백만 명의 시청자가 트인 CNT(전국 노동자 연합)와 POUM,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총격전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한다. 그들이 모두 한때는 파시스트 프랑코에 대항에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회의를 느낀 데이빗은 옛 동지들이 있는 전선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스탈린의 코민테른이 주도하던 공산주의자들은 스페인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범좌파 연합을 배신하고 그들을 파시스트로 몰아 무장 해제시킨다. 이 과정에서 블랑카를 비롯한 그의 동료 몇 명이 저항하던 도중 사살된다.* POUM = 맑스주의 통일 노동자당을 뜻하며 영어로 Workers' Party of Marxist Unification, 스페인어로 Partido Obrero de Unificacion Marxista 이다.3. 영화 읽기 - 텍스트 & 컨텍스트적 분석1) 제목분석 - Land An FreedomLand An Freedom은 “땅”과 “자유”란 뜻이다. 굉장히 간단한 단어이긴 하지만 이 당시 스페인과 스페인뿐만이 아닌 모든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아래 혹은 사회주의를 외치는 모든 이들이 그토록 바란 것은 자신들의 ‘땅’과 ‘자유’였다. 이는 집단 농장화를 하려는 농민들의 갈망과 파시즘으로 부터의 자유를 원했던 민중과 전 세계지식인들의 투쟁을 의미한다.집단농장화를 통해 가진 자는 아무도 없는, 그렇다고 가지지 않은 자도 없는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어 굶어죽는 자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땅’과 ‘자유’라는 단어에 응집되어 나타난다.2) 오프닝 ‘죽음’ - 첫 번째 시퀀스한 소녀가 급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에 당황하며 오열을 한다. 잠시 후 그 소녀는 어느 정도 마음의 진정이 되었는지 할아버지의 유품을 하나, 둘 꺼내보면서 정리를 한다. 할아버지의 개인적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사진들, 붉은색의 스카프와 그 속의 흙,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낸 듯 한 여러 편지들이 상자에는 담겨 있다. 그 소녀가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을 꺼내 볼 때 마다 할아버지의 청년수도 있다. 흔히 「붉은 10월」로 불리듯이, 소련 등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을 깊이 사로잡은 시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노동운동에서는 아니키즘이 독특한 존재로서 부상되고 있었다.이렇게 1930년대는 이데올로기 만발의 시기였다. 그것은 각 이론 체계들이 현재처럼 토론과 순수한 사고로서의 경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자체가 극히 정치적이었고 그 대결은 유혈 투쟁으로 투영되었다. 더욱이 1930년대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기가 신봉하는 주의(-ism)에 몸을 바쳤다. 이런 1930년대의 모든 투쟁을 집약적으로 안고 태어난 것이 스페인 내전이었다.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당시 인민 전선 정부에 반대하는 군부의 반란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스페인 본토에서 인민 전선 정부를 타도하려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쿠데타는 사회주의자들이 인민정부를 지키기 위해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 규합하게 되고 사회주의의 지류였던 소련도 인민전선 정부를 도와 파시즘에 대항한다. 그러나 프랑크 군부는 노동자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었고 군부는 독일, 이탈리아 등 파시즘 국가의 원조를 얻어 전선을 재건하고 또한 소련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를 견제하게 되고 파시스트들이 집권하게 됨으로 2년 반 만에 걸친 이 스페인 내전은 종결된다.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리버풀의 공산당원 데이빗은 파시즘과 싸울 것을 결심한다. 스페인에 가기 위해 데이빗은 밀입국을 하게 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겨우 스페인에 도착한다.여기서 데이빗이 왜 밀입국을 통해 POUM에 동참하게 되었는지 시대 상황적 배경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당시 스페인 공화국 정부는 내전 기간 내내 세계 여러 국가에게 지원 요청을 했고 그 요청에 부응한 많은 좌파 지식인, 노동자, 모험가 들이(데이빗 같은) 스페인으로 갔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 여단이 1936년 10월에 결성되어 일부 지원자들은 돈과 필요한 서류들을 지원 받고 공화국이나 파시오나리아는 시계 꽃을 가리키는 스페인어다. 어원적으로 ‘수난의 꽃’ 또는 ‘정열의 꽃’을 의미하는 파시오나리아는 이바루리가 이것을 필명으로 사용하며 공산주의 선동가로 맹활약한[ 돌로레스 이바루리 ]1930년대 이후 전투적인 여성 혁명운동가라는 의미를 새로 얻게 되었다.바스크 지방의 갈랴르타에서 광산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이바루리는 1930년대 스페인 공산당과 인민전선 정부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내전 발발 직후 공화파 정부에 대한 프랑스의 지원을 요청하러 파리에 간 이바루리는 한 연설에서 “스페인 민중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멕시코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에게서 차용한 이 선언은, 이바루리가 또 다른 연설에서 발설한 “그들(파시스트들)은 (전선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No Pasaran!)라는 간결한 문장과 함께, 내전 내내 공화파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러나 내전은 파시스트들의 승리로 끝났고, 이바루리는 소련으로 망명했다.제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친소비에트, 반프랑코 주장을 널리 알렸다. 그녀는 소련에서 거의 40년을 머물렀으며, 외국을 방문하는 동안에는 종종 위험을 무릅쓰고 코민테른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다. 그녀의 이런 노력 덕분에 파시스트의 지배를 받고 있덨지만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던 스페인 내에 '순수한' 공산주의 열정이 꺼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68년에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비난하는 것을 제외하면망명 기간 내내 라 파시오나리아는 강경 공산주의의 충실한 수호자였다. 그녀는 내전에서 공화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탈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했다. 또 그를 위대한 공산주의자로 숭배했으며, 그의 지나친 행위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로변했다.이바루리가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프랑코가 죽은 뒤인 1977년이었다. 그 해에 스페인에서 치러진 41년만의 민주적 총선에서 그녀는 82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되었다.영화 후반부에 보면 새로운 규칙으로 능동적인 참여와 해석을 유도한다는 생각이 든다.회의에선 다들 똑같은 마음으로 반파시즘을 외치지만 사유재산철폐, 토지집단화와 관련해 각기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여러 의견들을 들으며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이념, 그리고 그 중간의 입장들 (예를 들어 영화에서처럼 소작농에 파시즘은 판대하지만 집단화를 하길 반대하는 사람들)등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진정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에 성공하려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과연 대내외 정세를 다 따져서 결정하는 게 기회주의자란 소리를 듣기 딱 좋은 행동일지, 그리고 파시즘 타도가 우선인지 민중을 위함이 우선인지 등을 따지면서 결국 제일 중요한건 혁명의 이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저 먼 바깥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창문 밖의 탄압받고 굶어 죽어가는 민중들을 생각하는 게 우선이고 그 민중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게 혁명의 이념임을 되새기게 해준다.한 늙은 농부가 말한다. "혁명은 새끼 밴 암소와 같아서,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암소와 송아지까지 잃게 되고, 아이들은 굶게 돼" 자본주의 외국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둥 갖가지 핑계로 '온건한' 조치를 요구하는 데 대한 명쾌한 답변이다. 혁명은 중단하는 순간 후퇴한다. 결국은 땅, 집 모두를 인수해서 다시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6) 데이빗의 국제여단 가입과 반파시스트간의 대치 - 다섯 번째 시퀀스민병대 생활을 하고 있던 데이빗은 어느 날 신병 교육을 하던 중에 실수로 어깨에 총을 맞아 바르셀로나로 후송을 가게 된다. 퇴원한 데이빗은 블랑카와 재회하고 둘은 POUM이 정부와 스탈린주의자들로부터 억압받는 상황과 경찰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달라진 바르셀로나의 거리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블랑카는 데이빗이 민병대를 탈퇴하고 국제 여단에 가입한 것을 알고 그를 이기주의자라며 비난하곤 전선으로 떠난다.이 국제 연합에 활동하는 동안 어느 광장에서 CNT(아나키스트들)과 POUM과 공았다.
    독후감/창작| 2009.11.11| 12페이지| 1,5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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