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무라카미의 신작에 관하여: 화려하게 변한 리스트의 순례의 해사실 하루키의 소설이 음악에 빗대진 것은 새삼 놀라울 것이 없다. “노르웨이의 숲” 이나 “남쪽 경계, 태양의 서쪽” 과 같은 경우가 있다. 만약 꼭 제목이 그런 연상과 관련있다 하지 않더라도, 책 내용 중에 특정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뭐, 그의 저번 작품인 1Q84의 레오 잔나첵의 싱포니에따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그가 2013년 4월 12일에 출간한 최근 저서인 색채가 없는 쓰쿠루 타자키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단이 있다.“그들이 피아노 녹음을 듣고 있노라니, 쓰쿠루는 이 곡을 여러 번 전에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제목은 알지 못했다. 작곡가도 알 지 못했다. 참 조용하고, 우울한 곡이었다. 강한 단일음으로 이루어진 여유로운 시작 테마다. 이젠 조용한 변화가 찾아온다. 그는 책에서 눈을 뗴고 하이다에게 묻는다. ‘곡 제목이 뭐야?’”쓰쿠루 타자키의 친구인 하이다는 이 곡이 프란츠 리스트의 수집가들이 붙인 순례의 해 라는 이름의 첫 세 모음곡 중에 “라 말 두 파이”를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것이라고 알려준다.이 특정 녹음의 배포자인 유니버셜 음악사에 따르면, 무라카미의 소설이 나오자마자 남아있던 모든 CD가 다 팔려나갔다고 한다. CD가 일시적으로 품절된 동안, MP3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었기 때문에, 곧 아마존co.jp에서는 4월 15일에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물론, 책 자체도 베스트셀러 차트를 아주 뚫고 나갈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첫 카피는 30만부였는데, 심지어 사전예약 때문에 그 부수가 50만부로 늘어나버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4월 12일의 자정에 카운트다운을 하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했었다. 1Q84이후의 삼 년 동안 하루키는, 366만부 이상을 팔았는데, 이 책이 그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책의 명성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고, 이제 내용을 보면, 시작부분에서는 우리의 주인공인 스쿠루 타자키를 소개하는데, 그가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의 7월부터 1월까지는 거의 하루 종일 자살만 생각했다는 말로 소개한다.“이 날들 동안, 그는 그의 삶을 끝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가 왜 마지막 한 발자국을 떼지 못했는지는 모호했다. 특히나 그 즈음의 그의 삶은, 날계란을 삼키는 것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버리는 것이 더 쉬웠을 테도 말이다.”그 나날들을 지나, 스쿠루는 이제 36이 되었다. 그는 아직도 독신이고, 아파트에 혼자 산다. 어렸을 때, 기차역에 기차가 드나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 결국 철도공사의 건축사무소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는 기차역을 설계하고 짓는 것이, 마치 그의 천직인양 생각했다.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성공한 부동산업자였고, 그에게 꽤나 큰 유산을 남겨주셨기에, 편안한 삶 또한 영위할 수 있었다. 그는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고, 여자친구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인 것이다. 대체 그때는 무엇이 그리도 그를 괴롭혀서 그렇게 죽고 싶어만 한 것일까?그가 나고야에서 자라나서 학교를 다닐 때, 네 명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다섯 명은 마치 정오각형처럼 모든걸 함께 했고, “완벽히 균형 잡힌” 그룹이었다. 그는 그들 간에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다른 네 명은 전부 다 성씨가 색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아카맛수는 빨강, 오미는 파랑, 시라네는 파랑, 쿠로노는 검정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에는 그런 무언가가 없었고, 쓰쿠루는 결국 자신의 색채나 개성이 딸린다고 느꼈고, 무언가 텅 빈 그릇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 이후에, 그는 그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였고, 공학을 배우기 위하여 도쿄로 이사했다. 그리고 다음해 여름에 그가 나고야로 돌아갔을 때, 갑자기 네명의 친구들은 절교를 선언한다, 그것도 동시에,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말이다. 그가 느꼈던 특별한 감정들은 다 환상이었을까?16년 뒤에, 쓰쿠루는 여행사에서 일하는 2살 연상의 사라 키모토와 사귀게 된다. 그가 친구들에게서 그렇게 버림 당한 것을 알자, 그녀는 그가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데에 있어, 그 친구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고개를 들고 떳떳이 과거랑 마주하란 말이야.” 그녀가 그를 타일렀다. “네가 뭘 보고 싶어하는 지와 상관 없이, 네 가 봐야 할 것을 보기 위해서야.. 그렇지 않고선 평생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할거야.” 그래서 쓰쿠루는 결국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첫째로는 나고야에, 둘째로는 헬싱키에 가게 된다.이렇게 그는 그가 잃었던 것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비록 그것이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정상화 시킬 수만은 없지만, 우리가 어떤 급작스러운 상실이나 아픔으로부터 성장하듯이, 쓰쿠루는 그가 한때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실을 치유하고 성장하려고 순례를 떠난다.사실 해변의 카프카를 쓴 작가가 쓴 책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책의 내용이나 이런 것을 냉정한 잣대에 두고 보면 기발하거나 문체가 수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모두 겪거나 겪었던 상실을 생각하며,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이 글을 읽는다면, 그의 순례는 우리의 상실도 같이 어루어만져 줄 것이다.
슬픔에 대한 슬픔.슬픔이란 단어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참 다양하다. 고뇌를 하는 슬픔도 있을 것이고, 동정을 하는, 안타까움의 슬픔도 있으며, 무능력의 슬픔, 과거에 대한 슬픔 등 많은 의미를 지니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다. 한글에는 슬픔이라는 단어로 다 뭉뚱그려지지만, 그것은 다른 언어로 수없이 구분되어질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마치 영어의 Melancholy 와 Agony 가 다르듯이. 그런데 나의 슬픔은 주로 동정과 안타까움의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아니, 그것은 슬픔에 대한 슬픔인 것이다. 나 자신은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화목하며, 가정의 경제상황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내 갈 길을 걷는 다는 것에 대해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슬픔이란 것을 느낄 때에는, 대부분 그것들이 남들이 슬프기 때문에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번져가듯 슬픔이 번져가는 것이다. 안타까움. 그 애절한 감정에 대해 어떻게 한글이라는 규격화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이란 단어를 아무리 연인에게 해도 해소되어지지 않는 카타르시스와도 같다. 슬프다는 말을 해도 언어로 나오는 말에는 한 줌의 눈물만큼의 슬픔도 담기지 않은 느낌이다. 공중에 가는 말을 잡아 짜내어도 눈물한줌 나오지 않을 것 같다.어이없게 사고로 돌아가셨다. 친하던 친구의 어머니가. 죽음은 예고되어진다면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지만, 정말, 요즘은 진부해져버리고 만 표현인 ‘벼락같은’ 죽음은,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안기고 떠나간다. 일이 일어난 시점이란 것이 무시될 수 없는 이 현실에선, 일어나야 할 일이 조금 더 빨리 일어난 것 뿐 이라고 합리화 해버릴 수 없는, 어린 아들을 둔 젊은 어머니의 죽음은, 나를, 정확히는 나의 심장 우심방을 꾹꾹 아프게 한다. 온몸을 다 돌은 식은 피가 들어오는 그곳을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게 한다. 심장을 마치 홈쇼핑에서 파는 싸구려 칼이 훑고 지나간듯한 감정이, 친구의 통곡에서 서서히, 하지만 막을 수 없게 몰려온다. 뒤돌아서서 모른 체 할 수도 있지만, 그냥 나와 관계된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슬픔은 번져온다. 비릿한 냄새가 공기에 퍼져있듯이. 무척이나 역한 느낌의 비린내로, 날 엄습한다. 돌아가신 친구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놓고 죽어야 할 때의 그 슬픔은 날 토하고 싶게 한다.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존재의 근원을 잃고 만 그의 슬픔의 눈빛은, 나의 고개를 바닥에 가깝게 하고, 내 눈에서 내 몸에 배인 비린내가 뭉글뭉글 피어나 눈가를 지나, 볼을 지나, 입가를 지나, 턱을 지나서, 그의 어머니가 묻히는, 모든 것이 묻히고 살아가는 바닥으로, 한 방울 물로 떨어진다. 괴롭다. 그의 슬픔에 내가 잠식된 느낌이다. 그렇게, 나는 남들의 슬픔에 슬퍼한다. 행복한 자의 위선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정말 내가 그들만큼 슬퍼하는 걸까? 내 마음 속에 안도와 경계의 느낌이 싹트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걸까. 그로인해 나의 사소함에, 나의 먼지보다도 모래보다도 작음에 또 눈물짓게 된다. 슬픔이 슬픔을 낳고, 그 풍겨오는 슬픔의 비린내에 울며 안도하며 비웃으며 뒤돌아선다.
교양골프 과제 약과학과 전호현대사회와 골프-확률만이 존재하는 사회와 인생.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달라진다고 해도, 골프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숙련을 총해, 남들이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오르고, 또한 초인에 가까운 경지에 올라선다. 그리고 보통 40에서 50이면 은퇴를 한다. 심하면 스물 몇의 나이로 은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인간이 불확실함에 떨어가며 인생을 살아가며, 전에 했던 똑같은 것이 이번에 한 것과 똑같은데도 결과가 다른 것에 갸우뚱하고 답답한 이상, 골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골프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고 장담할 수 없는 미래와, 한 번에 뒤집어 질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것은 그렇게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자유분방한 신사들의 스포츠, 골프골프는 원래 아무 막대기나 써서 아무렇게나 공을 쳐서 아무렇게나 홀에 넣으면 되는, 룰이라고는 몇 개 없는 자유분방한 게임이었다. 야구처럼 배트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권투처럼 체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요즘 들어 골프 강좌나 이런 것을 통해 잭 니클라우스의 폼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기에 그것이 널리 전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프로 골프 투어에는 기괴한 폼을 한 사람들이 나온다. 엎드려서 그린을 읽는 사람, 온몸을 마치 던지는 것처럼 드라이버 샷을 하는 사람 등,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골프는 더욱더 인생의 형상을 띠고, 더욱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이다. 육상경기처럼 진행이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며, 권투처럼 박진감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진득하게 며칠씩 진행되는 게임과 골프선수들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은, 일반적 흥행 요소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런데도 왜 골프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이 골프를 이렇게 유명하게 만든 것일까?극적이다, 운이 따라주질 않는다, 기적적이다, 포기한 게임이다.골프 하며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골프를 보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가끔가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골프를 즐기는 것은 순전히 상류층에 편입되어지고 싶은 중산층의 허세라고. 된장남이란 말도 하고, 사치라는 이야기도 한다. 반면에 대통령 각하께서는골프가 무려 서민의 게임이기를 하시기를 하신다는 말도 되지 않는 망언을 내뱉으셨다. 무엇이 이 게임을, 무엇이 이 골프라는 것을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드는 걸까. 내 생각에 전자의 경우 그것은 골프를 하지 않는 자의 무지에서 나오는 이야기요, 후자의 경우에 그것은 인생에 불확실한 것들이 하찮아 보이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자의 같잖은 오만이라고 보인다. 골프가 골프인 이유는, 그것이 그렇게 사람들의 애를 태우는 이유는, 그것이 신 지애를 1미터짜리 퍼트 거리에서도 쩔쩔매며 세 번을 오가게 만들기 때문 일거다. 무려 삼십 미터에서도, 수십 야드에서도 홀인원을 할 수 있기 때문 일거다. 최 경주가 에선 탈락을 할 수도, 타이거우즈가 랭킹 안에 못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 일거다. 확실한건 없지만 모든 것이 좀 더 나은 확률을 위한 싸움인 경기. 벌레 하나가, 바람 한 줄기가, 심지어 정원사의 몰지각적인 스프링클러 배치가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고, 물에 빠져도 숲속에 떨어져도, 모래 속에 깊이 파묻혀도, 힘껏 쳐내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가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성공할 수 있는 조금 더 높은 확률을 위함이 아닌가? 러프보다는 페어웨이에 공을 올리는 것도, 조금 더 치기 쉽고 조금 더 확률이 높일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기에 골프는 인생이고, 현대사회의 게임인 것이다.
제목: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멍드는 개인과 사회주제문: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에 게임 중독은 해결되어야 한다. (추가문장)서론: 1.많은 사람들이 게임 중독으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있는 의식이 흐려 지면서이로 인한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2.게임중독자들은 사회활동이나 생산활동은 도외시 한 체 게임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큰 손실을 가져온다.본론1: 게임중독의 다양한 원인1.핵가족화 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청년층or젊은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중의 하나는 온라인 게임이다.2.게임 개발사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로 현실과 흡사한 게임을 만들어게임이용자를 자극하고 중독시켜 돈을 번다3.정부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다루는 온라인게임 회사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것 방치하고 있다.본론2: 게임중독의 해결방안(1)개인적 측면1.의식적 측면: 경각심을 가지고 게임 속 세상에 몰입되지 않도록 자제해야한다.2.행동적 측면: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고, 중독 되었을 시에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클리닉에 참가한다.(2)개발자적 측면1.의식적 측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 하지 말고,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윤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2.행동적 측면: 정부의 허술한 규제의 틈을 노리지 않고, 받아들여 그에 맞는 게임을 개발한다.(3)정부적 측면1.의식적 측면: 게임 중독자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까지 방치하지 않고,사전에 방지하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2.행동적 측면: 자극적인 요소를 다루는 게임업체를 규제하는 법을 강화하고,블라인드제가 실질적으로 잘 실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다.결론: 개인을 넘어서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게임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추가문장)휴지통에 있는 문장*게임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대체 얼마나 심해야 그 지경까지 가는지 상상할 수 없다*게임에 중독된 사람과 단순히 취미생활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어떻게 분간할까?*게의 현실성이 높아지면서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시간 게임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현실세계와 게임세계의 모호한 경계로현대인의 마음과 몸이 멍들고 있다.*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게임에 더 중독된다.*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다.*게임을 하면 더욱 현실과 분리된다.*게임중독은 건강에도 문제가 많다.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멍드는 사회이제는 우리 일상의 도구중 하나가 되어버린 컴퓨터는, 이천 년대 이후 사람들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로서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전자계산기의 확장이었던 컴퓨터라는 기계는 인간의 많은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고, 인간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항상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도 있는 법, 컴퓨터의 시각적 기능과 상호작용적 기능을 활용한 프로그램인 ‘게임’은, 접하기 쉽고, 또한 카타르시스 해소라는 측면의 중독성으로 우리를 점점 옭매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점점 컴퓨터를 현실과 가깝게 혹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게 만들어내기 시작 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현실과 게임이라는 프로그램 내의 공간을 쉬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현실감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이 이런 일에 부딪힌 서구세계에서는, 이로 인한 많은 범죄 케이스가 보고되었다. 게임에 나오는 방법으로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여 문제가 된 영국의 아이와 게임으로 운전법을 배워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아홉 살 꼬마, 그리고 잦은 게임으로 인해 자신의 연쇄살인을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된 경우 등, 많은 폐해 사례가 존재한다. 또한 이 게임들은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성향을 띠게 할 뿐만 아니라, 만약 그 게임이 폭력적이지 않더라도, 즐기는 중인 사람을 건설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을 무너뜨리고, 게임에 매달리게 한다. 이는 잠재적 인력의 손실로서,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인력의 손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손실은 역방향으로 드물게 일어나므로, 비가역적인 경우가 많으며, 이는 사회의 총체적인 인력 공급과 국민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왜 이 많은 사람들은 게임에 빠지고, 또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대부분 헤어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붕괴된 가정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 배출구의 부재일차적 원인으로서는, 만연한 개인주의를 원인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핵가족화와 산업화시대 이후로 계속 이어저온 저 출산 그리고 높은 이혼율, 학업으로 인한 독립 등 많은 요소들은 우리시대의 청년들과 젊은이들에게 혼자서도 잘 살아가야 한다. 내지는 혼자만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심어주었고 이런 압박감은 곧 스트레스로, 곧 태도로 이어져 대인관계에 있어 경계하는 태도와 나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방어적 태도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므로, 스트레스는 해소되어지지 못한 채 쌓이고 만다. 만약 가족이 있었더라면 부모님이나 형제를 통해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을 전해 들으며, 조언을 얻고 행동할 수 없으므로 매사에 혼자일 때보다 조금 더 확신에 차고,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핵가족이나 소가족의 개체는, 혼자 모두 다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게임이란, 쉽게 시간을 조개 즐길 수 있으며, 그들의 현실과의 연관관계를 끊어놓으며 많은 노력을 비교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게임 내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현실에서만큼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또한 자신이 행동함으로써 인해 돌아오는 결과 또한 미미하여, 스트레스 받은 청년들에게는 좋은 배출구가 되었다.무분별한 게임 기획 및 개발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 요소 노출이 스트레스는 보통 분노와 증오 혹은 괴로움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간파하고 있는 많은 회사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게임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이는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들에게 분노의 배출구와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효과적인 역할을 해 내었고, 그들은 그 카타르시스를 통해 이것들을 견디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은,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려면 독서나 미술 음악과 같은 찾기도 힘들뿐더러 자신이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매체보다는 게임의 폭력적인 요소에서 찾기가 쉽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을 원하게 되고, 이 수요에 의해 시장의 공급은 요구를 충족시키게 된다. 결국 음성 피드백적인 발전구조는, 더욱 폭력적이고 선정적 게임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기업은 돈을 번다.국가의 개입 미미함이 방종을 불러이런 악의 고리에는 국가가 개입해서 깨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전통 자유주의를 따르므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이런 문제점들을 방관했다. 그리하여 결국 기업들은 눈치를 보지 않고 시장에 진출하고 많은 이용자들을 중독 시켜 왔으며 정부의 구제조차 미미하게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부의 가치중립을 지향하는 모호한 입장은,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보다 먼저 주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무를 저버리게 된다. 이로써 정부는 결론적으로 자신의 국가에 악질 기업이 불온한 게임으로써 국민의 돈을 가져가고, 이들을 노동하지 않으려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컴퓨터와 게임의 순기능은 살리면서 역기능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절제와 판단물론 신대나 이십대들이 주를 이루는 게임 이용자들에게 절제와 판단을 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 측면에서 게임의 위험성을 알고, 이것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결과와 이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기회비용을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도록 게임을 하는 시간을 정해두고 하며, 게임 외에도 다른 취미를 두는 것이 좋다. 취미로서는 활동적인 취미가 좋으며, 이로써 컴퓨터를 함으로써 사용되지 않는 여분의 체내 영양소까지도 활용함으로써, 컴퓨터 게임 중독을 예방함과 동시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만약 자기 자신의 절제능력이 게임을 스스로 끊어낼 만큼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되면, 심리상담가나 정신과의 전문의를 찾아보고 진단을 받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그룹 상담이나 클리닉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절제 능력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통한 중독이 되었을 때 빠르게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It was best known that human is sacred and god-made till the modern times. `Tis untouchable sanctuary of mankind. The Creation. but Frankenstein, well, it showed possibility of mankind wielding it`s own kind. People gathered and debated about the issue that book contained. It was about how science should not touch divine section of religion, and about the boundary of calling a `Thing` a human kind. truly it was issue that was never risen before, and it tore down the sacredness of human kind, and life itself. Why and what was the problem mattered so much?Some call it that it is the fourth discontinuity in human history. The first was Galileo Galilei finding that earth is not the centre of the universe. Second was Darwin founding that man is not created as the way we see it today. and the Third was Jigmund Froid that human is nothing but organism with sexual desire. and the last,